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하지 말자

from 콩이 쓴 글 2007/09/13 11:37

[울산노동뉴스 2호]

 

금속 제조업 공장을 둘러보면 어디나 비슷한 모습이다. 가공부서에 가면 위잉~위잉~ 금속을 돌로 갈아대는 소리가 귀를 찢는다. 공장 바닥은 절삭유가 튀어 미끄럽고 기계며 벽이며 공기 속에 흩날리는 작은 기름방울들이 내려앉아 기름때가 꺼멓다.

 

그 옆의 도장부서에 가면 취익~취익~ 분사기를 쥐고 페인트를 뿌릴 때마다 눈 앞이 흐려진다. 십 킬로그램을 훨씬 넘는 제품을 번쩍번쩍 들어올리기도 하고, 작은 망치를 들고 하루에도 수천 번씩 내려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너무 시끄럽네요’ ‘바닥이 미끄러워서 넘어질까봐 걱정됩니다’ ‘페인트가 너무 심하게 날리네요’ ‘몸에 무리가 갈 것 같아요’라고 얘기하면 되돌아오는 답은 십중팔구 똑같다. ‘저희는 적응이 돼서 괜찮아요.’

 

적응의 결과는 무얼까. 소음에 적응하다보면 소음성 난청으로 청각 장애인이 된다. 별다른 환기장치도 없이 눈코입으로 유기용제를 들이마시면서 일하는 데 적응하다보면 유기용제 중독으로 병을 얻는다. 사고 위험이 가득한 현장에 적응하면서 일하다가 떨어지고 넘어져서 다친다. 스트레스와 눈칫밥이야 다들 적응하면서 사는 거라 위안하다가 과로사로 죽고, 십년 넘게 적응해온 그 일 때문에 골병이 든다.

 

무릇 일터는 사람이 일할 만 해야 하고, 사람이 살만 해야 한다. 마음껏 숨쉬고 마음껏 얘기하고 마음껏 일할 만 하지 않다면, 적응하지 말자. 적응의 댓가로 내 생명과 건강을 치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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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3 11:37 2007/09/13 1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