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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더위는 여전하다

 

저녁 6시 30분에 바라나시 출발해 아침 8시 경이면 델리에 도착한다던 기차는 12시가 다 되어서야 뉴델리역에 들어선다. 인도에서 기차 연착이란 대단한 화젯거리도 못 되어서 누구는 자고 일어났는데도 기차가 아직 안 떠났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저 담담한 걸 보면 4시간 연착 가지고야 명함도 못 내밀 일이긴 하지만 에어컨도 없는 기차에서 이유도 모른채 그냥 몇시간씩 갇혀 있어야 하는 일은 그저 황당한 일을 당할 때 여행자들이 위로랍시고 하는 말들-여긴 인도잖아요^^-로는 용서가 안 되는 맘이다. 그래도 어쩌랴.. 그저 배낭을 메고 내리니 델리의 더위 역시 만만치 않다. 다행히 델리의 여행지 거리인 빠하르간지는 뉴델리역 바로 앞에 있어 릭샤들과 실랑이는 안해도 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혼잡하기 그지없는 역을 빠져 나와 역시 혼잡하기 그지없는 빠하르간지로-대체 인도에는 무슨 사람이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로 들어서니 이곳 거리 역시 쓰레기며 오물 천지다.


바라나시의 한국인들이 추천해 준 숙소에 짐을 푼다. 날이 더워 에어컨을 쓸까도 했지만 인도는 이상하게 같은 방이라도 에어컨을 사용하는 경우에 그냥 팬만 쓰는 것의 두 배 이상의 방값을 요구하는 지라 그냥 팬으로 견뎌보기로 한다. -이를테면 내가 쓴 객실의 경우 팬만쓰면 6,000원 가량인데 에어컨을 틀면 거의 14,000원 정도를 내야 한다- 그러나 팬에서 더운 바람만 나오고 방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더위를 견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밥 먹으러 찾아간 한국인 식당들도 대부분 그냥 건물 옥상에 있는 곳들이라  더위를 고스란히 견디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밥을 먹고 돌아와 물을 한바가지 뒤집어쓰고 그냥 방에서 지낸다. 그날 일기 예보에서 알려준 델리의 온도는 무려 42도다. 말이 42도지 아마 사우나를 제외하고 일상에서 느껴 본 가장 높은 온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여튼 추위도 문제지만 더위도 여행엔 만만치 않은 적수다.


델리의 여행자 거리, 빠하르간지


지금은 인도는 망고가 제철이다.


그래도 담날에는 비자 신청을 위해 일찌감치 길을 나선다. 다행히 아침부터 비가 조금 내리더니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먼저 이란 비자를 받기 위해 필요한 레터를 받으러 한국대사관으로 간다. 네팔의 한국대사관에서는 한국인 직원은 코빼기도 볼 수 없더니 이곳 델리에서는 한국 직원이 나와서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콜라도 한잔 얻어 마시며 잠시 기다리는 사이 간만에 한국TV도 보고 여튼 편안한 분위기다. 한국인 직원은 레터를 건네주며 집에 자주 전화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한해에 인도대사관에만 150여건의 실종신고가 들어오는데 대부분 집에 전화를 안 해서 생긴 일이라면서 주변 여행자들에게도 꼭 전해달란다. 흐믓한 맘으로 한국대사관에서 나와 이번엔 중국대사관으로 향한다. 친구는 파키스탄에서 다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니 중국비자를 받아야 한다. 중국 대사관은 비교적 한산하여 금세 일이 끝난다. 다음은 이란대사관이다. 이란대사관 역시 신청서 두장을 작성해 사진과 함께 제출하니 다음주 금요일에 오란다. 여튼 대충 비자 신청은 끝낸 셈이다.


비자를 찾는 날까지 대략 일주일이 남았으니 좋으나 싫으나 델리에서 일주일은 보내야 하는데 그래도 델리는 수도라 그런지 이곳저곳 갈 곳은 많다. 유적지도 찾아보면 이래저래 꽤 되는 모양이지만 이 더위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결국 여행자 거리에서 가까운 델리 중심가인 코넛 플레이스에 나가 냉방장치가 된 커피숍이며 레스토랑, KFC, 맥도날드 등만 찾아다닌다. 인도 물가를 생각해 보면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한국 가격으로 환산해보면 여튼 한국보다는 싼 게 사실이라 큰 부담은 없다. 이곳에는 영화관도 있어서 하루는 인도 영화를 보러 간다. Fanaa라는 영화인데 대략 우리나라의 쉬리와 비슷한 내용이다. 어느날 델리, 스리나가르에서 온 여자가 어떤 남자가 만나 사랑에 빠졌으나 남자는 인도에 투입된 파키스탄의 스파이였던 것이니.. 결국 남자는 폭탄테러의 임무를 완수한 뒤 죽음을 가장해 떠나고 여자는 고향으로 돌아가 남자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작전 중 부상을 당한 남자가 우연히 그 집 앞에 쓰러지고.. 하는 그렇고 그런 얘기다. 힌디로 대화가 진행되지만 내용상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지장이 없고 인도 영화 특유의 흥겨운 뮤지컬들이 삽입되어 세시간이 넘는 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극장이 너무 좋아서인지-우리나라 멀티플렉스 저리 가라다- 영화를 보면서 노래도 따라 부르고 심지어 춤도 춘다는 인도 영화팬들을 볼 수 없었던 것인데 그건 좀더 작은 도시에서나 가능하지 싶다.


하루는 길거리에서 헤나를 해 본다, 손바닥


손등, 한 열흘이면 거의 지워진다.


델리에서 딱 하루, 그래도 왔으니 유명하다는 곳 한두 곳 정도는 가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가이드북을 뒤져 붉은성(레드포트)과 그 근처에 있는 자마 머스짓을 보러 간다. 레드포트는 붉은 사암으로 지어서 성전체가 붉은 색을 띄고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타지마할을 지은 샤 쟈한이 수도를 아그라에서 델리로 천도하기 위해 지은 성이라고 한다. 결국 그는 천도를 채 끝내지 못하고 아들인 아우랑제브에 의해 폐위되어 아그라성에 유폐되고 말아 결국 아우랑제브가 이 성의 주인이 된 셈인데 그가 무글제국의 마지막 왕이니 그 영화가 오래 가지는 못했던 듯싶다. 게다가 인도가 영국을 대상으로 항쟁을 계속할 때 영국군의 공격으로 페허가 되다시피 했다니 지금으로서야 온갖 보삭으로 치장되었던 그 당시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대리석 건물의 흔적만으로도 그때의 화려함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더위를 피해 느즈막히 출발했건만 햇살은 여전히 따가워 한시간 여 만에 레드포트를 빠져 나와 인도 최대 규모의 모스크라는 자마 머스짓으로 걸어간다. 모스크는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배경삼아 장대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막상 도착하니 이미 입장 시간이 지나 있어 모스크 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단다. 좀 아쉽긴 하지만 인도만 지나면 보이는 건축물들이 죄다 모스크일텐데.. 위안하면서 숙소로 돌아온다.


레드포트


자마 마스짓, 역광이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는..


이렇게 며칠을 빈둥거리다 날짜가 되어 비자를 찾으러 다시 대사관으로 간다. 비자피만 은행에 내면 그 날로 발급해 줄줄 알았더니 비자피 영수증을 챙긴 대사관 직원은 다시 월요일에 다시 오란다. 금요일에 비자를 받을 줄 알고 토요일 밤차를 끊어 놓았다며 예매한 기차표까지 보여줘도 원래 2주 걸리는 걸 특별히 월요일에 해 주는 거라며 대사관 직원도 막무가내다. 별 수 없이 돌아와 수수료까지 물고 예매한 기차표를 환불한다. 원래 기차표는 암리차르행으로 델리 거쳐 바로 파키스탄으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월드컵 축구를 무척 보고 싶어하는 친구의 일정에 왕창 차질이 생긴다. 결국 월드컵 축구 한국전을 보기 위해-물론 같이 다녔던 신혼부부의 꼬임에 넘어간 탓도 있지만- 암리차르행을 포기하고 다람살라행 버스를 끊는다. 다행히 월요일에는 비자가 나와준다. 그날 저녁 결국 국경도시인 암리차르가 아닌 티벳 망명정부가 있다는 다람살라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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