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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한국에서도 일전의 "아키하바라 사건"을 연상시키는 묻지마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사실 이런 일은 이전에도 여러번 있었을테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 언론은 아키하바라 사건과 꽤나 연관짓는 것 같다.
사실 신자유주의의 가속화는 또 한편 "범죄 보도의 증량화"이기도 하다. 범죄는 지난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범죄에 대한 보도는 엄청나게 늘고 있다.
이런 묻지마 살인과 그에 대한 보도는 두 가지 의미에서 "사회적 기능"을 한다. 하나는 물론 공포와 불안을 조성하여 사회가 신자유주의에 더욱 복종하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살인의 이유를 사회적 배제에서 찾게 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여론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는 서로 상반되이 보이지만 사실은 별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즉, 이 살인을 낳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내가, 동시에 묻지마 살인에 희생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한켠에서 경찰국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즉자적 불안과 대자적 비판이랄까.(흠. 별로 말은 안 되는 것 같다.) 비정규직 문제 등이 보도될 때 "이런 나쁜 자본주의!"라는 비판의식과 함께 "그러니까 비정규직이 되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자기계발 해야 돼."라고 새삼 다짐하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여하간. 신자유주의란 건 지면서도 이기는 진짜 대단한 적이다. 사회운동은 이 "지면서도 이기는" 신자유주의의 불안/공포 메커니즘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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