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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독일비애극의 탄생 81-108

바로크 시대의 비애극 이론
인식비판적 서론에서 살펴보았듯이 벤야민의 비애극 탐구는 개별 작품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예술철학적 탐구, 즉 비애극의 '원천'에 대한 서술에 있다. 그것은 '극단으로의 방향설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산만하고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적절한 개념들 속에서 종합의 요소들로서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 발견될 것'이다.(82) 그런 점에서 오히려 중요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야 말로 비애극이라는 형식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참조될 수 있다. 둘째는 바로크의 드라마 이론 역시 다른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이 시기의 드라마들은 그토록 기이하고 난삽한가? 그것은 그 당시의 시학 이론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벤야민 당시의 '바로크적인 것'의 개념은 여기에 기인하고 있었다.
 
 
사소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그러나 벤야민은 독일 드라마에서 고대 비극의 영향력,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은 미미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네덜란드의 고전주의와 예수회 드라마에서 반복해서 이끌어낸 기법적이고 소재와 관련된 진지한 지침'이 독일 드라마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85) 당시의 시학 입문서들을 보면 비극적인 효과의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했다는 것이 증명된다. 비르켄에겐 비극적 요소인 공포와 연민 대신 '신에 대한 경의와 시민들의 교화'가 비애극의 목표였다.(87) 벤야민은 새로운 비애극을 옛 비극에 연결시키는 것은 언제나 "왕가 출신의 주인공의 존재"밖에 없다고 말한다. 
 
 
비애극의 내용으로서의 역사
벤야민이 주목하는 것은 비애극이 오직 군주를, 그리고 그것으로 대표되는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민족성의 형성을 위한 열쇠는 (비극처럼) 신, 운명과의 대결이나 태곳적 과거의 현재화가 아니라 군주를 비애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 즉 군주의 덕의 확증, 군주의 악덕의 재현, 외교적인 활동의 본질에 대한 통찰, 모든 정치적인 간계들의 실행 등이다. […] 군주는 역사의 구현체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비애극은 17세기의 드라마와 역사적 사건에 공히 적용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비애극의 문체는 왜 그렇게 과장되었던가. 그것은 동시대의 전쟁과 고난에 대한 문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주권론
따라서 당대의 문학은 단지 문학으로서가 아니라 당대의 정치사회를 드러내준다. 벤야민은 17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법적인 개념, 즉 '주권' 개념을 바로크 비애극의 중심부로 가져온다. 교황권은 최종적으로 정치세계에서 패퇴하고 세속 군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 바로 이 시기였으며, 바로크의 정치철학은 오히려 근현대의 주권개념보다도 더 심오한 차원, 즉 '비상사태'에 대한 논의를 벌였다. "지배하는 자는 처음부터 전쟁이나 반란 또는 그 밖의 파국으로 인한 비상사태 발발 시 독재적인 지배권의 소유자가 되도록 정해져 있다. 이러한 설정은 반종교개혁적인 것이다."(94) 르네상스의 풍부한 삶의 감정으로부터 세속적이고 전제정치적인 것의 해방. 
 
 
이러한 긴장이 바로크의 모든 현세 강조의 특징을 이룬다. 즉 '복고'라는 역사이상에 파국의 이념이 대립해 있고, 이 대립에 맞추어 비상사태의 이론이 생겨났던 것이다. 바로크는 하나의 파국의 종말론 위에 놓여 있었으며 그것은 예술에서 '거리의 단축'으로 나타났다. "인물들이 더 고상하면 할수록 그들에 대한 칭송이 더 잘 이루어진다."(96), "군주는 행렬 속에서 단지 고대식의 승리의 영웅으로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신적인 존재들과 직접 결합되며, 그들에 의해 돌봄을 받고 칭송받는다. 따라서 그는 신격화된다."(96) 
 
 
비잔티움의 문헌, 헤롯 드라마
비잔틴 군주제의 문헌들이나 헤롯 이야기는 특히 군주 혹은 폭군을 다루는 데 있어 빈번하게 차용되었다. 그들은 심지어 악행을 저지를 때조차도 경이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벤야민은 통상적인 사고방식으로 폭군 드라마와 공포는 '악한 자들'에게, 순교자 극과 연민은 '선한 자들'에게 걸맞는 것이지만 사실 이 두 가지는 엄격하게 서로 상보적인 형식이라고 말한다. 곧 폭군과 순교자는 필연적으로 극단적일 수밖에 없는 군주의 특징들인 것이다. 헤롯 왕은 화산처럼 광기를 분출하며 자신과 조신들을 파멸에 빠뜨리는 자이다. "지배자가 극도로 도취된 상태에서 권력을 펼칠 때, 사람들은 그 지배자에게서 역사의 현현을 그리고 동시에 역사의 변전을 정지시키는 심급을 인식한다." 그러나 또한 그는 "신이 그에게 부여한 무제한적이고 위계적인 위엄이 불러들인 알력의 희생자로서 가련한 인간상태로 추락한다."
 
 
우유부단
권력과 지배능력 사이의 이 대립이 비애극에 고유한 특성, 즉 '결단하는 지점에서 나타나는 폭군의 무능력'을 낳았다. 비상사태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군주는 어떤 결단을 내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다. 벤야민은 "그들을 규정하는 것은 사유가 아니라 동요하는 육체적 충동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벤야민의 주권자에 대한 철학은 곧장 <폭력비판을 위하여>의 '발현'으로서의 폭력의 논의와 이어지는 듯 하다. 즉, 주권자는 예외를 결정함으로써 정상을 보증하지 못하며, 오히려 "법정립은 목적한 것을 법으로서 투입하는 순간 폭력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법 자체를 정립적인 폭력으로 만드는 것이 된다. 이것을 통해 벤야민은 슈미트의 주권이론이 결국 “상례화된 비상사태”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김강기명, "역사를 구원하는 방법에 대하여" 참조.)
 
<<<아감벤의 독해를 참고해보자. 아감벤은 벤야민이 슈미트의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를 "배제하는 자"로 바꿈으로써,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주권자는 그것을 법질서 안에 포섭할 수 없으며, 법질서 바깥에 남겨놓는 자로 제시했음을 지적한다. 더 나아가 벤야민은 주권자의 '비결정'의 이론을 주조한다. 역설적이게도 벤야민은 주권자의 권력을 그것의 집행에서 분리시키며, 바로크의 주권자가 구성상 결정 불가능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예외상태는 슈미트에게서와 같은 '결정'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파국'의 영역으로 치닫는다.(아감벤, <예외상태> 3장 공백을 둘러싼 거인들의 싸움 참조)>>>
 
 
순교자로서의 폭군, 폭군으로서의 순교자
벤야민은 폭군의 무력함과 타락상이 그의 신성불가침한 권력에 대한 시대의 확신과 모순관계에 놓인다는 점이 우리를 매혹시킨다고 말한다. 그는 지배자로서 역사 속에 사는 인간의 이름으로 파멸하며, 그것은 도덕적인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가 왕으로 인류의 이름으로 고통을 당했듯이 바로크 작가들의 관점을 따르면 군주 역시 그러하다. 결국 순교자 이야기와 폭군이야기는 그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순교자 이야기에서 폭군 드라마의 요소를 발견하기는 후러씬 어렵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 순교자가 매우 기이한, 즉 탈종교적인 이미지를 하고 있엇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순교자는 내재성을 벗어나지 못한다."(107) 즉 순교자는 하나의 '스토아주의'자로서, '비상사태를 복원하는 자'로서, '요동치는 역사적 사건의 자리에 불굴의 자연법 체제를 정립하는 것을 유토피아로 지향하는 자로서' 나타난다. 벤야민은 특히 여성 폭군, 곧 육체적으로도 순결한 여왕이 순교자 드라마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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