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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북한 인권문제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다함께 제 71 호 [ 2006 년 01 월 14 일 ~ 2006 년 01 월 27 일 ]
      
북한 인권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다함께 제 71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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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파일 : no71-p14.pdf    

올바르게도, 대다수 후보가 북한 인권을 빌미로 한 미국의 대북압박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자민통 그룹은 사실상 북한 인권 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듯하다.

이용대 후보는 <진보정치> 254호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서구식 인권의 잣대로 맘대로 재단하려는 것이 주를 이룬다”며 “공개처형은 싱가포르 등 많은 나라가 아직도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며 그것[의] … 가치판단은 … 훨씬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권 등은 노동자들의 자주적 활동을 위해 반드시 획득해야 할 권리들이다.

비판에 직면한 이용대 후보는 지난 6일 부산 지역 유세에서 “모든 사형제도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며칠 후 “미국 CIA의 공작에 놀아나는 것이 될 수 있다”며 북한 인권 문제를 피해 갔다.

문성현 후보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주로 냉전수구세력이 앞장서서 주장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진보세력이 이 문제를 회피하거나 북한 정부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한다면, 사회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압살하는 체제라는 우익의 공격에 직면해 사회주의적 대안에 대한 신뢰 실추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문성현 후보는 “교류와 협력을 늘여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하고 … 군사정치적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북한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경제 협력이 자동으로 인권 개선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예컨대 남한 자본이 저임금 노동을 좇아 진출한 개성공단 등지에 인권이 들어설 자리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용대 후보처럼 “개성공단 노동자와 남한 노동자는 처한 현실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토론 회피일 뿐이다.

경제 발전이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경제 발전’을 위해 국가가 노동자·민중의 욕구를 억압했기 때문에 인권 문제가 생긴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북한 인권 문제는 단지 미국의 대북 봉쇄 때문에만 생긴 것도 아니다. 북한 인권 문제의 배경이 된 북한 경제의 위기는 북한의 지령경제적 성장 전략 자체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이 “6·15공동선언, 남북한기본합의서 등을 체결한 평화와 통일의 실존하는 파트너“(윤영상 후보)라는 점에서 출발하는 것보다는 남북한 노동계급의 연대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남한의 노동자·민중이 그랬듯이, 북한 노동자·민중의 아래로부터의 자기 행동을 통해서만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지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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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환율급락에 따른 현대차그룹 비상경영체제 돌입

현대차그룹, 사실상 '비상경영체제' 돌입
환율급락 등 경영악재 대응 위해 경영전략실 신설
등록일자 : 2006년 01 월 26 일 (목) 12 : 16   
 

  현대차그룹이 원/달러 환율 하락 등 대내외 악재에 대한 대응에 본격 착수했다. 사실상의 비상경영체제 돌입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환율, 유가, 원자재 문제 등 대내외적으로 기업환경이 매우 악화되고 있어 이에 대비해 일관되고 효율적인 경영정책 수립을 위한 경영전략실을 신설하는 등 조직을 비상관리 강화 체제로 개편했다고 26일 밝혔다.
  
  신설된 경영전략실은 대내외 경영환경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효율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대책 이행의 진행상황을 점검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또한 경영전략실은 그룹의 중장기 사업계획 및 미래비전 달성을 위한 전략기획 부서로서의 역할도 할 계획이라고 현대차그룹은 덧붙였다.
  
  아울러 기획총괄본부와 감사실의 기능을 강화해 기업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투명경영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이전갑 감사실 담당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경영전략실과 기획총괄본부, 감사실을 총괄하도록 했으며, 감사실 정홍식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켜 감사실 담당으로 임명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최근의 대내외적인 어려움은 치열한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고비로,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야만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출 비중이 76%를 차지하는 현대기아차로서는 환율, 유가, 원자재 등 세계경제 변화에 민감한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비상관리 역량을 갖추고 내실경영을 이끌어나갈 효율적인 조직이 필요하다"고 이번 조직개편의 의미를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또 이번 조직개편으로 기획에서 실천까지 일관된 시스템을 구축해 빠른 의사결정과 뛰어난 조직유연성을 갖추게 됐다고 주장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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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지난해 남북교역 오히려 줄어

지난해 남북교역 규모 오히려 줄어
북한 방문자 수는 71.6% 크게 늘어…소득격차는 15.5배
 
지난해 남북교역 규모가 전년에 비해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한의 국민총소득(GNI)은 북한의 32.8배이며 1인당 GNI도 15.5배의 격차를 보였다. "붕괴 직전의 북한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살렸다"는 미국 인사의 문제제기 등 최근 대북 강경 흐름이 거세지고 있지만, 여전히 남북교류 수준은 걸음마 단계인 셈이다.

16일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본 남북한의 모습'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남북교역 규모는 총 6억9,704만달러로 2003년에 비해 3.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남한으로 들어온 반입액은 10.8% 감소했고 반출액은 0.9% 증가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 전인 1995년 2억8,729만달러에 비해서는 두 배 이상 괄목할 만한 증가를 이뤘다. 1990년과 비교할 경우 남북교역 규모는 52배나 급증했다.

이에 따라 북한 방문자 수도 현대 금강산 관광 사업 활기 등에 힘입어 지난해 2만6,213명으로, 전년 1만5,280명에 비해 71.6% 증가했다. 남북한 교류가 이루어진 1990년 이후 2005년 10월까지 총 방문자 수는 15만2,402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경제지표로 보면 남북간 격차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민총소득(GNI)은 남한 6,810억달러, 북한 208억달러로 32.8배의 격차를 보였다. 전년에 비해 남한은 11.9%, 북한은 13.0% 각각 증가했지만, 절대적 차이는 1990년(11.4배) 이후 계속 벌어지는 추세다. 다만 2003년 33.1배에 비해서는 처음으로 약간 줄어든 정도. 1인당 GNI 역시 남한 1만4,162달러, 북한 914달러로 15.5배 차이가 났다.

남북한 주요지표 비교
주요지표 단위 2004년
남한 북한 남/북(배)
인구 만명 4,808.2 2,270.9 2.12
성비 여자 백명당 남자수 101.6 96.7 -
농가인구 만명 341.5 835.7 0.40
식량작물재배면적 만ha 123.3 159.7 0.77
제조업생산지수 2000=100 126.1 104.6 -
무역총액 억달러 4,783.1 28.6 167.2
수출액 2,538.5 10.2 248.9
수입액 2,244.6 18.4 122.0
국민총소득(GNI) 6,810 208 32.8
1인당 국민총소득 달러 14,162 914 15.5
경제성장률 % 4.6 2.2 -
에너지 총소비량 만TOE 22,023.8 1,653.5 13.3
1인당 에너지소비량 TOE 4.58 0.73 6.3
원유 도입량 만배럴 82,579.0 390.0 211.7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남한 4.6%, 북한 2.2%로 남북한 모두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총인구는 남한 4,808만2천명, 북한 2,270만9천명으로 2.1배 차이가 났으며, 여자 100명당 남자수를 나타내는 성비는 남한(101.6)이 남자가 더 많은 반면, 북한(96.7)은 여자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지난 8일 미국 디펜스포럼 재단 및 북한자유연대의 수전 숄티 회장은 "현 노무현 정부와 전 김대중 정부가 아니었다면 북한 독재정권은 사라졌거나 변해 있을 텐데 무너지기 직전의 정권을 살려놓는 바람에 동포에게 등을 돌렸다"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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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슬리 리뷰]남한: 정치 투쟁 상황

외국 학자가 본 '남한 정치 투쟁 상황'

아메리카 좌파 경제학자인 마틴 하트-랜즈버그가 지난 8월15일 먼슬리리뷰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엠아르진(MR Zine)에 한국의 경제 상황에 대한 비교적 길지 않은 글을 썼는데, 이 글의 후속편으로 '남한: 정치 투쟁 상황'이라는 글을 얼마전에 다시 엠아르진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이 글은 우리로서는 지극히 평이한 수준의 글입니다. 하지만 외국 학자의 우리 상황 이해가 어느 수준인지 판단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읽어볼만 할 겁니다. 또 혹시라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측면이 담겨 있을 지도 모릅니다. 길지 않기에 번역해봤습니다.

동북아시아에 대한 글을 주로 쓰는 하트-랜즈버그는 우리에게 비교적 알려진 인물입니다. 3권의 책이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한국 100년의 역사를 아메리카의 개입과 관련지어서 정리한 책인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 (당대, 2000) 폴 버캣과 함께 쓴 논문을 모아놓은 <일본경제 들여다보기> (미토, 2005), 역시 버캣과 함께 쓴 것으로 중국의 경제체제가 사실상 자본주의라고 비판한 책인 <중국과 사회주의> (한울, 2005)가 국내에 출판된 책들입니다. 하트-랜즈버그는 얼마전에는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 번역문 보기 --


남한: 정치 투쟁 상황

(South Korea: The State of Political Struggle)

저자: 마틴 하트-랜즈버그(Martin Hart-Landsberg)

출처: 먼슬리리뷰진 2005년 9월5일 (원문 mrzine.monthlyreview.org/hartlandsberg150905.html)

외환 위기 이후 남한 경제의 경로는 일하는 이들에게는 재앙이었다. 그리고 남한 노동운동과 좌파운동은 진행중인 신자유주의적 구조 개편을 격퇴하기 위한 아주 힘든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들 운동이 직면한 도전 몇가지를 논할 것이다. 이는 전세계 노동자와 활동가들도 점점 더 이와 비슷한 도전에 직면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의 투쟁에 대해 알고, 그로부터 교훈을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집단적 지혜를 연마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점은 특히 남한의 경우가 더 그런데, 지당한 것이지만 남한 운동은 용기와 전투성으로 아주 유명하기 때문이다.

투쟁의 지형(Terrain of Struggle)

남한의 외환 위기 이후(1997-98년) 경제 구조 개편은 외국인 투자 및 수출에 대한 의존도를 아주 높였다. 남한 재벌들이 경제 위기로 약화된 정도인 데 반해, 중소기업은 최대 시련을 겪었다. 예를 들어 많은 재벌들은 외국 기업들과 연합을 형성했고 이는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게 해줬다. 남한 국내외 경제 지도자들이 최우선 순위로 삼은 것 한가지가 노동 운동 약화이다. 그들은 “노동시장 개혁”이 없다면 투자와 생산을 중국으로 옮겨가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경고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친 노동계 인사로 여겨졌음에도, 이런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예를 들면, 정부는 기업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걸 더 자유롭게 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경제 위기 이전의 42%에서 현재 54%로 급격하게 늘었다. 그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53%에 불과하다. 아주 실제적인 자본 이탈 위협과 함께 이런 조처들은 거대 제조업체들이 노동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높일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기업의 이윤이 새로운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성장률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이는 정부로 하여금 기업에 더 양보하도록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미 저임금과 불평등 및 빈곤 확대, 불안 심화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어두운 미래를 직면하고 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KCTU)

한국의 주도적인 노조 총연맹인 민주노총은 (더 보수적인 노총이 하나 더 있다) 노동자의 이익을 지키려 애쓰고 있다. 민주노총은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을 촉구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 확대를 위한 새로운 법률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고, 날로 늘어나는 이주 노동자의 노조설립 권리와 그들에 대한 보호를 지지하며, 공공부문 노조의 완전한 권한 쟁취를 위해서 싸웠다. 최근에는 노동부 관련 모든 자문 위원회에서 탈퇴했다. 불행하게도 이런 노력은 제한적인 성공만을 거뒀다. 그리고 최근 노조 가입률이 11%까지 떨어지면서 정치적 비중도 줄고 있다. 노조 활동가들이 다음 단계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와중에 그들이 직면한 주요 쟁점이 두가지 있다. 민주노총 내부 조직 문제와 정치적 지향 문제다.

구조적 쟁점들:

노조 조합원들은 노동자들의 더 넓은 관심사로부터 날로 고립되고 있다. 이렇게 되는 주된 이유는 남한 노조가 기업별 노조라는 점이다. 그리고 노조조직률은 기업의 규모와 연관되어 있다. 노동자 1000명 이상의 거대 사업장들은 노조가 있는 전체 기업의 2.7%를 차지하는 반면, 이들 기업 노동자들이 전체 노조 조합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1.2%에 달한다. 그래서 민주노총 조합원 대다수는 거대 제조업체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에 비해 더 많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조건을 향유한다.

상대적으로 특권적인 지위에 있지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점점 더 적대적이 되어가는 노동 환경에 직면해 있다. 대기업들은 공격적으로 인력을 줄이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하청을 통해 인력 감축을 달성하고 있다. 임금과 각종 혜택의 감축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은 이런 행위에 저항하려 시도할 뿐 아니라 노동현장 내 권한 강화도 꾀하고 있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 노조는 투자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이 노조는 성과급 분배에 발언권을 요구하면서 압박 수단으로 경고 파업을 선언했다. 기아차 노조는 이사회 참여와 인사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중요한 투쟁들이긴 해도, 이들 노조가 개입하고 있는 쟁점들은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생존에 관련된 쟁점들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들이다.

기업별 노조체제는 중소기업 노조 조직률을 높이려는 민주노총의 노력도 저해한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활발한 조직화 활동 또는 노조 활동을 유지할 인적, 재정적 자원이 없다. 민주노총 자체도 이들을 도울 여력이 없다. 노총은 자원이 제한되어 있고 대기업 노조들은 자신들 소속 조합원의 이익과 직결되지 않는 활동을 위해 노조기금을 공유하기를 꺼린다.

이런 상황이 민주노총 내부에서 조직 개편의 필요성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을 촉발했다. 많은 활동가들은 민주노총을 강화해 노총 차원의 노동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조직화 활동을 후원하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또 이 단계에 적합한 체제로서 산별 노조 구성을 요구한다. 다른 활동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 구조가 가장 민주적이고 노동자들의 필요와 이익에 가장 잘 반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쟁은 어떻게 하면 노동계급 대표성과 활동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포함한 노조 형식과 목표에 대한 중대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정치적 쟁점들:

다른 쟁점 하나는 반자본주의 운동 형성에 대한 민주노총의 자세다.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 비판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남한 경제의 급진적 구조 개편 운동을 전개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많은 면에서 이 점은 1990년대 초 노동 활동가들이 좌파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노조의 권한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두기로 한 결정의 결과다. 이 결정은, 좌파에 대한 정부의 무자비한 공격과 소련의 붕괴, 북한과 미국의 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 고조라는 상황에 대응해서 내려졌다. 1995년 마침내 민주노총이 출범했다.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은 3년 뒤인 1998년이지만 말이다. 경제가 확대되는 동안엔,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의 생활조건과 노동조건 개선 압력을 넣을 수 있었고 이는 꽤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경제 위기 이후 정부와 기업에서 노조가 경제 회생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조합원 문제에만 집중한 정책이 역효과를 낳았다.

많은 노동 활동가와 정치 활동가들은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려 했으면 폭넓은 좌파 정치세력과 관계를 복원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이 좌파 정당의 창출을 지원하길 원한 것이다. 다른 이들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은, 이런 시도는 시기상조이고 자원과 활동을 노동운동에서 다른쪽으로 돌림으로써 민주노총 자체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하튼, 상당수의 활동가들은 민중승리21을 구성해 1997년 대통령 선거에 후보를 내고 이듬해 지방선거에 여러 후보를 출마시킴으로써 일을 추진해 나갔다. 이에 대한 민주노총 지도부의 지원은 제한적이었고 득표도 많지 않았다. 2000년 민주노총의 더 큰 지원을 받는 가운데 더 많은 활동가 집단이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10석을 확보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은 상당한 승리를 얻었다. 이 승리는 또 다른 문제들을 제기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적절한 관계는 무엇이며,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정책 일반, 특히 노동 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려고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민주노동당(DLP)

민주노동당은 자신들의 목표를 “민중이 완전히 참여하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진보적인 정치적 힘”을 갖추고 확장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공약은 “사회주의의 원칙과 이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가운데 “국가 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걸 추구한다고 선언한다.

선거에서 이 당이 거둔 성공의 상당 부분은 유권자가 후보와 정당에 각각 투표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얼마전 선거제도를 개혁한 덕분이다. 국회의 경우, 299석 가운데 243석은 지역구에서 직접 투표로 결정되고 46석은 정당명부제에 의한 투표 결과로 배정한다. 민주노동당은 정당명부제 투표에서 13% 이상을 득표함으로써 8석을 확보했고 지역구에서는 2석을 얻었다. 두 주요 정당의 득표 차이가 적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의석수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 이후 15-20%의 지지율을 확보하면서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이제 국회내 논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새로 확보한 의회 내 대표권이 중요하긴 해도 활동가들은 여전히 민주노동당이 새로 확보한 영향력을 가장 잘 활용하는 문제를 놓고 씨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이들은, 민주노동당이 입법 발의와 개혁 관련 협상에 개입하는 걸 피하고 대중 운동의 목소리가 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른 이들은, 민주노동당이 진보적인 의제를 촉진할 수 있을 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자유주의 성향 집권당과 함께 일해야 한다고 믿는다. 예컨대 민주노동당은 무상 교육과 보편적 의료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정부의 경제 정책을 한목소리로 비판하지만, 상당수는 노 대통령의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대북한 정책 결정을 지지한다.

민주노동당의 미래와 관련된 쟁점들:

민주노동당은 선거를 중요하게 보고 선거에서 힘을 강화하려고 시도해야 하나, 아니면 선거를 국회내 교두보를 유지하면서 정치 관련 논쟁을 날카롭게 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하나? 현재 이 당은 당비를 납부하는 회원이 6만명이다. 구성으로 보면 45%는 산업 노동자들이고 35%는 사무직 노동자들이며 20%는 학생과 (소규모 농민 대표자들을 포함한) 기타 세력이다. 당은 내년까지 당원을 10만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들을 당원으로 확보하는 데 민주노총에 의존해야 하는가, 아니면 독자적인 접근 통로를 구축해야 하나? 특정 사회 계층에서 당원을 확충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나?

국회내 지위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정책 연구소를 지원할 국고 보조를 받고 있다. 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는 현재 전임 연구원 6명을 두고 있다. 연구소의 책임은 당이 “한국 사회의 진보에 기여할 사회, 정치, 경제 대안 모델을 제시하는” 걸 돕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사회 질서로 이행하는 걸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관련된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현재 이 연구소는 (브라질에서 시행된 것과 같은) 주민참여 예산제도와 (아메리카에서 찾을 수 있는 것같은) 생활임금 조례 같은 대안적 사회 실험을 조사하고 있다. 이런 조사활동이 건설적인 정치 공약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반면 변화에 대한 개량주의적 시각을 강화할 위험도 있다.

위에서 주목한 과제와 문제들에 대한 단순한 답은 없다. 사실 이것들이 서로 얽혀있는 문제들이라는 특성은, 이 문제에 답하려 시도할 때는 전반적인 전략적 관점의 안내를 받아야 하되 이 전략적 관점은 대중적 투쟁에 계속 중요하게 참여하는 걸 통해서 형성하고 바꿔가야 한다는 걸 상기시킨다. 기대하건대, 한국의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유용한 지침을 제시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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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하트-랜즈버그는 오레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루이스 앤드 클라크 칼리지 경제학과 교수다. 그의 저서로는 (개발을 향한 질주 -남한내 경제 변화와 정치 투쟁) (한국어판: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 도서출판 당대, 2000)가 있다. 공저로는 (폴 버킷과 함께 쓴) (한국어판: 중국과 사회주의, 한울, 2005)가 있다. (이밖에 하트-랜즈버그가 폴 버킷과 함께 쓴 논문 세편을 번역한 <일본경제 들여다보기> (미토, 2005)도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다.)

번역: 신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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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지역 FTA 추진 동향 및 대응

[국민행동 6월워크샵] 아시아 지역 FTA 추진 동향 및 대응

공지사항  
자유무역협정WTO반대 국민행동


<아시아지역 FTA 추진 동향 및 대응>

- 일시 : 2005년 6월 24일(금) 오후4시
- 장소 : 민주노총 1층 회의실(지하철 1/5호선 신길역, 1호선 영등포역)


[프로그램]

*** 1부: 아시아 지역 FTA 추진동향

발제1. 아세안자유무역협정, ASEAN+3 (말루 타비오스, 주빌리 사우스 아태 사무국)
발제2. 미/태 FTA의 쟁점과 시사점 (태국 전력노조)
발제3. 일-인니 FTA, 인도-싱가포르 FTA 등 (미정)

*** 2부: FTA, 어떻게 맞설 것인가?

발제4. FTA 옹호론 비판 (박하순,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장)
발제5. FTA와 군사주의 (김어진, 다함께 운영위원)

※ 문의: 국민행동 사무처 02-778-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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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는 지금 FTA 패권 경쟁

[동향] "亞·太는 지금 FTA 패권 경쟁"

세계화와 민중  제44호
국민행동

서울경제신문 / 2005-05-29

FTA(자유무역협정)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국가들 간의 경쟁이 본격화 되고 있다. 일본이 말레이시아와 FTA 체결을 마친 데 이어 한국의 5대 교역국 중 하나인 아세안(ASEAN)과 협상을 추진 중이다. 이에 뒤질세라 호주는 중국ㆍ일본과 FTA 체결을 위한 공동연구에 착수했다. 중국은 아세안에 이어 인도로 눈을 돌리고 있고, 한국도 20~30개 국가와 동시다발적인 FTA 추진을 선언한 상태다. 이 같은 FTA 패권 전쟁 이면에는 경쟁 상대국을 누르고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서 강국(强國)으로 부상하겠다는 각국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팀장은 “동아시아 경제 공동체 형성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아세안 등 주요 교역 상대국과의 FTA 협상이 연내에 타결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FTA, 한발 앞서자 = 한국은 칠레와 FTA 체결을 마쳤고, 지난해 싱가포르와 가서명을 끝낸 상태다. 하지만 경쟁 국가들은 한국을 따돌린 지 오래다. 최근에는 한발 더 나아가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8개 국가와 FTA 체결을 끝냈다. 바레인 등 7개 국가와는 협상을 완료했으며 10여개 국가와 논의 중이다. 아세안은 이미 싱가포르 등 10개 국가와 FTA를 마쳤다. 최근에는 인도, 중국, 일본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홍콩, 마카오에 이어 아세안, 뉴질랜드, 칠레 등으로 협상 국가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태국 등 5개 국가와 FTA를 마친 호주는 중국과 공동연구에 착수했다.
◇FTA, 그 이면에 숨은 의도 = 아시아ㆍ태평양 국가들의 FTA 전쟁 이면에는 각국의 철저한 계산이 깔려있다. 일본의 FTA 주목표는 경제회복과 부상하는 중국 견제다.
중국은 아시아 경제 주도권 확보를 꿈꾸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금융 중심도시에 이어아시아의 FTA 허브 추구라는 계획 하에 한발 한발 나가고 있다.
이밖에 아세안은 경제통합 추구, 대만은 국제사회 인정, 태국은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성장을 목표로 FTA 전쟁에 본격 참여했다. 호주는 유럽을 떠나 아시아로 향하는 ‘탈구입아(脫毆入亞) 정책의 일환으로 FTA를 추진하고 있다.
 

2005-06-22 20: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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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동북아 민족주의간 충돌을 자극 하는가

(평화네트워크 펌. 진보평론 기고글)

이준규(운영위원)/ 2005년 5월 13일


 

- 목 차 -


1. 미일동맹에 편승한 일본,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와 충돌하다

2. 동북아시아 ‘민족주의의 봄’과 미국

3. 탈냉전기 미국의 패권전략에 편승하는 일본

4. 중국의 대응: 중화민족주의, 혹은 중화패권주의?

5. 불확실한 동북아시아의 미래와 한반도의 선택


*진보평론에 기고한 글임.


1.미일동맹에 편승한 일본,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와 충돌하다


동북아시아는 역사 논쟁과 영토 갈등이 한창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일본이 놓여 있다. 일본은 영토와 역사 문제를 두고 동북아시아 역내 모든 국가와 갈등을 벌이고 있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동북아시아 국민들간 감정도 역대 최악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와 중국사회과학원,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94%와 일본인의 61%가 ‘한일관계가 잘 돼가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잘 돼가고 있다’는 대답은 각각 6%와 25%에 그쳤다. 이는 1984년부터 7차례 실시한 여론조사 중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한다. 또한, 중국인의 75%, 일본인의 61%가 ‘중일관계가 잘 돼 가고 있지 않다’고 답했으며, 중국인의 64%와 일본인의 28%가 상대국을 ‘싫다’고 답했는데, 이 또한 역대 최고치였다. ‘좋다’는 응답은 일본인의 10%, 중국인의 8%에 불과했다.1)


문제의 발단은 일본의 우경화에 의해 추동되어 왔던 일련의 흐름이 한국과 중국 민족주의의 가장 민감한 부분인 역사와 영토문제를 건드렸다는 데에 있다. 또한, 그후 일본의 대응은 사태를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일본 정부당국자들과 언론이 한국과 중국 정부의 강경한 반응에 대해 국내용으로 치부해 버렸고,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보려고 하지는 않고 국가간 관계와 외교에서는 ‘냉정함’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오히려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게다가, 이토록 혼돈스러운 와중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밀어 붙인 것이다. 지난 4월16일과 17일에는 대규모 반일시위가 있을 줄 뻔히 예상하는 상황에서 일본정부는 “남중국해역에서 석유시추실험을 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반일감정에 기름을 부었고 중일 외무장관 회담을 이틀 앞둔 지난 15일에는 2004년 중국이 일본영해를 침범했던 사실을 성토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중국이 일본의 주권을 침해했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이 글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역사, 영토 분쟁 원인의 한 측면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간의 차원을 넘어서 ‘국민Vs국민’의 감정대결로 이어지고 있는 영토와 역사분쟁은 다양한 원인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원인의 중요한 한 측면은 미국의 동북아 패권전략과 미일동맹 강화, 그리고 그에 편승한 일본의 ‘부상’이 주변국의 민족감정을 자극해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 지역-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정치적?군사적 강국으로 부상한다는 것은 가장 민감한 사안이다. 첫째는,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배, 전쟁과 냉전으로 점철된 이 지역 복잡다단한 근현대 역사에서, 침략자였으나 그에 대한 ‘청산’을 하지 않고 패전 후에도 오히려 수혜자가 되었던 나라이다. 특히, 역사문제에 관한한 동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한번도 ‘제대로 된’ 인식의 공유를 해보지 않았던 일본의 부상은 중국과 한국의 반감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는 일본의 부상이 미일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후원 하에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일동맹은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서 그 강화의 명분을 찾고 있다. 이것은 한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충돌한다. 뿐만아니라, 미일동맹의 이름 하에서 일본은 군비증강과 무력의 해외투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는 역으로 역내 주변국들의 경계심을 초래하는 것이다.


결국 탈냉전기 미국의 패권전략과 그에 기반한 동북아 전략이 국제무대에서 정치군사적 역할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던 일본의 구상과 의기투합하고, 이러한 미일의 이해관계의 조합이 그와같은 흐름에 경계심을 갖고 있던 주변국들의 휘발성 강한 민족주의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면서 동북아시아 역내 민족주의의 충돌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2. 동북아시아 ‘민족주의의 봄’과 미국


탈냉전기의 세계는 서로 공존할 것 같지 않는 3개의 흐름, 즉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역주의(regionalism), 민족주의(nationalism)가 혼재하고 있다. 특히, 한때 ‘국가의 소멸’이 언급되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시아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탈냉전기 동북아시아 지역은 세계화의 흐름에 맞춰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동아시아 혹은 동북아 차원에서 지역적 문제를 사고하는 구상들이 제시되고 있기도 하다. 주로 일본에서 제기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구상이나,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동북아 다자간안보체제에 대한 논의들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민족주의적 경향성이 강화되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중화민족주의적 발상에 기반 한 동북공정(고구려사 논쟁)이 한국과 갈등을 빚었던 것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2002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국의 ‘반미 촛불시위’도 결국은 냉전기에 제약 당했던 민족적 권리를 되찾기 위한 탈냉전적 도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보통국가론의 논리가 전후 냉전시기 일본이라는 국가는 ‘비정상적인 국가’였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과 기회가 부과되고 있는 탈냉전기의 변화된 환경에서는 일본도 ‘정상적인 국가’(normal state)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은 양상은 우선, 동북아시아의 복잡다단한 근현대사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역내의 주요 행위자인 한, 중, 일 어느 한 국가도 정상적인 근대국가를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완의 근대과제인 ‘정상적인’ 민족국가 건설(nation-state building)을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탈냉전기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진영대결의 균열선 흔들리고 있는 것도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다른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의 근거가 사라진 상황에서 민족주의가 그 공백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진영대결의 구조에 의해 억제 되어왔던 민족적 과제의 실현에 대한 열망이 탈냉전의 세계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민족주의가 극렬한 민족감정의 충돌로 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일본과 한국, 일본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역사와 영토를 둘러싼 갈등은 그러한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갈등과 분쟁의 원인을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 그 자체로 환원시켜 버릴 수는 없다. 민족주의는 원래부터 그것이 놓인 역사적 맥락에 따라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고 부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관건은 최근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일, 중일 민족주의간 충돌의 ‘맥락’을 짚어 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동북아 지역의 민족주의간 충돌의 맥락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에 온존하고 있는 냉전적 잔재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인 것이다.


동북아시아는 탈냉전의 시간대와 냉전의 시간대가 공존하고 있다. 냉전의 구조가 창출한 2개의 분단국가-남북한, 중국과 대만-가 남아 있으며, 이들은 여전히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에 기반한 쌍무적 동맹질서가 온존하고 있다. 21세기 접어들어서는 이와같은 냉전적 질서의 잔재가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있다.


특히, 부시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냉전회귀적 동북아 전략은 일본의 보수우경화와 군사대국화의 자양분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중국과 한국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이는 다시 일본내에서 민족주의적 동원을 강화하고 있는 보수우익에게 명분을 제공해 주고 그에 따른 일본의 공세적 대응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3. 탈냉전기 미국의 패권전략에 편승하는 일본


1) 미국의 패권전략과 일본의 ‘보통국가’화의 만남


  미국은 탈냉전기 자국의 ‘헤게모니’ 유지와 ‘사활적 이익’의 수호를 위해 동맹국과 비용을 분담하려 하고 있다. 걸프전에서 일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역할’은 미국 입장에서도 미일 동맹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요구했다. 탈냉전기 유일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아시아 지역은 전략적 핵심이었고, 일본과의 동맹관계가 군사적 부담을 나누는 군사적 파트너쉽의 단계로까지 발전시켜야 한다는 판단에 이른 것이다.2) 이에 따라 미국은 미일동맹 강화를 통해 일본의 군사적 역할 증대를 독려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6년 <미일 신안보공동선언>은 미국의 전략과, 탈냉전기 방위정책의 전환을 꾀하고 있던 일본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이루어진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선언은 21세기 미일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협력 범위를 ”일본과 일본 주변지역, 그리고 전지구적(global) 차원으로 확대할 것"이라는 내용을 공식화했다. 이때, 이미 일본은 을 통해 캄보디아, 모잠비크, 르완다, 골란고원 등에 자위대를 파견하고 있었다. 1997년 <신가이드라인>, 1999년의 <주변사태법>은 이와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신가이드라인>과 <주변사태법>이 도입한 ‘주변사태’라는 개념은, 해석에 따라 한반도와 대만, 그 이상의 지역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말을 바꾸면, 일본의 해외 군사활동의 범위가 한반도와 대만, 혹은 그 이상의 지역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시행정부 출범이후 이와같은 흐름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1기 때부터 중국을 “잠재적 경쟁자”(potential competitor)로 상정하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명하면서 미-일-한으로 이어지는 ‘동맹축’을 재편, 강화하고 있다.3) 2기 부시행정부의 경우 1기의 기조가 더욱 강화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본격화되고 있는 미군의 '군 변형'(military transformation)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군의 ‘군 변형’은 테러 등 새롭고 예측하기 어려운 안보위협들에 대응한 전쟁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기동성,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보면 대중국 봉쇄 및 견제의 일환으로 이 지역 미군의 전력구조와 임무를 재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기 부시행정부의 펜타곤라인은 그러한 ‘럼스펠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진용으로 구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군 변형의 핵심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에 대한 본격적인 협의가 시작되었으며,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주일미군 재편을 위한 2+2각료급회담(외무, 국방장관회담)이 시작되었다. 특히, 올해 2월에 개최되었던 미일 2+2각료급회담에서는 미일동맹의 협력 범위에 대만을 포함해서 중국을 크게 자극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자국 이익의 최대 위협이 될 것이라고 상정하고 있는 중국을 “사전에 좌절시키기 위한” 견제, 압박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그 전략의 핵심적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을 축으로 하는 아시아태평양 주둔 미군의 재편에 호응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정치, 군사적 역할을 확장할 명분을 얻고 있다. 최근 일본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가 불분명한 자위대의 위상4) 과 집단적 자위권을 금지한 ‘평화헌법’이라는 점은 미국의 관료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친절하게’ 가르쳐 준 바 있다.


일본은 부시행정부가 9.11테러 이후 벌인 두 번의 전쟁에 자위대를 ‘파병’했다.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을 통해 아프카니스탄 보복공격에 이지스함을 포함한 자위대를 아프카니스탄 ‘보복 공격’에 파견했으며, 2003년에는 <이라크부흥지원특별조치법>에 따라 전투지역인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병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본은 지금도 미국의 ‘이라크 전쟁’ 수행의 최대 후원자이며 가장 믿음직스러운 동맹국으로 남아있다. 미국과 일본의 공동 군사행동이 증가되면 될 수록 자위대의 위상을 명확히 하고-즉, 정식 ‘군대’로 삼고-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할 필요성도 증가된다. 이는 역으로 일본의 군사적 리스크를 증가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국제사회의 정치적 지분을 확대해 갈 ‘지렛대’가 되기도 한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란, 이처럼 점증하고 있는 해외 군사활동이 막강한 군사력과 지속적인 군비증강에 기반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경향을 통틀어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군사적 경향성의 확대에 ‘대국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경계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 일본의 군사비 지출 규모는 이미 세계적으로 ‘메달권’에 진입해 있는 수준이며, 첨단 군사기술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또한, 미군의 세계적 군사재편에 의해 주일미군이 변화하고 있는데, 자위대도 동맹군으로서 그에 따라 “첨단화”를 추진하고 있다. 자위대의 조직과 무기체계의 혁신이 뒤따르고 있으며5) ,미군이 신속성?기동성을 중심으로 하는 육해공 통합군 형태로 변화함에 따라 자위대도 3군 통합막료회의 기능강화와 특수부대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미국산 무기수입과 일본산 첨단무기 부품의 대미수출의 장래를 제거하기 위해 작년 12월 발표된 <무기수출3원칙>의 완화는 이를 위한 조치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미사일방어망(MD) 구축 사업을 통해 첨단무기시스템의 공동 연구에 임해왔으며,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개발과 생산 단계에 들어설 것이다. 안보에서의 ‘미일 일체화’를 방위정책의 핵심으로 하고, 이를 위해 자위대를 “다기능적이고, 탄력적이며, 실효성 있는” 방위력으로 개혁할 것을 제시하고 있는 2004년판 <방위백서>와 <신방위계획대강>은 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6)


2) 전후 60년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 일본


 탈냉전기 가속화되고 있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일본사회의 보수우경화와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주변국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최근의 군사대국화는 보수우경화와 그에 기반한 제도적 정비로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주변국들(특히, 중국과 한국)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왔던 것이다. 일본에 우경화 경향성이 존재해 온 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일본 우경화는 운동이나 사상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던 우경화 경향이 구체적으로 제도적 성과물을 얻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7)


1999년의 <주변사태법> 뿐만아니라, 2003년에 통과된 유사관련 3개 법안(이하 유사 3법)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유사 3법이란 타국으로부터 무력 공격을 당했을 때를 대처하기 위한 <무력공격사태 대처법>, 유사시 자위대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자위대법 개정안>, 유사시 정부의 기능을 강화하고 효율화하기 위한 <안전보장회의 설치법> 등이다. 유사 3법은 ‘정상적인’(normal)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군사력의 보유와 사용에 제한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으며, 유사시 자위대의 운용과 자위대와 미군의 연합전력이 원활하고 효율적인 군사작전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적인 입법취지였다.8) 게다가, 당시 방위청 장관이었던 이시바시게루(石破茂)는 ‘일본이 공격을 받을 위협에 놓여 있다든지, 공격을 받았을 때 적진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것’9) 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발언은 일본이 ‘전수방위’(전수방위)를 ‘위협대응형’으로 바꾸겠다는 공언과 함께, 사실상의 전수방위 폐지와 선제공격론 보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제도적 변화는 헌법의 개정으로 치닫고 있다. 헌법 개정의 핵심은 자위대 위헌성 논란과 해외파병의 장애가 되어 왔던 헌법 9조의 평화조항이다. 헌법 9조의 개정은 일본 보수우경화와 군사대국화의 마지막 제도적 관문이 될 것이다. 결국, 이것은 반세기가 넘게 버텨 온 일본의 전후체제, 즉 거번 맥코맥(Gavan McCormack)이 "46년 체제"10) 라 명명했던 그것의 ‘붕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전후체제는 1946년 제정된 헌법을 기초로 해서 군비최소화-안보의 대미의존, 경제 우선주의라는 ‘정치외교적 현실주의 노선’과 헌법 9조의 평화조항을 기반으로 한 ‘평화주의’가 정립(鼎立)한 것이었다. 전후 일본의 제도와 이념은 이 양대 축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이 양대 축을 중심으로 유지되어 왔던 체제의 토대가 되었던 국내외적 토대는 붕괴되었고 전후체제는 더 이상 서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빈자리를 ‘군사적 보통국가’ 일본을 만들기 위한 제도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주변국들의 입장에서 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거대 경제력을 기반으로 부상하고 있는 군사대국 일본이 눈앞의 현실로 닥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전후 일본의 역사가 일본이 군비증강과 방위정책의 변화, 그리고 정치사회적 보수우경화에 대해 주변국들이 반발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4. 중국의 대응: 중화민족주의, 혹은 중화패권주의?


1) 수면위로 떠오른 중일 갈등  


  2003년 10월 중국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유인우주선을 발사, 성공했을 때 일본의 거의 모든 방송은 특집을 내보냈다. 중국의 우주항공 발전과정을 다룬 프로그램들이었다. 물론, 일본이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1960년대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했을 때도 일본은 충격에 휩싸였었다. 그 직후 출범한 사토에이사쿠(佐藤榮作)내각은 이러한 상황 하에서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의존과 자신의 핵무장을 포기하는 비핵3원칙-핵무기를 생산, 보유, 반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채택했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비핵3원칙이라기 보다는 미국의 핵우산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11)

최근 일본의 대중국 경계심은 개혁개방 이후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력과 그에 기반한 군사력의 증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본의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앞서 언급한 2004년 <방위백서>와 1995년 신방위계획대강을 개정한 2004년판 <신방위계획대강>이었다. <방위백서>와 <신방위계획대강>은 중국이 핵과 미사일 전력, 해군 및 공군력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을 명기(明記)하고 있다.


그러나, 역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인민일보> 인터넷 영문판 2005년 1월23일자12) 는 중국과 일본의 군사관계 전망을 다룬 분석기사에서 일본의 방위청과 당국이, ‘중국 군사위협론을 제기하는 것은 미일의 군사적 일체화와 해외에서의 군사활동에 대한 국내외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중일간의 "위험한 징후"(dangerous sign)로서 작년 11월9일 일본의 언론들을 통해 보도된 중국의 일본 침략 가상시나리오 논쟁,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을 들었다.

  위와 같은 인민일보의 지적은 현재의 중일간 현안이 모두 담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는 일본 방위청이 중국이 남서군도를 침략하는 가상시나리오 3가지를 세워 그에 대한 대처를 신방위계획대강에 명기하려던 것으로, 이는 중국과 일본이 영토와 해양 자원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이고 있는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열도)와 동중국해에 관련된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1960년대 이후 댜오위다오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는, 중국에서 후진타오 체제가 출범한 이후 한때 진전의 기미가 보였던 중일관계가 급랭하게 된 이유가 되었던 역사문제의 핵심이다. 한일관계의 악화가 화제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최근 중국과 일본은 이미 여러 차례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충돌을 했었다.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에서, 과거를 묻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을 때도 중국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항의해 중일정상회담을 연기하고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계기로 냉각된 중일관계에 더해, 2003년과 2004년 연이어 발생한 일본인들의 매춘관광 사건은 중국인들의 반일감정을 더욱 격화시켰었다. ‘정냉경렬’(政冷經熱, 정치 관계는 냉각기이고 경제 관계는 뜨겁다)이라고 표현되는 중일관계는 이와같은 중국의 반일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미일동맹 강화에 대한 중국의 대응

  

  중국은 미일동맹의 강화가 자국을 견제하고, 포위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공식문서를 통해 중국에 대한 견제를 그토록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데, 이를 모른다면 오히려 비정상적일 것이다. 또한, 미일동맹의 강화에 힘입어 일본의 대중국 정책이 공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만,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대중국 정책에 대해 단기적으로 대처가 필요한 것과 중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을 나누어 대처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단기적 대처에 있어, 중국이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은 역사와 영토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재 중국의 민족적 정체성(national identity)에 직결되는 문제이며 현 중국 체제의 정당성(legitimacy)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략적으로도 ‘사활적 이익’과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이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댜오위다오의 경우, 청일전쟁이라는 중국의 근대사와 막대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해양자원의 문제가 공존하고 있으며 동중국해의 중요한 해상교통로의 확보에도 관련되어 있다.


대만의 경우도 중국의 미완의 근대과제 즉, 민족국가(nation-state) 건설의 문제이다. 대만은 단기적으로든, 중장기적으로든 중국의 입장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특히, 중국은 일본이 양안에서 유사사태가 발생했을 때 미국과 함께 공동의 군사적 행동에 나서는 것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있다. 올해 2월 미일 2+2협의에서 미일동맹의 협력범위에 대만이 포함되었을 때 중국이 강하게 반발했던 것은 이런 이유이다. 1996년의 <미일 신안보공동선언>의 맥락에서 1999년에 성립된 <주변사태법>이 대만을 일본의 주변사태에 포함시키고 있음은 앞서 언급한 바대로이다.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선언하면서 그 협력범위에 대만을 포함시킨 것은 역사와 영토문제 양자에 있어 중국에 대한 도전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할 있을 것이다. 중국의 가장 민감한 부분들을 한꺼번에 자극한 셈이다. 이것이 올해 3월, 4월의 극렬한 반일시위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였다.


다른 한 측면에서는, 강화되고 있는 중국의 민족주의 경향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 말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경제의 도입을 통해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은 이제 사회주의 체제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의 단계에 와 있다. 현재 중국을 지탱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중화민족의 '자부심'과 '단일성'(unity)을 강조하는 중화민족주의라고 잘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또한, 다른 측면에서 중화민족주의를 중국 당국이 조장,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개혁개방이후 발생한 다양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무마하고 국가적 통합을 이루기 위한 ‘프로그램’(program)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중국이 역사, 영토 문제 등에 집착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변경(邊境) 지역의 역사와 영토는 핵심적이다. 작년 한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졌던 고구려사를 둘러싼 갈등은 이러한 맥락에 놓여 있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중국의 민족주의가 중화패권주의로 발전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13) 우선, 이미 언급한 것처럼 현재 중국의 민족주의는 중국 내부의 안정과 통합, 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향후 상당기간 중국의 국가전략은 경제성장에 중점을 두고 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2010년 상하이 박람회의 성공을 최대의 과제로 삼고 있다. 이를 통해 개혁개방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해 온 중국경제가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성과(economic performance)를 통해 국내적 안정을 유지하고, 대외적 위상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국가전략인 것이다. 군사력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중국의 군비지출은 미국의 1/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향후 상당기간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해서 정치, 군사적 도전을 할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일방적인 미국의 패권에 견제와 협력을 병행하면서 실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민족주의가 ‘공격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최근의 경우처럼 미일동맹을 등에 업은 일본이 중국의 민감한 부분을 계속 자극한다면 원래 휘발성이 강한 민족주의의 특성상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반일감정이 일본의 후원자인 미국을 향하는 반미감정으로 폭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일동맹의 강화에 힘입어 목소리를 높이는 일본의 보수우익들의 폭주가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중일간의 갈등의 향방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5. 불확실한 동북아시아의 미래와 한반도의 선택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동북아시아 역내 국가 모두와 갈등을 빚고 충돌하고 있다. 미국과는 오히려 더더욱 긴밀해지고 있지만 그에 비례해 동북아시아 주변국들에게는 신뢰를 잃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선, 부시행정부가 밀어 붙이고 있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을 기축으로 삼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이러한 목소리는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고립이 미국의 위상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조차 미일동맹의 ‘공격적’ 강화를 통해 동북아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고자 하는 부시행정부의 전략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일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자 했던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중국은 미국의 전략에 직접 대응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일본의 보수우경화에 대한 우려에 공감을 하고 있는 한국과 가까워지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러시와와의 관계를 밀접히 하면서 군사기술의 상호교류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의 부작용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측면에서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이 평화공존의 동북아시아 질서 창출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작년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고구려사 논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에 불과했다고 하더라도 가혹한 평가는 아닐 것이다. 특히, 영토분쟁과 역사논쟁에 임하는 한국 민족주의는 그 부정적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반감으로 중국과 가까워졌던 한국의 민족적 감정은 고구려사 논쟁으로 다시 미국과 일본 쪽으로 경도되었다가, 일본과의 갈등이 발생하자 다시 중국으로 경도하는 행태를 보였다. 한국 민족주의가 대국 의존적 경향성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일본과 영토와 역사문제를 두고 대립하면서 보인 한국 민족주의의 ‘공격적 경향성’은, 민족주의가 21세기 한국을 이끌어갈 이념적 좌표가 될 수 없음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최근의 영토와 역사에 대한 논쟁은 오히려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그 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동북아 균형자론’은 개념의 모호성과 그 ‘사려 깊음’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고서라도 격동하고 있는 동북아 질서 속에서 민족적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협력적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을 기본 축으로 하고 있는 동북아 균형자론은 동북아 불안정성의 원인을 잘못 해석한 것이든지 혹은 간과한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전략적 비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하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동북아 국가들의 민족주의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제기해야 할 비전은, 강대국 중심의 질서에 편입하고자 하는 욕구를 극복하면서도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는 평화와 공존의 비전을 제시하는 ‘전략적 숙고’로부터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1)동아일보, 2005년 4월27일.

2)  이와같은 전략적 판단을 담은 대표적인 보고서가 일명 ‘나이보고서’로 불리는 1995년의 <동아시아전략보고서>(East Asian Strategic Report)이다. 이 보고서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와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 미군은 향후에도 10만명 선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며 "일본은 아시아전략의 중요한 파트너이며 아시아정책의 핵심요체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일본의 1995년 <신방위계획대강>, 그리고 <미일 신안보공동선언>, <신가이드라인>, <주변사태법>이 탄생하는 논리의 모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부시행정부 1기 때 발표된 2001년판 4개년 국방계획검토보고서(QDR 2001)는 사실상 `중국의 부상과 그로 인한 미국 이익에 대한 위협을 사전에 견제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1세기 미국의 세계전략과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핵심이, 2002년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명기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국가가 미국과 대등해지는 것을 사전에 좌절시키겠다”는 사전 억지개념에 입각한 대중국 압박전략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4)  전후 일본에서는 자위대가 창설되면서부터 자위대의 위헌/합헌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도 그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고이즈미 정권은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기함으로써 그 논쟁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사를 여러차례 밝혀 왔다.

5) 일본은 F15 등 최신예 전투기와 최첨단 구축함인 이지스함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2척의 이지스함을 추가 도입하고 전투기의 작전범위를 5300Km까지 확대할 수 있는 공중급유기와 서태평양까지 초계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최신형 대잠초계기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앞으로 2기의 정찰위성을 추가로 발사할 계획인데 이렇게 된다면 2003년 3월에 발사한 H-2A 정찰위성과 더불어 자위대 정보전력의 급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6)  2004년에 발표된 일본의 <방위백서>와 <신방위계획대강>에 대한 소개와 간략한 분석은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 www.peacekorea.org의 동북아시아자료실의 ‘창설50주년 자위대의 변화’와 ‘일본 2004년 신방위계획대강’을 참조 바람.

7) 이와 같은 분석은 권혁태, ‘일본의 ‘우경화’와 동아시아평화‘, 이론과 실천 2005년 5월호.  

8)  특히, 무력공격사태법안의 경우 자위대와 미군의 연합전력이 원활하고 효율적일 수 있도록 물품, 시설, 용역을 제공할 것을 명기하고 있다. 일본 시민사회는 군국주의 시대 전시동원체제의 ‘부활’의 신호탄이라면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막상 중의원에서는 90%가 넘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9)  2003년 3월 국회 답변 과정에서의 발언으로 여기서 ‘적진’은 북한을 지칭한 것이었다.

10)  거번맥코맥 지음, 한경구, 이숙종, 최은봉, 권숙인 옮김, 『허울뿐인 풍요』, 창작과 비평사:1998.

11)  우메바야시히로미치, 「비핵지대와 ‘공동의 평화’」, 이삼성?우메바야시히로미치외 지음, 『동북아시아비핵비대』, 살림:2005, pp. 48-49.

12)  인민일보 인터넷 영문판(http://english.peopledaily.com.cn/)의 China-Japan differences moving frictions to military field,  January 23, 2005.

13)  이와같은 견해를 뒷받침하는 분석은 이남주, 「중국 동북공정의 논리와 대응방향」, 『황해문화』2004년 겨울호, pp. 22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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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것인가?

임박한 미국과 북한의 충돌?
-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것인가?
PDF 파일 : 55-03.pdf    

5월 초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동맹국들에게 통보하면서 북핵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지역에서 지하 핵실험을 준비하는 징후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미 관리들의 대북 강경 발언이 잇따랐다. 미 백악관 대변인 스콧 맥클렐런은 7일 “우리는 강한 억지력을 갖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우리의 능력에 대해 오판해서는 안 된다”며 북한에  강하게 경고했다. 미 NBC 방송은 미 국방부가 유사시 북한의 핵 시설을 선제 타격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최근 미국의 언론은 북한이 곧 핵실험을 할 것처럼 주장하며 북한 핵실험 준비설을 부각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 문제는 미국 지배계급 내에서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미국과 일본 강경파들이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무부 부대변인 톰 케이시는 “지금 북핵 프로그램에 새로운 평가는 없다”고 밝혔다.

일본 외상 마치무라 노부타카도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과 관련해 여러 소문이 오가고 있지만 확실한 정보는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실험 관측용 관람대를 설치했다”며 북한 핵실험설을 유포하는 데 가세한 <뉴욕타임스>도 이틀 뒤 이런 정보들이 과장됐거나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기사를 실었다.

미국과 일본뿐 아니라 중국·러시아·한국 등 6자회담 관련국들이 모두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에 대해서 내부에서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한 마당에 핵실험 준비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북한이 핵실험을 할지는 어느 국가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은 미국을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아넣고 있다. 그 동안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을 의도적으로 무시해 온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만의 하나 북한이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임을 입증한다면 위기 관리자로서 미국의 위신은 추락하기 십상이다.

이것은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딜레마, 즉 북한에 양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속 시원하게 북한에 군사적 공격을 하기도 어려운 처지를 드러낸다. 부시는 4월 말 “이라크 주둔으로 인해 미군의 능력에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다”며 큰소리쳤지만, 이것이 허세라는 것은 분명하다. 바로 얼마 뒤 미 합참의장 리처드 마이어스는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미국이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있어 다른 분쟁 지역에서 미군의 작전 개입 능력이 크게 제약돼 있음을 인정했다.

미 국방부가 발간한 1998년 국방백서는 북한을 패퇴시키려면 전군에서 64만 명의 미군 병력이 소요된다고 추산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이 이라크와 중동 지역에 발목이 붙잡혀 있는 한, 북한에 대한 군사 공격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미국이 북핵 문제를 UN 안보리에 회부해 UN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기도 어렵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이에 반대할 게 뻔하고, 미국의 핵심 동맹인 한국과 일본도 북한에 대한 군사 공격에 반대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공격은 주요 열강이 포진한 지역에서 전면전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밟아 나아가는 듯한 상황을 미국으로서 무한정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이후 미국이 보인 모호한 태도는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위신을 떨어뜨렸다. 이 때문에 미국 지배계급 내에서 북핵 대응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미국이 북한에 퍼붓는 으름장 뒤에는 북핵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초초함이 배어 있다.

최근 미국 관리들의 잇단 강경 발언은 안보리 회부를 협박해 계속해서 북한을 6자회담으로 밀어넣으려는 목적인 듯하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언론국장은 6일 “우리는 현재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여태껏 그래 왔듯 미국의 실질적 양보가 없는 6자회담 참가에 부정적이다. 북한은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데는 핵무기가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은 북한을 6자회담장에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은 지난 4월 말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해 중국에 대북 석유공급 중단을 요청했다. 실제로 2003년 중국은 북한으로 공급되는 송유관의 가동을 중단해 북한을 베이징 북-중-미 3자 회담으로 끌어낸 바 있다.

중국 역시 북핵 문제가 위기 국면으로 치닫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북한을 6자회담에 끌어들이는 데는 찬성한다. 하지만, 5월 8일 열린 한-중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북의 핵실험이나 유엔 안보리 회부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고 북핵 문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는 데 그쳤다.

미국은 한국에게도 북한 압박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이 6월 중에 열릴 예정인 한미회담의 주요 안건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북한 핵실험 임박설은 다급한 처지에 있는 미국이 북한을 6자회담장에 끌어들이는 데서 관련국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 과장하는 측면이 커 보인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 되면 6자회담을 통해 시간벌기를 하려는 미국의 구상은 물건너가고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것이다. 동북아에서 핵경쟁이 가속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자신의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해 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하려 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반도에 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조차 상황은 미국의 뜻대로만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와 중동 지역에서 위기에 빠져 있는 한, 미국이 동원할 수 있는 힘은 언제나 그들의 바람에 한참 못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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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해방 60주년 기획연재

21세기 동북아 국제질서와 새로운 세력균형체제 모색

          21세기 동북아 국제질서와 새로운 세력균형체제 모색

                                -동북아 5개국 체제-

           

                                          李 昊 宰(고려대학교 교수, 국제정치학)  


I.  21세기 동북아 세력 재편의 몇 가지 시나리오


  1990년대 초엽의 소련 공산체제의 와해 와 동서냉전체제 종식 이후 미국과 중국관계가 새롭게 재편중인 동북아 국제정치 갈등구조의 중심축으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과 소련이 2차 대전 후 국제정치 갈등구조의 양 축이던 동서냉전 시대에 “탈냉전”만 되면 미국이 고립주의 전통을 따라 태평양 넘어 복귀 할 것이기 때문에 19 세기말과 20세기 초엽처럼 전통적 지역국가인 중국, 일본, 러시아가 주역이 되는 국제 관계가 재현될 것이라는 일반적 전망이 오판이었음을 보여준다. 또 탈냉전이 되면, 일본이 이 지역에서 미국이 담당하던 정치 및 군사적 역할을 승계 받아 사실상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던 전망도 빗나갔다.

  오히려 중국이 동북아의 권력재편과정에서 급속히 부상하여 국제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대상이 되고 있다. 냉전시대 서방진영의 主敵이던 소련의 지위를 중국이 이어받게 된 국제적 상황인식의 변화가 중국 부상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중국이 개방과 경제개발정책의 성공으로 80년대 이래 연평균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21세기에는 세계적 경제력을 갖춘 초강대국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경계심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의 초강대국화는 국제적으로 안정과 평화를 위협할 것이라는 “중국 위협론” 혹은 “중국 경계론”이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냉전 후기 미국의 아시아정책 형성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 미국이 소련의 붕괴로 얻은 세계적 군사 패권을 최대로 활용하여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냉전시대의 적대 진영이던 공산주의 국가들에게까지 확대하려는 야심적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국문제는 더욱 큰 논쟁점이 되고 있다.

  전 적대세력들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순화시켜 미국의 세계적 지도권이 다시는 도전 받지 않도록 하려는 정책에 중국이 그 가장 큰 대상이 됨과 동시에 걸림돌이 될 잠재력을 가진 강대국이기 때문에 미-중 관계가 벌써 동북아 국제정치의 갈등구조의 중심 축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1) 

  21세기 동북아 국제관계에서 중국 대 미-일 관계가 세력 갈등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미국정책 전문가들의 판단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문서가 1994년 7월 발표된 “참여와 확산의 국가안보전략”(A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Engagement and Enlargement)과 1995년 2월의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안보 전략”(U. S. Security Strategy for the East Asia-Pacific Region)이란 보고서이다. 그리고 상기전략의 집행을 위한 미국과 일본의 공조를 구체화시킨 것이 1996년 4월의 “미-일 안보 공동선언”과 “미-일 방위 협력지침”이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최근에 와서 미국의 이상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확대를 강조하면서, 미국은 현상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의 세기”였던 20세기처럼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아 21세기에서도 전 세계를 이끌어갈 지도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고 자주 다짐하고 있다. 그리고 군사력으로 미국의 외교를 뒷받침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2)

   미국과 일본의 외교구상과 전략을 가늠할 기본문서들을 보면, 21세기의 동북아 세력 구조의 시나리오로서 중국을 한 축으로 하고 미-일 동맹이 다른 한 축이 되어 경합하는 체제를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한 체제로 가장 먼저 가상하고 있다. “중국 대 미-일 동맹 대결”체제 시나리오에서는 동서냉전 종식 후 구 소련이 사실상 여러 독립 공화국으로 해체되었을 뿐 아니라 오늘의 러시아도 경제적 파탄으로 과거 러일전쟁의 패배 후처럼 매우 약화되어 동북아 지역문제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으로 전제한다.

  “중국 대 미-일 동맹”체제는 구조면에서 중, 미, 일 3강대국 체제인데, 이 체제하에서 한반도의 2개 한국정부가 어떠한 상황에 위치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2종류의 동북아 국제체제형태가 나타날 것으로 추정된다. 첫 번째는 한국과 북한이 현재처럼 냉전시대의 대결관계를 지속할 뿐 아니라 남한은 미-일 동맹을, 북한은 중국을 지지하는 동서냉전기의 2블록 대결체제와 같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과 북한이 21세기에 상호 협력적 평화공존관계를 이루거나 통일되어 강력한 단일세력으로 중국 대 미-일 관계를 평화 공존적 3강 체제로 완화시키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담당할 수 있을 때 발현될 체제이다.

  한민족은 전체로서는 중국 대 미-일 동맹 대결체제 같은 것에 참여하기보다는 독자적 지위에서 중재 역할을 더 바랄 것이나, 남한과 북한이 지금처럼 대결을 계속한다면 주변 강대국들의 대결구조에 편입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가 중재적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기회는 통일되거나 2개의 한국이 통일된 것 같은 평화공존 상태에 있을 때 주어질 것이며, 더욱이 중국 대 미-일 대결관계가 완화되고 상호간에 평화공존을 바랄수록 높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모든 지역 국가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냉전시대의 미-소 블록과 같은 2블록 대결체제가 동북아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될 것이다.

  이상의 2가지 시나리오는 “중국 위협론”의 가정처럼 21세기에 중국이 초강대국화하여 제국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또 미국이 소련붕괴 이후 장악한 세계적 군사패권과 냉전의 승리에서 얻은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세계의 경찰”이 되어 전 세계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로 개편하려 할 때 전개될 상황이다.  간단히 말해서 21세기를 미국의 것으로 만들려는 절제를 잃은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과 “중국 위협론”이 상정하는 것과 같은 중국 제국주의가 상충할 때 가상되는 동북아의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나리오는 강대국들이 21세기에 가서도 20세기를 여러 번의 세계 대전으로 몰고 갈 때 범한 과오를 무모하게 반복할 것이라는 전제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 현실성이 논박의 대상이 된다. 다음 세기에 도래할 정치, 경제, 군사적인 국제사회의 변혁을 감안하면 그만큼 설득력을 잃게 된다. 그래서 이 2가지 시나리오와는 다른 전제를 근거로 하여 성립 될 수 있는 상황을 여러 가지로 가상하여 볼 수 있다.

  21세기에 초강대국으로서 동북아 지역의 세력 개편에 주역을 담당할 미국, 중국 그리고 일본이 20세기적 제국주의를 포기할 뿐만 아니라 서로 상대국의 정책을 제국주의로 의심하는 악순환적인 권력투쟁의 극복에 성공하여 위험한 대결보다는 공동번영을 보장하는 평화공존적 관계가 성립된다면 다른 형태의 동북아 국제 질서가 형성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중국 대 미-일 동맹이 2블록을 결성하여 대결하기보다는 적절히 타협하여 평화공존적 방향으로 동북아 국제정세가 전개되는 조건 하에서 중국, 미국, 일본 등 3개 강대국과 러시아, 한국, 북한 등 비교적 작은 3개국 등 모두 6개의 국가가 새로운 동북아 국제질서의 형성과 운영에 참가하는 “동북아 6개국 체제”같은 것을 가상할 수 있다. 이러한 6개국 체제가 성립되려면 주도적 힘을 가진 3 강대국 즉 미국, 중국, 일본간에 제국주의적 대결이 완화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력을 가진 3개 국가 즉 남북한과 러시아가 긴밀한 협력을 통해 동북아의 세력 판도가 2블록 대결의 방향으로 악화되는 것을 적극 예방하는 것도 강대국의 역할 못지 않게 중요하다.

  “동북아 6개국 체제” 유도의 중요 조건은 이 지역의 3대 강국을 견제할 입장에 있는 다른 3개 국가들이 2블록 대결체제 결성을 위해 강대국들이 각각 요구할 동맹결성 및 블록 참여를 유보하면서 가능한 한 중립적 지위에서 중재 역할을 적극 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한반도의 한국과 북한이 분단시대처럼 남북대결의 승자가 되기 위해 미국 혹은 중국과의 동맹강화를 추구하지 않고 평화공존에 이해를 같이하며 마치 통일한국처럼 모두 중립적인 지위에서 3강대국의 이해대립을 중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상과 같은 “동북아 6개국 체제”가 현실화될 수 있다면, 그 다음으로 가상하여 볼 수 있는 것은 “동북아 5개국 체제”이다. 이 체제는 6개국 체제와는 달리 한반도의 2개 한국 정부가 연합 혹은 통일국가가 되어 동북아 국제질서의 구성 국가의 수가 5개 국가가 되는 경우이다.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국가는 분단시대와는 달리 남북의 힘을 합쳐서 “준 강대국” 같은 지위를 누리는 반면에 중국, 미국, 일본 등 이 지역의 전통적 강대국은 상호간의 견제로 한반도 같은 약소지역에 서로 제한된 영향력만을 행사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이 체제 유도에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된다.  결국 이 체제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통일 한국 등 5개국이 모두 비슷한 비중을 가지고 과거 5개국 이상의 유럽 강대국들이 세력균형 원칙에 따라 안정과 평화를 얻었던 “유럽 협조체제” 같은 것을 이 지역에 형성하려고 할 때 성립될 수 있는 일종의 세력균형 체제이다. 

  마지막으로 가상하여 볼 수 있는 것은 “동북아 다다국(多多國) 체제”이다. 이 체제는 “중국 위협론”의 가정과는 달리 21세기에 중국 대륙이 분할되는 것을 가정한다. 이것은 예를 들면 현재 중국을 강력히 통치하고 있는 중국공산당이 상당한 수준의 경제 발전을 이룩한 후 국내 정치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될 민주화와 분권화 그리고 빈부 격차의 심화와 부의 공정 배분요구 등을 처리하는데 실패하여 국민의 신뢰와 통치력 상실로 구 소련 해체 후의 러시아처럼 “보통 국가”가 될 때 나타날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이다. “보통국가”화한 중국과 그 기회에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대만, 티베트, 몽고, 신장 지역 그리고 미국, 일본, 러시아, 한국과 북한 등 약 10여 개 국가가 동북아 국제 질서의 구성에 참여하는 체제이다.

  “동북아 다다국 체제”는 중국이 “하나의 중국”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대륙이 분할될 때 성립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정부가 결코 용납하지 않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거부할 체제이다. 그러나 영국 미국 등 해양세력은 유럽대륙을 분열 상태에 두어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기본정책으로 삼아 온 것처럼, 중국대륙에 강력한 하나의 통일국가가 존재하는 것보다는 분할 상태에 있는 것이 자신들의 안전에 덜 위협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을 경계하는 일본 같은 국가들은 중국의 분열을 전제로 하는 “동북아의 다다국 체제”를 매우 선호할 것이다. 따라서 21세기의 동북아는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 위협론”을 경계하여 동북아에 “다다국 체제” 같은 것을 유도하려는 미국, 일본 같은 해양세력과 “하나의 중국”원칙 하에 강력한 통일 중국을 더 한층 강화하려는 중국과의 관계에 따라 판도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II.  20세기 신질서 모색의 실패와 지역국가간의 갈등악화


  19세기 후반까지 동북아에는 중국대륙을 장악한 강력한 통일제국이 종주국적 지위에서 주변의 모든 지역을 지배하는 “中國一帝國支配”적 질서가 약 2천년 이상 자리를 잡아 왔다.3) 그 질서는 중국 중심의 “華夷觀” 혹은 “유교적 국제질서관”으로 정리되어 이 지역 전체가 하나의 통일국가로 통치되는 것이 하늘의 순리를 따르는 옳은 길 즉 “正道”이고, 통일성을 잃고 여러 왕조로 분열되어 패권싸움을 하는 상황을 아주 잘못된 길 즉 “覇道”라는 믿음으로 일반화되어 역사적으로 오랜 동안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평화유지에 기여하여 왔다.4)   이러한 믿음은 로마제국 해체 이후 특히 유럽의 근현대사에서 유럽국가들이 유럽 대륙의 하나의 강대한 제국에 의한 지배를 거부하고, 여러 국가로 분열된 상태에서 세력균형 원칙에 따라 각국의 독립을 보장하면서 유럽대륙 전체의 안정을 얻는 것을 정상시했던 경향과는 매우 대조된다.5) 그래서 동북아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분열과 패도상황을 극복하고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 정도라는 “통일천하” 개념이 질서와 안정 유지에 도움이 된 반면에, 유럽대륙에서는 기회를 얻은 1개의 강력한 제국의 세력균형원칙을 무시한 통일 유럽제국의 건설 시도가 1차, 2차 대전처럼 유럽의 평화와 안전을 파괴하는 잘못된 길로 간주되었다.

  결과적으로 전 유럽을 지배하던 강력한 로마제국 같은 통일된 중국제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19세기 말엽까지 오랜 동안 동북아 지역 질서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 중국중심의 동북아 국제질서가 19세기 후반부터 월등한 무기로 무장한 서양 강대국과 일본의 도전으로 와해되는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그에 따라 동북아 지역은 유럽적 국제질서를 수립하려는 시도에 의해 중국 대륙이 구미 열강에 의해 분할되었고, 한반도는 청, 일, 러 3국이 불안하게 세력균형관계를 유지하는 “3국의 불완전 세력균형체제”로 변하였다. 그 후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를 통해 한반도의 청, 일, 러 3국간의 불안한 세력균형관계를 타파하고 한반도의 병합 그리고 1차 대전의 전승국으로서의 월등한 힘과 국제적 지위를 얻어 더욱 제국주의적 영토 팽창을 추구하면서 중국 대륙은 더욱 통일성을 잃어 갔다.

  1차 대전 후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 등 중국대륙의 일부를 장악하여 동북아 지역에서 위세를 떨치는 지위를 구축하였으나, 중국과 소련 그리고 구미 열강들의 견제와 도전 때문에 결코 안주할 수 없는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6) 그래서 일본은 대 중․소 및 대 서방 방위의 필요성을 내세워 1932년에는 일차로 만주국을 수립하고, 다음 단계로 내몽고와 동북부의 화북지방 5개성, 즉 하북(河北), 산동(山東), 산서(山西), 차하르, 수원(綏遠)에 자치정부를 수립하려고 획책하였었다.7)  더 나아가 일본이 이 지역의 주도국이 되는 “대동아 공영권”의 수립이 일본의 동북아 국제질서의 구도임을 내외에 분명히 천명하였다.

  일본이 1930년대에 와서 만주국 그리고 몽고와 화북지방 5개성에 자치정부를 적극 수립하려했던 정책은 아시아인을 위한 “대동아 공영권” 수립이라는 원대한 야심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것은 일본이 국가 간의 권력투쟁에서 흔히 쓰는 분할지배 정책을 좇아 잠재적 경쟁국인 중국을 여러 세력으로 분열된 상태에 놓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예방적 측면도 있었다. 1945년 8월 태평양전쟁의 패전으로 동북아 지역에 오랜 동안 존재해 왔던 “중국 일제국 지배체제”를 대신할 “일본 일제국 지배체제” 즉 대동아 공영권을 수립하려던 일본의 야심적 시도는 실패하였다. 다시 말해서 중국 중심의 이 지역 국제질서가 붕괴된 기회에 일본 중심적 질서를 창건하려던 오랜 일본의 노력은 결국 한민족과 중국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와 지역적 혼란만 야기한 채 실패하고 말았다.

  일본 패망 이후 전승국인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38도선을 경계로 분할 점령하고, 그 무렵에 시작된 동서간의 냉전과 상호봉쇄정책에 따라 친미적 한국과 친소적 북한정부를 각각 수립하면서 “미. 소 양 블록 대결체제” 같은 것이 동북아 지역에도 점차 자리잡아 갔다. 1949년 모택동의 중국대륙 장악과 장개석 국부군의 몰락, 1950년 6월 소련의 군사적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과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의 참전 그리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동북아 지역도 유럽과 같이 동서냉전의 양대 대결장의 하나가 되어 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이 대 소, 중, 북한 봉쇄정책을 위해 일본과의 동맹정책을 적극 강화하면서 일본은 일찍부터 지역 강대국의 지위를 회복하고 있었다.

  소련-중국-북한 동맹 대 미국-일본-한국 동맹 대결형태의 미, 소 양 블록 대결체제는  50년대 말경 시작된 중-소 분쟁과 모택동의 독자노선 그리고 북한의 대 중, 소 등거리 외교와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유일 체제 강화 등으로 공산 블록의 내부 균열이 일어나면서 사실상 내용 면에서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오랜 월남전쟁의 종식과 미군의 완전 철수 그리고 1971년 중국이 대만을 축출하고 유엔 대표권을 차지하고 1978년에 중국과 미국간의 국교정상화가 성립된 후에는 중국이 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견제하는 미-일 동맹체제와 협력하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서방세계와 협력하는 개방과 경제개발 우선 정책을 추구한 것이 미-소 패권 경쟁을 미국의 승리로 기울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그 후 80년대의 동북아시아 세력판도는 미, 소 뿐 아니라 중, 일이 각각 독자적 발언권을 갖고 참여하는 “4강 체제” 같은 것으로 점차 변화되어 갔다.

  이처럼 동북아의 세력판도가 미, 소를 중심으로  2블록을 지어 대결하던 냉전구조와는 매우 다른 4강 체제적 구조로 변화되면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문제도 주변 4강이 남북한을 교차 승인하는 방법을 통해서 해결하는 “4강의 남북 교착승인”을 전제한 “동북아의 평화공존적 4강 체제”로 발전될 것이 기대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힘입어 1991년 9월 한국과 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고, 한국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북방외교로 소련 및 중국과의 국교정상화가 급속도로 실현되었다. 한편 남북한간에는 1988년이래 계속 열렸던 남북 고위당국자회담에서 1992년의 남북 기본합의서 즉 “남북간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 서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비핵화 공동선언”까지 합의되어 공동 발표되기까지 했다. 한국 북방외교의 성공적 결과였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적 의혹과 적절한 사찰문제로 남북대화가 중단되고,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 핵 개발 저지를 최우선으로 내세우면서 북한 핵 시설에 대한 폭격도 불사하겠다는 강경정책이 한반도의 전쟁돌발 위기감을 극도로 고조시켜 그 동안 남북한이 무력대결을 청산하고 새로운 평화공존시대를 열기 위해 수행해 온 많은 노력의 결과들이 무산되어 버린 사태가 일어났다. 이 무렵 김영삼 정부의 외교 안보 팀이 미국의 대북 무력 응징에 의한 한반도의 전쟁 발발을 예방하기 위해 수행한 대미 외교 노력은 한민족을 위해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전쟁 발발의 방지에만 매달림으로써 아주 약화된 한국의 주장에 별로 주의하지 않고 결국 미국 클린턴 정부는 1994년 10월 “제네바 북-미간 기본 합의서”를 채택, 북한의 핵 개발을 동결하는 수준에 만족해야 하는 협정을 북한과 체결했다. 북한의 핵 개발 동결 보상으로 미국은 KEDO를 통한 2기의 원자로 건설(50억 달러)과  5천만 달러 규모의 중유 지원 그리고 대북 경제제재 해제와 북-미 국교수립원칙 합의 등에 동의함으로써 북한에게 그들이 원하는 북-미 직접 협상의 길을 열어주어 미국은 사실상 한반도 문제 협상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제네바 북-미간 기본 합의서”는 낙관적 견지에서, 그것이 북-미 뿐 아니라 북-일 국교정상화까지 실현시켜, 남북한의 평화공존 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4강 간 평화공존을 보장할  새로운 동북아 체제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금창리 핵 개발 의혹 사건,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로 주장하고 있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 사건, 북한의 간첩 잠수정의 동해 침투 그리고 금년 6월의 연평 해전 등 이 지역의 정세를 불안으로 몰고 가는 나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대만의 이등휘 총통이 “하나의 중국”원칙을 부정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국가 대 국가관계로 정립하겠다고 선언하여 대만과 중국관계를 극도로 긴장시키고 있다. 이것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종래의 국제적 합의를 부정하고 대만의 독립을 추구할 것을 사실상 선언한 것이기 때문에 이 지역 국제 관계에 매우 심각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와 같은 심상찮은 대만정부의 움직임은 97년 9월 미-일 군사동맹의 협력 방안인 “미-일 방위지침”의 개정과 그것에 따라 미군이 전개할 모든 작전에 일본 자위대의 참여에 필요한 “일본의 주변 사태법”이 1999년 5월 24일 일본 국회의 통과로서 확정된 시점에 표면화되어 국제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일 동맹체제가 더 한층 강화된 시점에 표출되었기 때문에 중국은 “하나의 중국”원칙을 부정한 대만에 무력응징도 불사한다는 강경 입장에서 군사적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999년 5월 미국의 전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가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다. 그 방문이래 특히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동결과 미국의 대북한 경제제재 해제 및 식량 등 경제지원 그리고 북-미 관계정상화를 일괄 해결하려는 소위 일괄 타결안이 북한문제 조정안으로 부상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클린턴 행정부는 대북 일괄타결 정책으로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일관성을 갖고 추구하고 있고, 북한도 핵 및 미사일 협상에서 보인 것처럼 미국과의 협상에 성실성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한반도에 관한 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주변 4강이 남북한을 교차 승인하는 바람직한 상황 즉 미, 일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 같다.8) 그러나, “중국 위협론”을 전제로 중국 대 미-일 동맹 대결 같은 사태가 전개되면, 남북한 관계도 평화 공존적으로 자리잡기 매우 어렵게 되어 동북아의 장래를 결코 낙관 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처럼 동북아 국제관계를 개관하여 보면, 19세기 말 중국대륙 중심의 동북아 질서가 붕괴된 이래 일본제국이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군사력을 동원한 강압적 방법으로 대동아 공영권 같은 독점적 질서를 수립하려다가 결국 미-일 전쟁으로 패망하였다. 2차 대전 후 전승국 미, 소는 편의주의와 단기적 손익에 따라 한반도를 분단하는 실책을 저지름으로써 한국전쟁을 일으켜 동북아 지역을 유럽대륙과 같이 동서냉전의 세계적 대결장으로 만들어 이 지역에 새로운 질서 수립에 실패하였을 뿐 아니라 지역 국가 간의 갈등과 상호불신감을 더욱 악화시키고 말았다. 20세기의 동북아 역사가 확실히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1국 패권주의” 혹은 “2국에 의한 분할 패권”정책은 결코 성공 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지역 국가들이 소련체제의 붕괴 후 도래된 새로운 시대상황에서 장래의 동북아 국제관계에 대한 창조적 구상이나 모색도 없이 21세기에도 “중국 대 미-일 동맹대결”같은 잘 못 된 길을 좇아 20세기의 실패를 반복할 것이 염려된다. 이러한 사태발전은 이 지역 정치지도자의 “비전”부재의 결과로서 그들의 책임이 크지만, 지역의 국제정치학자의 한 사람인 필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III.  동북아의 세력균형 모색과 “동북아 5개국 체제”            


  19세기 말엽이래 동북아 국제관계가 여러 번의 전쟁으로 극도로 악화된 지역 국가간의 대결과 불신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나쁜 과거에만 매달려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상태에 계속 머물고 있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동북아의 현재는 오랜 구미열강들의 제국주의 횡포와 지배권의 현상유지 야욕, 악랄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무단정치의 유산, 그리고 전후 미소의 한반도 분단과 한국전쟁 그리고 중국내의 국-공 내전을 계기로 한 냉전적 이념대결의 전 지역으로의 확산 등 많은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세력분포의 측면에서 보면 비슷한 힘을 가진 5개 이상의 국가들이 세력균형원칙에 따라서 상호 견제로 질서를 유지하던 유럽 대륙과는 달리 동북아시아에서는 중국 1개국 혹은 중, 일 2개국 아니면 중, 일, 러 3개국에 힘이 편중되어 있어서 세력균형체제가 형성, 유지되기 어려운 객관적 조건이 중대한 결함이 되었다. “1개국 패권”, “2개국 분할 패권” 그리고 “3개국 불완전 세력균형체제”만 형성된 것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 파괴의 중대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근대이래 유럽의 역사가 증명한 것처럼, 비슷한 힘을 가진 5개국 이상이 형성한 유럽의 세력균형체제가 지난 4세기 동안 유럽국가들의 독립과 지역의 평화 확립에 반드시 기여하였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세력균형체제를 평화에 기여한다고 긍정적으로만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의 유럽 국가들이 동서 냉전시대를 지나 “하나의 유럽“을 목표로 하면서 평화 공존적 관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데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북유럽 국가들 그리고 러시아 등 전통적인 유럽 열강들이 국력 분포 면에서 대체로 균형을 이루어 확실한 세력균형체제로 뒷받침한 객관적 조건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국제사회에서는 과거 중국 혹은 일본이 누렸던 “1개국 패권” 혹은 “2개국 분할 패권”은 민족주의 정치이념으로 무장하고 있고 또 상당한 국력을 가진 다른 국가들의 저항으로 결코 성공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역의 크고 작은 모든 국가들의 독립을 보장하는 평화 공존적 세력균형체제만이 수용될 수 있는 오늘의 국제적 현실 때문에 우리가 21세기를 향한 미래 지향적 국제질서를 창의적으로 구상하는 데에는 유럽의 세력균형체제에서 가장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21세기 동북아 문제는 지역국가들간의 힘의 불균형상태에도 불구하고 지정학적,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 전통적 유럽의 세력균형체제 같은 것을 이 지역의 새로운 질서로 유도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모겐소 교수의 논리처럼 여러 독립국가로 구성된 복수적 국제체제 하에서는 모든 구성국가들의 독립을 보장하면서 체제 전체의 안정을 얻는 유일한 길은 세력균형원칙을 준수하는데 있고, 현재와 같은 복수적 국제정치 체제의 존속에는 모든 구성국가의 세력균형원칙 준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9) 그래서 여러 독립국가로 구성된 국제정치에서는 세력균형원칙에 충실한 세력균형체제가 형성되고 유지되어야  모든 국가의 독립과 체제안정이 동시에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 절에서 개관한 것처럼 동북아에서는 힘이 몇 나라에 편중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지역국가들은 중국 혹은 일본 중심의 “1국 패권” 과 미, 소 2국의 “분할 패권” 등 패권적 질서에만 익숙하고 비슷한 힘을 가진 5개 이상의 국가들이 세력균형원칙에 따라 離合集散하면서 모든 지역국가의 독립을 허용하는 평화공존체제를 경험한 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 지역에 세력균형체제를 유도하기는 극히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도 21세기의 동북아 지역에 일종의 세력균형체제를 유도하는데 도움이 될 몇 가지 조건이 현재 발전하고 있다.

  첫째, 미국이 반세기 동안의 동서냉전 과정에서 동북아 지역분쟁에 직접 개입하여 전통적인 지역 3강대국인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이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적으로 절대적 이해관계를 가진 직접 당사국의 지위를 확보한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동북아의 국제관계는 미국의 적극적 참여로 역사상 처음으로 “4강 체제”같은 것이 자리 잡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근년에 이 지역의 절대적 이해 당사국임을 강조하면서, 자국이 이 지역의 지역국가임을 동북아 지역의 자국의 이익과 함께 미국이 동북아시아를 포함한 보다 더 넓은 지역 개념인 “아시아. 태평양 공동체”의 지도 국임을 강조함으로써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10) 이점을 미국은 소련 붕괴 후 냉전의 승리국가로서 세계적 군사패권 장악 이후 더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 변화를 클린턴 대통령은 소련붕괴로 냉전이 종식 된 후인 1995년 2월 전통적 고립주의로 복귀하는 대신 “참여와 확산의 안보전략”에 따라 약 10만 명 규모의 아시아 주둔 미군을 유지하여 미국의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지켜 나가겠다는 미국의 결의를 “동아시아-태평양지역 전략지침”에 아주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11) 그래서 21세기의 동북아는 미국이 어느 때보다도 깊은 이해를 가지고 깊이 참여하여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특색이 될 전망이다. 과거와 달리 절대적 이해를 가진 미국이 직접적 당사국으로 적극 참여하는 것은 동북아 지역에 일종의 세력균형체제를 유도하는 데에는 좋은 조건이 된다.

   둘째, 과거와 달리 이 지역의 전통적인 3대 강국간의 힘의 분포가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되어 있지 않고 각국의 힘이 비슷한 균형상태에 있어서 조건만 주어지면 3국이 각각 독립변수로서 일종의 세력균형체제의 유도에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과거 보다 높아진 점이다. 20세기까지의 상당한 기간 동안 중국 혹은 일본은 한쪽이 너무 강하거나 약한 상태에 있었고, 한때는 소련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어서 이들 3 국간에는 세력균형이 잘 성립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특히 90년대 이후 중, 일, 러 3 국은 각기 다른 장점을 가진 강대국으로서 서로 상대국들의 패권 추구를 저지할 상당한 힘을 보유한 사실과 미국의 적극적 참여 때문에 이들 4국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일종의 세력균형관계가 성립되어 앞에서 논한 “5개국 세력균형체제” 유도의 좋은 조건이 될 수 있다.         

   상기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지역에는 미국까지 포함해도 4개국 밖에 없다는 결함 때문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5개 이상의 구성국가가 있을 때 성립이 가능한 완전한 세력 균형체제는 현재로서는 어렵다는 것이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논할 때 근본적 문제로 제기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한반도와 한민족의 위치 및 역할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다시 말해서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모든 지역국가들의 평화공존을 가장 잘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5개국 세력균형체제”가 요구하는 1국의 역할을 한반도가 담당할 수 있을지가 동북아의 장래를 크게 좌우할 것이라는 것이다.

   한민족이 주변 4강과 같이 1강의 지위에서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의 운명을 크게 바꾸어 놓을 "5개국의 세력균형체제", 즉 “동북아 5개국체제”를 새롭게 창조할 역사적 작업에 참여하는 것은 한갖 한민족의 허황한 꿈이 아니다. “동북아 5개국체제”는 과거와는 달리 장차는 현실화될 수 있는 이상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남북한의 한민족이 단합하여 1강의 역할을 담당할 운과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는 크게 의문시된다.

   전후 냉전 반세기처럼 남북한이 극단적 대결을 지속하면, 현재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4강 체제가 평화공존적인 것으로 발전 못하고 균형을 잃고 깨어져 제Ⅰ절에서 가정하여 본 21세기 동북아질서의 여러 시나리오 중에서 “중 대 미-일 동맹”에 한국과 북한이 각각 다른 편에 가담하여 대결하는 “2블록 대결체제”로 재편될 것이다. 이러한 2블록 대결체제에서는 과거 냉전 시대 같은 전쟁과 갈등 그리고 혼란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의 한민족이 92년에 채택한 남북 기본합의서인 “남북 간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잘 준수하면서, 이미 설립되어 있는 군사, 경제 교류협력, 사회문화 교류 협력 등 3개 공동위원회를 잘 운영하여 남북한이 평화 공존하는 새 시대를 열면, 동북아시아는 장래 다르게 발전할 여러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한반도의 남북한이 지금과 같은 民族相殘的 대결을 계속하면 동북아의 장래는 매우 비관적이다. 반대로 한민족이 남북 평화공존시대 혹은 통일시대 개척에 성공하면 동북아의 장래를 낙관할 수 있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문제는 한민족의 역할과 한반도의 미래 상황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말이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의 한반도처럼 허약한 세력으로서 주변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 대상이 될 뿐 아니라, 한 강대국이 먼저 한반도를 선점하면 다른 강대국에게 큰 위협이 되는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강대국의 권력투쟁의 대상이 될 뿐 일 것이다. 한반도가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없는 약소국으로 남아 있는 한 동북아의 국제관계는 과거와 같은 불행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통일 한국이라도 “2류 국가”로서 동북아의 전쟁과 평화문제에 발언권을 갖지 못할 존재라면, 주변 강대국들도 한국이 세력균형체제의 형성과 유지에 절대로 필요한 1강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유럽 같은 세력균형체제 수립을 통해 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설사 한반도 주변의 국제관계가 2강, 3강 혹은 4강 상태로 전개되어도 세력분포와 구조면에서 매우 불안하기 때문에 한민족이 다른 열강과 같이 1강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조건하에서는 세력균형 보다는 블록 대결정책을 통해 자국의 안전과 이익을 지키려 할 것이다. 그 길이 더 쉽고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21세기에 한반도가 통일되거나 2개의 한국정부가 존재하더라도 내적으로 상호 보완하고 대외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1강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되면, 주변 4강들도 한민족이 독자적 존재로서 1강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을 믿기 때문에 한민족과 협조하여 새로운 “동북아 5개국체제”의 유도를 위해 적극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길은 매우 어렵고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현재는 남북한이 대결상태조차 완화시키지 못 하고 있기 때문에 “동북아 5개국체제”같은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20세기의 실패를 21세기에 다시 반복하는 것은 더 큰 악몽이기 때문에 동아시아 민족들은 21세기를 위해 새로운 동북아의 국제관계를 창조해야 할 역사적 과제에 대한 도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IV. 한반도의 지위 강화와 한민족의 선택과 역할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공동번영에 “동북아 5개국 체제”같은 것이 더 기여할 것이고 또 그것이 바람직한 이상이라고 할지라도 한반도와 한민족은 지정학적으로 약소한 조건 하에 있기 때문에 남북한이 이 지역에 새로운 “동북아 5개국 체제” 시대를 주체적으로 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많다. 설사 한민족이 통일국가를 이룩한다 해도 주변 4강대국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열세하기 때문에 동북아에는 유럽적 세력균형체제가 성립할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북아와 한국 관계의 오랜 역사적 사실들은 더욱 한민족이 주변 4강에 비견될 영향력과 지위를 가진 1강으로서 “동북아 5개국체제”에 참여할 가능성을 완강히 부정한다. 그래서 한국이 21세기에 동북아 5강의 1국이 될 가능성은 중요한 논쟁점이 된다.     

  필자는 일찌기 “한국과 일본, 21세기로 가는 길”이라는 논문에서 한국, 일본, 미국 등  관련 국가들이 공동으로 추구하여야 할 21세기의 목표로 “동북아 5개국 체제”를 제의하면서, 그 가능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전망하였다. 즉,


“21세기 동북아 질서는 통일된 한국도 힘과 능력을 가지고 참여하는...5개국 체제로 발전하여야 한다. 몇 년 전 (한국개발연구원의 한 보고서는) 대략 2000년 무렵에  남한이 인구 5000만과 GNP 2500억 불에 이르는 국력을 가질 것으로 전망하였는데, 작년의 남한 GNP는 2천 1백억 불을 넘어서서 세계 13위가 되었다. 그러므로 2000년대에 남한과 북한을 합친 총 국력은 인구 약 8천만에 GNP 3천억 불로서 주변 강대국에 비교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동북아 5개국체제’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할 능력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상기한 것 같은 국력을 가진 통일된 한국은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과거와 달리 약소국의 지위를 벗어날 수 있다.”12)


  21세기로 들어가면 갈수록 남한과 북한의 국력이 강화되겠지만, 과거와는 달리 자원, 군사력 등 물리적인 것 못지 않게 일본과 독일의 경우가 증명한 바와 같은 경제 개발과 첨단 기술 및 과학분야의 개척 그리고 국민의 교육력 신장 등 비물리적 분야의 개척을 통해서도 한국은 경제력 신장을 중심으로 국력 신장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13) 그래서  21세기에 가서도 한국의 국력이 약소국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으로 전망하는 것은 미래 국제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잘못 읽은 결과가 될 것이다.  미래의 국제관계에서는 강대국간에 군비경쟁이 시작되면 모든 강대국의 군사력이 서로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는 ‘상호상멸’의 수준을 쉽게 넘게 됨에 따라 종래 군사력이 누리던 막강한 영향력이 점차 상실될 것이므로 강대국들은 군사적 대결의 한계를 깨우치고 경제력 등 비군사영역의 경쟁에 치중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강대국간의 군비경쟁이 21세기에 가서 더욱 치열해질수록 “상호상멸”의 수준을 넘는 군사력의 포화 상황이 되어 국제정치에서 군사력의 위력은 약화될 것이고,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에서도 약소국의 군사력이 상대에게 치명적 손상을 가할 수준만 되면 강대국의 월등한 군사력과 자원이 누리던 영향력이 많이 상실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핵 시대 국제정치에서는 강대국과 약소국간에도 핵무기로 인한 “공포의 균형”이 쉽게 달성되어 군사력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군사력의 중화” 현상 혹은 “군사력의 평등화” 현상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강대국들의 군사 패권주의는 점진적으로 후퇴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14)  따라서 만약 한국도 통일되어 어느 정도의 군사력만 갖추면 질과 양면에서 월등히 적은 규모의 것일지라도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군사적 압력에 맞서서 대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강대국과 약소국간의 군사력 중화현상 때문에 한국이 주변 4강대국과 같이 “동북아 5개국 체제”의 중요한 구성국으로서 참여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15)

  이상과 같이 21세기의 국제관계에서 일어날 군사력의 한계와 국력 구성요인의 변화 그리고 핵무기 등 첨단 무기의 발전과 확대로 동북아 국가 간의 질서가 변화할 것을 가상하면서, 한국이 장차 “동북아 5개국 체제”의 당당한 구성국이 될 수 있을 것을 필자는 다음과 같이 계속 믿고 있다. 즉,


  “한국이 장차 ‘동북아 5개국 체제’의 당당한 구성국이 될 수 있는 것은 ... 엄청나게 성장한 한국의 국력 자체에 일차적으로 근거하지만, 단순히 한국의 국력 자체뿐만이 아니라, 주변 4강대국간의 경쟁과 상호견제 그리고 지역의 세력 균형의 필요상 서로 한국의 도움을 필요로 할 국제적 환경 변화로 한국의 국제 적 지위와 역할이 확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준 강대국’인 한국의 향배가 4강간의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주변 강대국들이 약소한 한민족을 희생시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한국의 참여와 협력을 얻어 세력균형적 방법으로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얻으려고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미국이 한국과 협력하면 지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과거와는 달리 지역 강대국 일본 혹은 중국과 경쟁  할 수 있고, 한국 역시 미국의 협력을 얻어 주변 강대국의 패권욕심을 견제할 힘을 더 얻게 될 수 있을 것이다.“16)


  더욱이 필자는 상기 논문에서 “동북아 5개국 체제”의 유도가 동서냉전의 종식 직후부터 악화되고 있는 중국과 일본간의 군비경쟁 그리고 미-중간의 대결을 완화시켜 서로 협력적인 평화공존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였다.17)  뿐만 아니라 21세기 한민족의 역량과 가능성에 관한 필자의 낙관적인 믿음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욱 유효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즉,


  “장차 100년 동안 지속될 21세기의 어느 시점에 가면 한민족은 남북 합쳐서 약 1억 인구와 국민당 소득 1-2만 불 혹은 그 이상을 누리는 “준 강대국”이 될 것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그 시기가 2020년이 될지 2030년이 될지 확실히 말할 수 없어도, 한민족은 21세기에 “준 강대국”의 힘을 가진 뚜렷한 존재가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상기한 국력규모는 현재 영국의 인구 5,760만, 1인당 소득 20,400 달러, 프랑스의 인구 6,090만, 1인당 소득 24,900 달러 그리고 통일독일의 인구 8,100만, 1인당 소득 28,779 달러에 비해 손색이 없으므로 “준 강대국”이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숫자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21세기의 한민족은 국력 면에서 지금보다 월등하여 국내외 문제에 보다 큰 자결권을 가지고 동북아 세력판도 결정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18)

  위에서 낙관적으로 전망한 것처럼 장차 한민족이 “동북아 5개국 체제”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Morton Kaplan의 적절한 지적처럼 세력균형체제의 성립과 유지에는 비슷한 힘을 가진 국가의 수가 5개국 이상 존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체제의 구성국가들이 모든 구성 국가의 독립을 보장할 평화 공존적 세력균형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세력균형체제가 요구하는 기본 행동 율을 충실히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Kaplan 교수는 세력균형체제의 원만한 운영과 존속을 위해서 모든 구성 국가들이 지켜야 할 기본 행동 율로서 유럽의 세력균형 체제의 역사적 경험을 근거로 여러 가지 기본 행동율을 제시하고 있다.19) 그 가운데 중요한 것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국가들은 다른 국가를 압도할 초국가적 지위를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2) 전쟁에 승리해도 패전국을 소멸시키지 말고, 언제든지 세력균형체제의 일역을 담당할 수 있도록 존속시켜야 한다.

 (3) 2류 혹은 3류급 국가라도 체제유지에 필요하면 1류 국가로 강화하여 세력균형체제 운영의 파트너 국가로 삼아야 한다.


  세력 균형체제의 구조적 특징과 그 체제의 기본 행동 율을 매우 타당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중국 위협론”을 전제로 중국 대 미-일 동맹 대결체제로 재편되고 있는 중, 미, 일 3 강 관계는 바람직한 “동북아 5개국 체제”유도에 역행하는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동북아의 당사국들은 우선 “동북아 5개국 체제”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이 과거 경험만 믿고 미, 일의 경우 미-일 동맹의 강화를 통한 대결체제를 구축하려는 잘못된 관성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주변 열강은 “2류 혹은 3류 국가라도 체제유지에 필요하면 1류 국가로 강화하여 세력균형체제 운영의 파트너국가로 삼아야 한다”는 상기 행동 율에 따라 서로 협력하여 한민족과 한반도를 1류 국가로 조속히 육성시키는 것이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조건임을 빨리 배워야 한다. “독립되고 강력한 한국 없이, 동양의 평화도, 세계의 평화도 있을 수 없다”20)는 한민족의 오랜 주장은 바로 “동북아 5개국 체제”의 성립이 동북아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임을 일찍부터 깨우침으로써 나온 지혜이다.


V.  결 어    


  여러 가지로 가상할 수 있는 21세기의 동북아 국제질서 시나리오는 크게 2가지 형태 즉 (1) 냉전시대의 미-소 대결 같은 중국 대 미-일 동맹의 2블록 대결체제와 (2) 중, 미, 일, 러 그리고 남북한 등 5-6 개국이 참여하는 유럽적 “세력균형체제”로 분류할 수 있다.

  중국 대 미-일 동맹 대결체제에서는 냉전시대의 미-소 대결 같은 군사적 대결이 계속될 것이고 20 세기의 실패를 반복 할 것이기 때문에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 위협론”이 미국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있고, 최근 미-일 동맹이 강화되고 있는 동북아의 정세를 볼 때 현재의 4강 체제가 21세기에 평화공존적인 것으로 발전하기보다는 미, 중 중심의 2불록 대결체제로 재편되어 갈 가능성이 더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세력균형체제”가 지역의 모든 국가들의 독립을 보장할 뿐 아니라 시대적 요구인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을 더 보장할 것이기 때문에 모든 관련 당사국의 지도자들은 보다 낳은 미래를 위하여 이 체제의 가능성과 필요조건을 연구하여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모형을 제시하고 그 체제의 실현을 위해 적극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21세기의 분명한 시대적 요구이다.   

  미국의 적극적 참여와 개입, 중, 일, 러의 국력 평준화 그리고 한반도가 분단상태에 있으면서도 상당한 국력을 가진 세력으로 성장한 객관적 조건의 변화가 과거와는 달리 동북아 지역에서도 바람직 한 세력균형체제인 “동북아 5개국 체제”의 유도를 좀 더 적극적으로 시도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 지역 국가 간의 국력 분포가 중국 대륙에 심하게 편중된 조건 때문에 동북아에서는 유럽적인 세력균형체제 같은 것이 성립되기는 구조적으로 매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해 장차 21세기에 중국이  현재와 같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계속하여 미국, 일본 수준의 경제대국이 되고, 그 경제력을 뒷받침으로 막강한 군사력까지 가진 초강대국이 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동북아의 안전 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지역과의 세력균형도 위협할 것이라는 “중국 위협론” 같은 것이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중국 봉쇄 이외의 다른 정책의 모색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의 새로운 동북아 질서 수립을 위해서는 관련 당사국들의 다음과 같은 동북아 질서에 대한 구상과 인식의 과감한 수정 그리고 열강의 역할에 대한 발상의 전환 없이는 21 세기도 20세기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 이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즉,

  (1) 미국과 일본이 미-일 동맹 강화를 통해 장래의 중국 위협에 대비하기보다는 한반도의 남북한이 분단과 대결상태를 벗어나서 강력한 통일 국가가 되어, 동북아 5개국체제의 당당한 1강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중국문제에 대한 보다 근원적 해결책이고, 동북아에 평화공존적 세력균형체제를 수립하는 길이다. “天下無敵”인 미-일 동맹 강화로 동북아의 모든 사태에 대비하려는 미, 일의 기본 입장은 중국 대 미-일 대결의 완화에 결코 도움이 안 된다.

  (2) 중국도 미-일 동맹과의 대결을 지속하면, 구 소련처럼 국력의 낭비와 중국 대륙의 분열 사태에 직면할 수 있고, 그 기회에 다른 열강이 협력하여 그들의 안보를 위해 중국의 분할을 전제로 성립될 “동북아 다다국 체제”의 수립을 추진하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 때문에 중국은 한민족과 협력하여 통일 한국이라는 강력한 새 변수를 출현시켜 “동북아 5개국 체제”를 조속히 성립시키는 것이 열강과의 타협책이 될 것이라는 점을 깨우칠 필요가 있다. 

  (3) 21세기의 평화 공존적인 세력균형체제 유도에는 한반도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한민족의 확신과 국제적 인식의 증대가 필요하다. 21세기 동북아 질서에 대한 지역 국간의 합의와 공동 목표를 “동북아 5개국 체제”의 수립으로 설정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

 특히 남북한간에는 21세기의 한민족 공동 목표로 “동북아 5개국 체제”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지금과 같은 대결적 경쟁을 비로소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남북한이 냉전시대처럼 각각으로 나뉘어 중국 대 미-일 동맹 대결체제에 가담하면 동북아는 대결체제로 굳어 질 것이다. 그런 상태가 도래하면 한민족은 물론 동북아 여러 민족의 장래는 매우 어두울 것이다. 반대로 분단상태에서라도 남북한이 중립적 입장에서 중재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주변의 4강이 협력하면 그 관계를 평화 공존적인 것으로 유지하는데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도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의 통일은 결코 한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다.(국제정치논총 제39집 3호, 1999년)


By Lhee, Ho-J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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