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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 부시의 입이 찢어지다

[하재근 컬럼]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 부시의 입이 찢어지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04-28 16:12]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우습게 알지만 우크라이나는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구소련의 곡창지대 정도?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체르노빌 원전사고?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농사에만 의존하는 한가한 나라가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강국이 될 잠재력이 있다.

세계적인 곡창지대면서 구소련 산업의 25%, 군수산업의 40%를 담당했을 만큼 중공업 또한 발달했다. 광대한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5000만에 달하는 인구, 풍부한 자원, 산업기반이 동과 서 어느 쪽에 속하느냐에 러시아 제국 부활의 사활이 걸렸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에 속하게 되면 영국-프랑스-독일-폴란드로 이어진 동방제국 포위망이 흑해를 넘어 터어키로 이어지게 된다. 프랑스-독일 동맹에서 발아한 유럽연합이 독일의 무지막지한 청산사죄 신공으로 폴란드를 넘어 우크라이나까지 접수하면서 오랫동안 동방의 바다였던 흑해가 미국-서방의 내해로 귀속되는 것이다. 로마제국 시대 이래로 처음인가?

반면에 이미 발트해를 잃은 러시아가 흑해까지 잃게 되면 서방으로의 출구는 봉쇄된다. 흑해연안과 코카서스 지방에서의 러시아의 위축은 터키의 운신폭을 넓혀준다. 터키가 자유로워지면 이란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고 아직도 러시아와 가까운 중앙아시아의 ‘~~스탄‘시리즈의 나라들까지 미국의 포위망-유럽의 팽창선이 연결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동와 서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의 중요성이다.

세계에서 다락방 거주 기네스 기록을 보유한 나라는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의 스테판 코발추크씨는 무려 57년 동안이나 자신의 다락방에서 지냈다고 한다. 1942년 나치를 피해 다락방에 숨어든 후 2차 대전 후엔 소련군을 피해 다락방 생활을 계속하다 1999년이 되서야 75세의 노인이 되어 다락방에서 나온 것이다.

스테판 코발추크씨의 이야기는 서방과 동방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의 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중국과 미국 사이에 낀 나라로서 동병상련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선으로 봐선 유럽 동남부의 중심국가이며 미국패권체제의 최전선인 우크라이나에 조만간 최초의 한국 대통령 순방이 있을 건 확실해 보인다.

작년까지만 해도 정정이 불안정했던 우크라이나가 안정됐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얼마 전에 친러 정권이 무너지고 친미 정권이 섰다. 그것이 이른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동서의 대결, ‘오렌지 혁명’이다. 이 오렌지 혁명으로 부시는 기고만장이고 러시아의 푸틴은 ‘아주, 매우, 많이’ 불쾌한 상태다.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둔 동과 서의 신경전은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94년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이 이루어진 후, 1995년 옐친은 독립국가연합내 러시아의 주도적 위치 확립, 공동군사사령부 창설, 러시아 군대의 주도적 역할, 공동 외교 정책 수립, 독립국가내 러시아 신문 보급, 각국 관료의 훈련을 러시아가 맡을 것 등을 주장하고, 곧이어 96년 러시아의 두마는 소련해체 무효 선언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서방은 즉각 반응을 보인다. 96년 7월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독립이 지니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라고 선언한다. 또 미국의 교두보이자 유럽의 중추인 독일의 수상은 “유럽에서 우크라이나가 차지하는 견고한 위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도전받을 수 없다.”라고 선언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제국 부활시도에 반대하고, 이 때 우크라이나의 노선을 지지했던 나라가 중앙아시아의 중심 우즈베키스탄이다. (우즈베키스탄엔 노무현 대통령이 다음 달에 방문한다.)

같은 시기 미국-서방의 공세에 불안감을 느낀 옐친은 반패권 동맹을 구상하는데, 그것은 러시아-이란-중국의 결합, 바로 몽골제국의 부활이었다. 1996년 옐친은 베이징을 방문해 세계패권체제를 비난하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중국의 리펑은 러시아에 답방하여 “(세계가) 유일 강국에 의해 지배되는 것”을 양국이 공동으로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서방의 자본 투자가 아쉬운 터에 러시아-중국은 아직 미국을 노골적으로 적대할 수 없었다. 반패권 동맹은 흐지부지 됐지만, 그 당시의 구도가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이후 현재에 이르러 다시 재현되는 중이다. 지금 푸틴은 이란에 손을 내밀고 있고, 중국과 관계를 맺으며, 더 나아가 중국은 인도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기고만장한 부시가 “자유의 확산”을 선언한 데 대한 반작용이다.

2002년도에 실시된 우크라이나 총선에선 출구조사를 ‘우크라이나공공감시위원회’와 국제부흥재단이 공동으로 실시했다. 국제부흥재단은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재단이다. 소로스가 왜 거기에 있지?

2003년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얄타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벨로루시를 잇는 독립국가연합 경제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발표한다. 명백히 EU에 대한 응전이고, 날로 미국의 영향력이 잠식해들어 오는데 대한 반발이다. 예전 같으면 출구조사를 해도 러시아가 했을 거였다. 그런데 소로스가 쳐들어와서 하다니!

2002년 총선에서 빅토르 유슈첸코가 이끄는 야당이 약진한다. 유슈첸코의 부인은 미국인이고 미 국무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때문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서 정략적으로 유슈첸코에 접근해 결혼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부인뿐만이 아니라 유슈첸코 자신이 브레진스키, 메들린 올브라이트, 조지 소로스 등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등 미국과 매우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2004년 유슈첸코는 우크라이나 대선에 출마한다. 친러파인 쿠츠마 대통령은 자신의 후계자인 야누코비치 총리를 내보낸다. 이렇게 해서 결국 우크라이나 대선은 동과 서, 미국-유럽 대 러시아의 대결이 된다. 유슈첸코가 이기면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속하게 되고, 야누코비치가 이기면 러시아의 자장 안에 남는 것이다.

푸틴은 대선기간 중 두 번이나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며 야누코비치를 민다. 게다가 대선 결과 공식 발표가 있기도 전에 야누코비치에게 당선 축하 전화를 걸어 서방의 반발을 산다. 그러나 상황은 러시아의 애틋한 꿈과는 다르게 흐르기 시작한다.

2004년 11월 22일 우크라이나 중앙선관위는 야누코비치의 승리를 발표한다. 유슈첸코는 즉각 불복을 선언하고 지지자들에게 민중항쟁을 촉구했다. 군중이 선거부정에 항의해 몰려들고 우크라이나 서부 지방의 지역 의회는 유슈첸코에게 복종할 것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남북이 갈려 동서의 대리전을 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동과 서가 갈려 미국-유럽 대 러시아의 대리전을 한다. 여기에도 역사적 배경이 있지만 넘어가고, 유슈첸코가 대선 결과를 무시하고 “내가 당선자”라며 스스로 선언하자, 백악관은 즉각 선거부정 조사가 끝날 때까지 공식적인 대선 결과 발표를 유보해달라고 우크라이나 당국에 촉구한다.

애가 탄 푸틴은 선거 결과가 발표된 후 바로 야누코비치 당선자에게 축하메세지를 보냈는데 미 국무부는 이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 유럽연합(EU)도 대선결과 발표를 재고해달라고 우크라이나 당국에 요구하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도 비민주적 선거였다고 비난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를 서방의 내정간섭으로 규정, 강력히 반발한다.

유슈첸코가 선거불복을 선언할 수 있었던 정당성은 대선 출구조사에 있었다. 출구조사 결과과 선관위 발표가 달랐던 것이다. 그 출구조사가 가능했던 건 바로 미국의 지원이었다. 미국은 수천만 달러를 우크라이나 대선 과정에 지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스탠퍼드대 마이클 맥파울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서 미국은 우크라이나 내정에 간섭한 것이 맞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미당국은 그걸 민주주의 촉진운동, 시민활동 지원 등으로 부르지만.

유슈첸코의 선동에 수만 명의 지지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모두 오렌지색의 상품을 몸에 둘렀다. 그래서 ‘오렌지 혁명’이다. 그런데 이 수 많은 오렌지색 상품은 어디서 갑자기 나온 것일까? 러시아 언론은 우크라이나에 공급된 대량의 오렌지색 상품과 조지 소로스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우크라이나 시민혁명은 조지 부시와 조지 소로스, 두 조지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부시가 대통령이 된 후 구소련 영역에서 일어난 정변은 모두 부정선거와 시민의 비폭력 시위라는 수순을 밟았는데, 이것이 철저히 기획된 <포스트모던 쿠데타>라는 음모론이다.

실제로 미 의회의 자금지원을 받는 민주주의재단(NED)은 1997년부터 우크라이나 청년들을 교육시켰으며 그들이 유슈첸코 진영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 유슈첸코도 이 단체의 지원으로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또 거리시위를 주도하는 포라(Pora-시간이 됐다는 뜻)라는 학생조직은 소로스의 열린사회재단의 후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혁명의 상징색이 불길을 뜻하는 오렌지색으로 된 것부터가 자연발생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서방 정치기획자들의 작품이라고 한다. 크렘린 정치고문 파블로프스키는 “서방이 우크라이나에서 혁명을 실험하고 이를 러시아에 확산시키려 한다”라고 비난했다. 유럽연합 주재 러시아 대사는 구소련권 내의 정변에 배후조종하고 자금을 대는 단일한 집단(즉 미국)이 있을 거라고 비난했다.

23일, 푸틴은 “우크라이나 대선을 비판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24일, 파월 미 국무장관은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를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크바스니예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전권 중재자 자격으로 우크라이나를 방문한다. 말이 중재지 사실상 미국-유럽연합의 우크라이나 접수다. 독일이 오데르-나이세선을 돌파한 보람이다. 폴란드가 미국-독일을 대리해 우크라이나에 들어간 것이다.

11월 28일, 우크라이나 의회는 대선 무효를 결의한다. 29일, 친러파인 쿠츠마 대통령은 완전 재선거안을 제시하고 러시아를 긴급 방문한다. 그러나 유슈첸코는 결선투표를 주장한다. 12월 2일, 푸틴은 쿠츠마 대통령의 완전 재선거 제안에 찬성하며 서방의 개입에 경고를 보낸다. 부시는 즉각 미국의 참여는 계속될 것이라고 응수한다.

12월 3일, 우크라이나 대법원은 유슈첸코의 결선투표 주장에 손을 들어준다. 야누코비치 당선자는 “판결이 강력한 정치적 압력 아래 내려진 것”이라고 비난한다. 같은 날 푸틴은 인도에서 “미국이 국제 사회에서 독재자로 행세하고 있다”며 “균형 잡힌 민주적 국제법 체제”를 주장한다. 국제법 체제? 이건 노 대통령의 메뉴이기도 한데?

아무튼, 6일, 푸틴은 “일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민주주의'로 표현할지 몰라도 러시아는 그 같은 사태 진전을 용인할 수 없다”며 미국에 연일 맹공을 가한다. 그러나 10일,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외무장관들과 파월 미 국무장관은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 자유로운 재선거에 합의한다.

이 시점에서 폭탄이 터진다. 11일, 오스트리아 의료진은 유슈첸코가 다이옥신에 중독됐다고 발표한다. 유슈첸코의 얼굴 피부는 그즈음 급격히 망가졌다. 그것이 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중독에 의한 것이라는 발표다. BBC는 유슈첸코 독살기도설을 보도한다. 러시아, 혹은 친러파가 유슈첸코를 암살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미국은 “진단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진상조사를 촉구한다. 독살설은 결선투표를 불과 15일 앞두고 발표돼 선거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나중에 유슈첸코의 주치의로 일했던 로타르 비케 박사가 다이옥신 중독설은 '거짓'이라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그는 다이옥신 중독 진단을 거부해 주치의에서 해고됐고, 미국에서 파견된 의료진이 유슈첸코를 만났다고 한다. 물론 의혹일 뿐이다. 진실은 저 너머에...

이것이 오렌지 혁명의 전말이다. 재선거는 유슈첸코의 승리로 끝났다. 유슈첸코는 2005년 1월 24일, 대통령 취임 바로 다음날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과 기존 종주국 러시아와의 긴밀한 동반자 관계를 확인한다. 취임 직후 미국으로 가 한미동맹을 확인한 노 대통령과 비슷한 행보다.

유슈첸코는 올 4월엔 미국을 방문해 부시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같은 시기 푸틴은 독립국가연합 지도자들을 차례차례 만나며 세력권 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독립국가연합 4개국 경제공동체는 지지부진해진 상황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하고 있고,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시장을 개방해줬다. 푸틴이 분통을 터뜨릴 만도 하다.

문제는 미국이 이런 유럽에서의 경험을 북한에 적용하려는데 있다. 유럽 사정과 한반도가 같은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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