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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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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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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4/24
    메구스타 쿠바(8)
    풀소리

THIS IS ENGLAND

 

디스 이즈 잉글랜드(This Is England, 2006)

감독 : 세인 메도우스

출연 : 스티븐 그레햄, 조셉 길건, 프랭크 하퍼, 잭 오코넬 등

공식 홈페이지 : http://www.thisisenglandmovie.co.uk/

 

 

1.

 

광화문 씨네큐브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백두대간'이 운영하는 '씨네큐브'가 문을 닫는 것이다.

'씨네큐브'라는 상호는 현재 씨네큐브가 입주하고 있는 건물주인 '흥국생명'이 샀다고 하니

앞으로 씨네큐브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글쎄... 별로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수업이 없는 지난 수요일(8월 26일) 나는 씨네큐브에 갔다.

글쎄... 다시 올 일이 없을 것 같아서일까?

건물 앞에 커다랗게 서 있는 망치든 사람까지

망치질의 느린 동작처럼 천천히 보이더라...

 

암튼 망치질 하는 손도 바람에 떨리고 있더라...

수없이 이곳을 지났을 텐데도 보지 못했는데, 가만히 보니

망치질이 멈춘 순간엔 거대한 쇳덩어리도 바람에 흔들리더라...

 

 

부서진 목선에서 홀로 새총을 쏘고 있는 '숀'

 

 

2.

 

영화의 무대인 1983년 영국은

1979년부터 집권한 대처정부가 주창한 신자유주의의 검은 그림자가

깊고 넓게 세상을 덮고 있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해변가 초원 위에 부서져 버려진 목선, 텅빈 공장, 주인 잃은 빈집...

그리고 꿈도, 일도 없이 버려지다시피한 아이들...

 

12세 소년 숀은 전 해인 1982년 발발한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고

엄마랑 단 둘이 살고 있다.

 

대처 정부의 복지예산 삭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를 잃은 숀의 집은 매우 가난하다.

 

누구를 향한/ 무엇을 향한 fuck-you!일까?

 

 

숀은 유행이 한참 지난 통이 넓은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데,

이 바지 때문에 학교 아이들로부터 놀림감이 된다.

 

놀리는 주변 아이들과 지지 않고 싸움도 하고  그러지만,

어쨌든 숀은 늘 '외톨이'다.

 

이런 숀은 어느날 집으로 돌아오다 우연히 '우디' 일당을 만난다.

우디 일당은 자칭 '스킨헤드'지만, 말과 복장만 스킨헤드일 뿐

사실은 딱히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는 백수 청소년들이다.

 

어찌됐든 우디의 도움으로 숀은 우디 일당과 함께 전쟁놀이도 하고, 파티도 하고

'나름' 즐겁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날 우디의 친구 '콤보'가 감옥에서 출소한다.

콤보는 자칭 '원조' 스킨헤드다.

그야말로 '위대한 잉글랜드'를 꿈꾸며, 유색인종을 혐오한다.

 

콤보는 우디 일당에게 자신과 함께 할 것인지 아닌지를 강요한다.

숀은 콤보와 함께 하기로 한다.

 

숀의 선택은 순전히 아빠에 대한 기억, 또는 존경 때문이었다.

콤보의 주장이 올고 그런 것을 떠나 12세 소년에게 나름 강력한 메시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우디(왼쪽 끝)와 콤보(오른쪽 앞)과 그의 친구들

 

 

3.

 

결말은...

 

콤보는 정신착란을 일으킨 것처럼, 흑인인 밀키에게 기절할 정도의 폭력을 행사하고,

이를 말리는 숀과 주변인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콤보의 폭력은 콤보를 둘러 싸고 있는 이들에게 많은 충격이 되었다.

물론 숀에게도...

 

물론 이국인인 내게는 콤보의 폭력이 충분히 예견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콤보를 따르던 일당에게는 그렇지 않았는가 보다.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와 가게 주인을 욕하고 위협하였지만,

폭력으로 이어질 지는 몰랐나 보다.

 

그렇듯 숀을 비롯한 콤보 일당이 일정부분 유색인 혐오 등에 가담하였을지라도,

유색인인 밀키에게 향한 콤보의 폭력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에는 모두 당황하고, 저항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모두가 함께 하는 공동체 사회의 관용의 전통이

이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러하다면, 그런 뿌리 깊은 전통이 언젠가 희망을 만들어 내겠지...

물론 나중에 희망이 만들어진다고 그런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고통이 당장 덜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저 아이들에게 희망을...

 

 

희망이 없는 사회에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열정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상/처/가 되기 십상이다.

자포자기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열정이 있다고 하여도 대부분 방향을 잃은 열정이기 십상이기 때문이고,

방향 잃은 열정이 나아간 길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자존심이나 자긍심을 채워주기는커녕

평생 자신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손상시키는 아픈 상처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1983년 영국

그들은 텅빈 공장 담벼락에 분노의 구호를 써넣었다.

'또라이 아줌마 대처!'

 

2009년 한국

'또라이 할배 이명박!'

 

앞으로 우리의 거리는 얼마나 더 황량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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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 숀의 엄마가 쓰고 있는 알이 커다란 뿔테 안경, 오락실의 겔러그, 아이들이 돌리는 큐빅...

  8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ps2 : 오늘이 백두대간이 운영하는 씨네큐브 마지막 날이다. 오늘까지 씨네큐브에서 영화를 보면 '모모'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티켓을 한 장씩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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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ye Cinec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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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몽골방랑

김홍희 몽골방랑 -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지은이 : 김홍희 | 출판 : 예담 | 출간일 : 2008-09-03

 

김홍희 몽골방랑 표지

 

1.

 

지난 내 생일에 바두기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았다.

 

난 오래 전부터 사막에 꽂혀 있었다.

관련 책들과 다큐들을 찾아보았고,

사하라에 가보고 싶었다.

 

싶/었/다

 

물론 나의 희망은 현실이 되지 못했지만,

때로는 생명의 흔적이 보이지 않거나 메말라가는 황량한 사막이

때로는 붉은 개양귀비가 끝없이 피어난다는 비온 뒤의 알제리 사막의 풍경이

시시때때로 내 닫힌 망막을 스치고 지난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기에

바두기는 이 책을 나에게 선물했으리라.

 

고맙습니다. 책 잘 읽었습니다. ㅎ

 

몽골 초원에 핀 엉겅퀴/ 기준점을 잡을 수 없는 드넓은 초원은 내게 내 관념 속의 사막과 별반 다를 게 없다.

 

 

2.

 

나는 왜 그렇게 사막에 가보고 싶어했을까?

 

내가 사막을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것은 소비에트가 붕괴된 직후 나온 박상우의 단편소설 '사하라'가 그 시작이었을 것이다.

 

좋아한다고 그 이유가 항상 분명한 것은 아니다.

좋아하면서 좋아하는 이유가 생기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사막을 좋아하였고,

남들에게 말해줄 수 있는 좋아하는 이유도 꽤 생겼다.

 

김홍희는 몽골을 방랑하고, 책을 내면서

부제(副題)로 '나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라고 달았다.

보고자 했던 것을 정말 보지 못해서였을 지도 모르고,

어쩜 특별히 구체적인 뭘 보러 간 것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초원과 모래사막과 산맥과 하늘/ 양(염소인지도 모르겠다)들과 사람들이 살고 있다.

 

 

3.

 

김홍희는 이렇게 썼다.

 

'자유란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마음에 와 닿는다.

내가 사막을 갈망하는 한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위치와 '너'의 위치를 지정해줄 기준점에 익숙한 삶을 살고 있다.

어디 나와 너 뿐이랴. 종로는 어디고, 광화문은 어디고,

A는 누구고, B는 누구고...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뭔가의 기준점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런데 너무 익숙하기 때문인가.

그 기준점은 자꾸 흔들린다.

때로는 아지랑이 처럼 촛점을 잃기도 하고,

신기루처럼 이리저리 옮겨다녀 긴지만지 하기도 하다.

뭐가 옳은 것인지, 있는 게 정말 있기나 한 것인지...

 

몽골 사막의 노을

 


그런데

한없이 황량하고, 한없이 낯설어서 도무지 기준점을 찾을 수 없는 곳...

그런 곳에 간다면...

그래서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근원적인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오히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공간이,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느껴질 것 같다.

 

그렇게 사막은 나를 정화시켜 줄 것 같다.

 

 

ps : 위의 사진들은 김홍희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음을 밝힙니다.

http://www.kimhonghee.com/dia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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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구스타 쿠바

메구스타 쿠바

이겸 지음

은행나무 출판

부제 - 카메라를 든 순례자 이겸, 30일간의 쿠바 기행

 

메구스타 쿠바 표지 '메구스타 쿠바'란 스페인어로 '나는 쿠바를 좋아한다'는 말이란다.

 

 

1.

 

노조 일을 마치고 꼭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쿠바 여행'이었다.

물론 성사되지 않았다.

내가 쿠바를 가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카스트로가 살아 있는 쿠바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혁명이란 뭘까?

사람들에게 혁명이란 뭘까?

수많은 혁명, 실패한 혁명, 변질된 혁명... 그리고 여전히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

 

나는 안다. 레닌의 말이 아니라도 혁명 건설의 길이 '네프스키 대로'가 아님을.

레닌의 말대로 '구시대의 정신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리라.

 

혁명을 성공시킨 열정은 여전히 건설의 장애가 되는 '구시대의 정신'을 견딜 수 없는 모독으로 여기게끔 할만도 하리라.

로비에스 피에로의 기요틴,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 중국의 문화혁명... 이해된다.

그 피의 광기가 상당 부분은 혁명의 열정이었음을...

그러나 진정한 혁명의 열정은, 그것이 인간에 대한 열정이라면, 광기이기 보단 인내가 아닐까?

 

인내는 수많은 우회도로를 인정하는 것이고, 때로 모욕적이기까지 한 수많은 타협을 감수하는 것이겠지...

어쨌든 아직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주의가 쿠바, 거기에 있을 것 같았다. 내겐...

 

 

2.

 

바두기로부터 이 책을 선물받았다.

지은이 이겸의 쿠바 여행은 산티아고 데 쿠바로부터 시작한다.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이 훤히 보이는 곳, 쿠바 혁명이 시작된 곳이다.

역시 순례자 답다.

 

30일 동안 쿠바 여행을 한다고 쿠바를 모두 알 수 있는 건 아니리라.

더욱이 이미 보고자 하는 '관점'을 가지고 간다면 한 면이 잘 보이는 대신 다른 한 면은 잘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내겐. 쿠바 사람들의 구김살 없는 미소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을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혁명은 그들에게 많은 '해방'을 선사했겠지만,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또 많은 '불편'을 선사할 것이다.

'무상의료', '무상교육'과 같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소중한 것들'이 당연한 일상이 된 그들에겐 더이상 그리 '소중한 것들'이 아니리라.

대신 남루하고, 변함없어 권태로운 삶이 그들에겐 더 큰 장애가 되는 것이리라.

 

물론 짙은 색안경을 낀 내가 책 한권을 읽었다고 어찌 쿠바를 알랴..

더 많은 것은 언젠가 쿠바를 직접 가보고 알아보자.

그땐 이미 카스트로는 죽어 있겠지?

쿠바는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르고...

뭐 할 수 없지.

변하면 변한대로 멋진 자연이나 보다 와야지... 혁명을 추억하면서...

 

 

3.

 

이겸의 여행은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끝난다.

나는 메구스타 쿠바를 읽고 오랫동안 사고 싶었던 'BUENA VISTA SOCIAL CLUB' DVD를 샀다.

이준 선배가 주말마다 꼭 한번씩은 본다는 다큐영화다.

역시 좋다.

 

바두기님 책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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