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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거운 금요일 저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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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논형과 밴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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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촌에서 걸어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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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교육센터 '들' 창립식
  10. 200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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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운 금요일 저녁

막 주번이 끝났다. 이제 남은것은 우편업무다.

이 업무는 다음주에 해도 늦지 않는다.

월장준비도 이제 조금씩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주거권팀 내용들도 속속 들어오고 있고 맡은 일의 진행도 수월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열심히 하고있다. 걱정되는 것은 다른 이들이 어떤 생각과 고민을 가지고 갈까.

그리고 나와 우리는 어떻게 고민하고 나아가 소통하고 실천할까이다.

일을 잘하고 싶은 욕망은 있으나 가끔 짓눌릴 때고 있다.

 

7시30분쯤 회의가 끝났다. 내가 처음부터 들어간 회의는 아니지만 그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

잠은 오지 않았는데 낙서만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와서 몇가지 일들을 끝내고 집에 가려 한다.

 

내 표정과 내 말투, 언어. 심장. 마음. 생각은 폭력에 대한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물론 긴장감이야 있다고 이야기 하겠지만. 과연 그 긴장은 어떨때 발휘되는 긴장인가.

매 순간 긴장을 해야하지만 어떤 특수한 곳에서만 발휘되는 긴장일까.

오늘도 나의 말과 표정으로 인해 내가 마음이 불편했다.

고민이다.

 

"왜 이렇게 버거울까"

 

소주가 생각나서 친구에게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하니 피곤하다며 다음에 오란다.

어제가 생일이었던 친구는 오늘 합주가 늦게까지 있다며 다음에 만나자 한다.

사실 맥주한잔하자고 했지만 내가 다음에 보자고 했다.

나는 살짝 삐졌다. 지금도 삐져있다.

하긴. 나도 그렇게 그들에게 이야기 한적이 있었겠지.

 

오늘은 별 이유도 없이 몸에 힘이 축 빠지고 얼굴이 붕 떠있고 얼떨떨하게 지냈다.

이렇게 지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후라이데이나이트. 대부분 즐겁게 술을 마시거나 일을 하고 있겠지

으아. 지금 이 글을 쓰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글을 쓰면 어느정도 정리가 되서 참 좋다.

내일 춘천가는 기차를 예매해야겠네...

퇴근길에 집 앞에서 혼자 소맥이라도 한 두잔 마셔야 잠이 잘 올것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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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논형과 밴드

밴드라.1

일단 멋있게 보였다. 너바나가 카메라에 침을 뱉고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주시고, 기타를 공중으로 던지고
지미핸드릭스는 월남의 폭음을 기타음으로 표현해주셨고 그 유명한 명언
"왼손으로 악수합시다. 심장이 왼쪽과 가까우니까" 이렇게 표현을 해주시더라.
굉장히 막연한 간지였다. 그래서 밴드를 하고싶었다.

중학교때 기타를 치던 친구가 3명정도 있었다. 사실 기타에는 흥미가 없었는데 그 당시, 우드스탁실황을 보며
"와우!"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밴드를 결성했다.
처음에는 드럼과보컬,베이스기타 4인조로 시작해서 기타치던 친구가 밴드를 버리고 다른 밴드를 결성했다.
그 작디작은 학교안에 밴드가 4개나 되었다.
뭔가 열등감, 경쟁심이 생겨 나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밴드를 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고 그 중학교때의 밴드는 와해가 되버렸다. 다른 밴드를 만든 친구는 지금 세션을 하며
잘나가는 아티스트의 삶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나와 그 친구는 앙숙이다. 라이벌???하하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밴드를 제대로 해보자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나와 같은 기수의 친구들 4명과 sb라는 밴드를 결성했고, 지금은 과도기지만 열심히 했었다.
난 굉장히 이 뭔가 표현할 수 없는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그들은 ratm을 좋아했다.
그래서 ratm카피밴드로, 혹은 메탈, 하드코어. 랩코어 별별 이상하고 빡센 장르들을 연주하는, 그런 조직이
되어버렸다. 내가 기대했던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노는게 좋아서 열심히 했다.

레슨을 하고, 라이브를 보며 "우리는 영국으로 가서 카메라에 침을 뱉고 기타를 부셔버리겠어!" 라는 다짐을
했던 나와 그들은, 지금은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놀며놀며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다.
여건상 기타를 잘 못치게 되버린 지금. 내가 예전에 꿈에서 나온 존레논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물론 지금도 밴드를 함께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밴드로 3개나 되지만. 존레논이 꿈에서 했던 행동은
잊을 수 가 없다.
그는 내게 몸으로 이야기 했다.
몸을 비비 꼬며. 난 무슨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레논형은 분명 내게 메세지를 전달했다.

아 런던 북부 항구의 공중전화박스 앞, 클럽에서 존 레논은...



내 허리를 툭툭 치며 "!#$%#%^^&&#^$" 라며 가죽바지를 입고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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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서 걸어오는 길

내가 머무는 곳은 시흥이다. 구로디지털단지에서 걸어가면 1시간. 자전거로는 30~40분 거리에 있다.

오늘은 집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왔다.

버스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앉아있는데 햇빛이 유리창을 뚫고 계속 비춘다.

날씨가 너무 좋고 바람도 어느정도 쌀쌀해서 여의도에서부터 "신촌에서 내려서 걸어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신촌까지 갔다.

 

반바지를 입고 나왔는데 나름 괜찮았다. 아현즈음을 지날 땐 소름이 돋기도 했지만.

최근 운동을 조금씩 하면서 걷는 것도 함께 병행을 하고 있는데 걷는다는 것에 대해 조금은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도 좋지만 혼자 걷는 것도 매력이 있다.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어 좋다. 그리고 기침을 크게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다.

요즘엔, 글 쓰는 것, 그리고 길게 글을 쓰는게 너무 힘들다.

생각나는 대로 쓰긴 했지만 그런 것에 대해 조금 긴장감이 생겨서 힘들다.

 

매 순간 긴장하며 살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 신촌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온 1시간동안은 긴장을 하지 않았다.

여유롭게 킁킁 거리며 냄세를 맡으며 재미있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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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여성의날!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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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새벽



사람 vs 사람
점점 내게 의미심장하게, 그리고 하우스에서 칼로 비닐찢고 나오듯이 아프다.






나에게 있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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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금요일과 토요일이다.

일요일은 여유롭게 지낸다면 좋은데, 예를 들어 따뜻한 햇살에 광합성하며 담배하나 피워주는, 시간에게 도망치는게 아니라 내가 시간을 잡고 있는 이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굉장히 좋을 것같다.

 

내가 14세 15세 16세 때 주말에 대해 가장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점심즈음 일어나 햇빛이 좋으면 이불을 털어서 발랫대에 널어놓고 내 방 앞 문을 열어놓고 방청소를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마루에 앉아 낮잠을 자기도 했다.

15세때 내가 살던 집은 내 방문을 열고 또 앞에 있는 문을 열면 마당이 보이는 곳이다. 앞을 쭉 보면 마을회관지붕과 지리산이 바로 보이던 집이었다. 여유롭게 밥도 먹고, 아무 걱정없이 똥도 싸고 어찌됐던 좋은 주말의 기억이다. 샤워을 막 마치고 젖은 머리를 햇빛에 털며 머리에서 튀기는 물에도 기분이 참 좋아졌다.

16세때 내가 살던 집은 문을 열면 바로 큰 마당이 있었다. 정돈되지 않은 마당이었기 때문에 흙먼지도 많이 있었고, 무엇보다 고양이들이 놀러오는 곳이었다. 여기서는 씻지도 않고 마당에 돗자리를 펴놓고 친구랑 차가운 효소를 마시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었다.

동물원에서 산 적이 있었다. 생활관이름이 동물원이 었다.

여름, 주말엔 10분만 걸어가면 나오는 계곡에서 아침부터 오후 6시까지 미친듯이 수영을 했다.

중간에 배가 고프면 집에서 밥을 간장과 참기름, 김치에 비벼서 머리에 이고 물을 건너오기도 했다.

정말 밥이 맛있었다.

 

더 좋은 주말도 있었으리라, 나에겐 주말은 항상 평온하고 여유가 철철 넘처흐르는 날이 었으니까.

 

 

 

이 후, 내겐 주말을 어떤 의미 일까?

못한 일을 처리하는 날일까? 아니면 쉴 수 있는 날일까?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날일까?

 

황사가 날아다닌다.(떠 다닌다?) (아~황사가 몰려온다!)

예전에 황새를 본 기억이 난다.

500원의 주인공이  훨훨  잘도 날아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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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글

정신이 없다.

요즘들어 뭐가 이리 많아 졌는지 내 점퍼 거위털보다 많은 일들이 나플거리며 내 머릿통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얼마 전, 한 달정도 잠이 오지 않아서 이모가 잘 아는, 엄마도 잘 아는 이모친구분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러

갔다. 김포까지 가는데 정말 잠이 와서 미치는 줄 알았다.

의사는 일찍 누워서 자고 책읽고 잘 씻고 잘 먹고 그러면 저절로 잠이 막 쏟아질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김포에서 다시 사무실로 올때 난 잤다.

 

몇몇은 스트레스때문이라고 한다.

난 확실히 내 증상을 파악하고 있다.

 

12시에 잠자리에 들면 별별 생각이 나서,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생각이 내 몸 구석구석에서 빠져나오는 것같은 느낌이다. 그 생각들은 다시 집어넣고 버리고 밣고 누르고 차고 하다보면 어느덧 시간은 4시를 훌쩍 넘기고 있다. 아 어쩌란 말이냐.

이런 생활이 벌써 한 달째 접어들고 있다. 이젠 눈이 침침하다. 지금도 좀 눈이 침침해.

근데 술을 마시면 잠이 막 온다. 그래서 활동가대회에서도 술을 마시고 잤더니 잠은 잘 오는데 다음날

삭신이 막 쑤신다.

 

불면증의 원인이 스트레스 라면 난 어떤 스트레스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가.

곰곰히 생각을 한다.

 

 

 

 

 

 

 

글쓰기

 

글쓰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글을 읽거나 쓰다보면 몽글몽글한 생각들이 막 떠오른다. 이건 마치 오즈의 마법사같은 기분?

좀 더 세세히 말하자면 여름에 푹 자고 일어나니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이런건가?

그렇지만 글쓰기가 꼭 재미있지만은 않다. 짜증이나 분노의 거센 파도가 일때도 있다.

그럴땐 정말 의욕이 없어진다. 의욕뿐만 아니라 식욕과 어떤 욕구들도 다 없어진다.

담욕만 생긴다. 담욕.... 覃

기사를 쓰거나. 성명서를 쓰거나. 보도자료나 그 외 어떤 글을 쓰던 간에 힘든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글 다 쓰고 나면 기분이 좋다.

아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블로그에 쓰는 것도 어렵다. 어려워

 

 

 

 

 

 

 

사무실

 

우리 사무실은 더워요.

겨울에 추웠지요.

요즘은 더워요.

난방을 막 틀대요.

사람들은 덥다고 하소연해도

보일러는 돌아가요.

햇빛에 눈이 녹아도

비와 물고기가 내려도

기름에 엉킨 생물들이 노래할때도

우리 사무실 보일러는 돌아가요.

사람들은 덥다고 하대요.

더워요.더워요.

꺼주세요.땀나는 기쁨은

이렇게 누리는게 아니에요

 

 

 

 

 

 

 

 

디질랜드....

기분도 참 오타쿠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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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후원이라...

 

 

후원의 추억은 초등학교2학년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난 당시 꽃동네 책을 아주 감명깊게 보았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기쁨입니다" (이게 맞나?)

 

그래서 엄마에게 졸랐다.

 

"엄마엄망. 우리 꽃동네 회비내자"

 

기특하게 보였나 보다. 꽃동네를 후원하게 되었다. 오천원씩...

그러다가 작년에 그만두었다. 이유는 뭐 내가 그만두라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여 그만두었다.

 

부모님은 5개 단체에 후원을 하고 계신다.

내가 꼬셔서 노00학에 하고 있고 소0도에 하고 계신다. 피00연대에도 하고 계시고...몇개는 기억이 안난다.

사실 내가 막 후원해요 해요 이렇게 한 적은 초등학교 이후로 없다.

부모님은 벌써 오래전 부터 후원을 하고 계시더라.

 

사실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후원을 왜 할까.

 

어디서 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난 지금 두개의 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한 곳은 중학교때 옆에 있던, 친하게 지내던 단체고, 한 군데는 이 판에서 꼭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건 뻥이 아니다. 진짜야

 

단체가 불쌍해서, 동정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이금 우리시대에서 그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기에.

그리고 또 가끔 만나서 술도 먹고 놀수도 있고, 고마운 것들도 있고 그래서 후원을 하고 있는데

아 그게 돈으로 말고, 물품으로 말고 어떻게 다르게 후원을 해 줄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모르겠다.

어쨋든 간에 난 후원을 한다.

후원을 하면 나름대로의 기쁨과 자부심, 그리고 뭔가 "난 특별해...멋져"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딱 두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에이...사실 원래 부터 생각이 있었는데. 이렇게 후원하니까 좀 그렇다.

더 멋지게 깜짝! 서프라이즈로 하려 했건만... 뭐 서프라이즈 한다고 해도 관심이 없으니까..

하하하

 

후원하면

왠지 같이 진짜 연대 하는것 같다.

그냥 솔직한 마음이다.

그렇다고 후원안한다고 진짜 연대 안한다는 기분은 안든다.

 

오늘은 비가 오면 좋겠다.

소주나 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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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센터 '들' 창립식

진보블로거님들

 


            29일, 인권교육센터 '들'이 오릅니다


인권운동의 모퉁이, 한 뙈기 땅을 갈아 출발했던 인권교육,

그 자그마한 땅에서도 곡식들이 조롱조롱 맺혔더랬습니다.

그래도... 감질났습니다.

흩어진 땅을 엮어 너른 들판을 만들고

흩어진 이들을 불러모아 어기야디야 풍년을 일구고 싶었습니다.


겨울, 

한 톨 한 톨 볕발을 끌어모으려 들은 뒤척였습니다.

겨울에서 봄,

꽁꽁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언 땅에서

꼬물꼬물 움싹이 돋아납니다.

그렇게

기어코 인권교육센터 ‘들’이 오릅니다.


들에서 함께 인권교육 농사를 지을 이들,

들에서 걸판지게 한번 놀아보고 싶은 이들,

들을 일구는 사람들을 토닥여주고 싶은 이들,

모두를 모시고

2월의 마지막 날

인권교육센터 들이 첫걸음을 떼려합니다.


들의 시작에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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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오늘/푸념

이 이야기는 정확히 2월 2일 아침 8시56분 부터 시작, 2월 3일 저녁 7시59분 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지리산을 가려했었다. 조금 세세히 이야기 하자면 친구들 졸업식도 있고 학교간지도 오래되었고, 그냥 겸사겸사 놀러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2월2일 새벽 2시부터 밤을 새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기사를 쓰고, 라이브동영상(뷰욕)을 보고 6시 까지 버티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나니 8시 56분이었다.

첫차시간은 8시 20분, 가슴 한켠이 사르르 녹아내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지리산을 포기하고 거실에 보일러를 틀고 이불을 덮고 tv를 계속 봤다.

무한도전, 뉴하트, 라인업, 디스커버리, 내셔널지오그래픽, 뉴스, 돌발영상 을 보며 시간을 때우다 배가 고파서 집에 있던 김치를 썰어서 그냥 밥에다가 먹었다.

[여기서 잠깐, 밥에 간장과 참기름을 넣어서 비비고 김치국물과 먹으면 정말 좋다. 황홀하다.]

맥주 한캔이 남아있길래 한숨만 쉬며 먹고있는데 아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연애를 아직 해 본 적이 없었던 친군데 정말 과묵하고 저음톤의 목소리로...

 

"고기먹으러 올래? 나 여자친구 생겼어. 고기 먹으로와 , 전화해!"

 

내가 '하~'하고 탄식을 지를시간조차 주지 않고 그 친구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난 고기를 먹는다고 하기보다는 시간을 때우러 그 친구에게 갔다.

친구는 얼굴이 예전과 달랐다. 분명 눈에서 광채가 나고 뒷모습은 후광이 비춰지는 듯했다.

저녁이었는데도 아침처럼 햇빛비스무리한 빛들이 내 눈알을 후비고 있었다.

다시한번 탄식을 내질렀다. '이럴수가...'

친구의 애인분은 자신이 벌써 고기를 2인분이나 먹고 냉명과 밥까지 먹었다고 나더러 제발 좀 잡수세요 하며 아우성이고 친구는 관대한 자세로 후광을 뿌리고 있었다.

애인분이 "친구가 예전에는 어땠어요?" 이렇게 물어봐서 난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해드렸다.

(물론 그 친구는 잠깐 담배를 사러 나갔다)

그리고 친구가 돌아오자 애인분이 친구를 놀려대고 갈궈대기 시작, 결국 둘은 서로를 갈구고 욕이 난무하는 자리가 되었으나, 여전히 친구는 후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

난 이때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배도 안고파서 고기를 먹지 않았으나 양파를 먹고 소주를 약간 마셨다.

배가 부르다. 배가 불러

 

그냥 솔직히 친구의 후광을 다 내치고 싶었으나 그래도 관대하게 난 후광을 받았다.

10시39분인가 40분쯤 그 친구와 애인분은 따로 산책을 하신다며 날 내치시고 낙산으로 놀러가시고

내쳐진 나는 그 친구와 같이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그렇지만 그 친구의 룸메이트 친구는 영화를 정신없이 보느라 내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대학로 한가운데서 정말 공허했다. 두레주르 앞을 서성거리고, 방통대앞을 서성이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게 내 몸과 생각이 오락실 앞으로... 그래서 그냥 오락싱앞에 온 기념으로 500원 어치 오락을 10분 만에 끝내고 지친몸을 이끌고 친구집으로 갔다.

친구집은 오솔길이다. 빨래와 옷, 쓰레기를 헤쳐가며 간신히 친구방을 찾아 들어가 지친육신을 바닥에 고요하게 내려놓고 내 영혼은 낙산으로 가서 그 친구와 애인을 방해하고 있었다. '아아...'

 

그리고 닭을 시켜 맥주와 함께 먹었다.

머리가 아프다길래 아스피린을 찾다찾다 못찾고 그냥 잠이 들었다.

잠결에 잠깐 깨어나서 담배를 피웠던것 같고

잠결에 목이 말라 미지근해진 맥주에 목을 축였던것 같다.

잠결에 친구가 내 몸을 넘어 다른 쪽으로 이동을 했었고

난 꿈속에서 허덕거렸다.

 

다음날. 3시에 일어났다.

사무실에 가야하는 내 몸은 지쳐 샤우실로 향했고, 변기에 앉아 물을 맞으면서 한참을 있었다.

사실 따뜻한 물이 좋았던 거였다.

이불에 누워, 아니 정확히 바닥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 쓰고 뒹굴거렸다.

담배를 사러나가고, 라면을 사러 나가고, 생선까스를 구워서 나눠먹었다.

그 집위에는 고양이가 살았다. 간혹 고양이 울음소리와 쿵쿵거리며 달려가는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집에 가려하는 시간이다.

고단한 하루였고, 또한 끝내 마치지 못한 하루였다.

그런 하루를 매일 보내고 있는 듯하여 목이 텁텁하다.

 

 

 

 

 

 

 

 

친구를 보니 굉장히 부러웠다.

사실 그 말이 하고싶어서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한거였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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