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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10
    주님안에서 소망으로 살기
    목동
  2. 2007/12/10
    God makes us fresh
    목동
  3. 2007/12/10
    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며
    목동

주님안에서 소망으로 살기

이사야 9:1-7
우리의 희망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잘 먹고 잘살기, 혹은 오늘보다 내일이 좋아지는 것, 지금보다 나중이 더 발전되는 것등, 우리의 삶에는 희망의 크기만큼, 살 힘과 용기가 있는 것이다. 오뚜기 인생이라는 말들은 듣는다. 제가 군대에서 근무했던 사단이 8사단인데, 그 사단을 오뚜기 사단이라고 부릅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실전해서 패전을 해도 다시 진격하는 정신을 가진 군대를 말합니다. 오뚜기 인생에게는 누구나 박수를 보내고, 격려를 합니다. 자녀들에게도 오뚜기 정신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이민 생활도 오뚜기 정신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실패해도 다시 성공을 향해, 달음질하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전진하는 정신이 오뚜기 정신입니다.

어려운 시절에는 격려하는 구호가 힘을 줍니다. 옛날 한국에 못살던 때에는 잘살아보세, 새마을 운동등, 어려운 국가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하여, 힘을 얻게 하고, 전진하게 합니다. 재수하는 공부, 혹은 다시 시작하는 일들에 대해, 다시 해보라, 포기하지 말라, 끝까지 해보라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저는 미국에 유학 와서 친구 목사님 하고, toefl 시험을 공부하는데, 시험을 많이 보았습니다. 점수가 안 나와도, 또 공부를 하고 시험을 쳐, 미국인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예술가나 연주가도 끊임없는 중단없는 노력으로 연습에 연습를 거듭하여, 좋은 작품이나 연주를 합니다.

인생에는 어려운 날들이 있습니다. 이 어려운 것들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며 문제입니다. 그것을 풀려지고, 해결되는 해답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자신에게 무엇이 문제이며, 힘든 일입니까? 그것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가게 하는 힘은 희망이 주는 힘입니다. 한국이 과거에 일제 시대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에 희망을 이야기 하며, 희망을 품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그래도 지금 우리의 조국의 삶이 잘살게 되었습니다. 힘들게 살 때에도 희망을 안고 살면 그 삶은 축복입니다. 잘살아도, 희망이 없이 사는 삶은 저주입니다. 가진 것이 부족한 것이 없는 한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면, 살아갈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도 자살하고,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도 생명을 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나라는 지금 고난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나라는 점점 약해지며, 나라의 미래는 어두워집니다. 그런데 예언자는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 아무리 삶이 힘이 들어도 자녀들에게 희망을 말해주는 부모님, 또한 힘든 날들이 있지만, 희망을 품고 희망을 말하며 사는 삶이 보람이 있습니다.

희망이 주는 축복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미래에 대한 강한 기대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목표하는 것이나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한 간절한 열망입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하나님앞에서 끝까지 버리지 않고 가져가야 할 것은 하나님과 그의 축복하신 약속에 대한 강한 기대감입니다. 예를 들어, 기도하는 사람이, 자기의 기도나 간구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것에 대한 강한 열망이나 기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날, 우리가 기도했던 것, 바라고 희망했던 것등은, 우리의 강한 기대감의 부족에서 얻지를 못했습니다.

소망은 하나님께 기도한 것, 구한 것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통해 얻게 됩니다. 야곱의 신앙과 인생이 그러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지나가는 예수님을 향해, 눈을 뜨게 해달라고 소리치며 따라갈 때에 그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나 간구 중에 자신의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꼭 들어주셔야 할 것입니까? 그렇다면 끝까지 밀어붙이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중단하지 말고 계속 구하십시오. 야곱은 그런 끈질김이 있는 신앙인이라, 하나님의 천사를 이긴 사람, 이스라엘이 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런 간절하고 강인한 정신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귀한 것, 소중한 것, 그리고 중요한 것을 얻으려면 그런 강한 기대감이 필요합니다.

희망이 주는 또 다른 축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생애 속에서 우리가 귀한 것을 이룰 수 있게 하고 성취하게 하는 비전을 의미합니다. 희망은 우리에게 비전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약속하실 때에 구약의 요엘 예언자를 통해, 요엘서 2:에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가 환상을 보고, 늙은이가 꿈을 꾸리라 하였습니다. 젊은이는 장래에 대한 자기 비전을 갖고 살아서, 결국에는 그 비전대로 이루고 살아갑니다. 다니엘이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도 그렇습니다. 젊은 시절을 보낸 나이든 사람들은 새로운 미래에 대한 자기만의 소박한 꿈이 또한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메시아 대망 신앙은 나라를 잃고, 정부를 갖지 못해도 그들의 선민 의식의 영적 유산과 민족의 전통 유산을 지켜오는 힘이 었습니다. 그들에게 약속으로 예언하신 메시아 대망은 그들의 굳건한 신앙으로 수백 년을 지탱해 왔습니다. 나라 없고, 정부가 없는 형태에서 오랫세월을 버티는 구심점 역할을 하였습니다.
메시아 대망 신앙을 예언한 예언자들 중에 이사야가 단연 그는 메시아 예언자라 할만한 많은 부분에서 메시아와 그의 나라에 대해 예언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메시아 대망 신앙 은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그 소망은 자신들의 삶에서 생산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생산적인 일을 할 때에는 신명이 납니다. 특히 농부가 추수할 때에는 기쁘게 춤을 추며 신명 나게 일을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과 백성들은 승리한 기쁨을 누립니다. 로마 시대에도 승전한 장군은 전리물을 몰고, 개선의 승리의 행진을 하며, 백성들의 환영을 받습니다. 승리할 때에는 남는 것 있습니다. 패하면 없습니다. 영적 생활에도 패하면, 영적인 침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주님은 승리하셨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길수 없지만,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승리합니다.

메시아 대망 신앙은 메시아 왕국의 통치를 기대합니다. 그의 통치는 의의 통치이며, 그의 온전한 나라의 통치입니다. 진정한 평화가 있고, 그 나라는 쇠하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은 신의 도성이라는 책을 쓰면서, 망해가는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의 승리와 하나님나라의 통치가 영원하리라는 역사 철학을 쓰고 있습니다. 세상나라는 다 망하고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세워지리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그 나라는 승리하며, 영원 무궁합니다.

메시아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세상에 오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의 소생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죄지은 채로 저주받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죄있는 인생들이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데, 메시아는 그들을 구하려 오셔서 잃어버린 자녀의 지위와 권한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예수님 믿는 큰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죄와 형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용서와 상급과 영생을 바라며 살아가는 자녀의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메시아를 통해 죄와 형벌과 죽음는 뒤로 가고, 앞에는 용서와 상급과 영생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예수 앞에 나온 인생들은 모두가 죄인의 수치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자녀의 영광을 얻
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매일 하나님 앞에서 희망을 안고 살아갈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늘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을 격려합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의 이야기를 통해, 민족의 희망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삶의 희망과 능력을 얻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소망의 능력을 줍니다. 항상 말씀이 주는 힘 안에서 살면 희망 가운데에 거하게 됩니다.

희망 가운데에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어내야 합니다. 그분은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희망을 주십니다. 아무리 사방이 막히고, 솟아날 구멍이 없어도 내가 기도하는 한, 하나님을 통해 희망이 있습니다. 문제의 해결이 보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오셔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며, 희망을 주십니다. 그의 인도를 따라 살면 희망 가운데에 거합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외부의 핍박 속에 있을 때에, 그들을 격려하고 희망을 주셨습니다.대표적인 경우가 스데반 집사 이야기입니다. 그는 돌로 맞아 죽어가면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천사의 얼굴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희망 속에서 죽음을 이기는 순교자로 살았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크리스천의 유일한 능력이며, 희망입니다. 그분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도울자, 선생님, 지도자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영원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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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makes us fresh

Jeremiah 33:1-9
Ask God and He answers us.
God works for us.

* God recovers our lost things.
Our Position as His children
Our Right as His children
* God makes new thing in God’s promises.
His blessings for us
His plans for us
Our life for His glory
* God corrects our life.
He changes our destiny.
He heals our surroundings.
God freshens our images and natures.

Conclusion
God makes our lives fre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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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며

베트남에서 온 한 가족을 안다. 그들은 5년 전에 우연히 길에서 만나 전도를 하였다. 그들은 북한의 탈북자들처럼 죽음의 사선을 넘어, 동남아시아의 몇 나라(베트남, 라오스, 태국등)를 거쳐서, 공산세계에서 자유의 세계로 넘어온 사람들이다. 공산베트남은 아직도 종교의 자유가 없는 곳으로 소수의 종족들이 기독교 신앙을 믿고 지키려고 갖은 고난과 핍박을 감수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족은 불교를 가진 사람들로 그들이 사는 아파트의 거실에는 부처상을 세워놓고, 거기에 향을 계속 피워 놓는다. 그들의 불교의식은 생활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난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처지나 환경을 넘어서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국경을 넘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새로운 환경가운데에서 사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 하는 갈림길을 지나온 위기를 넘어온 사람들로 또 다른 기회의 땅에서 사는 것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긴박감에서 지내다가, 새로운 자유의 세계에 와서 살면서, 그 사회에 동화해 가는 상황에서 그들은 평범한 생활이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다.

보스니안인 한 여학생을 만나 전도하였다. 대부분의 성인 보스니안 사람들은 옛유고 연방에 속해있던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모슬렘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종교적인 다른 종파 사람들의 핍박을 피해, 당시 유고연방이 무너지면서, 각 민족이나 종파에 따라 한 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나누어 지면서 각기 민족이나 종교분쟁으로 고국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처지여서 국제 난민이 되어 이곳 미국정부의 초청으로 난민으로 이곳에서 살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아 난민으로 살아온다.

그들은 모슬렘신앙을 가진 사람들로,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들은 우선 기독교에 대해 적대시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 여러 보스니안 성인들을 만나 전도하였지만, 대부분 우호적이지 않다. 그리고 종족전쟁을 피해온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피해의식 속에 살고 있다.

이락에서 온 젊은이들은 후세인이 이락을 통치할 때에 강압정치를 하는 중, 그 국민들 중에 가족이 죽거나, 핍박을 피해 자기고국을 떠나 국제난민으로 미국정부가 받아들여, 그들도 미국에 들어와 정착하여 산다. 그들은 모슬렘사람으로 기독교에 대해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 아브달리라는 한 젊은이는 성탄절에 한국인의 떡을 가져다 주었는데, 별로 달가와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이 젊은이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수단에서 온 잃어버린 아이 청년들, 그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적인 분쟁지역에 살다가, 어느 날 모슬렘의 습격을 받아, 부모를 잃고 형제를 잃고, 급기야는 혼자 살아남아, 집단적으로 자유를 찾아, 고국의 국경을 넘어, 이곳 미국의 종교단체들의 도움으로 카톨릭 교회의 지원으로 미국에 망명을 하여, 난민신분을 받아 이곳에서 하루 하루 일일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 젊은이들은 서로 3명씩 혹은 4명씩 모여 한 아파트에 기거하여 살고 있다. 어느 날 아파트 주변에서 전도하고 있는데, 얼굴이 검지만, 키고 훤칠하게 큰 가느다란 젊은이들을 만나, 전도를 하였다. 그들과 함께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 성경공부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들은 대개가 자신의 태어난 생일과 정확한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 대부분 성경에 나오는 이름을 지어주어 각자는 그런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제임스,
예례미야, 피터등이다. 그들 가운데에 말라리아 열병을 앓았던 후유증을 가진 젊은이가 있어 함께 성경 공부하는 모임 가운데에 뜨겁게 그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데, 계속 눌러 오던 심한 두통으로부터 치유함을 받았다.

난민들중에 쿠바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미국의 가까운 나라에 있다보니, 쉽게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와서 살고 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 카스트로에 의해 오랫동안 경직된 사회를 피해, 자유를 찾아, 미국에 와서 살고 있다. 그들중에 카톨릭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대개 복음에 대해 우호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들 가운데에 일부 가족을 두고 오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난민인 경우에는 부인이 공산주의자라서 헤어지고, 이곳 미국에 와서 혼자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다니엘이라는 이 친구는 쿠바에서 펜타코스탈신학교(오순절교단)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가 영어를 스페니쉬어로 중간에서 통역하는 그를 내세워 쿠바민 성경공부 모임을 가진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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