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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의 기륭. 야만의 시간과 공간

 

#이틀 동안 기륭전자 앞에 있다가 집에 들어갔다.

집안의 따뜻함이 느껴지자 긴장이 풀려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틀 동안 야만의 공간 속에 있었던 터라 따뜻한 집이 어색하기만 했다.

야수의 시간이었던 기륭전자 앞과 따뜻한 집.


두 공간에 있던 나는 한 사람임이 분명한 데

도저히 연결되지 않는다.

 

 

 

티비를 켜니 경찰의 날 행사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이야기한다.

“불법 폭력수단을 동원해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풍조는 없어져야 한다”

 


혼란해지는 머릿속을 뒤로 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21일 오전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가 기륭전자 앞을 찾아왔다.

햇살이 강해 차양막을 골리앗에 올리려 했으나,

경찰은 이를 거부했다.

 


차안에서 심상정 대표가 이야기한다.

“요즘 경찰은 국회의원도 무시해.

(민노당) 국회의원이 처음 현장을 찾을 때는 긴장했지만

쟤네들은 원래 그래 하면서, 넘기는 거지“

 


20일 이정희, 홍희덕 국회의원이 기륭현장을 찾아

지휘관을 찾으며 폭력사태에 대해 물으려 했지만,

지휘관들은 도망치듯 사라지면서

국회의원마저도 쌩깠었다.

 


이어지는 심 대표의 이야기

“뺏지도 없는 진보신당이야 당연하고 민노당도 그렇다 치고

이제는 민주당도 무시당해.

그렇게 욕먹어도 대통령이 지켜주니 충성하는 거지”

 


#20일 격렬한 전투가 진행될 때

공중파 3사의 카메라 모두 왔다.

ENG카메라, 보조카메라, 작가 및 취재기자들

방송 3사 취재인원만 15명 정도는 있었다.

 


그런데 기륭 구사대는 이들에게도 노골적으로 취재 방해를 했다.

ENG카메라가 조명을 키고 촬영을 하려하면

라이트를 카메라에 쏴 촬영을 못하게 한다.

카메라 들이대면 골판지를 들어 올려 시야를 막는다.

 


21일 취재 중인 공중파 기자가 혼잣말을 뱉었다.

“와... 해도 해도 너무 하네. 너무 못됐다”

 


공중파에게 이 정도니 ‘진보 인터넷 찌라시’에게는...

 


20일 구사대에게 끌려갈 뻔 했는데

사람들이 잡아줘 봉변은 면했다.

 


#20일 경찰이 처음 기륭분회 집회를 ‘찾아 왔을 때’는 아무런 방송도 없었다.

그리고 기륭공장 안에서 대기하기 시작하며

“불법집회니 해산하라”는 방송을 했다.

 


공장안에 경찰, 경찰 앞에 구사대, 구사대 앞에 용역

마치 군대에서 배운 진지 공략 전술을 보는 것 같다.

자신의 대형을 지키는 진지병력

중간 다리를 역할을 하는 기동병력

적의 진지를 공격하는 공격병력

 


‘좌빨, 불순 세력은 적’이라는 새삼스럽지 않은 규정을

대형만으로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진지함락 전투.

 


경찰은 기륭전자 공장을 사수하고

구사대는 농락하고

용역들은 돌진했다.

그리고 골리앗 주변을 경찰이 확보한다.

 


21일 골리앗의 철거로

이틀 동안 이뤄진 경찰, 구사대, 용역의 합동작전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기륭네티즌연대 지금은 ‘함께 맞는 비’의 ‘씨요 or 요나’가

골리앗이 철거된 후 이야기했다.

“기륭문제는 더 이상 기륭노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륭노사와의 문제, 정부와 기륭 노동자의 문제다.

기륭의 폭력과 이를 묵과하는 정권이 있다.

국정원의 개입을 보라. 경총의 개입을 보라”

 


#김소연 분회장이 아시바를 쌓고

그 위에서 농성한 게 불법일지 모른다.

하지만 경찰이 연행한 뒤 용역들에게 넘긴 후

용역이 린치하는 것을 묵인하는 것도 불법이다.

 


기륭분회가 기륭전자의 이사를 막기 위해

차량의 출입을 막은 것이 불법일지 모른다.

하지만 용역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불법이다.

 


#20일 기륭전자 기획이사가 떠들기 시작했다.

“5년 전 한 달에 120만원 가져가면서

최저임금에 10원 더 줬데요.

이게 말이 되요?”

말 된다.

 


정치근무하면 급여가 대략 6~70만원이었을 것이고

잔업 특근에 1.5배 급여와 약간의 수당과 상여금을 합치면

월 120만원 가능하다. 열라 뺑뺑이 돌았을 때 가능하다.

생산직 생활을 조금이라도 경험했다면

계산기 안돌려도 대충 나오는 계산이다.

 


이게 말이 안 된다면,

기륭은 잔업특근에 1.5배를 안 쳐줬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기획이사의 말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해고될까봐 회사를 나왔데요.

바지가 다 졌었는데 바지만 갈아입고 다시 일했데요.

이게 말이 되요?”

말 된다.

 


관리자들은 이럴 때 직언으로 지시하지 않는다. 눈치를 준다.

그러면 키퍼, 조장, 반장이 눈치와 함께 일하자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면 충성파 직원들은 직언으로 갈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정규직으로 생산직 경험을 조금만 했다면

다 아는 사실이다.

 


기획이사는 기륭전자에 오랜 시간 몸담았을지 모르지만,

기륭전자에서 일어나는 비정규직의 생활을 모른다.

기획이사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리적으로 같은 시공간에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다른 시공간에 있었던 것이다.

 


21일 골리앗을 철거할 때

기륭전자 공장 안에서 녹음한 테입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사회적 약자를 가장해....”

반은 옳고 반은 그르다.

 


그래, 찍소리도 못하고 사는 더한 처지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비하면 약자가 아닐 지 모르지.

하지만 구걸이 아니라 권리를 요구하고 인간선언을 하기 시작하면

쏟아지는 탄압은 그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 돌아온다.

 


#이렇게 종합을 해 보니

기륭의 이틀과 따뜻한 집 사이의 충돌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기륭전자의 비정규직과 이들과 연대했던 사람들과

고공농성을 하는 하이텍, 콜트 노동자와

고시원에서 살해당한 이주 노동자들

 


기륭전자 자본과 이들 편에 선 기륭전자 직원들과

또 다른 자본과 이들 편에 선 사람들과

경찰의 날을 맞이한 경찰과 이명박 대통령

 


모두가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땅에 21일을 같이 보내고 있었지만

이 둘 사이는 다른 사회적 시공간이 존재했던 것이다.

 


#김소연 분회장이 골리앗에서 끌려나오면서 절규했다.

“죽으려는 데 왜! 사람같이 살려는 데 왜!”

 


한 쪽의 사람들은 사람임을 알면 죽어간다.

한 쪽의 사람들은 사람의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야만의 시간 2008년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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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악마야~~~ 크롱!!!

네 살 먹은 조카가 몇 일 전 노트북 위에서

신나게 콩콩 뛰었다.

그리고 그 노트북은 장렬히 전사하셨다.

 

집에서 사용하는 유일한 컴인테

20여만원을 주고 수리를 하느니

차라리 컴을 새로 사는게 날 듯 싶다.

 

줄줄 세는 통장잔고에

기어이 카운터 펀치가 날라온 것이다.

 

크하아아악~~~~~~

 

시도 때도 없이 때리고

툭하면 '야~~~'라며 고성과 반말을 일삼으며

지 멋대로 안 되면

거짓 울음 일삼는

 

 

어린이가 아니라 악마다!!!!

악마!!!!!!!!!

 

크하아아악

들끓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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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을 기억하라

작년 봄이었다.

중공업 한 하청노동자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와 나이가 같은 친구였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가세가 기울자 그 친구는 급하게 알바하듯 일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압착 사고로 즉사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와 나이가 같은 젊은 친구가

어처구니 없이 죽었다는 게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중공업 근처에 있는

그 친구의 영안실이 있는 병원 근처에 있는

농성장에서 잠을 잔 날

바람이 엄청나게 불던 날

바람에 펄럭이던 천막소리가 엄청 시끄럽던 날

 

꿈이었는지

깨어있었는지

비몽사몽인지

모르겠지만

 

바람은 여전히 미친듯이 불었지만

주변이 조용해지면서

내 옆에서 흐릿하게 한 친구가 서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을 했다

 

'내 죽음을 기억하라'

'내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사라졌다.

그러자 시끄럽게 펄럭이던 천막소리가 다시 들렸다.

꿈인지 아닌지 알 수 없던 그 날의 기억은

한 동안 지속됐다.

 

갑자기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두렵다.

또 다시 이런 악몽에 시달리기 싫다.

 

살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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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빨이 다 됐나?

아직도 29일 시청 부근에서 맞은 부위가 욱신 욱신...

뻣어서 자고 있었더니

찟어진 데서 난 피가 눈으로 들어가 있더라

아고고

 

지금까지 아무리 격한 집회를 가도

큰 부상 연행 한 번 안 당한 최강 운빨이었데...

 

그날은 처음부터 운빨 정말 안 살더라고.

 

삼청동에서 소화기 직격으로  맞고

뒤에서 전경에게 뿌린 간장에 맞고

사진기 비때문에 전사하시고

방패에 정확하게 얼굴 얻어맞고

 

하이고...

 

최강 운빨이라 자부했었는데

 

근데 맞은 것도 억울한 게

정말 승질나는 건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거

 

서울시의회 앞에

사진기가 나밖에 없었다고

누워서 연좌하던 시민들을

전경애들이 찍으면서 전진하는데

그 때 생각난 건 오직 하나

'이거 어떻게 든 찍어야 해'

그러다 무방비로 제대로 맞았지.. 쩝

 

어떻게 든 한 방이라도 찍었어야 하는데

전사하신 사진기가 밉다.

전경도 밉다.

물도 밉다.

 

내 얼굴도 밉다.

흐어어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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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어어엉

오늘 꿈에서 별 일도 아닌데

콧물까지 흘리면서 펑펑 울었다.

꿈이기는 했지만 펑펑 울고나니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진정 울 일이 생겨버렸다.

 

흐어어엉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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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 존재하지 않는 운동권들, 뭥미?...

#21일 촛불집회 또 다시 시민들이 연행됐다.
폭력적으로 시민들이 연행되가는 것을 목격한 시민들은 분노했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리고 극렬하게 저항한 시민들이 또 다시 연행됐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경찰과 시민들의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5월 25일 거리로 촛불들이 거리로 쏟아지자 연행은 곧바로 시작됐고
5월 31일 물대포가 나왔고
6월 7일 마지막 연행 후 잠잠하다가

21일 다시 연행이 시작됐다. 그 사이 경찰의 진압방식은 진화했다.

 

5월 31일까지 경찰은 (방패로 찍어 누르는) 기존 집회 대응방식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충돌이 극점에 다다른 31일 이후 경찰은 비난여론에 휩쌓였고
진압방식을 바꾸었다.

 

잠시 동안 힘빼기 혹은 무대응
그리고 72시간 릴레이집회가 있던 7일 버스로 쳐놓은 경찰의 저지선에
저항하는 시민을 연행했다.

 

그리고 이어진 비폭력 논쟁
10일 이후 이어진 촛불 소강상태
마침내 21일 48시간 비상국민행동이 시작되자 연행이 다시 시작됐다.

 

21일 경찰은 체포조 혹은 직업중대를 정복을 착용시켰다.
(추측이지만 하는 행동과 중대단위로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는 체포조가 확실하다)
그리고 31일 이후 관례(새벽까지 참다가 진압을 시작하는)를 깨고
새벽이 되기 전 판을 정리했다.

 

왜?
21일 낮 추가협상결과 발표를 앞두고
반격 드라이브를 걸기위해서
그리고 맞불집회 등
보수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그래서?
야들한 이미지로 포장된 경찰이
(하이바 쓰고 방패를 든 무장한 전경이 아니라 정복입은 경찰이)
촛불을 요리했다.

 

21일이 기존과 다른 것은 전면적 도발을 경찰이 했다는 것이다.
촛불이 저지선을 뚫고 진격하려는 시도도 없었고
또한 (돌발적 상황에 의한 진압이 아닌) 완전 진압작전이
0시에서 3시 사이에 이뤄졌다는 것때문이다.

 

경찰의 대응은 진화하고 있다.
그러면 촛불의 대응은?
풍자(노래해, 온수, 물총 등)로 진화하다가
비폭력 논쟁이 유발된 7일 이후 주춤하고 있다.

 

#연행된 시민 중에 소위 선수들은 거의 없다.
선수들은 그 때 뭐하고 있었을까?

 

대부분이 자리를 떳고 있어도 판을 읽으며 뒤로 빠진거다.

 

시민들이 연행된 과정을 보면
강제진압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연행이 이뤄진다.

 

뭘까?
생면부지의 사람이지만 경찰에게 당하는 것을 보고
'동지애'가 발생해 격렬하게 저항하다 연행되는 거다.
'동지애'때문에

 

그나마 있던 선수들은 판을 읽으며 뒤로 빠졌고
소위 '쌩대중'은 '동지애'때문에 경찰에 밟혔다.

 

#'깃발'과 '조끼'를 허용하면서
쌩대중은 선수들에게 조금씩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다.
(미장갑차 살인사건 때처럼 깃발논쟁은 있지도 않았다.)

 

선수들은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어쩔줄 몰라하거나 뒤에만 앉아있다.
시민권을 획득한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제외하고.
(민노당의 강기갑과 진보신당의 진중권이 대표적이 예일 듯)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선수들은 뭘하고 있지?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지금 당장 시민권을 획득한 선수들처럼
쌩대중들에게 직접적 언어로 정치활동을 하기 어렵다.
그러면 그 선수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거리에서 다져진 전투실력!

 

그런데 그 동안 촛불전투할 때 어디있었니?

 

#경찰은 진화하고 있다.
쌩대중은 조금씩 선수들에게 시민권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 선수들은 시민권 획득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왜 가장 잘 할 수 있는 길거리 정치에서
즉 길거리 전투에서조차 빠지는거냐

 

정말 비폭력이 좋은거냐?
그럼 할 말 없다.
정말 전투능력조차 상실한 거냐?
그럼 할 말 없다.
정말 시민권을 획득한 선수들처럼 당장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냐?
지랄한다.

 

그 선수들이 잘 하는 말

 

발은 진흙탕에 딛고 눈은 하늘을 향하라.
그런데 지금 정세에서 길거리 정치가 어디에 있는가?

 

단결과 연대는 투쟁의 핵심이다.
그 투쟁이 현장의 파업(투쟁)에 있고, 길거리는 촛불이 점령했다.
현장의 파업이 촛불과 연대하는 것은
파업 대오가 촛불에 앉아서 구경하고 때되면 빠진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 방법은 머리수채우기에 바쁜 민주노총 어르신들이나 하는거다.

 

지금 진흙탕은 파업(투쟁)현장과 촛불이고

연대의 연결 고리는
비폭력 논쟁과 경찰의 공격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전경차 앞이다.

이것을 그나마 그 선수들의 현재 실력에서 실현할 수 있는 곳 말이다.

 

#다함께, 초기에 행진대오 지도하다 오나전 욕먹었다.
왜?
거리로 나가려는 대중을 제한했고
대중이 말은 안듣자 조직적으로 그들이 사라지자
경찰의 연행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다함께가 대중들에게 욕먹은 가장 큰 이유는
거리로 못나가게 한 것보다
그 후 사라진 것때문이다.
그들이 사라지고 경찰의 연행이 되자
초기에 대중은 그들을 쁘락치로 오인했고
곧이어 네티즌수사대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쁘락치일뻔 한 다함께는 오나전 욕먹었다.
어설프게 선동하다가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거리행진을 제한했어도
끝까지 남아있다가 대중들과 함께 연행됐다면
쁘락치 논쟁도 심하지 않았을테고
지금처럼 욕먹지 않았을 꺼다.

 

그럼 다른 선수들은?
침묵
문서 혹은 글로 논쟁 중
현장이 킹왕짱이야

이러고 있다.

 

욕먹었어도 다함께는 촛불초기부터 결합했고
지금도 열심히 신문팔고 있다.

 

다른 선수들, 뭥미?

 

#'그 선수들'
그 동안 다져진 전투'실력'을 '쌩대중들'과
나눠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쌩대중이 그나마 허용해 준 시민권은 잊혀진다.

 

촛불이 꺼지고 나서
또 평가하고
시민권 얻은 선수들 욕하고
또 현장이 킹왕짱이야
이러고 있을래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나? 실력없어서 이 지랄한다.
그렇지만 이래저래 오나전 피곤하다.

 

#전경차 앞에서 만난 어떤 쌩대중 왈
'열흘 연속으로 나와서 밤낮이 없어졌어요.
회사에서 맨날 졸아요.
하지만 억울해서 안 나올 수 없어요'

 

그 좋아하는 '지도'

전경차 앞에서부터 시작하지.

그래야

왕비호가 되더라도

'다함께'처럼 잊혀지지나 않는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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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가출하고 4년만에 집에 돌아온 지 한 달하고 닷세정도 지났다.

집에 올 때 가장 맘에 걸린 게 엄마였다.

엄마에게 잘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것이라도 하기로 한 것이

 

아침에 뭐라도 먹고 나가기

나갈 때 이불정리하고 나가기

내 빨래 내가 알아서 하기

밥 먹고 설겆이하기

요 네 가지다.

 

근데 일주일정도 완죤 꽝 나고 있다.

어제는 암것도 안 먹고 나가는 나를 엄마가 쳐다보고 있었다.

 

켁...

 

엄마 미안해.

이제 다시 요거라도 할께.

 

# 내가 엄마랑 닮은 게

맘이 약한 거랑, 궁시렁거리기다.

근데 요기에 아비라 불리는 사람의 묵뚝뚝한 데 갑자기 폭주하는 성격이 포게져서

성격의 그림새가 그닥 좋지 않다.

 

엄마가 말을 걸어도 말도 안 한다.

사실 엄마랑 얘기하기 싫다기 보다는

옆에 있는 아비라 불리는 사람이 거슬려 말이 하기 싫은거다.

 

엄마랑 둘이 있으면 그래도 말을 잘 하는 데

두 내우가 집에서 노는터라 그럴 시간이 정말 없다.

 

엄마 미안해.

잘 살아 볼께.

 

# 어버이날 뷔폐식 샤브집을 갔는 데

엄마가 별로 맛 안나게 보이는 스파게티를 가져다 드셨다.

엄마가 양놈 음식을 맛나게 먹을 줄 몰랐다.

 

생각해 보니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도 잘 모른다.

서울 오기 전 엄마한테 맛난 음식 한 번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 데 못했다.

 

엄마 미안해.

담 주말에 내가 스파게티 해줄께.

 

# 집에 들어오면 엄마가 혼자서 화투짝을 만지고 노는 모습을 자주 본다.

운세 맞추기를 하는 것 같다.

 

몇일 전 화투를 가지고 노는 엄마 옆에 가서

맞고나 치자고 했다.

근데 엄마가 맞고하는 법을 모른단다.

 

그것도 몰랐다.

 

또 근데 엄마한테 맞고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은데 나도 잘 모른다.

 

엄마 미안해.

맞고 마스터해서 엄마 가르쳐 줄께.

 

# 일주일 전 전기밥솥을 사러 나가는 데

엄마가 같이 가잔다.

 

무거운 몸으로 낑낑 거리면서 걸어가는 데 엄마가 자꾸 말을 건다.

그날은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조퇴한 날이 었다. 

 

'여자친구는 뭐해?'

'누나들이 여자친구를 너무 좋아해'

'여자친구 언니는 봤어?'

거는 말이 대부분 여자친구에 관한 이야기다.

 

아마, 하고 싶은 말은 '여자친구 보자'였을 꺼다.

소심한 엄마.

 

하긴 내가 집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아서

언제 말거나 싶어서 얘기했겠지만

그날 내가 오만상을 찌뿌리고 있었으니깐 말을 더 빙빙 돌렸겠지.

 

엄마 미안해.

내가 잘 놀아줄께.

글고 조만간 여자친구 보여 줄께.

 

# 엄마는 가끔

'아들, 엄마가 아들 사랑하는 거 알지?'라고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얘기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난

'으베베베' 거리고 만다.

 

엄마 미안해.

담엔 '응' 요러케라도 똑바로 얘기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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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 오랜 친구여, 안녕!!!

10년을 넘게 함께 한 너와 이별을 하고 있어.

내가 힘들어도 즐거워도 기운없어도 신나도

언제나 내곁에 있던 너란 친구

참 소중했는데 말야.

 

가끔은 얼굴이 발게지며 수줍어 하고

가끔은 시뻘게지며 화도 내고

가끔은 갑자기 사라지는

너의 모습은 참 예쁘고 아름다웠지.

 

너를 처음 만난 게 고등학교 때

다른 친구들은 시기때문인지 너를 소개시켜주지 않았지.

자기들은 다 만나고 있으면서 말야.

 

용기를 내서 처음으로 너를 만났을 때

활홀감에 취해 어쩔줄 몰라했어.

자주 만나다보니

익숙함을 넘어 중독으로 가더라고.

 

이제 질긴 너와의 인연을

끊으려 해.

너와의 인연이 달콤하기는 했지만

나를 많이 괴롭히기도 했어.

 

너와 멀리한 지금 조금은 힘들다.

수시로 네 생각이 나서 말야.

 

인생의 절반정도를 함께 했는데

어찌 쉽게 잊을 수 있겠어.

하지만

더는 유혹하지 말아줘.

 

이제 난 네가 없는 다른 인생을 살거란 말야.

 

 

 

 

금연 6일 째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가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상태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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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일드 - 이런 피곤한 영화는 누가 볼까?

# 영화를 보기 위해 '음식남녀'를 뽑아 DVD플레이어에 넣었으나 재생불가
그래서 선택한 '더 차일드'
CD로 굽기만 하고 보지 않은 영화들이
다 들 머리에 짐나서 회피하던 것들이었으니...
역시나 머리에 짐나게 하시는군.
 
# 징그럽게 가난한 하층민 아이들
대책 없는 한 쌍의 커플, 그들이 낳은 아이
그리고 보기만 해도 머리에 짐나는 상황들
 
# 영화를 보고 난 후 머리가 너무 아파
곧 바로 현실회피용 에니메이션 '에반게리온' 틀어 놓고 멍하니 있어도
생각나는 영화의 장면들

 


마지막 장면마저 없었다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뻔한 영화
 
# 자신의 아이를 일말의 죄책감 없이 팔아버린 소년
소녀의 저항에 아이를 찾아오지만,
소년의 이어지는 거짓말과 안이한 행동과 어처구니없는 상황들.
그리고 무엇보다 대.책.없.는 그 소년의 삶과 소녀의 삶

 

이들은 과연 아이를 키울 수는 있을까?
아니, 이 녀석들이 살아갈 수나 있을까?
노동계급에 끼지도 못한 이들의 절망적인 삶...
 
# 아..... 피곤이 몰려온다.
 
# 켄 로치의 ‘네비게이터’가 떠오른다.
그리고 용감한 미성년 미혼모를 다룬 샤방영화 ‘주노’를
이 영화와 비교하며 보고 싶어진다.
 
# 근데, 여기서 잠깐.
뭐, 황금종려상까지 탄 좋은 영화라는 것을 알겠고.
이 영화를 보면 머리 아프지만, 생각할 꺼리 많은 것도 알겠고.
 
그런데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은 과연 누굴까?
 
평론가들은 좌파적 리얼리즘이라고 하지만
과연 노동에 일상에 지친 이들이 이 피곤한 영화를 볼까?
현실이 그리 피곤한데.

 

이런 피곤한 리얼리즘 영화같은 부류의 영화들은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면
‘철 안 난 철부지 어른들’이나 좋아 한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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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코베인

간만에 웹서핑 중

포탈 사이트에서 너바나에 관련된 블로거의 글이 메인에 있어

반가운 마음에 클릭해 보았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이 쓴 글인 듯 싶다.

커트코베인을 너바나를 회상하는 감성이 비슷한 것을 보니.

 

커트코베인이라....

 

 

 

커트코베인을 알면서

얼터너티브 락에 빠져들었고

얼터너티브 락은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감당하지 못하던 에너지를

분출하게 해준 통로였다.

 

그리고 그의 거친 행동과

헤로인 중독과 자살로 마감된 삶이 '있어' 보였다.

그의 노래 한 곡 한 곡에, 기사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감동에 겨워 부르르 떨었고, 열광했다.

 

요즘 말로 '폭풍간지'였던

커트코베인은

나에게 영웅이었고, 우상이었고, 천사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 때처럼 감당못할 정도의 에너지가 넘치지도 않고,

그 '있어' 보이던 커트코베인은

젊은 나이에 죽은 락커일뿐이다.

 

하지만  그를 안지 10년이 넘어서도

웹서핑 중 '너바나' 세 글자가 반가워 클릭해 읽고

기분에 취해 너바나 CD를 꺼내 듣는 것을 보면

커트코베인은 10/20대 때 그 누구보다 가장 좋은 친구였던 것같다.

 

나의 영웅과 우상과 천사가 되어줬던 커트....

고마워....

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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