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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된 역사

존 스노우와 윌리엄 파 ~ 는 역학의 아버지 어머니 쯤 되는 양반들이다.

존 스노우 할배야 런던 콜레라 사건 당시 보여준 혁혁한 공 때문에 워낙 유명하고, 의대를 졸업한 사람은 물론 보건 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알고 있지만, 파~ 할배는 좀 지명도가 떨어진다. 그래도 이 양반이 근대적 생정통계 체계, 질병 분류 체계를 확립하고 역학의 여러 중요한 개념들(이를테면 대조군)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역학 하는 사람들한테는 존 스노우에게 버금가는 중요 인물...

 

잉. 이걸 쓰려는게 아닌데?

 

질병의 원인 개념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재구성되는가, 이런 논문에서 영국 빅토리아 파~ 할배 시대를 살펴보게 되었다. 이야기의 주요 논점은 아니었지만, 거기에 보면 과학으로서의 "의학"이 당대의 사회개혁 (부르조아 혁명)과 어떻게 발을 맞춰 나갔는지, 귀족 의사 (캠브리지, 옥스퍼드 출신. 과학보다는 인문학과 철학, 천문학을 주로 공부했단다)에 맞서 현장 의사 (해부학과 생리학으로 무장했으며, 환자들을 직접 만나는)들이 어떻게 "의학계"를 재구성했는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깨알만한 글씨로 길게 서술되어 있지만, 요약하자면 새로운 전문직으로서의 의사들 또한 봉건 질서에 맞서 "싸우면서" 학문적 입지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것이라는 것.(전문직이 과학지식에 근거해서만 성립된게 아니라는 점은 오히려  20세기 초 영아 사망률과 관련하여, 산부인과 의사, 소아과 의사, 조산사, 백인 중산층 여성의 모성보호 운동, 흑인 여성 운동 등이 대 논쟁을 벌일 때 더 뚜렷이 드러난다).

이들이 개혁 세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 근대 과학으로 무장했다는 점 + 봉건 사회와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극심한 불평등을 직접 목도했다는 것. 어쩌면, 인텔리겐차로서는 유일하게 사회의 하층 계급과 직접 대면했다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광범위한 공중보건 운동과 사회개혁 운동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뭐든지 단시간에 경험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내재적 동력보다는 외부로부터의 이식에 의해 이루어졌다.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 발전이 과연 내재적이냐 아니냐는 뭐 내가 논할 성질의 것이 아닌 거 같고... 학문 분야는 최소한 그렇다고 나름 확신한다.

그래서 나타난 결과 중 하나는, 사회발전 혹은 이행과 함께 이루어졌어야 할 학문의 진화 과정이 상당 부분 생략되었다는 거다. 말하자면 완성품이 그대로 도착한 셈... 전후 과정은 하나도 모른 채로...

 

한국의 의사들이, 다른 보건의료직들과 치열하게 헤게모니 투쟁을 벌였거나, 질병의 병인론에 관한 논쟁을 벌였거나 (더러운 공기가 문제다, 아니다 수도관이 문제다, 영양실조가 문제다 등등), 아니면 밑바닥에서 정말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하며 근대화를 위해 투쟁했거나 ....

이런 과정이 모두 생략된 채, 그저 교과서를 외우고 서구 선진국에서 하는 대로 따라 하고 (학교 다닐 때 소아과 시험 문제에,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병명이 나와서 정말 어이없던 경험도..) , 처음부터 확립된 독점적 지위를 그냥 누리고...  한 마디로 거저 먹은게 아닐까 싶은...

뭐 이 또한 우리 사회의 고유한 사회발전 양상을 반영하는 거라 할 수 있겠다.

나 또한, 서구 교과서, 논문에 따라서 한국 사회를 재단(!) 하고 있으니까....

미국 연수의 성과라면, (뭐 결론은 이르지만) 근본적인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서 우리 사회를 살펴볼 수 있는 자의식이 생겼다는 거다. 이걸 어찌 구체화시키는가는 좀 더 수련이 필요한 대목... ㅜ.ㅜ

 

근데... 이런 면에서.. 참으로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다.

특정 전문 과를 폄훼하려는 의도야 없지만 말이다.

아무리 편한게 좋아서 **의학을 선택했다고 해도, 그래도 트레이닝을 받다보면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고통을 직접 본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인지상정인데....

오히려 내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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