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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베트남이 점점 좋아진다.

기차가 사파를 떠나자마자 이를 악문다. 지금까지는 예행연습이요, 시행착오였으며 이제부터 다시는 어리숙하게 당하지 않을 것을 혼자서 국기도 없는데 굳게 다짐한다. 바가지가 바가지를 넘어서면 그때부턴 자존심이 상하기 시작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오래간다. 예컨대 오천동짜리 물건을 대략 외국인에게는 만동쯤 받는 바가지야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다. 근데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그 만동짜리조차 삼만동 받겠다고 설치니 이거야 신경이 쓰여서 어디 맘편히 여행이나 하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잔돈도 다르게 줬다가 아니라고 해야 제대로 주지.. 뻔한 물값 만동 불렀다가 그냥 뒤돌아서야지만 오천동으로 내려가지.. 여튼 잔신경이 무척 쓰이는 나라인 것이다. 아마 지나친 긴장감이 빚어낸 감정이겠지만 사파를 떠나올 때만해도 베트남 비자를 왜 받았을까 그냥 확 호치민으로 내려가서 이 나라를 떠나버릴까 뭐 이런 저런 생각이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가장 괴로운 건 도무지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다는 일이다. 숙소에서도, 길에서도, 투어에서도 내내 이게 정상적으로 끝이 날 것인가에 온갖 신경이 집중되니 도무지 맘이 편치를 않다.


이래저래 불편한 맘으로 하노이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반경이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하노이역에는 예외없이 삐끼님들이 진을 치고 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버스를 물색해 본다. 그러나 항박거리로 간다던 15번 버스는 6시반이 넘도록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오토바이 기사와 흥정에 들어간다. 대략 오천동 정도가 정가라는데 만동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일단 만동에 가기로 하고도 얘가 제대로 데려다 줄라나.. 엄한데로 가서 여기라고 우기거나 만동이 아니라 십만동이었다고 우기면.. 별 생각이 다난다. 그러나 별일 없이 원하던 숙소까지 간다. 뭐 잔돈이 없다는 제스쳐를 한 번 쓰기는 했지만 단호하게 노를 외치며 거스름돈을 주기 전에 돈을 미리 건네주지 않으니 알아서 잔돈을 꺼내 준다. 슬며시 웃음이 난다. 이런 거였구나..


하노이 여행자거리. 여행자거리는 어디나 다 비슷하다.


이곳에서는 팬룸 싱글가격이 대략 중국의 도미토리 가격이다. 뭐 방에 따라 다르겠지만 5불 정도면 묵을 수 있다. 5불짜리 싱글룸에 짐을 푼다. 조금 안정이 되는 느낌이다. 방에서 한참을 뒹굴거리다 여행자거리로 나서본다. 날씨가 의외로 선선하다. 아직까지 동남아 특유의 무더위는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거리는 듣던대로 오토바이의 행렬이 장난이 아니다. 중국도 만만치 않았지만 여긴 정도가 좀더 심하다. 4차선 정도의 거리를 하나 건너고 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러다가 식당에 들어가 생과일쥬스도 마시고, 아이스커피도 마시고, 거리에서 국수도 사먹어 본다. 음식에 기름기가 쫙 빠져 맛은 중국보다 훨씬 담백한데 양이 너무 적다. 그새 중국의 양에 익숙해졌는지 그게 원래 정량이었는지 여튼 국수를 먹어도 볶음밥을 먹어도 뭔가 허전하다. 그래도 음식은 뭘 먹어도 맛있다.


하노이 쌀국수 퍼보, 그릇이 너무 적다^^


그러다가 투어를 물색해본다. 숙소에 있는 킴카페 호아루-땀꼭 일일투어가 15불, 하롱베이 1박2일 투어의 경우 스몰그룹만 취급하는데 대략 28달러에 싱글차지가 5불이란다. 신카페로 가보니 호아루-땀꼭이 13불, 하롱베이 1박2일의 경우 스몰그룹은 비슷하고 빅그룹은 20불에 싱글차지가 4불이다. 몇군데 더 가봐도 비슷비슷하다. 인터넷에서 본 것보다 3불에서 5불정도 비싼 가격인 것 같아 그냥 호아루-땀꼭만 13불에 신청하고 하롱베이는 투어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정보를 얻기로 하고 신청을 유보한다. (그러다가 결국 땀꼭 투어에서 만난 한국인 가족의 도움으로 싱글차지 없이 빅그룹을 18불에 신청한다.) 


다음날은 뚜벅이 투어에 들어간다. 먼저 버스를 타고 호치민묘로 간다. 그리도 없던 한국인들이. 그것도 단체 관광객들이 득시글득시글한다. 덕분에 옆에 살짝 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호치민 시신은 방부처리를 위해 러시아에 가 있어서 지금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 기간이란다. 북경에서는 월요일이라 모택동묘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 뭐 이래저래 방부처리된 시신들과는 인연이 없나 보다. 호치민이 만년에 살았던 생가를 지나 호치민 박물관, 문묘까지 그냥 길을 따라 걷는다. 하노이 시내야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없지만 관광지들 사이는 그저 쥬스 한잔씩 마시면서 걸어다닐만 한 거리다. 그리곤 전날의 뼈아픈 기억을 되새기며 하노이역에 가서 후에행 기차표를 직.접. 예매한다. 중국보다 사람도 적고, 영어도 통해 쉽게 예약이 된다. 그 뒤로 호아후 미군수용소, 역사박불관, 혁명박물관까지 다시 걷는다. 그러다보니 다시 호엔끼엠 호수가 보인다. 저녁엔 수상인형극도 함 봐주고..


호치민묘


호아루미군포로수용소


호엔끼엠호수, 어째 죄다 호자돌림일세^^


쎄옴과 실갱이없이 그저 걸어다니면서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니 점점 익숙해지는 느낌이 든다. 호수에서, 길에서, 버스에서 만난 베트남 사람들은 친철하다. 호수에서 누가 앉아도 되냐길래 또 뭐 팔러온 앤가 앉으라고 해놓고선 뜨악하게 있었더니 신문을 이리저리 들추며 축구 얘기를 시작한다. 안정환이며, 이천수며 이름밖에 모르는 축구선수들이 나열되다가 월드컵으로 얘기가 빠지더니 한국축구가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알고보니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란다. 회화연습 상대치고는 좀 부실해서 미안한 마음은 들지만 이삼십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또다른 청년은 길을 물었더니 지도를 이리저리 뒤적여보다간 도저히 설명이 안되는지 결국 목적지인 역사박물관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선다. 그래..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자. 다 사람사는 곳이 아닌가.. 조금씩 긴장이 풀린다. 하노이에서의 또다른 하루가 저물고 베트남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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