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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사귤

망사귤을 선물 받았다.
열차에서 또는 시골 버스 대합실에서 파는 그 망사귤 말이다.
선물 이전에 너무나 정겹다.




경북 영양 오지에서 어렵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지부 조합원들이 고용승계 등 어려운 문제로 꼭 내려와 달라고 했다. 시간은 없었지만 너무나 가슴이 아려 주저 없이 '예'하고 답변을 하고 약속한 날인 어제(2월 1일) 내려갔다.

 

안동에 들려 민주노총 경북본부 북부지구협의회 성홍기 전 의장, 홍진령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영양으로 갔다.

 

조합원이라야 달랑 9명이다. 고용승계 싸움을 2달 째 하고 있다. 어려울 것이다. 지역에서 노동조합 활동하는 것이. 더욱이 민주노총 활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나도 안다. 지역은 토호들이 장악하고 있고, 이리 저리 인연을 대면 연결이 안 되는 이가 없다. 자연 '싸가지 없다'는 등 부차적인 문제로 코너에 몰리기도 한다. 그런 이들이 2달 동안 거리에서 투쟁을 했고, 내가 갔을 땐 전 조합원들이 모였다.

 

임기가 막 끝나가는 지부장은 한사코 더 이상 자리를 맡지 않겠다고 하고, 조합원들은 지부장이나 비대위원장이 없이 어떻게 싸우냐고 항변한다.

 

기탄없는 토론 끝에 지부장이 한 달 더 비대위원장을 맡기로 하고, 조합원들은 투쟁방침을 정했다. 흡족하지는 못했지만 힘찬 박수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다시 안동으로 나왔고, 터미널에 내렸을 때 홍진령 비대위원장이 굳이 배웅을 하겠다고 했다. 내심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표를 사는 나를 밀치고 자기가 표를 끊어준다. 자기 일인데 와줘서 고맙다면서. 사실 영양지부의 문제는 나의 일인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데 난 홍 선생(전교조 선생님이다)의 배려를 강력히 막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겼다고나 할까.

 

서글서글하면서도 선생님 특유의 섬세함이 엿보이기도 하는 사람 좋은 인상의 홍 선생이었기에, 그리고 옛날 막걸리 한잔이라도 더 권하려는 인심이 생각나, 난 황홀한 무기력함으로 사양하지 못했다.

 

나도 학교운영위원이니 노조 문제가 아니어도 공통의 대화 주제도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차 탈 시간이 되었다.

 

홍 선생은 다시 대합실 내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망사귤을 하나 샀다. 그리고 '계란도 드시겠어요?' 한다. 이제는 웃음이 슬그머니 나온다.

 

'아니요. 됐어요.'

 

하면서도 손은 주책없이 그가 내미는 망사귤로 냉큼 나갔다. 인사를 하고 차량에 올랐다. 차가 터미널을 빠져나가는데 한쪽에서 홍 선생이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거품처럼 흔적없이 사라질지라도 순간은 너무나 행복했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하늘은 깜깜한데 얇은 초승달 조각이 차창가에 맴돈다. 초승달은 희망의 상징이라고 하는데, 그냥 근거없이 희망을 걸어봐도 될까? 세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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