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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08/25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8/25
    <야즈드> 흙집이 예쁜 마을(8)
    제이리
  2. 2006/08/25
    <쉬라즈> 뭐가 뭔지 모르겠다(6)
    제이리
  3. 2006/08/25
    <자헤단> 또 삽질이다(4)
    제이리

<야즈드> 흙집이 예쁜 마을

 

버스가 야즈드로 들어서자 마자 아.. 하는 감탄사가 입 밖으로 나온다. 쉬라즈에서 야즈드로 향하는 길 내내 이어지는 황량한 사막이 끝나는가 싶더니 눈앞에 보이는 도시는 온통 황토빛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막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는지 흙벽돌로 담을 세우고 그 위에 흙을 발라 만든 건물들이 도시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어 어디 동화의 나라에라도 온 것 같다. 뭐 동화치고는 톤이 좀 어둡긴 하지만 말이다^^택시를 타고 도착한 호텔역시 이 도시의 오래된 집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바깥은 높은 흙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얼핏보면 호텔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호텔은 그리 가격이 싼 곳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마당 한켠 지하에 도미토리가 있어 도미토리에 묵으면서도 호텔의 정취는 정취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첫날 침대가 여섯개인 도미토리의 손님은 나 혼자뿐이다. 한국 사람은 기대도 안 했지만 다른 여행자도 없다니 조금 실망이긴 하지만 혼자 쓰는 도미토리는 그만큼 편한 것도 사실이다. 호텔 마당에는 자그마한 분수가 있고 그 주변으로는 탁자며 평상이 놓여 있어 음식을 먹거나 차이를 마시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그도 지겨우면 아예 옥상으로 올라가 별구경이나 하면서 뒹굴 거릴 수도 있다. 다행히 이곳 레스토랑에는 그나마 몇 가지 메뉴가 있어 샌드위치 신세를 면할 수 있다. 이란에 오기 전부터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먹을 게 샌드위치 밖에 없다는 말이었는데-뭐 샌드위치, 햄버거, 케밥 등이 있지만 죄다 빵에다 고기 싸 먹는다는 의미에서는 동일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이삼일 샌드위치만 먹다보니 이걸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 내심 막막했던 것이다. 간만에 밥까지 먹고 평상에 누워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김치찌개고 뭐고 밥만 먹어도 이리 행복할 수 있다니.. 역시 행복은 먼데 있는 건 아닌가 보다^^


후세이니에서 바라 본 야즈드 전경


내가 묵었던 실크로드 호텔 앞마당

 

다음날 아침 일찍 한국 여행자 하나가 토미토리로 들어온다. 배낭여행 온 남학생인데 터키, 이란을 거쳐 파키스탄, 중국으로 넘어가는 길이란다. 이란에선 처음 보는 한국 사람이다. 야즈드는 이 친구와 같이 돌아다닌다. 사실 야즈드는 볼거리가 많은 도시라기보다는 그저 미로 같은 구시가지의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것이 그 묘미인데 마침 일행이 생겨 심심치 않게 하루를 보낸다. 대략 론리 플래닛에 길잃어버리기 투어라고 소개되어 있는 길을 따라간다. 투어라고 해서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볼거리가 나오면 잠시 들어갔다 다시 골목길을 걷는 것이 투어의 전부다.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한 골목이 이어져 길 찾기는 쉽지 않지만 또 그 골목이 다른 곳으로 이어지니 딱히 그 길이 아니어도 목적지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어디를 가나 진흙 벽돌을 쌓아 만든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골목은 아무리 걸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구시가지 골목길


아직도 벽돌을 직접 굽는다


알렉산더 프리즌이라는 데 한때는 감옥으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골목길을 돌아다니기 전에 숙소 앞에 있는 모스크에 들렀다가 첨탑이 보이길래 저기 올라갈 수 없냐고 물으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무실에 가서 허가증을 받아 오면 된다고 한다. 골목길을 다니다가 마침 사무소가 눈에 띄길래 허가증을 만들어 줄 수 있냐고 했더니 여권만 확인하곤 금세 만들어 준다. 저녁 무렵에 모스크로 가서 허가증을 보여주니 첨탑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아저씨 한 분이 앞장을 서더니 불도 없는 좁은 계단을 끝도 없이 올라간다. 한참을 올라 나가는 문이 보이길래 다 왔나 했더니 웬걸 첨탑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시 다른 문을 열고 첨탑으로 올라가야 한다. 위를 보니 까마득하다. 에구 나는 포기다. 도무지 다리가 후들거려 올라갈 수가 없다. 나는 첨탑 아래 남고 대학생 친구는 아저씨를 따라 계속 올라간다, 첨탑 아래도 제법 높아 마가 해가 진 야즈드 구시가지는 제법 불빛을 밝히고 있는데 높은 건물이 없어서인지 시가지 바깥까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잠시 후 대학생 친구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려온다. 저 위는 진짜 무서워요 하는데 역시 안 올라가기를 잘 했다 싶다^^


자메 모스크, 저 첨탑 중간에 있는 난간까지 올라갈 수 있다.


모스크에서 내려다 본 야경


다음날은 버스를 타고 시가지 외곽까지 나가본다. 이곳 야즈드는 조로아스터교의 발생지라는데 이.. 또 조로아스터교는 또 뭐하는 종교란 말인가.. 옛날 세계사 시간에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이름 이외엔 기억나는 게 없다. 대학생 친구에게 물어봐도 조로아스터교가 한국말로 배화교라는 거, 불을 숭상한다는 거 외에는 아는 게 없다며 이 더운 나라에서 불은 왜 숭상했을까요? 하고 진지한 얼굴로 되묻는다^^. 외곽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조로아스터교의 사원인 파이어 템플에 잠깐 들러본다. 정말 불을 숭상하는 종교인지 사원 한가운데는 몇 백년간 꺼뜨리지 않고 이어 왔다는 숯불이 발갛게 타고 있다. 남의 종교를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하면 한 되지만 갑자기 불씨 꺼뜨리면 쫓겨나는 며느리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버스를 나고 간 곳은 조로아스터교의 풍장터이다. 원래 조로아스터교는 사람이 죽으면 어떤 인위적인 행위도 하지 않고 그저 시신을 산 위에 던져두었다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고 그 터 아래로 마을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옆에는 묘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1960년대 이후로 풍장을 그만 둔 조로아스터 교인들이 묻혀 있는 곳이라고 한다. 대학생 친구와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땐 이 곳에는 아무도 없고 팔월의 햇살만 따갑게 내리쬐고 있다. 땀을 흘리며 풍장터까지 올라가 봐도 그저 한때는 시신을 던져두었을 구덩이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 그저 아무런 주변은 조용하기만 하다. 오던 길을 되짚어 나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자가용 한대가 태워준다고 한다. 혼자라면 타지 않았을 텐데 일행 덕을 본다. 대학생 친구는 친구대로 자기 혼자 있을 땐 차가 절대로 안 선다며 내 덕분이란다. 여튼 한참을 걸어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온 길을 한 번에 편하게 돌아온다.


풍장터앞 마을에 서 있는 침묵의 탑


풍장터, 자금 저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날 오후에 대학생 친구는 파키스탄으로 떠난다. 테헤란에서 보조 가방을 도둑맞아 거의 백만원 가까운 돈과 물품을 잃어 버렸다 면서도 씩씩하게 다니던 친구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한국에 돌아가려면 나머지 날들은 거의 이동만 해야 한다며 날짜 계산을 한참이나 하더니 그래도 훈자에서 이삼일은 보낼 수 있겠는데요 하며 좋아한다. 시간만 많은 내 여행이 갑자기 사치스러워 보이는 게 괜시리 민망해진다. 나도 내일이면 에스파한으로 떠난다. 에스파한은 이란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데 글쎄 그곳에서 다시 한국인 여행자를 볼 수 있을지.. 저녁은 어차피 굶게 될 테니.. 하며 샌드위치를 두 개나 먹은 대학생 친구는 밤차를 타러 떠나고 나는 다시 시간의 사치를 누리며 호텔 평상에서 뒹굴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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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라즈> 뭐가 뭔지 모르겠다

 

다행히 쉬라즈의 숙소는 마음에 든다. 인터넷으로 보기에는 이란의 숙소 상태가 별로라고 되어 있는데 그간 개선을 한건지 아님 그 글을 쓰신 분의 안목이 높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파키스탄에 비하면 거의 호텔 수준이다. 게다가 이란은 석유가 나는 나라여서 그런지 에어컨이 방마다 붙어있는 게 아니라 아예 중앙 냉방이다. 즉 내가 방에 없어도 에어컨이 하루 종일 나온다는 건데-근데 이게 석유랑 상관이 있나?- 선풍기는커녕 하루에도 몇 번씩 전기가 나가는 동네에 있다 와서 그런지 오히려 빈방에 나오는 에어컨 바람이 아까운 심정이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욕실이랑 화장실이 공용이라는 건데 다른 나라라면 크게 불편한 건 아닌데 여기는 호텔 복도만 나가도 스카프를 써야 하니-옷도 당근 갈아입어야 한다- 그게 조금 불편하기는 하다.

 

길거리에 나가본다. 일단 남자들의 옷차림은 파키스탄과 확연히 달라지는 데 일단 생긴 걸 제외하고는 옷차림이 우리와 별다를 바가 없다. 여자들의 경우도 스카프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화장도 제법 진하고 긴 옷 아래에는 대부분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이 세련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대놓고 핼로우를 날리는 파키스타니들에 비해 흘낏흘낏 쳐다보거나 뒤에서 치나치나-중국 사람이라는 뜻이다-하며 지들끼리 낄낄대는 한량들이 많다는 점인데 이게 또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이란의 성희롱에 대해서는 여행자들의 입을 통해 익히 들어온 터라 여행자 지침대로 가벼운 터치에 대해서는 죽지 않을 만큼 패놔야지 하는 대처 방법을 세워 놓았던 바 있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성적 농담이 분명하다고 느껴지는 말이나 슬쩍 스쳐가면서 보이는 음란한 손짓의 경우는 기분은 나쁘지만 별다른 대처 방법이 없다. 그저 이 인간들, 어지간히 궁한가보다 생각하려 해도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인간들을 만나다보면 길거리에 나서는 게 짜증스러워진다.

쉬라즈 시내, 가운데 있는 것이 카림 한 궁전이다


바자르, 건물은 몇백년이 되었다는 데 그냥 시장이다. 여기서 스카프랑 이란옷을 사서 입었다.

 

그래도 길거리에 안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언젠가 이란에서 넘어 온 여행자에게 얻어 둔 가이드북을 뒤적거려 본다. 파키스탄부터는 미리 준비해 둔 정보도 없는데다 중동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사전 지식도 거의 없는 상태이니 그저 가이드북을 뒤적거리는 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전부다. 하지만 알다시피 가이드북은 또 영어판이라 숙소나 레스토랑 혹은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어찌어찌 읽는다 해도 그 외의 정보에 대해서는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으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만 믿고 그저 길거리로 나서보는 수밖에 없다. 가이드북에 다르면 쉬라즈는 장미와 와인의 도시라는데 계절상 장미는 물 건너갔고 알코올 들어간 음료라곤 눈씻고 봐도 없는 이란에 와인이 있을 리 만무하니 그저 예전에는 그랬으려니 생각하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 이란의 관광지들은 대부분은 점심시간-말이 점심시간이지 거의 4시나 되어야 끝난다-에는 문을 닫기 때문에 오전에 잠깐 둘러보고 숙소에서 쉬다가 다시 저녁 무렵에야 움직여야 하는 관계로 동선과 시간을 잘 조절해야 한다. 다행히 대부분의 관광지는 숙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오래되었다는 바자르도,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모스크도, 한때는 귀족이었거나 상인의 집이었을 잘 치장된 저택들도 그저 그만그만하다.


레젠드 모스크, 스카프도 모자라 차도르를 꼭 입어야 하는 곳이다. 다행히 매표소에서 빌려준다.


 

개인 저택의 내부, 사유 재산이라 입장료 무지 비싸다. 온갖 애교를 다떨어 학생 할인 받았다고 흐믓해 했는데 그래도 엄청 비싼 거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비싼 건지도^^ 

다음날은 페르세폴리스에 다녀온다. 페르세폴리스는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로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당시 페르시아를 통치하던 아케미니드 황제가 짓기 시작해 그 후 수백 년간 증축을 거듭했다고 한다. 쉬라즈에서 두 시간쯤 떨어져 있는 이곳은 그냥 반나절 투어로 다녀오기로 한다. 어차피 혼자 버스타고 택시타고 움직여봐야 힘은 힘대로 들고 돈도 투어비나 거의 비슷하게 들지 않을까 싶다. 투어라고는 해도 자가용 한대로 움직이는 것이니 여행자 4명에 기사 겸 가이드까지 다섯 명이 전부다. 아침 일찍 출발한 차는 페르세폴리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낙쉐 로스탐에 먼저 들른다. 낙쉐 로스탐은 페르시아의 황제였던 다리우스1세와 2세 그리고 글자 읽기도 쉽지 않은 아르타세르세스 1세와 그냥 세르세스 1세의 암굴 무덤이 있는 곳이다. 즉 4명의 왕의 무덤이 있는 곳인데 이 무덤은 특이하게도 바위산을 파서 만든 것이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사막 한가운데서 이곳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에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잘 들리지도 않고 -영어로 한다니^^- 그저 주변의 부조들을 바라보며 더운데 저거 판 사람은 힘깨나 들었겠다 이따위 생각이나 하고 있다.


낙쉐 로스탐, 왕의 무덤 4개가 나란히 있다.


낙쉐 로스탐, 무덤 주변의 바위에 새겨 넣은 부조


다음은 폐르세폴리스로 이동을 한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장대한 기둥들과 부조들이 한때는 이곳이 대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임을 말해주고 있지만 2,500년의 세월 탓인지 그저 흔적에 상상을 더해도 그 규모에 질릴 뿐 별다른 당시의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여전히 해는 머리 꼭대기에 있는데 그늘 한 점 없는 유적지를 보는 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현실이 된다. 스카프를 썼으니 그 위에 모자를 쓰는 것도 어째 이상해 그냥 나섰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한 게 거의 일사병 증세가 오는 것 같다. 그저 이미 뜨거워져 버린 물병만 손에 쥐고 어디 그늘이 없나 살펴봐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하릴없이 가이드를 따라 두어 시간 남짓 유적지를 보고 나니 투어는 끝이 난다. 페르세폴리스는 이때까지 보던 유적지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모르니 그저 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는 이해되는 것이 없다. 배경 지식 없이 보는 유적지란 그저 돌덩이에 다름 아니니 앞으로 남아있는 나머지 중동의 유적지들을 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싶은 게 새삼스레 막막한 느낌이 든다.


페르세폴리스, 입구 기둥에 세워져 있는 부조


페르세폴리스, 기둥만 남은 궁전터가 쏟아지는 햇빛 속에 서 있다.


쉬라즈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시인 하페즈의 묘소를 찾아간다. 하페즈는 이란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라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묘소는 늘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묘소는 그저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이란의 어디나 그렇듯이 정원의 입구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사막의 나라 이란에서는 물이 풍요의 상징이었던 듯 하다- 정원 한가운데 하페즈의 석관이 놓여 있다. 이란 사람들은 궁금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의 시집을 들고 이 묘소를 찾는다고 하는데 그의 시집을 들춰 처음 보게 되는 글귀가 그 문제의 해답이 된다고 한다. 뭐 나도 해보고 싶긴 하지만 하페즈의 시는 전부 파르시로 되어 있을 테니 펼쳐봐야 뭔 소리인지도 모를 터 아쉽지만 그냥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에서 하페즈의 시집이나 한권 사올 걸 그랬나 보다^^ 만약 그랬다면 난 그에게 무엇을 물어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쉬라즈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시인 하페즈의 묘, 많은 이란사람들을 석관에 손을 얹고 그를 추모한다.


하맘(목욕탕)을 개조한 찻집에서, 저러고 다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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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헤단> 또 삽질이다

 

이란 측 출입국사무소에 들어서니 입국도장을 찍어주는 창구는 이란에 들어가려는 파키스타니들로 거의 아수라장이다. 창구 앞에 거의 이삼십 명이 모여들어 저마다 여권을 들고 이리저리 밀리는 통에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다. 줄을 서 있는 것도 아니니 저기를 통과하려면 같이 몸싸움이라도 벌여야 하는 판인데  배낭은 앞뒤로 메고 게다가 스카프까지 쓰고 할 짓은 아니다 싶다. 그저 대기실 구석에 앉아 잠시 기다려본다. 30분이 지나도 창구 앞의 사람들은 줄어들 줄 모르고 이러고 있다간 도무지 언제 국경을 넘게 될지 모르겠다 싶어 슬며시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보지만 창구 앞의 사람들은 거의 필사적이다. 다시 대기실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으니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사무실로 불러 여권을 먼저 처리해준다. 아마 파키스타니가 아니라 특혜를 주는 것 같은데 고맙기는 하지만 이러느니 창구 앞에 줄서는 칸이나 만들지 싶다. 


출입국 사무소에서 여권을 받아 나오니 어떤 남자가 다가와 너는 외국인이니 여기서 자헤단까지는 반드시 폴리스 보디가드와 함께 가야 한단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물어보니 자헤단은 위험한 도시라서 그렇단다. 공짜는 당연 아닐테고 얼마냐고 물어보니 10불이란다. 내가 미리 알고 있는 정보로는 출입국 사무소 앞에서 합승택시를 타면 일인당 2,3불선에 갈 수 있다고 들었거니와 폴리스 보디가드 얘기는 처음이라 이거 신종 사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됐다고 난 그냥 혼자 갈 거라고 뿌리치고 나와 택시를 잡으니 웬걸 택시들마다 모두 같은 소리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어 다시 출입국 사무소로 들어가 폴리스 보디가드가 꼭 필요하냐고 물어봐도 확실한 대답은 해주지 않고 폴리스 보디가드가 필요하면 불러 줄테니 기다리라는 소리만 한다. 아무래도 꼭 필요한 건 아니고 니가 원하면 불러주겠다인 거 같은데 그냥 가려 해도 이놈의 택시들이 도무지 태워 주지를 않는 거다.


이란측 출입국 사무소. 이란 혁명지도자 호메이니와 지금의 최고통치권자 하메이니의 초상이 나란히 걸려있다. 이 두 양반은 이란의 다른 도시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하릴없이 국경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서서 택시를 타는 사람들마다 같이 가자고 말을 건네본다. 그 중 빈자리가 있어 타려고 하면 꼭 누군가가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다. 그러다가 파키스타니 몇몇이 자헤단으로 간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결국 택시를 탈 때 잠깐 실랑이가 있긴 했지만-택시가시가 또 폴리스 어쩌구 하는 걸 파키스탄 아저씨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하네 뭐 이 정도로 무마했다는^^-  결국 그냥 택시를 타고 자헤단까지 온다. 아직도 이게 신종 사기인건지 아님 규정이 그런 건데 내가 무시를 하고 온 건지는 잘 판단이 되질 않는다. 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국경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해 다음 도시로 넘어갈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 잠시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이란은 파키스탄보다 1시간 30분이 빨라 자헤단에 도착하니 여전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지헤단 터미널에서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에 빠진다. 해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대략 이란의 고도인 밤이나 그 다음 도시인 케르만까지 가는 것이 가장 좋은데 밤은 몇 년 전 지진으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곳으로 파키스탄에서 만났던 여행자 중의 하나가 밤은 지금 인심이 흉흉하니 가급적이면 하루를 묵지 말고 그냥 케르만으로 가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하지만 케르만은 볼거리가 있는 도시도 아닌데 그냥 하루밤 묵어가려고 들린다는 게 별로 내키지를 않는다. 다음 대안은 야즈드라는 도시까지 가는 건데 이 도시는 오후에 차를 타더라도 새벽 한두시쯤 떨어지게 되니 대략 터미널에서 하루밤을 보내야 되는 상황이라 이것도 대안으로는 신통치가 않다. 결국 고민 끝에 그냥 밤으로 가는 표를 끊는다. 부자 망해도 삼년은 간다고 아무리 지진으로 무너졌다 해도 고도의 흔적이라도 볼 수 있을 거고 인심이 흉흉하다고 뭐 지나가는 여행자를 납치야 하겠냐 싶은 생각이다. 


두시가 조금 넘어 버스는 자헤단을 벗어난다. 이란의 버스는 거의 볼보 버스로 에어컨은 기본에 좌석도 넓고 깨끗해 아주 쾌적하다. 그간 네팔이랑 인도, 파키스탄의 고물 버스만 타다가 갑자기 어리둥절해진다. 게다가 도로는 거의 우리나라 고속도로처럼 잘 닦여 있어 간만에 편안하게 이동을 한다. 에어콘을 틀어 놓은 탓인지 창문이 전부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데 슬쩍슬쩍 들춰봐도 창밖으로는 그저 황량한 벌판만 이어진다. 가이드북에 밤까지는 다섯시간이 걸린다고 되어 있으니 6시나 7시쯤에 도착하겠다 싶어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깨운다.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니 스카프가 벗겨졌단다. 에구.. 친절도 하셔라 뭐 깨워서까지 지적해 주실거야 있나.. 싶지만 여기는 이란인 것이다. 다시 졸다가 깨어보니 어느새 6시가 가까워 있다. 안내군에게 밤이 아직 멀었냐고 물으니-사실 이란은 영어가 거의 안 통하는 나라라 손짓발짓을 했다는 표현이 더 맞는다- 이게 왠일인가. 밤은 벌써 지났다는 것이다. 이 버스는 밤이 종점이 아니라 밤을 지나 어느 도시인가로 가는 버스였던 것이다. 보통은 미리 버스표룰 보여주기 때문에 대충 알아서 내려주는데.. 방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이란은 도시와 도시를 있는 거의 모든 길이 황량한 사막이다. 누구말대로 그렇게 본다면 이란의 모든 도시는 오아시스인 셈이다.


승객 중에 영어가 좀 되는 사람이 있어 어디까지 가는 버스냐고 물어보니 케르만을 거쳐 쉬라즈까지 가는 버스라고 한다. 쉬라즈는 야즈드 다음으로 가려고 생각했던 도시다. 가이드북을 펼쳐 대충 지도를 보니 어차피 쉬라즈를 거쳐 야즈드를 가더라도 다음 도시인 에스파한 가는 길은 큰 차이가 없다. 케르만에서 내릴까 하는 마음을 바꿔 그냥 쉬라즈까지 가기로 한다. 자헤단에서는 쉬라즈가 조금 더 머니 새벽 한 두시에 터미널에 떨어지진 않겠다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한 삽질은 여행 최대의 삽질이 아닌가 싶다. 결국 사흘간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하루를 더 버스에서 보낸다. 버스는 새벽 3시에 터미널에 도착한다 -파키스탄에서는 매번 두세 시간씩 늦게 도착하던 버스가 여기서는 매번 한두 시간 빨리 도착한다. 우씨- 아직 채 밝지도 않았으니 숙소 문도 안 열었을 거고 어두운데 택시 타는 일도 그리 안전할 것 같지는 않아 그냥 터미널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다행히 터미널에는 사람들이 많아 그리 위험해보이지는 않는다.


날이 밝자마자 택시를 타고 점찍어둔 숙소를 찾아간다. 문을 두드려서야 나온 주인은 방이 모두 찼다며 딴 데로 가보란다. 다음 숙소도 마찬가지다. 이제 가이드북에 나온 숙소를 찾아다닐 여력도 없어 그냥 현지인 숙소로 들어간다. 다행히 방이 있다. 적당히 깨끗한데다 가격도 여행자 숙소보다 저렴하다. 여행자 숙소에 방이 차면 가끔 외국인도 오는지 주인은 생존 영어 정도는 가능하다. 결국 아침 7시가 조금 넘어서야 방에 짐을 풀고 침대에 눕는다. 잠은 오지 않는데 손가락 하나 까닥할 기력도 없다. 도대체 국경 넘을 때 마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여튼 이란에 오기는 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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