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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보기

하버드 필름 아카이브에서 3월 21에 다큐멘터리 [송환]을 상영한단다. 김동원 감독이 직접 참석한다는군....

 

오늘 영어 선생한테 같이 보러가자고 했다. 사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봤지만, 웬지 미국 친구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도 남의 나라 역사를 잘 모르지만, 미국 사람들은 정말 바깥 세상에 대해 잘 모른다. 애국애족심이 넘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우리의 현대사를 보여주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하야.. 오늘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우리네 현대사에 대해 엄청 썰을 풀어놓았다. 일제 점령부터 시작하여 한국전쟁, 남북의 대치, 국가보안법, 군사독재 등등등.. 되도 않는 영어로 이 파란만장한 사실들을 전달하려니 식은 땀이 삐질삐질...  내용이 맞았는지도 좀 의심스럽고....  이전에 볼 때, 영어 자막이 같이 나오는 걸 봤었는데,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내용 전달이 안 될 것 같아 사전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이다. 

 

경제발전과 군사독재 이야기를 하다가 전태일 열사를 언급했는데, 스스로 몸에 불을 질렀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사고가 났냐고.. 아니라니까 그럼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영어로 이를 표현하다보니,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던가 스스로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보아왔기에 둔감해있었던 것이다. 요즘은 누가 죽었고, 누가 죽음을 시도했고 뉴스를 통해 진도를 따라가기마저 힘들지 않았던가.... ㅡ.ㅡ

 

그 불에 타 숨진 노동자의 어린 여동생이 힘들게 공부해서 영국에서 여성 노동자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한국에 돌아왔고, 여전히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더니만, 이 양반 진짜로 감동해버렸다. 그러고 보니, 어느 소설에서나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드물고도 극적인 인간 드라마...

 

송환에 관한 대략의 줄거리를 알려주었더니만, 이제는 남북한이 자유롭게 왕래를 하냐고 묻는다. 그래서 이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특별한 허가가 필요하다고 했더니만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이산가족 상봉 후에 여전히 남북 가족들이 따로 떨어져 살고 있다니까 황당해하기까지 했다. 내가 말하고도 상황이 진짜 어처구니 없어 보이긴 했다. 원래도 부당하다고는 생각했었지만 막상 사전 지식 없는 외국인에게 설명하려고 보니 역사적 맥락이고 정치적 배경이고를 떠나서 진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한국 사회에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나 자신의 역치가 무섭도록 높아져 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관성의 무서움, 그리고 낯설게 보기의 소중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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