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김 훈의 소설에 푹 빠져서 급기야는 [칼의 노래]을 베껴쓰고 있었다.

칼의 노래는 죽음의 노래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매력적이다.

그 와중에 [자전거여행]과 [내 젊은 날의 숲]을 읽었다.

자전거 여행은 차분하고 끈질긴 여행이었고,

(내 젊은 날의) 숲의 풍경은 장엄했으며, 숲처럼 우거진 (젊은 날의) 인생은 쉼없이 끈적거렸다.

 

작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을 숨도 안쉬고 읽은 적이 있다.

달이 두개 있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외수의 [장외인간]을 보면, 달이 없는 세상이 펼쳐진다.

왜 달 이야기일까?......

 

요즘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 책들을 본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정치의 계절은 지나가버린 뒤였다. 한때는 시대를 뒤흔든 거대한 태동으로 보였던 몇몇 물결들도 마치 바람을 잃어버린 깃발처럼 기운을 잃고 색깔을 잃어버린 숙명적인 일상 속에 삼켜져 갔다. (79쪽)

 

나는 몹시 지쳐 있었다. 촉촉히 내리는 비가 묘비墓碑처럼 세워진 빌딩 숲을 소리없이 적시고 있었다. (128쪽)

 

그건 오열도 아니었다. 마치 그녀의 기관지에 구멍이 뚫려 숨을 쉴 때마다 거기에서 공기가 새고 있는 듯한 소리였다. (186쪽)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늘 어떻게든 다른 인간이 되려고 했던 것 같아. 나는 늘 어딘가 새로운 장소에 가서, 새로운 생활을 하곤 했어. 거기에서 새로운 인격을 갖추려 했다고 생각해. 나는 이제까지 몇 번이나 그러기를 되풀이해왔지. 그것은 어떤 의미로는 성장이었고, 어떤 의미로는 인격의 가면을 교환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지. 하지만 어쨌든 나는 또 다른 내가 되는 것으로서 이제까지 내가 안고 있던 무엇인가로부터 해방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야.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그러길 원했고, 노력만 한다면 언젠가는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어. 하지만 결국 나는 어디에도 다다를 수 없었던 거 같아. 나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일 수밖에 없었어. 내가 안고 있던 뭔가 빠지고 모자란 결핍은 어디까지나 변합없이 똑같은 결핍일 뿐이었지. 아무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풍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의 톤이 바뀌어도 나는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어. 내 속에는 늘 똑같은 치명적인 결핍이 있었고, 그 결핍은 내게 격렬한 굶주림과 갈증을 가져다주었어. 나는 줄곧 그 굶주림과 갈증 때문에 괴로워했고,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괴로워할 거야. 어떤 의미로는 그 결핍 그 자체가 나 자신이기 때문이지. 난 그걸 알 수 있어. ......(생략). (325-326쪽)

 

방의 공기가 조금씩 옅어지는 것처럼 내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줄어 들어가는걸요. 그럴 때는 죽는 것 따위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죠. (327쪽)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바다에 내리는 비를 생각했다. 광활한 바다에,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내리는 비를 생각했다. 비는 소리도 없이 해수면을 두드리고, 물고기들조차 그 비를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334쪽)

 

*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옮김, 2007,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문학사상사, ( )는 쪽수.

 

 

- 덧붙임 :  달은 사랑과 죽음을 말하고 있다.

 

1.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 등장하는 하지메와 시마모토

 

나는 손을 뻗어 시마모토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나는 그녀의 귀를 만지고 그녀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시마모토의 몸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녀는 마치 생명 그 자체를 흡입하려는 듯이 내 페니스를 쉴 새 없이 빨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마치 뭔가를 그곳에 전하려는 듯이 스커트 아래에 있는 자신의 성기를 쓰다듬고 있었다. 잠시 후 나는 그녀의 입 속에서 사정했고, 그녀는 손의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 정액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핥아 마셨다.

......(중략)......

나는 그녀의 원피스를 벗기고 속옷을 벗겼다. 그리고 그녀를 바닥에 눕히고 온몸에 키스했다.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바라보며, 그 몸을 손으로 만지고 입맞춤했다. 나는 그 몸을 확인하고 기억했다. 나는 아주 긴 시간 동안 그렇게 했다. 오랜 세월이 걸려 가까스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나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천천히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잠든 건 동이 트기 전이었다. 우리는 바닥 위에서 몇 번인가 몸을 섞었다. 우리는 부드럽게 몸을 섞기도 하고, 그리고 격렬하게 섞기도 했다. 도중에 한 번 내가 그녀 속에 들어가 있을 때 그녀는 감정의 끈이 끊어진 것처럼 격렬하게 울었다. 그리고 주먹으로 내 등과 어깨를 세차게 쳤다. 그동안 나는 그녀의 몸을 꼭 껴안고 있었다. 내가 껴안고 있지 않으면 시마모토는 그대로 흩어져버릴 듯이 보였다. 나는 달래듯이 그녀의 등을 계속 쓰다듬었다. 나는 그녀의 목덜미에 입 맞추고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내렸다. 그녀는 이미 냉정하고 자기 자제력이 강한 시마모토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 그녀 마음의 저 밑바닥에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 조금씩 녹아내려 표면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듯했다. 나는 그 숨소리와 먼 태동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꼭 껴안고 그 떨림을 내 몸 안에 받아들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옮김, 2007,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문학사상사, 287-290쪽)

 

2. 김 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 등장하는 이순신과 여진

 

그날 밤, 나는 두 번째로 여진을 품었다. 그 여자의 몸은 더러웠다. 그여자는 쉽게 수줍음에서 벗어났다. 다리 사이에서 지독한 젓국 냄새가 퍼져나왔다. 그 여자의 입속은 달았고, 그 여자의 몸속은 평화로웠다. 그 평화에는 다급한 갈증이 섞여있었다. 새벽에 나는 품속의 여진에게 물었다. 밝는 날 어디로 가겠느냐...... 나의 실수였다. 나으리, 밝는 날 저를 베어주시어요...... 그 여자의 목소리는 진실로 베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를 부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여자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담벽에 걸린 칼에 달빛이 비치었다. 칼날의 숫돌 자국 속에서 달빛이 어른거렸다. 그 여자의 머리 속에서 먼지와 햇볕의 냄새가 났다. 나는 더욱 끌어안았다. 그 여자는 몸을 작게 웅크리고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여자의 작은 손이 내 등판의 식은땀을 씻어내렸다. 그 여자의 빗장뼈 밑에서 오른쪽 젖무덤까지, 굵은 상처 자국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등에도 아문 지 오랜 상처 자국이 있었다. 나는 상처에 관하여 묻지 않았다.

달이 구름을 빠져나오면서 다시 칼날을 비추었다. 달은 칼의 숫돌 무늬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칼빛이 뽀앟게 살아났다. 칼은 인광처럼 차가워 보였다. 가늘고 긴 목이 내 품속에서 떨리면서, 그 여자는 다시 말했다. 나으리 밝는 날 저를 베어주시어요...... 이 세상이 아닌 곳으로 저를 보내주시어요...... 나는 다시 그 여자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그 여자의 신음은 낮고도 애절했다. 나는 그 여자를 안듯이 그 여자를 베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칼날을 여자의 몸속으로 밀어넣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 여자를 안는 힘으로 세상의 적을 맞을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몸을 떨었다.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 나는 무인이 아니었다. 아침 숲에서 새떼들이 깨어나 지껄였다. 아침에 나는 그 여자의 행선지를 묻지 않았다.

(김 훈, 2009. [칼의 노래], 생각의 나무, 47-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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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죽으면 끝

2011/05/16 15:45

1. 영화 [박쥐]의 마지막 장면, 태양이 떠오르면서 죽음 직전의 흡혈귀 한쌍의 대화.


- 태주씨랑 오래오래 살고 싶었는데, 지옥에서 만나요
- 죽으면 끝, 그동안 즐거웠어요 신부님

 

2. 스티븐 호킹 박사도 '죽으면 끝'이라고 말했다.

 

I have lived with the prospect of an early death for the last 49 years.

I'm not afraid of death, but I'm in no hurry to die. I have so much I want to do first.

I regard the brain as a computer which will stop working when its components fail.

There is no heaven or afterlife for broken down computers; that is a fairy story for people afraid of the dark.

 

3. 우리들 생애 가장 위대한 가치를 찾고 (그것을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So here we are. What should we do?

- We should seek the greatest value of our action.

 

*출처: http://www.guardian.co.uk/science/2011/may/15/stephen-hawking-interview-there-is-no-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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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가는 길

2011/05/07 13:24

나는 어머니의 늙음을 걱정하고,

어머니는 나의 혼자됨을 걱정한다.

 

우리들의 걱정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항상 간단한 전화통화로 끝난다.

그러나 어머니와 아들은, 서로 다른 구체적 삶의 어려움 앞에서는 침묵한다.

 

- 아무 일 없습니다. 별 일 없으시죠?

- 나야 먼 일이 있데. 자식들이 건강하면 나도 건강하다. 항상 조심해이...

- 고맙습니다.

 

[해남 가는 버스에서. 2011. 5. 7. 오후 1시 45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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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1

2011/05/01 14:48

'김 훈 [칼의 노래]' 를 보고 쓰다가,

엊그제 비가 많이 내린 밤에, 먹다 남은 막걸리를 꺼내 마신다.

시간을 보니 컬투쇼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쓰기를 멈추고 듣는다.

 

날짜를 보니 '노동자의 날'이다.

나는 서울시청 앞에서 열리는 노동자대회를, 부끄러워서 가질 못한다.

나의 부끄러움은 막걸리를 먹고 달아오른 나의 얼굴이 대신한다.

 

나의 반성과 성숙은 아직 어설프다.

진심은 나에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내가 혼자서 끈질기게 감당해야 할 외로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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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

2011/04/28 21:31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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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나의 것

2011/04/20 07:27

어제 저녁 지독한 외로움이 몰려왔다.

야근을 하고, 소주를 한 잔 마시고, 집에 와서 캔맥주를 마셨다.

전기밥솥의 밥을 꺼내 누룽지를 만들어도 그리 즐겁지 않았다.

라디오나 음악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나의 외로움을 밀쳐낼 능력이 없었다.

 

아침 5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에 눈을 떴다.

몸과 입 속에는 약간의 술냄새가 남아있다.

자고나니 어제의 외로움이 아득하다.

나는 아직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삶의 지혜가 미숙하다.

 

내 삶의 처지를 스스로 수긍하고 인정하는 것.

그러나 나는 나의 외로움을 삼켜서 먹어버릴 수 없다.

 

술 정신에 만든 누룽지 끓여먹고 출근해야겠다.

 

외로움은 내 삶의 동반자, 외로움은 나의 것.

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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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Never Let Me Go

2011/04/10 21:01

인간을 복제하여 장기를 기증하고, 인류의 평균수명은 100년을 넘긴다.

 

복제인간, 자신의 내장과 육신을 버려야 삶이 완성되는 자들.

그들의 삶과 죽음은 타인의 위태로운 생명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이 생존하면서 느끼는 사랑과 연민은 너무 깊어서 고요하다.

 

나는 죽음을 알 수 없어 이들의 깊이를 잴 수 없고, 이들의 사랑을 알 수 없다.

단지 너무 깊어서 아프다.

 

- 2011. 4. 10. 16시 50분 씨네큐브 광화문.

영화가 참 조용하다.

영화를 보고, 복제인간의 명확한 죽음과는 다른 미래의 불확실성을 확보한 나, 나는 행복한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한다.

 

밖에 나오니 짧은 비가 온다.

황사와 방사능에 오염된 비를 피하지 못하고 집으로 걷다가 뛰어간다.

내 어릴 적보다 세상이 참 많이 더러워졌다.

올해 봄비는 사랑과 추억을 잉태하지 못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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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리, 사랑한 날들

2011/04/07 22:39

만남과 헤어짐은 인간의 뜻이 아니다

신의 의지이다.

 

인간은 단지 떠날 뿐.

 

 

- 2011. 4. 7. 19시. 씨네큐브.

사랑에 미친 영화, 깊고 격렬한 사랑을 경험한 자들에게 추천함.

 

 

- 나는 저녁에 영화를 보았다, 다음 날 아침에 이 영화를 다시 되새겼는데,

끝없이 싸우고 사랑하는 그/그녀가 이룬 미완의 사랑...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반야심경의 한구절.

 

故心無罣碍  無罣碍故  無有恐怖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는 까닭에 두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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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주]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2011/04/04 10:24

 

죽음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면 삶도 정면으로 보지 못한다.

 

사람이란 얼마나 독한 짐승이냐. 사람이 다닌 길에는 잡초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그러니 풀 한 포기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존재가 사람이다.

독하면서도 슬픈 짐승,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동물이 되자

 

멀리 보면 작게 보이는 법, 사람 속으로 더 가까이 가자. 가까이 가면 크게 보인다.

산이 가르쳐준 말씀이다.

 

밥은 그릇을 닮고

정신은 육체를 닮고

눈물은 인간을 닮는다. (이세룡의 시 '눈물')

 

가난은 틀림없이 천수를 누릴 것이다.

발가락은 신발을 닮고 몸은 무덤을 닮는다.

 

- '유용주,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2002, 솔출판사.' 에서 발췌함.

 

 

- 대학원 다닐 적, 한겨례 신문 연재를 통해 유용주의 글을 읽은 인연으로,

지난 주말, 나는 4시간이 넘는 무궁화호 기차에서 이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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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스 스피치

2011/03/25 11:08

'킹스 스피치'

2011. 3. 24. 저녁 8시 35분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보았다.

 

영화의 배경은 1939년, 영국의 군주 조지 6세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지6세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이다.

조지6세는 어렸을 때부터 말더듬이였다.

조지 6세의 형이 이혼예정인 유부녀와의 사랑을 선택하고 왕위에서 물러나자, 조지 6세 영국 국왕이 탄생했다.

 

이 영화의 매력은,

국왕(왕족)의 일상과 영국민(평민)의 생활이 물 위에 뜬 기름처럼 분리되어 있지 않고 끈질기게 섞인다는 점.

매춘부 광고가 나오는 신문에 광고를 내고 소박하게 혼자 영업(?)하는 언어치료사가 왕자(조지 6세)의 말더듬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부딪침이 그렇다.

제2차대전이 시작될 무렵,

국왕(조지 6세)이 전쟁을 선포한다는 연설을 해야 하는데,

이 전쟁선포 연설를 하면서 말더듬이 조지 6세가 느끼는 긴장과 그 조심스러운 리듬이

다가올 전쟁에 대한 긴장과 공포를 느끼는 국민과 하나가 된다.

국민들이 왕에게 반하는 순간, 매력이 탄생한다.

 

성질 급하게 보지 말고 차분히 감상하면 좋을 듯. 혼자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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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왕삼매론

2011/03/23 22:03

1.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 念身不求無病 )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겨 반드시 계를 파하고 도에서 물러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2. 세상을 살아감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 處世不求無難 )

곤란이 없으면 반드시 교만심을 일으켜 일체를 속이고 억압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환난으로써 해탈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3. 마음공부를 함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 究心不求無障 )

장애가 없으면 배움이 건너뛰어 반드시 얻지 못하고 얻었다고 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장애로써 소요(逍遙)를 삼으라 하셨느니라  

 

4. 수행하는데 마장 없기를 바라지 말라. ( 立行不求無魔 )

마장이 없으면 서원이 굳건하지 못하여 반드시 깨닫지 못하고 깨달았다고 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5. 일을 계획함에 쉽게 이루기를 바라지 말라. ( 謀事不求易成 )

일을 쉽게 이루면 경솔하고 거만하여 반드시 유능함을 자칭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일은 어려움으로써 안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6. 벗을 사귀되 내게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 交情不求益我 )

내게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여 반드시 남의 허물을 보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나를 해롭게 하는 벗으로써 자량(資糧)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7. 남이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 於人不求順適 )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자만심이 생겨 반드시 내가 옳다는 생각에 집착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내 뜻을 거스르는 사람으로써 원림(園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8. 덕을 베풀되 과보를 바라지 말라. ( 施德不求望報 )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마음이 생겨 반드시 명예를 드날리고자 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덕을 베풀되 헌 신처럼 버리라 하셨느니라.  

 

9.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 見利不求霑分 )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동하여 반드시 부당한 이득이 나를 해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적은 이익으로써 부귀를 삼으라 하셨느니라.  

 

10. 억울함을 당하여 밝히려고 하지 말라. ( 被抑不求申明 )

억울함을 밝히고자 하면 인아상이 일어나 반드시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함으로써 수행의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 중국 묘협스님이 지은‘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 22편 중 제17편 ‘십대애행(十大礙行: 열 가지 큰 장애가 되는 행)」 에 나오는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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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2011/03/21 23:03

나의 마음이 내 마음을 안다

들여다보니 그동안 얼어붙은 마음이 서서히 풀린다

봄인가 보다......

 

나는 올해 행정심판 업무를 시작하였다

나라의 법을 좌표로 삼아 하는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은 그 좌표에 그려진 눈금을 잘 보아야 하고 

그 눈금이 새겨진 잣대를 이 세상에 들이대야 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낯선 법조문들이 항상 나를 매달고 다닌다

나는 법조문에 매달려서 매일 법을 공부한다

지금 하고 있는 나의 일을  잘하기 위해서다

 ......   ......

 

지난 주 이남곡선생님의 논어연찬을 다녀왔다

스스로 찾아간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노력이 멈추지 않는다면 나는 전진할 뿐이다

그러나 내 전진의 방향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해가 지고 어둠이 시작되면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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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신묘년

2011/03/07 09:06

나는

그물코에 걸리지 않는 물고기처럼

유유하게 흘러간다.

 

조용히 그리고 여유롭게

기다릴 뿐이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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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저린 외로움

2011/02/20 23:35

뼈저린 외로움


외로움을 겁내지 말라.
그대가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대의 뼈저린 외로움은 물리칠 방도가 없으리니.
외로움은 평생의 동반자, 비록 그대가 마침내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다 하더라도
그놈은 한평생 그대 곁을
떠나는 법이 없으리라.

- 이외수의《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중에서 -

 

 

*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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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2011/02/09 04:02

나는 어쩌면 다시 돌아갈지 모르겠다

내 마음의 평온함을 찾아서 말이다.

 

나는 아직 자유를 알지 못하고, 그래서 나의 길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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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자유에 대하여

2011/02/07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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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2011/01/12 00:04

자존감


진정으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스스로를 귀히 여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귀하게 여길줄 안다.
나만 귀하다고 여기는 자만심과는 다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자존감이다.


- 고도원의《잠깐멈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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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니라 사랑이

2011/01/09 01:59

이제야 알겠다

사람이 아니라 사랑은,

가슴에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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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다시 서울

2011/01/06 20:51

2011년, 다시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마흔이 되었다

불혹(不惑)의 나이

나는 미혹과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지혜와 인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내 삶을 위해 노력할 뿐,

그리고 그때마다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天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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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탐독-유목적 사유의 탄생

2010/12/21 07:13

•  이정우, 2006, [탐독-유목적 사유의 탄생], 도서출판 아고라.  (소제목은 임의 작성임)

 

 

[책]

새 책을 구입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들 중 하나이다. 나는 책장을 넘기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 거기에서 내 영혼과 사유에 영향을 끼칠 글들을 발견한다. 내가 쓰는 글들에는 어느새 그런 글들의 흔적이 묻어 나온다. 책을 통해서 내 영혼은 다른 영혼들을 만나다. 그들과 대화한다. (388쪽)

 

[타인의 고통과 사랑]

추상적인 사랑은 쉽게 말할 수 있다. 고통 받는 타인들을 신문이나 TV에서 보면 누구나 분노와 연민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덕이나 윤리, '인류에 대한 사랑' 같은 고귀한 가치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타인들이 그 가장 적나라한 모습으로, 그 가장 추한 모습으로 자기 앞에 나타났을때, 자기에게 손을 내밀었을때, 그의 손을 덥석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바로 그 타자들이 자신과 떨어져 있기에 마음 놓고 고귀한 가치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이반의 말처럼 "추상적으로라면, 그리고 때때로 멀리 떨어져 있다면 가까이 있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지만, 바로 곁에 두고서는 거의 절대로 사랑할 수 없어."([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V, 4) (29~30쪽)

 

[공간과 시간 그리고 장소]

인간은 시간 앞에서는 무력하지만 공간 앞에서는 무한한 능력을 발휘한다. 시간은 털끝만큼도 건드릴 수 없지만 공간은 오리고 붙이고 변형시키는 등 거의 무한에 가까운 조작을 행할 수 있지 않은가. 공간 앞에는 조작하는 인간이 있지만, 시간 앞에는 명상하는 인간이 있다. 과학이 공간과 더불어 사유해왔다면, 인문학은 시간과 더불어 사유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좁은 의미)과 장소는 다르다. 장소는 사물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공간은 사물들을 담고 있는 무엇이다. 장소에는 인간관계, 의미와 가치, 역사가 묻어 있지만, 공간은 그저 빈 터일 뿐이다. (188쪽)

 

[곡선이란 참 매력적인 존재다]

직선으로 된 도형들은 어떻게든 분할해서 면적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곡선의 경우는 다르다. 곡선이란 참 매력적인 존재다. 얼마나 많은 화가들이 인체 특히 여체女體의 신묘한 곡선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가. 곡선은 '매순간' 계속 구부러진다. (192쪽)

 

[사유한다는 것은 구체와 추상을 끝없이 오르내리는 것이다]

사유한다는 것은 구체와 추상을 끝없이 오르내리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내가 소은 선생에게서 배운 핵심적인 사유 방식인 것 같다. 가장 구체적인 것(개체들, 사건들, 마주침들)에서 추상적인 것(존재, 우주, 생명) 사이를 끝없이 왕복 운동하기. 그 사이에 분포되어 있는 어떤 분야, 전공, 영역, 사조에 정주定住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까지 가로지르면서 사유하기. 이 오르내림, 가로지르기, 유목에의 깨달음으로부터 철학자로서의 내가 탄생했다. (320쪽)

 

[사회과학과 역사]

사회과학은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형식적 틀이고 역사는 현실 자체의 기록이다. 형식적 틀은 어디까지나 틀일 뿐이다. 그것이 현실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복잡하고 우발적이고 생성하는 현실을 이론적 틀이 온전하게 포착하지는 못한다. 반면 역사는 현실을 충실히 기록해주지만 현실을 꿰뚫어보는 이론적 깊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또 사실 '기록' 그 자체가 이미 어떤 이론적 틀을 전제한다). 두 담론의 수준 높은 통합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통합은 또한 치밀한 철학적 사유를 요청한다. (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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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매혹되지 말라

2010/12/03 00:53

1966년부터 징병검사를 기피하기 시작하여 급기야 1973년과 1974년에 행방불명되었던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2010년 11월 24일 연평도 피폭현장에 나타나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말했다.

 

이에 안대표를 수행한 육군 중장 출신 황진하 의원은 작은 보온병은 76.1mm 같고, 큰 보온병은 122mm 방사포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화 [넘버3]에서 깡패 송강호는 헝그리정신을 부하들에게 설명하면서 "현정화 라면만 먹고...금메달 땄잖아..."라고 말했다. 이에 송강호 부하는 "임춘애입니다. 형님"이라고 말했다. 그는 송강호에게 뒤지게 두들겨 맞았다.
 

현재의 권력은 깡패들 자존심보다 못하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정신 말이다.

어쩌면 황진하 의원은 두들겨 맞기 싫어서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맞장구쳤을까?

 

푸코는 들뢰즈의 [앙띠오이디푸스]서문에서 '권력에 매혹되지 말라'(*)고 경고했다.

권력에 매혹되면 자기 눈앞의 것도 제대로 보질 못한다.

권력이 보온병을 포탄으로 바꿔버렸다.

 

* Michel Foucault, 'PREFACE' in Gilles Deleuze and Félix Guattari, ANTI-OEDIP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trans. Robert Hurley, Mark Seem, and Helen R. Lane(Minneapolis: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0). pp. xi~xiv. 조형근 역, '[안티오이디푸스] 영역판 서문', [탈주의 공간을 위하여](서울:도서출판 푸른숲, 1997), pp.355~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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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닭하고 해봤어?

2010/11/28 23:29

술에 취하면 오문수는 모든 논리력을 잃었고 환상과 현실을 뒤섞어서 마구 주절거렸는데, 이상하게도 술 취한 그가 헛것을 헛되이 지껄일 때 그의 묘사력은 구체적인 사실성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오문수는 씹던 안주를 침을 뱉듯이 땅바닥에 뱉어내고 말했다.

 

- 이 안주가 닭이잖아! 형, 닭하고 해봤어? 난 얼마 전에 닭하고 했다. 의자에 앉아서 암탉을 뒤로 끌어안고 밀어넣었어. 암탉 밑구멍이 작지 않아. 그러니까 알을 낳지. 처음엔 빡빡했는데, 끄트머리를 밀어넣으니까 쑥 들어갔어.

 

오문수는 식탁에 이마를 대고 땅바닥을 향해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머리통에 대고 소리질렀다.

 

- 야, 알았어. 학교 때려치우고 맘대로 붙어라.

- 쑥 들이미니까, 닭이 홰를 치면서 퍼덕거렸어. 더 들이미니까 닭이 목을 빼고 울더군. 암탉이 꼭 수탉처럼 길게 울었어. 새벽이 오는 것처럼 말야. 새벽이......

- 그래 좋더냐?

- 뜨거웠어. 뜨겁고 오돌도돌했어. 그게 닭인가봐. 형은 닭이 뭔지 알아? 형도 한번 해봐.

- 너나 실컷 해라. 이 쓰발놈아.

 

홀 안은 닭 모래집 굽는 연기로 자욱했다. 그날 나는 술 취한 오문수를 혼자 남겨두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 김 훈, 2006, '뼈', [강산무진], 문학동네, 144~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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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풍선 인형

2010/11/28 13:15

......옥인동 네거리에서 신장개업한 호프집에 네온사인이 켜졌다.

호프집 앞 인도에서 풍선인형이 춤을 추고 있었다. 어른 키 두 배만한 인형이었다. 인형 속에서 전기 모터가 일으키는 바람의 힘으로, 인형은 팔다리가 꺾이고 허리가 뒤틀리면서 춤을 추었다. 땅바닥에까지 닿았던 대가리가 하늘로 치솟았고 팔다리는 앞으로 꺽이고 뒤로 꺾였다. 무릅이 접히는 동시에 두 팔로 만세를 불렀고 가랑이가 비틀렸다.

 

 

- 김 훈, 2006, '배웅', [강산무진], 문학동네,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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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오줌

2010/11/28 13:13

아라는 치마를 올리고 속곳을 내렸다. 엉덩이을 까고 주저앉아 가랑이를 벌렸다. 허벅지 안쪽에 풀잎이 스치자 팔뚝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아라는 배에 힘을 주어 아래를 열었다.

 

쏴 소리를 내면서 오줌줄기가 몸을 떠났다. 떡깔나무 마른 잎에 부딪칠 때 오줌줄기는 물방울로 흩어지면서 탁탁 튀는 소리를 냈다. 침전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땔 때, 마른 삭정이가 타들어가는 소리와도 같았다. 덜 마른 밤나무 잎에 부딪힐 때 오줌소리는 젖어서 낮아졌고 돌멩이 위에 낀 이끼에 부딪힐 때 소리는 돌 속으로 스며서 편안했다. 오줌줄기 부딪히는 소리가 돌 속으로 스미자, 오줌줄기가 몸을 떠나서 쏴-소리가 크게 울렸다. 몸속에서 살이 울리는 소리가 가랑이 사이의 구멍으로 퍼져나오고 있었다. 오줌을 눌 때마다 그 소리는 낯설고 멀게 들렸고, 소리를 내고 있는 살 구멍의 언저리가 떨렸다.

 

아라는 놀라서 오줌줄기의 방향을 바꾸었다.마른 잎이 찢어지고 흙이 튀었다. 아라는 가랑이를 벌려서 오줌줄기를 펼쳤고 가랑이를 오므려서 오줌줄기를 모았다. 땅은 부채 모양으로 젖었다.

 

아라는 대궐 침천 뒷숲에 오줌 누는 자리를 정해두고 있었다. 사슴우리를 지나서 작은 개울을 건너면 오리나무, 떡깔나무, 밤나무가 들어선 숲이 있었다. 바위가 뒤쪽을 막은 그늘 아래, 아라는 판판한 돌멩이 두 개를 주워다놓고 그 위에 쪼그리고 가랑이를 벌렸다. 바위 밑에 물이 고여 있었는데, 겨울에도 차지 않아서 뒷물하기에 좋았다. 늦가을부터 봄까지 오줌줄기는 마른 잎에서 바스락거렸고 겨울에는 오줌줄기가 눈 속으로 파고들면서 더운김이 올랐다. 겨울 눈밭에 쪼그리고 앉았을 때, 벌린 가랑이 밑으로 찬바람이 스쳤고 몸속의 살들이 오줌줄기를 따라서 바람 속으로 비져나올 듯 설레었다.

 

아라는 엉덩이 밑에서 피어오르는 더운 김 속에서 제 몸의 냄새를 맡았다.

 

 

- 김 훈, 2010, [현의 노래], 생각의 나무, 65~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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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이 지나면서...

2010/11/18 01:41

진실화해위원회를 떠나서 자유인이 된지 석달이 넘어간다

이제 겨울 초입이다 춥다

지난 석달을 지내면서 보고, 듣고, 읽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돌이켜본다.

 

[마음공부]

- 8.20~31 : 제따와나 호흡명상

- 이남곡 선생님과 대화

- BTN불TV 동영상 강의,  [근본불교의 가르침] 1~8강, 아상가 교수

- [금강경]

- 파욱 또야 사야도, 일묵스님 옮김, 2010, [열반에 이르는 길-사마타 위빠사나], 이솔출판

- 우 레아따, 레이 옮김, 2008, [깨어나라, 오 세상이여!], 명상선원 오솔길

- 팃낫한, 이도흠 옮김, 2009, [엄마], 도서출판 아름다운 인연

- 용수 지음, 정화 풀어씀, 2007, [중론中論], 도서출판 법공양 ; 읽다가 포기, 다시 시도

- 대림스님 각묵스님 공동번역, 2008, [아비담마 길라잡이 상/하], 초기불교연구원 ; 조금 읽다가 포기, 다시 시도

 

[생활]

- 전북 장수 논실마을학교와 멍덕골

- 서울, 전주, 해남

- 가끔 낮과 밤이 바뀜

- 등산 : 전주 모악산, 집근처 야산

 

[소설]

- 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옮김, 2009, [1Q84] 1/2/3권, 문학동네

- 박경리, 2002, [토지] 1권, 나남 : 읽다가 포기

- 김 훈, 2005, [개-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푸른숲

- 김 훈, 2007, [칼의 노래], 생각의 나무

- 김 훈, 2007, [현의 노래], 생각의 나무 ; 읽고 있음

- 김 훈, 2009, [남한산성], 도서출판 학고재 ; 현의 노래 읽고 바로 읽을 예정, 책 확보

 

[영화]

- [부당거래], 류승완 감독, 2010

- [해결사], 권혁재 감독,  2010

- [시], 이창동 감독, 2010

- [시라노; 연애조작단], 김현석 감독, 2010

- [레지던트 이블4 : 끝나지 않은 전쟁 3D], 폴 W.S. 앤더슨 감독, 2010

-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감독, 2010

- [비밀애], 류훈/권지연 김독, 2009

- [안티크리스트], 라스 폰 트리에 감독, 2009

- [천국의전쟁],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감독, 2004

- [로망스],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 1999

- [룸 인 로마], 홀리오 메뎀 감독, 2010

- [레이디 채털리], 파스칼 페랑 감독, 2006 

 

[기타]

- 우석훈 블러그, 박노자 블러그,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딴지일보, 나라일터, 다음 아고라 매일 눈팅, 대법원홈피는 가끔, 페이스북 가끔...

- 술 : 서울은 돈암역 근처 단골 횟집과 막걸리 집, 전주는 오원집과 진미집, 집앞 포장마차, 모악산 근처 소고기집...

- 광주 노래방

- 담배는 꾸준히 레종 블랙

- TV 본 지 오래 됐고.

 

[며칠전에 울고...]

희귀질환 난치병으로 십수년을 고생했던 치옥이 형이 올해 음력 1월에 다른 세상으로 '가부렀다'고 뒤늦게 소식들음, 11월 치옥이 형 엄마 보고, 치옥이 형 보러 망월동 납골당 찾아가서 사진 보고 울었다. 사람은 보고 싶을때 봐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4. 7. 16. 광주 매곡동 서치옥)

 

형, 내가 서울 간 뒤로 한번 보러 간다는 것이... 이제는 사진으로 다시 보네

아직 형이 나한테 보낸 메일은 그대로 있는데 말이지

미안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어

형보러 망월동 가닌까 젊었을 때 아프기 전 사진이 있더라. 멋있더라

흰국화 한송이 놓고 왔어

미안해. 오래 있으면 한없이 울 것 같아서 조금 있다가 왔어

내가 겪었던 서울생활 스토리를 엄청나게 말하고 싶은데... 이제 사심없이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서울 가기 전에 한 명이 가고, 서울 갔다오니 한 명이 가버렸다)

형, 거기서는 건강한 생을 보내. 내가 기도할께.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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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후기

2010/09/09 00:10

가만히 눈을 감고 앉으면 평온함은 사라지고

온갖 기억과 생각들이 일어나고 또 일어난다

수많은 망상들...

그 망상에 온몸과 마음이 지쳐 비로소 호흡을 본다

그렇게 간신히 바라본 숨은 또다시 나타난 생각에 가려 사라진다

 

의식이 물질보다 빠르다

 

- 호흡명상을 다녀와서(8일이 지난 후)  2010.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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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따와나] 숨-붓다의 호흡 명상

2010/08/19 16:05

2010년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동안 제따와나 선원에서 준비한 호흡 명상 수련회이다

 

나는 2010. 8.20. ~ 8. 31. (원주 푸른솔 명상센터)로 마음을 내고 들어간다

몇 달 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시간.

 

그간의 탐욕과 거짓, 부정을 깊히 참회하고

올곧게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목숨을 걸고 정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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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찾아 떠난다

2010/08/03 11:42

8월이 시작되고 자연인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대학원을 나와서

광주에서 남원으로 장수로 전주로 그리고 서울로 그렇게 일을 한 것 같다

 

돌아갈려고 하니

이미 사라진 사람만 생각난다

 

2010. 8. 2. 월요일 오후 6시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그래도 다시 그 기억을 찾아 떠난다

발길 닿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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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왜 이 세상을 사는가?


만감: 일기장 2010/06/26 23:55  

출처 :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27598 (박노자 글방)

 

 

20년 전인가요? 불교에 대한 관심이 날로 싶어졌던 그 때에, 저의 한 대학교 동창생과 함께 불교 수행을 아주 오랫동안 해온 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 적이 있었어요. 그 동창생은 나중에 한국 무속에 대한 박사 학위를 받고 주평양 러시아 총영사까지 역임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때만 해도 불교에 아주 깊이 심취했었어요. 그 정신과 의사를 만났을 때에 불교 이야기부터 꺼냈는데, 우리에게 던진 첫 질문은 다음과 같았어요:

- 이게 (자신의 팔을 가리키면서) 싫은 것이죠? 고깃덩어리 속에서 살다가 지친 것이죠?

 

 

저는 답을 주저했었는데, 제 동창생은 당장에 "그렇다, 나는 왜 고깃덩어리로 태어나 살아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답했어요. 의사는, 그러면 근본적으로 불교적 성향이 맞다고 했었습니다. 불교를 일종의 염세적 성향으로 해석하는 건, 살려는 의욕을 잠재워야 하고 궁극적으로 인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 완전한 "무"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던 쇼펜하우어를 "불자의 모범"으로 보는 서양인의 편견인지 모르지만, 그 의사의 말은 자주 생각이 납니다. 사실, 저로서도 "산다"는 과정이라는 게 "낙"보다 "부담"으로 많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박노자"라는 이름이 붙여진 고깃덩어리는 각종의 요구가 하도 많아서 그런 것이죠. 그 고깃덩어리에 차에 희발유를 붓듯이 식음을 부어야 되고, 그 분비물도 배출시켜주어야 하고, 고깃덩어리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그 휴식 시간, 즉 수면시간도 지켜야 하고, 또 고깃덩어리가 많이 아프지 않게 자꾸 그 덩어리를 움직여야 하고, 또 그래봐야 계속 아프니까 결국 지쳐지는 것입니다. 누가 보면 특히 식음 섭취는 "즐거운" 과정으로 보이는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그것까지도 무거운 업보로 느껴집니다. 물론 여기에서 다소 내향적이고 염세적 성향 이외에 또 한 가지 요인은 있을 것입니다. 고깃덩이리를 먹여주기조차 어려운, 내지 그 무슨 인간 모습을 띤 나찰, 아수라들이 "나의" 고깃덩어리를 어디엔가 가두어놓고 죄를 덮어쒸는 딱한 상황이라면 "생존 투쟁"의 열기 속에서 삶이라는 업보의 괴로움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교적으로 편한 상황에 놓인 고깃덩어리라면 그걸 끌고 산다는 게 그저 괴로울 뿐이죠.

 

 

이걸 뼈저리게 느낀 사르트르와 같은 다소 예민한 서방의 중생들은, 일찌감치 고깃덩어리를 끌고 산다는 걸 "선택",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질 용기"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신도, 인간에게 내재돼 있는 그 어떤 "본성", "본질"도 없는 실존주의적 "자유"의 허공 속에서 인간이 끝없이 선택들을 함으로써 "자신"을 만든다는 논리입니다. 좋은 선택 - 예컨대 파쇼들과 싸우겠다는 선택 -을 했다고 해서 "잘했어"하고 은총을 베풀 신도 없고, 꼭 그 선택을 하게끔 만드는 불변의 도덕률도 없는데, 일단 그러한 선택을 함으로써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드는데에 일조한다는 건 공산당 지지자 ("동반자") 사르트르의 논리이었죠. 글쎄, 사르트르도 끝에 가서 "나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많이 버리신 것 같은데,  사르트르가 죽었을 때에 일곱살이었던, 아주 불행한 반동과 후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저로서는 아예 아무 확신도 가지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 유럽에서 보이는 자본주의의 야만화 정도 - 그 좋은 실례는 영국에서의 복지 국가의 거의 반쪽의 해체입니다 - 로 봐서는 저나 제 아이가 자연사할 수 있다는 데에 대한 확신도 전혀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공황과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 야만화하다가 어떤 일이 일어나게 돼 있는지 하도 책에서 많이 읽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냉정하게 따져볼 때에 인류 전체의 차원에서 사회주의보다 야만이 선택되어질 확률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자본과 국가가 부추기는 반이성, 비이성에 비해 개인의 이성도 아주 약하고 집단, 전체의 이성은 아예 보잘것도없습니다. 지금 4대강으로 생태가 망해가고 젊은 "백수"들이 취직자리가 전혀 안보여 절망에 빠지는 나라에서의 월드컵 열기를 한 번 보시고서, 이게 거짓이라고, 집단 이성이 정말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고 말씀해보시지요.

 

 

그러면, 망해가면서 언젠가 인류를 멸망시킬는지도 모를 정신병적 체제 하에서 이 고깃덩어리를 끌고 살면서 미륵보살의 하생도 야소기독의 재림도 후천개벽도, 심지어 무산계급 혁명의 필수적 성공도 믿지 않는 중생은, 왜 하필이면 진보정당 지지하고 정치색이 있는 글쓰고 난리칩니까? 사르트르는 "선택"을 이야기했지만, 저는 인간을 "선택"쯤이나 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로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존재이었다면 우리가 지금과 같은 더럽고 수치스러운 시대를 살지도 않았을 걸요. 저는 진보정당을 믿고 따르고 사회주의를 외치는 이유는, 아주 쉽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되든 (저는 낙관보다 비관에 더 기울입니다), 무산계급이 어떤 본질적 변혁을 할 수 있든 없든 (지금의 체제 포섭 정도로 봐서는 매우 어려우리라 봅니다) 사회주의적 전망이 인류에 있든 없든 (저는 꼭 있다고 자신과 남을 기만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냥 제 본능에 충실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본능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인터넷에서 (집에 바보상자가 없어서 세상을 접하는 루트가 인터넷뿐에요) 미제 군대가 아프간에서 또 몇 명의 마을 사람을 "테러리스트"라고 하여 무인비행기로 죽였다는 이야기를 볼 때마다 그냥 속이 뒤집어져요. 악마 파순을 제 얼굴 앞에서 보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꼭 불교를 믿어서도 그런 게 아니고 믿지 않았다 해도 똑같았을 거에요. 저는 제국의 폭력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그저 살고 싶지 않은 것이고 그게 제 본능입니다. 이 폭력의 근원이 자본체제의 이윤추구라는 걸 아니까 이 본능상으로 사회주의 할 수밖에 없어요. 고귀한 "선택"도 아니고 그저 본능대로 사는 것뿐이죠. 그래서 고깃덩어리라는 업보를 계속 지고 있는 한, 이 사회주의라는 말을 계속 화두로 삼아 사는 겁니다.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저는 자본주의적 세계라는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환자들이 집단적으로 언젠가 다 완쾌되리라 확신하지도 않아요. 굳이 확률을 따져보면, 환자들끼리 불놀이하다가 대형화재로 이 병원 전체가 전소될 확률은 더 높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고깃덩어리가 여기에서 서식하고 있는 이상, 고깃덩어리에 붓고 있는 식음에 대한 감사의 뜻에서라도 초보적 차원이라 해도 "치료 행위"를 계속 시도하는 게 "교환논리"상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영원불변의 도덕론을 별로 믿지 않아요. "나"의 고깃덩어리로서 필요하고 또 다른 고깃덩어리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복수의 상대자들과 성관계를 맺는 것도, 배고픈 사람으로서 빵을 훔치는 것도, 아프간에서 미군 폭격으로 모든 가족을 잃어 고아가 되는 사람이 무기를 들고 빨치산이 되는 것도, 저는 꼭 "죄악"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상황적, 역사적 도덕논리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영원불변의 원칙이 있다면 그게 "호혜성"의 원칙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받는 만큼 세상에 베풀라는 건 바로 이 원칙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옛날 스님네들이 이야기했던 "재시와 법시의 교환논리"이기도 하죠.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쩌면 법화경을 강독하는 것보다 만델 선생의 <후기 자본주의> 강독은 요익중생의 차원에서 더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불교는 전쟁과 같은 현상들을 개인적 심성의 차원에서 설명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이를 보충하여 집단의 차원에서 현대적 살육의 기원과 살육을 종식시키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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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2010/06/26 01:19

나는 남녀간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

終局에는 너무 세속적이다.

 

가장 숭고한 사랑은 神에 대한 사랑이다.

 

어쩌면 나는 인간에 대한 사랑에 대해 비극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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