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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12
    군대반대운동의 시대적 맥락이랄까 뭐랄까...
    무나
  2. 2005/03/12
    [펌]모든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연대 -반다나 시바
    무나

군대반대운동의 시대적 맥락이랄까 뭐랄까...

  • 등록일
    2005/03/12 13:04
  • 수정일
    2005/03/12 13:04
몇 주 전에 일본에서 교과서 재판 통신이라는 이상한 소식지가 날아들었다.  내용인 즉슨, 일본의 우익세력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역사 왜곡 교과서를 반대하는 일본 운동가들의 소식지였던 것이었다. 생각을 더듬어 보니, 한 일년 전 쯤에 할아버지가 내 주소와 싸인을 받아간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때는 대충의 내용만을 듣고 나쁜 일은 아나구나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싸인했었다. 근데 요즘 일본 유사법제 제정 등등,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니 역사 왜곡 교과서 문제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3년전 쯤인가 붕어군이 일본 친구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군대반대 운동을 했을 때가 떠오른다. 그 때야, 가장 절실했던 문제는, 군대를 죽도록 가기 싫어했던 붕어군이 어떻게 하면 군대도 안가고 영창도 안가게 할 것인가에 관한 것에 집중되었다. 한편으로는 가메다씨를 비롯한 일본 친구들이 왜 이렇게 붕어의 군대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몸을 아끼지 않고 지원하려고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붕붕군이 그 특유의 이쁜 짓으로 일본에 가서 친구들의 사랑을 듬뿍듬뿍 얻어왔구나....라고만 생각하는 것에 머물렀다.(사실, 일본친구들의 붕붕에 대한 사랑은 눈물겨울 지경이다)

한편 나는 한국의 군대반대 운동을 하는데 일본 친구들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얻는다는 생각이 조금 꺼림찍 했다. "아니 일본놈들이 왜 한국 군대를 없애라고 지랄이지? "하는 한국인들의 즉자적인 반일감정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마침 그 당시는 독도 문제로 한참 반일감정이 극에 달했을 무렵이었다.

하여간 그후 이러저러한 뻘짓들을 벌여왔긴 했지만 이렇다할 효과를 거두지 못한채 군대반대문제는 취직이니 연애니 하는 개인적 문제들로 잠시 내 머리에서 떠나게 되었다. 그 동안 오태양, 나동혁 등등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문제들이 언론에 부각되면서 그 때에는 무서워서 말조차 꺼내지 못했던 군대반대가 이제는 당당히 공론화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게 단 삼년 동안에 벌어진 일들이다. (감동 ㅜㅜ)

요즘 한창 일본의 유사법제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때 일본 친구들이 군대반대 운동을 지원한 맥락은  바로 이러한 일본의 우경화, 군국화에 대한 저항이이었다.  일본은 패망이후 제정된 이른바 평화헌법(헌법 제 9조)에 따라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였다. 자위대는 명목상 군대가 아니고, 어떤 군사 재판도 금지되어 있다. 자위대가 만약 분쟁지역에 파병된다 해도, 그것은 적십자나 다른 민간단체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에 선다. 이러한 평화헌법을 사실상 사(死)법화 시킨 것이 바로 이번에 통과된 유사법제이다. 이제 일본은 전 국토와 사람들을 전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우리도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 국가"가 되자! 하는 것이 극우파들의 주장이다.) 조만간 일본도 징집제가 생길지 모른다. 왠만한 "보통국가"에는 다 있는게 징집제니깐...

그래서 이래저래 내게 있었던 일들을 종합해본 결과, 일본에서 날아든 교과서 재판 통신이나, 일본친구들이 붕어를 돕기위해 발벗고 나선 것이나 모두 이런 큰 맥락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본의 군국화는 미국의 군국화와 맞물려있다. 미국은 일본 땅과 사람들을 동아시아의 패권을 위해 전시 동원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바꾸려는 거다. 많은 논자들이 미국의 궁극적 대상은 중국이라고 얘기하고 북한은 미국이 미사일 방어체제 등의 군비 증강을 위한 핑게에 불과하다고 얘기한다. 백번 맞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결코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으며 북한발 핵위협을 끊임없이 조작해내는 기술이야 말로 최고의 군사 테크닉일것이다.

한편 북한에 대고 반핵을 부르짖는 보수세력들은 한반도에 있는 미국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의 하수인이며 그 하수인의 역할로 떨어지는 콩고물을 줒어먹는 자들에 불과하다.

"1991년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철수하기 이전까지 미국은 남측 내 미군 기지에 약 1천7백20여 개의 전술핵무기를 배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한반도 1백 평방킬로미터(경기도 수원시에 해당하는 넓이)당 한 개씩 혹은 동해에서 서해까지 2백 미터당 하나씩 핵무기가 배치된 셈이다. 이는 핵무기가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네 배가 넘는 밀도로 세계 최고라고 한다. 파괴력 면에서도 1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낼 수 있는 히로시마급 핵폭탄의 1천7백 배에 해당하며 1억7천만 명을 살상할 수 있는 위력인 것이다.” (한국민권연구소 김서원 상임연구위원이 『정세동향』 47호 ‘미국의 대북 핵공격 협박의 역사’에 발표한 내용이다. - 디지털 말에서 퍼옴.)

정말 끔찍하다. 한반도 국토의 이백미터 당 하나씩의 핵무기를 심어두었었다니... 이렇게 미국 핵에 의해 생존에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핵 반대만을 주장하는 보수론자들의 반핵은 똥꾸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개소리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죽고 다치는 건 고스란히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몫인데, 그들은 미국의 군국주의를 두둔하며 눈가리고 아웅하고 있다.

군대가 없으면 우리나라를 누가지키냐구? 여지껏 한국을 "지킨건" "국군"이 아니라 "미군"이다. 한국의 군사력은 미국의 커다란 전략의 일부분에 지냐지 않는다. 총알받이 정도나 될까...  따라서 한국의 군대에 대한 반대는 당연히 미국의 군대에 대한 반대이며 나아가 미국의 군사적 이익에 종속되어 있는 모든 군사 시스템, 전쟁에 대한 반대이다. 군대반대 운동은 단순한 국지적 반전이 아닌 글로벌한 비전(非戰)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게 내가 요즘에 내린 결론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제국"화되어 가는 글로벌 시스템(군사, 경제, 문화 모든 것의 글로벌 화)에 맞설 수 있는 것은 결코 몇몇 나라들이 유엔에서 보여주는 반대의 제스쳐도 아니고, 국지적으로 고립되어 일어나고 있는 배타적 민족주의도 아니다. (어떤 학자들은 글로벌리즘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민족주의라고 헛소리를 해대기도 한다. 먼지싸인 아카데미에 짱박혀서 그게 현실적인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나머지는 전부 이상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문제는 그런 생각들이 이른파 진보, 좌파 등지에 퍼져 있다는 거다)

"인 터 피 플..."

국가간의 인터내셔널이 아닌 비전인터피플(혹은 비전잡민연대)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 전쟁을 하는 자들 환경을 파괴하는 자들,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들, 이들 점차 통합되어 가는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맞설수 있는 것은 또한 세계 잡민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본다. 좀 더 시각과 행동반경을 넓히다보면 분명 군대반대운동이 대중화될 수 있는 지점까지 다다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대중화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코 한국내에서 독자적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세계 잡민들의 군대반대 운동과 같이 연대해 가야지만 승산이 있다.  그것밖에는 없어 보인다.
http://www.digitalmal.com/bbs/board.php?code=bbs_peace_pds&page=1&id=675&mode=&type=read&position=여기 있는 글들을 소개한다는게 또랑으로 빠져버렸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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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모든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연대 -반다나 시바

  • 등록일
    2005/03/12 12:52
  • 수정일
    2005/03/12 12:52
출처 : <환경과 반차별 3호>

모든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연대
- Solidarity against All Forms of Terrorism -
반다나 쉬바(Vandana Shiva)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9월 18일에 열렸다.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 공격으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서 몇백만명이라는 사람들이 오전 10시부터 2분동안 묵념을 하였고 나도 같이 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다른 테러와 폭력행위에 의해서 희생된 수백만명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형태의 폭력이든 그것에 저항하자는 맹세를 새롭게 했다.

9월 18일 오전 10시 30분, 나는 라쿠슈미, 라이버리, 그리고 스라남과 함께 오릿사주 카시풀지구의 조디아 사히마을에 있었다. 라쿠슈미의 남편 가비 조디아는 최근 굶어죽은 20명의 부족민의 한사람이다. 같은 마을에서 소바르나 조디아도 똑같이 사망했다. 그 후에 우리는 바라말마을에서 싱가리와 만났지만 그는 남편 사다하와 큰아들 스랫트, 작은아들 파이라, 그리고 의붓딸 스밀라도 잃었다. 이렇게 굶주린 사람들에게 고의로 식량을 보내지 않은 게 세계은행에 의한 ‘구조조정프로그램’의 핵이 되어 있다. 인도의 공공분배기구(Public Distribution System = PDS)를 해체하는 것이 세계은행의 조건인데 지출삭감의 명목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런데 식량보조를 위한 예산은 1991년에 280억루피에서 2001년에는 1400억루피로 부풀어올랐다. 세계은행이 식량보조를 인상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에 더욱 많은 돈이 곡물을 저장하는 데 사용된 것이다. 이것은 식량의 가격상승을 초래하고 PDS의 구입가격이 하락해서 더더욱 저장량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 나라의 식량보장은 파탄에 이르러게 되었다.

나는 기아의 희생자가 된 부족민의 가족들이 2분동안 묵념을 하는데 참가했다. 창고 안에는 6천만톤의 곡물이 썩고 있다는데……. 나는 사람들을 빈곤과 기아로 몰아넣은 경제정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것은 테러의 한 형태와 다르지 않다. 마하라슈트라, 라자스탄, 오릿사 등지에서의 아사는 우리들의 식량시스템이 허물어지는 징후이다. 카시풀은 일찍이 자연의 혜택이 넘쳐 있었다. 본래 아사 따위와는 관계가 없는 땅이다. 그런데도 자연과 부족사회에 대한 폭력의 파도에 의해서 이러한 참사가 일어났다. 산업과 사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부족의 자원을 수탈하는 한편에서 송두리채 헐벗은 부족민들에게 복지와 생활보장을 전혀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찾아볼 수 없는 국가정치 때문이다. 카시풀이나 기타지역의 아사는 생태계가 파괴되고 자원을 약탈당하고 식량박탈, 경제개혁정책의 보장시스템, 그리고 기후변동의 영향이다. 2년이나 계속한 가뭄 때문에 곡물이 자라지 않았고, 금년에는 오히려 계절을 벗어난 너무 많은 비 때문에 또다시 곡물이 타격을 받았다.

20년전 펄프공장이나 제지공장은 카시풀의 숲을 없앴으며 지금은 가까이에 있는 안드라 프라데시에서 유칼리를 들여오고 있다. 펄프산업에 의한 테러 때문에 이 지역은 이미 파괴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르웨이의 하이드로와 캐나다의 알칸 인디코, 인도의 발코 스타라이트 등 거대한 채광기업이 새로운 테러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카시풀의 웅대한 구릉지 안에 있는 보크사이트를 노리고 있다. 보크사이트는 알루미늄의 원료인데 알루미늄은 코카콜라 캔이나 전투기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산, 하나하나의 산을 자연이 몇 천년이나 걸려서 만든 세계무역센터라고 상상해보자. 세계가 9월 11일에 경험한 것보다 심한 참변이 도대체 얼마나 일어났는가 생각해보자. 탐욕스러운 산업과 시장에 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1983년 두운계곡에서 광업에 의한 환경테러리즘을 막았다. 최고재판소가 광산을 폐쇄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산업은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쟁취한 생태계측의 승리는 세계화정책에 의한 환경규제완화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광업은 ‘자유화’되고 기업은 도처에서 광물을 캐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알루미늄기업은 카시풀 부족민의 토지를 탐내고 있다. 그러나 카시풀의 여러 부족은 고향을 떠나는 걸 거부하고 비폭력적 저항운동으로 토지와 지구를 지키고 있다. "자연과 인간을 지킨다"는 이 운동에 참여하는 중년의 여성리더 묵따 조디아는 18일 카시풀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구는 우리들의 어머니입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그의 아들딸이죠. 채광기업은 우리 땅에서 우리를 무지막지하게 움직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땅은 신과 창조의 힘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정부가 준 게 아닙니다. 정부에게 우리의 땅을 빼앗는 권리 따위는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서 자원을 빼앗는 것도 테러리즘의 하나, 이를테면 기업테러이다. 나는 이제까지 이러한 기업테러의 희생자들과 연대해 왔다. 이런 테러는 200개 마을의 생존기반을 위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이미 사람들의 생명까지 빼앗고 있다. 2000년 12월 16일, 경찰은 주민을 살해했다. 아비라슈는 이 때 경찰에게 피살된 한 사람이다. 당시 그의 처 스바루나 조디아는 임신중이었다. 나는 그녀와 만나기 위해 마이칸나 마을을 찾아갔다. 스바루나는 아버지가 무참하게 살해된 후에 태어난 여자아기를 데리고 오두막집 입구에 앉아 있었다. 아이의 이름을 물으니 나보고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에게 샥티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평화적인 형태로 힘을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그 아이에게 간직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의 아버지와 부족이 보여준 채광기업과 경찰국가의 테러에 대한 10년이 넘은 저항운동정신이다. 모든 형태의 테러리즘과 싸우기 위해 하나가 된 힘이다. 최근 40년간 댐 때문에 집을 잃고 쫓겨난 5천만명의 부족민들도 또한 테러의 희생자이다. 그들은 테크놀러지와 파괴적 개발의 공포와 직면해왔다. 오릿사를 엄습한 초대형 사이클론(인도양에서 발생한 태풍)으로 사망한 3만명, 그리고 기후변동과 화석연료에 의한 공해 때문에 홍수, 가뭄, 사이클론이 더욱 심해졌을 때 생명을 잃게 될 몇백만명의 사람들에게는 쿄오또의정서에 서명을 거부한 부시는 또 하나의 테러리스트에 다르지 않다.

시애틀에 모인 시민들은 WTO에게 세계테러리스트기관(World Terrorist Organization)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WTO의 규칙은 몇백만명이라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권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9월 11일의 비극은 군사, 테크놀러지, 경제, 정치 등 모든 형태의 테러리즘을 방지할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테러는 군사적 발상이 아니면 안 된다. 무력은 불안정과 공포감을 만들고 오히려 테러를 키우게 된다. 지금 벌어지는 ‘테러에 대한 전쟁’은 폭력의 악순환을 가져올 뿐 평화와 안전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외국인 배척의 물결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인도인, 아랍인, 아시아인들이 습격당하고 살해되고 있다. ‘보복’적 분위기에 힘을 얻은 모든 원리주의자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테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평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람들의 안전보장을 첫째로 하는 문화뿐이다. 9월 11일 이후의 세계를 ‘문명과 야만’이나 ‘민주주의와 테러리즘’간의 전쟁이라고 자리매김 하는 것은 잘못이다. 지금 부딪치고 있는 것은 거울처럼 서로의 가치관을 비쳐주는 두 형태의 테러리즘이다. 어느 쪽이나 폭력주체의 문화이고 같은 무기, 같은 기술을 쓰는 폭력과 공포를 사용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이 양자는 서로의 클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장소의 죄 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희생자가 된다. 참된 충돌은, 평화와 안전 속에서 살기를 원하는 전세계의 시민들과, 그러한 평화와 안전을 부정하는 폭력과 공포의 힘과의 싸움이다.

조디아 사히의 부족민들은 마을의 제단에서 나를 위해서 등을 밝혀 주었다. 제단은 조그만 돌이었다. 그런 부족의 제단은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빌딩과 물리적으로 비교하면 하찮은 것이다.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는 깊고 큰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관대한 평화적 우주를 구체화한 것들이기 때문에 지구와의 평화, 인간간의 평화, 인간에 내재하는 평화…….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되찾아서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평화의 문화가 아닌가.

전세계가 세계무역센터의 붕괴를 몇 번이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의와 강욕 그리고 세계화의 폭력에 의해서 파괴된 몇백만의 성스러운 제단이나 가정 그리고 농장에는 아무도 눈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 ‘암흑의 화요일’의 희생자를 추도할 때 다른 형태의 테러나 폭력에 의한 방대한 숫자의 감춰진 희생자와의 연대도 강화하자. 그리고 폭력이나 테러리즘은 지구에 사는 우리의 미래의 가능성 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이 비극적이고 무참한 역사의 순간을 평화의 문화를 구축하는 힘으로 틀림없이 바꿀 수 있을 것이다.

2001년 9월 18일 오릿사주 카시풀 지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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