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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노스> 보다 델로스가 좋다

미코노스 가는 배를 타러 버스정류장에 나간다. 캐리어 두 개, 커플룩은 아니지만 왠지 커플임이 분명한 남녀 한 쌍.. 아무리 봐도 한국인 신혼부부다. 아.. 말을 시켜.. 말어.. 잠시 고민이 된다. 아무리 아쉬워도 커플들한테 먼저 접근하지 말기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 아쉬운 건 나다. 버스 떠나는 시간까지 엽서 몇장을 살 생각이었던 나는 결국 배낭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말을 건네고 만다. 한국분들이시죠? 신혼여행 오셨나 봐요? 저 배낭 잠깐만.. 뭐 이렇게 만난 신혼부부 커플은 배시간이 나보다 한시간 더 느릴 뿐 목적지는 똑같은 미코노스섬이다. 게다가 이 커플은 몹시 친절하기까지 하다. 이곳에서 만났다는 한국 남자여행자 하나가 자기들이랑 같은 배니까 오늘 저녁에 넷이서 저녁이나 같이 먹잖다. 드디어 자취여행자 신세를 벗어나나 보다.

 

산토리니에서 미코노스 섬까지는 세시간.. 고로 배는 그리 크지 않다, 대략 동해에서 울릉도가는 쾌속선 비슷한 이 배는 불어대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거의 롤러코스터 흉내를 낸다. 어지럽다. 그래도 아직 배멀미를 할 정도는 아니다. 애써 잠을 청하며 버텨본다. 결국 이배는 어느 섬에선가 두시간 가까이 정박해 있다가 다시 목적지로 향한다. 나중에 나보다 한시간 늦게 출발해 한시간 빨리 도착한 신혼부부 일행에게 물어보았더니 배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배멀미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다는데.. 아마 내가 탄 배가 정박해 있던 시간이 바람이 몹시 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다섯 시간만에 미코노스 섬에 도착한다. 다행히 미코노스섬의 숙박시설은 항구에서 멀지 않다, 가서 찾아볼까 하다가 그냥 픽업니온 삐기를 따라간다. 산토리니의 방값과 같은 가격인 20유로짜리 방을 찾으니 고개를 갸웃하더니 따라오란다.

 

이번에는 실패다. 멀지는 않은데 골목 어귀의 화장실 같은 문을 열더니 여기가 방이란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돈으로 이만하면 좋은 방인 줄 알란다. 성수기때는 이방도 30유로였다나 뭐라나 해가면서 말이다. 다시 짐을 들고 거리로 나와 본다. 멀쩡하게 호텔 간판을 붙인 곳은 가격이 만만치 않고 이곳에서 스투디오라고 부르는 민박 비스므리 한 방은 정식 숙박 허가가 난 것이 아닌지 숙소 간판이 아예 없어 찾기가 쉽지 않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삐끼인듯한 한 여자를 따라가는 서양애들이 보인다. 여자에게 방이 있냐고 물으니 따라오란다. 결국 아파트먼트 형식의 집의 방한칸을 빌린다. 작은 거실을 중심으로 방이 세 칸이 있고 욕실에 부엌이 있는 전형적인 아파트 구조다. 아마 집 하나를 세내  방마다 대여를 하는 모양이다. 부엌을 쓸 수 있긴 한데 취사도구가 없으니 그저 차나 끓이고 샌드위치 정도 만들어 먹는 게 고작일 것 같다. 25유로.. 산토리니보다 5유로 비싸긴 하지만 이번에는 다운타운의 중심가다^^.


미코노스섬 전경


미코노스 섬의 풍차

 

늦게 도착한 탓인지 숙소를 잡고 나니 어느새 약속한 저녁 시간이다. 항구로 나가 일행을 만난다. 신혼부부가 말한 또다른 여행자도 나와 있다. 잠깐 회사를 옮기는 기간을 이용해 나왔다는 이 친구 거의 열흘만에 그리스와 터키를 도는 야무진 일정의 주인공이다. 신혼부부는 이미 한국 여행사에서 정해준 근사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고 또다른 여행자는 삐끼를 따라서 어딘가에 숙소를 정했단다. 차로 끌려가서 숙소가 어딘지도 모른다는 이 친구는 여기서 걸으면 이십분은 걸릴걸요 해가며 너스레다. 섬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저녁을 먹으로 들어간다. 몇가지 해산물을 시키고 보니 와인이 의외로 싸다-뭐 딴 물가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하우스와인이 1리터에 칠팔천원 수준이다. 대략 계산해봐도 맥주보다 더 저렴한 것 같다. 와인맛이야 잘 모르지만 맛도 그리 나쁘지 않다. 산토리니에서 우아하게 혼자 와인이나 마실걸.. 슬쩍 후회가 된다^^.


미코노스 타운의 골목길1


미코노스 타운의 골목길2

 

담날 차를 렌트해서 섬을 돌아보겠다는 일행과 헤어져 혼자 근처의 델로스섬을 간다. 이번에는 밤배로 이동해 사모스섬에서 배를 갈아타고 터키의 쿠사다시로 들어가는 일정이니 짐은 잠시 일행에게 맡겨둔다. 신혼부부는 오후 비행기로 아테네로 떠나는 일정이고 남자여행자는 어차피 나랑 같은 배다. 저녁 무렵 다시 만나기로 하고 델로스행 배를 탄다. 델로스는 미코노스에서 30분정도 떨어져 있는 섬인데 섬 전체가 그리스 시대의 유적지다. 이곳 역시 지금은 흔적만 남은 돌더미들이 유적의 대부분이긴 하지만 섬전체가 유적지로 이루어져 있어 한적한 맛이 있다. 유적지 사이로 이미 시들어버린 나무들 사이를 걷는 일은 상쾌하다. 이천년도 더 된 한때는 어느 신전의 기둥이었을 돌더미에 앉아 한참이나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배를 타고 돌아온다.


델로스섬의 사자상


델로스 유적

 

약속시간까지 조금 남은 시간에 결심을 깨고 다시 버스를 타고 비치 한군데를 얼쩡대다 온다. 파라다이스비치.. 어차피 이곳에서 일행을 만나기로 한 터다. 미코노스섬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이곳은 산토리니의 비치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저녁무렵이어서였을까.. 바다가의 레스토랑에서는 이미 커질대로 커진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는 젊은 친구들로 가득하다. 으으.. 이것도 적응이 안된다. 비치 한쪽에서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다가 약속시간이 가까워서야 주차장쪽으로 가본다. 다행히 일행은 늦지 앟게 도착한다. 신혼부부를 배웅하고 차를 반납하고도 배시간까지는 한찬이나 시간이 남았다. 배는 어차피 11시나 되어서야 떠난다. 저녁을 먹고 와인을 홀짝이며 시간을 죽인다. 다행히 일행이 있어 그리 심심하지는 않다.

 

사모스행 배를 기다리는 항구에서 일군의 한국 사람들을 만난다. 공무원 연수단이다. 내용은 정확히 모르지만 다니면서 이런 형태의 연수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베트남에서, 인도에서. 이스탄불에서 만나고 이번이 네 번째다. 이번이 가장 시끄럽다^^. 여행 도중 가방을 세 개나 잃어버렸고 아테네에서는 택시 바가지를 몹시도 썼다며 우린 왜 이러냐는데도 즐거워 보인다. 어차피 터키까지는 동행이다. 같이 배를 탄다. 배한구석에 침낭을 깔고 자다보니 어느새 사모스섬이다. 다행히 사모스섬에서 두어시간을 기다리면 터키로 가는 배가 있다. 일행과 사모스섬으로 가는 배표를 끊어가지고 돌아와보니 이분들 배를 얼마에 끊었냐고 물어보는데 우리보다 2유로가 더 비싸다. 어디서? 우리는 왼쪽 여행사에서..그쪽은 오른쪽 여행사에서.. 일행이 일곱명이니 무려 14유로 바가지다. 환불하겠다고 달려간 사람들은 결국 그냥 돌아온다. 어디서나 내 손을 떠난 돈은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다.


쿠사다시로 향하는 배안에서 왼쪽이 미코노스에서 만난 친구다.

 

결국 쿠사다시행 배를 타고 두시간을 더 가서야 터키에 도착한다. 다시 터키로 온 것이다. 바로 에페스로 떠나는 연수단 일행과 헤어지고 일정이 빠듯해 셀축으로 가지 못하고 파묵칼레를 거쳐 그날 밤차로 카파도키아까지 이동하겠다는 일행과 같이 터미널까지 간다. 나야 셀축까지는 돌무쉬를 타면 되는 가까운 거리니 파묵칼레 가는 버스가 오기까지 잠시 기다려준다. 이 친구 빠듯한 일정이 몹시 아쉬운 모양이다. 나야 있는 건 시간뿐이니 이런 친구들이 좋겠다지만 속으로 생각한다. 너는 가면 월급 나오잖아? 하긴 나도 짧은 휴가를 나올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긴 여행을 하는 사람이었으니 지금 결국 자기가 갖지 못하는 게 가장 아쉬운 건지도 모르겠다. 근데 왠일인지 이제 조금씩 돌아갈 걱정이 된다. 터키 남부를 거쳐 서서히 내려가면 이집트까지 가는데 한달, 이집트에서 한달, 두달이면 예정했던 루트는 끝이 난다. 그다음엔 어디로 가지.. 유럽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돌아가고 싶은데 날씨가 너무 춥고.. 아프리카로 내려가자니 썩 내키지가 않고, 남미로 튀자니 나중에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천천히 생각해보지 뭐.. 지금 답 안나오는 건 결국 답이 안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은 생각을 미뤄둔다. 어쨌든 두달 뒤의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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