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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한?

지난 3주 동안 틈틈이 즐겼던(?) 꺼리들... 0. 정민 [미쳐야 미친다] 푸른역사 2004

 

 

옴니버스 소품들이라 화장실에 가져다놓았던 책. 1부(벽에 들린 사람들)와 2부 (맛난 만남)의 일부 (이를테면 홍대용, 박지원, 정약용 선생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고, 가슴을 울리는 무엇이 있었음. 그런데... 일 개인들이 시대의 지배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누군가의 희생에 기반한 양반네들의 풍류와 멋이 마냥 즐기기엔 불편했다. 이를테면 빗길에 가마를 타고 산행에 나서려면 누군가는 그 가마를 메야 하고, 한밤의 급작스런 음주가무를 즐기려면 누군가는 술상을 차려야 한다.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할 무렵, 세검정 정자에서 급류를 즐기려면 누군가는 동동거리며 빗속에 음식상을 옮겨야 한다. 그래서,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반상 구조가 지배적 질서라고는 하지만, 이 풍류와 멋을 아는 나름 진보적 양반네들은 마음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을까? 그러려니 하면 다 괜찮은 걸까? (책 내용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이런 정서 때문에 사실 몰입이 좀 힘들었음 ㅜ.ㅜ)


0. 고종석 [감염된 언어] 개마고원 2007 (개정판)

논쟁을 부정하는 사회에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대체로' 바람직하겠지만, "논쟁용" 문제제기가 가진 불편함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를테면 115쪽, 한국사회의 재벌 편향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말하자면, 내가 노동자 편이라서 이런 건 아니다)노조도 문제라는 논리를 펴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조가 시장질서에 경직성을 가져오는 일종의 권력? 한국 사회에서? 노조 조직률이 겨우 10%를 넘는 사회에서? 한편, 사람들이 흔히 제기하는 비판에 대한 반비판으로 제기되는 논거들이 조금씩 핵심을 벗어나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에서 제기한 번역투 문장 비판에 대한 반비판이 그렇다. 어차피 우리(?)의 근대학문이 번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저자의 논거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사람들이 '번역투'를 비판하는 건 말같지 않은 외계어스러움 때문 아닌가?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에서 오는 생경함이 일부 더해지긴 했겠지만, 내가 번역투 문장을 싫어하는 경우는 대개 그것이 '이해'가 안 가기 때문이다. 맥락이 다르고, 표현법이 다른 외국어를 완벽하게 1:1로 조응시켜 번역하기란 어차피 불가능한 일... 하지만 번역의 목적이 사람들에게 한국어로 읽히기 위한 것이라면 한국어 사용자들 (더구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건 기본 아닐까??? 그런데, 이러한 문제의식을 뭉뚱그려 번역투에 대한 비판을 한국어 순결주의로 몰아간 것은 못내 불만이다. 영어 공용화론도 그렇다. 영어를 계속 이렇게 (공용화시키지 않고) 비공식적 영역에 남겨놓았을 때, 소수의 특권층이 전유하게 되어 정보 격차와 결국은 계급 영속화를 낳게 된다는 주장은 참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한국사회에서 영어가, 학문이나 문화를 체득하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이렇게 뜨거운 감자가 되었나? 영어를 공용화시키고 모든 사람이 영어를 배우게 된다면, 계급/계층 간의 학력 격차, 정보 격차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한국사회에서 영어가 가진 지위재로서의 독특한 위치, 실질적인 실생활 필요도에 대한 구체적 평가, 공교육을 통해서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사교육과 해외 체류 경험 등에 대해, 과연 저자는 의식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말 이 부분 읽으면서 속터져 죽는 줄 알았다. ㅜ.ㅜ 그래도 깊이 공감하는 부분들은 있었다. "새로운 모델"에 대한 빈정거림... ㅎㅎ "자신의 주견이 없는 사람들,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일종의 도피처로서, 유예된 결정의 명분으로서 늘상 내세우는 그 '새로운 모델'에 이제 신물이 난다 (신비롭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그 '새로운 모델'이 언제쯤 나오려나. 그걸 탐색하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와주어야 할텐데. 하긴 그게 안 나와야 이 사람들이 계속 바쁜 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 진보의 재구성이니 노동자 정치세력화니, 반대할 일을 없으나,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지, 각론 없는 총론 타령에 살짝 어이가 없었는데, 이 부분은 읽자니 내 속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 ㅎㅎ 다른 글에서도 몇 번 제기한 '국어', '국사'에 대한 비판에도 물론 적극 동의한다. 학회 논문 사독을 맡을 때, '우리 나라'라는 표현이 나오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도대체 우리 나라가 어디인가??? 이 한국 사회 거주자들이 아직도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냐는 말이다.... 고종석은, 자유주의자로서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은 좀 안 쓰면 좋겠다. 정운영 선생과 달리, 자연스런 공감이 아닌 설득에 나서는 순간, 그의 아름다운 필력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드니 말이다. 0.BBC [Planet Earth] KBS 미디어 2007

정말 장대했노라.... 광활한 풍광과 자연의 섭리 앞에서 숙연해짐과 더불어, 도대체...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음.. ㅡ.ㅡ 생명체들의, 삶에의 고귀한 투쟁을 폄훼하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으나, 인간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심히 살아남아서 번식하고 새끼를 키우고, 그 새끼는 살아남아 번식하기 위해 살아가고.... 살아 있음으로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사는 것. 혹은 오로지 삶의 목표 (그들의 진정한 내면을 내가 어찌 이해하겠냐만...)란 생존하여 후손을 남기는 것.... 과연 인간이 이렇게 살 필요가 있을까?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것, 적자생존이라는 진화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 바로 인간다운 삶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너무나 솔직하게 자연 다큐가 펼쳐진다. 그것이 내가 이 다큐 시리즈를 보면서 경외와 좌절을 한꺼번에 느꼈던 이유... 0. 모건 스펄록 [Supersize Me] 2007

아, 진짜 이렇게 자막 후진 영화 오랜만에 보았음 ㅡ.ㅡ 학생들 실습 시간에 보여주려고 미리 본 건데... 재미도 있고 교훈적이나 시간은 좀 줄였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타겟을 잡아서 이야기하는 것의 장점은 있으나, 전반적인 경향성에 대한 논의보다 맥도널드라는 '특수'사례에 집중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아마도 이게 미국식 다큐 제작 방식인 것 같다. 생생하고 발랄하면서 재미있기는 하지만 뭔가 배후의 거대한 질서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리는? 우쨌든 불과 한 달 만에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거에 나도 나름 충격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아까 엘리베이터서 나던 고소한 닭튀김 냄새에 잠시 정신이 어질~ 본능을 거스르긴 어렵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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