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때 유명한 탤런트였던 남성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알고보니 그 ‘유명한 탤런트였던 남성’은 최근 자동차 판매 노동자로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문득,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대한 스트레스로 작년 9월에 뇌출혈로 숨진 대우자판 故최동규 동지가 떠올랐다.

이번에 쓰러진 ‘유명한 탤런트였던 남성’도

실은 故최동규 동지처럼 스트레스에 시달려온 자동차 판매 노동자였다.

대우자판처럼 사업분할이나 정리해고 위협은 없었을지 몰라도,

그의 일터 역시 실적 평가와 경쟁,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욱한 일상의 전쟁터였을 것이다.

그 역시 수많은 다른 노동자들처럼

‘남들도 다 견디면서 일하는데 나라고 못할소냐’,

‘30대 젊은 나이에 이 정도 피로 쯤이야’,

‘지금은 좀 힘들어도 내일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참고 일하자’

라고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다 견디면서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들도 픽픽 쓰러지고 있다.

2006년 한해동안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져 산재승인을 받은 노동자가 1,607명이고,

이 중 565명이 사망했다.

젊은 나이에 이 정도 쯤이야 괜찮다는 생각도 위험한 얘기다.

뇌심혈관계 질환자의 절반은 40대 이하의 젊은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노후를 위해 또는 가족을 위해 견디는 거라고는 하지만,

애써 준비하던 노후가 오기도 전에,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는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비단 뇌심혈관계 질환만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하루에 250여명의 노동자가 다치고 병들며, 하루 7명씩 죽어나가고 있으니,

이쯤 되면 일터가 아니라 전쟁터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대자동차의 현장은 어떤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쓰러지는 것은 물론,

일하다가 골병이 들고, 공장에서 부딪혀 부러지고, 기계에 끼어 죽었다는 소식이

올해 상반기에도 끊이지 않았다.

매일 일터로 출근하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 역시

사실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다를 것이 있을까.

게다가 그나마 꼬박꼬박 받아오던 건강진단도 믿을 게 못된다는 것이 드러났다.

작업환경측정도 백날 해봤자 현장의 소음과 먼지, 가스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근골격계 예방을 위해 3년마다 유해요인조사를 해도 골병의 근본 원인인 노동강도는 줄지 않는다.

솔직히 귀찮기만 할 뿐 왜 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이런 노동보건의 기본 사업들은

수많은 위험들이 가득한 일터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장치들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니,

전쟁터에 알몸으로 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본을 되찾아야 한다.

조금씩이라도 바꾸어야 한다.

우선 법이나 단협으로 확보되어 있는 기본적인 권리부터 하나씩 되찾아야 한다.

매달 2시간 이상(사무직은 1시간 이상) 안전보건교육을 제대로 받을 권리,

내가 무슨 화학물질을 다루고 있는지 간편하게 물질안전보건자료를 통해 알 권리,

건강진단과 작업환경측정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알기 쉽게 설명들을 권리,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통해 골병들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현장을 개선할 권리,

아프고 다쳤을 때 산재보험으로 당당하게 치료받고 건강하게 복귀해서 일할 권리,

그리고 건강을 잃지 않도록 조금 더 적게 일하고, 조금 더 쉬고, 조금 더 천천히 일할 권리...

안전이나 건강 문제는 노동조합 담당자 몇 사람이 알아서 할 일로 여겨오던 오랜 관행을 바꾸자.

복잡하고 전문적인 문제는 전문가 몇 사람에게 맡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리자.

우리 현장의 문제는 대의원이 알아서 챙길 거라는 생각을 바꾸자.

내가 알지 못하는 지식은 아무데도 소용이 없고,

내가 참여하지 않는 조사는 내 노동조건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지금부터 교육 한번, 검진 한번, 측정 한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해보자.

올해가 가기 전에 기필코 딱 하나라도 바꾸어 보자.

 

- 2007년 6월 / 현대자동차지부 신문 칼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6/15 08:12 2007/06/15 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