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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사이에서

삶과 죽움사이에서


삶이란 사는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감사하다.
생명을 갖고 사는 것은 그 생명을 주신이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삶의 나날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형통할때에 인생의 순간들이 주는 기쁨을 맛보며,
그 시간들을 아무런 가치없이 그저 주어진 대로 살게 한다.

그러나 어떤 어려운 일이나 고통스럽게 하는 일을 만나면,
그것으로 인하여 힘들어 하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등을 한다.
병이 들었을때에는 그 병이 주는 불폄함과 괴로움에 자신을 맡기며 생존한다.

잠시의고통이나 힘든 상황을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마음속의 급한 기분에 좌우되어 바로 어리석은 행동을 저질르기도 한다.
그럴때에는 고마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오늘 아침 뉴스에 실직당한 한 미국인 가장이 부인과 10세 미만의 자녀들을 모두 총으로 쏘아 죽이고
본인 자신도 자살하였다. 그 가장은 자신이 실직하여 삶을 살아갈수 없다고 판단하여,
앞으로도 길게살아야 할 어린 아이의 생명에 까지 손을 대어
자신의 좌절과 절망의 희생자로 만들어 버렸다.
하루 아침에 단란한 일가족이 죽음의 희생자들이 되었다.
그에게는 다른이(자녀)들의 살고 죽는 것의 선택이 마치 자기 권한의 소유인양
전능자처럼 남의 생명에 까지 손을 대었다.
가족의 테두리안에 살아가는 인생들 모두를우울하게 하는 불행한 소식이다.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힘들게 하여도 나에게 주어진 삶자체를 부인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런 어려움이 그런 삶을 살아가는 자신에게 깊은 삶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삶의 끝인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오직 자신에게 삶을 살게 한 전능자에게 있는 것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병이나 위험이 아니고, 비록 갑작스런 요인들(교통사고나 천재지변등, 순간의 실수나 삶을 위협하는 그 무엇들)이 발생하여도

삶을 끝나게하는 요소가 사람들 자신들에게서가 아니라,
그 삶을 살게하신 그분의 의지나 섭리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죽음이란 죽는 것이다.
자시에게 주어진 유일한 생을 포기하는 것으로 의미한다.
삶을 사는 인생들에게 죽음은 넘어야 하는 장벽이며, 삶을 사는 모든 이에게 다가오며,
괴롭게하는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절망감은 언제나 삶을 고통스러워하는 이에게 냉정하게 다가온다.
그 죽음은 우리의 인생에서 보이지 않는 그것이었다가,
언제가는 자신의 삶에 죽음의 현실로 다가오면 누구나 두려움을 경험한다.

그러나 살고 죽는 문제에 있어서, 인간적인 현실에 있는 상황으로 몰려가기 보다는
살고 죽는 문제에서 초월하여,
자신의 확신하는 그 무엇을 위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사명이나
진리가 주는 초월함을 좇아 가야 할 길을 간다면
사나 죽으나의 문제를 벗어날수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가치나 의미보다 더한 인생의 참진리를 발견하면,
사는 것이 죽은 것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런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 다
그 진리안에 있는 조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제한을 받는다.

그러나 살고 주는 일에 대해 해결을 받은 신앙인들에게는
사나 죽으나 나는주님의 것이다라는 분명한 명제를 따라 갖고 있다는
자세나 태도는 살고 죽어야 하는 그런 것에서 자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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