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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창당식과 종교의 탄생

출처: 오마이뉴스 남소연

 

 

어느 창당식과 종교의 탄생

[당비의생각]   2010/01/21 00:20

김강기명 | 신학연구자

 

 

‘국민참여당’의 ‘창당식’을 보고 있자니, 하나의 종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본인 스스로 엘리트 성직자이기도 한 이재정 대표의 “우리는 노무현 그분을 살려내기 위해서 이 자리에서 새 출발을 한다”는 말부터, 손에 손에 든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들, ‘시민 참여의 민주주의’라는 단순하고 선명한 노무현적 구호, 열광적인 연설과 환호까지, 그 공간은 노무현교(敎)가 웅대하게 출발하는 제의의 공간이었으며, ‘250만 당원’을 모집하기 위한 커다란 선교 동원 집회의 장이었다.

 

불의한 권력에 핍박당하고, 이내 자살을 선택한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하는 시민’들의 환호 속에 다시 살아난 것처럼 보였다. 그는 흑암의 권세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자신의 몸을 던져 참여와 시민주권, 지역감정 해소와 한반도 평화 번영이라는 복음을 계시하였으며, 그것은 이내 국민참여당으로 부활한 것이다. ‘시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부활을 기념하며, 그가 남긴 ‘사도’들에게 박수와 환호성으로 기름 부어주었다. 이명박의 시대에 이 놀라운 시민종교의 탄생은 하나의 혁명적 에너지로 넘쳐나는 듯하다. 다만 ‘노무현 신앙’과 ‘참여 주권’이라는 아포리아를 남긴 채.

 

이 아포리아에 대해 해명하기 전에 ‘종교’에 대한 이야기로 우회해보자. 국민참여당의 탄생은 교회의 탄생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예수의 죽음이었는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예수 죽음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반란자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그는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십자가형을 받은 반란자였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결코 애도될 수 없는 죽음이었다. 성서의 전승을 따르면 예수의 추종자들마저도 다 도망가버린 채, 오직 소수의 여성들만이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그런데 무덤에 다녀온 여인들의 입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그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유언비어의 형태로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수도 예루살렘에서, 또 ‘내부 식민지’인 갈릴리에서 생전의 예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내 로마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의 말과 행동 속에서 예수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 이가 되었다. 이것이 교회의 탄생이었다.

 

 

부활? 노무현의 죽음은 예수의 죽음이 아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주류 교회의 역사 해석과는 상반된 이야기다. 여기서 참고한 것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예수 사건의 전승 모체』라는 글이다. 내게는 이런 해석이 교회의 주류 해석보다 훨씬 더 역사적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이 이야기에서 핵심은 예수의 죽음이 애도 받지 못한 저항자의 죽음이었으며, 그래서 오직 민중의 유언비어를 통해서만 퍼져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유언비어를 통해 탄생한 「마가복음」이라는 글은 당시 이미 제도화되어가던 사도 중심의 교회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내장하고 있다. 실제로 「마가복음」 안에는 그 당시 교회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예수의 제자(사도)’ 그룹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예수 이야기가 교회의 주류적인 역사 해석으로 닫힐 수 없도록 만드는 항구적인 외부를 형성한다. 교회는 하나일 수 없었다. 그의 죽음은 애도될 수 없는 죽음이었기에. 그는 무수한 신체들로 부활하였으며, 이것이 예수가 중세와 근대 기독교 유럽의 지배 속에서도 끊임없이 ‘억눌린 자들의 희망’으로 민중에 의해 호출될 수 있었던 근원이었다. 농민 혁명 속에서, 남미의 가난한 자들의 투쟁 속에서, 전태일의 죽음 속에서 예수는 계속 호출되었다. 어쩌면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유령들』 속에서 이야기하는 유령-마르크스는 예수에게 더 들어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말로 이음매가 어긋난 시간 속에서 계속 소환되는 유령처럼 우리 주위를 떠돈다.

 

그렇다면 이재정 대표의 바람과는 달리 국민참여당에 더 어울리는 종교적 이미지는 카이사르교(敎)일 것이다. 그는 공화국의 최고지도자였다. 그러나 구세력이 그를 암살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로마를 장악한 것은 카이사르의 부관 안토니우스였다. 그는 성대한 장례식에서 감동적인 연설로 카이사르를 공화국의 수호자로 만들었으며, 짧은 내전 끝에 그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는 제1시민(황제)이 되면서 그를 신으로 격상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은 사실상 구세력의 사법 살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성대하게 애도되었고, 그 애도의 집합의례를 통해 ‘참여시민’이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돌아온다. 2002년 그것이 ‘미래’였다면, 이제는 과거에 기댄 하나의 의고적 이미지로써 종교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민참여당’이라는 이름의 ‘동원종교’가 탄생한다. ‘참여시민’의 정당이 (노무현의 적자) ‘유시민’ 없이는 기능할 수 없는 정당이 되는 이 아이러니, 혹은 아포리아.

 

 

‘종교’를 버리고 ‘정치’를 제시하라

 

물론 이것은 ‘국민 참여’를 곧 ‘자신에 대한 지지’와 다를 것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지난 ‘참여정부’ 5년의 반복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노무현의 죽음과 부활’ 담론과 연결되면서 더욱 악랄한 반복이 되고 만다. 이 종교 속에서 노무현 5년에 대한 좌파, 혹은 ‘대추리’, ‘용산’으로 대표되는 민중들의 비판은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 더욱 공격당하고 배제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선거연합이나 MB대연합을 스스로 침식하게 될 것이다.  

 

국민참여당의 정치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종교성과 과감한 단절이 필요하다. 물론 나는 정치에서 종교적인 것, 혹은 신학적인 것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정치관에 동의하지 않는다.(필자의 글 http://dangbi.tistory.com/15 참조) 이를테면 앞서 설명했던 예수 부활(의 전승자들) 이야기는 그들을 배제한 채 성립된 폴리스를 뒤흔들며 난입하는 ‘정치’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한해 우리는 용산의 희생자들과 쌍용차의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이 ‘정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무현의 죽음은 예수의 죽음이 아니며 국민참여당의 정치는 그런 ‘정치’가 아니다.

 

게다가 카이사르교(敎)의 전략 역시 국민참여당이 취할만한 좋은 전략이 아니다. 무엇보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세력은 단지 구세력이기만 한 게 아니라 현 정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국민참여당은 가진 것이 없다. ‘노무현의 부활’만으로는 결코 250만 당원을 끌어 모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선택이 성공하려면 지난 5년의 어떤 것을 계승하면서도, 과감하게 어떤 것-무엇보다 ‘종교’를-을 버림으로써 진정한 ‘미래’를 ‘참여시민’들에게 제시하는 길 밖에 없다. 그래야 그들이 원하는 ‘연합’도 가능해질 것이다.

 

2010.1.21 ⓒ 김강기명

 

김강기명 : 성공회대 석사, 심원청년신학포럼 기획위원. 경쟁사회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진학한 신학대학에서 정작 발견한 건 세상보다 더 세상같은 종교판이었다. 그때부터 신학 너머의 신학을 꿈꾸며 스피노자와 안병무를 스승 삼아 학문과 사회의 이곳저곳을 해매고 있다. 서울 북촌에서 고냥마님 세 분, 인간마님 한 분을 모시고 살고 있다. osr199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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