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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화병의 정체는?

  • 등록일
    2006/05/15 20:56
  • 수정일
    2006/05/15 20:56
가슴이 마치 시멘트를 발라놓은 듯이 꽉 막혀 있다.

어제 대추리에 들어가지 못해 본정리에서 열린 범국민대회는

한 마디로 실망이었다.

 

친구들과 평택역에서 내려 대추리쪽으로 걸어갔다.

평택 시외를 빠져나가니 안성천 위 다리에는 벌써부터 경찰이 진을 치고 있었고,

사람들은 한 그룹 두 그룹씩 되돌아 나오는 중이었다.

친구들 몇 명이 그냥 가긴 아쉽지 않냐며 도열한 전경들 앞에서

기타 반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경찰도 일요일에는 쉬게 해 달라" "일요일에는 맥주나 마시자"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평택역으로 다시 돌아와서 어떻게 본정리쪽으로 진입할 것인가를 놓고

이런 저런 고민을 한 끝에, 택시를 타고 본정리 근처로 가서

논길이나 샛길 등으로 진입하기로 했다.

내가 탄 택시는 안정리로 가는 길에서 멈추어 섰다.

멀리 경찰들이 도로를 막고 있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전화를 통화해보니,

도로란 도로는 죄 막혀있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도로를 막을 수 있을까?

"외부세력" 차단을 이유로 아주 간단히

모든 사람, 모든 평택 주민의 이동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다.

빨갱이를 잡아들인다는 이유로 모든 사람들의 기본권이 침해당했던

그 "과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혀 법적 근거가 없는 외부세력론, 국회에도 상정된바 없는 외부세력론,

수구 언론들만 떠들어대는 외부세력론이

어떻게 모든 민중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도로차단의 이유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것이 보편적이고 엄정한 법에 근거해야할 행정집행을 행하는 사유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며 따르라고 말하면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경찰국가인가?

이렇게 푸념하는 것도 입만 아프다.

이렇게 화를 내는 건 심장만 상한다. 혈압만 높인다.

하긴, 있지도 않은 군사시설을 어거지로 만들어 군병력과 경찰 배치하고, 농민들 농사짓지 말고 나가라는 후안무치의 정부가 아니던가!

"농사짓지 말라" 하지않고  "영농행위"를 중단하라고 한다.

정말 웃기고 있다. 농사면 농사지 영농행위는 또 뭔가!

'행위'란 말로 농사를 격하시키고 범죄화하면

농사 못짓게 깽판놓는 깡패행위가 신성한 행정대집행이 되나보다.

 

다행히 노조 차량 한대가 길가에서 헤매는 우리를 발견하고

막히지 않은 논두렁쪽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모내기를 하기 위헤 물을 댄 너른 논들을 가로질러 여기 저기서 삼삼 오오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 가고 있다.

저기 멀리 본정리 진입로는 깃발과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하다.

답답했던 가슴이 확 풀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도착해보니 상황은 그리 고무적이지 않았다.

아침부터 본정리까지 들어오기위해 고생해서인지

사람들은 이미 진이 다 빠진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햇볓은 피곤한 몸과 마음을 잔인하게 내리쬐고 있다.

집행부도 대추리쪽으로 전혀 진입할 의사가 없는 것 같았다.

아예 이럴바엔 평택시내나 사람들 많은 곳에서 선전전을 하는 게 더 나았다.

고생스럽게 왔다가 가만히 앉아 졸다 가는,

전혀 시위스럽지 않은 시위는

4시쯤 마무리됬다.

 

난 어떻게든 대추리에서 열리는 인권영화제에 꼭 가고 싶었다.

4일 이후에 가보지 못한 대추리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대추분교가 어떤 모양으로 무너져 있는지, 지킴이들은 잘 있는지,

마을분들은 안녕하신지 인터넷을 통해 속속 듣고는 있지만,

내 눈으로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리아와 지킴이집이 가장 그리웠다.

집회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속속 평택을 빠져나가자 경찰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8시가 되어서야 대추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6시에 시작하기로 되어있던 영화제가 막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마을분들이 모여 있는 한켠에 마리아가 벤치에 앉아있는데,

머리를 스포츠로 깎고 모자를 눌러쓰고 있다.

짧게 깎은 머리와 눈에 서린 불안이 4일 이후의 대추리의 절박함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영화제를 본 후, 피곤한 몸을 지킴이집에서 누이고 나서

오늘 아침에 무거운 눈을 떴다. 아침부터 경찰 몇명이 검은차 3대를 끌고 동네에 들어와서

주민분들이 나가라고 또 한판 소동이 벌어졌다.

오늘부터 무슨 측량작업을 실시한다고 해서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긴장하고 있다.

서울에 올라오는 내내 우울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저번 4일 침탈 이후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책을 읽어도 음악을 들어도 일본어 공부를 하려해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3월부터 다니던 귀농학교도 그만두었다.

귀농을 차근차근 준비하기에는 내 일상이 너무나 평화롭지 못하다.

이주노동 관련 세미나도 하는둥 마는둥 책도 제대로 못읽고 있다.

대추리의 비평화가 내 비평화를 결정해버린 듯하다.

지킴이들 사이에 돈다는 대추리병이 내게도 전염되었나 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나에게 나타난 증상은 무기력과 울화증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귀찮고, 세상만사가 다 귀찮다.

갑자기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확 떠나버리고 싶다는 충동도 일어난다.

길 가다가 울컥 울음이 솟아오르기도 한다.

하루는 울음이 딱 가슴께에 맺힌거 같아서 토하듯 화장실에서 꺼이꺼이 울어도 봤다.

이 놈의 울화병!

대추리가 나으면 나도 나으려나

내가 나으면 대추리가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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