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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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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7/12/31
    2007/12/31
  10. 2007/12/30
    (2)

맞아...

' 넌 아직 안돼'

'맞아. 넌 아직 좀 그래'

'너 좀 잘해봐봐'


몇년동안 이런말을 들으니
이젠 적응이 되었다.
화가 나고 슬프고, 답답해서 하소연을 전화기너머 집에 달래보지만
씁쓸함은 감출 수 없나보다.

난 아직도 되지 않는것이 무엇이기에

나에게 안된다고 할까?

 

저런 말에 적응을 해버린 내 오장육부가 뒤틀린다.

오늘은 힘이 없다.

몸에 힘이 추욱 하고 빠져 눈이 스르르 풀린다.

 

요란하게 핸드폰 진동이 울리지만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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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뷰

내가 느낀게 데자뷰인지는 잘 판단이 되지 않는다.

 

뭐냐면

 

내가 어제 저녁 9시쯤 회의를 한창 하고 있는데 어떤 이가 문을 열더니

밖으로 나가면서 문을 탁 하고 닫고 나간다.

 

순간 난 내 기억에 없는 꿈의 기억을 캡쳐해냈다.

 

기억나지 않은 꿈이 딱 떠오른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이게 데자뷰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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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3일전.

회의가 12시에 있어 난 10시쯤 일어났다.

내가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내 눈앞에는 항상 식탁에 있던 의자와 흔들의자,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다시 문을 열어야 하는 문이 보인다. 물론 천장과 바닥도 보인다.

그날은 무척 힘들게 잠이 들어서 깨어났다.

눈을 뜨니 동생이 티비를 보고있었다. 난 항상 하던 식으로 동생에게 "티비꺼" 라고 이야기 하려고 했지만

뇌와 입이 따로놀았다. 그렇지만 그 순간은 생생히 기억한다.

난 내 눈에 비치던 그 구도와 동생의 처진어깨, 그리고 그 옆에 흔들의자에 있던 젖은것 같은 수건까지.

나에겐 꿈에서 나올 것 같은 구도였다.

 

하지만 나를 보는 사람에게 난 그런 구도를 만들어줄 기회가 있었는가.

아마 '그렇다'라고 확신은 할 수 없다. 난 확실하지 않은 생각들을 이야기 했고, 행동했으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가는 길은 그때그때 기분이 달라진다.

대부분 7시30에 일어나 8시 30분이나 50분쯤 버스를 타거나, 혹은 자전거를 탄다.

버스를 탄다면 5619번과 5620. 그리고 5617를 타서 150번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있다.

즉, 늦었을때 5620를 타고 구로디지털단지에 내려서 자하철을 탄다. 그나마 효율적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여유가 있을때는 5619를 타고 신도림으로 간다.

더욱 더 시간이 있다면 5617를 타고 금천구청에서 150번으로 갈아타서 갈월동(서울역)에 내려

걸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버스를 타지 않을 경우 자전거를 타고 안양천을 따라 신도림으로 간다.

자전거는 항상 상쾌했다.

그렇지만 아침에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

스승께서 내게 화를 다스리고 마음을 보라, 하셨지만 난 아직 수행이 모자른다.

난 왜 다투었는가, 내가 예민한 이유였던가,

내가 성찰해야 할 것을 왜 남이 대신 성찰을 하고있는 것인가.

다투고 난 뒤의 마음은 항상 꿀꿀하다. 매우 혼란스럽고 심지어 욕이 튀어나올때도 있다.

 

눈을 감는다고 나의 고민과 성찰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난 정말 내 주위 가까운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었던것이다.

'아' 하는 탄식만 흘러나온다. 흘러나왔던 탄식은 공기를 타고 다시 내 눈동자를 쿡쿡 찌른다.

담배를 핀 후 맑은 공기를 마시지 못하는 것처럼 맑은 정신이 있을리가 없다.

 

작은학교시절, 내 스승은 내게 지금까지의 잘못했던, 내가 생각하는 잘못했던 일들을 공책에 적어보고

그 일들은 기억해내서 이야기해보라 하셨다. 난 잘못을 적었다. 그리고 읽었다.

스승은 내게 물었다. 마음이 편안해 졌냐고, 난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거짓의 답이었다. 내가 말하기 싫은 잘못들은 모조리 빼버리고 다른 잘못들을 적었다.

그리고 마음한켠이 불안한데도 난 편하다고 답했다. 이중생활이다.

잘못에도 여러종류가 있다. 이 잘못과 이 잘못은 다르기 때문에 종류가 다르다. 사람에게 하는 잘못과 동물에게 하는 잘못도 다르다. 난 이 다른 잘못들을 성찰하지 못했다.

 

예전에 난 고양이와 생활했다.

고양이는 내 친구였고 고양이도 날 친구로 생각했다. 고양이는 심지어 두발로 걸어다녔다.

고양이의 이름은 '하지' 였다. 난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하지를 친구에게 보내게 되었다.

옆에 있던 사람친구가 외국으로 떠난 느낌이었다. 내 옆에 동물친구가 떠난 느낌이 그리하였다.

부모님도 모르고 있었던 하지의 존재는 지금 경상북도에서 다시금 나와 다른사람들에 의해 떠오르고 있을것이다. 그 친구는 털이 아주 예뻤고 나에게 해주는 말들도 아주 좋은 말이었다.

 

난 정겹다. 내가 정겨운게 아니라 내 주위가 정겹다.

 

맑스는 눈동자가 맑지 않다.

 

쓰고 싶은 글은 생각날때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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災(재)개발

재개발의 재는 아마 재앙재(災)일것이다.

 

사람의 맘을 사로잡는 방법. 재개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발’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개발이 되면 자신이 살던 동네가 무조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사람들은 개발을 원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의 ‘개발’은 사람들의 환상을 여지없이 배반한다.

개발의 문제점은 하나하나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에 치명적인 것들이다. 마을 공동체는 갈아엎어지고 이윤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은 내쫓겨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살(live)만 한 집 대신 (가진 자들이) 살(buy)만 한 집만 남는다. 주거환경이 좋지 않은 동네를 재정비하고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해야 하지만 현재의 재개발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개발의 실제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자.

 

인간에 대한 개발의 ‘배반’은 어디까지인가.

 

 

재개발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지역간의 빈부격차를 줄이고 불안정한 생활고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누리기 위해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한다.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 하나가 공공서비스다. 교통이나 동사무소, 병원, 문화시설, 가스관, 수도관, 소방도로 등 여러 가지 공공서비스가 확보되고 접근하기 편하게 분포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공공서비스가 취약한 상태에 있는 동네의 환경을 바꾸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어 화재가 나도 불길을 잡지 못하고, 아픈 사람이 있어도 구급차가 들어갈 수 없는 마을에 개발은 필요할 지도 모른다.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너무 멀고 버스를 한 번 타려고 해도 몇 십 분을 걸어야 하는 동네는 사회적 약자나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에 더욱 힘들다. 그러나 개발은 거꾸로 간다.

 

도시를 재개발하는 데에 ‘어디서 먼저 되고, 어디는 늦게 된다’는 우선순위는 정해져있지 않다. 노후주택이 얼마나 많은지,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는지 등의 기준에 따라 개발사업구역이 지정된다. 그러나 정말로 개발이 필요한 낙후지역은 개발사업구역으로 지정되고도 몇 십 년 동안 개발사업이 추진되지 않는 반면, 서울의 뉴타운처럼 굳이 당장 갈아엎지 않아도 되는 동네들은 각종 기준완화조치로 개발사업이 일사천리 추진된다.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 것보다는 ‘돈’이 나오기 좋은 동네만 개발하기 때문이다. 안전하지 못한, 살기 힘든 곳들이 차근차근 개발되어야 하겠지만 ‘이익’에 눈이 먼 지자체들은 가난한 이들이나 사회적 약자의 삶을 안중에도 두지 않으며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가난할수록, 세입자일수록 개발의 현실은 가혹하다. 개발사업구역의 세입자들에게는 공공임대주택의 입주권과 주거이전비가 제공된다. 그나마 법이 정한 조건을 만족하는 세입자들에 한해서 제공되는 것인데 이것도 문제가 많다.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받아도 3~4인 가구가 살기엔 비좁은 평형만 주어지고 1인 가구가 들어가 살기엔 집의 구조가 부적절하다. 게다가 임대료는 결코 싸지 않다. 관리비 역시 마찬가지다. 비좁고 안락하지 못한 곳에서 합당치 않은 임대료를 내는 것은 누가 보아도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이다. 임대료, 관리비 부담으로 아예 입주할 엄두를 못 내거나 연체되어 곧 퇴거당할 수 있는데 무리를 하는 것도 권할 만한 선택은 아니다. 도시 저소득층은 단독․다가구주택에서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개발로 신규 공급되는 주택은 대부분 저소득층이 살기 힘든 비싼 아파트다. 즉, 싼 집을 실컷 부수고 비싼 집만 고이 짓는 것이 개발이다.

개발기간 중 살 집을 구하는 것도 큰 문제다. 세입자들에게 적절한 가이주대책이 마련되어 근처로 잠시 이사했다가 다시 살던 곳으로 들어올 수 있어야 할 텐데 조합이나 지자체는 세입자들더러 알아서 하라고만 한다. 개발사업구역으로 한 번 지정되고 개발이 추진되면 일대의 땅값과 집값이 모두 엄청나게 오르기 때문에 알아서 하라는 말은 결국 ‘멀리 꺼지라’는 얘기일 뿐이다.

 

이렇게 개발이 추진될 수 있는 이유는 추진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어떤 사업이 필요할 지를 숙고하는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개발사업은 집이나 땅의 소유주들의 의견만을 수렴해서 결정된다. 이마저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심지어는 돈을 쥐어주면서 동의서를 받아 조합을 설립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한다. 어떤 개발사업들은 국가기관이 일방적으로 사업계획을 세우고 그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토지를 강제로 수용해 추진되기도 한다.

같은 동네에 살아도 세입자들은 더욱 개발사업의 내용을 모른다. 누구는 더 잘 알고, 누구는 더 알지 못하는 차별적인 상황은 세입자나 가난한 이들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세입자가 토지나 건축물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는 이유로 법은 그/녀들의 권리를 부정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주택이 철거되는 것, 개발과정과 개발 이후에 자신이 보장받게 되는 주거대책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상식마저 무시하고 지자체나 조합이나 별다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자체나 조합이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불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퍼뜨리거나 각종 유언비어들이 떠돌게 된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근거한 판단은 부적절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이 과정에서 주민 갈등이 불거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조합과 조합 사이, 조합원과 비조합원 사이,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 세입자와 세입자 사이에서의 갈등이 터져나온다. 개발이익을 한껏 챙겨가는 시공사나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지자체는 뒷짐지고 있는 척 한다. 그러나 개발사업과 관련된 주민들의 갈등은 결국 개발사업 자체의 비민주성이 왜곡되어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마을은 공동체다. 한 마을에서 몇 십년 간 살았던 사람들에게 공동체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할 수 있다. 쌀이 떨어졌을 때 급하게 빌릴 수 있고 아이들의 교복을 물려입기도 한다. 일자리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고 서로 필요한 것을 돈이 아닌 우정으로 나누기도 한다. 사람다운 삶은 연대의 마음으로 맺어지는 관계를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러나 마구잡이 개발은 평생의 터전이었던 마을을 송두리째 없애버린다. 공동체의 성원들은 오갈 데 없어진다. 몇 십년 간 같은 곳에서 같이 살았던 사람들과의 관계는 끝나게 된다.

인간의 공동체뿐만 아니라 그 공동체가 터전을 틀었던 자연이 파괴되는 것도 개발사업에서 뗄 수 없는 문제다. 개발 중의 건축 폐기물들과 소음, 온갖 유해물질들은 개발구역 주위의 동네 주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며 쉽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지만 늘 그곳에 살아왔던 작은 식물과 동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도 최근에는 개발에 눈이 멀어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여기저기 신도시를 지어올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수없이 많은 생태가 훼손된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그런 각종 개발사업이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도시를 만들겠다는 구호를 내건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거짓말이다.

 

개발은 ‘환상’이다. 이미 전국 곳곳에서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이명박 정권 시대에는 더욱 많은 개발사업이 미친 듯이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개발을 막기 위한 싸움을 고민해야 한다. 개발사업이 불러올 거대한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개발사업의 일상화 자체가 인간다운 삶을 향한 꿈이 들어설 자리를 가로채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영/인권운동사랑방 주거권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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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7개

프로젝트1

-나는 내가 한달에 담배를 얼마나 피는지 궁금하다.

사실 필 때 마다 몇개씩 피는지 세는 것도 아니고, 기억도 잘 못해서 이번에는

담배곽을 모아보기로 했다. 1월 4일인가?5일부터 사무실에 담배곽을 모으고 있는데, 벌써 다섯곽이나 된다.

1월 말쯤 다 모아서 계산을 해보고 액수가 어마어마 할 경우 난 담배를 줄이는 방향을 모색해봐야 할 것이다. 조금 유치한 짓인거 같지만 그래도 꼭 한번 하고 싶었다.

 

프로젝트2

-이것은 밴드다. 난 모두가 밴드였으면 좋겠다.

소수가 아니라...

 

프로젝트3

-글을 쓰자

난 말보다는 글이 편하다. 글을 쓰자 맘껏

 

프로젝트4

-낙서를 하자, 낙서도 그림이다. 나 그림좋아한다. 낙서도 좋다. 아무데나 그리는게 좋다.

그래서 난 회의시간에 낙서하는것에대해 죄책감을 느끼기 보다는 창작의 고통으로 느끼려 한다.

즐거운 낙서

 

프로젝트5

-대운하,개발,노동,생태,종교,차별,여성,정부,평화,저항과거부,기피와방관,

이 주제 말고도 분명히 몇개가 더 있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나 둘씩 알아나가려 한다. 좀 알고 싶고 배우고 싶고 듣고 싶고 보고싶다.

 

프로젝트6

-목욕탕스킨발라보기

꼭 한번 얼굴에 탁탁치며 발라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프로젝트7

-운동

 

 

아마 더 많을 거야

사소한게 좋은데, 너무 크다.

더 많아 적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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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님에부쳐

오늘 저녁 메뉴는 고등어님 김치찜이었다.

4시에 가게에 가서 고등어님 두분를 사니 이천원을 달라하셨다.

파란봉지에 담긴 고등어님를 들고 담배를 피며 사무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바로 생선을 다듬지 않고 왔다는것,

그래서 결국 내가 고등어님을 다듬어야 한다는 것,

 

부엌에서 긴장을 하고 몇번의 시도 끝에 결국 난 고등어씨를 다듬어드렸다.

고등어님의 눈에는 비닐이 씌어져 있었다.

난 고등어님의 꼬리와 머리, 그리고 내장들을 다듬어야 한다는게 참 싫었다.

 

이런 기분, 즉 내가 남을 자르고 넣고 있다는 것에 거부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녁식사이후부터 기분이 꿀꿀하다.

 

 

고등어 님의 저 눈망울을 보라,

난 저 눈이 그렇게 좋았다. 그렇지만 잘려나간 뒤 눈을 보니 더욱 처량해 보였다.

안그래도 눈때문에 굉장히 서글펐는데 한번 더 눈을 보니 마음이 아파왔다.진심으로

그리고 도마위에 펼쳐진 혈흔을 보니 더더욱 슬퍼졌다.

내가 칼질을 하고 있는게, 내가 고등어김치찜을 하고 간을 보려고 국물을 먹었을때의 그 느낌들,

무한한 우주를 돌아다닌것 같은 기분이다.

 

산울림노래중에 어머니와 고등어 라는 노래가 있다.

한방중에 자다가 목이 말라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 있다는, 근데 생각해보니 어머니께서 나 구워주려고 저렇게 하셨구나, 그걸 모르는 난 참 바보다. 라는 내용이다.

아..고등어님, 난 정말 그대를 다듬으면서 많은 것을 알고 또 느꼈어요.

 

고등어님에 대한 많은 사진들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으나 난 개인적으로 소장하겠다.

 

오늘은 여러모로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부끄러웠다~하는 헷가닥 하는 날이었다.

지금쯤 고등어님은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위에서 찬바람이 불며 울리는 웅웅~하는 소리만 듣고있을것이다.

 

 

 

 

 

 

 

 

서태지 앨범 시대유감

뭐라 할 말이 없지만 말하자면 굉장히 앨범 커버를 기분좋게 혹은 슬프게 만들었다.

특히 저 생선님(아마 고등어?)의 눈망울과 자세들은 정말 오늘의 내 기분과 딱 맞는다.

 

 

 

 
[시대유감]의 부활에 부쳐

그래, 가는 곳마다 길이 될수는 없을거야. 내딛는 걸음이 힘들때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여, 반벙어리가 되고 반귀머거리가 되어 쉽게 세상 놓여져 있는 길위에 서있고도 싶었지.
그러나 길밖 세상의 풍경은 지울수가 없는걸.
우리가 가는길- 옮기는 걸음마다 새 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다.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헤쳐나갈 길 어려워질수록-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길밖에도 세상은 있었다는 것이므로.
(copyrighted 채송아)
 
 
나는 물고기.
친구들이 먹이를 찾아 헤멜때
나는 꿈을 찾아다녔다.
어느날, 우연히 본 갈매기.
하늘을 날며 노래를 불렀지.
너무 아름다워...
나도 날고 싶어.
나도 노래하고 싶어.

누군가 세상 끝에 있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했다.
모두들 말했다. 정신차려. 넌 물고기야.
 
 
저건 무지개 다리야.
틀림없어!
이제,
난 '날개'를 달고 '노래'할거야.
 
 
하지만,
내가 만난건
'그물'이란 '벽'이었다.
'시장'이란 곳에서
나는 '칼'을 든 사람에게
'잘렸다'

 
 
더러운 '쓰레기통'에 처박힌 나.
위로 보이는 칙칙한 회색천장이
비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마라.
튀지마라.

 
 
아니야. 아니야.
잠들면 안돼! 그래도 난 날아 오를거야. 난 노래할거야.


그래서 어떻게 됐냐구?

봐! 날고 있잖아.
잘봐, 네가 있는곳 어디서든 하늘을 보라구.
들어봐, 네가 무얼하건 언제나 내 노래가 들릴거야.
만약.... 내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시장 쓰레기통'에서
그냥 '잠들었기' 때문이야.
우린, 날수있어! 노래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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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1. 1월2일부터 자전거를 타고 신도림까지 왔다갔다하고 있다.

우리집은 서울에 있는 시흥동이라는 곳인데 거기서 자전거를 타고 안양천를 따라 신도림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시 지하철로 갈아타서 사무실로 온다.

내가 타는 자전거는 내 자전거가 아니다. 사무실활동가의 자전건데 내가 잠시 가지고 있다.

근데 그 자전거는 안장이 플라스틱같다. 엉덩이가 정말 아프다. 그래서 오늘 아침, 같이 출근하는 활동가친구한테 "야 나 자전거 타니까 엉덩이가 아파" 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너 엉덩이가 무거워서야"

맞다. 나 엉덩이가 무겁다. 살면서 그런생각 몇번해봤지만 오늘처럼 귓속에 팍팍 들어온것은 정말 처음이다. 나쁜놈! 지는 엉덩이 안무겁나? 그래서 나랑 그 친구는 재미있게 논다.

어쨋든, 안양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다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휙휙 지나간다.

자전거를 타면서 발견한 몇가지 신기한 사실도 있는데 첫번째는 내 앰피쓰리 밧데리가 엄청 빨리 없어지는것, 그리고 밤11시나 12시에 퇴근해서 집에 타고갈때는 정말 멀게만 느껴지는데, 출근길에는 진짜 가깝게 느껴지고, 신기하다.

사실 내가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담배로 지친 내 폐를 가꾸기 위함이오, 쓸데없는 내 뱃살과 크리켓 배트같은 내 허벅지의 살을 빼기위해서다. 이 두가지로 인해 자전거를 이틀동안 탔다.

근데 그냥 타도 재미있다. 혼자타는것도 재미있지만 둘이타면 더 재미있고, 셋이타면 왠지 한명이 소외될것 같다. 근데 장갑에 빵구가 나서 손이 시렵다.

그래서! 자전거는 재미있다. 예전에 수서~통영/춘천~남원를 자전거로 타고 룰루랄라 하며 갔던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굉장히 재미있었다. 흥미로웠다.

이번년도에 시간이 난다면 문경세제를 넘어 제주도까지 놀며놀며 가도 좋을것같다.

난 지금 일해야 되는데, 이러고 있다.

 

2. 기독교성경의 담론은 참 거대하다. 종교를 한번 크게 건드리고 싶으나 그 커다란 담론속에 옹기종기모여있는 신도들과, 그리고 담론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한면만바라보는 기독교를 건드리기 무섭다.

내가 좀 더 공부를 해야할 부분이다.

 

3. 이명박의 대운하, 전격 작전!

환경운동과 인권운동이 새롭게 만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야한다.

단기적인, 한번 수면위로 떠오르다 마는 그런 연대운동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운동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4. 리플

난 리플이 달리면 참 좋아요.

홍지랑 달군 감사!

어쨋든 난 유명한 사람을 보고 나서 참 기분이 좋다. 오호~유명인!

 

5. 난 일에 대한 압박보다 식사당번일때 어떤 밥을 할까라는 압박이 더 심하다

오늘도 나 밥을 했는데, 욕을 먹었다. 뭐 사실 욕은 아니지만 그 무언의 압박들

마치 들장미소녀캔디에 나오는 조르쥬아저씨의 기분같다.

난 조르쥬 정말 좋아했건만, 심지어 그림도 그려서 책상에 붙여놓은적도 있다.

 

6.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는게 참 좋다. 그런 자리가 꼭 술자리여야한다는 쓸데없는 편견은

없어져야 한다.

 

7. 좀 만 자고 일해야지. 빨리 기타이야기를 올려야하는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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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의 시대1

몇해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기타는 삶에 있어 두번째로 소중한 것이었다.

내가 기타를 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2학년때 엄마는 내게 성당에서 가르쳐 주는 클래식기타를 배우라 하셨다.

그래서 배웠다. 그때는 사실 기타란 악기에 관심을 두는것보다는 아는 형들, 친구들이랑

다니는게 좋아서 배웠는데 그때 함께 치던 사람은 끝까지 열심히 쳐서 한곡을 다 쳤다.

그때 처음 배웠던 노래는 콜로라도의 달? 인가...

콜로라도에 달밝은 밤은~마음그리워~저 하늘~ 대충 기억은 안나지만 이런 노래였다.

2학년때 처음 샀던 기타는 나와 엄마의 갈등과 불화로 인해 넥이 부서지는 수모를 당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중1때, 기타를 다시 잡게 되었다.

삼익 통기타. 당시에는 삼익이나 한국메이커들은 다 싸구려인줄만 알고 있어서 내가 싸구려를 들고있다는 생각에 좀 기분이 나빴다.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한곡두곡 치다보니(특히 김광석)

오. 삼익기타도 기타가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 친구는 일렉기타를 가지고 있었다. 일렉기타는 전기로 인해 소리가 나서 그랬는지, 그리고

그때당시 또 락에 한창 빠져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굉장히 부러웠다.

결국 중1말인가? 기타를 장만했다. 그 기타로 차우차우~박하사탕 등 여러가지 곡들과 쉬운 펑크를 많이 쳤다. 꾸준히 쳤다. 졸업논문을 발표할때 나랑 나름 라이벌이었던 친구가 작곡발표를 하자

셈이 나버린 나는 -그 친구가 작곡한 곡은 표절!- 이라는 소문까지 퍼트리고 다녔다.

참 웃겼다.

 

고등학교 때 들어와서 기타를 다시 장만했다.

당시에는 빈티지기타라던지 깁슨 펜더 뭐 이런거 다모르고 있었고, 에피폰이라는 깁슨 밑에 회사.

쉽게 말하자면 진보네트워크 안에 진보블로그 이런식으로(맞나?)

어쨋든 에피폰은 그런 회사였다. 중국제 였지만 그래도 꽤 열심히 쳤었다.

한국노래에서 벗어나 좀 더 많은 제 3세계 음악이라던지 재즈, 펑키, 그 밖에 다양한 음악들을 많이 듣고 많이 마스터 하려 애썼다.

그러다가 블루스에 빠졌다. 비비킹이 너무나 신같이 보였고, 에릭클린튼은 톤이 개작살 난다고 생각해서 큰맘먹고 기타를 비싼걸로 바꿨다.

바꾼 기타가 펜더였는데 진짜 소리가 끈적끈적했다. 79년도 기타였다.

한창 펜더로 별짓 다하고 다시 기타를 바꿨다. 이번에는 나도 도을 모으고 돈도 어디서 빌리고 보태서 장만한 기타가 깁슨이었다.

시규어로스라는 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깁슨기타에 바이올린활을 연주하는데, 그거보고 와아~

해서 나름 톤도 연구하고 이펙터도 연구해서 얻은 결과가 깁슨이었다.

아마 평생같이 살것같은 기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많이 후까시 들어가고 가오잡고 했던 밴드생활이었다.

친구들과 3년동안 미친듯이 밴드를 했고, 지금은 과도기지만, 밴드부장까지 역임하시며

앰프사게 돈좀 주세요 라는 부탁도 학부모들에게 해보고, 그래서 앰프를 사고 했던 그런 기쁨은

참 좋았던 것같다.

 

 

지금은 기타를 잘 치지 않는다.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시간관리를 잘 못해서 그럴것이다.

그래서 좀 다시 연습을 제대로 해보려고 하는데 되겠지?

 

노래도 안부른지 오래됬다.

노래도 다시 슬슬 불러보고 싶다.

 

활동과 나, 활동과 기타는 참 좋은 조합인것 같다

 

 

 

다음에 2탄!

 

펜더 짭퉁과 에피폰!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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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31

1.춘천은 서울과 달리 술먹고 택시를 타고 만원 이하로 나와서 참 좋았다.

참 좋았던 그 순간이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2. 아버지와 나는 자주 싸운다.

내가 집에만 오면 아버지와 나는 항상 싸웠다.

이번에 춘천에 와서 아버지와 목욕탕을 갔는데 목욕탕을 가기전부터 나와 아버지느 미친듯이 말싸움에 말싸움을 거듭하며 차 안에서 까지 말싸움을 하면서 목욕탕에 들어갔다.

아버지 앞에서 담배를 피지 못해서 난 똥누러 간다라는 말을 하고 화장실에서 담배한대를 피고목욕탕으로 들어갔는데 열탕에 들어가 계시는 아버지가 뜨거운 열탕으로 들어오라고 하신다.

싫다고 하니 아버지는 또 나에게 조용히 뭐라뭐라 하시는데 또 거기서 내가 아버지에게 말대꾸를 하자 아버지는 "너는 그게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냐" 라며 나를 나무라고 거기서 내가 한 번 더 이야기를 하자 "너 그렇게 해서는 사회생활힘들다. 너가 진리인줄 아냐" 라고 하신다.

사실 나는 아버지와 싸운다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저냥 재미있는 대화를 하고 싶은데 자꾸 대화가 이상한쪽으로 흘러간다. 아버지가 항상 하는 말은 똑같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항상 내게 말을 하기전 서두에 이렇게 이야기 하신다. "또 내가 이런말해서 니가 듣기 싫겠지만" 이라던가 "너가 듣기싫어도 들어야해" 라는 말씀을 꼭 하신다.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난 발견하는것이 많다.

그렇지만 대화의 시작과 중간, 절정과 결말에서 기분이 팍 상하고 마는것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3. 크리스마스나 명절, 그리고 연말 연시는 내게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이번 연말은 술을 정말 많이 마셨다. 그러면서 나는 술마시면 안되는데....안되는데...하면서

결국 새벽 4시 5시 6시 7시 8시 그래도 이야기는 많이 하니까 좋다.

 

4. 내일 저녁에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

 

5. 2008년 복 많이 지으세요. 더 싸워요~

 

6. 뻘소리도 뻘소리지만 진심과 진심아님을 가려서 이야기 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 싶다.

 

7. 최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최선생은 내게 잘 지내라며 밥한번 먹자 하였다. 난 예의상 전화를 한것인데 상대방은 전화를 진심으로 받아버렸다. 예의상한 전화와 진심으로 한 전화는 무엇이 다른것일까?

 

8. 앞으로 이재영은 어떻게 지낼까?

 

9. 호접지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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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림한 시대가 이미 예전에 왔었다.

이제는 슬림하지 않으면 위축되는 시대다.

빌어먹을

 

그렇게 인식이 되버린 나, 그리고 슬림한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들

그렇게 변하게 두었던 우리시대

 

전쟁이다.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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