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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진스키 <거대한 체스판>

이 책은 미국이 세계를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 가를 잘 보여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앞에 아른거린 것은 내가 태어난 나라의 지정학적 모습이었다. 극동의 조그만 나라, 그것도 반이 잘려서 지역 강국의 이해득실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는 우리 조국에 대한 안쓰러움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내 자신이 지금까지 배워오면서 세계 경영이라든가 세계를 조망해야 하는 필연적 이유를 깨닫지 못하였다. 이것 역시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인들이 가지는 사유의 스케일의 방대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나는 기껏해야 한국의 국내 문제나 통일 문제에만 관심을 가졌다(물론 이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세계적인 문제를 가지고 고민한다고 생각하니 썩 유쾌하지는 못하다.

브레진스키는 1990년대 소련의 붕괴로 이 지구상에 유일한 제국은 미국뿐이라고 말한다. 그런 미국이 앞으로 이 세계의 여러 잡다한 인종과 민족과 국가의 문제들을 어떻게 하면 미국의 이익에 배치되지 않게 하면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발휘할 것인가에 대해 논한 책이다. 저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 "유라시아"라고 본다. 유라시아는 유럽과 아시아를 통칭하는 것으로 유라시아를 하나의 체스판으로 보고 그것을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보았다. 그는 "미국의 세계 일등적 지위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에서 이러한 위치를 지속하느냐에 달려있다"(p.51)고 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영향력의 기초를 '정치적 지리학'(political geography)이라고 본다. 나폴레옹은 '한 국가의 지리를 안다는 것은 그 국가의 대외정책을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저자는 유라시아를 크게 '유럽', '러시아', '발칸', '극동' 4부분으로 나누어 본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이 주요한 유럽의 지도국으로 보면서도, 프랑스와 독일이 서로 유럽 연합의 지도국이 되려고 하기 때문에 미국이 느슨한 유럽연합을 통해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를 통해 동반관계를 강화함으로서 유럽에 교두보를 공고히 하는 것이 미국의 목표라고 한다.
'러시아'는 지난 10년간 모스크바 중심의 대제국이 해체되었다. 이 대제국의 해체는 지정학적인 혼란을 야기하였다. 즉 연방의 대다수 나라들이 독립함으로서 이 지역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지정학적 변화는 러시아의 국제적 지위를 하락시켰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독립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풍부한 농공업의 기반 상실과 5천200백만의 인구 감소, 그리고 흑해에 대한 러시아의 지배도 끝났다. 미국의 입장에서 러시아는 이제 미국과 동등한 나라가 아니다. 미국의 관점에서 러시아는 '파트너가 되기에는 너무 약하고, 돌봐줄 환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하다'(p.158)고 한다. 러시아는 범유럽과 유기적 관계를 개선하는 일이 중요하다. 미국은 러시아가 유럽회의에 참여하게 하여 스스로 민주화, 유럽화의 길을 걷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발칸'은 지정학적으로 복잡하다. 다양한 민족, 이질적인 문화로하여 세계적 불안정 지대이다. 또한 발칸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요충지이며, 특히 잠재적인 자원의 보고이다. 이 지역은 소련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그루지아와 같은 9나라와 터키와 이란을 포함한다. 터키와 이란은 발칸에서 영향력을 증대시키려고 한다. 러시아 역시 이 지역에 정치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방침은 단일 국가가 발칸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나라들- 터키, 이란, 러시아, 중국-의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여 '교묘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극동'은 중국, 일본, 미국의 삼각관계에 의해 운영될 것이다. 브레진스키는 중국이 세계 일등 국가로 부상하지 못하고 지역적 강국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지금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률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역적 불균형과 함께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이다. 이는 후에 정치의 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 둘째, 지금처럼 닫혀진 정치제도를 가지고는 힘들다. 경제적 역동성은 상대적으로 폐쇄적이고 경직된 공산당 독재와는 어렵다는 점이다. 셋째, 경제가 발전하더라도 여전히 상태적 빈곤상태에 머물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세력은 일본이다. 일본은 모순적이다. 경제적으로는 강국이지만 군사적으로는 미국의 보호아래 있다. 또한 지역에서의 역할을 증대하려고 해도 극동의 여러나라가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서 지역적 강자가 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는 중요하다. 미국은 일본과 한국, 대만을 잇는 삼각관계가 극동의 영향권이다. 이는 극동에서 중국의 영향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중국은 통일 한국이 일본과 중국 사이의 비동맹적 완충 지대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과 일본의 뿌리깊은 적대감이 한국을 중국의 영향권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미국은 통일 후에도 한국에 군사력이 남기를 원하다. 그러나 이것은 중구에 의해서 거부될 것이다. 결국 미국이나 중국, 일본 모두는 한국이 지금 이 상태로 존속하기를 원한다. 또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화해시켜 이 지역의 안정적 구도를 공고히 하려고 한다.

냉전 체제가 끝나자 미국에서는 두 가지 흐름이 대립한다. 하나는 세계의 경찰과 같은 개입주의를 버리고 대내문제에 중점을 두자는 고립주의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지도력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저자는 후자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저자는 세계의 여러나라에 미국의 영향력을 심고 키우려고 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 나라의 조건이나 상황보다는 먼저 미국의 국익이 어떤가가 정책 결정의 중요한 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미국은 이 땅에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주둔하고 있으며, 우리의 통일도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을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국의 세계전략과 중국의 전략 사이에서 그들을 역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계에 유일한 분단을 종시시키기 위해서는 이 민족의 지혜를 모아서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실리 위주의 외교와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남북한의 정상이 서로 만나 한민족임을 확인하고 통일로 가는 초석을 놓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제 시작이지만, 그래도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서로 평화롭게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지혜를 모아서 체제를 넘어 통일의 길로 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re: 미국 국익을 위한 현실주의적 관점
chonge24 (2005-03-25 18:14 작성) 이의제기
질문자 평 
우와 너무 감사드립니다~ 최고에요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ㅎㅎ

한 마디로 미국 국익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정책담당자에게 조언하는 현실주의 학자의 지침서입니다.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현실주의, 하나는 자유주의, 마지막은 구조주의입니다.

 

현실주의는 대개 군사적 측면(안보)을 강조하며, 국제정치상황을 중심적 권위체(권위를 가진 세계정부)가 없어 각 국가가 서로 아귀다툼을 하는 무정부상태라 인식합니다. 따라서 국제평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맞상대 혹은 맞상대하는 동맹들끼리의 세력균형을 만들거나 단일 패권국의 패권에 다른 모든 국가들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유주의는 대개 경제적, 문화적 측면을 강조하며, 국제정치에는 국가 외에도 다국적 기업이라든가 초국적 NGO(예: 그린피스) 등이 있는데, 다국적 기업이나 초국적 NGO는 국가간 상호의존을 강화하고 충돌을 억제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군사충돌의 가능성은 적으며, 이러한 관계가 지속될 경우 국제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세계정부에 준하는 국제기구를 만들 수 있다고까지 생각하기도 합니다.

 

구조주의는 맑시즘의 관점에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는 중심부의 선진국(미국, 유럽, 일본)이 주변부의 후진국들을 착취하는 구조라고 인식합니다. 따라서 개별 국가의 선택 폭은 실제로 현실주의가 말하는 것만큼 크지 않으며, 모든 것은 자본에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세계평화를 위해서라면 이러한 구조를 타파해야 하며, 한 대안은 전세계적 차원의 사회주의 혁명이고, 또 다른 하나의 대안은 초국적인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민주적인 세계정부입니다.

 

이 책은 현실주의 관점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은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브레진스키가 말하는 방법이 '도덕적' 이라거나 '다른 나라를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 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실주의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잔혹하리랄만큼 비정한 수도 서슴없이 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즘) 이 '거대한 체스판' 에서 체스를 두는 자는 오로지 미국입니다. 그리고 체스판은 세계이며, 체스말은 동맹국이나 적대국, 혹은 해외주둔미군이 되겠지요. 여기서 이 논의가 체스말의 권리(개별국의 주권)를 크게 문제시하지는 않으리란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세계는 냉전 종식과 민족주의 분출 등으로 매우 불확실성이 강한 상황이므로 미국이라 해도 자칫 잘못 대응하면 막대한 국익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으로 정치체제나 종교, 정체성 등이 유사한 유럽과는 동맹을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껄끄럽고 적으로 삼기 거북한 러시아를 점진적으로 동맹의 품 안으로 끌어들여 이들 지역 내에서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라고 말합니다.

 

중동에서는 친미적 국가인 터키를 충분히 배려하라고 말합니다. 터키의 이익을 위해서는 인근 코카서스 지방의 국가들(아르메니아, 아베르바이잔, 그루지아 등)의 이익을 덜 고려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까지 말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중동을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부 아시아에서는 인도를 지원할 것을 강조합니다. 인도는 자칭 제 3세계 주도국가였지만, 구 소련에게서 받았던 지원이 끊긴 상태이며 개발을 위해 선진국의 도움이 필요한 국가입니다. 또한 인도는 미국의 잠재적 적국인 중국을 견제하고, 혹시 불안정해지리 수 있는 중앙아시아를 견제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한 패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 미국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상대입니다. 적대시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나 최악의 경우라 하더라도 중국-러시아-이란간의 '반 미국패권 동맹' 이 결성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브레진스키의 생각입니다.

 

일본의 경우, 미국에게 있어서 중국의 패권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미일동맹이라 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일본에 적당히 힘을 실어 줄 것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자칫 그것이 일본의 지역패권 시도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절히 '통제' 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경우, 통일가능성이 높아지는데 현 상태로는 반일감정 때문에(그리고 반미감정때문에) 통일한국은 친중적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게는 한국이 분단된 상태로 남아 있거나 중립국이 되거나 친중국가로 변모하는 것이 최선이나, 미국에게는 한-미-일의 삼각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일본과 한국이 화해하도록 유도해야 하며, 한국에서 반일감정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통일 이후에도 미군을 한반도에 주둔시키는 것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 정치에 영향력이 강한 학자의 견해를 통해 미국의 미래 정책을 어느 정도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대주의적으로 이 책에 나오는 미국중심적 정책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는 아니겠지요. 상대의 전략을 알아야 뭐가 되는 한국의 국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이 책이 한국에 중요한 이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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