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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 초조, 분노로 뜨고 지샌 새벽

  • 등록일
    2006/07/10 18:49
  • 수정일
    2006/07/10 18:49

이 모든 일이 하루 밤에 다 일어났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불판팀("철조망을 불판으로!"의 별칭. 대추리 촛불집회 때 구X구의 발언으로 붙게 된 대추리 연대팀의 이름. 당시 ,구X구씨는 황새울 들판의 철조망을 삼겹살 구워먹는 불판으로 만들자는 발언을 남김)과 함께 평택에서 대추리로 들어가는 토요일 평화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7시 평택역 앞 광장에서 모였다. 힘들게 나흘간의 일정을 마친 전일참가자들은 피곤하면서도 결연한 모습이었다. 한 시간 남짓 집회를 마치고 드디어 출발. 군문교를 지나면 나오는 주유소에서 잠시 휴식. 선발대 몇 명이 안정리 상인아라고 밝힌 몇몇의 사람들에 의해 구타를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들이 이쪽으로 각목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

 

뜻하지 않은 휴식이 길어지자 불판팀의 윤x이 평소에 갈고 닦은 현란한 춤솜씨를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기 시작, 몇 시간 후에 경찰서 앞에서 연행될 자신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듯, 몸치인 나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멋진 보아춤으로 마무리하자 사람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로 답했다. 이런 즐거움도 잠시, 갑자기 각목을 든 술취한 사람들이 욕지거리를 하며 나타났다. 경찰들은 뒤늦게서야 저지선을 만들어 마치 우리를 보호하는 척 했지만, 깡패들이 각목을 휘두르거나 돌멩이를 던져도 전혀 그들을 연행해가지 않았다. 저지선 위로 돌멩이들이 날아오고 있는 와중에 옆에 있던 여성이 돌에 맞아 가슴을 부여잡고 아파하고 있다. 갑자기 팍팍 터지는 소음. 달걀 공격이 시작되었다. 돕은 안경 쓴 열굴 정중앙을 달갈을 맞고 놀람과 분노가 범벅이된 표정을 짓고 있다. 그게 돌이었다면 정말 큰일날 뻔한 상황. 점점 저지선은 우리쪽으로 좁혀온다. 머릿속에서 계속 다치지 말아야해, 다치지 말아야해를 되뇌인다.

 

결국 평화행진단은 평택역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굴욕적인 후퇴였지만 술취한 난동꾼들과 이를 방관하는 경찰들의 앞에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우리가 돌과 각목을 든다면 아무리 자위라고 해도 평화행진이 폭력행진으로 변질될 것이 뻔하므로. 

 

한편 평택집회에 참여하고  마을로 돌아가던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차량을 원정3거리에서 경찰이 막아섰다. 함께 간 농활대들이 마을로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을을 점점더 고립무원의 상태로 만들려는 경찰의 수작인 것을 알기에 주민들은 노숙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마을에서 이불보따리를 들고나왔다. 이 소식을 듣고, 평택역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항위하기 위해 한밤중인 2시경에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 앞에 앉아 "평화행진 보장하라", "불심검문 중단하라"는 구호를 열심히 외쳤다. 사회자로 앞에 선 아랫집 용석이의 멋진 발언들이 내 마음속에 알알이 박혔다. 자신이 연행될 것을 알았는지, 평소 닦아둔 비폭력의 신념을 감동적으로 설파했던 그의 발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경찰은 우리에게 질 수 밖에 없다. 비폭력 상상력으로 넘쳐나는 우리들의 자발성과 창조성앞에서 위계와 명령 속에 같힌 그들은 무력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곧 재판을 받고 구속될 병역거부자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경찰이 자진해산하려고 하는 우리를 덮치기 시작하고 우리들은 삼삼 오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전경들은 마치 게슈타포가 유태인을 추격하듯 우리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헐레벌떡 옆길로 빠진 나는 직감적으로 전경과의 달리기에서 내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앞에 가는 두 명을 따라 무작정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건물 맨 윗층으로 올라간 우리들은 화장실처럼 보이는 문을 열고 그 안에 숨었다. 좁은 공간 안에 꽉끼어 앉아 숨소리를 죽이고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저기 잡아, 저기"하는 경찰의 외침과 그들의 발자국 소리. 혹시나 이 건물에 들어와 수색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갑자기 문밖에서 여자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우리가 숨은 곳은 세면실. 누구라도 언제고 이 곳에 들어올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누가 문을 잡아당긴다. 좁은 세면실에 옹기종기 앉은 얼굴 세개를 발견한 그 여성은 얼마나 놀라고 황당했을까. 다행히 그는 밖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고 있었고 우리의 처지를 즉각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는 자기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녀의 친절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됬다.

 

흩어졌던 우리들은 하나둘씩 민노당사에 모이기 시작했다. 상황을 파악한 결과 40명이 넘은 사람들이 연행됬다. 나와함께 간 불판팀 7명이 포함되어 있다. 11명이 간 중에 7명이 연행된 것이다. 비xx이 잡혀가다 실신했다고 소리도 들리고, 구x이 엄청나게 얼굴을 맞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부채를 든 어떤 여자가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더라라는 얘기에, 그게 썩XX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상황은 처참하고 악랄했다. 보는 사람이 없는 오밤중을 틈타 경찰은 온갖 인권침해사 범벅이된 연행을 감행한 것이다. 숨었던 사람들의 무용담들도 제각각이다. 학교에 숨어있었다는 사람, 끌려가다가 도망쳐나온 사람 등등.  낮에는 술취한 상인들 뒤에 숨어 그들을 돕고, 밤에는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며 인간 사냥을 하는 늑대로 변신하는 저 공권력 앞에서, 물리적 힘으로는 결코 그들을 당해낼 수 없다는 무력감과 좌절, 쓰디쓴 패배감이 민노당사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얼굴위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밤을 새고 다음날 예정된 평화행진을 시작했다. 다행히 별 충돌은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늘 천진무구한 문정현 신부님의 멋진 발언. 장장 5일 동안의 행진을 끝낸 지킴이들의 감격과 눈물. 마지막에는 노래를 부르며 손에 손 잡고 동심원을 그리며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경찰들이 앞 뒤로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 전날의 악몽의 깊이 만큼 감동 속으로 너울너울 춤추며 빠져들어갔다. 지난 밤의 패배감과 좌절감을 딛고 마라톤 같은 비폭력 평화행진을 이렇게 극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환영이 스쳤다. 전경들이 마음 한 구석에서, 우리의 노래에 구보를 뛰고, 우리의 춤사위를 따라 정렬을 맞추고,  마침내는 마음의 감옥에서 뛰쳐나와 실제로 우리와 함께 손잡고 춤추는 모습들..  그들은 우리를 막고, 에워싸고, 고립시키고, 억압하는 전술을 택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무장을 스스로 해제시키는 전술을 쓴다. 우리의 리듬에 군화 속에서 몰래 까닥이는 발짓 그리고 눈짓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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