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생각하기"에 해당되는 글 149건

  1. 2011/02/07 [강좌] 자유에 대하여
  2. 2011/01/12 자존감
  3. 2010/12/21 [이정우] 탐독-유목적 사유의 탄생
  4. 2010/11/28 [김 훈] 닭하고 해봤어?
  5. 2010/11/28 [김 훈] 풍선 인형
  6. 2010/11/28 [김 훈] 오줌
  7. 2010/06/30 [박노자] 인간이 왜 이 세상을 사는가?
  8. 2010/06/15 [수경스님] 다시 길을 떠나며
  9. 2010/05/27 [레비나스] 레비나스와 고통의 윤리학
  10. 2010/05/07 [만화] 내가 살던 용산
  11. 2010/04/26 악마와 성찰
  12. 2010/04/12 진실은 남이 볼 때 비웃음이다
  13. 2010/03/01 [山色] 바쁜 몸은 죽고 나면 그만이지만 분주한 마음은 끝나지 않으니
  14. 2010/02/25 [금강경]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한결같아 흔들리지 말지어다
  15. 2010/02/17 [금강경] 사람이 깨어 있을 때는 전체로 깨어있고
  16. 2010/02/08 [반야심경] 큰 지혜의 완성에 대한 핵심적인 가르침
  17. 2010/01/25 새 아침의 기원 (1)
  18. 2009/12/14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19. 2009/11/30 [김훈] 공무도하 (1)
  20. 2009/09/24 [서경식] 생명은 선이고 죽음이 악이다?
  21. 2009/07/29 [김현진] 자기 꼬셔줬으면 하는 소리지 (7)
  22. 2009/07/08 [박노자] 자본주의와 인권의 역설적 관계 (2)
  23. 2009/02/04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1)
  24. 2009/01/08 [이정우] 당신에겐 어떤 쾌락이 존재하는가? (4)
  25. 2009/01/05 天命
  26. 2008/12/15 [우석훈] MB 정부 예산에 '배고픈 국민들'은 없다
  27. 2008/12/03 [박노자] 가톨릭 교회와 평화/반전문제 (1)
  28. 2008/11/18 『노자』 제45장 고요함이 조급함을 이긴다 (4)
  29. 2008/11/18 [송상용]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다.
  30. 2008/11/07 [참소리]남원지역 민간인희생 사건 (2)

[강좌] 자유에 대하여

2011/02/07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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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2011/01/12 00:04

자존감


진정으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스스로를 귀히 여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귀하게 여길줄 안다.
나만 귀하다고 여기는 자만심과는 다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자존감이다.


- 고도원의《잠깐멈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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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탐독-유목적 사유의 탄생

2010/12/21 07:13

•  이정우, 2006, [탐독-유목적 사유의 탄생], 도서출판 아고라.  (소제목은 임의 작성임)

 

 

[책]

새 책을 구입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들 중 하나이다. 나는 책장을 넘기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 거기에서 내 영혼과 사유에 영향을 끼칠 글들을 발견한다. 내가 쓰는 글들에는 어느새 그런 글들의 흔적이 묻어 나온다. 책을 통해서 내 영혼은 다른 영혼들을 만나다. 그들과 대화한다. (388쪽)

 

[타인의 고통과 사랑]

추상적인 사랑은 쉽게 말할 수 있다. 고통 받는 타인들을 신문이나 TV에서 보면 누구나 분노와 연민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덕이나 윤리, '인류에 대한 사랑' 같은 고귀한 가치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타인들이 그 가장 적나라한 모습으로, 그 가장 추한 모습으로 자기 앞에 나타났을때, 자기에게 손을 내밀었을때, 그의 손을 덥석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바로 그 타자들이 자신과 떨어져 있기에 마음 놓고 고귀한 가치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이반의 말처럼 "추상적으로라면, 그리고 때때로 멀리 떨어져 있다면 가까이 있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지만, 바로 곁에 두고서는 거의 절대로 사랑할 수 없어."([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V, 4) (29~30쪽)

 

[공간과 시간 그리고 장소]

인간은 시간 앞에서는 무력하지만 공간 앞에서는 무한한 능력을 발휘한다. 시간은 털끝만큼도 건드릴 수 없지만 공간은 오리고 붙이고 변형시키는 등 거의 무한에 가까운 조작을 행할 수 있지 않은가. 공간 앞에는 조작하는 인간이 있지만, 시간 앞에는 명상하는 인간이 있다. 과학이 공간과 더불어 사유해왔다면, 인문학은 시간과 더불어 사유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좁은 의미)과 장소는 다르다. 장소는 사물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공간은 사물들을 담고 있는 무엇이다. 장소에는 인간관계, 의미와 가치, 역사가 묻어 있지만, 공간은 그저 빈 터일 뿐이다. (188쪽)

 

[곡선이란 참 매력적인 존재다]

직선으로 된 도형들은 어떻게든 분할해서 면적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곡선의 경우는 다르다. 곡선이란 참 매력적인 존재다. 얼마나 많은 화가들이 인체 특히 여체女體의 신묘한 곡선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가. 곡선은 '매순간' 계속 구부러진다. (192쪽)

 

[사유한다는 것은 구체와 추상을 끝없이 오르내리는 것이다]

사유한다는 것은 구체와 추상을 끝없이 오르내리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내가 소은 선생에게서 배운 핵심적인 사유 방식인 것 같다. 가장 구체적인 것(개체들, 사건들, 마주침들)에서 추상적인 것(존재, 우주, 생명) 사이를 끝없이 왕복 운동하기. 그 사이에 분포되어 있는 어떤 분야, 전공, 영역, 사조에 정주定住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까지 가로지르면서 사유하기. 이 오르내림, 가로지르기, 유목에의 깨달음으로부터 철학자로서의 내가 탄생했다. (320쪽)

 

[사회과학과 역사]

사회과학은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형식적 틀이고 역사는 현실 자체의 기록이다. 형식적 틀은 어디까지나 틀일 뿐이다. 그것이 현실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복잡하고 우발적이고 생성하는 현실을 이론적 틀이 온전하게 포착하지는 못한다. 반면 역사는 현실을 충실히 기록해주지만 현실을 꿰뚫어보는 이론적 깊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또 사실 '기록' 그 자체가 이미 어떤 이론적 틀을 전제한다). 두 담론의 수준 높은 통합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통합은 또한 치밀한 철학적 사유를 요청한다. (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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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닭하고 해봤어?

2010/11/28 23:29

술에 취하면 오문수는 모든 논리력을 잃었고 환상과 현실을 뒤섞어서 마구 주절거렸는데, 이상하게도 술 취한 그가 헛것을 헛되이 지껄일 때 그의 묘사력은 구체적인 사실성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오문수는 씹던 안주를 침을 뱉듯이 땅바닥에 뱉어내고 말했다.

 

- 이 안주가 닭이잖아! 형, 닭하고 해봤어? 난 얼마 전에 닭하고 했다. 의자에 앉아서 암탉을 뒤로 끌어안고 밀어넣었어. 암탉 밑구멍이 작지 않아. 그러니까 알을 낳지. 처음엔 빡빡했는데, 끄트머리를 밀어넣으니까 쑥 들어갔어.

 

오문수는 식탁에 이마를 대고 땅바닥을 향해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머리통에 대고 소리질렀다.

 

- 야, 알았어. 학교 때려치우고 맘대로 붙어라.

- 쑥 들이미니까, 닭이 홰를 치면서 퍼덕거렸어. 더 들이미니까 닭이 목을 빼고 울더군. 암탉이 꼭 수탉처럼 길게 울었어. 새벽이 오는 것처럼 말야. 새벽이......

- 그래 좋더냐?

- 뜨거웠어. 뜨겁고 오돌도돌했어. 그게 닭인가봐. 형은 닭이 뭔지 알아? 형도 한번 해봐.

- 너나 실컷 해라. 이 쓰발놈아.

 

홀 안은 닭 모래집 굽는 연기로 자욱했다. 그날 나는 술 취한 오문수를 혼자 남겨두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 김 훈, 2006, '뼈', [강산무진], 문학동네, 144~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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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풍선 인형

2010/11/28 13:15

......옥인동 네거리에서 신장개업한 호프집에 네온사인이 켜졌다.

호프집 앞 인도에서 풍선인형이 춤을 추고 있었다. 어른 키 두 배만한 인형이었다. 인형 속에서 전기 모터가 일으키는 바람의 힘으로, 인형은 팔다리가 꺾이고 허리가 뒤틀리면서 춤을 추었다. 땅바닥에까지 닿았던 대가리가 하늘로 치솟았고 팔다리는 앞으로 꺽이고 뒤로 꺾였다. 무릅이 접히는 동시에 두 팔로 만세를 불렀고 가랑이가 비틀렸다.

 

 

- 김 훈, 2006, '배웅', [강산무진], 문학동네,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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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오줌

2010/11/28 13:13

아라는 치마를 올리고 속곳을 내렸다. 엉덩이을 까고 주저앉아 가랑이를 벌렸다. 허벅지 안쪽에 풀잎이 스치자 팔뚝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아라는 배에 힘을 주어 아래를 열었다.

 

쏴 소리를 내면서 오줌줄기가 몸을 떠났다. 떡깔나무 마른 잎에 부딪칠 때 오줌줄기는 물방울로 흩어지면서 탁탁 튀는 소리를 냈다. 침전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땔 때, 마른 삭정이가 타들어가는 소리와도 같았다. 덜 마른 밤나무 잎에 부딪힐 때 오줌소리는 젖어서 낮아졌고 돌멩이 위에 낀 이끼에 부딪힐 때 소리는 돌 속으로 스며서 편안했다. 오줌줄기 부딪히는 소리가 돌 속으로 스미자, 오줌줄기가 몸을 떠나서 쏴-소리가 크게 울렸다. 몸속에서 살이 울리는 소리가 가랑이 사이의 구멍으로 퍼져나오고 있었다. 오줌을 눌 때마다 그 소리는 낯설고 멀게 들렸고, 소리를 내고 있는 살 구멍의 언저리가 떨렸다.

 

아라는 놀라서 오줌줄기의 방향을 바꾸었다.마른 잎이 찢어지고 흙이 튀었다. 아라는 가랑이를 벌려서 오줌줄기를 펼쳤고 가랑이를 오므려서 오줌줄기를 모았다. 땅은 부채 모양으로 젖었다.

 

아라는 대궐 침천 뒷숲에 오줌 누는 자리를 정해두고 있었다. 사슴우리를 지나서 작은 개울을 건너면 오리나무, 떡깔나무, 밤나무가 들어선 숲이 있었다. 바위가 뒤쪽을 막은 그늘 아래, 아라는 판판한 돌멩이 두 개를 주워다놓고 그 위에 쪼그리고 가랑이를 벌렸다. 바위 밑에 물이 고여 있었는데, 겨울에도 차지 않아서 뒷물하기에 좋았다. 늦가을부터 봄까지 오줌줄기는 마른 잎에서 바스락거렸고 겨울에는 오줌줄기가 눈 속으로 파고들면서 더운김이 올랐다. 겨울 눈밭에 쪼그리고 앉았을 때, 벌린 가랑이 밑으로 찬바람이 스쳤고 몸속의 살들이 오줌줄기를 따라서 바람 속으로 비져나올 듯 설레었다.

 

아라는 엉덩이 밑에서 피어오르는 더운 김 속에서 제 몸의 냄새를 맡았다.

 

 

- 김 훈, 2010, [현의 노래], 생각의 나무, 65~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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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왜 이 세상을 사는가?


만감: 일기장 2010/06/26 23:55  

출처 :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27598 (박노자 글방)

 

 

20년 전인가요? 불교에 대한 관심이 날로 싶어졌던 그 때에, 저의 한 대학교 동창생과 함께 불교 수행을 아주 오랫동안 해온 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 적이 있었어요. 그 동창생은 나중에 한국 무속에 대한 박사 학위를 받고 주평양 러시아 총영사까지 역임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때만 해도 불교에 아주 깊이 심취했었어요. 그 정신과 의사를 만났을 때에 불교 이야기부터 꺼냈는데, 우리에게 던진 첫 질문은 다음과 같았어요:

- 이게 (자신의 팔을 가리키면서) 싫은 것이죠? 고깃덩어리 속에서 살다가 지친 것이죠?

 

 

저는 답을 주저했었는데, 제 동창생은 당장에 "그렇다, 나는 왜 고깃덩어리로 태어나 살아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답했어요. 의사는, 그러면 근본적으로 불교적 성향이 맞다고 했었습니다. 불교를 일종의 염세적 성향으로 해석하는 건, 살려는 의욕을 잠재워야 하고 궁극적으로 인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 완전한 "무"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던 쇼펜하우어를 "불자의 모범"으로 보는 서양인의 편견인지 모르지만, 그 의사의 말은 자주 생각이 납니다. 사실, 저로서도 "산다"는 과정이라는 게 "낙"보다 "부담"으로 많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박노자"라는 이름이 붙여진 고깃덩어리는 각종의 요구가 하도 많아서 그런 것이죠. 그 고깃덩어리에 차에 희발유를 붓듯이 식음을 부어야 되고, 그 분비물도 배출시켜주어야 하고, 고깃덩어리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그 휴식 시간, 즉 수면시간도 지켜야 하고, 또 고깃덩어리가 많이 아프지 않게 자꾸 그 덩어리를 움직여야 하고, 또 그래봐야 계속 아프니까 결국 지쳐지는 것입니다. 누가 보면 특히 식음 섭취는 "즐거운" 과정으로 보이는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그것까지도 무거운 업보로 느껴집니다. 물론 여기에서 다소 내향적이고 염세적 성향 이외에 또 한 가지 요인은 있을 것입니다. 고깃덩이리를 먹여주기조차 어려운, 내지 그 무슨 인간 모습을 띤 나찰, 아수라들이 "나의" 고깃덩어리를 어디엔가 가두어놓고 죄를 덮어쒸는 딱한 상황이라면 "생존 투쟁"의 열기 속에서 삶이라는 업보의 괴로움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교적으로 편한 상황에 놓인 고깃덩어리라면 그걸 끌고 산다는 게 그저 괴로울 뿐이죠.

 

 

이걸 뼈저리게 느낀 사르트르와 같은 다소 예민한 서방의 중생들은, 일찌감치 고깃덩어리를 끌고 산다는 걸 "선택",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질 용기"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신도, 인간에게 내재돼 있는 그 어떤 "본성", "본질"도 없는 실존주의적 "자유"의 허공 속에서 인간이 끝없이 선택들을 함으로써 "자신"을 만든다는 논리입니다. 좋은 선택 - 예컨대 파쇼들과 싸우겠다는 선택 -을 했다고 해서 "잘했어"하고 은총을 베풀 신도 없고, 꼭 그 선택을 하게끔 만드는 불변의 도덕률도 없는데, 일단 그러한 선택을 함으로써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드는데에 일조한다는 건 공산당 지지자 ("동반자") 사르트르의 논리이었죠. 글쎄, 사르트르도 끝에 가서 "나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많이 버리신 것 같은데,  사르트르가 죽었을 때에 일곱살이었던, 아주 불행한 반동과 후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저로서는 아예 아무 확신도 가지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 유럽에서 보이는 자본주의의 야만화 정도 - 그 좋은 실례는 영국에서의 복지 국가의 거의 반쪽의 해체입니다 - 로 봐서는 저나 제 아이가 자연사할 수 있다는 데에 대한 확신도 전혀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공황과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 야만화하다가 어떤 일이 일어나게 돼 있는지 하도 책에서 많이 읽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냉정하게 따져볼 때에 인류 전체의 차원에서 사회주의보다 야만이 선택되어질 확률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자본과 국가가 부추기는 반이성, 비이성에 비해 개인의 이성도 아주 약하고 집단, 전체의 이성은 아예 보잘것도없습니다. 지금 4대강으로 생태가 망해가고 젊은 "백수"들이 취직자리가 전혀 안보여 절망에 빠지는 나라에서의 월드컵 열기를 한 번 보시고서, 이게 거짓이라고, 집단 이성이 정말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고 말씀해보시지요.

 

 

그러면, 망해가면서 언젠가 인류를 멸망시킬는지도 모를 정신병적 체제 하에서 이 고깃덩어리를 끌고 살면서 미륵보살의 하생도 야소기독의 재림도 후천개벽도, 심지어 무산계급 혁명의 필수적 성공도 믿지 않는 중생은, 왜 하필이면 진보정당 지지하고 정치색이 있는 글쓰고 난리칩니까? 사르트르는 "선택"을 이야기했지만, 저는 인간을 "선택"쯤이나 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로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존재이었다면 우리가 지금과 같은 더럽고 수치스러운 시대를 살지도 않았을 걸요. 저는 진보정당을 믿고 따르고 사회주의를 외치는 이유는, 아주 쉽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되든 (저는 낙관보다 비관에 더 기울입니다), 무산계급이 어떤 본질적 변혁을 할 수 있든 없든 (지금의 체제 포섭 정도로 봐서는 매우 어려우리라 봅니다) 사회주의적 전망이 인류에 있든 없든 (저는 꼭 있다고 자신과 남을 기만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냥 제 본능에 충실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본능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인터넷에서 (집에 바보상자가 없어서 세상을 접하는 루트가 인터넷뿐에요) 미제 군대가 아프간에서 또 몇 명의 마을 사람을 "테러리스트"라고 하여 무인비행기로 죽였다는 이야기를 볼 때마다 그냥 속이 뒤집어져요. 악마 파순을 제 얼굴 앞에서 보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꼭 불교를 믿어서도 그런 게 아니고 믿지 않았다 해도 똑같았을 거에요. 저는 제국의 폭력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그저 살고 싶지 않은 것이고 그게 제 본능입니다. 이 폭력의 근원이 자본체제의 이윤추구라는 걸 아니까 이 본능상으로 사회주의 할 수밖에 없어요. 고귀한 "선택"도 아니고 그저 본능대로 사는 것뿐이죠. 그래서 고깃덩어리라는 업보를 계속 지고 있는 한, 이 사회주의라는 말을 계속 화두로 삼아 사는 겁니다.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저는 자본주의적 세계라는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환자들이 집단적으로 언젠가 다 완쾌되리라 확신하지도 않아요. 굳이 확률을 따져보면, 환자들끼리 불놀이하다가 대형화재로 이 병원 전체가 전소될 확률은 더 높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고깃덩어리가 여기에서 서식하고 있는 이상, 고깃덩어리에 붓고 있는 식음에 대한 감사의 뜻에서라도 초보적 차원이라 해도 "치료 행위"를 계속 시도하는 게 "교환논리"상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영원불변의 도덕론을 별로 믿지 않아요. "나"의 고깃덩어리로서 필요하고 또 다른 고깃덩어리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복수의 상대자들과 성관계를 맺는 것도, 배고픈 사람으로서 빵을 훔치는 것도, 아프간에서 미군 폭격으로 모든 가족을 잃어 고아가 되는 사람이 무기를 들고 빨치산이 되는 것도, 저는 꼭 "죄악"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상황적, 역사적 도덕논리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영원불변의 원칙이 있다면 그게 "호혜성"의 원칙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받는 만큼 세상에 베풀라는 건 바로 이 원칙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옛날 스님네들이 이야기했던 "재시와 법시의 교환논리"이기도 하죠.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쩌면 법화경을 강독하는 것보다 만델 선생의 <후기 자본주의> 강독은 요익중생의 차원에서 더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불교는 전쟁과 같은 현상들을 개인적 심성의 차원에서 설명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이를 보충하여 집단의 차원에서 현대적 살육의 기원과 살육을 종식시키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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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스님] 다시 길을 떠나며

2010/06/15 16:55

다시 길을 떠나며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납니다. 먼저 화계사 주지 자리부터 내려놓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초심 학인 시절, 어른 스님으로부터 늘 듣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런 중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칠십, 팔십 노인분들로부터 절을 받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 이상은 자신이 없습니다.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원력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제 자신의 생사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납니다. 조계종 승적도 내려놓습니다. 제게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습니다.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2010년 6월 14일 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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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나스와 고통의 윤리학


출처 :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

http://www.artnstudy.com/sub/community/minerva.asp?clip=C&idx=170&page=1&src=email&kw=000045

 

아우슈비츠와 레비나스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는 독일에 유학하여 후설의 현상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하이데거의 존재론 탐구에 열정을 쏟은 철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결코 공부만 열심히 하다가 교수가 된 평범한 철학자가 아니었다.


“나는 아우슈비츠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아우슈비츠에서 나의 가족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렇다. 레비나스는 아우슈비츠에서 가족을 잃었고, 포로수용소에서 2차 대전을 보낸 전쟁 피해자였다. 그에게 있어 죽음과 고통은 관념 따위가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실재였던 것이다. 삶에 대한 그의 철학이 그토록 설득력이 있는 것은 그 자신이 죽음의 복마전을 힘겹게 건너왔기 때문이다.


레비나스는 사역 당시 숱한 구타와 굶주림을 경험해야 했다. 그와 다른 수감자들에게 피로란 한결같이 따라다니는 멍에와도 같았다. 레비나스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피로해지면 삶의 의욕을 잃기 쉽고, 또 다시 피로가 더해지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를 레비나스는 ‘존재가 오그라드는 현상’이라고 했다. 이렇듯 육체의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일을 해야 했던 수감자들은 이미 인간성을 잃고 삶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사람들이었다. 당시의 나치와 히틀러 그리고 전쟁 가해자들은 그렇게 사람들을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경험을 자신만의 고통이 아니라 유대인 전체의 고통, 나아가 인류 보편의 고통으로까지 확장시켜 타인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철학을 전개한다.


고통의 윤리학

그간 서양철학은 인간의 고통에 대해 그리 깊은 성찰을 보여주지 않았다. 성찰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고통이 ‘더 나은 선을 이룩하기 위해 유용한 가치가 있다’고 설파하는 것에 그쳤다. 칸트는 고통이 전제된 이후라야 진정한 쾌락이 올 것이라 하였고, 니체는 성장을 위한 발판인 고통에 동정을 보태지 말라고 하였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다르게 말한다. 고통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 없고 쓸모없는 경험이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이성으로 고통을 파헤치려는 행위는 보여주기 토목공사만큼이나 무의미한 삽질로 보일 뿐이다. 단지 고통은 우리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며, 감당하지 못할 질료이고 고통을 종합하는 우리 감성은 그것을 수용해 낼 능력이 없을 뿐이다.


고통을 받은 인간은 그 자신의 주도권을 상실하기 쉽다. 이는 주체적으로 미래를 건설하려는 의지 자체를 상실해버리는 것을 말한다. 미래를 건설하려는 의지 혹은 그에 관한 계획은 자신의 미래를 긍정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이러한 능동적 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그저 ‘당하는 것’이고, ‘수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고통을 ‘수용성보다 더 수동적인 수동성’이라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고통 없이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타인에게 고통 받고, 사회구조에 고통을 받으며,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기도 한다. 레비나스의 말대로라면 우린 그저 고통의 순환에 몸을 맡기고 존재의 오그라듦 속에서 한없는 쭈구리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 아니다. 레비나스는 되려 고통 없이는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해괴한 소리를 하는 레비나스의 저의는 무엇인가. 앞에서 말한 고통의 무의미성은 현상으로서의 고통 그 자체였을 뿐이다. 윤리가 존재론적인 것보다 선행하며 더 나아가서는 그것의 근거가 된다고 믿는 레비나스는 고통을 윤리와 직결시키고 나서야 의미가 생성된다고 말한다. 레비나스의 철학적 작업은 고통을 단순히 정당화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것을 현상적으로 바라봄으로써 고통의 윤리학을 생성시키는 것이었다.


고통의 쓸모있음

옆에 있던 누가 나를 때렸다고 치자. 무방비로 가격당한 나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아!’하고 신음소리를 낼 것이다. 이것은 고통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렇듯 고통과 대면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표현을 하고 더 나아가 타인에게 호소의 메시지를 보낸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고통과 동시에 타자와의 관계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이런 관계의 열림은 실행에의 직결이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기에 레비나스는 이 열림을 ‘절반의 열림’이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는 도리어 그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이 고통과 열림의 순차적인 고리에서 윤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일 때, 또 그의 찡그린 얼굴에서 고통을 발견하고 난 후라야 비로소 연민, 존경, 행복이란 감정이 발생할 수 있다. 고통은 철저히 무의미한 현상이고, 극도의 고독이지만 그것을 통해 관계성이 열린다는 데에서 다른 역설적 의미가 발생시킨다.


물론 우리는 타인 정확히 말하면 소외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들의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인생은 살아진다. 하지만 그것은 레비나스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주체’가 아니다. 그에 따르면 주체의 주체됨은 타인을 대리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구성된다. 우리의 존재가 고통의 심연에 내던져져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고통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타인의 고통에 속죄하고 그것을 대신 짊어질 수 있는 진정한 주체성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21세기 창조의 시대에 쓸모없는 것을 쓸모 있는 것으로 바꾸는 능력이 우리 인간에게 필요하다면 말이다.  

[작성자 : NILNILIST (nilnilist@artnstud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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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내가 살던 용산

2010/05/07 17:52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신성식, 앙꼬, 유승하 만화, 2010, [내가 살던 용산] , 보리.

 

- 만화를 읽고 사건을 파악한 결과, 이 사건의 진실규명 결정은 아래와 같다.

 

2009. 1. 20.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발생한 사건은,

사건이 발생 했던 때가 공권력의 사용을 피할 수 없고 상황이 다급했다 하더라도

국가기관에 소속된 경찰이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고

민간인이 시위현장에서 자위적인 위력행사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살해하거나 사망하는 것을 방기하는 것은 인도주의에 반한 야만적 행위로서,

임의 박탈이 금지된 헌법상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하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빼앗거나 인신을 구속하는 처벌을 할 경우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 하나,

이 사건의 가해 경찰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사건의 책임은 당시 경찰을 관리 감독할 책임이 있었던 국가에까지 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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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성찰

2010/04/26 11:15

- 김용철, 2010, [삼성을 생각한다], 사회평론. ; (  )는 쪽수.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악도에 살고 있음을 깨달고 성찰하지 않으면

나도 이 악마와 한편이 되거나 작은 악마가 될 것이다. 

 

회사가 붙잡고 싶어 하는 우수한 인재일수록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다. 반면 다른 일자리를 얻기 힘든 사람일수록 회사에서 윗사람에게 아부하며 자리를 지키려 든다. 회사가 임직원을 일회용 소모품처럼 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때, 우수한 인재들이 먼저 회사를 떠나게 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188)

 

이건희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게다. 그들만의 폐쇄적인 공동체를 묶어주는 끈은 혈육간의 정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것을.(235)

 

정치적 영향력은 탐나지만, 정치인 개인의 권력은 십 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한 게 언론재벌이다. 영속적인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242)

 

현실이 절망적이라는 게 희망을 포기할 이유는 될 수 없다. 체념과 냉소를 전염시키는 일 역시 부패의 공범이다. "다 그런거지"라는 체념과 냉소 속에서 부패는 관행이 되고, 결국 거스를 수 없는 구조가 된다. 지금이 그런 상태다.(386)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영철 대법관을 늪에서 빼내는 대신 사법부 전체를 사지(死地)로 내몰았다"는 이야기가 법조계 주변에서 나왔던 것도 그래서다.(387)

 

대법원당의 반성은 그저 과거사에만 한정된 것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살아 꿈틀대는 권력 앞에서는 옛날 버릇 그대로였다. 대법원장은 촛불집회 재판에 개입한 법관을 비호했고, 삼성사건 심리에서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대법관을 배제하려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사과문을 발표한 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아서 이루어졌다.(388)

 

삼성에 대한 입장은 재벌 친화적인 우리 사회 주류의 가치관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통한다. 삼성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는 "나는 반(反)기업적인 법조인이요"라고 선언한 것과 같다. 그런데 대형 로펌에서 천문학적 연봉을 받는 변호사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재벌 계열 대기업들이다.(389)

 

군사정권 시절에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했다면, 이제는 '반(反)기업적'이라는 낙인을 모두들 겁낸다.(389~390) 현직 판,검사들 역시 변호사 개업 이후를 대비해서 재벌에게 '반기업적'이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몸을 사린다. 언론 역시 재벌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분주하다.(390)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들이 보이지 않는 그물망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그물을 쥐고 있는 것은 재벌이다. 이게 현실이다.(391)

 

아무리 흔들어도 꿈쩍하지 않는 견고한 주류 질서. 그것을 지탱하는 힘은 끈적끈적하고 촘촘하게 엉켜 있는 인맥이다. 검사시절, 법조 비리를 수사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연루된 자들이 모두 특정 학교 동문이었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복잡하게 얽힌 인맥은 불법도 합법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391)

 

친분 있는 선후배를 돕기 위해 법과 원칙을 무시하는 경우에 대해 죄의식을 갖기는 커녕 '남자다운 일', '의리있는 행동', '통 큰 배짱' 등으로 여기는 일도 흔하다. 공식적인 법질서보다 사적인 관계가 우선하는 사회인 셈이다.(392)

 

검사 후배를 두지 않는 사람, 검사 친척이 없는 사람들만 억울해진다. 물론, 많은 이들이 검찰에 '끈'이 있으면 죄를 지어도 벌을 받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은 꽤나 견고한 것이어서, 너도나도 검찰에 '끈'을 만들려고 한다.(392)

 

부패한 재벌 총수들에게 관대한 법은 대체로 서민에게는 가혹한 법이다. 단 한 명도 구속되지 않았던 삼성 비리 사건과 당사자 전원이 구속됐던 용산 참사 사건을 비교해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393)

 

미네르바, YTN 노조 위원장, [PD수첩]제작진을 체포한 검찰의 행태는, 과거 군사정부 시절 공안검사들이 한 짓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396)

 

[PD수첩] 수사는 미국산 쇠고기 관련 정책을 다뤘던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의 소송으로 시작됐다. 이 수사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보복"일 뿐, 그 외에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제정신을 가진 검사라면, 정 전 장관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하는 게 당연하다.(397)

 

검찰은 다시 과거 공안검찰 수준으로 돌아갔다. '죽은 권력'을 물어뜯기에 급급했지,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는 몸을 사렸다. 그리고 영속 불변하는 권력, '죽지 않을 권력'인 재벌에 대해서는 한없이 비굴해졌다.(402)

 

검사를 사직하였다 하여 이미 벌을 받은 양 더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이는 정말 말이 안 된다. 사직함으로써 중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고 경력 변호사로서 돈을 벌며 종신토록 차관급에 해당하는 연금을 받으니 축복받은 일일 뿐이다. 부패한 자의 안락한 삶을 평생 보장한다면 범죄자에 대하여 사회보장이 잘되어 있는 비정상적인 나라가 아닌가.(406)

 

(용산 참사 사건) 당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 중에는 2009년 1월 참사 현장에서 아버지가 사망한 경우가 있다.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 거꾸로 아버지를 죽였다고 기소된 셈이다. 통상적인 재판에서라면, 이런 경우 설령 혐의가 인정된다고 해도 실형이 선고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을 감경 사유로 보는 것이다. 법원은 이런 상식을 무시했다. 그뿐 아니다. 재벌 비리 사건 재판에서는 온갖 명목으로 이루어졌던 작량감경이, 용산 참사 재판에선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408)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 있는 자들에 대한 재판에서는 한없이 관대했던 법원이, 가장 힘없고 연줄도 없는 이들에 대한 재판에서는 끝없이 가혹했다.(408)

 

법원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돈 많은 자들의 편을 들었던 역사가 워낙 오래됐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사법부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410)

 

무턱대고 권력자들에게 끈을 대고 억지 친분을 쌓으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데 억지로 친한 척하는 것은 영혼을 녹슬게 할 뿐이다.(412) 평범한 이들까지 '마당발'을 동경하게 된 한 원인은 허술한 사회안전망이다. 개인의 삶이 위기에 닥쳤을 때,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412)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는 편인 이건희, 김인주 등이 광범위한 로비를 통해 한국 사회를 제멋대로 흔들었던 것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보통 사람이 아무리 친화력이 좋다한들, 돈으로 인맥을 산 자들을 당해낼 수는 없는 일이다.(413)

 

자신이 속한 집단 구성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게 꼭 옳은 일은 아니다. 조직의 이익과 사회 정의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414) 우리 사회에서는 소속 집단에서 인정받는 것만을 중시하는 분위기 탓에 옳지 않은 일을 하더라도 동료 및 선후배들에게 좋은 평가만 받으면 된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인맥을 통해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은 까닭에, 자신이 속한 인맥 그물에서 떨어져나갈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414)

 

조세 투명성이 낮으니, 지하경제만 번창한다. 대표적인 게 룸살롱이다. 그리고 공권력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으니, 다들 권력층에 줄을 대려고만 한다. 이들이 끈끈하게 어울리는 곳은, 역시 룸살롱 같은 유흥업소다. 마음에서 우러난 교제가 아닌, 억지 친분을 쌓으려면 술과 접대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끼리 폭탄주를 주고받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법과 질서는 기득권층에게만 유리해진다.(420)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병역을 회피하고, 세금을 탈루하는 나라가 튼튼한 안보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인류역사를 아무리 샅샅이 훑어도 이런 사례는 없을 게다. 이건희 집안 사람들에게 병역 등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고 세금 제대로 내고,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래서 국가의 안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424)

 

부패와 비리는 곰팡이와 같아서 햇볕 아래 드러나는 순간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설령 권력이 양심고백한 내용을 덮어버린다고 해도,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일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늘어나면, 권력이 비리를 덮어버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444)

 

권력층이 부패한 사회는 힘센 자가 아무런 견제 없이 횡포를 부리는 무법천지일 뿐, 우파의 이상도 좌파의 이상도 될 수 없다. 부패를 막는 문제는 좌-우 이념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그것은 동시에 좌파도, 우파도 끊임없는 감시와 성찰이 없다면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시민이 부패에 맞서는 장면을 꿈꾼다. 반(反)부패시민혁명에 관한 염원이다.(446)

 

삼성 비리 관련 재판 결과가 나오자, 이런 목소리에 "역시나"하고 힘이 실렸다. 이들은 말한다.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고. "질 게 뻔한 싸움에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내 생각은 다르다.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448)

 

 

- 김예슬, 2010,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느린걸음. ; (  )는 쪽수.

 

내가 학생운동을 하고, 그 시간 동안에 어울렸던 모임에서

단 한명의 대학거부자 또는 그런 선언을 하지 못한 것을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단 한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도 없었던 것을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내가 학교를 싫어했지만 대학을 거부하지 않았고,

내가 군대를 꺼려했지만 병역을 거부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의 사상과 가치관은 내 삶과 내면에 깊숙히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가 너무 부족했음을 고백한다.

참으로 부끄럽다.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국가야말로 일정한 봉급을 보장 받는 영원히 망하지 않는 기업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 맞지 않은가?(47)

 

그리하여 내 몸으로 하지 않는 것조차 내가 안다고 믿게 하며, 그런 자신을 지식 엘리트라고 착각하게 한다.(58)

 

아이는 유아방과 유치원과 학교에 맡기고, 아이들의 대화상대는 TV와 컴퓨터에 맡기고, 가사는 도우미에게 맡기고, 옷과 생활도구는 마트와 백화점에 맡기고, 영혼은 제도 종교에 맡기고, 건강은 병원에 맡긴다. 이 체제는 온전한 것을 갖고 태어난 인간을 매일 매일 불구자로 망가뜨리며 앞으로 나아간다.(59)

 

'탐욕의 포퓰리즘'(60)

 

시인과 작가가 되려고 해도 문예창작과를 나와야 한다. 사진을 찍고 싶어도 사진학과를 나오고 유학을 가야 한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삶을 바치고 싶어도 사회복지학과를 나오고 자격증 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요리를 하고 싶어도 비싼 돈을 들여 무작정 대학가서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알바해서 이탈리아, 프랑스 유학부터 가야 한다.

(중략)

시에 대한 순수한 정신도, 다규멘터리 사진에 대한 사명감도, 가난한 이를 섬기는 자발적 친절도, 아픈 사람에 대한 치유와 정성도, 법에 대한 정의감도 생기기 이전에 들인 돈부터 뽑아내야 한다는 계산이 먼저 작동하지 않겠는가?(64)

 

알기는 하는데 느끼지는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85)  불안과 실존의 문제를 키에르케고르 책에서 발견하게 하면서, 정작 살아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안한 가슴과 포개지는 실천과 경험은 지나쳐 버린다.(85)

 

지식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삶과 실천의 흡수능력을 넘어서는 인문학은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가난한 마음이 없다면, 그런 자기 내어줌의 실천이 없다면, 그 많은 지식과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87)

 

지금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없는데 모르는 건 없는 역설의 시대이다. 네비게이션으로 찾을 수 없는 길은 없으나 나의 기억력과 야생의 본능은 사라진 것처럼. 가난한 이들 속에서 세끼 동냥으로 밥을 얻어 먹고 지붕 있는 집이 아닌 나무 밑에서 수행하고 잠자던 혁명가 붓다를, 이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불교 대학을 나와 성직자 옷을 입거나 대학 교양과정의 인문학을 공부하면 다 아는 듯 말할 수 있게 되었다.(87)

 

머리는 계산이지만, 가슴은 직관이기에,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머리를 잠시 멈추고 진정으로 내 가슴이 부르짖고 있는 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여 보자.(95)

 

제발 자녀를 자유롭게 놓아 주십시오. 당신의 몸을 빌어 왔지만 그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신성하고 고유한 존재이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아이를 위해 '좋은 부모'가 되려 하지 말고 당신의 '좋은 삶'을 사십시오.(100)

 

우리 젊은이들은 눈물을 머금고 부모산성을 뛰어 넘어야 한다. 부모의 사슬도 사슬은 사슬이다. 자신의 눋 날개를 얽어 맨다면 사랑의 사슬도 사슬이다.(101)

 

거짓고 더불어 제 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친 듯이 사는 쪽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115)

 

나는 먼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볼 것이다. 주관적 바람이나 희망를 섞지 않고 사실을 사실대로 바라볼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직시할 것이다. 거짓 희망의 말들에 속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희망을 잃어 버린 것은 헛된 희망에 사로잡혀서 이기에. "억압 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 상처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117)

 

자기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 스스로 치유할 줄 아는 건강법을 익힌다.

지감각을 되살리고 민감한 감성으로 / 절정체험의 순간을 느낀다.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사는 법을 익힌다.

우정과 사랑의 기쁨을 누리고 / 슬픔과 고통을 다루는 삶의 기술을 배운다.(119)

 

억지로 하지 말고 자유롭게 하되 / 서로의 약속을 지키고 사람으로서 '안 되는 건 안된다.'(120)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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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남이 볼 때 비웃음이다

2010/04/12 12:51

바로 이것이다 이게 옳다 확신할 때

과감히 버리고 한발짝 더 나아갈 때

그때가 수행이다

진짜 진보이다

진실은 남이 볼 때 비웃음이다

비웃음 받을 때 잘하고 있다는 댓가이다

그 이상은 없다

언제든 연락해라

 

[ 4. 9. 밤 11시에 받은 문자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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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길에, 지리산 피아산방에서 돌배주 한잔 마시고 떠나는 길에 김병관님에게 책을 받았다

짙은 밤, 구례로 나서는 나에게 그는 '지리산처럼, 꿋꿋하고 의연하게 --~~'라고 책에 써주었다.

일독하고 삼배를 올렸다.

 

바쁜 몸은 죽고 나면 그만이지만 분주한 마음은 끝나지 않으니, 그 마음을 그대로 지니고 가서 다시 태어나며, 다시 바쁘다가 다시 죽으니, 죽고 태어나고 또 다시 태어나고 죽도록 정신이 아득하고 혼미한 것이 마치 술에 취한 듯 꿈을 꾸는 듯 하명 백겁百劫 천생千生을 지낼지라도 벗어날 기약이 없다. (39)

 

날쌘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내달린다. 송곳이 살갗에 꽂혀서야 알아채는 것은 둔한 말이다. (90)

 

부처님께서는 "사람의 목숨은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 하셨다. (92)

 

고인의 명훈明訓에 "오늘도 이미 다 지나갔으니 목숨도 따라서 그만큼 줄어들었다.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하라" 하신 말씀이 있다. (99)

 

인간 세상의 즐거움을 버리고 열반의 즐거움을 누림이여! (101)

 

마음의 변덕이 죽 끓듯하여 (150)

 

뜻이 지극하고 공력이 깊어지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문득 삼매에 들게 되니, 이는 마치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키는 사람이 비비는 작업을 멈추지 않아야만 불꽃이 일어나며, 쇠를 단련하는 사람이 담금질을 쉬지 안아야만 강철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다. (153)

 

결정심(처음에는 의심하지 않는 '결정된 마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용맹스러운 정진 - 한결같은 서원과 불러서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 (156)

 

그래서 옛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은 경계를 없애고 마음은 없애지 않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없애고 경계는 없애지 않는다" 하신 것이다. (162)

 

옛말에 "예는 의義로써 행하는 것이 옳다"하였으니 (205)

 

 

- 운서 주굉 지음, 연관 옮김, 2005, [산색山色  - 죽창수필 선역], 도서출판 호미. ; (  )는 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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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즉비를 통해서 삶을 보라고 합니다.

즉비卽非란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곧바로 공空으로 환幻으로 보는 것'입니다. '나'를 동반한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실체가 없는 것을 확실히 알아차리면 마음이 열립니다. 우리가 매순간 삶의 모습을 즉비로써 지켜보면, '집착할 만한 자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16)

 

[금강경 풀이]

 

1. 법회가 열리고

2. 수보리장로께서 묻고

3. 대승의 바른 가르침은

4. 미묘한 활동은 얽매임이 없고

5. 이치에 맞게 참되게 보나니

6. 바른 믿음은 드물고

7. 얻을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고

8. 법에서 의지해서 나오니

9. 하나 된 모습에는 모습조차 없고

10. 정토를 장엄함은

11. 조작 없는 복의 뛰어남은

12. 바른 가르침을 존중하기를

13. 법답게 받아 지니니

14. 상을 떠난 고요함은

15. 경을 지니는 공덕은

16. 끝내 자아는 없고

17. 한 몸으로 함께 관하니

19. 법계가 전체적으로 변함은

20. 몸과 상호를 떠나서

21. 말도 말의 대상도 아니나니

22. 법에는 얻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23. 마음을 밝히고 착한 일을 함은

24. 복과 지혜를 비유할 수 없으니

25. 교화하나 교화의 대상은 없고

26. 법신은 모습이 아니니

27. 소멸해 없어진 것도 없으니

28. 받지도 않고 욕심내지도 않고

29. 품위와 거동이 고요하고 고요함은

30. 하나로 합쳐진 이치의 세계는

31. 생각으로 헤아림은 일어나지 않고

32. 응신, 화신은 참되지 않고

 

'모양에 집착하지 말고 한결같아 흔들리지 말지니라.' 왜냐하면 모든 조작된 법은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와 같기 때문이다. 반드시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42~43)

 

- 정화스님 풀어씀, 2005, [금강경], 도서출판 법공양. 에서 발췌. ;  (  )는 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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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스님은 이 책의 서문에서 '생각을 쉰다' 라는 말을 합니다. 아무런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생각이 '그냥 흘러가도록 놓아두는 것' 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옳다거나 그르다고 판단했던 생각을 쉬고 '생각의 흐름을 그냥 지켜보는 것', 그리고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 생각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다' 고 알아차려야 한다고 합니다.

 

어제는 잠이 오질 않아 뒤척이다가 밤 2시쯤 정화스님이 풀어쓴 금강경을 계속 읽었습니다.

 

'사람이 깨어 있을 때는 전체로 깨어있고' 미혹되어 있을 때는 전체로 미혹되어 있습니다. (93)

 

- 정화스님 풀어씀, 2005, [금강경], 도서출판 법공양.; (  )는 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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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혜의 완성에 대한 핵심적인 가르침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관자재 보살께서

깊이 지혜의 완성을 닦아 나갈 때

오온이 다 빔을 비춰 보고

모든 괴로움을 건넜습니다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 그대로 공이요 공 그대로 색입니다

수와 상과 행과 식도 또한 그렇습니다

 

사리자여,

모든 법의 빈 모습은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고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고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까닭에 공 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상행식도 없고

안의비설신의도 없고

색성향미촉법도 없고

 

안계도 없고 나아가 의식계도 없고

무명도 없고 무명이 다함도 없고

나아가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고

고집멸도도 없고

지혜도 없고 또한 얻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얻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리살타께서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까닭에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에 걸림이 없는 까닭에

두려움이 없고

잘못된 생각을 멀리 떠나

마침내 열반이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한 까닭에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합니다

반야바라밀다는

크게 신통한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견줄 데 없는 뛰어난 주문으로

모든 괴로움을 다 없앨 수 있으며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주를 말했습니다

 

바로 주문을 말하겠습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깨달음으로,

함께 사는 아름다움으로

아! 찬연한 빈 삶이여!

 

 

- 정화스님 풀어씀, 2005, [반야심경], 도서출판 법공양, p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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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침의 기원

2010/01/25 19:34

새 아침의 기원

새해에는
남 부럽지 않게 살겠다고
홀로 다짐하지 않게 하소서
좀 부러워도 하고 질투도 하면서
모자란 만큼 착실하게 살게 하소서

새해에는
신세지지 않고 살겠다고
홀로 다짐하지 않게 하소서
허점도 있고 좀 기대기도 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갚아가며 살게 하소서

새해에는
한 점 허물없이 살겠다고
홀로 다짐하지 않게 하소서
실수도 하고 때로 오점도 남기면서
늘 돌아보고 맑아지며 살게 하소서

 

* 출처 : 나눔문화 숨고르기http://www.nanum.com/nanum/soom/meditation.php?no=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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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2009/12/14 14:12

 Primo Michele Levi, 이현경 옮김, 2007, 『이것이 인간인가』, 돌베개.

※ ( )는 인용된 책의 쪽수


‘Arbeit Macht Frei(노동이 자유케 하리라)’ : 아우슈비츠 강제노역수용소Arbeitslager에 붙여진 문구


서경식(이 책의 작품해설)에 의하면,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자신을 제외한 만인에 대한 소모전’을 강요하는 전장이며, ‘노동을 통한 절멸’이라는 정책이 실행되는 곳이다. 수인들의 평균수명은 고작 3개월이다. 아우슈비츠 희생자 110만~150만명, 아우슈비츠 이외의 수용소 등에서 희생된 자를 합친 총수는 600만명이 넘는다. 이들은 다양한 국적의 정치범과 전쟁포로, 집시, 동성애자, 그 외 나치가 ‘반사회적 인물’이라고 낙인을 찍은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구제된 수인은 약 7,000명뿐이라고 한다.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작가이면서 증언자로서 ‘거의 법적인 차원의 증언을 펼친다. 스스로 ‘심판관 보다는 증언자 역할이 좋다’(285)고 고백한다. 이 책은 과거의 잔혹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증언이 전달되지 않을지 모른다는 섬뜩한 위기에 대해서도 증언하고 있다. ‘증언 문학의 고전’(331)이다.


그대들이 타고난 본성을 가늠하시오

짐승으로 살고자 태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덕과 지를 따르기 위함이라오

단테 『신곡(174)


레비는 1987년 4월 11일 자택에서 자살했다.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많은 사람들이 다소 의식적으로 ‘이방인은 모두 적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확신은 대개 잠복성 전염병처럼 영혼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6)


수용소는 엄밀한 사유를 거쳐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 이 세상에 대한 인식의 산물이다. 이 인식이 존재하는 한 그 결과들은 우리를 위협한다. 죽음의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는 모든 이들에게 불길한 경종으로 이해되어야만 할 것이다.(6~7)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에 대해 전통은 엄격한 의식을 규정해놓기 마련이다. 그것은 모든 정념과 분노가 이제는 사그라졌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고, 정의로운 행위가 사회에 대한 슬픈 의무의 표현인 까닭에 사형집행인도 사형수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형수는 모든 외적 근심을 피할 수 있고 고독을, 또 원한다면 모든 정신적 위안까지도 보장받는다. 간단히 말해 자신의 주변에서 증오나 부조한 독단이 아닌 필연성과 정의를 느끼고, 형벌과 함께 용서받음을 느끼도록 세심하게 배려된다.(14~15)


새벽이 배신자처럼 우리를 덮쳤다. 새로운 태양은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적들과 결탁이라도 한 것 같았다.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난 뒤, 우리의 내부에서 요동치던 갖가지 감정들, 자포자기, 쓸모없는 반항심, 종교적 체념, 두려움, 절망감이 이제 한 덩어리가 되어 제어할 수 없는 집단적 광기 속으로 흘러들었다. 명상의 시간, 결정의 시간은 끝났다. 이성적은 활동은 모두 격정적인 혼란 속에서 흩어져버렸고, 그 순간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집들에 대한 따뜻한 기억들이 섬광처럼 번득이며 칼에 베인 것 같은 날카로운 아픔을 안겨주었다.(16~17)


누구나 인생을 얼마쯤 살다 보면 완변한 행복이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것과 정반대되는 측면을 깊이 생각해보는 사람은 드물다. 즉 완벽한 불행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말이다. 이 양 극단의 실현에 걸림돌이 되는 인생의 순간들은 서로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모든 영원불멸의 것들과 대립하는 우리의 인간적 조건에 기인한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늘 모자란 인식도 그 중 하나다. 그것은 어떤 때에는 희망이라고 불리고 어떤 때에는 불확실한 내일이라 불린다. 모든 기쁨과 고통에 한계를 지우는 죽음의 필연성도 그 중 하나다. 어쩔 수 없는 물질적 근심들도. 이것들이 지속적인 모든 행복을 오염시키듯, 이것들은 또 우리를 압도하는 불행으로부터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돌려놓음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파편화하고, 그 만큼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여행 중에 그리고 그 후에도, 끝도 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우리를 건져낸 것은 바로 이런 불편함, 구타, 추위, 갈증이었다. 살려는 의지나 의식적인 체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고, 우리는 평범한 인류의 표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18~19)


수용소의 은어들 중 결코 사용하지 않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Morgen früh', 내일 아침이다. (204)


폭탄이 시작한 작업을 인간의 작업이 완성한 꼴이었다. 해골같이 마르고 쇠약한 환자들이 누더기를 걸친 채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꽁꽁 언 땅 위로 벌레들이 습격을 한 것 같았다. 그들은 먹을 것과 불 땔 것을 찾아 막사들을 모두 뒤졌다. [……] 자신들의 내장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된 그들은 사방을 더럽혀 놓았고 전 수용소를 통틀어 물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인 눈을 오염시켰다.(242)


수용소에는 이런 불문율이 있었다. “네 빵을 먹어라.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네 옆 사람의 빵도 먹어라.”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갖지 마라.(244)


움직이는 거라면 뭐든 좋으니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심지어 바람마저도 정지한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불 속에 누워 근육과 신경과 의지가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로 나를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처럼 무심하게 모든 것이 끝나기를 혹은 끝나지 않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249)


1945년 1월 26일, 우리는 죽음과 유령들의 세계에 누워 있었다. 문명의 마지막 흔적은 우리 주위에서, 우리 내부에서 사라져 버렸다. 승승장구하던 독일인들이 시작했던, 인간을 동물로 만들려는 작업은 패배한 독일인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인간을 죽이는 건 바로 인간이다.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것도, 부당함을 당하는 것도 인간이다. 거리낌 없이 시체와 한 침대를 쓰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옆 사람이 가진 배급 빵 4분의 1쪽을 뺏기 위해 그 사람이 죽기를 기다렸던 사람은, 물론 그의 잘못은 아닐지라도, 미개한 피그미, 가장 잔인한 사디스트보다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전형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다.(263)


우리 머리 위 수천 미터 상공의 회색 그름들 사이에서 비행기들이 공중전으로 복잡한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무기력하고 힘없고 헐벗은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우리 시대의 인간들이 가장 정밀한 도구를 이용해 서로의 죽음을 구하고 있었다. 그들이 손가락만 한번 움직이면 수용소 전체가 파괴되고 수천 명의 사람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반면에 우리의 힘과 의지를 모두 합쳐도 우리들 중 한 사람의 생명을 단 1분도 연장할 수 없었다.(263~264)


나는 증오란 동물적이고 거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가능한 한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 내가 보기에 증오는 개인적인 것이고 한 사람에게, 어떤 이름에게, 어떤 얼굴에게 향해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당시 우리를 박해했던 사람들은 이름도 얼굴도 갖고 있지 않았다. [……]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만일 내가 실제로 우리의 박해자들 중 한 명을, 아는 얼굴을, 그 오래전 거짓말을 다시 마주쳤다면 아마도 증오와 폭력의 유혹에 굴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파시스트가 아니다. 나는 이성과 토론이 진보를 위한 최선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를 증오 앞에 놓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쓸 때 의도적으로 희생자의 한탄 섞인 어조나 복수심을 품은 사람의 날선 언어가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들을 사용하고자 했다. [……] 나는 범죄자들을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았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 누구도 용서할 생각이 없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이탈리아와 외국의 파시즘이 범죄였고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진심으로 비판하고, 그들과 다른 사람들의 의식으로부터 그것들을 뿌리째 뽑아내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만 나는 용서할 수 있다. 그럴 때만 (나는 기독교도가 아니지만) 적을 용서하라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르침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치려는 적은 더 이상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268~270)


독재국가에서는 [……] 진실은 위에서 명령한 한 가지 밖에 없다. 신무의 내용이 모두 똑같다. 모두 똑같은 진실만 되풀이해서 말할 뿐이다. [……] 독재국가에서는 진실을 마음대로 바꾸고, 과거를 되돌려 역사를 다시 쓰고, 사실을 왜곡하고 삭제하고 거짓을 첨가하는 게 합법적이다. 프로파간다가 정보를 대체한다. 그런 국가에서 당신은 권리를 지닌 시민이라기 보다는 신민이다, 또한 당신은 광적인 충성과 맹종을 강요하는 국가(그리고 국가를 대표하는 독재자)에 복종해야 한다.(271~272)


확실히 공포체제의 세부 사항들을 엄격하게 비밀에 부치는 방법은, 그 고통이 미지의 것이었기에 더욱 효과를 발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곳에서 이미 밝힌 대로, 자기 손으로 직접 포로들을 수용소로 보냈던 대다수의 게슈타포들도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몰랐다.(274)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양하게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물론 공포정치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거기에 저항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지만 독일 국민은 전체적으로 저항하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 역시 사실이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는 특별한 불문율이 널리 퍼져 있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으며, 질문한 사람에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독일인들은 자신의 무지를 획득하고 방어했다. 그런 무지가 나치즘에 동조하는 자신에 대한 충분한 변명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입과 눈과 귀를 다문 채 자신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환상을 만들어갔고, 그렇게 해서 자신은 자시 집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공범자가 아리라고 생각했다.

아는 것, 그리고 알리는 것은 나치즘에서 떨어져 나오는 방법(결국 그리 오래지 않아 위험에 처할 수 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나는 독일 국민이 전체적으로 이런 방법에 의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런 고의적인 태만함 때문에 그들이 유죄하고 생각한다.(276)


고통을 덜 받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건 처음에는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다. 수용소 밖에서도 룸펜프롤레타리아가 투쟁을 선도하는 일은 드물다. ‘거지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279)


우리는 수용소 없는 사회주의를 그려볼 수 있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전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실현된 일이었다. 하지만 수용소 없는 나치즘은 상상도 할 수 없다.(289)


부적절하게도 반유대주의라고 불리는, 유대인을 향한 적대감은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다. 즉 그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에게 품는 적대감의 한 예이다. 이는 원래 동물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동물들은 같은 종이라도 다른 그룹에 속해 있는 동물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것은 가축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닭장에 있던 암탉이 다른 닭장에 들어가면 그 닭은 며칠 동안 다른 닭들에게 주둥이로 쪼이며 거부당한다. 쥐와 꿀벌들의 세게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사회적 동물들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이런 동물적이 불관용을 모두 용인한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의 법률이 그것을 제한하는 데 이용된다.

반유대주의는 전형적인 불관용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거부감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접촉하는 두 그룹 사이에 눈에 뜨일 정도의 차이점이 존재해야 한다. 이것은 신체적인 차이(흑인과 백인, 금발과 갈색 머리)일 수도 있지만 복잡한 문화로 인해 우리는 언어나 방언, 혹은 악센트 같이 미묘한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 중 외적으로 완전히 표현되고, 옷을 입는 방식이나 행동방식 같은 삶의 방식과 공적․사적인 습관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종교라는 것이 있다. 유대 민족의 고통스러운 역사로 인해 유대인들은 거의 어느 곳에서나 이런 차이들 중의 하나를 드러내게 되었다.(292~293)

반유대주의의 본질에는 거부라는 비이성적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기독교 교가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굳어져가기 시작하던 때부터 반유대주의가 종교적인, 아니 신학적인 옷을 입게 되었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에 따르면, 유대인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디아스포라의 형벌을 받았다고 한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형벌을 받았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또 하나는 유대인들이 사방에 존재하는 것이, 역시 사방에 있는 기독교 교회에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독교 신자들이 도처에서 형벌을 받으며 불행하게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죄를 저지른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영원히 증명해야만 하고, 그 결과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증명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존재는 없어서는 안 되며, 유대인들은 박해는 받아도 살해되어서는 안 된다. (294)

히틀러는 멋진 약속을 했다. 독일 프롤레타리아는 자신들을 경제적 파탄으로 내몬 계급에게 전쟁 패배의 책임을 묻고 그들에게 적대감을 돌려야 했으나, 히틀러는 그 적대감을 유대인들에게 향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1933년부터 시작해서 몇 년 동안 히틀러는 굴욕감을 느끼고 있는 독일인의 분노와, 루터, 피히테, 헤겔, 바그너, 고비노, 체임벌린, 니체 같은 선각자들이 북돋워놓았던 국가적 자존심을 이용해 당을 하나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가 광적으로 집착했던 것은 먼 미래가 아니라 빠른 시일 내에 독일이 지배권을 갖는 것이었다. 문화적 사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무력으로 말이다. 그가 보기에 독일적이 않은 모든 것은 열등할 뿐만 아니라 증오의 대상이었다. 독일의 첫 번째 적은 유대인들이었는데 히틀러가 독선적인 분노를 품고 밝힌 수많은 이유들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유대인들이 ‘다른’ 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히틀러 자신은 우상으로 숭배받기를 갈망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는 지성과 의식을 불신하고 본능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고 주저 없이 선언했다. 마지막으로 독일계 유대인의 상당수가 경제, 재정, 예술, 학문, 문학 분야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실패한 화가이고 실패한 건축가였던 히틀러는 유대인들에게 분노와 좌절로 인한 질투심을 쏟아 부었다. 이런 거부의 씨앗이 비옥한 토양에 떨어지면서 믿을 수 업을 정도로 활기차게, 새로운 형태로 뿌리를 뻗어갔다. 파시스트 스타일의 반유대주의와 히틀러가 던진 말 때문에 독일 국민들에게 되살아난 그 반유대주의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것보다 야만적이었다. 의도적으로 왜곡된 생물학적 이론이 덧붙여졌다. 이 이론에 따르면, 힘이 없는 인종은 강한 인종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한다. 상식에 의해 수세기 전에 모습을 감추었던 어리석은 민중 신앙이 되살아났고, 쉴새없는 선전 활동이 시작되었다.(296~297)


“책을 불태우는 사람은 조만간 인간들을 불태우게 될 것이다” 독일계 유대인 시인 하이네 (298)


자살하기 몇 시간 전 구술한 정치적 유언장에 히틀러는 이렇게 썼다. “인종법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며, 전 세계 국가에 해독을 끼치는 전 세계 유대인과 끝까지 싸우라고 독일 정부와 국민에게 명한다”(300)


이런 집단적인 광기, 이런 일탈은 대개 개별적으로는 전혀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이런 요인들 대부분은 히틀러의 성격, 독일 국민과 그의 깊이 있는 상호작용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히틀러의 개인적인 망상, 증오심, 폭력 교사가 깊은 실의에 빠져 있던 독일 국민에게 걷잡을 수 없는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히틀러에게 두 배로 되돌아와 그 스스로 니체가 예언했던 영웅, 독일의 구원자인 초인이 되었다는 미치광이 같은 확신을 갖게 한 것도 사실이다.

[……] 일반적으로 히틀러가 전 인류에 대한 증오심을 유대인에게 쏟아냈다고 말한다. 그는 유대인들에게서 자신의 결점 몇 가지를 찾아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증오하면서 스스로를 증오했다는 것이다. 그의 폭력적인 적대심은 자신의 혈관 속에 ‘유대인의 피’가 흐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탄생되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이런 설명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적 현상의 책임을 한 개인에게 돌려(끔찍한 명령을 실행에 옮긴 자들도 결고 무죄일 수 없다!)설명한다는 건 옳지 않은 듯하다. 게다가 한 개인의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는 행동의 동기들을 해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가정들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을 변명하며 죄의 양이 아니라 죄의 질을 설명한다. 나는 솔직히 히틀러와 그의 뒤에 있던 독일의 광적인 반유대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한 몇몇 진지한 역사학자들(블록, 슈람, 브라허)의 겸손함을 좋아한다.(300~301)

나치즘의 증오 속에는 이유가 없다. 그 증오는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밖에 있다.(302)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공개적으로 연설을 할 때 사람들이 그들을 믿었고 박수갈채를 보냈고 감탄했으며 신처럼 경배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니,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였다. 자신들의 한 말의 신뢰성이나 정의로움을 앞세우지 않고 장황한 말로, 연극배우 같은 방법으로, 본능적으로 혹은 끈기있는 훈련과 습득을 통해 암시적으로 말을 했으며 사람을 홀리는 비밀스러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같은 것들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은 대개 비정상적이거나 어리석거나 잔인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환영을 받았고 그들이 죽을 때까지 수백만의 추종자들이 그들을 따랐다. 비인간적인 명령을 부지런히 수행한 사람들을 포함안 이런 추종자들은 타고난 고문 기술자들이나 괴물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그 수는 너무 적어서 우리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인 사람들, 아무런 의문없이 믿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훨씬 더 위험하다. 아이히만이나,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이었던 회스, 트레블링카 수용소 소장이었던 슈탕글, 20년 뒤 알제리에서 학살을 자행한 프랑스 병사들, 30년 뒤 베트남에서 학살을 자행한 미군 병사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303)

그러므로 이성과 다른 도구로, 혹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을 앞세워 우리을 설득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판단과 우리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진짜 선각자와 가짜 선각자를 구별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모든 선각자를 의심의 눈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들의 주장을 일단 거부하는 것이 좋다. 그것의 단순성과 눈부심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해도, 무상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하다고 생각되더라도, 훨씬 더 소박하고 덜 흥분되는 진실, 차근차근, 지름길로 가지 않고 공부와 토론과 추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실, 확인되고 입증될 수 있는 진실에 만족하는 게 훨씬 더 좋다.

이는 모든 경우에 적용하기엔 너무 단순한 공식임이 틀림없다. 불관용, 압제, 예속성 등을 내포하고 있는 새로운 파시즘이 이 나라 밖에서 탄생되어 살금살금, 다른 이름을 달고 이 나라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혹은 내부에서 서서히 자라나 모든 방어장치들을 파괴해버릴 정도로 난폭하게 변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지헤로운 충고 따위는 아무 쓸모가 없다. 저항할 힘을 찾아야 한다. 이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유럽의 한폭판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기억이 힘이 되고 교훈이 될 것이다.(303~304)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미래를 묘사한다 해도 그것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대중의 행동을 예측해보려는 시도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한 개인의 행동을 예측하기란 너무나 힘든,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그 뒤로 아주 다양한 다른 것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끝없이 펼쳐진다.(305)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뿐만 아니라 꼭 살아남아 우리가 목격하고 참아낸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지가 생존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암흑과 같은 시간에도 내 동료들과 나 자신에게서 사물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보겠다는 의지, 그럼으로써 수용서에 널리 퍼져 많은 수인들을 정신적 조난자로 만들었던 굴욕과 부도덕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고집스럽게 지켜낸 것이 도움이 되었다.(307)


나치스의 선전장관 괴벨스의 일기 “게토를 관리하는 일은 인도적 과업이 아니라 외과적 과업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일부를 잘라내는, 그것도 근본적으로 잘라내는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럽 전체가 유대인이라는 질병을 앓게 될 것이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로 도출된 것이 바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해결책’, 곧 인위적 절멸이었다. (324)


[서경식의 작품 해설]

그가 항상 그의 저작을 통해 아우슈비츠에서 파괴괸 ‘인간’이라는 척도를 재건하는 일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레비 자신이 ‘아우슈비츠 이후’의 세계에서도 우리가 ‘인간’에 희망을 이어갈 수 있는 근거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른바 현대 오디세우스였다. 그런 그가 돌연 자살한 것이다. 그는 그 방대한 이야기의 말미에 ‘자살’이라는 사건을 배치함으로써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구멍과 같은 미완의 물음을 우리에게 던졌다. 근 자살이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에게 최후의 경종을 울리려고 했던 것일까(339)


무엇하나 진정으로 끝난 것이 없다. 지금도 사회의 곳곳에, 또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길한 징후가 존재한다. 단지 사람들이 눈을 돌리고 있을 뿐이 아닐까? 그런 징후들은 다양한 조건 아래에서 언제고 다시 잔혹한 폭력으로 분출될지 모를 일인데도…….

과거의 고난이나 먼 장소에서 일어난 비참한 사건에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들은 상상이 미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를 의식해야 한다. 그러한 공포를 잃어버리는 순간, 냉소주의가 개선가를 울릴 것이다. 우리들 ‘인간’을 태우고 표류하는 배가 난파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리모 레비가 우리들에게 남긴 경고이다.(340)



※ 레비가 강제 수용되었다가 살아난 아우슈비츠는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후 ‘오시비엥침’이라는 슐레지엔 인근 폴란드 지역에 독일식 이름을 붙인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323~330쪽에서 발췌)

○ 개요

- 철도 교통의 요충지

- 1940년 4월 수용소 설립 명령, 수용소 소장 루돌프 회스, 총 20동의 건물

- 1940년 6월 14일 게슈타포(나치스의 비밀경찰)에 의해 아우슈비츠의 첫 번째 수감자 호송 (폴란드 정치범 728명)

- 1941~1942년 : 수감자들의 노동으로 단층에서 2층으로 개축, 8동 증축(총 28동)

- 평균 1만 3,000~1만 6,00명 수감(1942년 한때 2만 8,000명 수감)


○ 시설

①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오시비엥침) : 수용소 본부와 행정부서, 일반 물품과 군수품 생산(공장)

②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브제진까 마을, 비르케나우 수용소) : 대량 학살과 시체처리를 위한 거대한 장치를 갖추고 있음(5개의 가스실과 시체소각실) 여기에서 학살된 사람의 수는 150만명 추정

③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 (모노비츠 마을, 부나 수용소) : 수용인들이 모두 ‘부나’라는 합성고무를 만드는 합성고무 공장


○ 살해과정

화물 열차에 실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이들 중 노동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돤된(혹은 그저 단순히 줄을 잘못 선) 이들은 비르케나우 수용소로 이동해 옷을 모두 벗어두고 귀중품을 보관소에 맡긴 후 샤워실이라는 간판의 붙은 가스실 앞으로 내몰린다. 몇몇 절멸수용소에서는 먼저 여자들의 머리를 자르기도 했다. 사체에서 제거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머리카락으로 매트리스와 천 등을 제작했다. 낯선 독일어로 외치는 고함과 채찍에 몰려 사람들은 샤워실이 가득 찰 때까지 들어간다. 샤워실 문이 잠기고 천장의 샤워 꼭지들에서 물 대신 치클론 B 가스가 새나온다. 가장 약한 사람들이 맨 아래쪽에 깔리고 가장 힘 센 사람들이 꼭대기에 올라 차곡차곡 쌓인 채로 모두 사망할 때까지는 15~20분 정도가 걸린다. 모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면 역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수인들이었던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 시체처리조)들이 들어와 피와 배설물로 뒤범벅이 된 사체들을 끌어낸다. 금니와 머리카락을 뽑고 수레에 실어(나중에는 켄베이어벨트를 사용하기도 했다) 소각로로 운반한다. 사체가 너무 많을 때는 그냥 밖에 쌓아두기도 한다. 화장시킨 사체의 재는 가까운 곳의 하천에 버리거나 비료로 썼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과정은 아무리 처리대상 인원이 많을 때도 세 시간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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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공무도하

2009/11/30 16:38

김훈의 글은 스케치가 정확하다. 매력魅力적(charming)이다

매력이 진짜 힘(권력)이다

매력이 사라진 인간은 죽는다.

 

 

-  아래의 발췌는,  김훈, 2009, [ 공무도하 公無渡河 ], 문학동네 ;  인용 (  )는 쪽수

  

1. 하늘의 구름

구름의 세력 (7)

 

2. 기상청의 예보

기상청은 비구름의 뒷자락에 매달려 갈팡질팡했다 (7) 

 

3. 배달된 자장면

먹다 남은 자장면이 비닐랩에 뒤엉켜 말라붙어 있었다 (17)

 

4. 샤워하는 장면

몸이 물의 온도 속으로 퍼졌다 (23)

창자와 허파와 자궁이 몸속에 가득 들어차는 꿈틀거림 (23)

 

5. 연대

역사와 문명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이 서로 연대하고 있었다 (25)

 

5. 햇빛

녹슨 지붕들이 햇빛을 튕겨내면서 막무가내로 색을 뿜어냈고 (29)

녹으로 삭아가는 함석지붕은 풍화의 시간 속에서 신생의 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29)

녹을 벗겨낸 탄두는 쇠의 푸른 속살로 햇빛을 튕겨냈다 (311)

 

6. 인간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 (35)

 

7. 해지는 저수지 풍경

수면에서 명멸하는 빛과 색 (41)

기우는 해에 끌리는 쪽으로 빛들은 떼지어 소멸했고 소멸의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나서 신생과 소멸을 잇대어가며 그것들은 어두워졌다 (41)

산그늘에 덮여서 빛이 물러서는 가장자리 수면에서 색들은 잠들었고, 바람이 수면을 스칠 때는 물의 주름사이에서 튕기는 빛이 잠든 색들을 흔들어 깨웠다 (41)

저녁의 수면은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지우면서 어두워갔다 (43)

 

8. 밤에 울리는 핸드폰

램프는 바늘귀 같은 구멍으로 새빨간 섬광을 쏘아대어 어둠을 찔렀다. 중학생 때 저수지 뚝방에서 본 뱀의 눈알이 떠올랐다. 핸드폰은 살아서 교신을 갈구하는 작은 짐승의 눈구멍처럼 깜빡거렸다 (44)

가늘게 찌르륵거리는 신호음은 어둠의 저편에서 건너오는 벌레 소리로 들렸다. 소리의 느낌은 무력했고, 무력한 만큼 다급했다. 여러 산꼭대기의 기지국 철탑들을 거쳐서, 폭우가 쏟아지는 캄캄한 공간을 건너오는 한 가닥 신호의 여정이 노목희의 마음에 떠올랐다. 신호음이 멎고, 철탑과 철탑 사이가 끊어졌다가, 다시 신호음이 울렸다. 서로 알게 된다는 것은 때때로 신호를 보내오는 개입을 용납한다는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노목희는 폴더를 열였다 (45)

 

9. 새

새들의 울음소리는 속이 비어 있었고 높이 떠서 멀리 나아갔는데 (48)

 

10. 폭격

폭격기들이 저공으로 접근하면서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할 때 수평선 너머의 어둠이 찢어졌다 (50)

삶 속에서 죽음이 폭발했고 (258)

폭격기들이 바다에 박힐 때, 물기둥이 치솟았고 물보라가 날렸다. 파도가 물기둥을 지워버리고 바람이 물보라를 쓸어내고 폭격기들이 물속으로 잠기면 바다는 다시 제 리듬으로 돌아갔다 (258)

 

11. 노을

해망의 노을은 깊고 또 가까웠다. 해가 내려앉고 수평선 쪽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하면 붉은 기운이 물 위에 가득 찼다. 해망의 노을은 하늘로 번졌고 대기중에 스며서 어두워지는 내륙의 산맥 너머로까지 펼쳐진다. 해망의 노을은 바다와 마을에 가득 내려앉아 사람과 가축의 들숨에 실려서 몸속으로 빨려들었고 썰물의 갯고랑에서 퍼덕거렸다 (73)

마을에 걸린 빨래가 노을을 튕기며 펄럭였고 소금이 내려앉은 염전 바닥이 붉었고 숲으로 돌아오는 새들의 가슴이 붉었다 (74)

해가 더 기울자 노을은 산맥과 마을의 윤곽을 거두어서 어둠에 합쳐졌다 (80)

 

12. 죄수

해안초소에서 내려와보면 죄수들의 몸놀림은 지나간 시간의 지층 위를 기어가는 슬로 리뷰였다. 죄수들의 작업은 노동이 아니라 시간을 인내하는 자들의 종교의식처럼 보였다 (74)

 

13. 소금

소금은 노을지는 시간의 앙금으로 염전에 내려앉았다. 소금 오는 바닥에는 폭양에 졸여지는 시간의 무늬가 얼룩져 있었고 짠물 위를 스치고 간 바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공기가 말라서 바람이 가벼운 날에 바다의 새들은 높이 날았고 새들의 울음은 멀리 닿았다 (75)

 

14. 자동차의 불빛

뒤차의 전조등 불빛이 안개에 풀렸다. 딱정벌레 같은 불빛들이 어둠 속에서 배어나와 백미러를 흘러나갔다 (86)

 

15. 사람의 냄새

그에게서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운 사람의 체취와 비슷한, 몸속 깊은 곳에서 스며나오는 냄새가 풍겼다. 시간이 사람의 몸속에서 절여지면 이런 냄새가 날 것 (91)

 

16. 기억

기억은 고압전류가 되어 몸속을 찔렀다 (94)

기억의 저 너머를 찌르면서 버린 것들의 이름을 불러왔다 (95)

 

17.  화재진압 현장

연기는 수증기에 젖어 무거웠다 (102)

무거운 연기가 바닥에 깔렸다. 손전등 불빛은 수증기에 젖은 연기를 뚫지 못했다 (109)

 

18. 미완성

그가 아름답다는 그 '미완성'이라는 것은 완성을 지향하는 과정이 아니라, 미완성 그 자체로서 하나의 자족한 국면을 이루는 것처럼 문정수는 느꼈다 (112)

 

19. 국물 담은 봉지

문정수는 멸칫국물 봉지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허벅지에 멀고 희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120)

 

20. 절박함

그렇게 절박한 것들을 기억할 수 없는 까닭은 보다 더 절박한 것이 보다 덜 절박했던 것들을 지웠기 때문 (123)

 

21. 깊은 잠

아침이 가까워올수록 문정수는 더 깊이 잠들어서 숨소리는 길고 깊었다. 문정수의 숨은 몸 깊은 곳의 소리와 냄새를 토해냈다 (131)

 

22. 죽음

이 세상의 헤아릴 수 없는 죽음과 끝없이 되풀이되는 죽음 중에서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죽음은 저 자신의 죽음뿐일 테지만, 그 죽음조차도 전할 수 없고 옮길 수 없어서 이해받지 못할 죽음일 것이었다 (131)

변사變死라기 보다는 폐사斃死에 가까웠다 (132)

 

23. 욕

니미, 쓰벌, 좆도 같은 욕설을 그가 손댈 수 없는 세상을 향해 내뱉었다 (133)

 

24. 낡은 배

낡은 목선들이 배의 희미한 흔적을 그리며 삭아갔다 (140)

 

25. 동물의 콧구멍

낙타는 콧구멍을 바람에 열어놓고 지평선 너머를 냄새맡고 있었는데, 콧구멍 언저리가 메말라 보였다 (201)

 

26. 저녁이 오는 시간

그림자가 어둠에 녹아서 사라질 무렵 (245)

 

27. 민들레

풀들의 세력은 풍매하는 솜털 씨앗으로 피어났다. 그것들은 가볍고 사소했다 (267)

그것들은 바람에 올라타서 이동했고 바람의 끝자락에서 착지했다. 한 점의 솜털로 떠돌던  그 하찮은 것들은 땅 위에 재집결해서 세력을 확장했고, 뿌리를 박으면 물러서지 않았다 (267)

 

28. 인연

인연은 풀려서 흩어졌다. 그것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었다. 부재하는 것들의 한시적 응집일 뿐이었다. 자궁은 증발하고 혈연은 해체되었다 (270)

 

29. 술 많이 먹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아침에, 문정수는 갈증에 몰려서 눈을 떴다. 입안이 목구멍까지 말라서 혀가 버르설거렸다. 혓바닥이 돌멩이처럼 입안에 떨어져 있었다. 속이 뒤집히고 골이 패였다. 술이 덜 깨서, 세상이 멀어서 아득헤 보였는데, 멀어 보이는 세상이 술이 덜 깬 망막으로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문정수는 간밤에 강경감이 준 드링크를 마셨다. 인삼을 흉내낸 인공향료 냄새가 목젖을 치받았다. 칫솔을 입안에 넣자, 창자의 먼 끝에서부터 구역질이 올라왔다 (320)

 

30. 섹스

문정수의 몸은 다급했다. 노목희의 몸이 깊어서 문정수는 닿을 수 없었다. 몸이 다가가면, 몸은 달려들면서 물러섰다. 노목희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문정수는 닿아지지 않는 저쪽 끝으로 몸을 몰아갔다. 노목희는 다가와서 넘치는 몸을 느꼈다. 노목희의 머리카락이 땀에 엉겼다. 문정수가 놓쳐버린 세상이 모두 내 몸속 깊은 곳으로 들어와서 거기에서 녹아서 편안해지기를, 그리고 그것들이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기를, 그래서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은 몸이 새로운 시간 앞에 다시 서기를, 홀로 그 시간 속을 걸어갈 수 있기를 노목희는 바랐다. 그 바람은 문정수가 물러선 몸속 깊은 곳에서 체액으로 분비되었다. 문정수는 쉽게 무너졌다. 문정수는 숨을 몰아 쉬었다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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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선이고 죽음은 악이다'라는 일반적인 생각에 질문을 던진다. 

디아스포라(diaspora) 서경식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에 따르면, '개인의 독립성은 죽음에 대한 독립성'이며, 이런 정신적 독립성은 삶과 죽음에 대한 끝없는 사유를 통해 (새로운 주체성이) 획득된다는 것이다.

 

삶의 긍정은 '죽음에 대한 긍정'이라고 말한 니체의 사유와 함께, 그리고 '개인의 독립성'은 소수자(minority), 특이성(singularity), ~되기(become) 등의 개념들과 결합해서 생각해 봄직하다.

 

아래에 몇 개의 문장을 발췌한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의 재생산'도 백성들이 전부 다 죽고 없어지면 안 되죠. 인간이 일을 하게 하려면 일단 살아야 하니까 부유층이나 권력자는 인간인 살고자 하는 욕망을 어느 정도 보장해 줍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주권, 결정권은 안 주지요. 자살 같은 건, 자기 멋대로 죽는 건 신의 뜻을 거르는 거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괴롭고 삶에 보람이 없더라도 그냥 살라는 거지요

 

'I was born'이라고 할 때, 누군가의 의도로 우리가 태어났다, 자기 스스로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거죠. 그럴 때 저는 돼지 같은 가축을 생각합니다. 가축은 인간의 의도로 태어나지요. 무엇 때문일까? 먹기 위해서예요. 그렇다면 돼지에게 삶의 보람이 뭐가 있을까요? 그저 인간이 돼지를 먹기 위해서 번식하게 하는 거예요. 그럼 돼지가 자살하면 안 되지요. 돼지가 사는 보람이 없다고 해서 자살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돼지가 동성애을 하면 안된다는 거지요. 이거 웃기는 애기가 아니라 진짜예요. 그럼 우리 하고 돼지가 다른가? 우리는 돼지가 아닌가? 지금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이것이예요

 

인간 대부분을 백성으로, 노동자로, 노예로 재생산시켜야 한다는 것은 돼지를 사육하는 것하고 다름이 없지 않나요?

 

'인간은 살아야만 한다. 자살하면 안 된다.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그런 사고가 어떻게 보면, 인간을 영영 착취할려고 하는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역활을 할 수도 있고 해 왔다고 볼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국가권력은 자살을 금기시하고 죽음에 대한 사상을 금기시해요

 

인간이 태어나서 살고 죽어가는 그런 과정 자체를 국가가 지배하고 있다, 통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략)...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결단, 우리 자신의 독립적인 정신으로 볼 수 없는 한 우리는 국가나 권력의 노예일 수 밖에 없다, 이런 거지요.

 

내가 여기 있는 어떤 사람에게 애정이나 책임감, 연대감, 이 사람하고 함께 있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고 이 때문에 살아야 한다고 느낄 때, 진짜 이것이 자기 것인지,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것인지, 어떤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누구를 모방한 것인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우리가 독립되어 가는 것입니다.

 

개인의 독립성이야말로 공공성의 바탕이다, 개인의 독립성은 죽음에 대한 독립성이다, 정신적인 독립성이야말로 개인의 독립성의 바탕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태어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죽으면 안되는지, 되풀이해서 생각하는 행위야 말로 인간다운 주권을, 주체성을 자기 자신이 획득하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봅니다.

 

- 서경식, 2009,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 철수와 영희, pp. 136~161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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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을 지하철에서 읽는데, 통쾌한 문장을 보았다.

 

이렇게 기성세대의 위선을 까발리고  자유분방한 김현진씨를 매도하는 사람들도 많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단식 농성을 할 때는 농성장에서 옷을 벗고 있었다는 둥, 파업 현장마다 다니면서 남자를 꼬셨다는 둥 하는 소리도 들었다. 김현진 씨는 "웃기고 있네, 자기 꼬셔줬으면 해서 하는 소리지. 왜 남자들은 자기하고 안 자 주면 화를 내는 걸까? 됐어! 너랑 안 잘 거야. 아무리 욕을 해도......"하고 가볍게 넘겨 버린다.

 

([B급연애](청림출판사)라는 책을 쓴 이유)

"20대가 연애하면서 많이 받아먹고 살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오빠'들한테 돈 뜯기고 공짜로 섹스나 해주고. 맞기나하고, 애나 떼고, 그런 일이 천지인데 그런 이야기들은 아무도 안 하니까. 그런 리얼한 이야기들을 해보고 싶어요."

 

출처 : 도서출판 작은책, '사진으로 보는 사람이야기, 이명박이 만든 스타, 김현진 씨',  [작은책 2009. 8. 제170호], 9쪽에서 발췌.

 

김현진, 매력적인 인간이다. 부럽다.

당장 그녀의 책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읽을 욕심을 낸다.

내가 그녀처럼 명랑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오래 준비된 상상력과 깊은 매력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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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자본주의와 인권의 역설적 관계

  - 출처 : 박노자 강의노트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22326

 

밑에다가 제가 7월16일 저녁 7시에 부산일보사 10층 강당에서 "이주민과 함께"라는 단체의 주최로 발표할 대중 강연의 원고를 첨부합니다. 이 강의의 주제는 자본주의적 근대와 인권의 역설적인 관계사입니다. 사실, 보편적 인간이라는 개념의 탄생 자체는 세습신분제의 봉건제 아래에서 불가능했으며 자본주의 초기에 들어서야 가능해졌습니다. "모두"를 포함시킨 노동 시장의 탄생은, "보편적 인간"을 탄생시켰으며 "보편적 인권"이라는 관념이 성립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특히 19-20세기에 국가와 자본의 통제-개입-억압은 사실상 인권의 신장을 계속 억제했으며 지긐 같으면 "종족 계급"의 출현 등으로 "보편적 인간"이라는 이념 자체를 깨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자본주의 극복만이 인권 신장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는 게 이 글의 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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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 자유, 인권 – 자본주의 하에서 인권 실현은 가능한가?
 
1. “권리”의 개념: 영어 “right”는 희랍어 orektos (“바른”, “올바른”), 나전어 rektus (“바른”, “바로 서는”)에서 파생된 것임. 지중해의 고대 사회나 유럽의 중세 사회에서는 “권리”란 결국 해당 개체 내지 공동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 또는 “마땅히” 해도 되는 일을 지칭한 것이었음. 보편적인 “인간”이라는 개념은 적어도 법적으로 18세기 이전까지 성립되지 않았기에 “보편적 인권”이란 존재할 수 없었으며 개별적 공동체/신분 계층의 “권리” 정도는 사회적으로 인식됐다. 대체로 17-18세기의 사회계약설 대두 이전까지 각종 신분계층들의 “정의로운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라면 “좋은 사회”로 인식됐음 –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부 권리론”. 이 “천부 권리는” 일단 원칙상 개체가 아닌 공동체에 귀속됐음 – 즉, 유기체로서의 도시국가는 개별적 가족의 존재의 조건이었으며, 가족은 개체의 존재 조건이었음. 즉,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의 대표적 사상가들에게는 “전체”에 대한 의무를 떠난 개체의 권리란 논할 수도 없는 것이었음. 또한 개체들은 절대 동등하지 않았으며 그 “정의로운 권리”들도 각자 달랐음: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노예제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노예란 자연적으로 남에게 복종하기를 좋아하는 예속적 존재” – “천부 노예론”). 즉, 서구의 전통사회는 공동체적/신분계층적 “권리” 의식은 있어도 근대적 의미의 보편적 “인간”도 “인권”도 개념조차 성립되지 않았음.
 
단, 이미 희랍/로마 시절부터 전통 서구 사회는 “신성한 법”에 대한 존경 (준법 의식)을 상당히 강조했음: “솔론 (아테네의 유명 정치인) – “나는 오로지 신성한 법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법이 자연법을 따른다는 이념은 여기에 큰 영향을 미쳤음.
 
2. “보편적 인간/인권”의 탄생 - 17-18세기 부르주아 혁명의 시기. 토마스 홉스 (1588-1679) – 모든 인간 (신분 계층 소속과 무관하게)에게 해당되는 “자연법”. 홉스가 생각했던 “자연법 16칙” – “모든 인간들이 다 평등하다”, “모든 인간들이 평화를 갈망하지만, 평화를 향유할 희망이 없을 경우 전쟁을 택한다” 등등 “보편적 인간”에게 해당되는 “자연의 법칙”들이 발견된다는 것 자체는 “진보”이었지만, 홉스는 모든 인간들에게 같은 “인권”을 허용하려 하지 않았음. 왜냐하면 인간들은 원칙상 평등했음에도 “모두와 모두의 전쟁”이 자연의 정상적 상태인 만큼 인간의 세상에서도 많은 경우에는 “정의”가 아닌 “힘”은 당연히 우세해야 했다는 것. 예컨대 홉스는 전쟁 포로나 “야만인”들을 힘으로 잡아 노예로 부리는 것을 “자연 상태에서의 모두와 모두의 전쟁의 당연한 결과”라고 봤음. 이 “모두와 모두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전지전능한 국가가 필요했으며, 홉스가 생각했던 이 “리바이어던” (괴물)과 같은 국가는 삼권 분립 없이 개인들의 권리를 얼마든지 침해할 수도 있었음. 부르주아적 “계몽”의 역설: “보편적 인간”이 탄생되는 순간 이 인간의 국가에 대한 예속을 정당화하는 논리도 아울러 탄생됐음: 개인의 자유 가능성들이 강해지는 동시에 개인에 대한 억압도 강해지는 것은 부르주아 사회 역사의 원칙임.
 
존 로크 (1632-1704) – “개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 즉 사회계약적 국가를 옹호했는데, 여기에서는 “개인”이란 “재산 보유자”임. 국가의 목적도 생명과 재산의 보호임. 즉, 명시적 제한이 없는 “재산 보유”를 “근본적 권리”로 제시한 것인데, 이것도 초기 계몽주의자들의 인권론의 잡노주의적 성격을 잘 보여줌.
 
3. 근대적 “보편적 인권”의 정형화 – “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프랑스 혁명의 인권 및 시민권 선언, 1789) – 무죄 추정 원칙 및 고문 금지 등은 역사적 의미가 컸음. 그러나 이 “인권 선언”은 원칙상 여성이나 흑인 노예 등에게 아예 해당되지 않았으며, 집회의 자유 등 여러 중요한 인권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음. 노조 결성의 권리 등은 구미 지역에서 1830년대 이후에야 어느 정도 인정되기 시작했으며, 노동자 파업권은 최초로 헌법에서 보장된 것은 1917년 멕시코 헌법임 – 초기 부르주아 사회의 “인권” 인식은 그렇게까지 “보편적”이지 않았음. 19세기 내내 – 인권 신장의 지속적 진척. 1900년까지 – 노예 소유는 거의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금지됐으며, 뉴질랜드 (1893) 등지에서 여성 투표권까지 인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 인권 신장과 함께 “리바이어던”과 같은 국가의 개인 관리 능력도 계속 강화돼 갔음. 사례: 징병제 – 프랑스 혁명 (1793년)이 시작이 되어서 1900년에 이미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주요 열강/구미권 국가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음 (미국 – 평시 징병은 없어도 전시 징병은 늘 존재했음) – 인권 신장과 국가적 억압의 강화는 병행되는 것은 부르주아 문명의 특징. 국제 여행용 여권 등 인구 이동 관리 장치의 시발점도 바로 19세기임.
 
19세기 부르주아 인권 담론의 재미있는 특징: 전쟁 수행 권리는 국가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는 전시의 징병된 군인의 전사는 “인권 침해”로 인식되지 않았음 (단, “전시 국제법 기준” 개발 – 포로 대우 등에 대한 규정은 “문명 국가” 간의 전쟁에서 지켜졌음. 그러나 일제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 규정을 지켜도 한반도에서 “의병 토벌”할 때에 포로로 잡은 의병들을 얼마든지 쉽게 살해하는 등 한국인에게 “문명국가들의 국제법”을 적용시키지 않았음). 인간 생존권도 “인권”으로 간주되지 않았음 - 19세기 후반기에 인도에서 1천5백만 명 정도로 대량 기근으로 아사했음에도 유럽에서 이를 영국 지배로 인한 범죄로 인식한 것은 일부 사회주의자 (Hyndman – The Ruin of India by British Rule, 1907) 뿐이었음. 상당수 주류 평론자는 “과잉 인구의 자연스러운 소멸”이라고 인도에서의 대량 기근을 환영했음.
 
4. 20세기 – 사회주의 운동과 사회 혁명들은 “인권”의 개념을 대폭 확대시켰음.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 – 제2차대전 종식 이후에 앙양된 좌파 운동의 상당수의 요구 사항을 그대로 담았음: “제22조: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23조 2-4: 모든 사람은 아무런 차별없이 동일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에게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는 생존을 보장하며, 필요한 경우에 다른 사회보장방법으로 보충되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 노조 결성/가입권을 “인권”으로 처음 생각한 것은 사회주의 운동이었음. 물론 세계인권선언도 전혀 완벽하지 않음: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당연한 인권”으로 명기하지 않았음 (그 당시 대다수 국가들은 징병제를 운영했으며, 스탈린 시대 소련을 위시한 많은 국가들은 병역거부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음). <사회, 정치 권리 국제 협약> (1966 – 유엔의 주요 인권 관련 문서 중의 하나) – “전쟁을 부추기는 선전선동” 금지 (20조) – 반전 운동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는 이 조항은, 예컨대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에 대한 주장을 원칙상 북한 주민의 생존권에 대한 부정 (인권 침해)로 볼 근거를 제공함.
 
그러나 인권 의식이 이처럼 성장해온 동시 공동체/개인 생활에의 국가/자본의 개입 능력과 범위는 우리 상상 이상으로 늘어났음: 국제 인구 이동 (이민) 제한 – 1920년 이후의 여권 소지 및 필요 시 사증 (비자) 사전 신청의 의무화; 일부 기업들의 세계 시장 독점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인도/이란/중국/한국/미국을 제외한 모든 세계 국가에서 미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50% 이상임); “자유 무역”의 강요에 의한 개발도상국가들의 “주체적 개발 권리의 박탈” – 많은 빈민들의 “생존권 박탈”; 환경 파괴의 대대적인 가속화 (이상 기후의 문제 등). 21세기 벽두의 “보편적” 인간: 국가와 자본 앞에서 전보다 훨씬 더 무력해짐.
 
보편적 인권 – 근대사의 귀중한 발견이었지만 자본주의와 함께 발전됐으면서도 자본주의와 본질적으로 잘 호환되지 못하는 부분들은 많음.
 
총결론: 원칙상 인종 차별 등이 오래 전부터 세계적으로 금지됐지만 오늘날의 뚜렷한 세계적 현상은 “종족적 계급 (ethno-class)”의 출현: 자주적-주체적 개발의 권리를 박탈 당한 수많은 세계 주변부 국가 출신들이 이산/국제적 이동하면서 국적/종족 별로 특정한 업종을 전담하는 것처럼 된다. 사례: 일본/한국에서의 방글라데시/파키스탄/네팔 남성 출신의 다수 공장 노동자 집단 출현, 유럽에서의 몰도바/우크라이나/루마니아 등 유럽 동남부 남성 출신의 저숙련/비숙련 공장 노동에의 대대적 진출. 노르웨이 – “폴란드 남자”는 수리공의 대명사가 되는가 하면, “필리핀 여자”는 하녀/베비시터의 대명사가 됨. 이 “종족적 계급”에 대한 각종의 차별들은 성별 차별 (“폴란드 남자”/”필리핀 여자”에 대한 각종 편견/차별)과 맞물리면서 세계 주변부 계통의 새로운 “종족적 계급”들을 신흥 빈민 계급인 precariat의 최하 부류로 만듦. 격차 사회가 점차 고질화되어감에 따라 외부 출신의 precariat와 “토착” precariat 사이에서 처절한 (그리고 우파가 계속 부추기는) “생존권 싸움”이 벌이지고 이 과정에서 극우 정파와 각종 인종주의자들이 계속 정치적 이득을 보고 있음. 자본주의 후기의 세계: 인권에 대한 의식은 심화됐음에도 실제로 가면 갈수록 훨씬 반인권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 자본주의와 인권의 기본적 호환성에 대한 새로운 비판적 검토가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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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깨달음의 열린 삶으로

함께 사는 아름다움으로

아! 찬연한 빈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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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메일] 당신에겐 어떤 쾌락이 존재하는가?


- 쾌락이란 무엇인가?
쾌락이란 뭘까? 듣기만 해도 오묘해지는 이 단어를 단숨에 정의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쾌락을 느끼다’라는 말에는 오래간 묵었던 갈증을 단번에 풀었다는 ‘쾌(快)’한 느낌이 있는가 하면 도덕적 금기를 넘어 음탕한 행위를 하였다는 ‘불쾌(不快)'의 감정 또한 존재한다.
그렇다면, 쾌락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부끄러움을 대동하는 부정적인 의미인가? 아마도 그 대답은 각자만이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쾌락이 어떻게 다가오느냐는 모두에게 통용되는 보편자가 아니라 개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 프로이트가 말하는 쾌락은 다르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쾌락은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쾌락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극단이라고 한다면 프로이트가 말하는 쾌락은 흥분을 가라앉혔을 때 찾아오는 감정이다. 인간의 삶은 늘 흥분으로 점철된다.

섹시한 이성을 보면 요동치는 심장, 음식을 제때 섭취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감정, 그리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했을 때 드는 불안감은 늘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흥분들이다. 그러한 흥분들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또 그때마다 해결되는데 그 흥분과 해소의 반복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하는 ‘쾌락원칙’이다.

앞서 말했듯이 ‘쾌락원칙’은 늘 우리의 삶에서 끊임없이 작용한다. 그 때문에 프로이트는 쾌락을 단순히 흥분의 국소적 해소가 아닌 인간 심리 현상 전체를 지배하는 원리로 본다.


- 영화 <색, 계>에서의 쾌락원칙!
이안 감독의 영화 <색, 계>는 쾌락의 흐름경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친일파인 리(양조위)는 우리가 이미지 짓고 있는 친일파와는 달리 철두철미하고 냉철한 감성을 소유한 사람이다. 그는 체포된 테러리스트들에게 그악스러운 고문을 서슴지 않으며 나아가 살인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한다.

반대로 그는 늘 암살의 두려움을 안고 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리는 어두운 극장에는 일체 출입을 하지 않으며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항상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닌다. 테러리스트들에게 있어서 친일파 ‘리’라는 인물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성(城)과도 같다. 그는 그렇게도 신중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 평범한 일상이란 가능한 것일까? 그의 삶에는 쾌락원칙이 작동하지 않는다. 흥분이 가라앉을 새도 없이 그의 기분은 언제나 상승곡선을 이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바로 그가 선택한 삶이며 살아남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쾌락에 다다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왕치아즈(탕웨이)라는 여인과의 만남과 그녀와의 섹스이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파견된 스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그녀와의 섹스를 통해 이미 최고치에 다다른 흥분을 해소할 뿐이다. 살인과 고문을 통한 흥분은 섹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흥분과는 그 차원을 달리한다. 둘 다 삶과 죽음을 담고 있지만 그 자장의 범위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고로 섹스라는 행위는 더 큰 흥분을 가라앉히는 희석제가 되어주는 것이다. 일상생활이란 어쩌면 섹스보다도 더욱 흥분되는 장(場)인지도 모른다.


- 당신에겐 어떤 쾌락이 존재하는가?
쾌락 없이 우리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도 말했듯이 쾌락이란 우리 삶 전체를 연동시키는 중추를 맡고 있다. 일상에서 차례로 혹은 중층적으로 고개를 드는 흥분들은 해소가 됨으로써 쾌락을 낳는다. 그 해결 과정을 들뢰즈는 리비도 집중, 수축, 종합으로 설명한다. 지금 이 순간도 나에게는 수많은 해결되지 않는 흥분들이 존재한다. 그 존재들을 하나씩 해소시켜 나갈 때마다 나는 적절한 쾌락을 면면히 이어 갈 것이다. 당신에게는 어떤 쾌락이 존재하는가?

 

(출처 : http://www.artnstudy.com/sub/community/mknow.asp?idx=98&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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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命

2009/01/05 13:30

謨事在人   成事在天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하늘이다"라고 했다.

 

이욱연. 2008.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창비. pp.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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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칼럼] <21> MB 정부 예산에 '배고픈 국민들'은 없다

 

 

정부가 드디어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2%대로 낮추겠다는 것 같다. 이게 낮은가? 아직 충분히 정신 차렸거나, 어떤 일이 2009년도라는 시점에서 벌어질 것인가 실효성 있게 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원래도 한국 경제는 내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일방적으로 희망하는 것과 달리 내년도 상반기에 세계 경제가 저점을 통과하고 무난히 하반기부터 회복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건 지난 칼럼에서 이미 얘기한 바가 있다.

 

이 상황에 들기름을 쏟아 부은 것은 지금 여당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뒤죽박죽 예산들이 통과된 내년도 예산안이다. 즉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가의 기본 방향이다. 정부와 토목관련자들이 당분간 TV와 라디오 그리고 신문을 장식하며, SOC의 불가피성과 경제적 효과 등을 얘기하며, 마치 무당굿 하듯이 "내년에는 다 잘 될거야"라고 외쳐댈 것이다.

 

먼저 한 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뉴딜 때 토목과 관련된 예산은 아무리 높게 추정을 해도 10% 이상 나오지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90%는 복지와 사회안전망 관련 예산이다.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서는 평균증가율 정도만 올라갔다. 그리고 지금 오바마의 '새로운 뉴딜'의 방향 역시, 절반 이상이 의료복지와 노후된 학교시설 보수 등이고, 나머지 토건 예산도 오랫동안 보수되지 못한 고속도로에 대한 '리뉴얼' 작업 그리고 세계 10위권 바깥으로 추정되는 인터넷 고속망 설비라는 점이다. 뉴딜은,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토건 비중이 전체의 10%를 넘지 않는다. 지금 미국의 금융위기가 건설부문 과잉투자의 가장 '약한 고리'였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터져나왔지만, 미국 경제 내에서 건설부문의 지출은 10%를 넘지 않는다.

 

한국은 평소에도 그 두 배 가까운 건설지출을, 국책사업이라는 형태로 억지로 끌어오면서, 지난 10년 동안 새만금과 각종 특구와 지역도시 등을 만들어냈다. 많은 지방공단의 입주율이 50%도 제대로 넘지 않는 현 상황에서, 국민경제의 나머지 남은 돈을 탈탈 털어 건설에 넣으면, 위기가 극복이 될까?

 

불행히도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지는 경기침체가 하반기에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내수 위축으로 연결되면서 내년 9월 이후 청명한 가을 어느 날, 한국 경제는 사회붕괴라고 할 수 있는 '경제 빅뱅'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사람은 굶고는 살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 사람들의 밥과 일자리에 들어갈 돈을, 시멘트 사는 돈, 불도저 움직이는 돈, 그리고 토호들에게 토지 보상비로 풀 돈으로 쓰고, 정작 "배고파"라고 하는 국민들에게는 아무 것도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주류 경제학 혹은 표준 경제학이라고 불리는 현재의 경제원론 체계를 지지하는 그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약점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결정적인 것이 '위기이론'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이 이론은 '일반 균형' 그것도 '장기 균형'이라는 개념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이질적인 케인즈의 거시경제 이론을 교과서에 끌어다 놓았다. 그러나 케인즈의 경제이론에도 왜 위기가 생기고, 이 위기의 전개, 즉 '과정'에 관한 이론은 거의 없다. 지난 주에 내가 얘기한 위기의 패턴 분석 같은 것들은 표준 경제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콘트라티에프의 장기파동설과 '공황론'과 같은 비주류경제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패턴 분석들이다.

 

내년에 한국에서 벌어질, 1945년 시작된 한국 경제사 초유의 사건에 대해 경제학 교과서에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 "같은 구조가 재생산된다"는 전제 하에 진행되는 어떠한 시뮬레이션 모델도 내년도의 한국 경제 상황을 모델 속에서 재현해줄 수는 없다. 이건 데이터의 문제가 아니라, 이론적인 문제이며, 동시에 모델 구조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데이터는, 지금 부동산을 위해 국민들이 융자한 개인 부채가 상당하고, 이로 인해 실제 '소비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고, 내년도에 '건설 일용직' 일부를 제외하면 추가적인 일자리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물론 현 정부가 염두에 둔 2~3%의 지방토호와 재력가들의 '다주택 보유 프로그램'은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어차피 내년 내내 부동산 경기는 일부 지방개발지에 대한 투기를 제외하면 꽁꽁 얼어붙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현 상황은 여러 가지 이유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던 국민 혹은 이사가 필요했던 국민들이, 이 공간에 대한 지출을 일시 정지시키고, 경제빅뱅이 초래할 최소 2~3년 간의 대공황 상황에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가처분 소득'을 지키려고 하는 상황이다. 불행히도 경제빅뱅이 진행되면 현재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절반 가까이는 영세민 혹은 도시빈민으로 경제적 위상이 변하게 될 것이다.

 

그 밑의 사람들은? 일부는 7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지방으로 공사장을 따라다니며 일용직 근로자로 살게 되는, 1939년 출간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연출될 것이다.

 

경제학 이론에서 답을 찾기가 어려우므로, 잠시 시계를 십년 전으로 되돌려 1998년 막 집권한 DJ 정권 내부에서 있었던 논의들을 잠시 생각해보자.

 

당시 나는 재벌사였던 어느 그룹의 내부에 있었고, 1월초 어느 날 기획실 간부들이 청와대 회의에 참석한 이후에 벌어진 몇 가지 일들을 처리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매각하는 계열사의 가격을 조금이라도 높게 받기 위해서 '기업 가치평가'를 맡은 컨설팅 회사들에게 줄 자료들을 정리하거나, 조금이라도 이 회사들이 나아보이게 하기 위해서 경영계획서 같은 것들을 영문으로 만드는, 그런 귀찮지만 어쩔 수 없던 일들도 했었다. 그리고 막 구성된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몇 가지 자문을 해주기도 하고, 또 개혁적인 경제학자들끼리 정부에 대한 직간접적인 건의에 대한 논의들도 같이 했었다.

 

내 기억으로는 당시 인수위원회, 그리고 청와대 경제팀에서 가장 심각하게 학자들의 건의에 대해 경청했던 것은 '폭동'에 관한 것이었다. 서울역으로 노숙자들이 밀려들고 있었고, 이런 노숙자들은 서울만이 아니라 부산 등 거의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여기에 잠시 후 기업에서 정리해고 이후로 쏟아지게 될 해직자들에 대한 사회적 프로그램을 경제적으로 디자인하는 것들을 시급히 하지 않으면, 대규모 폭동으로 인해 정부가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것들을 논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혼동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할 정치적 여건이 형성됐고, 자활 사업 등 한국에는 없었던 적극적인 복지정책들이 급하게 도입됐고, '사회안전망'이라는 복지담론이 성립됐다. 당시 급하게 도입됐던 이런 프로그램들이 과연 실효성이 있었는지, 아니면 나중에 당시 소장파 학자들이 기대했던 대로 발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실증적 검토와 같은 아카데믹한 논의는 추후에 하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1998년 1월과 2월, IMF 경제위기라는 엄청난 사건 속에서 새롭게 정권을 인수한 사람들에게는 '폭동'이라는 개념이 탑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내 시각이 너무 비관적일까? 나는 지금 이명박 정부가 최근에 보여준 모습대로 '토건 위주의 재정정책'을 강행한다고 하면, 내년 상반기가 지나더라도 중산층과 하층민들, 즉 도시빈민들의 소비여력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고, 그 효과는 끔찍할 정도로 꽁꽁 얼어붙은 내수경제로 인해 9월 이후에 경제빅뱅이라는 클라이막스로 가게 될 것 같다.

 

경제학적이거나 정치적인 수사를 다 제외하고, 이번에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한 예산은, 솔직히 이 미증유의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경제 위기 예산'이라기보다는, 2010년 6월의 지역선거를 겨냥한 선거용 선심선 예산처럼 보이지 않는가? 어차피 내년이 되면 선거를 치르기 위해 각 지역에 도로를 놓고, 건물을 짓고, 또 하천정비 등 별의별 사업을 '무슨 무슨 르네상스', '무슨 무슨 중심축 개발' 이렇게 해서 여야가 잘 합의해서 했을, 그런 선거용 예산 사업이다. 이번에는 그 선거용 예산을 1년 당겨서 미리 선거준비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비상편성을 해놓고, 내년도에는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셈이다.

 

몇 가지 간단한 원칙을 생각해보자. 지금 재정지출이 가야할 곳은, 지역복지, 노동, 그리고 창의성 이 세 가지이다. 창의성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 것은, 2~3년 경제가 힘들다고 해서, 산업활동이나 생산활동을 그만둘 수는 없기 때문이고, 글로벌 경쟁이라고 하는 것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과 발상을 위해서 예를 들어보자. 지금 사실 이번 국회에서 시급히 논의해야 했던 것은, 실업급여의 지급 기간을 한시적으로라도 1년 이상 장기로 연장하는 방안과 같은 것들이다. 어차피 내년에는 실업자 혹은 유사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어있는데, 1929년의 대공황과 달리, 이미 존재하는 실업급여 제도를 약간 손질하고 그 기간을 특별대책 등으로 연장하면, 가장 시급한 서민들에게 바로 재정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런 간단한 방법을 두고,온 국토를 헤집는다고 해서, 그게 내년도에 바로 '삽질 들어가게' 만들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멘트 사오는 돈이 늘어난다고 해서 국민들의 지급여력이 단기에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실업급여, 사회적 일자리, 창의성 사업, 이 세 가지만 주력해도 단기적인 충격을 받아내면서도 장기적인 산업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데, 정부는 도무지 이런 일들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년 9월과 10월, 아마도 한국 경제에 다시 폭동 형태로 배고픈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위기가 실제 닥칠 가능성이 높다. 배고픈 사람들이 가게에서 생필품을 집어가거나, 그중의 일부가 닥치는 대로 불을 지르기 시작하면, 그 혼동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여러 가지 형태로 국민경제 내에서 폭동의 위험은 항상 잔존하고 있지만, 그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경제 폭동이다. 이게 내년도 하반기에 실재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굶어봐라. 역사가 '근대의 탄생'이라고 찬미하는 프랑스 대혁명도, 경제적 눈으로 보면, 자식들에게 빵을 먹여야겠다고 길거리로 나선 여성들이 베르사이유 궁으로 행진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한국의 경제빅뱅이 여의도 증권가와 정가 그리고 과천의 관청에서 사무직들의 컴퓨터와 서류 위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그런 안이한 생각으로는 2009년도 한국 경제의 전개과정에 대해 아직 하나도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국민경제라는 것은 부자들만의 것도 아니다. 경제를 구성하는 가장 아랫 단계에는 "배고프다"라고 아우성치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먹을 것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이 그 시기이다.

 

대기업와 중소기업에서 내년 한국 경제를 헤쳐나갈 힘과 일자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다시 자활 혹은 시민경제의 영역을 구축할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조금 더 적극적 복지로 연초부터 사회안전망을 대대적으로 확대시키는 방식으로 할 것인가?

 

그냥 대책 없이 삽질만 하고 있다가는, 정말로 '빈곤형 경제빅뱅'을 볼 수 있다. 제발 폭동이라는 개념이 경제 과정에 존재한다는 것을 탑재하기 바란다. 한국은 좋든 싫든 이미 중남미형 경제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 중남미에서 언제 폭동이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됐는지, 내년 연초 경제팀은 그걸 연구해야 한다. 최악의 상황을, 서로 피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출처 : [프레시안] 우석훈 칼럼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81215141254§ion=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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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와 평화/반전 문제 

 

출처 : 만감: 일기장 2008/12/01 22:50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17406 
 
 
                            ”평화의 아들은 전장에 나가도 되는가?”
 
가톨릭 교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글을 보내달라는 청탁에, 처음에 망설였다. 자본주의•국가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인, 정의와 사랑이 원천적으로 결여돼 있는 이윤추구 체제에 적응한 어느 종교조직도 ”태생적으로”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지 않을 수 없지만, 종교학자 최준식 교수 (이화여대)도 일찍이 지적했듯이 국내의 종교조직 치고 가톨릭교회는 그나마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될 만한 소지가 있는 것이다. 하나의 보기만 들자면, 불자로서 필자에게 중요한 사실이 가톨릭교회가 불교와 화목한 교류관계를 맺어 ”종교간의 상생”의 선례를 남긴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움을 이야기하자면, 전쟁과 평화, 폭력과 비폭력 저항의 문제를 보는 국내 가톨릭교회의 시각에서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유구한 역사의 숨결도 해외교회들과의 유기적 관계성도 느낄 수 없다는 부분이다. 20세기에 군사적 폭력에 가장 멍든 사회라면 분명히 두 쪽으로 갈라져 아직 평화협정도 맺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부터 이야기해야 하지만, 이 폭력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영적 힘을 국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서 얻기가 힘들다는 것은 한탄스러운 일일 뿐이다.
 
전쟁, 폭력이란 예수의 교회에 있어서 애당초부터 ”우상숭배”, 즉 강압적으로 강요하는 로마제국의 어용종교와 거의 같은 차원에서 중대한 문제이었다.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시킨 교부 테르툴리아누스 (155-222)도 예수를 따르는 ”평화의 아들”이 전장에 나갈 일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었지만, 대체로 4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평화주의와 병역거부는 다수 초기 기독교인들의 굳은 자세이었다. 단,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서 기독교가 국교화되자 교회와 국가 사이의 타협의 일환으로 교회가 – 신약의 가르침에서 분명히 없는 – ”의전” (義戰: 정의로운 전쟁)의 논리를 받아들여 국가 폭력에 대한 저항 능력을 일시적으로 잃게 된 것이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도: 5:29)는 말씀이 망각됐을 때에 교회는 결국 상처를 입어 만신창이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주 등 비(非)유럽 지역에 대한 서구 자본주의의 침략에 편승하기도 하고 그 침략을 ”선교”의 이름으로 합리화한 것도 교회로서 씻겨지기 어려운 죄악이 됐지만, 독일 가톨릭들과 프랑스 가톨릭들이 서로를 전장에서 죽이게 된 제1차세계대전과 같은 상황들은 새삼 교회의 존재 의미에 대한 의문을 많은 신자들에게 일으켰다. 이 세계에서 최대의 종교조직이라 할 가톨릭교회마저도 그 신자들이 각자 세속 정부들의 명령에 따라 서로 죽이게 되는 사태를 예방할 수 없다면 신자 개개인이라도 예수의 평화정신을 따라 제 양심을 살려야 하지 않는 것인가? 이와 같은 반성이 제1, 2차 대전 사이, 그리고 그 뒤에 축적된 결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1965)는 "양심의 동기에서 무기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위한 법률을 인간답게 마련하여, 인간 공동체에 대한 다른 형태의 봉사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라는 유의미한 결론을 내려 개개인의 양심적 병역거부의 권리를 신앙적으로 뒷받침해주었다. 그 덕분에 베트남 전쟁에 대한 많은 미국 가톨릭들의 병역거부가 미국 주교회의의 지원을 얻어, 1970년에 이르러 가톨릭계 거부자들이 전체 거부자들의 8%나 됐다. 이와 아울러 1980년대 이후에 전쟁에 대한 바티칸의 입장도 많이 분명해졌다. 지금의 이라크 침략은 물론이거니와 1990-91년의 제1차 걸프 전쟁도 교황청이 반대해온 것이다. 물론 예수와 초기 기독교인들의 평화정신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서 이것보다 훨씬 더 수위가 높은 전쟁 반대가 필요했을 것이지만, 교황청의 반전 입장은 제국주의적 침략을 좋아할 일이 없는 중남미, 아프리카 등 수많은 주변부 국가들에서의 신자들에게 환영 받았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이와 같은 평화주의적 자세를 교회가 취하지 않는 이상 세계 체제의 주변부, 준(準)주변부 빈민들이 신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오늘에 과연 그 교세를 유지라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준(準)주변부의 국가 중에서는 가톨릭들의 반전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한 나라가 있는데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라크 침략이 시작됐을 때에 한국 주교회의는 평화 촉구 성명서 (2003년2월14일)를 내는 등 세계 가톨릭 교회와 보초를 맞추었지만 국내 정치적 문제로서의 이라크 파병을 다룰 때에 교황청보다 훨씬 더 보수적, 그리고 거기에다가 상당히 자가당착적 입장은 일부 고급 가톨릭 성직자들에게 확인됐다. 한국 가톨릭의 최고의 권위인 김수환추기경이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서 – 이라크 전쟁 자체는 잘못된 전쟁이라고 전제를 하고 - “파병문제에 대해 노대통령이 나에게 물었을 때 이라크의 평화를 위한 파병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평화를 위한 봉사단 성격으로 파병할 것을 권했습니다. 다만 그들이 공격받을 때를 대비해서 자위수단의 병력은 가야 할 것입니다. 이라크 문제는 이라크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평화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이라크는 석유보유국이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라크에 평화가 복구되도록 이라크 자치정부 수립을 함께 걱정해야 합니다” (김추기경의 인터뷰, <경향신문>, 2003년11월24일)라고 하지 않았던가? 생각하면 할수록 비(非)논리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전쟁 자체가 침략이었다면 침략국의 편에 서서 파병하는 것이 어떻게 해서 “평화와 복구”를 위한 일이 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만약 침략국의 편에 서서 파병된 한국 군인이 이라크 애국자들의 공격을 당해 “자위수단”으로서의 화기를 사용하게 된다면, 이는 침략 동참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겠는가? 세계 교회가 이라크 침략을 반대했을 때에 한국교회의 가장 존경 받는 어른은 예수의 평화정신을 배반하고 가톨릭교회의 비극적인 역사의 교훈들을 무시하는 침략 옹호의 주장을 피력한 것이었다.
 
평화정신의 또 하나의 축인 병역거부 등 적극적 반전 행동의 차원에서도 국내와 국외 교회의 “온도차”가 뚜렷하다. 아직까지도 미국에서의 철저하게 반전적, 병역거부 지향적 “가톨릭 노동자 운동”과 같은 대규모 “좌파 가톨릭” 단체들이 국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일부의 기능을 정의구현사제단 등 1970년대의 민주화 운동의 열기 속에서 태어난 가톨릭 사제 단체들이 담당하지만, 그 역량의 한계가 있어 가톨릭 교회의 전체적 보수성을 깨뜨리기에 “역부족”인 듯한 느낌이다. 그러기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분명히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대체복무제에 대한 국내 가톨릭의 입장도 놀라울 정도로 “온건”(?)하다. 2002년3월에 김수환추기경이 <교육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국가의 안보를 크게 해치지 않는다면 병역 의무에 못지않은 사회봉사로 대체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한 바 있었다. 대체복무를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라도 천만다행이지만, “국가 안보를 해치지 않는다면”라는 – 종교인보다 정치인에게 더 어울리는 – 전제와 “강력한 요구” 대신에 단순히 “괜찮다”고 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구미 가톨릭에게 보기 드문 무관심을 나타낸다. 실제로 지난 2005년10월19일에 가톨릭 청년 고동주가 국내 가톨릭으로서 최초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바 있었는데, 그에 대한 교회의 제도적 지원이 너무 취약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폭력을 거부한 이들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에게 다 죄가 있는 만큼 예수의 재림까지 전쟁의 위협이 계속 임박할 것이다. 그러나 죄악을 사랑의 단결을 통해 지워버릴 수 있다면 폭력도 아울러 정지시킬 수 있는 것이다…” (“Non possumus non laudare eos, qui in iuribus vindicandis actioni violentae renuntiantes.. Quatenus homines peccatores sunt, eis imminet periculum belli, et usque ad adventum Christi imminebit; quatenus autem, caritate coniuncti, peccatum superant, superantur et violentiae”).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결의문 ()을 충심으로 실행할 만큼 한국 교회가 과연 그 특유의 보수성을 약간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사유제와 사유제가 부추기는 탐욕, 가족주의, 국가주의, 그리고 전쟁을 모두 다 거부한 예수의 – 진정한 의미에서의 – “공산주의적”, 즉 사랑으로 뭇 존재들을 아우르는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이들이 교회 안에서 많아져 제도권에서의 안주의 관습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폭력 정지”에 대한 바티칸 제2공의회의 말씀이 한국교회에서 “공염불”로만 남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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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제45장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衝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靜勝躁 寒勝熱 淸靜爲天下正
 
 
가장 완전한 것은 마치 이지러진 것 같다. 그래서 사용하더라도 해지지 않는다.
가득 찬 것은 마치 비어 있는 듯 하다. 그래서 퍼내더라도 다함이 없다.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마치 서툰 듯 하며, 가장 잘하는 말은 마치 더듬는 듯하다.
고요함은 조급함을 이기고, 추위는 더위를 이기는 법이다.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름이다.
 
- 신영복. 2008.『강의』. 돌베개.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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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다.
Science is what you know, philosophy is what you don't know.
 
송상용(과학기술학자) 
 
철학과 과학의 관계를 설명하는 버트런드 러셀의 상당히 명쾌한 말이다. 그렇게 구분을 해서 우주에 대해 우리가 아무것도 몰랐을 때 도대체 우주는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고 탐구한 것이 철학이라고 한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우주에 대한 뭔가 알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은 과학으로 넘겨주고 철학은 계속 모르는 것을 탐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론이 천문학으로 독립해나가고 또 영혼의 문제 등을 철학에서 탐구했는데 그것을 조금 알게 된 부분은 심리학으로 넘어가고...... 이런 식으로 철학은 개별과학을 계속 독립시켰다.

 

그러면 이와 같이 다 과학으로 넘겨주면 철학의 역할은 무엇이냐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실지로 그런 경향 때문에 철학의 위기가 얘기될 때가 있었다.
 
리어왕이 딸들에게 땅을 다 나눠주고 나중에는 황야에서 울부짖고...... 철학의 가련한 운명이 아니냐 이런 얘기까지 나왔는데 사실 우리가 수학에서 무한이라 정의함은 거기다 보태도 무한이고 빼도 무한이기 때문에 결국 아무리 가감을 해도 무한은 무한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철학에서 아무리 살림을 많이 낸다고 하더라도 철학의 영역은 계속 무한한 것으로 남는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영국의 과학자 보일(1627~1691)이 이전의 화학과 다른 점은, 물질에 관한 신비적인 설명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보일에게는 화학물질이 왜 그렇게 변하느냐라는 것이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화학물질이 변하되 ‘왜?’가 아닌 ‘어떻게’ 변하는가?를 중점적으로 보는 것이 보일의 목적이다.

 

물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무거운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느냐?라는 질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이라면 갈릴레오는 거기에서 ‘왜’를 제거하고 무거운 물체가 ‘어떻게’ 떨어지느냐, 또 속도가 ‘어떻게’ 변하느냐는 것이 갈릴레오의 관심이었다.

 

‘왜’에서 ‘어떻게’로 넘어가는, ‘why’가 아니라 ‘how’로 넘어가는 이것이 바로 과학혁명의 특징이다.

 

- 출처 :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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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소리]남원지역 민간인희생 사건

2008/11/07 18:32
한국전쟁 당시 군경 남원 주민 90명 학살
'수복 공비토벌 과정서 집단총살, 칼로 목을 베기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당시 남원지역에서 군과 경찰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의 진실을 규명했다.

진실화해위원회(위원장 안병욱)는 전쟁기 1950년 12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남원 일대에서 수복과 공비토벌 과정에서 국군 11사단 군인과 경찰에 의해 90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남원 대강면, 주천면, 산내면, 산동면 등에서 인민군 부역혐의자와 좌익 가족 등 90명의 희생을 확인했다. 신원을 확인한 희생자가 90명이고 일가족이 몰살됐거나 유족이 타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 조사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최소한의 희생자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당시 전차공격대대를 비롯한 11사단 군인들과 경찰은 남원지역에서 공비토벌과 빨치산 거점 제거를 이유로 빨치산이 거쳐갔던 마을의 주민들 중 청장년을 선별해 무차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군과 경찰은 마을주민들을 집단총살하기도 하고 부역혐의자나 좌익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친인척까지 몰살시키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주민 중 일부를 일본도로 목을 베어 살해하기도 했다. 남원 산내면에서는 ‘손을 들라’는 군인의 지시를 무시한다며 청각장애인을 사살하기도 했다.

당시 군인들이 빨치산이 거쳐간 지역의 주민들을 의심해 임산부를 비롯해 고령의 여성, 당시 면장을 포함한 지역의 지주들까지 살해하는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다.

▲<육군본부,『한국전쟁사료』60권, 273쪽>
(3)남원군 주천면 내기리 급 고촌리 전과
      1.단기4283년 11월 20일
      3.전과 ②지방세포원 사살 32명
             ③세포원가옥200호소각,삐라다수포획

진실화해위원회는 육군본부의 『한국전쟁사료』를 통해 국군 11사단 소속 전차공격대대가 남원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벌인 사실과 전과(戰果)기록 등을 확인했다. 당시 군은 인민군과 교전 중 지방 세포원 등 적을 사살한 것으로 상부에 보고됐지만 이들은 무고한 민간인이었다.

위원회는 “사건이 전시 계엄하에 발생했다고 해도 군인과 경찰이 재판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적에 도움을 줬다는 의심만으로 비무장·무저한의 민간인을 집단총살하거나 칼로 목을 베어 살해한 행위는 야만적 행위”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는 헌법상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하고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 사건의 책임이 당시 군경을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던 국가에까지 귀속된다”며 “국가의 공식사과와 위령사업의 지원과 군인과 경찰을 대상으로 한 평화인권교육 실시 등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한편 위원회는 남원뿐 아니라 나주군에서 군․경의 토벌을 피해 피신한 주민 등 133명, 김포지역은 인민군 점령시기 부역 혐의자와 그 가족 등 110명이 희생된 것으로 확인했다.

출처 : http://www.cham-sori.net/        2008-11-06 11:11:50   박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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