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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독일 비애극의 원천, 인식비판적 서론 50-60쪽

인식비판적 서론 50-60쪽

 
 
분류적 사고와 배치되는 이념
-바로 앞 절에서 벤야민은 본질들의 다수성은 헤아릴 수 있게 제한되어 있다고 말한다.(50) 그것은 불연속성과 관련된다. 본질들은 홀로 내부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드러내는 데 적합하게끔 배당된 장소에서"(50) 찾아낼 수 있는, 즉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술영역의 형식 개념을 숙련된 방식으로 서술함으로써"(53)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 벤야민이 '이념'이라고 부르는 것은 분류적인 사고방식과 대비된다. 분류적인 사고방식이란 이를테면, 이러저러한 글들에서 공통된 어떤 비극적인 요소가 있으니 어떤 문학을 '비극'이라고 부르는 식의 귀납법을 말한다. 그러나 벤야민이 비애극Trauerspiel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그런 식의 종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철학적 이념"이다.(51) 분류적 사고, 혹은 '문학사'의 서술에서 차이와 극단들은 개념적 전개 속에서 서로 보완되어야 할 어떤 것이지만, 예술철학에서는 극단이야말로 필수적인 것이며 역사적 진행이 '잠재적인 것'이 된다. 벤야민은 어떤 공통적인 요소를 찾는 문학사적 서술방식은 결국 몇 가지 '심리학적 자료' 외에는 아무 것도 손에 쥘 수 없을 거라 단언한다. 예술철학으로서 '비애극'의 이념, 혹은 그 '형식개념의 형이상학적 내용'이란 "피가 온몸을 돌듯이 단지 내부에 있기 보다는 어떤 작용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53)
 
 
콘라트 부르다흐의 명목론Nominalismus
-사람들은 왜 귀납법으로 향하는 것일까? 그것은 구성적 이념들, 즉 '사물들 속의 보편자들'에 대한 기피증 때문이다.(53) 르네상스인이니, 고딕인이니 하는 것들은 다양한 삶에 폭력적으로 하나의 이름을 씌워버리는 것이 아닐까?(cf. 부르다흐) 벤야민은 그것이 '일반 개념들의 실체화'를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정당하지만, 플라톤적으로 본질들의 재현을 지향하는 학문론의 물음 앞에선 쓸모 없다고 단언한다.(55) 물론 그 플라톤주의는 아주 속류적으로 이해된 이데아로부터의 타락인 현실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진리는 하나의 '미'이며, 그것은 '경험세계가 스스로 이념세계에 들어가서 그 속에서 용해되는 식으로 기술하는 구상의 훈련'인 철학(42)을 통해, 즉 트락타트적 서술 속에서 이념들의 성좌를 구성하며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만이 진리의 유일한 보증자처럼 여겨지는 '수학'의 바깥에서 움직이는 학문적 서술의 언어들을 회의로부터 구원한다.(55) 르네상스나 고딕과 같은 일반 '개념'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이념들은 한다. "이념들에서는 똑같은 종류의 것이 하나로 합치된다기보다 극단적인 것이 종합에 도달하기 때문이다."(55)
 
 
사실주의(Verismus), 혼합주의, 귀납법
-"방법론이란 결코 객관적 결함에 대한 단순한 두려움에 의해 이끌려서는 안 되며, 부정적으로 제시되거나 경고의 규준으로 제시되어서는 안 된다." "방법론은 학문적 사실주의의 관점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높은 질서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학문적 사실주의는 어떤 두려움의 이론인 듯하다. 그것은 자신이 행하는 연구들의 언어에 대해 항의를 늘어놓으면서 계속적인 수정작업을 거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을 정리해줄 수 있는 방법은 직관(Anschauung)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직관도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57) 방법적 사실주의에 입각해서 예술철학을 전개할 때 그것은 연역을 시도할 때 조차도 귀납법에 의존하고 만다.(58쪽) 예술 장르들의 '연역'은 추상하는 방식과 결부된 귀납적 방식에 바탕을 두게 되는 것이다. 
 
 
크로체가 본 예술 장르
-철학적 사유는 이런 점에서 귀납도 아니며, 연역도 아니다.(58) "철학적 사유세계는 개념적 연역을 중단 없이 진행함으로써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이념 세계를 기술함으로써 전개되어 나온다." 크로체의 명목론은 무수한 예술 작품들이 어떤 공통점을 찾을 목적에서 장르들로 묶이는 것을 비판하지만 벤야민은 예술철학이 비극적인 것이나 희극적인 것의 '이념'과 같은 풍부한 이념들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규칙의 총괄개념"이 아니며, "개개의 드라마에 필적하는 구성물들, 개별 드라마와 같은 척도로 비교할 수 없는 구성물들"이다.(60) 즉 '순수한 비극', 순수한 희극'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이념들은 존속한다.  
 
 
-때문에 이렇게 규정된 예술철학적 장르는 어떤 외재적 '척도'에 따른 것이 아니게 된다. 벤야민에게 있어 비평이라는 것은 외적 척도가 아니라 내재적으로, 작품의 형식 언어가 전개해가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것은 "형식 언어의 내용을 그 형식 언어의 영향을 대가로 산출해내는 과정"이다.(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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