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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방문기-9(동영상)



♪ 마을잔치에서 상영했던 영상물 ♪

 

이번 평화캠프에 마지막 날에 마을잔치가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영상기록이었고, 마을잔치에서 짧지만 그동안의 기록을 편집해서 상영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액정은 푸른영상에서 빌리고, 편집이 되는 노트북은 허경 감독한테서 빌려서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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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방문기-8

호치민의 전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베트남전쟁 당시의 반전 혹은 지지 포스터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런 포스터가 하니씩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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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방문기-7

아름다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세번째 베트남 방문을 마치면서 또다시 베트남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면 갈수록 또 가고 싶어지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봅니다. 베트남의 하늘과 자연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이유는 함께 한 혹은 만났던 사람들이 너무 순수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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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방문기-6

연대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대학때 봤던 무수한 구호들 중 여전히 기억나는 구호입니다. 그렇습니다. 연대는 고정된 명사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명사입니다.

 

 

우리들이 하는 일을 거창하게 연대활동이라고 부르지는 않아도 이러한 소박하지만 진솔한 활동이 쌓이고 쌓이면 그 결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식도 낯설고 언어도 달라 의사소통이 쉽진 않지만 만나는 일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나서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면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듯이 만남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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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방문기-5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는 미래가 없다

 

 

우리들이 페인트를 칠했던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을 한군데 모아 전체놀이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학교 교실이 두칸밖에 되질 않아 오전,오후반으로 수업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표정은 천진난만합니다.

 

 

이 아이들을 보면서 과거의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그리고 현재의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전쟁터의 아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한창 마음껏 뛰어놀아도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장난감대신 돌과 폭탄을 들게 한 것은 누구입니까?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지역을 다녀보면 위령비가 있는 곳은 대부분 아이들의 놀이터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위령비가 있는 곳 대부분이 마을의 중심지이고 그곳이 놀이터가 된 것이겠죠.

 

 

그곳에서 놀면서 아이들은 늘 봅니다. '미군의 용병인 남조선군대에 의해 마을 사람들 00명이 죽었고 그 원한을 깊이 새긴다'라는 문구를 말입니다.

 

 

이 아이들이 커서 나중에 어른이 되고 지금보다 베트남이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이 된 시점이 오면 한국에 말 할 겁니다. '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를 죽였냐?'고. 지금 우리가 일본에 말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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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방문기-4

베트남의 힘

 

 

위령비 주변도 정리하고 위령탑 내부에 모래를 채우는 일을 하는 날입니다. 베트남 특유의 뜨거운 햇빛이 긴팔을 입은 나의 몸에 화살처럼 내리 꽂힙니다.

 

 

일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새삼 베트남의 힘이 무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빨리 끝내고 쉬는게 현명하다는 생각이고 일을 할 때도 효율적인 방식으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 베트남 사람들은 열심히 일은 하지만 한국사람들처럼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는 않습니다. 쉬엄쉬엄 노래도 부르고 그늘에서 쉬기도 하면서 마치 오늘이 아니면 내일하면 될 듯한 태도로 일을 합니다.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한국땅에서 일을 할 때와 베트남에서 일을 할 때 무엇이 다른가? 아마 날씨일 겁니다. 베트남에서 한국에서 일할 때처럼 하면 아마 더위에 쓰러질 겁니다. 낮11시부터 1시 반까지 모든 관공서와 사람들이 쉬듯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의 속도가 있는 듯 합니다. 마치 한국은 모내기철을 놓치면 1년 농사를 짖질 못하지만 베트남은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할 수 있는 다모작을 하기 때문인지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또다시 스콜

 

 

더위를 식혀주는 소나기입니다. 10분정도 지나서 빗방울이 약해지자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한국과는 다른 도구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삽질을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베트남의 하늘

 

마치 윈도우 바탕화면에 깔리는 그런 하늘입니다. 한국의 가을하늘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베트남의 하늘은 한국의 가을하늘보다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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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방문기-3

날씨 흐림

 

 

퐁니마을 도착 첫날, 위령비 주변에 나무를 심으로 위령비로 갔습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검은 구름들이 낮게 떠 있었고, 학살이 시작되었다는 당산나무는 무척이나 푸르렀습니다.

 

 

위령비를 세우면서 마을에서는 논을 가로질러 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위령비만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미 위령비는 제모습을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남은 일은 위령비 겉면에 대리석으로 새긴 학살된 사람들의 이름과 추모의 비문, 그리고 갖가지 장식들을 하는 일만 남아 있는 듯 보였습니다.

 

 

나무를 심는 동안 당산나무 아래 그늘에는 마을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학살사건과 관련된 분들이겠지요. 자신들이 30년 넘게 바래오던 위령비가 세워지는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과거를 닫고 미래를 보자

 

작년 생존자 인터뷰 촬영을 하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우리들에게 적대감은 커녕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러한 활동이 왜 필요한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패배의 역사가 아닌 승리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아량인 것인지, 아니면 한국군은 단지 미군의 용병이므로 굳이 한국을 미워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베트남 정부의 정책이 '과거를 닫고 미래를 보자'라서 그런 것인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한국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저리도 담담하고 평온할 수 있을까?

 

 

말이 나왔으니 '과거를 닫고 미래를 보자'라는 베트남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할 듯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정책이 마치 과거를 잊자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그것은 완전히 오판입니다. 작년 <미친시간>작업을 하면서 여러마을을 다녔는데 놀랍게도 베트남 사람들은 당시의 사건을 문서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철저하게 조사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마을의 위령비에는 신원미상의 사람 몇 명이 아닌 신원미상이 6명이면 6명의 신원미상 표시가 차례로 되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과거를 잠시 닫자는 말인 겁니다.  잠시 닫고 나중에 열겠다는 말이지 잊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스콜 그리고 촛불만찬

 

 

저녁에 비가 왔습니다. 순식간에 엄청남 폭우가 쏟아졌고 정전이 되었습니다. 저녁시간이 되어서 촛불을 켜고 식탁이 차려졌습니다. 어떤 화려한 만찬보다도 더 아름다운 식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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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방문기-2

1번국도

 

베트남은 매우 길쭉한 나라입니다. 무려 1800km나 됩니다. 지금 하노이에서 호치민을 잇는 고속도로를 만들고 있지만, 현재까지 두 곳을 잇는 도로는 1번국도 뿐입니다. 물론 기차가 있기는 하지만 비싼 요금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스로 이동한다고 합니다. 이 1번국도가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매우 중요한 도로였을 겁니다. 누가 이 길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판가름날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또한 이 1번국도를 따라 저질러 졌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가야 할 곳은 베트남 중부지방이었습니다. 호치민에서 버스를 빌려타고 26시간 동안 가야지 닿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1번 국도는 오가는 길이 하나씩인 좁은 도로입니다. 이곳으로 오토바이도 지나다니고 소들도 지나다닙니다. 한국에서 2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라면 지겨워서 아무도 타지 않았겠지만 퐁니마을까지 가는 1번 국도는 매우 아름다웠고 생각보다 그리 지겹지는 않았습니다.

 

                                                                             <1번 국도변에서 만난 아이들>

 

 

밀라이 박물관에서 본 두장의 사진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결정적인 사건들 중에 중요한 사건이 미군에 의한 밀라이 학살이었습니다. 1968년 1월 구정대공세에서 결정타를 입은 미군은 3월 16일 베트남 중부의 한 마을이었던 밀라이 마을에 들어가 500여명의 마을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합니다. 아마도 구정대공세에 대한 보복이었을 겁니다. 당시 희생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인들과 여성 그리고 아이들이었습니다. 지금의 전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제아무리 정밀폭격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죽는것은 힘없는 여성들과 아이들입니다.

 

                                                                                    <밀라이 박물관의 조각상>

 

퐁니마을로 향하는 도중 밀라이박물관에 들렀습니다. 그곳에는 당시의 학살과 관련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두장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장은 한국전투병이 베트남에 첫발을 딛는 순간의 사진이고, 다른 한장은 학살되었던 밀라이 마을의 한가족 사진이었습니다.


 

호치민에 있는 전쟁박물관에 가면 베트남 전쟁에 파병했던 나라들에 대한 설명과 사진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유일하게 한국만 사진이 두장 걸려있습니다. 아마도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 중에 가장 많은 전투병을 파병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라크전쟁이 끝난 뒤를 생각해 봅니다. 언젠가는 이라크에도 이러한 전쟁을 기억하는 기념관이나 박물관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곳에 또다시 한국군 사진이 걸릴 겁니다. 미국과 영국 다음 세번째로...

 

 

이 사진을 보면서 잔혹한 학살사진보다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누가 저들을 무슨 이유로 죽인겁니까? 무슨 권리로 가족을 파괴합니까? 이 세상에 한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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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방문기-1

세번째 베트남 방문이었습니다

 

첫번째 방문에서 처음으로 민간인학살 생존자들을 만났었습니다. 대부분 나이가 든 할머니들이었고 얼굴과 몸에는 선연한 상처가 고스란히 기억되어 있었고 한국사람들을 만난 할머니들은 소리내어 우셨습니다. 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손이라도 잡고 나의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달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두번째 방문에서 학살이 일어났다는 폭탄구덩이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학살에 대해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생존자를 인터뷰하면서 순간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그분이 웃지만 않았어도 아니 오히려 화를 냈다면 눈물이 나질 않았을 겁니다. 담담하게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괴로웠습니다. 또다시 그분들의 아픈 상처를 내가 후비고 있다는 자괴감과 학살을 자행했던 국가의 한사람이라는 미안함... 생존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말하는 동안의 표정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그분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방문이었습니다. 작년 촬영하러 갔던 곳이었고, 그곳에서 인터뷰를 한 생존자는 '한국군을 증오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젖먹이였다가 엄마품에서 다행히 살아남았던 생존자 동생의 금방이라도 쏟아질듯한 눈망울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위령비를 세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가고 싶었습니다.

 

 

사람만이 오직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호치민에서 반레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베트남전쟁에 참가했고 부대원중에서 살아남은 5명 중의 한사람인 반레 선생님의 이름은  친구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꿈이 시인이 되고 싶었던 친구의 이름을 전쟁이 끝난 후에 본인의 이름으로 사용하면서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분께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평화란 무엇인가요?'

'지금의 전쟁은 단추를 누르는 전쟁입니다. 단추를 눌러 전쟁을 시작하고 무기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바꾸거나 조정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만이 오직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작년 <미친시간>작업을 하면서 그리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가 많이 없어졌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과연 인간이란 존재는 선한 존재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반레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인간이지만 그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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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다시 베트남으로 갑니다

 

위 사진의 왼쪽 큰나무가 학살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당산나무입니다. 이곳에 올해 '나와우리'에서 위령비 세우는 사업을 시작했고 한국에서 9명이 이 마을에서 민박(베트남은 외국인들의 민박이 금지되어 있지만 이 사업을 위해서 민박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을 하면서 마무리 공사를 도울 예정입니다.

 

이곳 퐁니 퐁넛 마을은 작년 <미친시간> 촬영 때문에 갔던 마을입니다. 한겨레21에 다루어진 학살사건 중에서 유일하게 사진자료와 한국군 자료,미군자료가 일치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야 이번엔 주로 하는 일은 촬영이지만, 다시한번 그 마을을 방문해서 작년에 인터뷰를 했던 분들도 만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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