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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학의 문제, 그리고 다음 주~!

이번 주에 우리가 다루어 본 건 해석학의 문제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들 - 성서, 역사적 자료들, 문화적 배경들, 그리고 독자 - 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아니, '사용'이 아니라 '만남'을 가질 것인지 등등을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서가 결코 일관된 정경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문서가 아니라
'다성성'을 가진 문서라는 이야기도 나누었었지요.
하여 - 일단 저는 -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서 성서 해석이란
객관적인 예수를 찾아가는 작업이 아니며, 따라서 근대 역사학을 통한 예수 연구나
교회의 주장에 입각한 예수 연구 모두가 불충분하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민중신학의 해석학은 하나의 힌트를 주는데, 당대의 오클로스(민중? 다중?)의 실천과, 예수(혹은 그 기억)와의 만남을
우리 민중의 실천과 예수(혹은 예수에 대한 오클로스의 기억)와의 만남과
접속시키고, 거기서 새로운 실천적 역능이 나온다는 게 안병무의 성서해석이었다 뭐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텍스트 해석 방법론은 사실 '탈근대'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다른 학문 분야의 해석학과도 비슷한 점이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한나씨도 "페미니즘 인식론하고 비슷하다."란 말씀을 하셨죠^^

그리고 "그런 방법은 결국 아전인수가 되지 않겠는가?"란 당연한 질문이 있었고,
저는 "니 해석도 좋고, 내 해석도 좋다."식의 상대주의가 아니라 다른 해석들의 경합과 치열한 전투가 필요하단 이야기와
지금의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성서해석(아전인수)가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넘어서기 위한 성서해석(윤리정치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타로,
왜 유독 기독교가 그토록 폭력적이었는가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어 역시나 우리 세미나 답게 이야기는 '뒷담화'로 흘러흘러갔습니당^^

다음주에는
<예수와 제국> 4, 5장을 읽습니다.
4장은 예수의 설교담화 속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Q문서)와
5장은 예수의 사역 이야기 속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마가복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호슬리는 특히 오늘날 미국 패권주의라는 상황 속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열심히 가봅시다~*^^* 시간은 역시나 목요일 7시, 세미나 B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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