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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

오늘(3월 7일) 해고된 울산과학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의 농성장이 털렸다.

나이먹은 청소아줌마들이 알몸으로 저항했지만

구사대나 다름없는 교직원노조원들이 아랑곳없이 밀어버렸다.

 

저녁 지역 규탄집회에 200명정도가 모였다.

참가자들 모두 울분에 차있었다.

과학대 지부장동지가 울면서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눈이 빨게졌다.

 

집회 끝나고

한 아줌마가 농성장에 찾아온 자식을 부둥켜 안으며 운다.

주변의 사람들은 담배를 피거나 고개를 들지 못한다.

 

집회가 끝나고 잠시 후

나, 지역본부 상근자, 미디어 활동가가

오늘 찍은 사진과 영상을 올리기위해 가까운 사무실로 갔다.

 

방금 전 찍은 사진을 보며 영상을 보며

세명 모두 다시 훌쩍인다.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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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펄잼 듣는데 눈물이 글썽거리네

정말 간만에 펄잼 앨범을 듣는데

급 눈물 글썽거림......

 

후아

 

it's my blood~~~~~~

 

크하학~~~

rock never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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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년 정리를 위한 글쓰기

2004년 3월부터 시작한 상근생활이 올해로 막을 내린다.

3년동안 버텨온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낸다.

지금은 시원한 마음이 더 크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가 바뀌는 것에 별 감흥이 없는 편인데,

06년이 3년의 생활이 마감되는 해인지 그 끝이 새롭기만 하다.

 

이런저런 자잘한 글쓰기로 올해를 정리해야 겠다.

3년 평가 이런 것을 쓰면 좋겠지만, 나의 상태가 그런 것을 정리하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그런 글은 워낙 꼬여있는 것이 많아 어렵기만 하다.

 

뭐 두서없고 별 내용없는 것들일지라도,

일단 목록을 정리하고 글쓰기를 천천히 내년 초까지 해야 겠다.

 

 

 

 

나의 생활주기에 대한 이야기

- 휴일을 집에서 쉬지 못했을 때와 쉬었을 때는 그 주의 생활이 달랐다. 또 서울을 자주 다녀올 때 그 주의 생활은 뭉게져 있을 때가 많았다. 어떤 새로운 일을 할 때 그 힘이 생활을 강제하다가 급저하하는 주기도 일정주기가 있었고, 잠수조차 일정패턴이 있었다.

 

외모(남성성?)

- 좀 생긴 얼국덕에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리고 외양을 가꾸는 편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남자다워졌네' 혹은 '그거 여자꺼 아니야'라는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반응들.

 

사진

- SLR을 만진 것이 고1때부터니까 햇수로 13년정도다. 사진이 나에게 주었던 쾌감과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변한 것. 나만의 사진과 보도용 사진, 그 중간정도 사진들의 차이와 유사점.

 

몸짓

- 몸짓을 하면서 운동을 시작했었고, 요즘 다시 시작하고 있다. 몸을 도구로 사용하는 선동과 몸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몸짓(춤).

 

3년동안 함께 한 그들

- 그들과 호흡했던 느낌들

 

나의 가장 큰 힘인 그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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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과 폭력투쟁

에밀리오님의 [소모적인 시위를 왜 하냐구요?] 에 관련된 글.


12월 1일 전국에서 비정규악법 규탄집회가 있었을 것이고

울산에서도 역시 진행되었다.

 

오늘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시청 타격투쟁이 있었다.

 

 

이것이 폭력시위대의 흔적이다.

우리의 말로 하면 '성난 노동자들의 실천투쟁'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넌센스였다.

(물리적 역량과 당시 붙은 인간들의 열기를 보아)

필히 열린우리당사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안 들어가고 정리하고 가더라.

지도부는 그 자리를 정리했고,

흥분한 몇몇 사람의 '광기'만 남았을 뿐이었다.

 

끝까지 밀고 들어가 열린우리당에 격렬하게 복수를 하던지,

걍 걷기대회를 하던지

 

오늘 전경의 대오는 수비대형이었다.

(시청은 완전 전투대형이라 전경들과 직접적으로 붙지 않았다)

이럴때는 아무리 우리편이지만,

전경만 건드리고 가는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을 보면

'폭력적 난동'이라 표현하고 싶다.

 

당시 열심히 싸운 사람을 뭐라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를 '퍼포먼스'로 정리를 시도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전경만 건드리는 '퍼포먼스'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경이 막고 있는 우리의 타격장소를 제대로 폭파시킬 폭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폭력 투쟁이 진정 정당화될 수 있다.

 

 

 

 

 

물리적 폭력이 수반된 투쟁이 진행될 때

사진기를 들고 있으면 그 현장이 객관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괴롭다)

 

오늘 전경대오에서 이탈된 전경놈이 우리 편에게 다구리 당하는 것을 보고 구출했다.

(웬만하면 안 그러는데, 고놈 몸이 지대로 상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리

그리고 무력화된 전경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반대입장이도 하고

그놈들은 일종의 포로라고. 포로에게는 비폭력으로)

 

상황정리하니, 그 놈이 하는 말

'내가 뭔 잘못을 했는데, 왜 맞아야 하는거죠?'

 

할 말이 없었다.

'비정규법이 개악이 되고, 그러면 노동자민중은 다 죽는다.

그 주범이 열린우리당인데, 그 놈들을 공격하는데 느그들이 있었다.

맞아서 아프겠지만, 그놈들을 공격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안나오더라.

 

왜?

전경애들만 건드리고 나오는 '퍼포먼스'였으니까.

 

그리고 나서 격렬한 투쟁이 진행되는 곳에서

'열우당으로 들어갑시다! 이곳에서 뭐합니까! 뚫고 가자고요! 갈 수 있어요!'라고 짓거렸다.

그 말에 호응한 사람은 정확히 열명이 넘지 않았다.

그나마도 대오지도자(?)들에게 정리되고 말았다.

 

퍼포먼스는 그만하자.

처절한 폭력을 행사하던지

처절하게 깨지던지.

 

 

 

 

피에쑤

에밀리오님의 글을 반론하기 위해서 쓴 것은 아닙니다.

님의 글에 전반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글을 읽고 오늘 있었던 투쟁의 무기력함이 생각나서 쓴 것입니다.

그래서 (연관성이 적은 것같아서) 트랙백을 걸까 말까 하다

요래 사족을 달고 걸어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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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분노에 관한... - 이소라 3집

1998년에 발매한 이소라의 3집

흥행한

'믿음'이 있는 앨범

 

그러나 흥행한 곡 '믿음'이라는 단어와 배반적인 분위기와 가사의 앨범

말 그대로 슬픔과 분노에 관한 앨범

 

재즈보컬그룹 '낯선사람들'에 있었던 이라고 믿기지 않는 곡들

감성에 충실한 락앨범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믿음'을 부르다

울음을 터트린 그녀

 

그만큼 그녀에게 아픔을 표현하고 다스린 앨범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충분히 느껴지는 앨범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락'이라는 '장르'를 택한 그녀의 앨범

 

얼치기 락커들의 앨범보다는

'락'의 기운이 충만한 앨범

 

3집앨범활동 이후

이런저런 요청에도 그녀가 다시는 이 앨범의 곡들을 부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 앨범을 만들 때

이 앨범으로 활동할 때

그녀는 얼마나 아프며 스스로를 치유했을까

 

지금의 이소라는 나에게 그냥그런 가수이지만

그녀의 아픔을 깊이 뱉어낸 이 앨범은

지금 다시 들으면 생소하지만

그만큼 아름답다

 

 

 

 

 

 

 

그녀의 3집에 있는 노래

 

 

나의 일

 

만나러 가기 재미있었나?
불안하게도

사랑에 독이 좀 있었나?
예상한대로
나의 괴로움 너의 그리움
나의 버거움 너의 외로움
이제는 내가 전과 달라
널 더 느낄 수 없어
지루함만 갖고 있는 날
정말 미안 너 날 나줘
정말 미안 너 날 나줘

 

너랑은 하기 좋았었나?
참 이상하게도
전엔 할말이 많았었나?
고단하게도
나의 괴로움 너의 그리움
나의 버거움 너의 외로움
이제는 내가 전과 달라
난 더 맞출 수 없어
미안함만 갖고 있는 나
정말 미안 너 날 나줘
정말 미안 너 날 나놔


 

뭘 위하는 일인지 서로를 모른체
늘 같은 전화 난 침울해
이건 피곤한 미래

 

점점 더 많이 바래
놓아 주기를 나는 원해
점점 너 왜 이래?
제발 잊어 주기를 원해
먼저 내가 얘기해
일이 되면 다 피곤해
먼저 니가 좀 피해
널 보기도 참 미안해

점점 더 많이 바래
놓아 주기를 나는 원해
점점 너 왜 이래?
제발 잊어 주기를 원해
먼저 내가 얘기해
일이 되면 다 피곤해
먼저 니가 좀 피해
널 보기도 참 미안해

 

 

 

Praise

 

구원을 말하는 성자의 목소리
이제는 그들을 버릴 때다
길들여지는건 관계의 굴레
나는 굴할 수 없다
허기진 나의 미래

 

자애로운 웃음
그 뒤에 가려진 속임과 훼방에
난 지금 약하나
내가 나를 만든다

죽음을 건 이 삶에서 날 지켜갈수 있도록

누구의 말도 개의치 않아
난 혼자다 내가 나를 벌한다
편한 도움도 필요치 않아
난 변한다 세상에 나를 바친다

 

반신반의에 후회는 없다
아직은 불안하나
내 믿음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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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좋은 유년의 기억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

수능 몇일전 아파서 조퇴한 것외에는

만년개근을 해서 개근상이 세장이나 있는

나에게

기분좋은 기억은

 

일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느끼는 늦은 아침의 햇살과

그 햇살을 느끼며 잠이 들깬 상태에서 보는

일요일 아침 프로그램

 

일요 아침드라마와 시시껄렁한 프로그램을 보던 그 여유

누나들과 함께 먹던 식사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집에서 놀면서 보냈던 그 나른했던 시간들

 

시간이 흘러감에

다시는 누릴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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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사진 - 수지와 함께


 

 

 

1년하고도 한달 전 사진

사진 정리하다 간만에 본 사진

 

수지랑 같이 살 때는 저러고 잘 지냈는데

저러고 있다가 안 졸리거나 심심하거나 사람이 들어오면

내 가슴을 무자비하게 밟으면서 뛰쳐나갔는데

 

아고야

보고시프다


 

 

그리고 예쁜 수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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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핑계일랑 버리고

심장에 천천히 시동을 거는거야

 

하나

하나

 

그 심장소리가

다리와 몸을 움직이게 할꺼야

 

심장소리가

약해질 때는

다리와 몸을 움직여서

심장이

다시 뛰게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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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칭찬 반, 질책 반

진보넷에 들어오니 팝업창이 뜬다.

진보네에게 선물하란다.

뭔지 궁금해서

클릭!!!

 

후원회원 및 정회원 가입신청서가 나왔다.

이거 낚인거야??

 

근디, 진보넷 후원회원 가입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말그대로 '귀차니즘'으로

고 생각이 1년 까까이  머리속에 좁쌀만치름 구석에 박혀있기만 했다.

 

고민의 찰라도 없이

바로 주악 써내려가서

후원회원 가입

 

그래서 스스로에게

 

후원회원 가입해서

칭찬 반

이제서야 가입해서

질책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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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요즘들어 변해가는 사람들을 보면

불안하다

 

주변을 보며

나를 보며

 

이 불안함은

나인지 그대들인지

 

이 불안함은

변화인지

변신인지

변절인지

도퇴인지

 

이 불안함은

변하는 것인지

변해지는 것인지

 

그래도

고속도로 쾌속질주의 인생이 아님에

감사함과 위안을 느낀다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젊다는 증거이기에

 

불안함을 불안함 자체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불안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에

 

 

 

 

 

 

 

 

 

 

 

 

 

 

 

 

먼 저편
- 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들에게 -

체게바라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
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
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
그 맹세가 하나 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는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 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우리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줌도 안 되는 독재와 제국주의의의 착취자들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산은 너무 넓구나
밤하늘의 별들은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
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
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

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박노해

 

나면서부터인가
노동자가 된 후부터인가
내 영혼은 불안하다.

새벽잠을 깨면 또다시 시작될 하루의 노동.
거대한 기계의 매정한 회전
주임놈의 차가운 낯짝이 어둠처럼 덮쳐오고
아마도 내가 자살한다면 새벽일 거야.

잔업 끝난 늦은 귀가길
산다는 것,노동자로 산다는 것의
깊은 불안이 또 다시 나를 감싼다.
나를 감싼다.

화창한 일요일 가족들과 오붓한
저녁상의 웃음속에서도
보장 없는 내일에 짙은 불안이 엄습해 온다.

잔업 끝난 늦은 귀가길
산다는 것,노동자로 산다는 것의
깊은 불안이 또 다시 나를 감싼다.
나를 감싼다.

화창한 일요일 가족들과 오붓한
저녁상의 웃음속에서도
보장 없는 내일에 짙은 불안이 엄습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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