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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중심은 전향한 386 운동권

뉴라이트의 중심은 운동 청산하고 전향한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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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 | 2005-03-31 17:51:06  
사물운동의 법칙상 '새것(New)'이 세력화하는 순간 '낡은 것(Old)'은 도태된다. '뉴라이트', 이들은 자신들을 ‘새롭다.’ 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낡은 것을 이기는 새로움은 ‘진짜 새로움’이다. 한국의 우익, 보수진영이 ‘개혁적 보수’라는 ‘형용 모순’을 안고라도 얻고 싶은 것이 바로 새롭다'라는 평가 아닐까?

보수진영 스스로 자신이 낡았다며 ’07년 대선 필패론‘으로 색깔논쟁하고 있을 때 이른바 '뉴라이트‘운동이 치고 나왔다.

자유주의연대, 교과서 포럼, 뉴라이트싱크넷,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등 자칭타칭 이른바 뉴라이트로 일컬어지는 단체는 다수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단체는 자유주의연대라 할 수 있다.

지난 연말부터 보수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것도 역시 자유주의연대인데, 이는 보수언론이 집중적으로 키워준 측면도 있지만, 거꾸로 보수언론이 열광할 만한 ‘상품성’을 자유주의연대가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현재 1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자유주의연대를 주도하는 면면들은 주로 '전향한 386'이라할 수 있다. '전향한 386'이 가지는 함의는 여러 가지인데, 우선 좌파운동권의 핵심에서 우파로 전향한 극적 요소 자체가 상품성을 가진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고, 또 하나는 과거를 공유하는 여당 내 386 혹은 좌파세력에 대한 공격수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격적, 집단적 전향 감행...화끈해야 먹힌다?

사실 '전향한 운동권'은 이들이 처음은 아니다. 김문수, 이재오 등 한나라당으로 들어간 구 민중당 계열 인사들은 물론, 열린우리당에 들어간 재야인사들과 386도 어떻게 보면 '전향한 운동권'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과거의 '전향한 운동권'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우선 이들은 '공격적, 집단적 전향'을 감행했다. 그 동안 정치권에 들어간 민중운동진영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과거의 동지'들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꿈을 실현하는 방법이 바뀌었'거나, '세상이 바뀌어서 행동방법도 바뀐' 정도. 정치노선 상으로도 개혁적 보수, 개혁 등이 이들의 위치.

그러나 자유주의연대에 참가한 이들은 과거의 동지들을 '사회주의자나 주사파'로 몰아붙이면서 스스로 '우파'의 위치에 섰다.

자유주의연대 대표인 서강대 신지호 교수, 홍진표 운영위원, 최홍재 운영위원은 모두 한때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에 몸을 실었던 이들이다. 경력 또한 민족회의 조직국장, 한총련 조통위 정책실장등으로 이력만 보아서는 소위 말하는 ‘골수’들이다.

뉴라이트 싱크넷, 기독교 사회책임 등 여타의 뉴라이트를 표방한 단체들은 그 면면을 살펴볼 때 기본적으로 제도권의 명망가 또는 학자 등을 중심으로 한 단체들로서 외곽, 혹은 지원부대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조직, 대중 사업의 경험이 없는 이들 조직에 선도적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강철서신’에서 ‘뉴라이트’까지, 치밀한 준비와 조직적 진출

지난해 연말 출범을 통해 뉴라이트가 집중 조명을 받긴 했지만 이런 움직임이 배태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강철서신’으로 필명을 올린 김영환이 ‘주체사상 대부의 전향’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월간조선 조갑제, 탈북인사 황장엽 등과 두루 교감을 나누기 이전부터 운동진영에서는 이들의 움직임과 관련해 치열한 사상투쟁이 전개되었다.

이른바 소위 ‘민혁당 사건’의 폭풍 속에서 김영환이 국정원수사실에서 ‘반성문’을 쓰고 동료들을 ‘밀고’ 한 대가로 국정원 철문을 나오는 순간 운동진영에서 그들의 ‘정치도덕적 생명’은 끝장났던 것이다. 뉴라이트의 등장에 진보진영이 심각한 입장정리에 앞서 코웃음 치며 ‘차가운 냉소’를 날렸던 것은 이런 사정과도 무관치 않다.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은 이와 관련 "96년에 '말' 지에 '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한다'는 요지의 글을 발표했을 때 엄청나게 돌이 날아왔고, 자의반 타의반 운동권에서 손을 떼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특히 김영환을 비롯 90년대 초반 비공개운동을 하던 사람들 중에서 일부가 1년여 정도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맑스주의, 주체사상, 대안적 이론 등에 대해 교감을 나눈 것이 그 출발이라는 것이다. 주체주의에서 반북주의로, 민중중심의 변혁이론에서 공동체론 이라는 계급협조주의, 신자유주의로 이동한 것이다.

‘지상낙원’으로 북의 사회제도를 동경하며 ‘강철서신’을 배달했던 이들이 어느 날 ‘인민의 지옥’으로 묘사된 ‘북한민주화론’을 들고 나오게 된 과정에 대해선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의 전향이 스스로 사상전향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과거에 활동했던 동료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숨죽이는 대신 ‘전두환은 애국자다.’ ‘주체사상은 독재이념으로의 변질’ ‘주석궁에 땡크를 진주시켜서라도 북한 민주화해야’(1997. 푸른공동체21. 내부토론자료중)라는 주장들과 함께 ‘공동체 사상’ 등을 쏟아내며 ‘전향이론을 생산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구체적으로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결성과 ‘공격적 대북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 의회 강경파, 사회단체와의 교류로 이어졌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99년 전(前) 반미청년회 의장 조혁, 열린사회시민연합 교육정책위원장 이숭규, 희망공동체 전북연대 조직국장 오경섭, 시대정신 편집장 한기홍, 전 전대협 간부 김정수 등이 중심이 되었다.

'전쟁을 통해서라도 김정일 정권을 타도해야한다'거나 '황장엽씨의 인간중심 사상을 김정일이 왜곡한 것이 현재 북한의 주체사상'이라거나 '영어공용화론' 등 도발적인 주장이 나온 것도 이 즈음이다. 초기에 생태주의적 경향의 '야마기시즘'에 대해서도 검토하는 등 청산한 이념을 채울 사상조류를 찾던 이들 그룹은 이후 '북한인권‘과 '반 김정일'에 주로 초점을 맞춘 이론, 실천 활동을 벌이게 된다.

북의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해 ‘아사설’이 국내에 돌고 대량탈북 사태와 황장엽씨의 망명 등의 배경 속에 절정을 이룬 이런 흐름은 이후 DJ 정부의 햇볕정책, 초기의 극적 효과의 소멸, 결과적으로 보수세력과 유사한 결론을 내놓은 점 등으로 인해 그 발언력이 상당부분 줄어들어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반북과 진보진영과의 단절을 공통경험으로 각기 분화

이후 이들은 약간의 분화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시대정신'의 주축 멤버였던 김영환 홍준표 한기홍과 최홍재 등은 북한 민주화 운동을 주된 방향으로 삼은 반면, 일부 그룹은 노무현 정부를 좌파이념을 벗어난 상대적으로 건전한 개혁세력으로 간주하고 여권에 결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분화과정에 대해 홍진표 운영위원은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사람을 거론하기는 그렇고, 당연히 뭔가 일을 하다 보면 의견차이가 있게 마련 아니겠느냐" 라며 "심하게 논쟁이 있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조금은 길을 달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께 '전향'을 감행했던 이들 중 일부는 자유주의연대를 결성하고 공개적으로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고 있지만, 또 다른 이들은 다양한 형태로 현 정부나 여당, 외곽기관 등에 포진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화과정이 ‘이념적 선택을 통한 분화’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들이 공유한 절대적 공감대역은 정제된 이념지향성이라기 보다는 우선 ‘반북과 진보진영과의 단절’ 이다.

이들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보수 세력의 내부 사정과도 관련이 있다.

한나라당 비례대표 1번에서 10번까지의 면면을 살펴보면 1959년생인 전여옥 의원이 가장 나이가 젊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과거에 엄청난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엘리트 계층을 흡수하던 보수세력은 두 번의 대선 패배로 이 같은 프리미엄을 상당부분 상실하였고 후세대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령적으로 386 세대는 정치의 다음 주역이 될 수밖에 없는데 한나라당이 찾을 수 있는, 386 세대는 자유주의연대 정도가 전부다. 나머지 386의 경우에는 한나라당에 대해 '생리적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

이런 사정 탓에 이론작업과 대중선전을 할 줄 아는 전향한 ‘젊은 라이트’는 보수 언론과 한나라당 개혁파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 차원에서 얘기한다면 자유주의 연대에서 내세우는 가치나 사회 개조의 대안이나 .. 이런 것과 상당 정도 뜻을 같이할 수 있다면 결합의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홍진표 운영위원의 말이다.

한나라당 한 중진 의원은 최근 "뉴라이트 진영이 행정수도 이전반대 진영에 실무진으로 결합할지를 두고 고민한다고 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의원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면서 '행정수도'를 매개로 한나라당과 연대를 한다는 것이 모양새가 어색하고, 대선이 상당기간 남은 상황에서 지금 뭔가를 띄운다면 한번 사그라지었을 때 다시 일어서기가 더욱 어렵다는 점 때문에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권과의 연대나 세력화 작업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자유주의연대를 중심으로 한 뉴라이트의 흐름에 한나라당의 혁신계열이나 보수적 학자그룹들이 나서서 “그게 바로 내 생각‘ 이라며 앞 다투고 있다.

보수언론들은 연일 기획특집으로 이들의 활동을 띄워주고 있다. 적어도 학계와 언론, 보수교단, 한나라당의 일부 그룹을 비롯해 차기 대선을 노려보고 있는 세력들의 ’지지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올드 라이트‘라는 배가 삐걱거리며 침몰의 위기를 논하고 있을 때 등장한 뉴라이트를 한국의 보수우익들은 매력적인 노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의 정치지형이 결국 대통령선거로 집중되며 재편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뉴라이트 운동이 보수진영의 재편과 함께 ‘집권전략’과 함께 이념적 기반을 제시할 것이라는 가정은 지금으로선 필연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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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민족주의가 더 두렵다

중국의 민족주의가 더 두렵다

홍콩과 대만인들, 본토의 반일감정 분출에 불안


A Little Nervous

홍콩과 대만에 사는 사람들도 중국 본토인들과 똑같은 반일감정을 갖고 있을까. 그러나 그들 중에는 반세기 이전에 일본 침략자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중국의 분노에 약간의 거부감을 넘어 반감까지 갖는 사람이 많다. 홍콩은 중국이 새로운 지역 초강대국으로 자임하는 것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대만은 그것을 아주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둘 다 일본이 오늘날 아시아의 안정을 위협한다는 중국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반면 오히려 그럴 개연성은 중국이 더 크다고 본다.

요즘 전개되고 있는 격렬한 민족주의 움직임은 중국 비평가들을 특히 긴장시킨다. “민족주의는 강력하고 날카로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중국이) 그런 감정을 부채질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홍콩의 친민주주의 성향인 에밀리 라우 의원은 말했다.
그처럼 관점이 판이한 것은 역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홍콩에서는 중국의 정치적 동기에 대한 냉소주의가 팽배해 있다. 많은 주민이 공산당 독재를 피해 도망친 난민 출신이기 때문이다.

대만은 1945년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50년간 일본 식민지였다. 그곳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장 생생하게 남아 있는 잔혹상은 1947년에 자행된 2·28 사건이다. 당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군은 현지인들이 봉기하자 수만 명을 학살했다. 중국이 대만의 안보를 계속 위협하는 반면(거수기나 다름없는 중국 전인대는 최근 침략의 합법적인 명분으로 간주되는 반분열법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대만이 공격받을 경우 방어를 돕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최근 실제로 친독립적인 대만단결연맹(臺灣團結聯盟)의 쑤진창(蘇進强) 주석이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일본 보수파와 대만의 긴밀한 관계를 새삼 부각시켰다.

아시아 다른 국가들의 뜨거운 반일감정과 달리 대만인은 이중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대만 젊은이들은 일본의 패션·팝음악·소비문화에 젖어 성장했으며 일부 구세대는 식민통치가 2차대전 후 대만이 급속한 공업화를 이루는 토대를 제공했다고 본다. “그들은 좋은 것만 기억하려 한다.

그것은 대체로 오만한 중국에 대한 반작용이다.” 대만 중화구아기금회(中華歐亞基金會) 린충핀 이사장의 말이다. 타이베이에 있는 중국학술원 사회과학연구소의 창마우케이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두 제국 사이에 갇혀 있다. 대만은 양국과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다. 그리고 대만의 안보는 양측의 호의에 달려 있다.”

중국은 이미 홍콩과 대만의 다소 반항적인 정치인들을 향해 민족주의라는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 지난해 말 중국의 관영 미디어는 홍콩 민주당의 마틴 리(李柱銘) 전 주석을 ‘비애국자’라고 낙인 찍었다. 홍콩의 정치개혁에 관한 공식노선에 도전했다는 이유에서다.

반일시위를 연출된 정치전쟁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은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베이징이 원한다면 ‘반중’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전술을 구사할 위험성이 상존한다”고 홍콩 애플 데일리의 류킨밍 편집국장은 말했다. 다음 타깃이 될지 모르는데 중국인 시위대에 박수를 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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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족주의로 촉발된 주도권 쟁탈전

신 민족주의로 촉발된 주도권 쟁탈전

중·일 갈등의 본질은 고삐 풀린 분노와 상처받은자존심의 충돌에 있다


Furies Unleashed

중국 최고 지도자들에게 이번 소요는 마치 되풀이되는 악몽 같았다. 4월 16일 성난 중국인 2만 명은 “일본 돼지들, 나와라!”라고 외치며 상하이(上海) 전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현지 주재 일본 영사관엔 돌과 토마토가 날아들었고, 일본인 가게가 부서졌다. 닛산 자동차 한 대도 전복됐다. 지금까지 성난 시위 군중에게 다친 일본인은 2명이다. 규모는 작지만 항저우(杭州)와 톈진(天津)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2주 전엔 중국인 시위대 수천 명이 베이징(北京)의 일본 대사관 유리창을 깼다. 불과 몇 시간 뒤 중국의 막강한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위기 관리를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시위 확산을 방치하지 말도록 경고했다. “다른 문제들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기회를 시위자들에게 주지 말라는 뜻”이라고 중국의 한 고위 소식통은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이처럼 예민한 경계 분위기는 수주간의 대규모 시위로 천안문 광장이 마비된 1989년 당시의 정치국 대책회의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지도부는 통제력 상실을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일부 공식적인 격려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번 시위의 직접적인 원인은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2차대전 전력(前歷)을 미화한 개정판 역사 교과서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글대는 중·일 분쟁의 원인은 실제론 과거의 전쟁에 관한 게 아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당시 저지른 잔학 행위에 대해 이미 사과했고, 이름만 다를 뿐 340억 달러의 ‘개발 원조’를 중국에 제공했다고 주장한다(이 같은 사실은 중국 언론에선 별로 언급되지 않는다).

사실 분쟁의 진짜 원인은 두 나라가 아시아의 경제·외교·군사적 미래에 대한 주도권 장악을 위해 갈수록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20년간의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자부심과 힘을 함께 갖게 된 중국은 막대한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새로 갖게 된 외교적 힘을 휘두르고 있다. 반면 일본은 중국의 부상(浮上)에 불안감을 느낀 결과 2차대전 이후 줄곧 외교정책의 기조였던 평화주의를 내팽개치고 있다.
양국은 현재 새로운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 중이다.

특히 일본 언론이 ‘갈등의 바다’라고 표현한 동중국해에 대량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해저 천연가스가 폭풍의 눈이다. 일본 통상산업성은 지난주 그 지역의 석유와 가스에 대한 채굴권을 일본 민간 기업들에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그곳에서 석유 탐사 작업을 해오던 중국은 즉각 이를 ‘심각한 도발’로 규정했다. 양국은 쌍방 간 교역이 급증한 상황에서도 기꺼이 상대방의 전략적 야망을 꺾겠다는 태도다.

중국은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고, 일본은 중국의 미주개발은행(IDB) 가입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워싱턴 DC에 거주하는 중국학자 페이민신은 “심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양국은 매우 불편한 관계에 접어들고 있다”며 “이것은 후일 중·일 관계의 일대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마찰은 보다 큰 현상의 등장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있는 민족주의의 새로운 부상이다. 이 지역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주장하면서도 상대국의 이익엔 도전하는 것에서 명백히 알 수 있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흔들리는 정치적 지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민족주의적 정서에 호소하고 있다.

대만에서도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들이 대만의 정체성에 대한 보다 확고한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92년 이후 자신을 중국인이나 중국계 대만인이 아닌, 오로지 대만인으로 여기는 사람의 수는 대만 전체 인구의 18%에서 40%로 증가했다. 타이베이(臺北)에 위치한 중국학술원 사회학연구소의 창마우퀘이는 “우리의 세계관은 변했다. 이젠 중국이 아닌 대만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아시아에서 국가적 자긍심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그러나 과거엔 그것이 주로 역사적 원한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제국주의와 전쟁의 공포에 대한 방어적 반응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국립대 동아시아센터의 연구교수인 데이비드 켈리는 “역사적으로 몸에 밴 감정을 과소평가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민족주의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에 성장한 보다 젊은 세대의 열망에 더 많이 뿌리를 두고 있다. 도시 중산층 중 일부는 이제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올림픽 개최를 부르짖는 것이 대표적 예”라고 덧붙였다.

지난 30년간 동아시아는 경제 발전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시기에 한국과 중국의 정치인들은 일본의 수정주의적 교과서, 위안부, 더 최근엔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 대해 자주 흥분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자신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기에 바빴다. 가슴을 치며 분노할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이젠 그것도 옛날 얘기다. 젊고, 교육받고, 기술적으로 앞서가는 요즘의 젊은 아시아인에겐 경제적 안정이란 메시지가 1970년대나 80년대처럼 절실히 와닿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돈·여가, 그리고 자신의 견해를 갖고 있다. 게다가 새로 찾은 사회적 자유와 인터넷 덕분에 자신들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출한다. 이 같은 태도는 정부의 정책에도 갈수록 큰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중국 정부가 대만에 대해 보이고 있는 강경 입장의 배경에는 중국 젊은층의 여론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중국 네티즌이 벌이고 있는 온라인 청원에 서명한 사람은 이미 2200만 명에 이른다.

오늘날 중국 최대의 민족주의 단체 중 하나는 ‘애국자동맹망’(愛國者同盟網)이다. 웹 디자이너 루윤페이(29)를 포함한 중산층 도시 전문직이 주도해 세운 단체다. 이 단체의 웹사이트는 이미 회원 7만6000명을 거느리고 있다. 중국 정부가 새로운 철도 건설을 위한 주요 계약을 일본 회사와 체결하자 애국자동맹망은 반대 운동에 나서 8만6000명으로부터 전자서명을 받아냈다.

그 결과 계약 자체가 무산될 처지다(적어도 현재까진). 시위 참가를 부르짖는 네티즌의 요구는 지금까지 중국 내 8개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이 미군 주도의 NATO 군에 의해 폭격당하자 시위자들이 미국 대사관을 난장판으로 만든 1999년 시위 이후 최대 규모다.

어느 정도의 민족주의 정서는 스트레스 많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민족주의 간 충돌이 위험 상황으로 이어질 경우다. 그 같은 위험은 동아시아에서 잠재적 폭발성을 내포하고 있다. 국가 간 경계가 사실상 의미를 상실한 서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지역엔 유럽연합(EU)이나 NATO처럼 역내를 아우르는 국가 간 기구가 없다. 쉽게 말해 국가 간 긴장을 줄여 주거나 상호 협력을 위한 틀을 제공할 구조가 없는 것이다. 영토 분쟁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곳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중 네 곳은 역사적 과오 때문에 아직도 주변국들의 의혹과 두려움을 사고 있는 일본과 관련돼 있다.

중·일 관계는 지난해 11월 동중국해에서 군사적 대치 상황이 발생한 이래 악화일로를 걸어 왔다. 당시 일본 자위대는 자국 영해를 침입한 중국의 핵추진 잠수함을 발견했다. 양국이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천연가스전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자위대는 그 잠수함을 이틀 동안 추격한 뒤 중국 측에 사과를 요구했다. 결국 중국은 사과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중국 잠수함의 일본 영해 침범이 아니라 군사적 대치를 혐오하는 일본이 직접 잠수함을 추격해 쫓아냈다는 점”이라고 미 외교협회(CFR)의 중국 문제 분석가 애덤 시걸은 말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일본은 더욱 강경한 대중국 노선을 채택했다. 우선 방위백서에서 중국을 군사적 위협으로 못박았다. 1월 19일에는 일본과 미국이 전례없는 공동성명을 통해 현재와 같은 대만의 사실상 독립 상태가 ‘공동 전략 목표’라고 선언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내각엔 대만에 동조적인 보수·우익 인사가 더러 포진해 있다. 일본은 16년째 지속되고 있는 EU의 대중국 무기 금수조치를 해제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하기도 했다.

고이즈미는 2001년 총리에 선출된 이후 일본의 정체된 정치 시스템 개혁을 위한 핵심 과제로 국가적 자긍심 회복을 내세웠다. 특히 일본의 젊은 세대가 그의 견해를 수용했다. 중국 전략가들은 일본 정부가 미국의 보수적인 매파 행정부 때문에 더욱 대담해졌다고 믿는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는 다가오는 ‘중국의 위협’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대만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반(反) 국가분열법을 통과시킨 것은 중국 지도부에 반드시 득이 된 것은 아니었다. 반분열법은 대만에 대한 국제 사회의 동정심을 높여준 동시에 중국을 더욱 호전적으로 보이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적 자긍심 외에 불안감도 일본의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데 한몫한다. 일본 템플대의 제프리 킹스턴 교수는 “국제 서열에서 일본의 위치가 위태롭다”며 “지금은 중국이 일본을 앞지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의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은 아시아의 가장 역동적인 경제대국이란 지위를 포기한 듯했다. 그 여파로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현재 깊은 불안에 빠져 있다. 심지어 일부는 포퓰리스트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나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전쟁에 대한 일본인들의 죄책감을 뒤집는 작품을 내놓았다) 같은 다양한 인사들이 전파하는 위대한 국가의 꿈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

중국의 현 정권도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민중의 민족주의에 영합하는 편이 자신들의 정통성 결여를 불식하는 데 유리하다. 마르크스주의는 더 이상 인민들의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이념이 아니다. 그 뒤를 이은 ‘금전 숭배’도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에 대한 좌절감을 낳았다. 1930년대에 강경한 반일 노선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은 중국 공산당으로선 일본으로 화살을 돌리는 게 안전한 길이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이 긴장 완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양국 간 교역 규모는 연간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일본의 최대 무역 파트너가 됐다. 일본 기업들은 중국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 현재 중국인 약 100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다카시마 하쓰히사(高島肇久) 일본 외무성 대변인은 “양국의 상호 의존도와 보완성이 워낙 높아 서로 경원시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며 “이처럼 밀접한 관계를 손상시켜선 안 된다”고 말했다. 옳은 얘기다. 그러나 2001년 이후 양국 간에는 정상회담이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후진타오 주석과 고이즈미 총리는 4월 22일 자카르타의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이다. 그러나 둘이 만날 계획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중·일 간 불화가 군사적 대치로 증폭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거나 봉쇄할 가능성이 우려로 남아 있다(그것은 계속 예측할 수 없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급속한 군 현대화는 이미 역내 군비경쟁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중국 해군은 신형 수륙양용 공격정 23척과 공격용 잠수함 13척을 추가로 확보해 5년 전과 비교할 때 훨씬 강해졌다. 지난해 12월 중국 정부는 신형 핵추진 잠수함 1호를 진수했다. 미국 정보기관들의 예측보다 수년이 빨랐다. 중국은 또 자국산 디젤-전기 동력 잠수함도 건조 중이다.

민족주의는 한번 터져나오면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주 중국 네티즌은 5월 4일(1차대전 후인 1919년 일본의 요구에 굴복한 중국 정부에 항의하는 학생운동이 벌어진 날)을 기념해 천안문 광장에서 대규모 반일 시위 개최를 요구했다. 1989년의 망령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중국 지도부는 천안문 광장에서의 민중 집회를 허용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반일 시위가 공안에 의해 좌절됐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시위대는 분노의 화살을 일본에 아부하는 정부 쪽으로 돌릴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 공산당 정치국은 위기관리 회의를 훨씬 더 자주 열어야 할지 모른다.

With JONATHAN ANSFIELD and CRAIG SIMONS in Beijing, HIDEKO TAKAYAMA and KAY ITOI in Tokyo, B. J. LEE in Seoul and JONATHAN ADAMS in Taip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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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 부시의 입이 찢어지다

[하재근 컬럼]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 부시의 입이 찢어지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04-28 16:12]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우습게 알지만 우크라이나는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구소련의 곡창지대 정도?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체르노빌 원전사고?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농사에만 의존하는 한가한 나라가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강국이 될 잠재력이 있다.

세계적인 곡창지대면서 구소련 산업의 25%, 군수산업의 40%를 담당했을 만큼 중공업 또한 발달했다. 광대한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5000만에 달하는 인구, 풍부한 자원, 산업기반이 동과 서 어느 쪽에 속하느냐에 러시아 제국 부활의 사활이 걸렸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에 속하게 되면 영국-프랑스-독일-폴란드로 이어진 동방제국 포위망이 흑해를 넘어 터어키로 이어지게 된다. 프랑스-독일 동맹에서 발아한 유럽연합이 독일의 무지막지한 청산사죄 신공으로 폴란드를 넘어 우크라이나까지 접수하면서 오랫동안 동방의 바다였던 흑해가 미국-서방의 내해로 귀속되는 것이다. 로마제국 시대 이래로 처음인가?

반면에 이미 발트해를 잃은 러시아가 흑해까지 잃게 되면 서방으로의 출구는 봉쇄된다. 흑해연안과 코카서스 지방에서의 러시아의 위축은 터키의 운신폭을 넓혀준다. 터키가 자유로워지면 이란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고 아직도 러시아와 가까운 중앙아시아의 ‘~~스탄‘시리즈의 나라들까지 미국의 포위망-유럽의 팽창선이 연결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동와 서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의 중요성이다.

세계에서 다락방 거주 기네스 기록을 보유한 나라는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의 스테판 코발추크씨는 무려 57년 동안이나 자신의 다락방에서 지냈다고 한다. 1942년 나치를 피해 다락방에 숨어든 후 2차 대전 후엔 소련군을 피해 다락방 생활을 계속하다 1999년이 되서야 75세의 노인이 되어 다락방에서 나온 것이다.

스테판 코발추크씨의 이야기는 서방과 동방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의 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중국과 미국 사이에 낀 나라로서 동병상련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선으로 봐선 유럽 동남부의 중심국가이며 미국패권체제의 최전선인 우크라이나에 조만간 최초의 한국 대통령 순방이 있을 건 확실해 보인다.

작년까지만 해도 정정이 불안정했던 우크라이나가 안정됐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얼마 전에 친러 정권이 무너지고 친미 정권이 섰다. 그것이 이른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동서의 대결, ‘오렌지 혁명’이다. 이 오렌지 혁명으로 부시는 기고만장이고 러시아의 푸틴은 ‘아주, 매우, 많이’ 불쾌한 상태다.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둔 동과 서의 신경전은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94년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이 이루어진 후, 1995년 옐친은 독립국가연합내 러시아의 주도적 위치 확립, 공동군사사령부 창설, 러시아 군대의 주도적 역할, 공동 외교 정책 수립, 독립국가내 러시아 신문 보급, 각국 관료의 훈련을 러시아가 맡을 것 등을 주장하고, 곧이어 96년 러시아의 두마는 소련해체 무효 선언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서방은 즉각 반응을 보인다. 96년 7월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독립이 지니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라고 선언한다. 또 미국의 교두보이자 유럽의 중추인 독일의 수상은 “유럽에서 우크라이나가 차지하는 견고한 위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도전받을 수 없다.”라고 선언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제국 부활시도에 반대하고, 이 때 우크라이나의 노선을 지지했던 나라가 중앙아시아의 중심 우즈베키스탄이다. (우즈베키스탄엔 노무현 대통령이 다음 달에 방문한다.)

같은 시기 미국-서방의 공세에 불안감을 느낀 옐친은 반패권 동맹을 구상하는데, 그것은 러시아-이란-중국의 결합, 바로 몽골제국의 부활이었다. 1996년 옐친은 베이징을 방문해 세계패권체제를 비난하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중국의 리펑은 러시아에 답방하여 “(세계가) 유일 강국에 의해 지배되는 것”을 양국이 공동으로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서방의 자본 투자가 아쉬운 터에 러시아-중국은 아직 미국을 노골적으로 적대할 수 없었다. 반패권 동맹은 흐지부지 됐지만, 그 당시의 구도가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이후 현재에 이르러 다시 재현되는 중이다. 지금 푸틴은 이란에 손을 내밀고 있고, 중국과 관계를 맺으며, 더 나아가 중국은 인도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기고만장한 부시가 “자유의 확산”을 선언한 데 대한 반작용이다.

2002년도에 실시된 우크라이나 총선에선 출구조사를 ‘우크라이나공공감시위원회’와 국제부흥재단이 공동으로 실시했다. 국제부흥재단은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재단이다. 소로스가 왜 거기에 있지?

2003년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얄타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벨로루시를 잇는 독립국가연합 경제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발표한다. 명백히 EU에 대한 응전이고, 날로 미국의 영향력이 잠식해들어 오는데 대한 반발이다. 예전 같으면 출구조사를 해도 러시아가 했을 거였다. 그런데 소로스가 쳐들어와서 하다니!

2002년 총선에서 빅토르 유슈첸코가 이끄는 야당이 약진한다. 유슈첸코의 부인은 미국인이고 미 국무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때문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서 정략적으로 유슈첸코에 접근해 결혼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부인뿐만이 아니라 유슈첸코 자신이 브레진스키, 메들린 올브라이트, 조지 소로스 등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등 미국과 매우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2004년 유슈첸코는 우크라이나 대선에 출마한다. 친러파인 쿠츠마 대통령은 자신의 후계자인 야누코비치 총리를 내보낸다. 이렇게 해서 결국 우크라이나 대선은 동과 서, 미국-유럽 대 러시아의 대결이 된다. 유슈첸코가 이기면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속하게 되고, 야누코비치가 이기면 러시아의 자장 안에 남는 것이다.

푸틴은 대선기간 중 두 번이나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며 야누코비치를 민다. 게다가 대선 결과 공식 발표가 있기도 전에 야누코비치에게 당선 축하 전화를 걸어 서방의 반발을 산다. 그러나 상황은 러시아의 애틋한 꿈과는 다르게 흐르기 시작한다.

2004년 11월 22일 우크라이나 중앙선관위는 야누코비치의 승리를 발표한다. 유슈첸코는 즉각 불복을 선언하고 지지자들에게 민중항쟁을 촉구했다. 군중이 선거부정에 항의해 몰려들고 우크라이나 서부 지방의 지역 의회는 유슈첸코에게 복종할 것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남북이 갈려 동서의 대리전을 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동과 서가 갈려 미국-유럽 대 러시아의 대리전을 한다. 여기에도 역사적 배경이 있지만 넘어가고, 유슈첸코가 대선 결과를 무시하고 “내가 당선자”라며 스스로 선언하자, 백악관은 즉각 선거부정 조사가 끝날 때까지 공식적인 대선 결과 발표를 유보해달라고 우크라이나 당국에 촉구한다.

애가 탄 푸틴은 선거 결과가 발표된 후 바로 야누코비치 당선자에게 축하메세지를 보냈는데 미 국무부는 이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 유럽연합(EU)도 대선결과 발표를 재고해달라고 우크라이나 당국에 요구하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도 비민주적 선거였다고 비난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를 서방의 내정간섭으로 규정, 강력히 반발한다.

유슈첸코가 선거불복을 선언할 수 있었던 정당성은 대선 출구조사에 있었다. 출구조사 결과과 선관위 발표가 달랐던 것이다. 그 출구조사가 가능했던 건 바로 미국의 지원이었다. 미국은 수천만 달러를 우크라이나 대선 과정에 지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스탠퍼드대 마이클 맥파울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서 미국은 우크라이나 내정에 간섭한 것이 맞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미당국은 그걸 민주주의 촉진운동, 시민활동 지원 등으로 부르지만.

유슈첸코의 선동에 수만 명의 지지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모두 오렌지색의 상품을 몸에 둘렀다. 그래서 ‘오렌지 혁명’이다. 그런데 이 수 많은 오렌지색 상품은 어디서 갑자기 나온 것일까? 러시아 언론은 우크라이나에 공급된 대량의 오렌지색 상품과 조지 소로스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우크라이나 시민혁명은 조지 부시와 조지 소로스, 두 조지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부시가 대통령이 된 후 구소련 영역에서 일어난 정변은 모두 부정선거와 시민의 비폭력 시위라는 수순을 밟았는데, 이것이 철저히 기획된 <포스트모던 쿠데타>라는 음모론이다.

실제로 미 의회의 자금지원을 받는 민주주의재단(NED)은 1997년부터 우크라이나 청년들을 교육시켰으며 그들이 유슈첸코 진영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 유슈첸코도 이 단체의 지원으로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또 거리시위를 주도하는 포라(Pora-시간이 됐다는 뜻)라는 학생조직은 소로스의 열린사회재단의 후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혁명의 상징색이 불길을 뜻하는 오렌지색으로 된 것부터가 자연발생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서방 정치기획자들의 작품이라고 한다. 크렘린 정치고문 파블로프스키는 “서방이 우크라이나에서 혁명을 실험하고 이를 러시아에 확산시키려 한다”라고 비난했다. 유럽연합 주재 러시아 대사는 구소련권 내의 정변에 배후조종하고 자금을 대는 단일한 집단(즉 미국)이 있을 거라고 비난했다.

23일, 푸틴은 “우크라이나 대선을 비판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24일, 파월 미 국무장관은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를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크바스니예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전권 중재자 자격으로 우크라이나를 방문한다. 말이 중재지 사실상 미국-유럽연합의 우크라이나 접수다. 독일이 오데르-나이세선을 돌파한 보람이다. 폴란드가 미국-독일을 대리해 우크라이나에 들어간 것이다.

11월 28일, 우크라이나 의회는 대선 무효를 결의한다. 29일, 친러파인 쿠츠마 대통령은 완전 재선거안을 제시하고 러시아를 긴급 방문한다. 그러나 유슈첸코는 결선투표를 주장한다. 12월 2일, 푸틴은 쿠츠마 대통령의 완전 재선거 제안에 찬성하며 서방의 개입에 경고를 보낸다. 부시는 즉각 미국의 참여는 계속될 것이라고 응수한다.

12월 3일, 우크라이나 대법원은 유슈첸코의 결선투표 주장에 손을 들어준다. 야누코비치 당선자는 “판결이 강력한 정치적 압력 아래 내려진 것”이라고 비난한다. 같은 날 푸틴은 인도에서 “미국이 국제 사회에서 독재자로 행세하고 있다”며 “균형 잡힌 민주적 국제법 체제”를 주장한다. 국제법 체제? 이건 노 대통령의 메뉴이기도 한데?

아무튼, 6일, 푸틴은 “일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민주주의'로 표현할지 몰라도 러시아는 그 같은 사태 진전을 용인할 수 없다”며 미국에 연일 맹공을 가한다. 그러나 10일,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외무장관들과 파월 미 국무장관은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 자유로운 재선거에 합의한다.

이 시점에서 폭탄이 터진다. 11일, 오스트리아 의료진은 유슈첸코가 다이옥신에 중독됐다고 발표한다. 유슈첸코의 얼굴 피부는 그즈음 급격히 망가졌다. 그것이 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중독에 의한 것이라는 발표다. BBC는 유슈첸코 독살기도설을 보도한다. 러시아, 혹은 친러파가 유슈첸코를 암살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미국은 “진단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진상조사를 촉구한다. 독살설은 결선투표를 불과 15일 앞두고 발표돼 선거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나중에 유슈첸코의 주치의로 일했던 로타르 비케 박사가 다이옥신 중독설은 '거짓'이라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그는 다이옥신 중독 진단을 거부해 주치의에서 해고됐고, 미국에서 파견된 의료진이 유슈첸코를 만났다고 한다. 물론 의혹일 뿐이다. 진실은 저 너머에...

이것이 오렌지 혁명의 전말이다. 재선거는 유슈첸코의 승리로 끝났다. 유슈첸코는 2005년 1월 24일, 대통령 취임 바로 다음날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과 기존 종주국 러시아와의 긴밀한 동반자 관계를 확인한다. 취임 직후 미국으로 가 한미동맹을 확인한 노 대통령과 비슷한 행보다.

유슈첸코는 올 4월엔 미국을 방문해 부시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같은 시기 푸틴은 독립국가연합 지도자들을 차례차례 만나며 세력권 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독립국가연합 4개국 경제공동체는 지지부진해진 상황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하고 있고,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시장을 개방해줬다. 푸틴이 분통을 터뜨릴 만도 하다.

문제는 미국이 이런 유럽에서의 경험을 북한에 적용하려는데 있다. 유럽 사정과 한반도가 같은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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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족주의와 한국외교(세계일보)

【특파원리포트】新민족주의와 한국외교
[세계일보 2005-04-22 01:33]
전 세계적으로 신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미국 언론은 한국·중국과 일본 간 역사교과서 분쟁 등을 계기로 신민족주의가 세계로 확산될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이그내셔스는 20일자 칼럼 ‘신민족주의’에서 자유무역과 신속한 자본이동으로 국경이 불분명해지고 있지만 세계는 더욱 민족주의로 변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그내셔스는 신민족주의를 일종의 지정학적 근본주의로 규정하면서 “사람들은 세계화에 대처하는 방안의 하나로 과거의 일체감에 집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민족주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확산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신민족주의를 주도하고 있으며, 중국·일본 간 역사 분쟁과 프랑스의 유럽헌법 비준 반대 등이 신민족주의 확산의 대표적 예.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젊은 세대의 신민족주의는 위험한 우파를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신민족주의가 미국의 국익을 해칠 수 있다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헤리티지재단 피터 브룩스 연구원은 “아시아의 두 거인인 중국과 일본 간 경쟁관계는 갈수록 악화되기만 할 것”이라며 “이는 미국 국익과 동북아 평화·안정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지금까지 동북아 갈등에서 물러나 있지만 앞으로 이 분쟁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벌써부터 미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 간주하는 일본에 기울고 있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분란을 일으키는 것도 이런 계산을 깔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 세계 차원의 신민족주의 부상과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고 한국 정부도 외교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wgpark@segye.com



(::워싱턴포스트 분석‥中 반일시위 정부서 이용::) 민족주의가 세계화를 밀어내는가. 

 

세계화한 국제 사회에서 국경없는 자본의 이동과 자유무역이 국 가간 장벽을 허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민족주의가 확산 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0일 지적했다.

민족주의 확산의 선봉은 미국. WP는 “미국의 쇼비니즘은 새삼스 럽지 않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9·11 사태 이후 ‘미국 우선 주의’를 고조시켰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에 분개하는 세계화주의자들은 정작 전 세계 가 민족주의에 기울고 있는 현실을 간과한다는 게 WP의 분석이다 . 1990년대에는 세계화가 민족적 정체성을 휩쓸어버릴 것이라는 가정이 설득력을 얻었지만, 실제로는 지정학적 근본주의에 가까운 새로운 민족주의가 뜨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 등이 불러일으킨 중국의 격렬한 반일 시위도 민족주의 열풍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중화민족의 부흥을 내건 민족주의를 이용한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반일시위를 사실상 용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 된다. WP는 “중국은 향후 아시아가 하나의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단극체제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일본측에 시사했으나 이번 사태를 통해 미국처럼 애국심에 광분하는 모습을 드러냈다”고 지적 했다.

최근 유럽헌법 비준에 반대 여론이 높아진 프랑스도 민족적 이익 앞에 태도가 돌변한 경우.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이 유럽헌 법 초안을 만드는 등 유럽 통합에 가장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왔 으나 여론은 자국 노동시장 보호 등 국익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 는 분위기다.

WP는 “프랑스는 궁극적으로 유럽헌법을 비준할 가능성이 높지만 , 유럽 통합이 유럽 전역의 민족주의를 깨우고 있다는 점은 분명 하다”고 분석했다.

이란이 독자적 핵무기를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핵민족주의의 일환 으로 해석된다고 WP는 강조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국 안보보좌관은 “젊은 세대의 새로운 민족주의는 모방 경향도 보 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을 이끈 젊은 시위대 ‘포라(때가 왔다)’는 러시아의 친(親)크렘린 청년조직 ‘나쉬(우리들)’에 영향을 미쳤다. 브레진스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청년층의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나쉬’를 띄우고 있다”며 “이같은 움직임이 위험한 우파 ‘나쉬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한다”고 주장했다.

정혜승기자 hs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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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북한 핵보유 선언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

북한 핵보유 선언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
김택의 World Report <5>
김택     메일보내기
지난 10일 북한의 핵보유 선언 이후 외국의 언론들은 주로 서울이나 워싱턴 발 기사에 귀를 기울이며 속보의 형태로 주요 사실들을 자국에 알리고 있다. 일단 이번 호에서는 그 기사들을 취합하여 몇 가지를 소개하는 순서를 갖겠다. 먼저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2월 10일자 기사로, 미국의 외교에 대한 책 <세계를 바꿀 4년 : 조지 부시의 미국 2005-2008>의 저자인 전략연구 전문가 브뤼노 테르트레(Bruno Tertrais)와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http://www.liberation.fr/page.php?Article=274728) 이번 사태에 대한 나름의 뛰어난 요약 구실을 하고 있다.

리베라시옹 : 북한 정부가 핵무기를 가졌다고 말하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브뤼노 : 오늘날 누구도 그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해 아는 것들을 종합해 보면 그것이 가능한 가설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핵실험을 단 한번이라도 했다면 평양이 핵을 가졌다고 확신할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90%의 확실성만을 이야기할 수 있군요. 이처럼 거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증거에 근거한 것입니다. 북한은 핵으로부터 방사능 연료를 처리하는 명백한 프로그램을 가동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전선망에 연결되지 않았고 전기를 생산하는데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 연료는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해 처리되었다고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2002년 10월에 북한 정권은 비밀스럽게 두 번째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는데 그것은 우라늄을 농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핵 처리의 과정을 말해주는 가스의 방출이 검출되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는 2000년을 전후해서 그 이후로 북한이 몇 기의 핵을 생산할 능력을 갖게 되었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입니다. 반면 그들이 핵을 미사일에 탑재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리베라시옹 : 북한 외무성이 밝힌 대로 문제는 미국의 공격에 대한 자위인가요?

브뤼노 :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먼저 공격당할 것이라는 공포 속에서 사는 망상증적인 정권의 생존입니다. 이라크 전쟁이 터졌을 때 김정일이 몇 주일간 잠적했던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북한 정권은 2002년 1월 부시가 자신들을 ‘악의 축’에 포함시킨 것에 특히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핵무장을 강화시키도록 했을 것입니다. 미국이 최근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선언한 것 역시 핵무기 개발 결정을 확고히 하는데 같은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리베라시옹 : 미행정부의 적의가 실제로 핵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협상으로부터 북한의 탈퇴 결정을 설명해주는 것인가요, 아니면 그 역시 북한의 작전인가요?

브뤼노 : 그 역시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10년 전부터 북한은 끊임없이 의견이 바뀌어 왔습니다. 그에 따라 협상은 몇 주 혹은 몇 달간 지연되었지요. 또 하나의 가설이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즉 평양은 핵무장을 포기해도 될 정도로 충분한 외교적 경제적 ‘일괄타결(paquet)’이 토론을 통해 성취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했을 수 있습니다. 즉 북한은 미국이나 중국과의 거래가 갖는 불확실성 대신 핵을 통한 확실성을 선택하는 것이 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리베라시옹 : 어떤 ‘일괄타결’이 평양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도록 해 줄까요?

브뤼노 : 외교적인 차원에서는 정권의 합법성을 완전히 승인하고 워싱턴이 정권을 전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해주는 것입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와 달리 북한의 변화는 부시행정부의 공식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미국에 의해 보장이 주어진 상태지요. 북한은 막대한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특히 에너지 문제와 관련하여서 예컨대 원유의 공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위기에 있어 미국과 함께 주요 역할을 맞은 중국은 에너지 수입 전체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북한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 중국의 입장은 양면적입니다. 중국은 이 지역에서 미국에 대한 고정점(point de fixation)을 유지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핵프로그램이 이웃 나라들에 도미노 현상을 가져오는 것 역시 피하고 싶어 합니다. 일본의 핵무장은 중국으로선 악몽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2월 10일자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일본 극우파의 아직 전면화 되지 않은 속내를 약간이나마 엿보게 해준다.

북한의 핵보유 공식 발표가 있기 직전인 오늘 오후 보수적인 동경 도지사 신타로 이시하라와 인터뷰를 가졌다. “첫 번째로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경제제재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그 역겨운 미사일을 동경에 쏘게 하는 겁니다.” 빈정대는 목소리로 그는 동경 최고의 고층빌딩에 자리한 자기 사무실에서 말했다. “그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시킬 능력은 갖고 있질 못하니까요” 그러한 미사일 공격에 일본이 어떤 응답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단지 미소만을 지어 보였다.

더불어 북한에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2월 11일자 독일 일간지 타게스차이퉁(Die tageszeitung)의 분석이다.

중국의 경제적 지원은 북한의 생존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중국이 지금까지 북한을 지원했던 이유는 북한의 붕괴와 그로부터 야기될 난민들을 어떻게 하든 막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미국은 중국 대신 북한에 압력을 넣어왔지만 핵무기를 보유한 것이 밝혀진 이상 중국이 압력을 더욱 행사하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중국의 북한 지원이 중단된다면 부시 정부 역시 지금까지 취해온 대북한 정책이 좌초했다는 사실을 감출 수 있게 될 것이다.

△ 2월 14일자 독일주간지 슈피겔의 표지 “폭탄을 가진 미치광이 - 핵무장한 북한”
2월 14일자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북한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북한이 핵보유선언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한 분석을 들어보자.

이란과 북한을 악당국가로 지명한 것은 부시가 예측하지 못한 역설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사담 후세인은 미국과 영국 연합국의 침공에 거의 대응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란과 북한은 그로부터 명백한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곧 정권을 바꾸려는 시도에 대한 안전책은 폭탄이라는 점이다. 폭탄만이 독재자와 독재의 실존을 보증해준다. 이란은 핵무기를 갖기 위해 서둘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목표에 도달하려면 3년에서 5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물라(이슬람 성직자)의 나라는 복잡한 게임을 시도했다. 한편으로 미국이 외교를 위탁한 유럽과 협상을 벌이고 다른 한편으로 국가적 관심사에 대한 참견을 허용하지 않는 결의의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다. 이란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아직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권력인 미국이 위협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스라엘 근처에 어떠한 핵무장 권력도 들어서는 것을 참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해둔 바 있다. 핵생산 시설을 군사적으로 한번 공격하는 것을 선택으로 보류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바로 이란이 갖지 못한 것을 북한은 이미 명백히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역할에 대해서 슈피겔은 타게스차이퉁과 약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곧 중국이 경제적 지원을 중단하는 것이 북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만큼이나 북한이 붕괴되어 난민들이 중국국경을 넘는 사태는 중국에게 위협이 되리라는 것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원조에 기대어 살고 있다. 미국, 유럽, 그리고 무엇보다 남한의 생필품 지원이 없다면 북한은 완전히 붕괴될 것이다. 하지만 서울 말고도 중화인민공화국이 이 독재자에게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80%의 소비품이 북경에서 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무역상대국 제1위이다. 중국의 실권자들이 지난 몇 달간 김정일에 대해 화를 내며 곧바로 핵문제에 협조할 것을 요구했지만 김정일은 중국의 압력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그는 중국이 평양정권의 붕괴를 남한만큼이나 두려워 한다는 것을 생각해둔 것 같다. 곧 수백만의 난민이 국경을 넘어 흘러 들어가면 중국정부가 불안정해지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실제적인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들을 갖고 있을까? 일단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다시 타게스차이퉁의 논거를 들어보자.

부시의 전략 역시 실제적으로 군사적인 행동을 선택할 여지가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북한의 핵시설을 ‘외과적’으로 손보는 것은 의문시된다. 북한의 지하시설 위치가 부분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을 미사일로 공격하느냐의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중무장한 북한 정권은 국경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남한의 거대한 수도 서울- 남한 인구의 40%가 살고 있다 -을 재래식 포격만으로도 파괴할 수 있다. 1994년 이미 미군은 연구를 통해 전쟁 시 90일내에 5만의 미군과 50만의 남한 인이 사망하게 되리라는 결과에 도달한 바 있다.

특히 북한이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핵의 실제적 위협과 관련하여서는 슈피겔이나 뉴욕타임즈 는 그 위험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는 듯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오늘날 2개에서 6개의 단순한 원자탄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평양은 핵탄두를 미사일에 탑재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은 어느 정도 확실하다. 처음에는 일본, 나중에는 알래스카나 북캘리포니아로 그 사정거리를 넓혀갈 것인가? 그렇다면 위험경보 1단계가 발효된 셈일까? 워싱턴에 소재한 우드로우 윌슨 국제협회의 셀릭 해리슨(Selig Harrison)같은 많은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폭탄을 만들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아직 ‘기술적 전제’가 충족되지 못했다는 것이다.(슈피겔)

미국은 북한이 최대 8기의 핵폭탄을 가지고 있지만 한 번도 핵실험을 해보진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1년 전 로스 알라모스 핵무기 연구소의 전임소장 지그프리드 헤커가 영변을 돌아보고 왔다. 명백히 북한이 그들이 가진 핵무기의 위용을 믿게 할 목적으로 미국인을 초대한 것인데, 헤커 박사는 미국으로 돌아와서 북한이 작동 가능한 핵폭탄을 만들어서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뉴욕타임즈)

북한 핵보유 선언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상황이 전개될 것인 만큼 중요한 분석 기사나 심층취재가 다루어질 때마다 이 난을 통해 소개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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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일본 군국주의 부활기도에 대한 민노당-조선사회민주당 공동성명

<성 명>
일본 군국주의 부활기도에 대한 민주노동당-조선사회민주당 공동성명


일본의 군국주의 야망이 그 어느 때보다 노골화되고 있으며, 영토팽창과 역사왜곡 책동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일본 당국자의 <야스쿠니신사>참배가 계속되는 속에 정부각료들과 정치인들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역사왜곡 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가 하면, 시마네현 의회는 <독도의 날>조례를 제정하였고, 일제의 우리나라 침략범죄를 전면 부정하는 역사교과서 왜곡이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언론에 의해 감행되어온 우익보수세력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침략역사 왜곡 책동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전체의 평화를 깨는 행위이다.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과거범죄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고, 침략과 약탈의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 영토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대북 적대정책을 펼치고 있는 일본의 행위는 미일동맹 하에 진행되고 있다는데 더욱 큰 위험성이 있다.

일본 군국주의세력의 영토팽창 야망 실현을 위한 움직임에 의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지금, 남과 북, 해외의 우리겨레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기도에 대해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대응하여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조선사회민주당은 전민족의 분노와 의지를 담아 다음과 같이 성명한다.

1. 독도는 역사적 견지에서나 지리적 및 법률적 견지에서나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논의할 여지도 없는 우리 민족 고유의 영토이며, 우리 민족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강점과 식민지 지배역사는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가장 야만적이고 반인륜적인 침략과 약탈의 역사라는 것을 거듭 명백히 선언한다.

2. 민주노동당과 조선사회민주당은 정의와 진리를 부정하는 일본의 독도침략과 역사왜곡 책동을 우리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침해와 모독으로, 침략역사를 되풀이 하려는 군국주의 야망의 발로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로 엄중히 규탄한다.

3. 과거범죄에 대한 사죄와 보상은커녕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이 유엔안보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려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

4. 민주노동당과 조선사회민주당은 일본우익세력들의 군국주의 책동을 막고,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온 겨레가 함께 나설 것을 호소한다.

일본은 지난날 일제가 한반도를 불법적으로 강점하고 우리 민족에게 온갖 불행과 고통을 안겨준 과거범죄를 청산하려는 우리 민족의 의지를 똑바로 보아야 하며, <독도영유권>주장과 역사왜곡을 비롯한 군국주의 부활 기도를 즉시 중지하여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조선사회민주당은 민족자주, 반전평화, 조국통일의 기치아래 연대연합을 강화하고, 6.15공동선언 발표 5돌, 조국광복 60돌, 을사조약 체결 100년이 되는 올해에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는데 적극 기여할 것이다.


2005년 4월 21일 서울, 평양
민주노동당 조선사회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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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연대]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노동계급의 입장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노동계급의 입장
    노동계급의 혁명정당을 건설하자 - 부시 낙선운동은 별 의미가 없다!  <2004-09-26 오전 9:16:49>

 

 

▶케리를 지지한 촘스키. 부시 행정부의 노골적인 반동적 정책 때문에 소위 좌익 운동권의 다수가 민주당 후보 케리를 지지하겠다고 나섰다.

올해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더러운 제국주의 전쟁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가운데 치러지게 되었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목적은 중동의 석유를 장악하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지위를 확고히 하려는 것이다. 작년 3월 19일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 전쟁에서 미군은 거의 1천명이 사망했으며 대부분이 민간인인 이라크인 사망자는 만 명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현재 미국은 구 소련 영토였던 중앙아시아 유전지대에서 시작하여 아프가니스탄과 페르시아 만에까지 군사기지들을 설치해 놓고 있다. "테러대전"이 주요한 유전이나 송유관이 있는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사담 후세인이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되어온 "대량살상무기"와 이라크 전쟁은 애초부터 아무 관련이 없었다.
이라크 전쟁이든 "북핵" 문제이든 어느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제국주의 부르주아 정당은 국내의 계급전쟁과 해외의 제국주의 정복전쟁에 모두 열성적이다. 그러나 현재 이라크 전쟁은 이들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미국 지배계급의 중요한 분자들은 부시 행정부의 능력과 일방적 선제공격 노선에 크게 우려를 표시하면서 케리를 차기 대통령으로 내세우려고 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전쟁은 나름의 논리가 있기 때문에 케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도 부시만큼 잔인하게 이라크인들의 정당한 저항을 제압하려할 것이다.
케리는 자신의 월남전 참전 기록을 들먹거리면서 자기가 부시보다 이라크 전쟁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병력을 4만 명 더 증강시키겠다고 약속하면서 부시가 북한에 대해 좀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고 열을 올려왔다.
이에 대해 맑스주의자들은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의 제국주의 정책에 대항해야 한다. 또한 기형화되었지만 여전히 노동자국가인 북한을 방어하고 이라크 저항세력을 군사적으로 지지해야한다. 이 군사적 지지의 구체적 형태는 노동계급의 정치 총파업이다. 이것만이 도로, 항만, 공항 등을 봉쇄하여 제국주의자들의 전쟁 수행을 실제로 파탄시킬 수 있으며 노동자 인민에 대한 자본주의 억압 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 또한 맑스주의자들은 이 투쟁 과정에서 이라크 저항세력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회교 근본주의자들의 봉건 반동적 성격을 폭로하고 이라크 노동계급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만이 전쟁을 비롯한 자본주의의 모든 해악을 일소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임을 주장해야한다.


케리의 약속: '좀더 효율적인 전쟁'

지난 해 겨울 버몬트 주의 주지사 하워드 딘은 부시의 이라크 전쟁을 비난하면서 민주당의 초기 예비선거에서 놀랍게도 선두주자로 등장했다. 전쟁을 반대하는 대중의 정서가 대단히 강력하다는 사실이 그의 폭발적 인기로 증명되었다. 부시의 이라크 정책을 크게 문제삼지 않았던 대부분의 민주당 후보들에게 이것은 대단히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민주당 지도부는 긴장하여 딘이 대통령 후보가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언론을 동원하여 케리야말로 부시에 대항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떠들기 시작했으며 언론 발을 받은 케리는 별 볼일 없는 일개 후보에서 민주당의 유일한 대통령 후보로 치켜세워졌다.
이후 케리는 이라크에서 "현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도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승인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 문제에 대해 부시와 자신을 차별화 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케리는 부시의 선제공격론과 국제사회와의 공조 부재를 들고 나오면서 부시의 이라크 정책을 공격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유엔을 통해 다른 나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좀더 세련되고 부드럽게 전쟁을 수행하여 비용을 줄일 수도 있는데 부시의 막가파식의 외교 때문에 전쟁이 미국에게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초당적인 국내 정책: 내핍과 탄압 정책

미국의 지배계급은 언제나 이렇게 떠든다: 열심히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신분 상승이 가능한 사회가 미국이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하게 태어난 자들은 죽을 때까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1월 5일자 [네이션]지에 따르면 1973년에서 2000년까지 미국의 상층 10%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평균 수입이 7% 하락했다. 반면 상층 10%의 수입은 148% 상승했으며 최상층을 구성하는 0.01%의 수입은 599%나 상승했다. 더욱이 부시 대통령은 올해 들어 기업이윤, 주식 배당금, 소득 등에 대한 세금 삭감을 단행하여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더욱 부채질했다.
현재 1천만 명의 미국인이 적극적으로 일을 찾고 있는 실업자이고 수백만 명은 아예 구직을 포기하거나 저임금 비정규직을 유지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미국의 [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새로 생긴 일자리의 평균 임금은 없어진 일자리의 평균 임금보다 15%나 낮다. 이 결과 제일 나중에 고용되고 제일 먼저 해고되는 흑인들의 실업률은 2003년 6월 현재 백인의 두 배이고 이들의 가계자산의 평균 가치는 백인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자신이 흑인과 노동자들의 친구라고 오랫동안 거짓말을 해왔다. 민주당 후보 케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4월 16일자 [뉴욕 타임즈]지 기사에 따르면 한 접시에 2만5천 달러나 하는 모금 파티에서 케리는 자기가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는 민주당 후보가 아니다"라고 공언했다. 더욱이 그는 구일일 테러 이후 부시가 제정한 반민주 악법인 애국자 법을 지지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떠들었다. 미 지배계급의 나팔수인 [뉴욕 타임즈]지는 8월 17일자 보도에서 이렇게 인정했다: "공화당 전당대회에 들어가려는 시위대를 연방조사국(FBI)이 체포하여 심문한 행위는 현 공화당 정책을 반대하는 세력에 대한 탄압이다."


'부시만 떨어뜨리면 된다'?

부시 행정부의 노골적인 반동적 정책 때문에 소위 좌익 운동권의 다수가 민주당 후보 케리를 지지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화씨 9/11]의 마이클 모어 감독이나 노움 챰스키 같은 학자 등이 이들의 케리 지지를 부추기고 있다. 모어 감독이야 원래부터 민주당을 지지해온 자유주의자이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의 영화 [화씨 9/11]이 조명 발을 받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부시를 공격하면서 민주당에게 표를 몰아주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챰스키는 오랫동안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을 많은 글로써 폭로해 왔으며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를 반대하는 강력한 인물이라는 평을 들어왔다. 이 때문에 최근 그가 케리를 지지하겠다고 나선 것은 의외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런던의 [가디언]지 3월 16일자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올해 나는 케리를 지지할 것이다. 물론 그나 부시나 국내외 정책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는 미국 대통령직의 성격상 작은 차이도 큰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일부 기회주의적 "사회주의" 조직들은 소비자 운동가인 랠프 네이더를 지지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그런데 정작 네이더 자신은 자본주의적 자유경쟁을 옹호할 뿐 사회주의자라고 공언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양당 독재체제"로 인해 중소 자본가들이 피해를 입어왔다고 주장했을 뿐 노동운동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다. 이와는 전혀 반대로 그는 20년 전에 자기가 소유한 잡지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을 깬 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해고당한 노동자인 팀 쇼라크는 이렇게 말했다: "네이더는 민주당원처럼 보이기도 하고 인민주의자 냄새가 나기도 하고 사회주의자인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시야가 협소한 소부르주아 도덕주의자에 불과하다. 그는 소비자 운동보다는 자기 이미지 관리에 연연하는 기회주의자요 자유주의 골수분자요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자에 불과하다"([좌익 비즈니스 업저버]지, 1996년 10월).
사실 네이더는 많은 측면에서 부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도 4년 전에 그를 지지했던 국제사회주의자들(IS)은 지금도 "그가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노동조합의 권리를 옹호하며 팔레스타인 인민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사회주의 노동자]지, 9월 25일). 무늬만 사회주의자인 이들에게 네이더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주장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제국주의 군대의 즉각 철수를 주장해서는 안된다. 대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주도로 미군이 계속 이라크에 주둔해야한다고 주장해야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제국주의 국제질서를 가장 앞장서서 유지하는 기관이다. 1990년 제 1차 이라크 전쟁 이후 작년까지 안전보장이사회의 이라크 경제 봉쇄 결의안이 미국 주도로 실행되면서 50만 명 이상의 이라크인이 기본 의약품이나 식량이 부족하여 사망했다. 더욱이 이 기간에 미국과 영국은 역시 안전보장이사회의 비행금지구역 결의안에 의거하여 주기적으로 이라크를 공습하여 이라크의 산업 시설과 인명에 대한 파괴를 자행해왔다.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국제사회주의자들이 네이더를 대안으로 추켜세우는 것은 냉소적인 정치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자성: 혁명적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자!

챰스키를 비롯하여 스탈린주의 미국공산당, 미국 노총(AFL-CIO)의 관료 등은 "정치의 우경화를 막기 위해 민주당 후보 케리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시가 싫다고 케리를 지지할 경우 지난 30여 년 간 한결같이 우경화 해온 미국의 정치지형을 더욱 고착시킬 뿐이다. 노동자와 인민이 양당 체제에 적극적으로 도전하지 못하고 민주당의 포로가 되어 선거 때마다 민주당을 지지했기 때문에 이제 두 부르주아 정당의 차이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부시와 마찬가지로 케리도 애국자 법을 지지했고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의 학살을 지지했다. 또한 그는 중국, 북한, 쿠바 등 기형적 노동자국가들의 자본주의 복귀를 주창하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점령을 올바른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의 노동자와 인민이 그나마 누려왔던 민주적 권리를 "테러대전"을 위해 정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당선되어도 부자들에 대한 세금 감면, 노동자와 빈민에 대한 내핍 정책은 계속될 것이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민주당의 클린튼은 12년 간 지속된 공화당의 백악관 주인 독점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감축하고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자가 바로 그였다. 그가 재임한 8년 간 감옥에 갇힌 죄수의 숫자는 배로 늘었으며 이라크에 대한 경제 봉쇄는 계속되었다. 이 결과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효 투표자 전체의 거의 50%에 달하는 1억 명이 선거에서 기권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다"며 정치 자체를 혐오하는 증상이야말로 미국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아주 중요한 버팀목이다. 자본주의는 필요하며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개량주의자, 공화당보다는 그래도 민주당이 덜 해롭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자 및 사이비 사회주의자, 사회의 모순을 온갖 환상으로 은폐하는데 여념이 없는 부르주아 언론 등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의 모순은 언젠가 폭발하게 마련이다.
자본주의는 암과 같아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사회와 인간을 파괴할 뿐이다. 자본주의와 암은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진보적인 사회체제를 건설하기 위해서 자본주의는 타도되어야 한다. 이 과업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 세력인 미국의 노동계급은 우선 자신을 착취하는 자본가들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적 차원에서 조직되는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통해서만 자본주의가 극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럴 때에만 가난, 굶주림, 질병에 시달리는 절대 다수의 인류는 자본주의 시장질서의 족쇄에서 풀려나 진정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유일한 전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노동계급의 가장 의식적인 분자들은 혁명적 맑스주의의 전통에 입각한 강령과 투쟁 방식을 통해 혁명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이 길을 통해서만 미국의 노동자 인민 뿐 아니라 모든 인류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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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연대]프랑스의 주35시간노동제는 실패작인가, 위대한 성과인가?

프랑스의 주35시간노동제는 실패작인가,
위대한 성과인가?



 

얼마 전 조선, 중앙, 동아 같은 자본가언론은 프랑스의 주35시간 노동제가 가장 대담한 개혁 중 하나였으나 가장 어리석은 조치가 되고 말았다는, 영국의 대표적인 자본가언론인 ≪파이낸셜 타임스≫의 주장을 대서특필했다. 5년 전 10%에 육박하는 만성적인 실업난을 해소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으나 실업률이 전혀 감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경제성장이 그만큼 더딜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보수언론은 프랑스 자본가정부가 주 35시간인 근로시간을 48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는 법안을 하원에 상정해 통과시킨 것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더 나아가 지난 20년 동안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조 가입자수가 급감(영국이 50%에서 30%로 떨어지고, 프랑스는 10% 이하로 하락하고, 독일은 35%에서 20% 정도로 추락)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나날이 급증하며, 아예 ‘노조’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부드러운 음악을 연상시키는 ‘베르디’나 ‘아미커스’(친구)와 같은 온순한 이름을 쓰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고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본가언론은 서유럽 노동운동이 세계화 시대의 첨예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거의 낡은 전투적 노동운동의 옷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데 우리나라 노동운동 또한 세계적 흐름을 읽고 그에 따라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은근히 종용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프랑스 주 35시간제는 실패작인가? 프랑스 노동자들이 주 35시간제 폐기에 맞서 격렬하게 투쟁하고 있는 모습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한국의 노동자들은 주35시간제를 둘러싼 프랑스의 계급투쟁 및 유럽 노동자운동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며, 어디로 전진해야 하는가?


주 35시간제는 가장 어리석은 조치였는가?


자본가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2000년 당시 사회당 정부는 ‘노동시간을 10% 줄이면 추가 비용 없이 약 7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마르틴 오브리 노동부 장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법안이 발효됐지만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았고, 노동시간 감축으로 인건비만 올린 셈이 돼 경기 침체를 부추겼다.” “실업률도 도입 당시 10%에서 올해 초 9.9%로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만약 일자리를 늘리고,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정책이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실패했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상적 수치에만 몰두하는 극히 기계적인 사고일 뿐이다. 본질을 파악하려면 문제를 더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 보아야 한다.

만약 10명이 하루 10시간씩 노동을 하고 있던 상태에서 노동시간을 5시간으로 낮출 경우 기존의 생산량을 계속 뽑아내려면 20명을 고용하면 된다. 그 경우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란 정책은 성공한 셈이다. 실업자들은 일자리를 얻어서 좋고, 그 전까지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던 취업 노동자들은 노동의 고통을 덜 수 있어서 좋다. 노동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멋진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이런 멋진 정책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절대 아니다. 노동자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그들의 힘이 커지고,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불황과 공황을 맞았을 때 해고하기가 어렵고, 노동시간을 줄인 만큼 임금을 삭감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그걸 절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남한에서 자본가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대해 완강하게 반대해왔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만약 노동자들의 압력이 거세 어쩔 수 없이 ‘노동시간 단축’을 받아들여야 할 경우 자본가들은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자본가들은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 다른 지역, 다른 나라로 공장을 이전시킬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를 추가로 고용하는 대신 노동강도를 높이든지 아니면 기술 혁신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길을 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노동시간은 단축’됐지만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이 경우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정책은 단순히 실패작이라고 볼 수 있는가?

여기서 문제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정책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탄 낸 자본가들에게 있다. 만약 노동자들에게 책임이 있다면 ‘잘못된’ 정책을 채택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책에 대한 자본가들의 반발을 억누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부족했던 데에 있을 뿐이다. 노동자들에게 힘만 충분히 있었다면 ‘정리해고나 실업을 유발하는 일방적인 공장이전이나 노동강도 증대’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며, 공장이전이나 기술혁신이 필요할 경우에도 그것이 노동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그대로 유지하고, 오히려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게 했을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은 실패작’이라는 자본가들의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지적 파산자, 백치들의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주35시간 노동제는 우리 시대에 노동자계급이 쟁취한 가장 위대한 성과 중 하나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99년 기준으로 주당 50시간이나 된다. 98년 기준으로 보면 연간 2612시간으로 OECD 29개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하루 2~4시간 잔업은 기본이고, 휴일 특근까지 해야 겨우 먹고살 수 있기 때문에 주당 노동시간이 70시간이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평균 주당 50시간 일하는 한국의 노동자들은 과로 때문에 ‘40대 사망률이 세계 최고’에 이를 수밖에 없으며, 온갖 산재로 몸이 성한 군데가 하나도 없을 지경이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주 35시간제는 ‘꿈의 노동시간제’라고 할 수 있다. 주5일, 하루 7시간만 일하고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얼마나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정치, 사회, 문화예술, 국제 등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가 그대로 존속하는 한 주 35시간제가 된다 해도 노동자들이 임금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주 50시간 일하던 상태와 비교한다면 삶의 질이 훨씬 더 나아질 것은 틀림없다.

주35시간 노동제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이렇게 해서 획득된 여유 시간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사상을 학습하고 노동해방의 길에 대해 토론하면서 자신을 굳건한 주체로 단련시키고 조직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가령 50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된다면, 나머지 15시간으로 노동자들은 엄청난 전진을 이룩할 수 있다. 매주 3시간 정도의 학습시간, 3시간 정도의 토론시간, 3시간 정도의 조직화와 연대의 시간을 갖고 나머지 6시간은 휴식에 투입하더라도, 노동운동은 엄청난 전진을 이룩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맑스는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노동자계급 해방의 물질적 기초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물론 조건은 있다. 노동운동이 이렇게 획득한 시간들을 자본주의에게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노동해방적 관점에서 이 시간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면서 전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시간들을 퇴폐나 향락, 자본주의적 소비, 가족주의적 협소함 속으로 해소시켜버린다면 노동해방을 향한 적극적 의미는 거의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것은 노동시간 단축을 노동해방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노동해방운동의 적극적 대응이 반드시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상의 점들을 고려할 때, 프랑스 노동자들이 피어린 투쟁을 통해 쟁취해낸 ‘주35시간 노동제’는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나아갈 길을 뚜렷하게 보여준 위대한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프랑스 노동자계급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살고, 노동해방을 달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조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프랑스 노동자계급은 프랑스 자본가정부가 주35시간제를 폐기하려는 것에 대해 ‘소중한 보물’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심정으로 완강하게 투쟁해 왔다.


원인은 자본주의 자체에 있다!


그런데 자본가계급에게는 이 제도가 ‘악마’ 같을 수밖에 없다. 전 세계 자본가계급은 자국의 노동자계급이 프랑스 노동자계급을 본받을까봐 두려워했다. 이들은 틀림없이 프랑스 자본가계급에게 계속 압력을 넣었을 것이다. 프랑스 자본가계급 또한 주35시간 노동제가 그들의 이윤을 삭감하고, 그들의 힘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끊임없이 불만을 터뜨렸다.

그래서 그들은 인건비가 프랑스의 1/10 정도에 지나지 않는 동유럽으로 공장을 이전시키고, 노동강도를 증대시키고 기술혁신의 성과를 인력감축의 수단으로 둔갑시키는 길로 나아갔다. 그에 따라 노동시간이 ‘주35시간’으로 줄어들었지만 ‘7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기지도 않았고, 실업률도 10%에서 거의 줄지 않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노동자에게 있는가 자본가에게 있는가? 당연히 자본가에게 있다.

하지만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이로운 주35시간제를 폐기하려는 것이 그들이 원래 심성이 ‘나쁜 놈’이기 때문이라고 단순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들도 처자식에겐 ‘좋은 아빠’, ‘멋진 남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 자본가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본주의 질서 자체는 이들로 하여금 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착취에 나서도록 몰아붙인다. 자본가들의 가정, 기업, 부, 지위의 안정성은 노동자 착취로부터 획득되는 것이며, 이 안정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착취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자본가들로 하여금 노동자들을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피도 눈물도 없는 ‘나쁜 놈’이 되지 않을 수 없게 강력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가 촉진되면서 기업 간, 정부 간 경쟁은 더욱 격화됐다. 기업들은 피 말리는 시장쟁탈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건비 절감에 목을 매고 있다. 각 나라는 자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법정 노동시간을 늘리며, 각종 혜택을 주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프랑스 자본가들 또한 이렇게 격화되는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낮은 인건비, 더 고분고분한 노동자들을 찾아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가려 한다. 프랑스 자본가들이 동남아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시키려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한국 자본가들이 한국 노동자 평균 임금의 1/10도 안 되는 값싼(중국 6~12만원, 북한 7~10만원) 노동력을 찾아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듯이 프랑스 자본가들도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프랑스 자본가정부가 노동시간을 주35시간에서 주48시간까지 늘리려 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만약 노동자계급의 반발이 거의 없다면 프랑스 자본가정부는 노동시간을 60, 70시간으로까지 늘리고, 임금을 지금의 70%, 60%까지, 아니 20~30%까지 로도 낮추려 할 것이다. 한마디로 자본과 정부의 이윤욕에는 끝이 없는 것이다.

만약 기업들이 ‘온정적 태도’로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임금, 상대적으로 짧은 노동시간, 강한 노조를 감수한다면 어떤 일이 기다리겠는가? 그것은 약육강식의 경제적 정글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만약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가 反기업정책을 강하게 펼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있는 기업들은 모두 해외로 빠져나가고 새롭게 들어오는 기업은 전혀 없어서 자본주의 국가경제가 무너져버릴 것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공장이전을 모색할 수밖에 없으며, 자본가정부는 공장이전을 막고, 자본가들의 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해 노동시간 연장, 임금 동결 및 삭감, 노조 무력화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과 정부가 걸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의 길이다. 그들에게 다른 것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가서 고기를 얻으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을 뿐이다.

나날이 격화되는 경쟁, 강화된 착취가 본질적 특징인 자본주의 사회를 인정한 상태에서라면 노동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경쟁에서 자기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고분고분 협조하는 것이다. 유럽의 대다수 노동조합들은 지금 그런 길을 가고 있다. 베르디, 아미커스(친구)라는 부드러운 이름을 쓰는 것은 노조가 자본가들에게 ‘전투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온순한’ 애완견 같은 태도를 취해 주인의 시혜를 받아 노예로서 계속 살아남겠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일자리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복지를 양보하겠다. 임금삭감, 연장근로도 OK'라고 하는 것도 모두 그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한 아무리 전투적인 노조라도 빠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 운명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엔 살아남는 길이 아니라 더 빠르게 죽는 길이다. 왜냐하면 모든 나라, 모든 회사의 노동자들이 고분고분 자본가들에게 복종할 경우, 격화되는 경쟁, 강화된 착취의 송곳이 노동자들의 몸을 사정없이 찔러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더욱 강하게 외쳐야 한다. 대안은 오직 노동해방에 있을 뿐이라고.

우리는 이렇게 선언해야 한다. “주35시간 노동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 이것은 프랑스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을 겨냥한 공장이전 위협에 적극 투쟁하지 못하고, 노동강도 강화를 저지하며, 기술 발전의 성과를 노동자 자신의 것으로 쟁취하기 위한 더 적극적인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노동해방으로 상승시키기 위한 변혁적인 과업에 적극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 투쟁하는 프랑스 노동자들이 있다!


자본과 정권에 맞선 투쟁은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노동자들, 너무 오랫동안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온 온순한 노동자들은 자본가계급의 공격을 받고도 투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들의 생존권이 눈앞에서 강탈당하는 것을 본 많은 노동자들이 단결과 투쟁의 길에 나서기도 한다. 특히 투쟁의 전통이 있고, 노동자의식이 살아있는 곳에서는 자본의 공격이 거셀수록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투쟁이 더욱 강하게 일어난다. 이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프랑스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이번 주35시간제 폐기에 맞서 완강하게 투쟁했다. 2월 5~6일 주말에 프랑스 노동자들 50만 명이 ‘법정 근로시간을 주35시간에서 최대 48시간으로 늘리고’, ‘시간외 초과근무 제한도 연간 180시간에서 220시간으로 완화’하는 법안에 대해 격렬한 거리시위로 저항했다. 파리에서만 9만 명이 모일 정도로 열기는 상당했다.

이런 투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이것은 1995년 ‘뜨거운 겨울’을 기점으로 지난 10년 간 계속돼 온 공공서비스를 둘러싼 투쟁의 일부다. 1995년 당시 쥐페 자본가정부는 연금을 개악하려는 도발을 감행했다가 3주간에 걸친 거센 파업과 시위의 물결에 밀려 결국 개악안을 철회해야 했다. 그 뒤 프랑스 노동자들은 굴곡을 그리면서도 계속 투쟁을 전개해왔다. 대표적으로 2003년에 프랑스 자본가정부가 공격범위를 좁혀 교사들의 연금을 깎으려 하자 전체 교사의 절반 이상이 파업에 참가할 정도로 대규모 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올해 1월에도 프랑스 전역에서 정리해고, 임금 삭감 등에 반대하는 행동 주간의 일환으로 우체국, 철도, 학교, 병원, 공무원 노동자 30만 명 정도가 투쟁을 전개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노동해방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한국의 자본가언론은 대단히 선정적으로 프랑스와 유럽노동운동에 대해 쓰고 있다. “문패 내리는 서구 강성노조”, “힘 빠진 서유럽 노동조합”, “유럽노조 강성은 옛말” 같은 선정적인 문구로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본가언론이 주장하려는 바는 ‘강성노조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므로 한국 노동운동도 전투성을 완전히 버려야한다’는 것이다.

날로 첨예해지는 세계경쟁이 서유럽 노조운동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은 사실이며, 많은 서유럽 노조들이 그 압력에 굴복해 더 후퇴하고 있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런 서유럽 노동운동이 일방적으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유럽 노동운동은 양극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자본주의의 경쟁압력에 굴종하는 노동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 압력을 정면으로 거스르고자 하는 노동자들 또한 있다.

굴종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연장, 임금삭감안을 받아들이는 동안,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굴종하는 노동자들이 노조 이름을 포기하고 ‘친구’(아미커스)와 같은 온순한 이름으로 변신하는 동안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자’, ‘노동조합’이란 당당한 노동자의 이름을 쟁취하고 굳건히 사수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한국의 특수고용직 노동자들, 공무원 노동자들을 보라).

노동운동이 패기를 잃었을 때 젊은 노동자들은 거기에 참여하지 않기에 그 노동운동은 더욱 하락하게 된다. 반면 노동운동이 패기와 활력을 갖고 있을 때 젊은 노동자들은 그곳에서 희망을 찾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굴종하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경쟁에 길들여지고 있는 동안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연장, 정리해고, 임금삭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프랑스의 한 우체국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들은 우편 업무를 기업식으로 바꾸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체국만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이윤만이 중요시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다.” 다른 한 교사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윤을 위해 돈을 쓸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필요를 위해 돈을 쓸 것인가이다.” 또 다른 한 간호사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라파랭[프랑스 총리]은 ‘거리 투쟁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왜 안 되는가? 우리는 다수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라파랭은 사장과 은행가들을 위한 정치를 원한다. 우리는 그것을 반대한다.”

물론 프랑스에서 파업과 시위를 이끌고 있는 노총들에는 관료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이 관료들은 자본과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거대하고 강력한 연대파업을 작고 고립분산적인 단사별 파업으로, 파업을 시위로, 시위를 평화적인 캠페인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아직 비록 힘은 충분하지 않지만 이러한 관료들의 파업파괴에 맞서면서 현장에서부터 노동자대중의 투쟁을 성실하게 일구어내고, 조각난 단사 투쟁을 동아줄로 튼튼히 묶어내며, 투쟁의 요구를 확대하는 노동해방 투사들이 있다. 더불어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한 노동자투쟁을 자본주의 자체에 맞선 투쟁으로 발전시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노동해방 투사들이 있다. 프랑스 노동운동의 미래는 결국 이 노동해방 투사들이 얼마나 올바른 정책과 헌신적 노력으로 지금의 투쟁을 이끌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

전 세계 자본가계급은 “프랑스 주 35시간 노동제는 실패작”이라고 선언하며 전 세계 노동운동을 미친 듯이 공격해대고 있다. 이에 맞서 전 세계 노동자계급은 “프랑스 주35시간 노동제는 위대한 성공이었다. 우리는 이제 이 계급투쟁의 성과물을 온몸으로 사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주 35시간제를 폐기하고 노동자를 지옥으로 떨어뜨리려는 자본가계급을 쓸어버리고 노동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더 거대한 해일이 되어 휘몰아쳐가야 한다.”고 화답하고 이를 행동으로 입증해야 한다. 가라, 자본가세상! 쟁취하자, 노동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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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노동연대의 필요성 - 박준식

동북아 노동연대의 필요성
 
오늘날 우리는 모두가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 네트워크는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다. 이 네트워크 속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정보이며, 그 다음이 돈이고 물건과 서비스와 공장들이다. 정보와 돈과 물건과 서비스와 공장들을 수시로 갈아 내우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네트워크의 중추 신경은 ‘글로벌 기업’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시간과 공간은 글로벌 기업들이 열어가는 네트워크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어가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 속의 노동

더욱 놀라운 것은 네트워크의 이동 속도이다. 정보와, 돈, 물건, 서비스, 공장, 그리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어가고 있다. 이제 움직이지 않는 것은 국민국가라는 정치적 공간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적 생산 공장과 설비를 건설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2~3년 정도면 충분하다. 이들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중소기업의 공장과 설비를 이전하는 데에는 1년이면 족하며, 금융기관들이 사무실을 이동하는 데에는 1개월로 모든 작업이 마무리될 수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가장 이동 속도가 느린 것은 사람이다. 이른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적 자원의 풀로부터 떨어진 사람들일수록 그들의 이동 속도는 늦어진다. 바로 이 속도의 차이가 글로벌 네트워크를 주도하는 기업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물자와 정보, 자금과 공장은 수시로 이전 가능하지만, 노동력은 같은 속도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의 지역간 격차가 발생한다. 이러한 격차는 자본간 경쟁을 노동간 경쟁으로 전환시키는 핵심적 요소가 되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 시장과 노동시장을 찾아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의 존엄성과 고용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은 손쉽게 국경을 사이에 둔 노동자들 간의 피를 말리는 경쟁으로 탈바꿈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노동-자본 ‘불균형’의 표본

오늘날의 동북아시아 지역은 이동하기 힘든 노동력과 이동이 자유로운 자본의 불균형이 만들어내는 고용과 삶의 위기를 보여주는 표본실이다. 버블 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한 일본에서는 지난 10여년 동안 수도 없이 많은 기업들이 일본을 떠났으며, 이제 그 바톤을 한국이 이어받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본격적인 수교와 경제교류가 시작된 이후 진행된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더욱 큰 탄력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동북아 지역에서 벌어지는 경제 구조의 엄청난 변화는 이 지역의 노동자들 모두에게 전례 없는 도전이 되고 있다.

동북아 지역의 급속한 경제 통합으로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고용 위기와 오늘날 중국 의 노동현장에서 자행되는 저임금과 노동착취의 현실은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동일한 현상의 서로 다른 표현형들이다. 동북아 경제의 새로운 재편성은 한국사회의 고용문제, 노사관계, 경제 체제를 조만간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로 전환시킬 것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새로운 경제와 고용 환경에 대한 노동의 대응이다.

연대의 시야 넓혀야 할 때

동북아 지역에서 노동이 처한 위기를 감안할 때 ‘동북아 노동 연대’의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로 볼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지역에 고정되어 그들만의 시각에 머물러 있는 노동 조직들이 최소한 동북아 지역에서 새로운 유대 관계를 확장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노동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 지역의 노동자들은 끝없는 상호 경쟁의 기제로부터 헤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을 둘러 싼 동북아 지역에서는 경제적으로 혁명적인 변화가 전개됐다.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 이처럼 빨리 될 것으로 전망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고, 우리나라의 공장들은 한 해에 수 백 개씩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경제 지리 구조 변화에 대한 노동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취약한 편이다.
 
동북아 지역의 노동자들이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서로를 잡아먹는 최악의 경쟁체제에 끌려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확장된 사회적 연대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준식 한림대 교수, 사회학  jsp@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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