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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쵸> 남쵸에서의 0.5박

 

라싸에서 약 195km 떨어진 남쵸 호수는 한국에서는 하늘 호수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라는 책 덕분에 엄청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뭐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보고 인도로 갔다는 가슴 아픈 후일담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라싸에 온 한국인은 대부분 이 호수를 다녀오는 것이 기본 일정에 속한다. 가는 길이 험하고 대중교통수단이 없는 이곳은 대략 여행사를 통해 랜드크루저를 빌려 다녀오게 되는데-뭐 가끔 대중교통수단이 있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트럭 등을 히치해가는 씩씩한 여행자도 있기는 하다- 이 경우 차 한대당으로 가격이 정해지니 대략 4-5명의 동행을 모아야 하는데 보통 게스트하우스 게시판에는 남쵸 뿐 아니라 동티벳이나 서티벳 또는 네팔로 가는 일행을 구하는 메모가 빽빽하게 붙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숙소에 있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희망자만 모아도 무려 8명이나 된다.


첨엔 일인당 150원에 미니버스를 한 대 빌렸다가 떠나기로 한 날 내린 폭설로 하루가 연기되면서 눈 때문에 미니버스는 못 갈 수도 있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에 따라 일인당 200원씩 내고 랜드크루저 2대를 빌려 남쵸 호수를 향해 길을 떠난다. 해발 4600m에 이르는 호수는 다녀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해발이 높아 고산증의 위험도 심각한데다 숙소도 천막에 침상이 전부라 추위 또한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터라 침낭이며 겨울옷을 바리바리 챙겨 떠난다. 일부는 휴대용 산소통도 두어 개 준비해 나선다. 라싸에서도 며칠 보냈으니 이제 고산증은 괜찮겠지 싶기는 한데 그래도 맘을 놓을 일은 아니다 싶다. 라싸를 떠난 랜드크루저는 꼬박 5시간을 달려 해발 5000m가 넘는 고개를 넘어 남쵸에 우리를 내려준다. 오면서 쨍하게 맑던 하늘은 어느새 눈발이 날린다. 미리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천막을 보니 오늘 밤을 보낼 일이 막막하다.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뭐 이것도 천막이긴 하다-에서 삼삼오오 눈발이 그치기를 기다리니 잠시 후 거짓말처럼 다시 해가 뜬다. 날씨 한 번 변덕스럽다.


남쵸 가는길


호수 앞에 있는 천막 숙소, 그래도 입구에는 호텔이라고 써 있다.


반쯤 얼어있는 호수를 따라 걸어본다. 길이가 30km에 이르는 이 호수를 한 바퀴 돌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한두 시간쯤 호수를 따라 걷다가 다시 걸어간 길을 되짚어 돌아오니 천막 안에는 조금 허탈한 분위기가 감돈다.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먹으려고 사간 사과며 바나나 등의 과일을 어떤 짐승이 천막에 들어와서 죄 먹어버렸다는 데 그 범인 찾기가 한창이다. 개다, 말이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결국 산양이 범인으로 밝혀진다. 그래 문 안 잠근 우리가 잘못이지 니가 뭘 알겠냐 하면서도 모두들 한번씩 산양을 째려 봐 준다^^ 부실한 저녁을 먹고 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천막 식당은 가격은 비싸고 맛은 전혀 없는 관광지 식당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다- 해가 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쵸호수, 염수호라는데도 아직 얼어있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이 호수는 얼핏보면 바다같기도 하다.


그놈의 북경 표준시 때문에-전에도 한 번 언급했지만 중국은 전국이 단일 시간이라 티벳 정도면 두시간 정도 시차가 나야 정상인데도 그냥 북경과 동일한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도무지 9시가 가까워져도 해가 지지 않는다-  해지기를 기다리는 일도 고역이다. 더구나 오늘은 날도 흐려 일몰이 보일 것 같지도 않다. 그나마 야크똥으로 피워주는 난로라도 있는 식당에서 해지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역시.. 해는 어디로 넘어갔는지 알 수도 없는데 어느새 어둠이 찾아온다. 그리고는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하는데 그나마 맑았던 날씨는 오간데 없고 거짓말 조금 보태 화장실-사실 화장실이라야 그냥 허허벌판이지만- 가다가 날려갈 지경이다. 이 고산지대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자살 행위라 그냥 자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겠다 싶어 천막 숙소로 돌아간다. 그간 각종 트레킹들마다 밤이 심하게 추웠던 기억은 있지만 이곳이 제일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천막으로 들어가 보니 이미 두 명의 환자가 발생해 있다. 하나는 라싸에서도 고산증으로 이삼일 고생했다는 대구 청년인데 고산증이 재발했는지 침낭에 이불을 두어 개 덮고도 바들바들 떨고 있다. 다른 하나는 내 일행인 사진작가 친구인데 도착하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결국 탈이 난 모양이다. 본인은 체한 것 같다는데 내가 보기엔 그것도 고산증의 일종인 듯 하다. 고산증도 고산증이지만 해가 지고 나니 추위도 장난이 아니다. 내 여분의 옷에다 침낭까지 둘러쓰고도 추위에 떠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천막 펄럭이는 소리에다 그나마 발전기로 돌리던 전기까지 나가고나니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이렇게 두 명의 환자와 방안에 있는데 밖에서 오늘 그냥 내려가자는 말이 들린다. 아마 나머지 사람들끼리 의논이 된 모양이다. 일출도 봐야 하고 무엇보다 내려가는 길에 온천도 들려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설핏 스쳤지만 앞에 있는 환자들을 보니 내려가는 것이 최선일 듯도 싶다. 무엇보다 나 역시 여기서 하루밤을 지낼 일이 막막하다.


남쵸에서의 0.5박 동지들


결국 밤 열시에 다시 차를 몰고 라싸로 돌아온다. 모두들 천막에서 하루밤을 보내지 않아도 되어서인지 내려오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은 없어 보인다. 사진작가 친구는 결국 차를 세워 오바이트를 하고서야 조금 진정이 된다. 차에서 히터가 나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어둠을 헤치고 차가 라싸에 도착한 새벽 두시, 그나마 돌아와서 방이 없을까봐 그날 방값을 미리 지불하고 간 것이 다행이다 싶다. 그렇게 춥게 느껴지던 라싸의 밤이 이렇게 따뜻할 줄이야.. 결국 남쵸에서의 1박은 0.5박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다행히 두 명의 환자는 다음날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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