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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21
    그냥(2)
    풀소리
  2. 2010/09/16
    그의 고향
    풀소리
  3. 2010/08/24
    나는 왜 제주에 갔을까(3)
    풀소리

그냥

그냥 자자...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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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향

사람이 많아 즐겁다는 뜻의 인다락(人多樂)에서

어진이가 많다는 뜻의 인다(仁多)로 뜻이 바뀌었다는 그 마을은

남한강이 갈라져 두 여울이 되었다는 뜻의 복탄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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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봉에 기대어 남한강에 발을 뻗은 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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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어디 쯤 그가 살던 집. 또는 그 터가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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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가로지르다 들판 옆으로 흐르는 맑디맑은 시냇물가에서

족대를 들고 피래미, 미꾸라지를 잡거나 다슬기를 주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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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너른 들판을 뛰어다니며 메뚜기를 쫓기도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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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과수원에 들어가 사과서리를 하다

동네 할아버지의 호통소리에 놀라 달음박질을 놓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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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에 기대어 수줍은 눈망을로 단말머리 소녀를 몰래 훔쳐보기도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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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고향마을이길래 이렇게 오롯이 남아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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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 븕은색연필이 일 때문에 어제 제 고향을 지나쳤답니다...

그리고 그 풍경을 저희 카페에 올렸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제 고향집 동네도 사진을 찍었네요~~
메뚜기 잡았을 넓은 들이라고 하는 곳의 사진 찍은 포인트가 제가 3살 때 엄마 등에 업혀서 가다가 봤던, 그러니까 제 생애 제일 첫 기억이 있는 곳과 거의 일치하는 포인트입니다~

사과밭은 친척 형네 거구요, 그 뒤 현대식 집이 친척 형네 집인데, 올해 새로 졌군요...

고향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많은데, 붉은색연필의 사진과 글을 보니 눈물이 찔끔 납니다~~
행복한 기억을 되살려준 붉은색연필에게 너무너무 큰 감사를 드립니다~~~
옛날 어렸을 때 꽤나 사랑받던 그 기억이 마구 되살아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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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제주에 갔을까

[prologue]

 

제주에 다녀온 지 벌써 1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7월 1일 ~ 5일에 다녀왔으니 말이다.

 

다녀온 이야기를 연재 형식으로 쓰다가 멈췄다.

물론 사정이 었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무리 없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거 같다...

 

비록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말이다...

 

 

[나는 왜 제주에 갔을까?]

 

나는 왜 제주에 갔을까?

그리고 무엇을 봤을까?

 

물론 여행지로 제주는 언제 선택해도 탁월한 선택임에 틀림없다.

그런 것 말고 무엇이 날 제주로 불렀을까.

무엇이 내게 갈 수 없는 여러 악조건을 무릅쓰게 했을까...

 

그것을 한 마디 또는 한 가지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은 내게 커다랗기도 하고, 중요하기도 한 이유임에 틀림 없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나???

 

 

바닷가 길가에 외롭게 매달린 낡은 '올레' 표식

 

 

때로 외로운 것은 그 자체로 다른 외로운 것을 위로해주기도 한다.

저기 매달린 낡은 표식처럼,

곶자왈 깊은 숲속으로 길게 이어진, 버려진 돌담처럼

아름다운 풍광 속에는 또 외로운 것들이 여기저기 버티고 서 있었다...

 

그것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외로움'의 크기만큼 '나'의 외로움을 위로해주었다...

 

 

정난주 마리아 묘

 

 

위로는 때로는 근원적인 물음이기도 하고,

그래서 삶의 엄숙함이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죽음을 무릅쓰고 선택한 이들 앞에서

나는 위로를 넘어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이 갔던 고난의 길 그 거리만큼

내 마음은 그만큼 더 정화되는 것 같았다...

 

 

제주목 관아

 

 

물론 일방적으로 위로만 받으러 간 것만은 아니다.

내가 위로를 해주기 위해 간 곳도 있었다.

 

고상한 인격이 무뢰배/정상배들에 위해 능욕되고

끝내 짓밟혀 죽은 이에 대하여 나는 위로를 하고 싶었다.

 

내가 찾은 것은 그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지만,

남을 위로한다는 것은 때로 '나'를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해녀의 집

 

 

생존을 위한 거친 숨결 또한 내 지침 삶에 싱싱한 자극이 되었다. 

 

거친바다와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겨냈을,

그래서 한없이 강해지고 넓어졌을 해녀들의 삶이 거기 있었다.

 

 

곳자왈 숲속에 숨어있는 샘물

 

 

여름 올레걷기에서 곶자왈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굵고 가는 자갈이 빼곡한 곳...

사람들이 개간할 수 없어 원시림처럼 나무들이 빼곡한 곳...

그곳이 곶자왈이다... 

 

물론 제주의 역사를 조금 알고 있는 이들에게 곶자왈은 그저 아름다운 밀림일 수만은 없다.

거친 곶자왈 속에도 곳곳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돌들을 쌓아서 만든 담들이 때로는 길고 넓은 구획으로, 때로는 조그만 구획으로 이어진다.

넓은 것은 밭이었을 것이고, 좁은 곳은 집자리였을 것이다.

 

이렇듯 열악한 곳으로 밀려나 산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끝없을 것 같은 곶자왈을 걸으면서 나는 쉼없이 샘물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물이 귀한 제주에서 샘물은 곧 생명수였을 것이고 샘물이 있는 곳은 사람들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저 위의 커다란 샘을 발견했다...

이곳에도 주변에도 돌담이 예외없이 이어지고 있으니 언젠가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 이곳에 처음 살기 시작한 이들이 저 샘물을 발견했을 때의 환희를 생각하면서도,

이곳이 4.3으로 없어진 마을이 아니길 바래고 또 바랬다...

 

 

넓게 넓게 이어진 밭벼밭

 

 

사람의 삶을 뺀 제주의 자연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석양이라 엷은 어듬 속으로 잠겨가는 넓디넓은 밭벼밭을 보면서 나는 한없이 셔터를 눌렀다.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저 넓고 아름다운 곳에서 나온 곡식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곳 사람들의 뱃속과 마음속을 풍요롭게 채워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앞으로도 바로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이 넓은 들이 삶을 따뜻하게 채워주어

나처럼 한번 지나치는 이들이 아닌 바로 그들의 눈에도 한 없이 풍요롭고 아름답게만 보였으면 좋겠다...

 

 

[epilogue]

 

위로는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때로는 말없이 꼭 잡아주는 손길에서

 

느끼고 또 받을 수 있지만...

 

 

때로는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길을 보낼 때

때로는 안타깝게 바라보는 눈길을 보낼 때

그리고 그 아픔을 어루만지는 깊은 사랑을 보낼 때

 

돌이켜보면 스스로도 많은 위로를 받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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