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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2006년 프로그램, 리스본 전략

   

유럽 노동법제 현대화 등 검토
유럽집행위원회 2006년 프로그램 발표

유럽집행위원회는 ‘유럽의 잠재력을 깨우기 위해’라는 2006년 프로그램을 발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해외노동동향’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유럽이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며, 유럽이 지금과 같은 호황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대화가 필수임을 강조한 것이다. 고용과 관련해서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고, 보다 나은 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2006년이 개정된 리스본전략(고용창출과 성장)을 현실화하는데 고비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기술과 지식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핵심요인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지리적, 직업적 이동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유럽의 고령화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라며 이주노동자를 EU차원의 불법체류자 단속 공동정책을 세울 것을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노동법제를 현대의 흐름에 맞춰 검토, 정부 견해를 발표하고, 성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해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 속에서의 성장, 번영 그리고 연대 : 남녀간의 평등을 위한 로드맵’이라는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또한 노동과 보건, 안전정책을 쇄신 및 보강하기 위한 의견서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리스본전략(또는 리스본아젠다)은 지난 2000년 3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유럽연합(EU) 15개국 정상들이 합의, 서약한 유럽의 장기적인 발전전략이다. 유럽통합을 완성할 계획으로, 2010년까지 3%대의 경제성장률과 70%대의 고용률, 금융 및 유통 등의 서비스시장 통합을 이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윤정 기자  yon@labortoday.co.kr
2006-01-03 오후 12:00:19  입력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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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국제노동조합운동 재편 흐름

   

국제노동조합운동의 재편이 다가오고 있다
국제자유노련과 세계노동자연맹 올해 11월 통합…새로운 국제노동조직 창설

현재 국제노동조합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최대조직인 국제자유노련(ICFTU)과 기독교계열의 국제노동조합 조직인 세계노동자총연맹(WCL)이 통합하여 새로운 국제노동조직을 창설함으로써 국제노동운동의 재편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2004년말에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ICFTU 제18차 세계대회에서 만장일치로 WCL과의 조직통합이 결의된 데 이어, WCL도 지난해 11월말에 브뤼셀에서 개최한 제26차 세계대회에서 ICFTU와의 조직통합에 의한 새로운 국제노동조직 창설을 85% 찬성(10% 기권, 5% 반대)으로 의결함으로써, 양 조직의 공식기구를 통한 조직통합 결의 절차가 완료된 것이다.

▲ 강충호 한국노총 국제국장.
그 과정에서 양 국제조직은 오는 11월 1~3일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새로운 국제노동조직의 창립총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창립총회 하루 전날인 10월30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ICFTU와 WCL이 각각의 임시총회를 열어서 조직해산을 완료하기로 하는 등 세부적인 추진일정도 확정되었다.

그런 가운데 지난달 9~10일에 홍콩에서 개최된 ICFTU 집행위원회의에서는 양 조직의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통합조직의 규약(안)을 놓고 심도 깊은 논의가 진행되는 등 새로운 국제노동조직의 창설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국제노동조합운동의 역사와 조직 현황

그동안 국제노동조합운동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에 창립된 세계노동조합연맹(WFTU)과, 동서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영국 등 자본주의 국가의 노총들이 세계노련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창립한 국제자유노련(ICFTU), 그리고 1920년에 창설된 기독교 계열의 노동조합의 국제조직으로서 1968년에 종교주의를 철회하고 명칭을 변경한 세계노동자총연맹(WCL)의 3개 조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WFTU와 ICFTU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상호대립하면서 국제노동조합운동을 양분해 왔으나, 1980년대말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WFTU 가맹조직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ICFTU가 국제노동조합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게 되었다.

최근 각 조직의 공식자료에 따른 조직규모를 보면, ICFTU가 150개국 231개 조직의 1억5천만명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는데 반해서, WFTU는 북한, 베트남, 쿠바 등의 사회주의 국가와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120개국 1억3천만명의 조합원을, WCL은 아프리카와 남미를 중심으로 116개 국가의 144개 조직의 2천6백만명의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WFTU와 WCL의 실제 조직규모는 훨씬 작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ICFTU와 WCL의 통합 추진 배경과 경과

ICFTU와 WCL의 통합논의는 WFTU를 탈퇴한 서유럽의 노총들이 ICFTU를 창설하면서 기독교 노동조합들에게 함께할 것을 요청한 데서 드러나듯이 오랜 역사를 지닌다. 당시 ICFTU의 요청에 대해서 WCL의 전신인 국제기독교노동조합연맹(IFCTU)이 노동조합운동의 다원주의 원칙과 냉전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노동조합운동을 거부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합류를 거부하였지만, 1960년대말 WCL이 종교적 색체를 걷어내면서 양 조직의 이념과 정책이 유사해진 데다가, 1974년에 WCL의 유럽지역 가맹조직들이 ICFTU 가맹조직들이 창설한 유럽노련(ETUC)에 가입하면서 양 국제조직의 통합 주장이 또다시 제기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말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세계노련(WFTU)을 탈퇴한 동유럽과 남미지역 조직들의 가맹을 둘러싸고 ICFTU와 WCL간에 경쟁과 갈등이 생겨나면서 양 조직 간의 통합논의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0년 4월에 남아공에서 개최되었던 ICFTU 제17차 세계총회에 참석한 윌리 타이스(Willy Thys) WCL 사무총장은 “두 조직은 비슷한 정책방향을 갖고 있는 만큼 단결해서 같이 투쟁해야 한다”는 ICFTU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서 “세계수준에서 노동조합의 단일구조가 유익할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고 반박하였고, 이후 계속된 ICFTU의 통합제안에 대해서도 소극적 내지는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하지만 ICFTU와 WCL은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사회포럼(WSF)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양 조직 지도부 간에 조직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한 끝에 각조직의 최고 의결기구인 세계총회를 통해서 공식적인 결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조직 통합에 따른 논란과 쟁점

ICFTU와 WCL의 통합이 결정된 가운데, 통합조직의 기조와 원칙, 정책과 조직 등 제반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협상이 진행되면서 적지 않은 논란과 쟁점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기존조직의 단순한 통합이 아니라 조직 통합을 통한 새로운 국제노동조직을 창설하기로 한 만큼, 새로운 국제조직과 기존 조직들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와 함께, WCL이 적극 제기하고 있는 ‘다원주의(pluralism)’에 대해서도 조직의 결속력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새조직의 기조와 원칙을 놓고 ICFTU와 WCL 간에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WCL이 기존의 준회원(Associated Membership) 제도를 새 조직에 그대로 존속시키자는 주장에 대해서 ICFTU 조직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지도부 선출이나 의석배정에 있어서도 ‘맹비를 납부한 조합원수’라는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통합조직의 최고의결기구가 될 세계총회에 참석할 대의원수 배정에 있어서 WCL의 요구에 따라서 소규모 조직들에게 상대적인 혜택을 주는 문제는 소규모 조직이 많은 WCL의 조직현실을 감안하여 받아들이는 쪽으로 양해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며, 그럴 경우 ICFTU와 WCL 가맹조직들이 통합조직에서 배정받게 될 대의원수는 각각 787명과 157명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WCL의 기존 조직들 가운데 실체가 없는 유령조직들이 적지 않고 조직규모도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는 등 정확한 실태파악조차도 어려운 현실은 조직통합에 있어서 장애요인이 될 것이며, 지역조직과 산업별 국제조직의 통합과 세계조직과의 관계 설정 문제도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쟁점들에 대해 ICFTU와 WCL은 각각 조직내부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상호 간에 협상을 계속하여 오는 6월말까지 논의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국제노동조합운동의 재편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ICFTU와 WCL이 예정대로 오는 11월에 통합하여 새로운 국제노동조직이 출범한다는 것은 국제노동조합운동이 기존의 세계노련(WFTU)과 새로운 조직의 양대축으로 재편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우기 80년대말 이래 쇠락을 면치 못하고 있는 세계노련(WFTU) 내에서 조직을 해산하고 새로 출범하는 국제노동조직에 함께 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노동조직의 대통합도 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이처럼 국제노동조직이 상호협력과 조직통합을 추진해나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에서는 기존의 양대노총이 조직통합은 고사하고 지난 1년여 동안 유지해 오던 공조마저 파기하였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제3노총' 창립도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2007년의 복수노조 시대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을 고민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단결과 통합을 추진해나가고 있는 국제노동운동의 최근 상황은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는 마당에 일국 내의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충호 한국노총 국제국장 
2006-01-11 오전 10:49:08  입력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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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유럽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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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유럽-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구대륙, 다양한 문화의 보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복지사회, 자유로운 사상과 정치적 자유의 땅.

유럽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유럽은 개인주의와 자국 문화 우월주의가 판치는 곳이며, 미국과 경쟁하는 또 다른 패권주의이며, 과거 영광의 향수에만 젖어있는 민족들로 비춰지기도 한다. 비교의 대상으로건, 선망의 대상으로건 아니면 비판의 대상으로건 우리는 자주 유럽을 언급한다. 유럽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또한 사람은 자신의 계급적 처지와 당파성에 따라 똑같은 현상이라도 제각각 다른 해석을 한다. 유럽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이렇다’라는 해석이 어떤 이에게는 유럽찬양론으로 비칠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유럽비판론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미국을 바로 알자’는 지성인들의 지미(知美)론이 반미(反美)라고 비판되기도 했었다. 어쨌거나 선진국으로서의 유럽 나라들은 우리가 뒤쫓아 가야 할 앞선 나라들이지만, 경제적으로 우리와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경쟁국가들이기도 하다.

희망적 모델이자 닮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

유럽은 우리에게 미래사회의 희망적 모델이 될 수도 있고, 닮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유럽은 어떠한가’라는 현상적 분석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유럽이라는 물건의 질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이 물건의 용법을 알고 활용하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유럽의 지성사는 이데올로기와 사상의 준거모델을 제공하고 있고, 유럽의 역동적 사회사는 사회적 이슈의 풀(pool)로서 손색이 없다. 이미 우리에게 유럽사회는 사고에 있어서 하나의 준거모델이 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2월 14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1차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공개적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독일은 일부 영토까지 포기할 정도로 역사인식을 철저히 청산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이런 독일의 역사인식은 단순한 사례가 아니라 대일 입장 표명에 있어서 정책적인 준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과거사 청산과 독일 통일의 교훈

우리의 과거사 청산문제에 있어서도 프랑스의 사례는 자주 인용되고 있다. 나치로부터의 해방을 맞이한 프랑스에서는 역사적 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나치 협력자들을 대대적으로 축출하는 대숙청을 단행했다. 천재 작가 로베르 브라지야크가 총살됐고, 르노자동차의 루이 르노 회장은 수감 중 옥사했으며, 민족주의 사상의 대부 모라스와 프랑스 최고급 식당 맥심의 사장도 감옥에 갇혔다.

프랑스의 대숙청은 대문호·대기업 총수·유명 배우를 가리지 않았다. 99만 명의 사람들이 나치협력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이중 즉결처분되거나 사형이 집행된 사람들만 1만 명에 달했다. 결국 우리와 전혀 다른 선택과 결단을 취했던 프랑스는 오늘날 과거사의 인식이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프랑스의 대숙청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역사적 교훈에 가깝다.

우리 민족의 궁극적 염원인 민족통일 문제에서도 독일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노태우 정권 때 북방정책의 모델이 되었던 것은 서독정부의 동방정책(Ost Politik)이다. 하지만 북방정책은 동방정책의 본질적 문제의식을 담아내지 못했기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동방정책이 동독과 동독의 우방을 지원함으로써 동독의 국제적 입지를 강화시켰던데 비해 북방정책은 북한과 북한의 우방을 분리함으로써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유럽을 뒤흔든 사건이 주는 시사점들

때로는 유럽 사회를 강타한 사건들을 보면서 불행을 준비하고 예방하는 반면교사로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의 광우병 파동, 스페인 민족주의 집단의 테러사건, 프랑스의 석면 대참사와 AIDS 혈액 수혈파동 등이 그러하다. 우리는 유럽을 혼란으로 빠뜨린 이런 사건들에서 충분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으며 똑같은 사건이 되풀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사적 흐름이나 사회발전의 방향에서는 충분히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아날학파(Annales)의 태두인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정치사를 ‘사건사(l'histoire événementielle)‘라고 조소하며, 역사흐름의 파악은 수세기에 걸친 이른바 중장기(longue durée)라는 시간적인 개념에 입각해서 볼 때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개별적인 역사적 사건은 하나의 물거품 같은 것으로 역사 전체의 흐름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했다.

물론 거시적으로 이런 역사적 관점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건사는 사건사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다. 사건 하나 하나가 앞뒤의 맥락 없이 발생하지는 않으며 각각의 사건은 충분한 사회적 모순과 시사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유럽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근대 이후 유럽은 세계사의 중심이었다. 지성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류가 공유하는 많은 사상과 이데올로기와 가치는 유럽에서 만들어졌다.

인간에게 역사는 거울이다

역사적 인식은 언제나 중요하다. 인류는 역사라는 시간의 궤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과거-현재-미래는 연속적이기 때문이다.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고사성어 중 ‘전사지불망 후사지사(前事之不忘 後事之師)’라는 말이 있다. ‘지난 일을 잊지 않음은 뒷일의 스승이 된다’는 의미다. 인간에게 역사는 하나의 거울이다. 우리는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과거를 반추해봄으로써 현재를 개척할 수 있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사회의 발전과 진보는 일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가치의 문제이다. 따라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선진적인 나라들의 역사는 일국사가 아니라 인류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고 다른 나라에게도 역사적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동적인 유럽의 사회사는 사회적 이슈와 이념과 가치의 생생한 교과서다. 유럽 사회사를 통해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리면 된다. 유럽은 장점도 많고 나름대로 문제점도 많다. 유럽이라는 다른 산의 돌이 우리 사회의 미래라는 ‘옥’을 가리는데 도움이 된다면 유럽은 충분히 우리의 거울이 될 수 있다.

유럽의 궤적과 고민속에서 찾는 우리의 미래

그들의 사고와 이념의 궤적, 그들이 사회를 변화하고 발전시킨 과정, 그들이 제기했던 사회적 이슈들, 그들의 현재의 고민들을 살펴보면서 그 속에서 옥석을 가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옥들을 찾아낸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그만큼 더 희망적일 수 있다. 또한 그들의 좌절과 혼돈 속에서 우리 사회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불행의 개연성을 찾아내고 대비한다면 우리는 미래의 불행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유러피언 드림 속에서 우리는 코리언 드림을 그려내야 할 것이고 그들의 좌절 속에서는 우리의 불행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요즘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문제로 온 사회가 들끓고 있다. 난자 공여문제로 불거진 연구윤리 논쟁, 국익과 진실 간의 갈등 문제, 언론의 취재윤리 논란 등은 유럽 사회들도 이미 홍역처럼 한번씩은 겪었던 문제들이다. 유럽의 과거와 현재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는 의외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최연구: 프랑스 마르느 라 발레 대학교에서 ‘남북통일과 독일통일의 지정학’이라는 논문으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겨레 21 파리통신원,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한국어판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한국과학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이언스타임즈 편집장 겸 주간을 거쳐 현재 한국과학문화재단 BSC구축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프랑스 문화읽기(중심, 2003)' '르몽드(살림,2003)'등이 있다.
등록일 : 200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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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유럽 가스본쟁, 무엇을 배워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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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가스분쟁,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시베리아 송유관 남북협력…안정적 에너지 공급선 만들어야
러시아가 터키에 건설하고 있는 블루스트림송유관.
과거 공산국가 시절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던 우크라이나가 90년대 초 독립이후 지난 10여년 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그래도 과거 형제국으로서 사이 좋게 지내왔다. 동유럽 국가들은 독립해 구 소련의 정치적 영향권에서 벗어났어도, 석유와 가스 등 산업에 필요한 원자재의 상당 부분을 러시아로부터 싼 가격으로 공급받아 왔고, 러시아 역시 이런 정책을 통해 자국의 영향력을 계속 행사해 왔다.

그런데 작년부터 과거 소비에트의 위성국가였던 동유럽 일부국가들, 예컨데 폴란드, 체코, 헝가리가 이미 유럽연합에 가입했고, 또 내년에는 불가리아나 루마니아도 유럽연합에 가입할 전망이다. 만약 이런 추세가 계속 된다면 유럽 국제정치에서 동유럽 국가에 대한 러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은 현저히 감소될 것이다. 특히 작년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를 가져온 친서방적·반러시아적 '오렌지 혁명'은 대국 러시아의 영향력과 자존심에 결정적으로 흠집을 낸 사건이었다.

러-우크라이나 갈등 EU국가들까지 파장

이 오렌지 혁명 이후 작년 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천연가스 가격을 현재보다 5배 올리겠다고 발표해 우크라이나와의 긴장은 물론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가스관을 통해 가스를 공급받는 독일,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다른 유럽연합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체 가스 소비량의 30%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는 독일이나 헝가리, 18%를 의존하는 오스트리아는 물론 다른 유럽연합국가들에도 타격이 크다. 현재 러시아가 유럽에 수출하는 가스의 80%가 우크라이나 가스관을 통과하고 있고, 당장의 수급 차질은 크게 염려되지 않지만,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중단은 유럽 경제는 물론 유럽연합의 동유럽으로의 통합 확대 등 정치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강추위를 동반한 폭설이 내린 유럽의 연말 연시에 유럽의 언론들이 당장 1월 1일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한 러시아의 결정을 톱 뉴스로 장식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에너지를 무기로 겉으로는 구 동유럽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시위하고 있지만, 그 파장의 궁극 목표는 유럽연합이 과거 바르샤바 조약국가인 동유럽으로까지 서유럽의 이념을 계속 확장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즉 유럽연합이 자신의 고유한 철학적 가치와 정치적 이념인 민주주의를 계속 구 공산권에 수출하고 있는데 대해 러시아도 이에 동유럽과 유럽연합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무기로 맞대응하고 있다.

에너지원 확보라는 새로운 형태의 분쟁

냉전이 종료한 이후 오늘날의 국제정세는 지속적인 개발과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원 확보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미 역사적으로 독일이나 일본이 2차 대전에서 자국 국경선과 인접한 지역 이외로 전쟁터를 확대한 이유는 단순히 영토 확장이 아니라 석유 등 에너지 확보를 위한 것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는 국제정치학자들이 많다. 중국 역시 최근 인권문제로 서방으로부터 고립되는 아프리카나 이란과 같은 나라에 대해 외교적 행보를 활발히 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중국의 지속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원 확보이다.

이 점에서 지난 연말 총리의 중동 순방외교라든가 최근 이라크 파병 연장안 의결은 이와 같은 장기적인 에너지원 확보 정책이라는 점에서 조명할 수 있다. 특히 이라크 파병 명분에 대해 국론이 엇갈린 적도 있지만, 파병 결정은 한·미 관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성장과 개발을 위해 우리가 민주주의나 인권과 같은 명분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국익을 위한 실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결과로 생각된다.

명분 중요하지만 국익 위한 실리도

특히 우리로서는 석유나 가스를 언제까지나 중동에만 의존할 수 없고, 그 때문에 이미 재작년과 작년 대통령이 과거 소련 연방에 속하던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에너지 국가들을 방문한 바 있다. 중동 이외에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국가로부터 석유나 가스를 싼 가격에 안정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그러나 무엇보다 시베리아 송유관 사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최근 일부에서 민주주의나 인권과 같은 측면에서 명분상 대북한 지원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장기적으로 시베리아 송유관 사업이나 대 유럽 수출 물류환경 개선을 위한 남북한 철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과 같은 프로젝트는 미래 에너지 확보와 수출 경쟁력 제고를 위해 대표적인 사안이다. 이런 사안은 결국 북한의 협조 없이는 실현 가능성이 없으므로 그 때문이라도 다소간의 명분론은 일시적으로 접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이 바라보는 북한의 인권 문제와 한국이 보는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시각차는 이런 점에서 당연해야 하는데, 국내 일부 언론에서 미국의 시각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쉽다. 최근 유럽의 에너지 전쟁을 계기로 남북 관계 등 복잡한 국제정세를 한번 되새겨 본다.


윤종석 주독홍보관
등록일 : 200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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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프랑스 새 성장모델 모색 - 우파 좌파정책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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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지금 새 성장모델 모색중
모든 국민이 혜택 누리는 근본적 사회개혁에 초점
프랑스 사회경제는 자유시장 경제와 국가의 경제기획을 강조하는 사회주의를 절충한 제도를 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프랑스 사회경제제도는 저성장, 실업, 과도한 사회보장으로 인한 재정적자의 내적 요인과 세계화라는 외적 요인에 의해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최근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 인근에서 발생된 폭력소요 사태는 프랑스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사회 계층별 불평등의 심화

프랑스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에도 시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마주치는 사회조건은 상대적으로 퇴보하고 있다는 데 있다. 프랑스 사회는 전통적으로 양분화된 계층 구조를 가지고 있다. 총 경제활동 인구의 약 60 %정도를 차지하는 서민층은 중산층에 비해 소득 수준이 2.5~3배 낮으며, 실업률 수준은 3~4배 높다. 따라서 서민층 자녀들은 고등교육을 받는 기회가 적어지고 이는 또 다시 계층 간 소득의 차이를 만들며 각 세대가 누리는 사회혜택 면에서도 격차가 벌어지는 사회적 불평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대도시 인근에서 발생한 폭력소요 사태로 인한 정부의 비상사태 연장 결정에 반대하는 프랑스 시민들.
경제성장으로 얻은 부의 분배가 불균형적으로 이루어 질 때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은 깊어지게 되는데 프랑스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예를 들면 1987~95년 사이 월급에 의한 실질적인 소득 증가는 거의 없었지만, 주식투자로 인한 실질소득 증가율은 평균 84%, 채권 수익은 105%, 그리고 부동산 가치는 33% 증가 했다 (프랑스 통계청 자료).

실업이 늘어나고, 특히 청소년 및 50대 이후 세대들의 고용 위기가 심각해진 1990년대 이후에는 사회 계층 간 소득 차이가 더 심화되고 있다. 한 예로, 기업이 창출한 총 부가가치 (노동수입+자본수입) 대비 노동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하락 추세에 있어 기업 이익창출에서 차지하는 노동자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이는 봉급생활자들의 사회적 협상 능력이 자본 능력에 비해 점점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단순한 경제 주도 정책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르몽드(2005년 9월 1일자)는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이 과연 국민이 만족할 수 있는 사회 성장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이 신문은 매우 낮은 경제 성장률이 적절한 부의 재분배를 실현하는데 결정적인 제약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부유 계층의 소득을 축소해 재분배 정책을 구현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런 방법은 현대 민주자본주의사회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 추세에 따라 자본이나 기업이 자국의 높은 조세율이나 인건비를 피해 언제든지 타국으로 이전할 수 있기때문에 단순한 조세정책을 통한 재분배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따라서 조세정책을 넘어 선 종합적인 사회정책을 강구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사회 모델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고용증진 앞세워 사회 성장 달성

올해 6월 출범한 드 빌팽 총리 내각은 ‘고용 증진’을 앞세워 ‘사회성장’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종합대책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드 빌팽 총리가 말하는 사회성장이란 ‘모든 국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성장, 모든 국민에게 구매력을 회복시키는 성장, 그리고 고용을 창출하는 성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드 빌팽 정부의 종합대책은 고용, 경제성장, 국가재정, 민생경제, 교육 등 핵심적인 국가 정책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급격한 세계화 추세에 따라 기존의 사회경제 제도를 ‘현대화’ ‘세계화’의 궤도에 맞추어 가려는 정책 의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드 빌팽 총리가 말하는 ‘사회성장’은 단순한 경제 활성화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사회정책의 개혁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기본원칙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 양극화 해소 적극 개입

첫째, ‘정의와 책임’ 원칙. 프랑스와 같은 유럽 선진국이 안고 있는 문제는 경제적 위기가 아닌 사회적 위기에서 나온다. 사회불안정 요인이 되고 있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있어야 하는데 프랑스의 낮은 경제성장률로서는 파격적인 고용확대가 어려울 뿐 아니라, 늘어나는 실업으로 정부 실업보조금 혜택도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를 막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을 필요로 하게 된다.

드 빌팽 총리는 세제 및 서민주택 정책 등을 통해 공평한 부의 분배를, 그리고 고용, 교육 면에서 차별 없는 기회의 균등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사회성장은 모든 국민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있는 행위를 할 때 가능하다.  드 빌팽 총리는 “모든 시민이 참여와 자기 개발을 이루어 나갈 때 국민적 총력이 만들어 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시민의 책임있는 참여와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기 개발을 위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

예를 들면, 고용 확대를 위해 정부는 실업자가 취업하면, 실업보조금보다 높은 경제적 혜택을 보장함으로써 취업동기를 유발하고 아주 작은 노동에도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공정한 분배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실업자에게 매달 생활보조비를 지급하는데 이는 최저임금의 절반에 해당해 실질적으로 취업동기 부여를 하지 못했다. 이러한 불공정한 점을 시정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일정한 고용수당을 저소득 취업자에게 매달 지급해 정부 생계비 지원만을 받는 것보다 최소한 800유로 이상 즉 50% 이상의 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기업이나 국민 모두가 이러한 조치에 대해 연대적 책임의식을 갖고 동참해주길 권유하고 있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조화

둘째, ‘사회성장’은 경제 정책과 사회 정책을 조화시킬 때 가능하다. 유럽 선진사회는 가장 앞선 사회경제 제도(자유시장경제+사회복지제도)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이를 통해 불거진 문제들을 속시원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체 제도를 아직 찾지 못했다. 결국 드 빌팽 총리는 기존 제도의 혁신적인 변화보다는 실행 방식에서 시각을 넓히고 새롭게 함으로써 ‘사회성장’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자유시장제도가 현재까지 가장 바람직한 경제제도이지만 사회정의를 세워 주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자유경제 체제에서는 가진 자들이 못가진 자들보다 항상 유리한 조건에서 경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정부가 부의 재분배 뿐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인적 자원관리 측면에서도 공정한 재분배 정책을 수립할 때 경제가 사회와 조화를 이루면서 사회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프랑스 정부는 공정한 부의 재분배, 고용 창출, 기회의 균등 등을 주된 지침으로 삼고 경제와 사회 두 분야의 정책을 조화 있게 실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드 빌팽 정부는 고용증대를 통해 경제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사회적 연대성을 높이기 위한 후속조치로 고용정보를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 또 올 1월부터는 ‘고용서비스 수표제도’를 도입해 직장 근무로 인해 발생되는 가족관련 비용을 지원, 관리하고 새 고용계약, 기업 청소년 계약 등 다양한 노동계약을 실제화하고 인력 채용시 인종과 지역의 차별없이 고용의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민서민층에 대해서도 명문대 입학 특례를 허용하는 등 인적 자원 면에서 재분배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사회성장을 위한 구체정책들

프랑스가 2005년 9월에 발표한 사회성장 정책의 주요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 분야.

◆고용 정책의 활성화: 자발적인 실업을 줄이고 취업 동기 효과를 높이기 위해 파격적인 고용수당 제도 도입, 복잡한 사회보조금 제도 간소화, 실업연금 혜택자에 대한 체계적인 통제장치 강구.  

◆공공투자 촉진 및 교통인프라 현대화: 50% 이상의 정부차관과 재정경비를 감축해 연말까지 재정 적자를 국민총생산 3% 수준으로 축소. 공공투자를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고속도로 공기업의 일부를 민영화해 2006년도에 100억 유로의 재정수입을 확보.

◆구매력 제고 : 세제 개혁 특히 중산층에 대한 소득세 감면을 통해 35억 유로를 조세자에게 환원, 소득 과세기준을 7단계에서 4단계로 축소하고 재산소득세도 개혁하여 소비자 구매력을 제고. 사내 주주제도의 활성화와 세제 혜택을 통해 기업의 견고한 자금원을 마련하고, 경제적 애국주의 실현의 도구로 삼음.

◆에너지 비용 보조 : 저소득층 가계에 등유 난방비 지원, 석유제품 가격 안정조세를 운수업체 지원과 고용수당 재원으로 전용. 무공해 자동차 구입시 2000유로까지 세금 공제, 식물성 연료기름의 점진적인 사용권장, 고속 및 일반 도로에서 자동차 주행 속도 10Km 감속 등.

◆주택 보급 확대 : 서민 주택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 기존의 주택지원금, 무이자 주택융자 지원 폭 확대, 사용 목적을 제한했던 유휴 토지를 해제해 2006년 1분기까지 5000가구 서민주택 건설, 5000만 유로 국토개발자금을 즉시 주택환경개선사업에 투자한다. 사용되지 않는 건물을 정부가 구입하며 주택용으로 재건축. 2010년 올림픽을 위해 파리 북부에 확보한 파리 시소유 토지를 일정한 협정가격으로 민간주택업자에 매각, 주택 보급 확대.    


"기회균등 없는 자유경쟁은 속임수"

“경제문제는 경제로 풀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은 경제문제는 사회문제와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수많은 연구 및 통계가 공통적으로 밝히는 현대사회 문제 중의 하나는 기회의 불균등 현상의 심화다. 원론적인 말이지만 자유시장경제는, 기회가 균등한 가운데 각자의 노력에 따라 그 결과를 보상받는다는 논리를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기회의 균등이 없다면, 자유경쟁이란 어떤 모습이든지 간에 속임수에 불과하게 된다. 부유한 자는 자기가 가진 다양한 수단들 즉 부동산, 금융자산 등을 통해 노동을 통한 자산 증식보다 훨씬 빠른 시일 내에 더 많은 수익을 얻게될 뿐 아니라 많은 정보와 교육기회를 통해 불균형을 가속화, 지속화시키게 된다. 결국, 공정한 부의 재분배는 공정한 기회의 균등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서 경제문제와 사회관계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성장 정책을 통해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사회정책을 통해 ‘기회 균등’이 우선적으로 이뤄지는 가운데, 공정한 부의 재분배를 위한 경제제도가 계획되고 실시 될 때, 모든 국민이 책임있는 사회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며, 비로소 민주 복지 사회의 풍요함을 골고루 나눠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성장’ 정책이 최선이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다. 경제성장이 불투명하고, 누적된 재정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프랑스가 과연 ‘사회성장’ 정책추진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지, 또는 정책이 불명확하거나 효과 분석이 막연한 면이 있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프랑스가 당면한 사회위기를 어떻게 타개해가는 지를 면밀히 지켜 보면서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볼 때 ‘좌파’(?)적인 상기 정책들이 좌파인 사회당이 아닌 드골의 적통을 이어받아 위대한 프랑스를 꿈꾸는 ‘우파’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다시 한 번 음미해볼 만하다.   

이승유(주 프랑스 홍보관)
등록일 : 200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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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북핵폐기 다자주의적 접근해야 - 미 CSIS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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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폐기 다자주의적 접근 방식 바람직
미 CSIS 보고서 "'협력적 위협 감소'프로그램 북한에도 적용 가능"
2006년 동북아시아 지역 국제정치의 화두는 ‘한반도 비핵화’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 핵 폐기다. 장기적으로는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생화학무기들을 비롯한 모든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와 장거리 미사일을 없애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지만, 단기적인 초점은 핵 폐기에 모아진다.

지난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한을 비롯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이 합의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은 ‘핵무기 폐기와 핵계획 포기’를 약속했다. 아울러 핵확산방지조약(NPT)에 재가입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2004년 9월 북한이 미국의 적대적인 대북정책과 안보위협을 끝내지 않는 한, 6자회담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꼭 1년만의 긍정적인 변화다.

초점은 북한이 언제 어떻게 핵을 폐기할 것인가다. 미국 부시행정부는 북한이 핵 폐기 합의문 서명 뒤 몇 달 안에 이행되길 바라는 입장이다. 핵폐기야 빠르면 빠를수록 바람직한 일이지만, 우격다짐으론 될 일이 아니다. 6자회담 참가국을 비롯한 다자주의적 참여, 특히 무엇보다 당사국들인 남북한 사이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악수하는 6자회담 대표.

미 워싱턴에 자리한 영향력 큰 싱크 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최근에 내놓은 한 보고서는 북한 핵폐기를 순리적으로 풀어가는 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CSIS가 카네기평화재단(CEIP)의 후원을 받아 진행해온 연구의 성과물 가운데 하나인 이 보고서의 제목은 ‘6자회담과 저쪽: 협력적인 위협감소와 북한(The Six Party Talks and Beyond: Cooperative Threat Reduction and North Korea)’. 보고서의 3인 공동작성자는 조엘 위트(CSIS 국제안보분야 선임연구원) 존 월프스댈(CSIS 국제안보분야 연구원) 오충석(CSIS 국제안보분야 객원연구원)이다.

핵 폐기따른 '위협감소기금' 지원

보고서 제목에 들어있는 ’협력적인 위협감소‘(CTR)란 대량살상무기들(핵무기, 생화학무기 등 통칭 WMD)을 보유한 국가가 국제사회와의 협력관계 아래 위험스런 무기들을 폐기해 나가는 프로그램을 일컫는다. 1991년 소연방이 해체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옛소련 소속 공화국들은 미국, 유럽국가들과 손을 잡고 WMD와 관련 시설물들을 폐기 정리해왔다. 이 작업은 10년 넘게 이어져 2002년의 경우, 선진 8개국(G-8)은 ’위협감소기금‘ 명목으로 200억 달러를 WMD 폐기에 쏟아 부었다.

미국은 2005년 입법을 통해  ’위협감소기금‘을 옛 소련 소속 공화국들뿐만 아니라 북한과 같은 다른 국가들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의 매파들 사이에서는 북한과 주변 이해관계국들이 함께 뜻을 모아 핵폐기를 추진한다는 CTR 방식이 북한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란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CSIS 보고서의 결론은 긍정적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치적 환경을 적절히 조성할 경우라면 평양 당국과의 CTR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프로그램은 대량 살상무기의 위협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내놓음으로써 미국과 북한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6자회담의 재개와 더불어 가까운 시일 안에 CTR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실질적인 단계들을 밟아야 한다. 그 속에는 북한에 파견돼 일하게 될 중국과 한국의 인력 훈련도 포함된다. 미국도 지난 경험에 비춰 지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

협력이란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이다. 이 보고서는 CTR 프로그램에 처음부터 북한사람들을 참여시키면서 프로그램 자체를 ‘한국화’(Koreanizing)할 필요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러시아처럼 북한에서도 CTR 프로그램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상호협력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다.

보고서는 CTR 프로그램이 북한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달았다. 다른 무엇보다 미국이 러시아에 1990년대 초에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게도 비적대적인(non-adversarial) 접근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북한에 파견된 요원은 북한 당국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짓이나 스파이 행위는 삼가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북한 노선은 실용주의다”

지난날 동북아시아 지역의 상황을 돌아보면, 다자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던 게 사실이다. 힘에 바탕한 일방주의가 지배적이었다. 보고서는 CTR 프로그램이 북한에서 성공하려면 다자주의적 접근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금껏 진행돼온  베이징 6자회담은 다자주의에 바탕한 외교적 노력의 표현이라 말할 수 있다. 보고서는 6자회담의 구성원이 아닌 유럽연합 회원국들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해낼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보고서는 6자회담에서의 미국의 지도적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중국의 정치적 지원이 중요하며, 특히 한국이 미국에게는 북핵문제 해결에 더욱 중요한 파트너임을 새삼 확인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알렉산더 브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북한을 '범죄정권'이라고 부르는 등 대북 비난을 쏟아낸 것은 6자회담은 물론 한반도 평화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보고서가 북한 이데올로기의 기본요소를 실용주의(pragmatism)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실용주의가 현실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에서 얼마간의 제한이 따른다 하더라도, 미국의 영향력 큰 싱크 탱크가 낸 보고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리더십을 실용주의로 파악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이 보고서에서 논란이 되는 대목은 북한의 핵폐기에 드는 비용의 상당부분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한국이 ‘남북한위협감소법’(Inter-Korean Threat Reduction Act)이란 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켜, CTR 프로그램에 기금을 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법적 근거를 마련한 뒤, 기존의 남북협력기금 규모를 늘리거나, 별도의 재정기반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최대 연 3억2000만 달러로 추산되는 북핵폐기 관련 비용을 부담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아래는 92쪽 분량에 이르는 보고서의 주요내용이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은 동북아시아,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에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스런 존재다. 따라서 그것들을 분명히 제거하는 것은 지역평화와 세계적인 핵무기 비확산 측면에서 중요한 일이다. 베이징 6자회담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노력이 지닌 위협을 제거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됐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핵무기, 생화학무기, 미사일 개발계획을 없애는 과정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잇달아 관련 협약을 맺어야 하고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미국의 회의론자들은 CTR 프로그램이 북한과 같은 비밀스럽고 적대적인 체제에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 믿는다. 그렇지만 역사는 워싱턴과 모스크바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흐르던 시절에도 CTR 프로그램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북한과 다른 나라들 사이에 ‘정치적 정상화’(political normalization)를 위한 노력이 기울여진다면, 북한에게도 CTR 프로그램이 효과적일 수 있다.

2002년 핵위기가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에서는 정부-비정부기구-국제기구 요원들이 머물며 다양한 협력 프로그램들을 추진했었다. 앞으로도 미국, 일본과 북한 사이에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나갈 경우, CTR 프로그램은 북한의 핵 위협을 제거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WMD 제거과정에서 말다툼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그런 말다툼이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면 우호적인 관계뿐 아니라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정치적 대화와 기술적 대화가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 기술적 이슈가 문제가 될 때엔 정치적 대화로 타결점을 찾고, 정치적 분위기가 좋지 못할 때는 기술적 대화가 실용적으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CTR 프로그램 가운데 무엇보다 먼저 비핵화 과정이 추진돼야 한다. 6자회담이 타결돼 북한 비핵화가 추진되더라도 기술적인 어려움들이 기다릴 것이다. 따라서 핵폐기에 적어도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며, 비용도 2억 달러에서 5억 달러, 상황에 따라선 그 이상 들 것이다. 그 비용 속에 △핵무기 원료로 쓰이는 플루토늄을 북한 바깥으로 수송하는 비용 △원자로를 비롯한 핵무기 제조설비의 해체와 핵폐기물 처리를 비롯한 환경정화에 드는 비용 등이 포함된다.

CTR 프로그램에 따라 북한의 핵시설들이 해체되면, 평화적인 목적으로 전용돼 북한경제에 이바지 할 수 있다. △평화적인 핵연구소가 설립돼 의학용과 산업용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산하는 데 힘쓰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경우처럼 평양에 국제과학기술센터를 설립, 북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양성하는 중심기관으로 키울 수 있다. 한국의 기업들이 평양 국제과학기술센터와 함께 상업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할 경우, 북한 과학자들에게 민간부문의 새로운 역할을 맡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북한 핵기술자들이 민간부문의 필요에 맞춰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결론적으로 북한핵 폐기는 북한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쪽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 보고서의 건의사항은 다음과 같다.

◆ 미국의 지도력이 발휘돼야 한다: CTR 프로그램이 다자주의적 외교적 합의로 빛을 보려면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이해관계와 능력, 경험에 바탕해 그 나름의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워싱턴 당국은 이 보고서가 내놓은 원대한(far-reaching) 제안들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 다자주의적 능력(multilateral-capacity)을 키워야 한다: 미국의 잠재적 파트너들, 특히 중국과 한국의 협조를 얻어 북한에서 핵폐기 업무에 종사하게 될 관리, 전문가들을 일정한 기준 아래 교육시켜야 한다. 아울러 미국은 북한으로 하여금 CTR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애써야 한다.

◆ 비정부기구들(NGOs)을 활용해야 한다: 비정부기구들은 정부 차원의 공식 채널의 접촉을 돕고 보완하는 비공식 대화에 익숙한 전문가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나서서 방사선 보호, 건강물리학, 환경문제와 같은 비논쟁적인 주제를 놓고 북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북한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 국내의 정치적 지지와 기금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은 ‘남북한위협감소법’(Inter-Korean Threat Reduction Act)을 만들어, CTR 프로그램에 기금을 대야 한다. 남북협력기금을 늘리거나, 별도의 재정기반을 마련하는 방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 규모는 최대 연 3억2000만 달러(또는 한국 국방비의 2%)에 이르겠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밑돌 것이다.   

◆ 조직화가 중요하다: 국내외적인 기구들이 받쳐줘야 베이징 6자회담의 합의사항이 실천에 옮겨질 수 있다. 북한 핵폐기를 감찰하는 고위급 위원회, 북한의 제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실무적으로 챙겨주는 하위급 위원회, 그리고 핵폐기 작업이 일정에 따라 제대로 시행되는가를 확인하는 하위급 위원회 등이 구성돼야 한다.
만일 한국정부가 CTR 프로그램에 따른 북한 핵폐기 작업의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다면, 대규모의 CTR 사무국을 설치해 여러 부처와 회사들의 지원업무들을 조정해야 한다.

◎김재명:국제분쟁전문기자 겸 국민대강사. 1952년생. 서울대 철학과 졸업. 뉴욕시립대 국제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경향신문사 기자, 중앙일보 차장, 프레시안 뉴욕통신원 역임. 저서로 한국현대사의 비극:중간파의 이상과 좌절(2003.선인출판사),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국제분쟁전문가의 전선리포트(2005.지형출판사)

※ 외부 칼럼은 국정브리핑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등록일 : 200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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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북한 미사일 수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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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수출 논란
미 외교협회 "무신론의 북한과 이슬람의 이란은 손잡기 어렵다"
미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CFR)는 민간 차원의 싱크 탱크로서, 역대 미 행정부의 국제관계와 대외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1921년에 출범한 CFR은 국제관계의 다양한 주제를 객관적인 잣대로 연구하고 보고서를 제출함으로써 미 행정부의 실무자들은 물론 관련 학자들로부터 신망을 받는 미국의 대표적인 민간 연구기관이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지난날 CFR에서 활동했었다. 워싱턴과 뉴욕 두 곳에 사무실을 두고 미국의 대외정책을 분석 전망해온 CFR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격월간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의 발간 주체이기도 하다.

한반도 정책을 비롯한 대외정책이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하는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서는 그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지만, 싱크 탱크로서 CFR이 지닌 힘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만 해도 막강했다. CFR이 펴내는 연구보고서들은 미 대외정책의 방향타로 여겨질 정도였다. 당시 미 국무부 관리들은 CFR 문건들을 읽고 새 정책의 가닥을 잡거나 기존 정책을 수정 보완했다. 우리 한국 외교통상부 관계자들도 CFR 관계자들과 만나거나 그 연구 보고서들을 읽고나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방향을 가늠하면서 그와 관련한 대책을 미리 마련하곤 했다.

“북한은 테러를 지원하고 있는가?”

CFR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오늘의 북한이 과연 부시행정부가 ‘테러지원국’이라 규정한 나라들과 어느 정도의 협력관계에 있는가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부시대통령은 2002년 초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더불어 ‘악의 축’이라 낙인찍었다. 미 국무부는 2005년 봄 ‘테러리즘 유형’ 연례보고서에서 북한을 쿠바·이란·시리아·리비아·수단과 함께 ‘테러지원 6개국’이라 못 박았다. 미 국무부가 제시한 근거는 이들 나라들이 테러집단과 연계돼 있고, 대량살상무기를 테러집단에게 넘겨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1991년 옛 소련이 무너지면서 1990년대 초반부터 경제원조가 끊기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잇단 가뭄과 홍수로 자연재해를 겪은 북한은 1990년대 중반 들어 에너지난과 경제위기의 늪에 빠졌다. 달러가 한 푼이라도 아쉬운 북한으로선 미사일 기술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효자 수출품목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은 오늘날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테러지원국’이란 멍에를 씌우는 근거가 됐다.

이와 관련, CFR이 작성한 최근 문건의 제목은 ‘국가 후원자들: 북한’(State Sponsors: North Korea). 여기서 ‘국가 후원자들’란 다름 아닌 ‘테러 지원국들’을 가리킨다. 일반인들이 북한에 대해 품는 궁금증을 풀어주는 문답 형식으로 이뤄진 이 CFR 문건에 눈여겨 볼 대목은 “북한은 테러를 지원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단정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의 테러관련 혐의는 오래 전에 벌어졌던 비극적 사건인 KAL기 폭파사건(1987년)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이 CFR 문건은 북한이 KAL기 폭파사건 뒤로 20년 가까이 테러공격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만 북한이 미사일 기술을 반미 국가들에게 수출해왔다는 점을 인정한다.

SIPRI 연감에 나타난 미사일 수출규모

여기서 두 가지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 첫째는 미사일 수출 규모. 미국은 첩보위성을 비롯한 첨단 전자 장비들로 북한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본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미사일 수출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기엔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숫자로 딱 부러지게, 또는 “북한이 얼마 어치를 수출했다고 추정된다“고 밝히지 못하는 사정도 헤아려볼 일이다.

다만 한 가지 참고 자료가 있다. 지구촌의 전쟁과 평화, 군사 관련 연구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싱크 탱크인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해마다 발행하는 ‘군비 · 군축 · 국제안보 연감’이다. 지난해 9월에 나온 2005년도 연감에 따르면, 미사일은 북한의 주요 무기수출 품목이다. 1992~2004년 사이에 AT-4 대전차 미사일 3250기와 SA-16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1250기를 러시아로 수출했다.

SIPRI 자료가 정확하다면, 북한은 미국이 ‘테러지원국’이라 낙인 찍은 국가들에게도 미사일을 수출해왔다. 북한 스커드-C 미사일의 경우 시리아로 150기(1991~1996년 사이), 리비아에 5기(1999년), 예멘에 45기(2001~2002년 사이)가 각기 팔렸다. 한편 파키스탄에는 노동 1호 미사일(1996~1997년 사이) 2기, 이란에는 240㎜ 방사포(1988~1998년 사이) 100대와 스커드미사일 발사대(1993~1995년 사이) 10대가 팔렸다. 그러나 얼마에 팔렸는지는 안개 속이다.

둘째는 보도자료의 신뢰도 문제.
북한 미사일 기술이 지닌 위험성에 대해 미 언론들이 흔히 보도하는 근거자료는 지난 2001년 미 중앙정보국(CIA)이 발표한 ‘2015년까지 외국의 미사일개발과 탄도미사일의 위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그렇다고 추정된다”는 정도이지,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정보로써 작성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한국언론들조차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기사를 작성할 때 지난날 미국 언론 등을 통해 이미 보도됐던, 추정으로 이뤄진 미국자료들을 재탕 삼탕하는 경우들이 많다.

물론 북한이 군사기밀인 미사일 관련 사항을 공개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북한 미사일문제는 6자회담의 당면 현안인 북핵폐기 문제 뒤에 반드시 거론될 뜨거운 감자다. 외교적 대화를 통해 언젠가는 북한이 미사일 개발을 중지하고 현황을 밝힌다면, 한반도 평화는 물론 지구촌 평화를 위해 참으로 좋은 일이다.

다음은 CFR이 작성한 ‘국가 후원자들: 북한’ 요지다.  

▲ 북한은 테러를 지원하는가.
-북한은 1987년 대한항공(KAL) 폭파사건 뒤로 이렇다 할 테러공격에 연루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북한은 미국이 주도적으로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ism)에서 한 가지 두드러진 부분을 갖고 있다. 테러집단을 후원하는 다른 국가들에게 북한이 보다 앞선 미사일 기술을 팔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걱정스런 사실은 2002년 10월 북한이 비밀 핵무기개발 계획을 진행해왔다고 시인했다는 점이다. 이는 핵개발을 동결하기로 약속한 1994년 협정을 어긴 행위였다. 북한은 또한 ‘더욱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해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못 박아 왔고, 부시 대통령은 2002년1월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더불어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북한은 핵개발계획을 갖고 있나?
-그렇다. 2002년10월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을 포함한 비밀 핵무기개발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측의 이러한 발표는 북한이 한 개 또는 두 개의 핵폭탄을 만들기에 충분한 플루토늄을 비축했고, 핵원자로의 연료봉을 재처리한 플루토늄으로 몇 개의 핵폭탄을 더 만들 수도 있다는 미국 정보기관의 보고가 나온 바로 뒤에 나왔다.
미 중앙정보국(CIA)는 1990년대 중반에 이미 북한이 한두 개의 플루토늄 핵폭탄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그렇지만 북한이 핵무기 실험을 꾀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2002년 북한의 핵관련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는 1994년 핵동결 대신경수로를 짓기로 한 미국과의 협약을 파기한 것이고, 1985년 북한이 서명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어기는 행위다(2003년4월 북한은 NPT에서 탈퇴했다).

▲북한은 다른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나?
-그렇다. 미국 관리들은 “북한이 지난 2002년 핵무기 말고도 ‘보다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고 밝힌 것은 북한이 다른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판단한다. 미 펜타곤(국방부)이 일찍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화학무기들을 보유중이고, 신경 가스들을 다량 생산하는 능력을 잦추었다. 펜타곤은 또한 북한은 초보적 형태의 생물무기 개발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추정한다. 탄저균, 콜레라균, 페스트균을 생산하는 이런 행위는 국제법 위반이다.

▲북한은 대량살상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보유중인가?
-그렇다. 북한은 한국과 일본 대부분의 지역에 다다르는 100개의 노동 미사일을 포함한 약 600개의 스커드 미사일을 실제 배치해 놓은 것으로 알려진다. 1998년 북한은 일본 영토 대기권 위를 넘어가는 ‘대포동 1’ 미사일을 시험발사, 큰 소동을 일으킨 적도 있다. 미 CIA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언제라도 ‘대포동 2’를 시험발사할 준비를 마쳤다. ‘대포동 2’는 미국 본토 서부지역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그 미사일 탄두에 대량살상무기를 탑재할 수 있을 정도의 앞선 기술을 지녔는지는 확인이 어렵다.

▲북한은 다른 테러 지원국들과 협력관계를 맺었나?
-그렇다. 북한은 미 국무부가 테러지원국 목록에 올린 국가들(이란, 시리아, 리비아)에게 탄도 미사일 기술을 수출했다. 파키스탄과 예멘은 테러지원국 명단에는 오르지 않은 국가들이지만, 북한은 이들 두 나라에게도 미사일 기술을 팔았다(파키스탄의 경우는 가우리 미사일-필자 주). 그런 미사일 기술은 생화학무기와 핵무기를 실어 나를 수도 있다. 미사일 기술 수출은 고립된 국가인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공급원이며, 아울러 북한이 세운 미사일 개발계획의 자금원으로 쓰였을 것이다.
 
▲북한은 이란과 협력관계를 맺었나?
-그렇다. 북한은 이란에게 대량살상무기를 탄두에 탑재할 수 있는 탄도 미사일 기술을 팔았다(미국은 북한이 이란에 미사일 기술을 수출하고, 그 반대급부로 이란이 북한에다 미사일 기술자료를 제공했다고 판단한다. 2004년 이란이 샤하브-3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뒤 북한에 원격측정자료 등 여러 관련 자료를 제공했으며, 북한은 이를 자체 미사일 발사체계를 개선하는데 사용했다는 혐의다-필자 주). 그렇지만 북한-이란 두 나라는 여러 가지로 서로 다른 국가다. 무신론에 공산국가인 북한이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인 이란과 조화를 이루기는 어렵다.

<원문 보기>


◎김재명:국제분쟁전문기자 겸 국민대강사. 1952년생. 서울대 철학과 졸업. 뉴욕시립대 국제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경향신문사 기자, 중앙일보 차장, 프레시안 뉴욕통신원 역임. 저서로 한국현대사의 비극:중간파의 이상과 좌절(2003.선인출판사),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국제분쟁전문가의 전선리포트(2005.지형출판사)   

※ 외부 칼럼은 국정브리핑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등록일 : 200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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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북한 인권문제 바라보는 다른 시각들 - 존 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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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문제를 보는 몇가지 다른 시각
한반도 전문가 존 페퍼 "인권을 인도적 지원에 연계시켜야 하나"
북한 인권을 둘러싼 논의는 거북스런 주제다. 매우 조심스레 다뤄져야 한다.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국제인권상황을 재는 프리덤 하우스의 평가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자유국가’로 분류되지 못한 나라들이 절반에 이른다. 민주국가냐, 자유국가냐도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다. 미 국무부는 해마다 인권보고서를 펴내지만, 국제정치학자들로부터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미 부시 행정부의 잣대로는 미국에 고분고분한 친미 국가는 ‘자유국가’이고, 그렇지 못한 자주적 성향의 국가는 ‘독재국가’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문제는 우리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다. 한국에는 두 가지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하나는 북한 인권문제를 꺼내는 것은 궁극적으로 북한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노리는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과 냉전 수구세력의 손을 들어주는 미련한 짓이라는 시각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 인권문제가 심각한 게 사실인 만큼 짚고 넘어갈 대목은 짚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돌이켜 보면, 인권에 관한 한 우리 한국도 투명하지 못한 지난 역사를 지녔다. 1970년대 유신체제 아래서나 1980년대의 5공화국 억압체제 아래에서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었다. 프리덤 하우스가 한국을 자유국가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1988년. 정부수립 40년만의 일이다. 그 뒤 문민정부-국민정부-참여정부가 잇달아 들어서면서 한국의 인권상황은 갈수록 나아졌다는 평가다.

북한 인권문제 거론 현실적으로 현명치 않아

결론부터 대놓고 말한다면, 지금 시점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꺼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체제 특성상 인권보다는 다른 가치(이를테면 국가안보, 체제유지)를 우선하는 북한에게 인권을 말한다는 것은 북핵 폐기를 비롯한 현안을 둘러싼 외교적 대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9월 6자회담에서 북핵폐기를 전격 합의하고도 후속회담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여기에는 평양 당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미국의 비외교적 발언이 한 몫 해왔다. “북한이 달러 위폐를 만들었다”는 주장을 비롯, “북한이 범죄정권”이라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의 발언은 북핵 폐기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할 6자회담에 재를 뿌린 짓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은 “북핵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인권문제가 남아있는 한 북·미관계 정상화는 어렵다“고 토를 단다. 북한 인권문제는 두고두고 뜨거운 감자가 될 듯한 분위기다.  

미국 안에서도 북한 인권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한다. 미 외교정책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민간 싱크탱크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www.fpif.org)의 단골 기고자인 존 페퍼(John Feffer)의 글 ‘연계시킬 거냐, 말거냐’(To Link or Not to Link)'는 북한인권을 보는 미국 안의 다른 시각들을 보여준다. 페퍼의 의도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다 인권 문제를 연계시켜선 안 된다”는 것이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존 페퍼는 북한을 세 번, 그리고 남한을 25회쯤 방문한 경력이 말해주듯, 한반도 전문가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2003년 겨울 뉴욕 시립대학원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심포지엄에서 페퍼를 만난 적이 있는데, “열린 시각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미국의 양심적인 지식인 가운데 한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북핵 폐기를 둘러싸고 한반도와 미국 사이에서 벌어진 줄다리기를 다룬 ‘남한 북한: 위기시대의 미국 정책’(2003년)의 저자다. 이 책에서 페퍼는 이렇게 미국 역대 행정부들을 비판했다.

“북한의 핵 개발 움직임을 외교적으로 풀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을 경제적, 군사적으로 고립시키는 냉전정책을 유지했다. 또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대북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를 평양의 정권 교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공포와 불신을 디딤돌로 삼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외교적인 허식을 벗어던지고, 평양 정부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관점에 서서, 북한의 정권 교체를 미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았다”

아래는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www.fpif.org)에 실린 글의 주요내용 요약이다.

북한에 정치범 수용소가 있고 기본적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는 문제점에 대해선 미국에서도 널리 공감하고 있지만, 미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합의된 바는 거의 없다.

미 행정부에서는 정책결정자에 따라 인권문제를 핵위기와 인도주의적 지원에 연계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둘러싼 시각이 다르다. 미 의회에서는 인권운동을 전 세계 독재국가들을 겨냥한 정권교체(regime change) 전략이라는 큰 틀에 넣으려 하지만, 재정 문제와 전통적인 세력균형(balance-of-power)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민간단체인 비정부기구(NGO)들도 저마다 입장이 다르다. 복음주의적 기독교단체들은 종교적 자유의 관점에서 북한인권 문제에 접근한다. 그렇지만 미국 내 주류 인권운동 단체들은 그같은 복음주의적 열정과 강경 전략을 경계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이처럼 저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전략적 접근 방식이 다른 것은 정책 대안들(policy alternatives)이 다양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미국 안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 자체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이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심각한 결점 중 하나는 행정부 차원이나 NGO 차원 모두 근시안적 이었다는 것이다. 부시행정부의 인권기록(관타나모 수용소와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보인 인권침해기록-필자 주)과 다른 나라에서의 인권을 체제 변화의 명분으로 즐겨 삼아온 부시행정부의 행태에 비춰볼 때, 북한에 대해 보다 효과적인 인권 정책을 짜내기란 어려운 일로 보인다.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과 다양한 행위자들이 전략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연계(Linkage)의 문제

미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 결정에 힘을 지닌 네오콘들(neoconservatives-신보수주의자들)은 1970년대 미 공화당 정권이 소련-중국과의 데탕트(동서화해)를 추구하는 데 대한 반발로 태동됐다. 당시 헨리 ‘스쿠프’ 잭슨 상원의원을 비롯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냉전적 사고 틀 속에 갇혀 소련과의 무역에서 최혜국대우를 주는 문제와 인권문제, 특히 소련 유대인의 이민문제를 연계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그들 냉전적 사고의 소유자들은 그 뒤 네오콘으로 탈바꿈,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의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맡았다.

네오콘들이 데탕트, 요즘 용어로 바꾼다면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을 어려움에 부딪치게 만들었을 것이란 강한 의혹은 현 부시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70년대 소련과의 군축 조약에 대한 불신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 대한 거부와도 같다. 소련과의 교역이 늘어나면 소련 정권에게 도움이 된다는 냉전적 시각 또한 북한에 대한 경제적인 개입을 못마땅해 하는 오늘날의 대북 강경파들의 시각과 비슷하다. 포용정책과 인권에 연계시키려는 시도는 데탕트를 저지하기 위해 인권을 내세웠던 1970년대와 닮았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안에는 네오콘 세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쓰는 미 국무부의 외교관들은 인권문제를 불필요하게 언급하는 것은 어떠한 북핵 합의도 어렵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 9월 "인권을 무기로 삼는 것에는 관심 없다“(We have no interest in weaponizing human rights)고 말했다. 실용주의적 중도파와 네오콘 강경파들 사이의 화해를 모색하는 힐 차관보는 인권과 핵협상을 드러내놓고 연계시키지는 않으면서, 인권 문제를 (언제라도 논의할 수 있도록) 가시권 안에 두어 왔다. 그는 ”인권문제 해결 없이 북한은 국제사회에 합류할 수 없다“(North Korea won't be able to jo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without addressing these violations.)고만 말했다.

한편 제이 레프코위츠 인권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지는 안개 속이다. 레프코위츠는 지난해 9월 “인도적 지원은 인권 문제와 연계돼야 한다”고 뜻을 나타냈다. 그렇지만 부시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미국의 정책이 변하지 않았고 연계 전략은 없을 것”(U.S. policy had not changed and that such linkage would not be made)이라고 즉각 부인 했었다. 레프코위츠의 발언은 미 북한인권위원회가 펴낸 북한의 식량과 인권에 관한 새 보고서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그 보고서는 "인도적 지원과 인권 문제를 분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 했었다. (원문 출처: http://www.fpif.org/fpiftxt/2998)

◎김재명:국제분쟁전문기자 겸 국민대강사. 1952년생. 서울대 철학과 졸업. 뉴욕시립대 국제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경향신문사 기자, 중앙일보 차장, 프레시안 뉴욕통신원 역임. 저서로 한국현대사의 비극:중간파의 이상과 좌절(2003.선인출판사),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국제분쟁전문가의 전선리포트(2005.지형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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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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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새해 달라지는 것들, 남북경협 민원절차 대폭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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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달라지는 것-⑦남북경협] 민원처리 절차 대폭 개선
북한주민접촉 '승인제 →신고제' 로 전환… 사후신고도 가능
북한 방문이 보다 손쉬워 진다. 정부는 북한방문 증명서 발급 민원 처리기간을 현행 20일에서 10일로 단축하고 신원진술서를 인적사항으로 대체했다.
또한 남북협력승인 신청의 민원처리기간을 30일에서 20일로 단축하고 협력사업자 동시승인 범위를 확대하는 등 남북경협제도 민원절차가 대폭 개선됐다.

◆북한 방문절차 간소화=‘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북한주민접촉을 승인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했다.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 민간인이 3인 이상 참여토록 해 남북경협사업 추진의 투명성을 제고했다. 아울러 신고·보고 의무위반에 대한 행정질서벌(行政秩序罰) 부과근거를 마련해 민원인의 부담을 경감했다.

남북경협사업의 상징인 개성공단에 준공한 (주)신원 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직원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또한 이 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 고시 등을 개정해 북한방문증명서 발급 민원처리기간을 20일에서 10일로 단축하고 신원진술서를 인적사항으로 대체토록 했다. 또한 방문증명서용 사진 4매를 1매로, 방문증명서 유효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확대하고 방문증명서 반납규정을 삭제해 북한방문절차를 간소화했다.북한방문기간 동안 부득이한 사유로 연장할 필요가 있는 경우를 고려해 방문기간 연장신청 근거도 마련했다.

또한 북한주민접촉신고의 민원처리기간을 15일에서 10일로 단축하고 사전계획 없이 전자우편, 전자상거래 등 인터넷을 통해 북한주민과 접촉한 경우 사후에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반출·반입 승인신청의 민원 처리기간도 20일에서 15일로 단축했으며 신청서류를 대폭 간소화했다. 아울러 남북협력 사업인신청의 민원 처리기간을 30일에서 20일로 줄이고  협력사업자 및 사업 동시승인 범위도 총 투자액 300만 달러 이하에서 1000만 달러 이하로 확대했다.
(문의:통일부 경협제도팀 02-2100-5921)
최강 (ckang@news.go.kr) | 등록일 : 200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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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한국이 국제 노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

   

세모에 생각하는 노동조합의 국제사업

한국이 국제 노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하다. 식민지와 내전을 경험했으며, 급속한 산업화와 군사독재를 겪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 경제는 주도적인 신흥공업국의 위치를 차지면서 세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깊숙이 편입되었다. 무엇보다 경제활동인구에서 노동자계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높아졌다.

이것은 한국에서 노동조합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구조적 환경이 되었다. 그리고 급기야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경제는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식민지 국가 가운데 경제적 발전, 정치적 민주주의, 노동운동의 성장 모두에 성공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연결고리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독재국가에서 민주국가로, 국가가 통제하는 취약한 노동운동을 가진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대단히 역동적인 민주적 노동운동이 성장한 나라로 전환하였다. 한마디로 한국의 노동운동은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경험과 동시에 선진국의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제 노동계에서 선진국 노동운동과 개발도상국 노동운동의 연결고리(link)라는 역사적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이 한국 사회의 정치적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민주화 항쟁을 촉발시키는 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역사적 한계는 이후의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재야와 보수야당’으로 대변되는 중간계급이 주도권을 쥐면서 노동운동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족쇄로 작용했다.

이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독자적 모색이 2000년 1월에 이르러서야 민주노동당의 출범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것은 민주화 투쟁은 물론 그 이행 과정을 주도하면서 집권세력의 일부가 된 남아프리카나 브라질의 노동운동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경험은 아직 정치적 민주화에 성공하지 못한 개발도상국 노동운동에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과 노동을 배제한 급속한 경제발전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주요한 사회세력으로 자리잡은 한국 노동운동의 경험은 비슷한 조건에 있는 개도국 노동운동에 많은 함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노동운동은 지난한 투쟁과 성장의 과정에서 동원(mobilization) 전략과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전략을 구사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1세계 노동운동과 3세계 노동운동의 다리 역할이라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적 임무의 중요성을 읽을 수 있다.

아시아 노동운동에 관심을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기대는 국제적으로 대단히 높다. 특히 우리나라가 위치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노동운동들이 한국 노동운동에 거는 기대는 우리의 상상을 넘는 수준이다.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홍콩, 네팔 등 아시아 각국의 많은 노조간부들이 한국의 노조원들을 만나길 원하며, 한국의 경험에서 배우고 싶어 한다. 조직·교육·교섭 등 노조의 일상 활동에서부터 산별노조 건설, 그리고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이르기까지 한국 노동운동이 지나온 발자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노동운동에게 좋은 참고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한국 노동운동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다. 솔직히 말하면,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축적된 부에서 기인하는 경제적 우월감을 뺀다면, 우리나라 노조원들은 물론 간부들조차 아태 지역 차원의 국제연대와 관련해서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현대, 대우, 기아, 삼성 등 한국의 다국적기업들이 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경제적 비중을 감안한다면, 지역노동운동에 대한 한국 노동운동의 관심과 기여는 이제 걸음마 단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 정부가 참가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공동체(APEC)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3 회담을 비롯해 각종 경제회담들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도 한국 노동운동은 별다른 역할을 못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을 비롯해 지역 차원에서 이뤄지는 각종 경제적 담론의 논의 과정에 대해서는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관심조차 없다.

1987년 이후 한국의 노동자들이 이뤄온 수많은 성과들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 노동운동을 지도적 위치에 올려놓았다. 지역의 많은 노동조합운동이 한국 노동운동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의 한 걸음이 단순히 한국만의 그것인 시절은 지났다. 18년에 걸친 지난한 투쟁의 성과와 세계화의 확산에 따라 한국 노동운동은 이제 아태 지역은 물론 세계의 노동운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국제자유노련 아태지역본부(ICFTU-APRO)에의 적극적인 개입과 개혁 요구를 비롯해 지역 노동운동과의 연대 틀을 만들려는 노력을 시급히 전개할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한편으로 중국이 미국에 맞먹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한-중 노동운동 교류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인 중국총공회와 한국노총간 정기교류의 형식과 내용이 한 단계 발전함과 동시에 민주노총 역시 중국총공회와의 관계를 트는데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일자유무역협정 등 한일 사이에 발생하는 여러 현안과 관련하여 한국노총, 민주노총, 일본노총(連合) 사이에 3자 협의 테이블을 설치하는 것도 적극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업에 더 많은 자원 투자해야

모든 일이 그렇듯이 노동조합운동의 국제사업 역시 올바른 사업 내용과 더불어 조직적 결의와 재정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우선 대중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에 걸맞은 국제사업의 내용과 형식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사업은 이데올로기나 정파적 편향을 배제하고 폭넓은 연대를 조직하려는 관점이 중요한데, 이것은 조직, 교섭, 교육, 선전, 홍보 등 노동조합 일상 활동의 활성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 동안 한국의 노동조합들이 전개한 국제사업을 돌아보면, 여행성 회의 참가의 성격이 짙거나 아니면 특정 이데올로기 성향을 가진 회의 개최에 편중된 측면이 없지 않다. 조직, 교섭, 교육 같은 노동조합 일상 활동, 그리고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경험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제 사업을 통해 다른 나라의 모범 사례를 우리가 배우고, 우리의 모범 사례를 다른 나라에 알리는 기회를 넓혀야 하며, 나아가 공식 노동조합 조직 간의 교류를 강화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의 정치적 신뢰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예산 배정을 확대함으로써 관련 경비를 외국에 의존하는 관행을 점차 줄여나가면서 한국 노동운동의 국제적 기대에 부응하는 자주적이고 역동적인 국제연대를 전개해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노동조합운동은 인적 자원의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다. 지도부와 간부, 그리고 활동가들의 역량이 날로 고갈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시대는 빠르게 변해 가는데 노동운동가들의 관념과 활동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동운동과 사회 발전 사이의 간극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문제점은 노동조합의 국제사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양대노총 모두 국제사업 담당자는 한두명에 불과하다. 산하 가맹조직들 가운데 담당자를 둔 조직은 몇개 안 된다. 많은 산별 조직들이 작은 조직 규모와 재정 부담을 이유로 국제 담당자를 두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없는데 사업이 잘 될 수 없다.

‘세계 최고의 전투적 노동운동’을 운운해 왔지만, 세계 수준은커녕 기초 수준의 국제 인력을 키우려는 투자에 인색했다. 이제는 발상을 전환하고 조직의 사업 작풍을 변화시켜야 한다. 노동조합운동의 모든 사업 영역에서 엄청난 속도로 바뀌는 시대적 상황에 발맞추려는 노력을 전개해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국제사업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태도를 바꾸고, 사람과 자원의 투자를 배가해야 할 것이다.

절실한 양대 노총의 연대와 공조

한편으로 국제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노동조합운동은 국제노동재단(KOILAF)과 한국노동교육원(KLEI) 등 정부 산하에 있는 노동 관련 기구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국제 사업을 위한 재정 확보와 관련해서 정부개발원조(ODA)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19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설립하고 ‘개발원조’라는 명목으로 개발도상국의 경제 사회 발전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여기에 노동조합이 적극 개입하여 자금의 지출을 감시하고 노동운동의 국제사업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대노총의 연대와 공조도 대단히 중요하다. 앞서 지적했지만, 안타깝게도 국제사업 차원에서 양대노총의 협력은 아직 활발한 수준이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나 국제자유노련(ICFTU) 총회를 위한 공동 대응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국제산별노련(GUFs)과 관련해서도 국제 상급단체는 같이 하나, 국내 상급단체는 달리하는 산별 조직들 사이의 교류와 협력도 한층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국제사업을 둘러싼 양대노총 조직들 사이의 과당 경쟁이나 과도한 견제를 제어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국제사업에서 선의의 경쟁을 격려하고 공동 사안에서는 상호 협력하는 노동운동 내부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향한 작은 실천들이 새해에는 꼭 이뤄져 한국노동조합이 국제노동운동계에서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기를 한해가 저무는 세모(歲暮)에 소망해본다.
윤효원 국제담당 객원기자 
2005-12-23 오후 3:58:10  입력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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