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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0 [일기]다시 마음을 추스려야 겠다
  2. 2008/10/16 장산곶매
  3. 2008/10/16 흘러가는 사람들
  4. 2008/10/15 생존
  5. 2008/10/11 神은 내 안에 있다.
  6. 2008/10/10 지독한 하루
  7. 2008/10/07 [박노자] 대한민국의 역사 - 거시적 단상
  8. 2008/10/01 감사하면서 살아야지
  9. 2008/09/30 [이정우] 너와 내가 먼저일까? 관계가 먼저일까?
  10. 2008/09/27 토요일 아침, 어머니가 보고 싶다
  11. 2008/09/24 인간적 연대의 꿈
  12. 2008/09/22 [느낌] 2008. 9. 22.
  13. 2008/09/03 어려운 생각들
  14. 2008/08/26 [일기] 2008. 8. 26.
  15. 2008/08/12 서울은 죽음의 도시다
  16. 2008/06/18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마주보면서 산다.
  17. 2008/06/18 학벌없는 사회
  18. 2008/06/17 다시 끄집어 낸다
  19. 2008/06/13 [이정우]논리언어철학/구조주의/사회주의 전개/알튀세 푸코 세르 부르디외
  20. 2008/05/12 [이정우] 생체권력/민족/코라/virtuality
  21. 2008/05/08 [일기] 2008. 5. 7.
  22. 2008/05/07 [박노자] 광우병과 "狂개발병" - 한국 지배층의 병리 현상들
  23. 2008/05/07 죽음이 바로 휴식...
  24. 2008/04/26 [서동은] 행복한 미래로 가는 오래된 네 가지 철학
  25. 2008/04/17 [박노자] 정신이 없는 시대
  26. 2008/04/02 [이정우] 공간과 시간/욕망/동양 서양/의미/기억/코드/차이/사건
  27. 2008/03/26 전쟁천재
  28. 2008/03/25 의미/주체와 대상/장(場)
  29. 2008/03/23 [우석훈] 희소성의 시대에 부쳐
  30. 2008/03/22 [우석훈] 내가 아는 지식인은...

[일기]다시 마음을 추스려야 겠다

2008/10/20 21:49

2008. 10. 20.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의 뿌연 가을하늘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추스려야 겠다.

그동안 쑥쓰럽고 부끄러워서 연락하지 못했던 동지들에게 연락해야 겠다

그동안 마음이 다급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책을 보고

그동안 가슴앓이 하느라 쓰지 못했던 글도 써야 겠다

 

세상은 살만하다

그래도 내가 너무 지쳐서 숨 쉴 용기조차 없을때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난 그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야 겠다

이제 뻥긋하면 과거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펑펑 울어버리는 나약함을 버리고

다시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나를 달구어야 겠다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간다

이제 내일을 위해 오늘을 준비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과거의 성찰을 멈추지 않겠다.

 

새로운 주체(성) !!!

그 사유와 연구를 놓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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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곶매

2008/10/16 23:48

 

장산곶매


 

구월산 줄기가 바다를 향해 쭉 뻗다가
끊어진 장산곶[長山串관,,,백령도 맞은 편]에 매가 산다.


그 매는 땅의 정기가 세서
아무도 범접하지 못하는 숲에 둥지를 틀고
일년에 딱 두 번 사냥을 간다.


매는 사냥을 떠나기 전에는
밤새 부리질을 하며 자신의 둥지를 부순다.


목숨을 건 사냥에서
약한 마음을 버리고 만일 싸움에 졌을 때
다른 매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함이다.


장산곶매가 싸움을 하러 떠나면
온 마을 사람들은 잔치를 벌였다.


그리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우리는 저렇게 날아야 해
푸른 창공 저 높은 곳에서
가장 멀리 내다보며
날아갈 줄 알아야해

우리는 저렇게 싸워야 해
부리질을 하며 발톱을 벼리며
단 한번의 싸움을 위해
준비할 줄 알아야 해

벼랑 끝 낙락장송 위에
애써 자신의 둥지를 짓지만
싸움을 앞두고 선 그 모둘 부수고
모든 걸 버리고 싸워야해

 

내 가슴에 사는 매가 이젠 오랜 잠을 깬다
잊었던 나의 매가 날개를 퍼덕인다
안락과 일상의 둥지를 부수고
눈빛은 천리를 꿰뚫고
이 세상을 누른다

 

날아라 장산곶매
바다를 건너고 산맥을 훨 넘어
싸워라 장산곶매
널 믿고 기다리는 민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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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사람들

2008/10/16 22:05

 

맥주잔을 홀짝이면서 창밖을 본다

사람들이 흘러간다

냇물처럼 흘러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잘 간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흘러가는 사람들...

 

그래도 난 흘러갈 줄 아니 다행이다.

내가 갈 곳이 있으니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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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2008/10/15 22:49

예상했던 일이지만,

금방이라도 숨을 헐떡일 정도로 술을 먹고

가슴에서 쇠소리가 날 정도로 담배를 피워대면서

입술을 깨무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생존했다

불쌍한 내 육신이여.

 

오랜만에 술묵고 집 앞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사먹었다

맛있~어, 돼지바 ㅋ

내일은 여유를 좀 부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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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은 내 안에 있다.

2008/10/11 11:54

神은 나의 편에 서 있다

 

어떤 일과 그 일을 선택함에 있에 神은 내 입장에서 나를 이끌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 삶의 진정한 안내자로서 항상 나를 도와주었다

 

무지막지하게 거칠고 메마른 고통,

그리고 엄청난 깊이의 슬픔과 시련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서

내가 두려움으로 눈의 촛점을 잃고 내 몸의 모든 세포와 근육이 벌벌 떨고 있을 때에도

神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데 자신의 힘을 아끼지 않았다.

 

神이 나를 돕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술을 많이 먹거나 화가 나 있을때, 神은 나를 살피지 않았다.

 

그러나,

내 마음이 고요하고 숨소리는 고르며, 뭔가 깊히 생각할 줄 알 때,

神은 언제나 처럼 나와 함께 있었다.

 

그 神은 내 안에 존재한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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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하루

2008/10/10 07:33

1.

술은 마음으로 먹는 것이다

그 깊이 만큼 술이 들어간다

생각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이다.  

 

2.

삶이 짙게 제 윤곽을 드러낼수록 조금은 두렵다

 

3.

서울이라는 괴물은 밤에도 죽지 않고,

새벽에도 결코 처지는 것 하나없이 움직인다

거기에는 사람이 없다

 

4.

분명히 화가 났다

자고나면 감정의 찌꺼기로 치부해도 될련만 새벽에 깨어나 곰곰히 생각해보아도 분명히 화가 났다

잠시 두고 볼 일이다.

   

5.

이번 주말에는 만사 제쳐두고 이책을 읽어야 겠다.

 

출처 : 우석훈. 2008. [괴물의 탄생].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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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 - 거시적 단상 

 

[ 박노자 ] 만감 일기장     출처 :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16180

 

 

역사한답시고 밥을 벌어 먹고 사는 중생인지라 거의 꿈꿀 때도 역사에 대한 꿈을 많이 꿉니다. 그리고 이리 저리 산책하면서 시간 보낼 때에 - 오래간만에 관악산에 올라 등산 좀 하고 그 산신령님께 인사를 드리고 성주암에서 불공을 드렸던 오늘처럼 - 늘 역사가 떠오릅니다. 이것도 일종의 망상이고 고뇌의 근원인 집착인데,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대책이 없어요. 덜 성숙된 근기인 듯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등산했을 때에 갑자기 남한의 정치, 사회사가 하나의 그래프처럼 등식화돼서 머리에 떠오른 것입니다.  정치 사회사의 주된 과정이라면 국가 (관료기구)와 시민사회의 관계가 아닌가요? 만약 그 관계를 중심에 넣고 대한민국사를 시대구분하자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구분이 될 듯합니다:

 

1. 제1기 - 국가 기구 비대화, 시민 사회를 완전히 압도함:

1948-1980년. 원래 분단 국가이자 주로 식민 관료에 의해서 주도돼온, 외세에 의존하는 외삽적 성격이 강한 대한민국이 애당초에 차라리 "연성 국가"에 가까웠지만 1950-53년 동란기를 거쳐서 많이 강경화됐어요. 일단 다른 친미적인 주변부 독재에서 보기 드문 60만 대군이 생기고, 경찰들이 일체 반체제적 움직임을 원천 봉쇄하는 기술을 익히고 사법부는 조봉암을 법살하면서 진보적 시민사회를 도살하는 경험을 쌓았죠. 그래도 병역거부자가 징병 대상자의 20%에 달했던 1950년대에 국가가 그 조직적 지배력이 약하고 개별적 관료들의 사리사익에 너무 많이 좌우되는 등 "도둑 정권" (cleptocracy)적 특징마저 보였지만 군부에 장악되면서부터 달라졌어요. 일제 말기를 모델로 하고 미국의 지원에 무조건 의존할 수도 없는 군부인지라 사회를 아예 병영화시키고 말았어요. 유신 시대 초기, 철도청에 취직하려면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했던 그 시대에 겨우 그 여맥을 잇는 재야만 빼고 본다면 대한민국이 어쩌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참 비슷했습니다. 양쪽에서 수령주의적 개발독재, 군사화가 극성을 부렸던 것입니다. 그 절정은 물론 광주 학살이었죠.

 

2. 제2기 - 시민사회의 대국가 투쟁기:

1980-1997년 - 유신이 무너지고 광주의 충격파가 번진 뒤에 남한에서 다시 한 번 "급진주의"가 회생되면서 시민사회와 국가의 "결투"가 시작됐어요. 민주 노조, 진보적 NGO, 마르크스주의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지적 모색 등등 대한민국이 지금 자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다 그 기간에 피를 흘리면서 쟁취된 것이죠. 또 시민 사회에 밀리고 밀리는 역대 정권들이 바로 그 때에 참 중요한 양보를 많이 했어요: 해외여행 자유화부터 민주노총 인정까지 말씀입니다. 사실, "가슴을 열고 대한민국을 받아들이자"면 얌전한 영국 노동당을 벤치마킹했던 전향 지식인 조봉암보다 1980년대의 그 수많은 위장 취업자와 골방 철학자들을 받아들여야 할 걸요. 어쨌든 이 시기의 절정은 김대중의 "대통령화"이었어요.

 

3. 제3기 - 국가에 의한 시민사회의 포섭:

1998-2007년 - 권력화된 1970-80년대 "재야"의 일부 (김대중型의 1970년대적 재야, 유시민型의 1980년대적 재야) 그 자체가 이미 재벌과 기존 정치권에 의해서 충분히 "순치"된 상태이었는데, 권력화되자마자 재야에 남아 있는 동료들을 빨리 순치시키기 시작했어요. 온갖 "시민 연대"들이 국가 보조금을 받고 국가 포르젝트를 따내고 그 지도자님들을 정부 각처에 보내고 정책 입안 과정에 가끔씩 불러져 의견 제시의 특혜를 얻는 대가로 구속되고 분신되는 노동 운동가, 짓밟히는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잃어갔던 그 화려한 시절이었어요. 전대협 간부 출신들이 정부에 들어가서 이라크 파병을 거의 당연지사로 받아들였던, 인간이란 과연 어떤 동물인가를 고심케 만들었던 시대.

 

4. 제4기 (미완) - 국가에 의한 통제와 탄압의 점차적 심화:

2007년 이후: NGO들을 하위 파트너로 끼워줄까 했던 국가는, 이제는 그들에게 당근보다 채찍을 더 자주 쓰게 됐죠. 글쎄, 이렇게 해서 NGO의 "시민 사회 지도자"들이 다시 한 번 1980년대적 본심으로 돌아가 노동자들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노동운동과의 든든한 연대를 모색하게 되면 역사의 발전이 계속될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 정당이 마땅히 해야 할 걸요. 단, 지금으로서 아직도 역부족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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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면서 살아야지

2008/10/01 13:28

[엄마가 뿔났다]가 끝났다

병원에 있을 때는 놓치지 않고 보려고 애쓰는 드라마였다

집에 텔레비젼을 두질 않아 계속 보질 못했다

 

나이 62살에 휴가라고 우겨(?) 독립하여 사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오늘 사무실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운받아 마지막회를 보았는데 '흐뭇한' 기분이다.

 

'무심한 세월에 실려 늙어가겠지...잘 살았달것도, 그저 못 살았달것도 아닌 그저 그런 한평생, 그래 그냥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머... 이만하기도 감사해야지...그래 감사해야지...하지만 다음 생애에 나도 내이름 석자로 불리면서 살아보고 싶다'

 

집으로 복귀(?)하여 다시 일상의 연말을 보내는 엄마의 말이다.

 

'무심한 세월'이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세월이 마음이나 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니 얼마나 정확한 성찰인가 

私心이 있는 인간이 어떻게 세월을 이길 수 있겠는가.

 

하나 더, '감사해야지, 그래 감사해야지' 라는 말도 참 좋다.

 

그래서 나도 감사해야지, 그래 감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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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먼저일까? 관계가 먼저일까?

 

 

- 관계란 무엇일까?

 

관계(Relation)라고 하는 것은 철학적인 사고를 하는데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개념이다. 관계는 있다가도 없어지는 독특한 성격을 가졌다.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결혼을 하면 부부관계가 생기지만, 이혼을 하면 관계가 없어진다.

 

관계라고 하는 것은 어떤 실체적으로 존재 한다 라기 보다도 두 개 내지 여러 개 항이 일정하게 모이면 성립되었다가 흩어지면 없어지는 재미있는 성격을 가졌다.관계가 성립하려면 관계를 맺는 항들, 개별자들이 있어야 한다. 만약 개별자들이 사라지면 관계도 사라진다.

 

그래서 개별화(individualize)가 안 되어 있으면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물이 흘러가면 흘러가는 물 안에서는 관계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반드시 어떤 구분, 개별화가 있어야 한다. 물과 강둑의 관계, 물과 바닥의 관계, 하다못해 물결이 있어서 물결들끼리의 관계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개별화가 되어서 여럿(多)이 성립을 해야, 관계라고 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체성이 깨져야 관계다.

 

그런데 개별화가 되어 있고 여럿(多)이 성립돼 있어도, 이 여럿과 여럿이 완전히 즉자적(卽自的)으로 오로지 타자에게 열리지 않고 자기에게로만 닫혀 있으면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개별자들의 정체성(identity)이 깨져야 관계가 성립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완벽하게 자기 정체성을 보존하면 관계라는 것이 생길 수 없다. 왜냐하면 관계를 맺으면 자기 정체성도 변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탁자가 완벽하게 자기의 정체성을 보존하면 다른 어떤 것과도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그런데 A가 탁자에 음료수 병을 놓으면 압력을 받게 되고 탁자가 변하게 된다. 정체성에 변화가 오는 것이다. 그래야 관계가 성립한다. 그런데 완벽하게 즉자적(an-sich) 존재들만 있는 곳에는 관계가 없다.

 

타자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떤 연속성이 도래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관계가 성립한다. 즉 완벽하게 닫힌 동일성이 열리고 타자와의 연속성이 있을 때에 관계가 성립한다. 그래서 관계라고 하는 것은 항들에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 관계 속에서 나와 네가 태어난다

 

그런데 어떤 생각에 따르면 반대로 관계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항들이 의미가 있게 된다고 한다. 즉 관계가 존재하고 개별자들이 그 항들을 채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A는 B의 선생이다.’라는 것이 하나의 관계이다. 이 관계, 추상적인 관계가 더 기본적이고, 더 먼저고, 그 다음에 여기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공자와 자하 등의 항들이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가 먼저, 더 우선(primary)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항들이 있어서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가 이 세계를 이루는 더 근본적이 구조고 개별적인 항들은 항상 그 관계의 어느 한 항으로만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다.

정리해보면, 앞의 생각은 개별자 중심이다. 개체들이 존재론적으로 우선하고, 관계라고 하는 것은 그 개체들 사이에서 생겨나기도 하고 또 없어지기도 하는 묘한 것이란 생각이고, 두 번째 것은 우리 눈에 직접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존재론적으로 더 심오한 것은 관계들이고, 개별자들은 그런 관계들 속에서 태어난다는 생각이다.

 

예컨대 한국 사회를 보면 철수, 영희, 민수 등 그런 개별자들이 있고, 그런 개별자들이 부부관계를 맺고, 선생과 학생관계를 맺고, 부모 자식의 관계를 맺고, 가게 주인과 단골손님의 관계를 맺지만,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한국 사회라고 하는 것을 구성하는 관계들의 체계가 있고, 즉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관계라는 어떤 거대한 시스템이 있고, 그 시스템 속에서 우리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실존주의와 구조주의 근본문제: 문제

 

20세기 중엽을 장식했던 실존주의와 구조주의도 결국 이 문제이다. 실존주의는 어떤 개별자의 주체성, 어떤 개별자의 내면의식에서 출발해서 다른 것을 구성하는 사유라고 한다면, 구조주의는 이 관계의 발견이다.

그 문화가 무의식적으로 혹은 당장 눈에 안 보이지만 사람들이 거기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그런 관계들과 체계를 발견한 것이 구조주의이다. 실존주의와 구조주의 대립은 바로 이 관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히로마쓰 와타루(1933~1994 일본 현대 철학자)라는 철학자는 ‘형성적 관계(形成的 關係)’와 ‘존립적 관계(存立的 關係)’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생겼다가 사라졌다하는 관계를 ‘형성적 관계’라고 하고,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더 근본적인 관계, 예를 들어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과 같은 그런 관계를 ‘존립적 관계’라고 한다.

 

이상으로 간략히 관계에 관한 중심적 논의의 틀을 살펴봤다. 관계에 대한 관심은 뛰어난 철학자들에게도 커다란 관심이었다. 그들은 관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그들이 생각한 관계의 개념을 조금 더 살펴본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고 성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 이정우(철학자)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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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어머니가 보고 싶다

2008/09/27 09:04

평일에도 간신히 9시에 출근하거나 지각 또는 땡땡이를 치는 놈이

쉬는 토요일 아침 6시 반쯤에 잠을 깨서 뒤척이다가

그냥 사무실로 출근했다.

 

사무실 가는 길에

'아버지의 뜨거움과 어머니의 끈질긴 성실함 중에 난 어머니의 부지런함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명의 피가 내 안에 흐를텐데,

이제는 뜨거움보다는 끈질김이나 인내 같은 것들이 더 많이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추석에 시골집에서

이제 나이 먹고 늙어서 쉬어도 되겠건만 몸을 놀리지 않는 어머니의 몸-오랜 세월 바지락을 까서 지문이 사라지고 긁힌 상처만 있어 바지락 껍데기처럼 민들민들하게 보이는 손, 그 손에 후시딘을 로션 바르듯 발라 손을 비비고는 손을 살짝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호근이가 나한테 어머니는 제 몸의 '모든 것을 다 연소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완전연소'

자기 몸의 모든 에너지와 마직막 호흡까지 다 써버리고 가는 것.

 

나는 내 몸을 불완전 연소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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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연대의 꿈

2008/09/24 15:25

내가 살아가는 것은

생존을 위한 일상의 관성인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에게 긍정적 에너지의 씨앗이 없다. 

바삭바삭 메마른 육신에 무슨 알맹이가 자라겠는가 

 

이제 나는

젊은 시절 혁명의 활력도 사라지고

행복한 인간적 연대의 꿈도 막연하다

남은 것은 무미건조한 위선적 관계와 간신히 살아가는 끔찍한 몸부림이겠지

 

어떤 이는 죽음으로 나를 떠나고

어떤 이는 증오로 나를 떠나고

어떤 이는 귀찮음으로 나를 떠나고

어떤 이는 공간적 거리를 이유로 나를 떠나고

어떤 이는 시간적 차이를 이유로 나를 떠나고

어떤 이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나를 떠나고

어떤 이는 일상의 단절을 위해 나를 떠나고

어떤 이는 재물의 노예가 되어 나를 떠나고

어떤 이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나를 떠나고

 

그래서 남은 것은 불쌍하게 혹사당하는 내 육체 뿐이다

 

모두 나로 인해서 비롯된 일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언제 다시 나에게 간절함이 다가올까

언제 다시 他者을 위한 위안의 숨소리를 낼 수 있을까

 

참으로 지독한 30대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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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2008. 9. 22.

2008/09/22 19:48

 

1.

늦게 일어나서 피우는 담배

 

곡기라고는 전혀 없는 내장 속으로 거친 담배연기만 들이쉰다

마치 아주 바짝 마른 장작에 불을 피우는 기분이다

내 속이 푸석푸석한 아궁이 속 같다

 

축축한 것이 그립다

비가 많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비처럼 끝없이 깨어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을 놓치지 않고 살고 싶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살고 싶다

 

나에게도 이제 그런 용기와 희망이 스며들때가 되었건만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으면 아직도 아득하다

 

아... 그리운 사람아

당신은 나에게 깊은 쓰라림만 가르쳐 주었고

나는 바람처럼 떠돌아 다니기만 한다

 

순간, 아주 잠시  당신 곁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머물고 싶어서 말이다

용서해주시길.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2.

죽음은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지독한 변명이다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죽은 놈만 서럽거나

살아있는 놈만 서럽거나

둘 중에 하나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3.

소주 한잔 먹고 싶다

소주끼에 몽롱하게 취해 밤거리를 뚜벅거리고 싶다

 

그 술한잔 받아 줄 친구가 그립다

 

그래서

술자리 한귀퉁이에서 몰래 소주를 훔쳐먹듯

한잔하고 싶었지만

 

사람과 부대끼는 것

즐거움을 표현하거나

화냄을 나타내는 것이

시원치 않게 숨을 내쉬며 말하는 것이

성가시다

 

많은 것들이 그리운 월요일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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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생각들

2008/09/03 11:35

1. 이성(logos)과 감성(pathos)에 관한 문제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잡고 있었던 생각이다. 난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폭력과 착취, 억압 같은 것들을 만들고 유지시키는 핵심적인 관념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이런 것들을 해결하는 방법이 감성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그런데 감성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다. 감성은 시간(時)과 공간(場)이 어루어지는 '순간'의 문제(氣)이기도 한데 이것을 중요시하면 이성의 시대보다 훨씬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직 '조화'를 말하기에는 내가 조금 비겁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앙상블(합체) 같은 개념을 끄집어 내서 설명하지만 역시 타협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 인간이 드러나고 움직이는 것은 '윤리(ethos)'의 문제인데 - 이제 이성과 감성의 긴장감을 잠깐 쉬고 실천(실제로 움직임)을 꼼꼼이 따져볼 생각이다.

 

2.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지성(intelligence)과 감성(emotion)의 문제인데, 한때는 이 해법을 영성(soul, spirit)으로 찾고자 했다. 그런데 영적인 영역은 참 많은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영역이어서 쉽게 접근하기가 힘들다. 영성이 답일수도 있지만, 너무 멀리 있다. 그래서 설득하기가 정말 힘든 문제이다. 사기꾼('도를 아십니까')이나 싸꾸려 장사꾼으로 보이기 쉽다.

 

그래서 끄집어 내는 말이 '내면'에 대한 문제의식인데 역시 말빨이 안서기는 마찬가지이다. 조금 비틀어서 '자기 자신은 정말 소중한 존재이다'라고 말하면, 이기주의자로 낙인찍히기 쉽다. 특히 요즘같이 완전히 인간이 개별화되고 원자화된 세상에는 더욱 그렇다. 차라리 나무나 개들과 대화하는 것이 훨씬 쉽다.

 

( 다른 영역의 개념을 빌려서 말하면, 질서(cosmaos)와 질서가 아닌것(chaos무질서)에 대한 질문이다. 이 상반된 개념을 해결하기 위해 역시 '상호침투'라는 문제의식을 투입한 '카오스모제'(가타리)라는 말이 있다. 주체성에 대한 질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학과 생태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

 

3. 또 다른 것은 삶의 문제이다. 현실(드러나는 것)과 가상(상상하는 것) 그리고 실재(존재/원래 있는 것)가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일 뿐이다'라는 생각으로 한참을 지냈지만, 원래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가 분명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노력(잘보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인정하고 알고자 하는 것 그래서 원래 있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깨달음'. 

이걸 구하면 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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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08. 8. 26.

2008/08/26 23:37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他者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스스로 생존하는 인간은 없다

따라서 타인을 포함한 타자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를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데, 그래서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 힘들지도 모른다

지난한 인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만남은 만남이 아니다. 부딪침이 사랑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또한 나를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한다'

항상 이 생각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 2008. 8. 26. 사랑하는 동료를 만나서 술한잔 걸치고 그냥 자기 뭐해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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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죽음의 도시다

2008/08/12 13:07

어제 밤
습기를 가득 품은 더운 공기를 피해
에어컨 밑에서 오랜만에 술을 많이 마셨다
조심스러움도 없이 마셔서 숨이 차고 정신이 희미해져 갈때
내가 분명히 생각했던 것.

'ㅆ ㅣㅂ ㅏ,   서울은 죽음의 도시다'

 

다음 날 어김없이 지각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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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와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보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물음을 던져본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 한명이 재계약이 체결되지 않아 해고되었고, 다른 한명의 동료도 재계약이 체결되지 않아 한달 정도 후에 해고 될 것 같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사람이 계약기간이 끝나면 직장을 떠나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계약기간의 종료가 업무의 끝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권자의 인위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니 '해고'이다. 이런 '합법적인 해고'가 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럽고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人間은 '만남'에서 사람이 된다. 따라서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마주보면서 산다.

(요즘 계속 들고 다니면서 생각한다. 무겁다.)


‘인간이 추구하는 동일성의 상태는 자기의 쾌락의 동일성이다.

자기가 아니라 타인을 쾌락이 아닌 고통 속에서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이중으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처럼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고 그에 동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보편적인 선을 표상하고 똑 욕구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야말로 타자적 상상력의 꽃이다.’

[김상봉 '창의성 교육에 관한 몇 가지 단상들']


'로망 중에 가장 큰 로망 중의 하나는 액션 로망이다.

솔직히 사람이 한 번 태어나서 사는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 입에 밥들어가는 것만 걱정하고, 멋진 연애 한 번 해봤으면 하는 생각만 하다가 죽었다고 하면,

로망의 인생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건 개돼지도 다 가지고 있는 로망이다.' 

[우석훈의 블러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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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없는 사회

2008/06/18 17:59
 

지난 달 [작은책]출판사의 월례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학벌 없는 사회’라는 주제로 김상봉 선생이 강의하였다. 깊은 공명으로 다가왔다. 몇 가지 느끼고 배운 것를 정리한다.

(‘’는 강의자 발제문을 인용한 것임)


1. 학벌사회는 불평등과 차별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계급으로 상징되는 모순보다도 훨씬 강렬하고 지독한 모순이다.


2. 학벌은 현대판 문중이다. 문중은 폐쇄적이며, 고정적이고 위계질서가 뚜렷한 가족사회이다. 이런 가족사회에서는 공공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3. 학벌사회는 ‘교육’을 절단나게 한다. 교육은 배운다는 문제이고, 한편으로는 지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감정에서 아름다움을 배우고, 의지에서 선을 배우고, 지성에서 진리를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학벌사회에서 ‘교육’은 평가을 통해서 완성된다. 한국의 현실 교육에서 평가는 ‘시험을 잘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험을 잘 본다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지식의 척도는 옳지 않다. ‘지식의 핵심은 답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물음을 던지는 것!!!’


4. 스스로 물음을 던진다는 것은, ‘1)창의성 2)스스로 생각함 3)자유 4)무위의 교육’을 말한다. 그런데 ‘학벌사회가 온존하는 한 이런 논의는 공허하다. 정말로 학생들의 창의성을 원한다면, 학생들을 시험의 노예로 만들고, 삶의 풍부한 경험을 불가능하게 만들며, 아무런 열정없는 삶을 살게 하는 지금의 학벌체제부터 타파하지 않으면 안된다’


5. 학벌사회에 관한 문제는 ‘제도’와 ‘욕망’을 같이 바꾸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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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끄집어 낸다

2008/06/17 00:01

술을 먹고 목구멍부터 솟아오르는 분노를 나는 술이 깬 낼 아침에도 느낄수 있을까

술을 먹고 아무리 생각해도 부조리 한 것들을 나는 술이 깬 낼 아침에도 합당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술을 먹고 동료들과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는 술이 깬 낼 아침에도 뚜렷이 기억할까

 

내가 그동안 배운 것이 무엇인가

내가 그동안 느낀 것이 무엇인가

내가 그동안 학습한 것이 무엇인가

내가 그동안 실천한 것이 무엇인가

 

술에 취해 고백하자면 난 항상 구체적 현실 앞에서는 뚜렷이 무기력했다

 

뜨거운 분노와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 사유들은

현재 삶의 무게 앞에 정면으로 마주보았을때,

나에게 흐트러지지 않고 다가왔나?

 

되물어본다. 나는 누구인가?

 

다시 끄집어 낸다.

禪鬪一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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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언어철학 


分析哲學


▶ 1강에서 논의한 베르그송의 사유와는 매우 대조적인 또 하나의 사유는 흔히 ‘분석철학’(또는 이 철학이 흔히 영국과 미국에서 주류를 이루므로 ‘영미 분석철학’)으로 불리는 사유 계열이다. 이 사유는 개념, 범주, 변증법 등 추상적인 사유를 거부하고 생생한 운동성을 지향한 베르그송과는 달리 오히려 논리학의 형식적 분석을 통해서 철학의 문제들에 접근한 사조이다.

19세기에 부울(george boole), 밀(john stuart mill), 프레게(gottlob frege) 등이 현대 논리학의 형성에 크게 공헌했으며, 이 중 프레게는 분석철학의 성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프레게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전개되어 온 전통 논리학을 넘어서 현대 논리학을 건설하고자 했다. 전통 논리학이 주어-술어 구조라는 일상어의 구조를 토대로 이루어졌다면, 프레게는 수학적 형식화를 사용해 언어를 형식화하고자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서는 구분되지 않는 논리 형식들(예컨대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이다”와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을 수학적 명제 형식을 도입해 차별화한 것이 프레게의 공헌이다.

우선 논리학이 다루는 것은 명제이다. 명제는 문장과 구분된다. 또 논리학은 형식을 다루지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수학적 형식화를 통해서 일정한 집합은 변수로, 집합들끼리의 관계는 함수로, 그리고 특정한 경우는 상수로 취급된다. 그래서 ‘한국의 수도’, ‘일본의 수도’, ‘미국의 수도’ 등등은 ‘x의 수도’로 형식화된다. “로미오는 줄리엣을 사랑했다”, “이몽룡은 성춘향을 사랑했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사랑했다” 등등은 “x가 y를 사랑했다”로 형식화된다. 형식화를 비판하고 그것이 왜곡하고 있는 무한한 질적 풍요로움을 강조했던 베르그송과 대조적으로, 프레게는 세계의 무수한 경우들이 공통으로 전제하고 있는 논리적 구조(logical structure)를 뽑아내고자 했다. 더 정확히 말해 프레게는 논리적 구조가 ‘gedanke’로서 자율적으로 존재하며, 그 논리적 구조에 함수값들이 들어감으로써 구체적인 세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이 점에서 프레게 및 그 후 이런 식의 사유를 발전시킨 사람들은 플라톤적 사유 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명제 논리학(propositional logic)은 어디까지나 진위 판별이 가능한 명제들만을 다룬다. 감탄문, 명령, ... 등등은 명제 논리학의 관심사가 아니다(이런 한계 때문에 후에 john austin, gilbert ryle, john searle 등은 분석철학을 일상 언어 분석으로 가져간다).

프레게의 형식화는 그 후 복잡한 발전 과정을 겪어 현대 논리학의 주춧돌이 되었다. ‘술어 계산(propositional calculus)’, ‘논리적 연결사들(logical connectives)’, ‘양화사들(quantifiers)’ 등과 같은 개념들이 개발되었다. “영수 아니면 철수이다. 그런데 철수는 아니다. 그러므로 영수이다” 같은 전형적인 논리적 형식은 ‘p∨q, -q, p’ 같은 식으로 정형화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통 논리학의 형식들이 재정리되었고, 또 집합론의 도입으로(예컨대 벤 다이어그램) 더 정교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큰 공헌을 했다.


▶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수학의 원리』(principia mathematica)에서 이러한 형식화를 일차적으로 집대성했다.

러셀은 우리의 일상 언어를 논리적으로 형식화함으로써 기존 철학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순수 논리학자, 수학자인 프레게의 사유는 러셀에 이르러 본격적인 철학적 함의를 갖게 된다.

예컨대 “현재 프랑스 왕은 대머리이다” 같은 문장은 “어떤 x가 있고, 그 x는 현재 프랑스의 왕이며, 그 x는 대머리이다”로 분석될 수 있다. 이렇게 분석할 때 지시의 맥락과 서술의 맥락이 분명하게 드러나며, 이런 분석을 통해 전통적인 ‘존재론적 증명’의 맹점이 어디에 있는가가 밝혀진다.

또 하나의 예로 내포적 의미와 외연적 의미의 분명한 구분을 들 수 있다. 프레게는 논리적 형식화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두 의미(‘sinn’과 ‘bedeutung’)를 구분하게 된다(샛별과 저녁별의 구분, ‘플라톤의 가장 뛰어난 제자’와 ‘알렉산드로스의 스승’).

명제의 진위를 구분하는 것은 곧 각 변항들의 진위 구조를 통해서 계산된다. 이런 ‘진리표’에 의한 연산은 비트겐슈타인에 의해 고안되었다.(예제: p∧q ∨ p∧-q)


▶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 - 1951)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유태계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다. 베를린에서 공학을 공부했고, 프로펠러 설계에 몰두했다. 그 과정에서 점차 관심이 순수 수학에로, 그리고 철학에로 기울었다. 프레게의 권유로 러셀 밑에서 공부했으며, 철학자 무어, 경제학자 케인즈 등과 사귀었다. 1차 세계 대전에 참가했으며 전쟁 중에 배낭에 넣고 다니던 수첩에 생각들을 기록했으며, 그것을 토대로 1918년에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를 출간했다.

책을 출간한 후 철학을 버렸으며 오스트리아 시골 초등학교에서 교사직에 봉사했다. 자신에게 상속된 막대한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지금 내 삶에서 좋은 것 한 가지는 때때로 어린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는 것입니다.” 그 후 수도사의 정원사로 일하기도 했고, 누이의 집을 설계하기도 했다. 1929년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자신의 전기 철학을 극복하는 사유를 시작했다. 그의 후기 사유는 『철학적 탐구』(philosophische bemerkungen)에 수록되었다. 이 책은 언어철학 외에도 심리철학의 중요한 통찰들을 담고 있다. “우리의 삶은 꿈과도 같다. 좀 나을 때 우리는 단지 우리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깨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에 우리는 깊이 잠들어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프레게와 러셀을 통해 다듬어진 분석철학적 사유에 깊은 형이상학적 향기를 불어넣었다. 그의 삶은 스스로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철저하고 고독한 철학적 삶이었으며, 가장 순수하고 엄격한 사상가(denker)의 모습을 보여준다.


▶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의 핵심 사상을 “말로 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하게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 요약했다.

이 책에서 전개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흔히 ‘그림 이론’이라고 불린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실재의 그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의 전기 철학은 표상/재현이라는 전통 사유의 테두리 내에서 전개된다. 언어는 세계를 그리는 명제들로 이루어진다. 명제들은 사고의 지각 가능한 표현이며, 사고는 사실의 논리적 그림이다.(여기에서 실재와 언어와 관념의 寫像 관계를 추구했던 고전 시대적 사유가 잘 드러난다)

실재와 언어의 관계가 간단한 것은 아니다. “철수가 내 옆에 있다”라고 말할 때, 실제 이 명제에서 ‘철수’라는 글자와 ‘내’는 옆에 있다. 그러나 이런 간단한 경우는 드물다. 때문에 여기에서의 그림이란 논리적 형식(logical form)이라 할 수 있다. 악보와 가수의 노래와 그 노래를 녹음한 cd, ... 등은 논리적 형식을 공유한다.(→ 번역의 문제와 비교)

그런데 이런 관계가 성립하려면 무엇보다도 ‘지시’(reference) 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단어는 복합적인 실재를 가리킨다.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막연하기 이를 데 없는 복합체를 가리킨다. 그래서 분석이 요청되며, 명제들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끝없이 쪼개야 한다(→ 분석적 사유에 대한 베르그송의 비판과 비교). 이것은 물질을 쪼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논리적 원자론(logical atomism)’이라 불렸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에 대한 그림을 제공하지 못하는 명제들은 ‘사이비 명제들’이라고 보았으며, 이런 생각을 토대로 전통 형이상학을 맹공했다. 그러나 칸트가 그랬듯이, 비트겐슈타인 역시 형이상학이 지향하는 세계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칸트가 그것을 “알 수 없다”고 했듯이,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가능한 모든 과학적 질문들이 대답되고 난 후에도, 삶의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논고』의 마지막 명제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라”이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것은 신비한 것이다.” 바하만(ingeborg bachmann)은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을 시로 표현했다.


...()... 산에서 우리는

호수들을 보고, 호수들에는

산들이 비치고. 구름 의자를 탄 채

한 세계의 鐘들이 산들거리고 있다. 그 누구의

세계인지를 아는 것은 금지되어 있구나.

...()... von den bergen

sieht man seen, in den seen

berge, und im wolkengestühl

schaukeln die glocken

der einen welt. wessen welt

zu wissen, ist mir verboten. curriculum vitae.



후기 철학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전기 철학을 비판하고 새로운 언어철학을 제시한다.

후기 언어철학은 흔히 ‘사용론(theory of use)’라 불린다. 이제 의미는 그림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용을 통해서 이해된다. 자연과학적 언어만이 세계를 그릴 수 있다는 생각도 철회된다. 또 전기에는 철학의 고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심리적 차원들(지향성, 기대, 느낌, ... )도 논의된다. 이런 논의는 후에 심리철학(mind-body problem, philosophy of mind)으로 불리며 크게 발전했다.

공사장에서 지붕 위의 사람이 “벽돌!" 하고 외치면, 밑의 사람은 벽돌을 던져준다. 위의 사람은 “당신 내게 벽돌을 던져주시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래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다. 왜일까? 언어의 의미는 늘 어떤 사용의 맥락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언어 사용을 ‘언어 놀이/게임(sprachspiel/language game)’이라 불렀다. 이제 의미는 지시 대상과의 관계보다는 사용의 맥락에 중점을 두고서 분석된다. 자연과학도 하나의 언어 놀이일 뿐이다. 이런 식의 언어 이해를 언어학에서는 화용론(pragmatics)이라 부른다.

비트겐슈타인은 이제 자연과학적 언어가 아니라 일상 언어를 분석한다. 일상 언어를 교정해서 이상(理想) 언어를 만들려 했던 꿈(카르납 등)이 일상 언어에 대한 섬세한 분석으로 대치된다.

일상 언어 분석은 비본질주의 철학을 가져다주었다. ‘게임’이라는 말은 어떤 본질을 가지는가? 체스 게임, 교실에서의 어린이들의 게임, 교육용 게임, 비틀즈가 말한 게임(♪“love was such an easy game to play"♬), 스포츠, ... 이 수많은 게임‘들’을 게임으로 만들어주는 본질은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은 이들 게임들 사이에는 다만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s)이 있을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니체와 베르그송이 수행했던 본질주의 비판을 언어철학적 차원에서 다시 확인해 주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이런 생각은 현대 예술철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언어 게임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본적인 존재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삶의 형태(lebensform/forms of life)’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4장에서 배울) 후설의 ‘생활세계(lebenswelt)’보다 다원화된 개념이다.


▶ 제 2차 세계 대전(1939-1945)은 유럽의 많은 사상가들로 하여금 미국으로 명명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언어철학과 (3강에서 배울) 비엔나 학파의 과학철학은 미국으로 이식된다. 미국은 19세기에는 유럽 철학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20세기 초에 퍼스, 제임스, 듀이 등을 통해서 ‘실용주의’라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사상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이제 20세기 후반에는 유럽에서 건너온 분석적-과학적 철학과 미국 토착의 실용주의가 통합되기에 이른다. 콰인(willard quine) 같은 사람이 이런 종합을 대표한다.

특히 퍼스의 작업은 미국의 ‘토착적인 분석철학’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분석철학의 역사를 그로부터 시작해 재구성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후 분석철학은 논리-언어철학에서 크립키, 데이빗슨 등을, 심리철학에서 김재권 등을, 과학철학에서 쿤 등을 낳으면서 발전했으며, 최근에는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많은 시도들 -- 로티의 신실용주의 -- 이 도래하기에 이르렀다.



참고 문헌


뮤니츠, 『현대 분석철학』, 박영태 옮김, 서광사

프레게, 『산수의 기초』, 박준용/최원배 옮김, 아카넷

러셀, 『서양철학사』(상, 하), 집문당

『수리철학의 기초』, 연세대학교출판부

『일반인을 위한 철학』, 집문당

『철학의 문제들』, 박영태 옮김, 이학사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천지

『철학적 탐구』, 서광사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 서광사

『확실성에 관하여』, 서광사

가버․이승종,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 민음사

해리스,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고석주 옮김, 보고사

구조주의 


바깥의 사유(구조주의)


‘근대성’이라는 것이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고 있는 것일까? 인간이 정말 ‘주체’인가? 인간이 세계를 인식론적으로 ‘구성’하고(칸트), ‘노동(arbeit)’을 통해 세계를 인간화해 역사를 만들어나가고(헤겔, 맑스), ‘대자’로서 절대 자유를 구가하는(사르트르) 존재일까? ‘서구 근대성’이 삶의 모범 답안인가? 철학자들이 원했던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바로 근대의 자아도취적 주체철학이 결국 제국주의와 파시즘, 자연 파괴, 인간 소외로 귀착한 현대 사회의 비극에 사상적 토양을 마련해 준 것은 아닌가? 근대성을 수립한 것은 서구이기에 서구가 모든 가치와 의미의 기준이 되어야 할까? 근대가 이룩한 위대한 성과를 충분히 인정해야겠지만, 혹시 그 과정에서 ‘타자들(l'autre)'은 철학의 눈길 바깥으로 밀려난 것은 아닐까? 칸트, 헤겔, ... 의 철학은 결국 서구-남성-어른-문명인- ...의 사유가 아닌가. 구조주의 사상가들은 이렇게 근대성=’modernity'에 강한 의문을 던진다.


칸트의 예: 주체의 ‘의식’(왜 꼭 의식이어야 할까? 지극히 추상화된 인간)의 일정한 틀(감성의 아프리오리한 형식으로서의 시공간, 오성의 열두 범주, 구상력과 도식, ... )을 갖추었기에 인간은 바로 이러이러한 식으로 세계를 인식할 수밖에 없으며, 그 가능성의 조건 바깥은 알 수 없는 물자체라는 생각의 문제점.

주체가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가 끝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그 존재의 드러남을 통해서 오히려 주체의 범주가 바뀌어 가는 것이다. 흑체(黑體)는 물질의 연속성이라는 상식을 무너뜨렸고, 불확정성 원리는 근대 결정론의 금과옥조인 인과율을 무너뜨렸고, 물질-파 개념은 모순율까지 뒤흔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새로운 현상이, 세계가 열릴지 누가 알겠는가? 세계 속에서 주체가 변해 가는 것이지 주체가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칸트가 생각한 ‘선험적 주체’, 엄청난 두께의 비판서들, 그 안에는 미개인이나 어린이나 광인이나, .... 등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칸트의 주체는 유럽적-과학적-... 주체일 뿐이다.

사르트르의 예: 즉자와 대자를 날카롭게 나눈 사르트르. 거기에 동물이나 식물이 들어설 자리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의 의식만 대자인가? 인간이 그렇게 특별하고 잘난 존재일까? 그의 열정적인 현실 참여와 레지스탕스 운동에 큰 경외심을 바치면서도, 사르트르의 존재론 자체는 전형적인 이분법, 도시의 철학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제 철학은 ‘주체’가 아니라 주체의 ‘바깥’, 그리고 그 바깥에서 서성이는 타자들에게 눈길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미개인, 어린이, 여성, 동성애자, 변방, 유목민, 담론, 수인, 광인, 여백, 차이, 낙오자, ......


레비-스트로스와 라캉으로부터 오늘날의 데리다, 세르, 레비나스에 이르기까지 지난 반세기 동안 이루어진 새로운 사유 혁명은 바로 이런 시대적-사상적 배경에서 등장했다. 그것은 타자의 사유, 바깥의 사유, 여백의 사유, 차이의 사유이다. 먼 훗날 철학사가들은 20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사유 혁명으로부터 그들 자신들의 ‘현대’를 가늠할 것이다. 오늘날 살아 있는 사유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이루어진 이 사유 혁명을 소화해야 한다.

구조주의는 좁은 의미에서의 철학 사조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학/기호학(소쉬르, 퍼스 등), 정신분석학(라캉), 민족학/인류학(레비-스트로스), 문학 비평(바르트 등), 신화학(뒤메질), 사회학(부르디외), 발생적 인식론(삐아제), 역사(아날 학파), 철학(알튀세, 푸코), 나아가 생물학(자콥)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형성된 종합 학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이 사조에 참여한 사람들이 비엔나 학파처럼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학파를 수립한 것도 아니고, 또 흔히 이 사조로 분류되는 사람들 자신들이 스스로를 구조주의자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구조주의는 서로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서서히 형성되었으며, 훗날에 가서야 ‘구조주의’라는 딱지를 부여받게 된 어떤 느슨한 흐름, 분위기, 경향일 뿐이다. 때문에 이 사조를 그 구체적인 내용‘들’을 떠나 추상적으로 일반화해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20세기 중반 서구 사상계를 지배했던 것은 실존주의와 맑시즘이었다. 두 사조는, 하나는 인간의 주체를 다른 하나는 역사의 객관적 법칙성을 강조했음에도, 결국 서구 근대 철학의 전형적인 적자였다고 할 수 있다. 구조주의는 이런 흐름을 깨고 등장했으며, 그런 등장의 배면에는 바슐라르에 의한 합리주의적 계몽, 게루가 가르쳐준 철학사 독해 방식,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부활, 소쉬르와 퍼스의 언어학/기호학, 또 간접적으로는 하이데거와 메를로-퐁티의 후기 철학, 문학 비평의 새로운 경향 등이 영향을 주었다.

구조주의는 철학이기 이전에 우선 ‘인간과학 방법론’이다.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의 구조주의와 철학 사조로서의 구조주의는, 물론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조심스럽게 구분되어야 한다. 그것은 뉴턴과 칸트, 진화론과 베르그송, 수학과 분석철학이 구분되어야 하는 것과도 같다.

어떤 과학이 과학 자체로서 그치지 않고 그 과학의 근본 전제들에 대한 메타적 검토, 그리고 그 과학의 성과들이 인간 존재에 대해, 나아가 세계 전체에 대해 함축하는 의미에 대한 성찰로 나아갈 때, 그것은 철학적 성격을 띠게 된다. 예컨대 불확정성 원리는 물리학 이론이지만, 그것이 세계의 비결정성, 우연의 본성 등에 대한 성찰에로 이어질 때 철학적 성격을 띠게 된다. 진화론은 생물학 이론이지만, 그것이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상, 윤리의 근거 같은 문제들로 확대될 때 철학적 성격을 띠게 된다. 마찬가지로 구조주의는 우선은 언어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등의 방법론이라는 의미를 띠지만, 그것이 세계와 언어의 관계, 인간의 본성, 문화의 의미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에 연계될 때 철학적인 사조로 화하게 된다.

이 점에서 현상학과 구조주의는 다르다. 현상학은 철학적 방법론이 먼저 생기고 그것이 여러 분야로 응용된 경우지만, 구조주의는 다양한 인간과학적 탐구들이 이미 형성된 이후 그것들이 어떤 철학적 함축을 띠게 됨으로써 하나의 철학 사조로 화했다고 볼 수 있다.(때문에 구조주의에 대한 이해는 철학 이전에 다양한 인간과학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구조주의 사유가 당대를 풍미했던 실존주의와는 전혀 상반되는 인간관을 함축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구조주의는 철학사의 한 장에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1) 구조주의는 철학에서 늘 기본적인 대립항으로 인식되어 왔던 대상(세계, 사물, 물체, ... )과 주체(의식, 영혼, 마음, ... )의 이분법을 버리고, 이 둘 사이에 어떤 제3의 차원이 존재한다고 본다. 이 차원이 바로 ‘구조(le structure)’이다.(인식론-존재론적 배경) 2) 구조주의는 이 제3의 차원이 바로 대상과 주체의 일정한 관계맺음을 지배한다고, 즉 대상과 주체는 자신도 모르게 -- 즉 무의식적으로 -- 이 제3의 공간(논리적, 법칙적 공간)을 통과해서 관계맺는다.(미술 시간과 생물학, 경제학 시간의 예) 3) 인류의 ‘문화’란 주체의 창조물이라기보다는 주체가 바로 그 무의식적 법칙에 따라 만들어낸 어떤 구조물이다. 즉 문화란 주체의 산물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다.(고주몽 신화와 파이톤 신화의 예) 4) 구조란 일정한 ‘소(素)들( ...ième)’ -- 음소, 신화소, 음식소 등등 -- 의 체계이며, 주체는 이 체계의 어느 ‘위치’에 자리잡는다.

구조주의라는 학문 방법론에 처음으로 철학적 함축을 부여한 인물은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이다. 구조주의가 서구적 주체, 서구적 근대성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나왔다면, 그 초입에 바로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는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이 놓여 있다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인류학이라는 담론은 본래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를 잘 통치하기 위해서 발달시킨 담론이다. 즉 인류학은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담론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런 전통을 공격함으로써 유럽에 의해 침탈 당한 未開文明에게 서구 지성인의 사과와 반성을 전달하고자 했다.

인류학의 가장 기본적인 입장은 기능주의적인 입장이다. 기능주의는 한 사물의 의미를 그 사물의 역할, 기능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전형적으로 근대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미개인에 대해 구조주의적으로 접근한다.(거북이, 독수리, 곰의 예) 근대 철학은 고전 철학이 ‘봄’의 수준에 머물렀으며 ‘함’의 수준으로 철학을 변환시키고자 했다. 구조주의는 어떤 면에서는 다시 ‘봄’의 철학으로 전환하려는 몸짓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구조주의는 ‘무의식’을 핵심으로 하며 이 점에서 현상학/실존주의와 날카롭게 대립한다. 무의식을 좁은 의미, 원래 의미대로 사용하면 정신분석학의 용어이다. 프로이트를 이어 라캉(jacques lacan)은 무의식을 탐색했으며, 구조주의적 정신분석학을 통해 서구 근대적 주체(코기토, 선험적 주체)를 해체했다. 라캉은 주체를 ‘형성되는’ 것으로 봄으로써 현대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레비-스트로스가 인류학의 영역에서, 라캉이 정신분석학의 영역에서 구조주의적 사유 양식을 전개했다면, 알튀세(louis althusser)는 맑시즘의 영역에서 구조주의적 사유를 펼쳤다. 구조주의와 더불어 알튀세는 스피노자와 바슐라르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기도 했다.

알튀세는 맑스의 초기 사상과 후기 사상을 날카롭게 구분하고자 했으며, 전기 철학에 영향을 받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대조적으로 후기 사상에 주안점을 두었다.

알튀세는 구조주의적 인과론,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등을 비롯한 중요한 개념들을 남겼다. 현대 철학의 중요한 -- 어쩌면 가장 중요한 -- 요소는 ‘주체 형성’의 탐구이다. 주체는 주어진 것, 설명항이 아니다. 그것은 형성되는 것, 피설명항이다. 라캉이 주체형성론을 정신분석학적 테두리 내에서 전개함으로써 일정한 한계를 드러낸다면, 알튀세의 주체형성론을 문제를 사회-역사의 장으로 끌어냄으로써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구조주의에 철학사적 위상과 인식론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푸코(michel foucault)이다. 푸코는 실증주의적-다원주의적 구조주의를 시도했다. 그러나 푸코는 구조주의를 벗어나 독자의 사유로 나아간다.

푸코 사유에서 구조주의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것은 『지식의 고고학』과 『말과 사물』에서이다. 전자에서 푸코는 언표와 담론 개념을 다듬음으로써 현대 문화철학에 결정적인 틀을 제공했고, 후자에서 서구 학문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구조주의의 철학사적 위상을 밝혔다.

푸코의 사유는 유럽적 근대성에 대한 철저한 해부이다. 푸코만큼 유럽적 근대성을 처절하리만큼 적나라하게 해체한 인물은 없다. 이 점에서 푸코야말로 좁은 의미에서의 현대 철학의 입구에 서 있는 인물일 것이다.


주체의 새로운 얼굴

자크 라캉의 사상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자크 라캉(1901-1981)은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레비-스트로스, 바슐라르 등과 더불어 20세기 중엽에 활동했다. '구조주의 정신분석학'의 대표자로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구조주의적 맥락에서 새롭게 재창조했으며, 거기에 인간존재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 성찰을 가미함으로써 현대 사상의 핵심 인물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라캉의 사유는 깡길렘, 푸코가 그렇듯이 '정상과 비정상'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깡길렘과 푸코가 한 사회, 한 시대가 비정상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어떤 논리, 개념, 장치들, 배경들을 깔고서 그런 구분을 행하는가에 관심이 있다면(인식론적-과학사적 관점), 라캉은 처음부터 모든 인간은 비정상이라고, 더 정확히 말해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아픈 존재”(헤겔)인 것이다. 이 점에서 통상적으로 함께 ‘구조주의자’로 분류되지만, 그리고 라캉 자신이 말년에 자신의 담론을 수학화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지만, 라캉은 레비-스트로스의 투명한 합리주의와 대조된다. 그러나 라캉은 그 아픔이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본 점에서 역시 구조주의자이다.


무의식


라캉 사유의 성과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이으면서도 거기에 구조주의 언어학의 성과를 도입해 무의식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를 시도한 점에 있다.

정신분석학은 '무의식' 개념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가 의식하는 세계, 의식으로 행하는 경험 아래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세계가 놓여 있다.(그러나 ‘무의식’이라는 실체는 없다. 의식의 공백으로서, 의식의 배면으로서 발견되는 어떤 차원일 뿐이다) 라캉에게서 무의식은 어린 아기가 상징의 세계, 표상의 세계에 진입하면서 형성된다. 그러한 진입 이전의 세계, 즉 아기와 엄마만이 존재하는 세계가 그 후의 세계 즉 상징과 표상의 세계에 억눌리면서 무의식이 형성된다. 즉 우리는 의식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아래에는 어린 시절에 발생했던 그러한 진입과 더불어 의식 아래로 들어갔으나 그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실질적으로 주체를 지배하는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의식 세계가 상징의 세계, 표상의 세계라면 그 세계는 필연적으로 기표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표는 기의와 맞물린다. 그러나 라캉에게서는 소쉬스에게서처럼 기표와 기의가 일대일 대응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존재와 사유의 일치”라는 고전적인 전제 위에서 활동했던 소쉬르와 기표와 기의의 ‘미끄러짐’에 대해 이야기한 라캉 사이에는 거대한 담론사적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더 정확히 말해,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에게는 기표-기의의 대응관계가 성립하며 때로 그 관계를 일탈하는 경우들이 존재한다면(예컨대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떠다니는 기표’) 반대로 라캉의 경우 기표와 기의는 애초부터 일치하지 않으며 다만 경우에 따라 기표가 기의에 “닻을 내리는” 곳 즉 이른바 ‘누빔점’이 존재한다.

기표는 그 안에 어떤 경험 내용을 담고 있다. “눈이 내린다”라는 기표는 눈이 내리는 현상(지시대상) 및 그 현상에 대한 경험 내용(기의)을 담고 있다. 그러나 라캉은 기표와 기의가 흔히 일치하지 않음을 말한다. 정치가가 “저는 대권 욕심이 없습니다”라고 극구 강조하는 것은 사실 은근히 대권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조심할 것은 이 정치가가 지금 의식적으로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 그 사람은 자신이 욕심이 없다고 믿고 있지만, 그럼에도 무의식 속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요점이다) 즉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일치하지 않는가? 바로 무의식 때문이다. 기표는 대권 주자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그 정치가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지만, 대권 주자의 무의식의 움직임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라캉에게 인간이란 병자든 아니든 기본적으로 이런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의식과 기표, 그리고 그 기표가 명시적으로 가리키는 기의의 세계가 있는 반면, 또한 무의식에서의 움직임이 존재하는 것이다.

무의식은 ‘그것(es)’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그것’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라캉은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를 뒤집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로. 라캉은 근대 철학의 대전제인 주체의 투명성, 주체가 “주어졌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주체의 밑에는 ‘그것’이, 무의식이 존재하며 주체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형성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거울 단계


어린 아기의 주체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가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라고 한다. 어린 아기는 아직 신체적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 이를 ‘조각난 몸’의 환상이라 한다. 이는 생물학적으로는 환상이지만 심리학적으로는 환상이 아니며, 누구나 겪게 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이 환상은 후에 ‘정신분열증’이 생길 수 있는 잠재적 바탕을 이룬다고 한다)

이 조각난 몸의 환상은 ‘거울 단계’에서 극복된다. 거울 단계에서 아기는 거울에 비친 영상을 보고서(또는 어머니나 다른 아기들에게 비친 자신을 보고서) ‘동일화(identification)’의 과정을 겪는다. 아기는 동일화를 통해서 조각난 몸의 단계를 극복한다. 이 단계가 “거울 단계/국면”이다.

그러나 이 단계는 아직 본격적인 주체가 형성되지 않은 단계이다. 아기는 아직 이자(二者)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때에 아기는 아직 상징의 세계에 들어간 것이 아니며, 엄마와 자기를, 다른 아기와 자기를 혼동하는 전이성(transitivity)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아기가 자신과 세계를 연속적으로 이해하는 단계이며, 라캉은 이 단계를 ‘상상적’ 단계라 부른다.

이 단계는 나르시스의 단계이기도 하다. 물 속의 자기 영상에 반했던 나르시스처럼 이 단계의 인간에게는 아직 타인, 상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단계는 매우 행복한 단계이다. 그러나 그 행복은 자신이 통일된 어떤 존재라는 일정한 ‘오인(誤認)’에 근거하고 있다. 라캉에게 주체란 기본적으로 오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기는 이제 이런 상상계로부터 상징계로 건너가게 되며, 이 과정을 통해서 본격적인 한 ‘인간’, ‘주체’가 형성된다.

아기는 타인의 세계, 사회 세계에 들어가며, 그 결정적인 측면은 곧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다. 라캉은 이 차원을 상징계라고 부른다. 이것은 달리 말해 아기가 이제 기표들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기표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오히려 기표들의 장 속에서 주체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주체의 형성은 곧 상징계로의 진입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란 타인과의 관계 하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징계로의 진입은 자기 소외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제 아기는 상징계라는 타자, 사회라는 타자 속에 들어가면 동일시의 환상에서 깨어나 차가운 자기소외(自己疏外)의 장으로 들어선다.(이 단계에서 아이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다. 즉 타인의 시선을 매개해 스스로를 이해한다) 나르시즘의 단계, 거울 단계는 곧 상상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사이에 존재하며, 그 단계를 통과함으로써 아기는 이제 자기와 타자를 뚜렷이 구분하면서 하나의 주체로서 정립된다. 그러나 이 구분은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로서 세운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징계에서 어떤 자리를 잡는다는 것을 뜻한다.

레비-스트로스는 근친혼의 금지야말로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문화로 이행하게 한다고 말했다. 연속적 자연으로부터 불연속적 규범으로 넘어옴으로써 혈연과 결혼이 구분된다. 라캉에게서는 바로 거울 단계가 이 ‘자연과 문화의 돌쩌귀’ 역할을 한다. 아기는 거울단계를 거치면서 유기체에서 인간으로 화한다. 이 점에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와는 달리 모든 형태의 생물학주의를 물리친다.

라캉의 사상은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함축을 띤다. 주체가 자기동일적 투명성의 존재가 아니라 자기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타자 즉 상징계를 통해 형성된다는 것은 근대적 주체 개념과는 판이한 주체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코기토가 해체된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


아기는 이자 관계에서 삼자 관계로 넘어간다. 이 때 아버지가 출현한다. 그러나 이 아버지는 상징계의 은유이다. 따라서 아버지가 없는 고아의 경우라도 상관없다. 아버지는 곧 법(法)의 세계이며 달콤한 상상계와 대비되는 차가운 상징계를 상징한다. 아버지가 등장한다는 것은 곧 아기가 상징계로 진입한다는 것을 뜻한다.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건너가면서 ‘균열(die spaltung)’이 생긴다. 그 과정을 통해서 무의식이 구조화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이름’이다. 이름이 주체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작용한다. 즉 인간의 원초적 욕망인 리비도/성욕이 규범에 종속된다. 오이디푸스가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했듯이, 아기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증오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과정은 의식적 과저이 아니라 무의식적 과정이다.

아기에게 어머니는 하나의 결핍으로서 나타난다. 즉 어머니에게는 남근(phallus)이 결핍되어 있다. 이 때의 남근은 생리학적인 남근이 아니라 아버지의 상징, 법의 상징, 상징계의 상징이다. 어머니가 욕망하는 것이 바로 이 팔루스이다. 아기는 바로 어머니의 팔루스가 되고자 한다. 즉 자신을 팔루스에 동일화한다. 아기는 어머니의 결핍을 채움으로써 어머니와 더불어 충족한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남자아이 중심의 설명이다.

아버지의 이름(nom)/기표는 곧 아버지의 “안돼(non)”이다. 즉 아버지/상징계는 금지로서 등장하다. 무엇의 금지인가? 바로 근친상간의 금지이다. 그것은 곧 연속성에 대한 갈망을 불연속으로 떼어놓는 과정이다. 연속의 자연에서 불연속의 문화로.(이 점에서 레비-스트로스와 통한다)

그런 분리를 거부할 때 아버지/법은 제재를 가하게 되며, 이 때문에 아기는 ‘거세(castration)’ 공포를 느낀다.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아기는 상징계로 진입하게 되며 ‘자아의 이상(the ideal of me)’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상상계에서의 ‘이상적 자아(the ideal i)’와 다른 것이다. 이상적 나는 상상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나이지만, 나의 이상은 상징계 속에서 타인의 눈길을 통해 형성되는 나의 모습인 것이다.

이 나의 이상을 가지게 되는 것은 곧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super-ego)’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비로소 주체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 주체는 상징계에 자리를 잡은 주체이지 상식적 의미에서의 주체가 아니다.

상징계로 진입하면서 언표하는 주체(말하는 주체)와 언표되는 주체(말의 주체)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한다. 자아가 억압되고 소외되기 때문이다. 이를 ‘원억압(原抑壓)’이라 부른다. 이 억압은 의식적 억압과 구분된다. 이러한 억압은 필연적으로 ‘욕구불만(frustration)’을 불러일으킨다.(이 욕구불만도 의식 차원에서의 욕구불만과는 구분된다) 상징과 도덕이 욕구불만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불일치’라 하는 것이 나을 듯이 보이는) ‘부정(negation)’의 개념이 등장한다. 이렇게 도덕과 윤리는 균열, 틈, 입벌림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신경증과 정신병은 바로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성립한다. 즉 상징계에 대한 ‘거부’로부터 발생한다. 여성이 잘 걸리는 히스테리는 자신이 거세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남성에게서 잘 발견되는 강박증은 반대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지나친 기대 때문에, 즉 스스로를 계속 팔루스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런 병들에 대한 치료는 기본적으로 상징계에로의 정상적인 진입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무의식의 구조


주체는 상징계에 들어감으로써, 기표들의 장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되며, 하나의 ‘인간’이, ‘주체’가 된다. 물론 인간, 주체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는 근대 주체철학의 뉘앙스와 정반대이지만. 요컨대 기표의 상징적 질서가 주체를 구성한다. 이것이 라캉의 기본적인 ‘구조주의적 사유 양식’이며 그를 레비-스트로스에 이어준다. 그러나 이 상징계의 구체적인 내용은 레비-스트로스와 현저하게 다르다.

인간은 언제나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타인이 자신에게 ‘똑똑한 사람’이기를 요구하면, 자신은 타인의 욕망하는 그것을 욕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욕망이 지향하는 것은 곧 기표이다. ‘훌륭한 사람’이라는 기표가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상징계, 같은 구조라 해도 레비-스트로스의 경우와 라캉의 경우는 현저히 다르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가 욕망이라는 기름기가 제거된 수학적이고 명징한 구조라면, 라캉의 구조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욕망 이외의 것이 아니다. 라캉에 이르러 이제 욕망이란 특수한 의미, 부정적인 의미를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본성으로, 세계의 성격 그 자체로 대두된다.

요컨대 의식으로부터 기의가 생기고 기의를 나타내기 위해 기표가 존재하는 것(현상학의 입장)이 아니다. 기표들의 장이 존재하고, 그 기표들의 장에 의해 주체 ― 의식적 주체 이전에 무의식적 주체 ― 가 구성되고, 그로부터 의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언어의 법칙이 먼저 존재하고 각개인의 무의식이 그 언어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다.

무의식이 언어적 규칙성에 의해 지배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언어적 규칙성은 기표와 기의의 일대일 대응이 무너진 상황에서의 규칙성이라 했다. 그렇다면 그 규칙성은 무엇일까?

한 가지 조심할 것은 기표가 떠다닌다고 말했다 해서, 기표와 기의 사이의 어떤 일정한 관계도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경우 정신분석학을 ‘과학’으로 정립하려 한 라캉의 시도는 좌절될 것이다. 라캉은 구조주의자인 한에서 합리주의자이며, 따라서 구조를 좀더 역동적으로 파악하려 한 것이지 합리적 파악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그럴 경우 ‘구조’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구조’라는 말을 쓰는 한 문자 그대로 어떤 구조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라캉에게서 기표와 기의는 일정 지점(‘누빔점’)에서 만난다. 그 지점을 잡아내는 것이 라캉 사유에서 합리주의적 측면이다. 그러나 기표는 궁극적 기의에 끝내 닻을 내리지 못한다. 영원히 알 수 없는 기의의 심연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이 라캉이 합리주의에서의 한계를 긋는 부분이다.

라캉은 이 언어학적 구조들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은유와 환유라고 생각한다. 은유는 압축이다. “불타다”와 “사랑하다”는 “뜨겁다”라는 공통 요소를 함께-중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압축(condensation)이다. 또한 은유는 치환을 특징으로 한다. “부자가 되다”가 ‘돼지’로 치환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이란 바로 이런 은유의 언어로 되어 있다고 했다. 은유는 동시성을 기반으로 한다. “불타다”와 “사랑하다” 그리고 “부자가 되다”와 ‘돼지’ 사이에는 어떤 시간적 선후도 없기 때문이다.

환유는 다르다. 환유는 이행이다. “잔을 들다”는 “술을 마시다”의 환유이다. “잔을 들다”와 “술을 마시다” 사이에는 이행/이동의 관계가 성립한다. 환유에서 두 항은 치환되기보다는 조합된다. 그리고 환유에는 시간적 요인이 개입한다. “잔을 들다”는 “술을 마시다”의 앞에 오며, 또 그래야만 환유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참고로 제유는 부분으로서 전체를 나타내는 경우이다. 사각모는 대학을 나타낸다)

정신분석학자는 기표들(예컨대 환자의 말)을 분석함으로써(즉 그 언어적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기의들(그런 말들이 뜻하는 환자의 ‘인생’)을 밝혀내고자 한다. 그런데 기표들과 기의들의 관계가 매끈한 일대일 대응을 이루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난점들이 발생한다. 라캉은 모든 열쇄는 결국 기표들이 쥐고 있으며, 우리는 기표들의 무의식적 구조를 분석함으로써만 기의들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의는 기표에 잡히지 않고 계속 미끄러진다. 물론 분석가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기의를 찾아낼 수밖에 없다. 분석가는 기표들이라는 낚시 바늘을 던져 기의들을 낚아낸다. 기표들과 기의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것이 성공한다. 그러나 기의는 끝내 그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칸트의 물자체처럼, 메이에르송의 ‘탈합리적인 것’처럼 저편에 머무른다. 이곳을 라캉은 ‘실재계’라고 한다. 그것은 언어에 완전히 포획되지 않는 세계 자체, 인생 자체일 것이다. 라캉의 사유는 상상계에서 출발해 상징계로 가지만 결국 실재계에서 끝난다. 아마 인생의 ‘의미’는 영원히 기호로 포착되지 않는 그 무엇인가 보다.


욕망과 운명


프로이트는 “그것이 있던 곳에서 나는 생성하리라(wo es war, soll ich werden)”고 했다. 나의 생성을 좌우하는 것은 무의식이다. 그것도 어릴 때 형성된 무의식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워즈워드)라는 말은 정신분석학에서 또 다른 뉘앙스를 획득한다.

그것은 나=자아에게 타자이다.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 타자=다름은 나의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나는 내 안에 나의 타자=무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정신분석학이 던져주는 가장 충격적인 메시지이다.

타자란 무엇인가? 타자는 언어, 기표의 장소, 상징계이다. 이 상징계는 어린아이가 상상계에서 그곳으로 옮겨갈 때 어린아이의 무의식에 자리 잡는다. 어린아이는 상상계의 달콤함과 환상을 포기하는 대신 상징계 안에서 ‘인간’으로서, ‘주체’로서 선다. 또 타자란 상호주체성의 장이다. 상호주체성은 개별적인 주체들 사이에서 추후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상호주체성의 장 내에서만 주체들은 주체들일 수가 있다. 상징계에 들어서는 동시에 개인들의 무의식에는 상호주체성이 각인된다.

헤겔에게서 한 인간의 주체성은 타자를 통해서만 ‘자아 속의 이상한 자아’로서의 타인을 통해서만 형성된다(인정투쟁). 라캉에서도 자아는 자신 속의 이상한 자신으로서의 타자=무의식을 통해서만 형성된다. 상징계는 팔루스이며 상징계를 채우고 있는 욕망은 팔루스에의 욕망이다. 팔루스는 욕망의 기표이다. 욕망은 팔루스라는 기표를 통해서 형성된다.

그런데 욕망(desire)은 욕구(need), 요구(demand)와 다르다. 욕구는 생리학적 필요이지만, 요구는 타인에 대한 간청이다. 어린 아기는 사탕을 욕구하지만 엄마의 사랑을 요구한다. 욕구는 사물들을 향하지만 요구는 사람들을 향한다.

이에 비해 욕망은 보다 근원적인 것이다. 욕망은 어떤 구체적인 맥락에서의 부재가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결핍에서 온다. 결핍은 어린 아기가 어머니의 몸에서 분리되어 나올 때 이미 형성되는 인간의 원초적 조건이다. 인간은 그 최초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 기억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는다. 그 원초적 결핍으로부터 욕망이 나온다.

욕망의 근원적 기의는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욕망하는가? 이미 상징계로 들어선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그래서 욕망의 기표는 팔루스이다. 그러나 욕망 자체는 어디에서 오는가? 팔루스를 욕망하는 것은 주체가 되기 위한 것, ‘인간’이 되기 위한 것, 일종의 타협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정신병을 앓기 때문에 거치는 통과의례이다. 그러나 도대체 욕망이 근원적으로 지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실재계를 영원히 알 수 없듯이 이 또한 알 수 없다. 라캉은 이 곳을 ‘신화의 세계’라 부른다. 인간은 어떤 쪼개짐으로써 갈라짐으로써 인간이 된다. 로고스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이 동시에 분열의 경험이라는 것이 인간의 얄궂은 상황이다. 따라서 욕망의 근원적 기의는 그 어떤 쪼개짐도, 갈라짐도 없는 그 어디일 것이다. 이런 욕망을 가지고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라캉적인 의미에서의 ‘운명’이다.

라캉은 욕망과 욕구 사이에 ‘충동(pulsion)’을 넣는다. 충동은 한편으로 욕구와 유사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성애적(性愛的)” 측면을 띤다는 점에서 욕구와는 다르다. 충동은 생리학의 영역에서 정신분석학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존재한다.

인간이 욕망의 존재인 한 인간은 번뇌의 존재이다. 도덕이나 윤리는 상징계를 받아들임으로써 성립하며, 따라서 인간의 영원한 번뇌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라캉에게 번뇌를 해결하는 길은 우리가 왜 그렇게 번뇌의 존재일 수밖에 없는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번뇌의 실체를 알게 되며 그로부터의 공허만 몸부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라캉의 사유는 스피노자 그리고 불교와 접맥된다.


라캉 사유의 의미


자크 라캉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받아들여 그것을 보다 넓은 지평에서 참신하게 재창조했다. 라캉이 프로이트와 구분되는 점은 프로이트와는 달리 극히 철학적인 성격의 담론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라캉을 통해서 정신분석학과 철학은 교차하게 되며, 그로써 주체, 자기, 욕망, ...을 비롯한 숱한 문제들이 새로운 지평에서 논의되게 되었다. 이 점에서 라캉이 현대 사상에 끼친 영향을 지대하다 하겠다.

라캉의 사유는 오늘날 슬라보예 지젝을 필두로 하는 ‘슬로베니아 학파’에 의해 계승되어 계속 확장되고 있다. 또 라캉의 사유는 문화예술 분야에 두드러진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현대 사상을 수놓고 있다.


 사회주의 사상의 전개



19세기에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마련된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은 이후 이론적-실천적으로 발전되어 나갔으며, 마침내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통해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탄생했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을 비롯해, 동구, 쿠바, 인도차이나 반도, 북한 등등에서 공산 혁명이 일어났으며, 다른 한편 서구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도 맑스주의적인 체제 비판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20세기는 맑시즘에 의한 미증유의 역사 실험이 이루어진 시기이며, 무수한 사상적 투쟁과 실제 전쟁으로 점철된 시대였다.


1. 레닌과 러시아 혁명


- 19세가 말 러시아는 아직도 짜르(czar) 즉 ‘카이사르’에 의해 통치되던 봉건 국가였다. 사회는 극단적인 신분 체제였고, ‘치노프니크’ 즉 출세용 사다리 체제가 그 사회를 지탱했다.(지식인들의 ‘신분 상승’을 보장해 줌으로써 사회의 신분 체제를 유지하는 전형적인 장치. 고대 중국의 과거 제도나 오늘날의 고시를 생각하면 되겠다)


- 1961년 계산된 ‘농노 해방’ 이후 러시아 자본주의가 급작스럽게 발달. ‘인텔리겐챠’에 의한 ‘나로드니키’ 즉 ‘나로드(인민)’주의자들이 출현. 전통적인 ‘오브쉬치나(농촌공동체)’로부터 농민 사회주의로의 직접적인 이행을 주장. 바쿠닌의 무정부주의에서 잘 나타나듯이, 열혈청년들과 농민 대중들의 거리가 컸음.


- 나로드니키를 비판하면서 러시아 최초의 맑시즘 등장. 플레하노프(‘러시아 맑시즘의 아버지’), 악셀로드, 자술리치 등이 ‘노동해방단’을 결성해, 나로드니키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한편 산업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는 러시아 혁명을 꿈꾼다. 1889년 제 2차 인터내셔널. 플레하노프가 러시아 대표로 참석.


- 국제 사회민주주의가 ‘경제주의’로 흐르다. 레닌(vladimir lenin)의 비판: “투쟁의 목표를 임금 인상, 노동 시간 단축 등에만 둔다면 결과적으로 자유주의적 자본가 계급을 도울 뿐이다.” 경제주의의 이론적 배경: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레닌의 비판: “만일 경제 투쟁을 그 자체로서 완결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그런 투쟁 내에는 어떤 사회주의적인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다.” 레닌은 경제주의, 수정주의, 소영웅주의(테러리즘) 등을 모두 비판. 대중들의 정신 무장을 위해 《이스크라(искра)》를 창간.


- 레닌, 경제주의를 논박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1902)를 출간. 노동 운동의 자생적 요소와 의식적 요소 사이의 관계. 노동자 계급이 자생적으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여기에서는 ‘허위 의식’이 아니라 계급의식)를 획득한다는 경제주의의 주장을 논박. 자생적 요소는 노동조합적 의식에 그칠 뿐이며, 사회주의적 의식은 심도 깊은 과학적 지식에 기반해야만 가능하다.


-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 2차 대회’(사실상 1차 대회) 열림. 그러나 마르토프 등의 멘셰비키와 레닌 등의 볼셰비키로 분열. 멘셰비키의 유연성과 볼셰비키의 강고함이 충돌.


- 1905년 ‘피의 일요일’. 대중들이 짜르의 정체를 눈치챔. 총파업. 전함 뽀쫌킨에서 반란. 1905년 10월 13일, 페테르스부르크에서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소비에트 = 평의회)가 조직됨. 빠리 꼬뮨에 버금가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형태를 보임. 그러나 짜르의 기병대에 몰려 실패. 이후 스톨리핀 반동기(1906-1911년).


- 1912년 《프라우다》 발간으로 혁명 열기 다시 고조. 레닌, 제 1차 세계대전(1914-1918) 사이에 『제국주의』를 저술. 독점자본주의론 전개. “자본주의가 ‘최고 단계’에 접어들어감에 따라 프롤레타리아도 최고 단계 즉 혁명에 접근하게 된다.” “제국주의는 플롤레타리아 사회 혁명의 前夜”. ‘조국의 패배’가 곧 노동자 계급 혁명의 전야.


- 1917년 2월 혁명. 짜르 체제 붕괴. 부르주아 임시 정부와 소비에트의 공존. 4월 3일 네닌 핀란드 역에 귀향.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레닌 「4월 테제」 제시. 프롤레타리아와 빈농이 혁명 주체가 되는 혁명 2단계로의 도약을 주장. 의회주의 공화국으로의 복귀 비판. 경찰, 관료, 군대 등 폐지. 토지의 국유화.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레닌은 끈질기게 설득. 레닌이 점차 힘을 얻게 됨.

10월 25일 마침내 무장 봉기. 무혈 혁명 이룩함. “사회주의 체제 건설을 위한 총진군.” 독일의 지원으로 백군(白軍)이 결성. 백군과 적군(赤軍) 사이에 3년간 치열한 전투. 연합군의 러시아 봉쇄와 경제적 궁핍.

1919년 제3 인터내셔널. 러시아 외에는 전반적으로 실패. 레닌 신경제 정책(new economic policy) 발표. 경제 발전을 위해 자본주의 일부 수용. 심지어 테일러 시스템까지 시도.


- 레닌, ‘문화 혁명’ 제창. 대중교육과 협동조합의 필요성 역설. 관료 제도의 위험성을 고발. 국수주의 비판. 1924년 레닌 사망. 유언에서 스탈린의 ‘거친 성격’에 우려 표명. 스탈린 제거를 명함. 트로츠키를 추천.

스탈린 권력 장악. 트로츠키와 갈등. 트로츠키, 망명지에서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 당함. 스탈린의 무리한 공업화로 무수한 농민들이 사망.


2. 헤게모니: 레닌과 그람시


- 레닌이 나로드니키를 비판한 것은 그들이 오브쉬치나에서 사회주의로의 직접적 도약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이미 러시아에서는 자본주의가 퍼지고 있었다. 즉,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었으며, 농민이 임금 노동자로 변하고 있었다. 화폐의 유통이 이미 자본주의를 확대시켰으며, 레닌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기존 모순을 와해시키는데 과도기적인 공헌을 하리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레닌의 비판은 나로드니키가 러시아의 특수성을 강조했기 때문이 아니라(역사의 특수성은 레닌 자신의 주장이다), 그 특수성을 잘못 보았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다.

레닌에 따르면 시스몽디 등에게서 볼 수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감상적(感傷的) 비판은 그릇되다. 생산력 개념과 생산 관계 개념을 분명히 구분해야 하며, 생산 관계를 비판하되 생산력은 인민들의 삶에 중요하다는 점이 인지되어야 한다.


-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쓸 당시 러시아의 혁명 세력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노동자 계급이었다. 따라서 이론과 실천 사이에는 괴리가 있었다. 게다가 레닌이 비판했던 사민당(= 러시아 사회민주당)이 결성되고 있었다. 그릇된 이론이 인민을 호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론은 지식인으로부터 나오지만, 그 이론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대중적 실천과의 연계고리가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레닌은 운동을 이끌어 갈 전위(= 아방가르드)가 필요하며 이 생각을 ‘당(黨)’이라는 개념에 집약했다. 철저하게 훈련되고 강철처럼 강인한 ‘직업적 혁명가들’의 존재만이 러시아 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을 통해서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가 성립 가능하다. 헤게모니를 통해 운동의 자연발생성을 극복할 수 있다.

헤게모니란 그리스어 ‘êgêsthai’ 또는 ‘êgêmoneuô’에서 유래했으며, ‘인도하다’ ‘안내하다’ ‘선도하다’ ‘앞에 서다’ 등을 뜻한다. 원래 ‘êgêmonia’는 군대의 최고 지휘부를 뜻했다. 레닌에게서 헤게모니는 대중을 사회주의적 투쟁의 흐름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중의 모든 요구에 깊이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뜻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곧 ‘혁명적 주체’의 개념을 함축한다. 레닌은 역사에 대한 결정론적 해석 -- 맑시즘에 대한 진화론적 해석 -- 을 물리치고 주체적 힘과 정치적 주도권을 중시하는 맑스-레닌주의를 건설하고자 했다.


-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는 레닌을 이어 헤게모니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람시는 ‘진지전(陣地戰)’과 ‘기동전(起動戰)’을 구분한다. 기동전은 사회의 구조가 흔들리고 급박한 혁명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때 필요하다. 그람시는 1917년 3월부터 1921년 3월(러시아 내전의 종식)까지는 기동적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그람시의 당대 유럽에 필요한 것은 진지전이다.(이 점에서 그는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 핵심적인 대상은 파시즘이다. 레닌이 제국주의 시대에 반제국주의를 위해 투쟁했다면, 그람시는 파시즘 시대에 반파시즘을 위해 투쟁했다고 할 수 있다.


- 1929년의 공황이 자본주의를 패망시키지 못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이미 성숙했으며, 따라서 폭격을 해도 별 타격을 받지 않는 ‘참호(塹壕)’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은 단지 전쟁이나 혁명 또는 기타 방법에 의해 국가 권력을 쟁취하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 사회 자체를 정복해야 하는 것이다.(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의 시민들이 과연 사회주의적 ‘인간들’이었나를 상기할 것) 특히 그람시는 자본주의 국가의 손발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의 변화에 큰 관심을 쏟았다. 그리고 시민 사회는 민족적 특징을 띠기 때문에, 헤게모니는 민족적인 특수한 토양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요청한다.


- 그람시에게 혁명이란 정치적-경제적-군사적인 것 못지않게 도덕적-인식론적-철학적-문화적인 것이다. 그람시의 도덕적-지적 혁명 개념은 레닌의 뭏화 혁명 개념과 상통한다. 진정한 개혁이란 관습을 철저하게 공격하고 문화와 사회, 지식인과 대중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헤게모니란 지도 장치(= 헤게모니 장치)를 만들어내는 능력, 동맹을 쟁취하는 능력,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그 사회적 기초를 제공해 주는 능력 등을 뜻한다.(그람시에게서 헤게모니가 어떤 ‘상태’나 다른 범주가 아니라 ‘能力’의 범주로 이해된다는데 주목) 그래서 어느 한 계급의 헤게모니는 어떻게 실행되는가,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에 이르는 과정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같은 물음들이 중요한 물음들로서 제기된다.


- 이밖에 그람시는 문화와 대중 사이의 관계, 지식인과 대중의 관계, 인문계와 실업계의 분리에 따르는 계급 분화, 카톨릭 교회의 헤게모니를 비롯한 많은 문제들을 그의 『옥중 수고』에서 논했다.


3. 사회주의 사상의 전개


- 루카치는 헤겔을 경유해 맑스를 읽음으로써, 경제 결정론을 비판하고 상부 구조에 대한 연구 특히 미학에 관련한 연구를 남겼다.


-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스탈린의 교조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의 실존을 잊지 않는, ‘체험된 세계’에 뿌리내리는 실존적 맑시즘을 전개했다.


- 모택동은 장개석과의 투쟁을 통해 중국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으며, 맑시즘과 중국의 전통을 이으려 노력했다. 모택동은 도가적 낙관주의를 견지했으며, 이 점에서 서구적 맑시즘의 분위기와 비교된다.



人生易老天難老

歲歲重陽

今又重陽

戰地黃花分外香


一年一度秋風勁

不似春光

勝似春光

료廓江天萬里霜


- 알튀세는 바슐라르 인식론과 구조주의의 방법을 도입해 구조주의적 맑시즘을 구성했다.


- 네그리는 스피노자, 맑스, 들뢰즈의 철학에 근거해 ‘아우토노미아’ 사상을 전개했으며, 가타리, 하트 등과 더불어 줄기차게 사회주의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 티토의 유고슬라비아를 비롯한 동구, 김일성의 북한,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쿠바, 호치민의 베트남 등을 비롯한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건설되었다. 그러나 교조주의로 화한 당과 자본주의 경제와의 싸움에서의 패배를 통해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필요한 사회주의는 어떤 사회주의인가를 생각해 보자.


참고 문헌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박종철출판사

그람시, "감옥에서 보낸 편지“, 민음사

“그람시의 옥중 수고”, 거름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거름

모택동, "실천론, 모순론 외", 범우문고

알튀세, “『자본론』을 읽는다”, 두레

네그리․가타리, “자유를 위한 새로운 공간”, 갈무리

네그리․하트, “제국”, 이학사



근대성 비판


- 근대성이란 서구에서 16세기 말 이래 서서히 형성되어 발달한 삶과 사유의 양태를 뜻한다. 오늘날의 사회는 이 근대성이 극에 달한 초근대성의 사회이다. 따라서 근대성과 현대성을 연속으로 보는 한에서 근대성 비판은 곧 현대성 비판이기도 하다.

사실상 어느 시대, 어느 문화에서나 철학은 비판(kritik)이다. 그럼에도 유독 ‘근대성 비판’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서구는 물론 서구를 추종했던 다른 문화들에 있어서도 근대성이란 삶의 모범 답안이었고 ‘근대화’란 역사의 기본 추동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성 비판이 문제가 된다.


- 그런데 따지고 보면 19세기 말 이후의 대다수의 ‘비판적인’ 사유들은 모두 탈근대 사상들이다. 근대 사회에서 현실 비판이란 당연히 근대성 비판이겠기에 말이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대표적인 근대성 비판은 맑스의 사유와 니체의 사유이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이긴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19세기에 이르러 뚜렷이 모습을 드러낸 부르주아 사회, 관료 사회, 기술문명 사회, 대중 사회(‘기술’과 ‘대중’에 대한 생각에서 이 두 사람이 갈라진다)에 대한 빼어난 비판을 제시했다.

구조주의 또한 탈근대 사유이다. 그것은 구조주의가 근대성을 떠받쳐 온 가장 핵심적인 철학적 개념인 ‘주체’(더 정확히는 ‘선험적 주체’) 개념을 해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주의 입장에서 볼 때 맑시즘 또한 근대적이다. 구조주의에 이르러 근대성 비판은 훨씬 선명한 색깔을 띠게 된다. 그러나 합리성, 법칙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라는 측면에서 구조주의 역시 그 후 비판의 대상이 된다.


-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20세기 중엽으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를 사회학적-철학적으로 비판해 왔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현대 사회를 고도의 합리성(기술문명)과 고도의 반합리성(폭력, 광기 등)이 기묘하게 결합된 사회로 본다. 이 점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니체의 사유와 대립하며, 간접적으로 맑시즘과 연계된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유물론이자 경제 중심주의인 맑시즘과는 달리 ‘문화’(넓은 의미, 맑스의 ‘상부 구조’)에 중점적인 관심을 가진다. 이 점에서 이 학파의 작업은 막스 베버의 작업과도 통한다. 다소 도식적으로 말해, 맑시즘이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총체적인 전복을 꿈꾼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서구 사회 자체 내에서 좀더 부드러운 문화 혁명을 꿈꾼다고 하겠다.

이런 성격 차이는 한국 사회에서도 반영되었으며, 80년대에 운동권이 맑시즘을 기반으로 했다면 화이트칼라 지식인들의 상당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경도되었다.


-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사회과학 연구소에서 출발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유는 흔히 ‘비판이론(kritische theorie)’이라 불린다. 이 학파는 1923년 창설되었으나 처음에는 맑시즘과 실증주의 사이에서 우왕좌왕했다. 이 학파는 본격적으로는(여기에서 ‘본격적’이라 함은 초기의 ‘실증주의적 사회과학’으로부터 ‘비판적 사회철학’으로 넘어간 것을 말한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가 제 2대 소장으로 취임한 1930년부터 뚜렷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호르크하이머는 이 학파의 성격을 ‘사회철학(sozialphilosophie)’으로 뚜렷이 규정했으며, 이후 1932에 마르쿠제(herbert marcuse)가 또 1938년에는 아도르노(theodore adorno)가 들어오면서 활기를 띠게 된다. 그러면서 정신분석학이 또 하나의 주요한 관심사로 자리잡게 되며, 맑스와 프로이트의 회통이 모색되었다. 이 학파는 나치를 피해 1933-1950년에는 미국으로 망명갔으며, 1950년에 독일로 다시 돌아왔다.


-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실증주의(특히 당대에 큰 흐름을 형성했던 비엔나 학파의 논리실증주의)를 비판하고 변증법적 사유 양식을 구사했다. 현대의 과학기술 문명은 고도의 합리성을 구가하는 듯이 보이지만, 의미와 가치의 문제를 소홀히 하고 학자의 ‘가치 중립성(wertfreiheit)’을 강조함으로써 결국 지식이 자본주의와 지배 권력의 도구가 되어버렸다고 본다. ‘도구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현대 사회인 것이다. 이것은 곧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 호르크하이머와 마르쿠제는 그람시나 루카치와는 달리 현대(20세기 중엽 당대)의 노동자들은 이미 자본주의 체제에 길들여졌으며 혁명 세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기울어졌다. 때문에 그들은 노동자들보다는 오히려 비판적 지식인이 혁명 세력이 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 점에서 그 후의 ‘학생 운동(student movement)’의 이론적 기초를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아도르노는 정치의 문제보다는 문화(좁은 의미)의 문제에 몰두했으며 현대의 기술 문명이 어떻게 얼굴 없는 대중을 만들어내는가에 주목했다. 아노르노는 문화가 하나의 ‘산업’이 되는 현상을 비판하고, 대중 문화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반대로 벤야민은 현대의 대중 문화(영화, 사진 등)가 기존 예술이 가지고 있던 ‘아우라’를 무너뜨림으로써 새로운 미학을 창조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사회 운동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대중 문화에 대한 상반된 이해를 통해 갈라졌다.


-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현대 사회의 대중의 의식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자연히 정신분석학에 주목하게 된다. 특히 독일의 대중이 나치즘을 환영하는 것에 충격을 받은 이들은 오래 전에 스피노자가 제기했던 “왜 대중은 복종 받기를 스스로 원할까?”라는 물음을 다시 던졌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파시즘의 심리학에 상당한 관심을 쏟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초기에는 그 비합리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배척했던 정신분석학, 생철학, 실존주의 등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에리히 프롬은 정신분석학을 사회학적으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인물이다.


-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6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며, 그 후에도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같은 인물을 통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버마스는 특히 소통의 문제에 관련해 큰 공헌을 했다.


-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프랑스 푸아티에에서 외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기에는 주로 의학(특히 정신의학)을 연구했으며, 병리학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임상의 길로 가기보다 사상의 길을 걸어갔다. 동성애자로 태어난 푸코는 ‘타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박해에 깊은 회의를 품고 이후 자신의 실존적 체험을 철학으로 승화시켜 ‘타자의 사유’를 수립했다. 오늘날의 사유가 타자의 사유라면 푸코야말로 그 대변자라 할 것이다.

푸코는 사르트르 이래 모든 저항 운동을 이끈 투사였다. 들뢰즈와 함께 벵센느 실험 대학을 만들었고, 꼴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하면서도 줄곧 사회 운동을 주도했다. 푸코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저항 운동을 모든 다른 형태의 타자들(광인, 수인, 동성애자, 여성, 어린이, ... )로 확장했으며, 그런 활동은 그의 사유와 한덩어리를 이룬다. 푸코처럼 삶과 철학이 한덩어리로 얽혀 있는 사상가도 드물다.

한국 사회에서 푸코의 사유는 1990년대를 수놓았다. 80년대에 맑시즘을 통해 이해되던 현실이 더 이상 이전의 개념틀로는 포착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했을 때, 푸코가 그 이론적 프리즘을 제공했던 것이다.


- 푸코는 그의 스승인 조르주 깡길렘의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깡길렘의 인식론을 보다 넓은 지평으로 발전시켰다. 깡길렘은 그의 학위 논문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를 다루었으며, 이 문제는 그대로 푸코의 문제가 된다.

푸코는 한 사회에서의 나눔(division)의 메커니즘, 좀더 철학적으로 표현해 ‘존재론적 분절’의 메커니즘에 주목한다. 정상인과 광인은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나뉘는가? 합법적 인간과 불법적 인간을 가르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가? 푸코의 사유에는 늘 이 나눔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 점에서 피상적인 이해와는 달리 푸코는 존재론자이다.

그런데 자연에서의 나눔(예컨대 생물학적 계통학)은 그렇다 치고 사회에서의 나눔은 항상 배제(exclusion)의 문제를 포함한다. 나눔이 있는 곳에 배제가 있다. 때문에 푸코의 사유는 이 배제의 문제를 파고들며, 그 결과 타자들(광인, 병자, 소외된 담론들, 囚人, 여성, 어린이, 노동자, ... )의 사유를 수립하게 된다.


- 푸코는 한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그물망, 주체와 세계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무의식적 지층을 드러내려 한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의 세례를 받았다. 사실 오늘날의 사유는 어떤 형태로든 구조주의를 영향을 받았으며, 철학사를 구조주의와 前구조주의로 나누어도 좋을 정도로 구조주의적 사유 양식을 결정적인 분기점을 형성한다. 그러나 푸코는 구조주의 사유를 다음과 같이 비판적으로 변형시킨다.

1) 구조주의가 구조를 실체화하려 했다면, 즉 그것을 자연법칙과 같은 어떤 객관적 법칙으로 파악하려 했다면, 푸코는 구조라는 것을 인위적인 것, 자의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때문에 그의 구조주의는 레비-스트로스와 같은 평온한 구조주의나 이후의 탈정치적 기호학에서 탐구하는 구조주의가 아니라 정치, 권력, 배제, 탄압, 저항 같은 내용으로 채워진 역동적인-정치적인 구조주의이다. 구조주의를 이렇게 극복하는 과정에서 깡길렘과 더불어 니체, 바타이유 등의 사유가 큰 도움을 주었다.

2) 푸코는 한 사회의 무의식적 지층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비가시적인 ‘實在’를 이룬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드러난 배제 메커니즘들을 탐구한다. 이 점에서 푸코의 사유는 실증적 구조주의라 할 수 있다. 그는 ‘實在’에 대한 물음을 괄호치고 모든 탐구를 역사에 대한 탐구에 국한시킨다.

3) 푸코는 구조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문에 라캉처럼 인간의 무의식 구조를 탐구하는 것은 푸코 입장에서는 매우 추상적인 사유, 칸트와 다를바 없는 사유이다. 구조는 문화적으로 다르고 시대적으로 다르다. 중국의 구조와 프랑스의 구조는 다르며, 르네상스 시대의 구조와 근대의 구조는 다르다. 이 점에서 푸코의 사유는 다원론적-역사적 구조주의이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아날 학파의 역사학과 통한다.

푸코는 구조주의의 성과를 받아들이면서도 이렇게 그것에 결여된 정치와 역사의 차원을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사유로 나아갔다.


- 『광기의 역사』는 아마도 서양 철학사상 가장 독창적인 책일 것이다. 철학과 절대 모순을 형성하는 광기를 사유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우리 시대의 사유의 출발점을 이루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사유는 『광기의 역사』에서 출발한다.

푸코는 이 책에서 다채로운 논의를 전개하고 있으나, 그 중 몇 가지만 짚어보자. 1) 비본질주의: 니체와 베르그송 이래 비본질주의는 현대 철학의 기본 입장이 되었다. 그러나 푸코는 비본질주의를 단지 추상적인 철학적 논의로만 다룬 것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에서 본질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환’되는가를 추적한다.

2) 푸코는 ‘지식(savoir)’ -- 푸코의 전문 용어이므로 주의를 요함 -- 과 권력 사이의 끈끈한 연계성을 정신병리학(말미에서는 정신분석학)을 예로 전개한다.

3) 푸코는 타자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동일자의 눈길 또는 정의(définition)가 어떻게 타자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주체성의 문제와 관련된다. 푸코는 주체성 -- 사실상 反주체적인 주체성 -- 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문제삼고 있다.(라캉, 알튀세 등과 비교)

4) 이 책은 서구의 ‘근대성’에 대한 환상을 송두리째 뒤집어엎고 있으며, 이 점에서 탈근대 사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푸코는 서구 근대의 ‘지하실’에 들어가 그 음모, 고문 도구, 교활한 훈육 체계 등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 『임상의학의 탄생』은 주제가 의학이어서인지 일반적으로 덜 논의되고 있지만 푸코 사유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푸코는 여기에서 ‘봄(voir)’과 ‘앎(savoir)’의 관계를 임상의학이 탄생하는 지점에 초점을 맞추어 낱낱이 해부한다. 이 책은 또한 죽음에 대한 비샤의 중요한 통찰을 세밀하게 분석해 주고 있다.


- 『말과 사물』은 서구 담론사에서 특히 생명, 노동, 언어라는 세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푸코는 르네상스, 고전 시대, 근대, 그리고 오늘날의 ‘에피스테메’를 추적하면서, 박물학=자연사가 생물학으로, 부의 분석이 정치경제학으로, 일반문법이 비교 언어학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이러한 과학사적 논의를 통해 푸코는 서구 담론사에서의 언어와 주체의 관계를 파헤친다. 르네상스 시대, 고전 시대, 근대, 현대로 변환되면서 언어와 주체가 어떤 연관을 가지는지, 그리고 ‘말과 사물’이 어떤 굴곡을 겪는지를 다루고 있다.

푸코는 칸트에서 실존주의에 이르기까지의 서구 주체철학을 ‘인간학적 잠’에 빠졌다고 비판하며, 유명한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다.


- 『지식의 고고학』에서 푸코는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작업들을 되돌아보면서 그 방법론적-존재론적 기초를 다시 검토한다. 언표, 담론, 역사적 아프리오리를 비롯한 다양한 개념 장치들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재검토한다.


- 『감시와 처벌』은 서구 사회에서 죄의 개념과 처벌 양식이 어떻게 변했는가, 근대 ‘휴머니즘’이 표방한 처벌의 인간과는 과연 어떤 성격을 띠는가, 법의학, 형법학 등 근대적 지식들과 부르주아 사회의 권력은 어떤 상호 관계를 지녔는가 등을 탐구했다.

이 책은 또한 지정학(地政學)에 큰 시사를 던져주었으며, 신체적 차원과 담론적 차원 사이의 관계를 새로운 맥락에서 제시했다. 푸코는 이 책을 쓸 당시 열정적인 사회 참여를 통해 감옥 환경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 『성의 역사1: 지식에의 의지』는 『감시와 처벌』을 이어 서구 사회에서 성이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가를 논한다. 『성의 역사』는 본래 6권으로 기획되었으나, 1권이 나온 후 푸코는 갑자기 8년 간의 긴 침묵에 들어간다.


- 『성의 역사』 2, 3권인 『쾌락의 선용』, 『자기에의 배려』에서 푸코는 새로운 정향을 보이는데, 그것은 그 때까지 권력이 주체를 어떻게 모양지우는지에 주목했다면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즉 주체가 권력의 장 안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주체화하려 했는지를 다루기 시작한다. 푸코는 이런 과정을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subjectification’이 아닌 ‘subjectivation’으로 표기한다. 그것은 예속과 주체화가 동시에 발생하는 과정이다.

또 하나 독특한 것은 그 때까지 언제나 근대를 다루어 오던 푸코가 이번에는 고대로 영역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푸코는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가려 했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완성하지 못했다.


카오스모스의 세계관


- 17세기 초에 새로운 자연과학이 탄생하면서 ‘자연철학’이라는 말은 자연과학 이전의 구닥다리 지식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었다.

오늘날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자연과학이 고도로 발전했지만 자연의 근본적-종합적 의미, 자연과 인간의 관계(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상), 자연과학적 자연과 다른 담론들이 이해하는 자연 사이의 관계 같은 문제들은 과학자들로부터도 또 철학자들로부터도 외면당해 왔다. 이 점에서 과학철학이나 생명윤리학과 더불어 요청되는 담론은 자연철학이다. 과학철학이 과학에 대한 ‘메타적’, ‘방법론적’ 연구를 맡고, 생명윤리학이 생명공학이 빚어낼 수 있는 비윤리적 상황을 맡는다면, 자연철학은 자연 전체에 대한 종합적 안목이라는 역할을 맡는다. 오늘날 상대적으로 과학철학은 많이 발전했지만 자연철학은 미진하다. 그것은 세부적인 영역을 파고드는 자연과학자들에게도 또 오래 전에 자연, 우주, 세계에 대한 관심을 상실한 철학자들에게도 버거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현상학, 해석학을 비롯한 반과학적 철학들을 선호하게 되고, 과학자들은 실험실의 좁은 세계에 폐쇄되고 있다. 한편으로 현실을 담지하지 못하는 인문주의적 철학들이, 다른 한편으로 이미 자본주의, 기술문명의 하수인이 되어 버린 과학들이 양극화된 것이다. 자연철학이 오늘날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띠는 것은 이 때문이다.


- 20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과학적 성과들(물론 철학적 함축을 띠는 성과들)은 많다. 분자생물학, 카오스 이론, 프락탈 이론, 급변론, 우주론에서의 발견들(펄사, 빅뱅, 흑공 등), 사회생물학 논쟁, 여전히 열띤 논의를 불러오고 있는 진화론 등이 그것들이다. 여기에서는 이들 중 카오스 이론을 살펴보고 ‘카오스모스’의 개념을 익힌다.


-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대립은 모든 고대 담론에 공통된 소재이다. ‘카오스모스’란 두 말을 합친 것이며 혼돈과 질서의 중첩을 이야기한다.

카오스와 코스모스는 자연철학적 맥락 못지 않게 역사철학적 맥락도 함축한다.(장자의 예, 레비-스트로스의 예)


- 근대 과학은 (고대 철학으로부터 물려받은 환원주의), 분석적 사유 양식, 양화와 함수화, 그리고 기계론과 결정론을 그 기본 성격으로 가진다. 그러나 카오스 이론은 근대 과학의 이런 성격을 여러 면에서 극복하고 있다.

카오스 이론은 1960에 등장했으며, 영국의 기상학자인 로렌츠가 발견한 ‘카오스 현상’에 그 실마리를 두고 있다. 로렌츠는 대기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카오스 현상을 발견한다.(그림 참조) x(t)는 대류의 세기, y(t)는 오르내리는 2개 흐름의 온도차에 비례하는 함수, z(t)는 온도 분포의 차가 모형으로부터 떨어진 정도, a는 ‘프란틀 수’(유체의 확산 계수와 열전도 계수의 비), b, c는 계수들.


- 로렌츠는 초기 조건을 0.506127로 잡았다가 계산을 간단히 하려고 0.000127을 뺐다. 컴퓨터에 작업을 맡기고 나갔다 와서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그래프를 보게 된다.

이 현상은 ‘초기 조건에의 민감성’, 자유도(自由度)의 증폭, 비선형성(non-linearity)을 특징으로 갖는다. 이런 특징들은 전에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세계의 숨은 비밀을 활짝 열어주고 있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는 그것과 비교해 비교도 할 수 없이 복잡한 진짜 세계의 한 ‘경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 이 카오스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이제 몇 가지 개념 장치들과 가설들, 이론적 고안들이 제기된다. 그중 기초가 되는 개념은 ‘끌개’라는 개념이다. 다음 그림을 참조. 이 그림은 무산(霧散) 구조(또는 散逸 구조)를 잘 보여준다.


- 기존에는 세 가지 끌개가 있었다. 점 끌개, 원 끌개, 도넛 끌개이다. 로렌츠가 발견한 카오스 현상은 ‘이상한 끌개’를 보여준다. 어떤 점에서 ‘카오스 현상’이라는 말은 좀 아이러니하다. 왜냐하면 로렌츠가 발견한 것은 카오스가 아니라 어떤 새로운 질서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전의 질서에 상대적으로 ‘카오틱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중요한 것을 알려준다. (다른 맥락에서이지만) 구조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바깥의 바깥’에 대해, 카오스에 대해 말했다. 이제 우리는 카오스란 무질서가 아니라 복잡한 질서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오래 전에 베르그송이 지적했듯이, ‘질서’란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개념이다. 우리의 개념틀에 포착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거기에 “질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정치철학적인 맥락도 상기). 현대 과학이 발견한 것은 카오스가 아니라 카오스모스이다.


- 이상한 끌개와 더불어 카오스 현상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카오스 현상이 프락탈 현상을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프락탈 이론과 카오스 이론이 만난다.


- 서구 철학은 오랫동안 변화하는 현상의 근저에서 불변의 실재를 찾아왔다. 그리고 이런 논리를 과학에 그대로 이전된다. 메이에르송이 역설한 ‘동일성’이 서구 사유의 근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서구 학문의 근저에 깔려 있는 플라토니즘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시간의 철학을 제시한다.

카오스 이론은 현대 철학과 나란히 ‘존재에서 생성으로’의 이행을 강조합니다. 이제 고전 물리학을 특징짓던 탈시간성은 카오스 이론의 시간성을 통해 극복된다. 카오스 이론은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를 강조하며, 이 과정을 결정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시간이다. 프리고진이 베르그송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카오스 이론은 근대적 환원주의에 카오스 현상의 복잡성을, 분석적 사유에 분석 불가능한 운동을, 양화와 함수화 아래에 깔려 있는 카오스를, 그리고 기계론과 결정론에 맞선 세계의 비결정성과 유기성을 강조한다.


루이 알튀세: 맑시즘, 구조주의, 인식론


- 맑시즘은 20세기 철학과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파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퍼져나갔다.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통해 소비에트공화국을 건설했으며, 이후 트로츠키, 스탈린 등이 그를 이었다. 그람시는 이탈리아 사회주의의 초석을 놓았으며, 이 전통은 오늘날 네그리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맑시즘을 다소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었다. 중국에서는 마오처퉁에 의한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했으며,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 ... 등등이 잇달아 성립했다.

프랑스의 경우 pcf(프랑스공산당)가 성립했으며 이 기관을 통해 사회주의 운동이 퍼져나갔다. 프랑스에서는 뚜렷이 대조되는 두 종류의 맑시즘이 전개되었는데, 그 하나는 사르트르, 메를로-퐁티로 대변되는 ‘실존적 맑시즘’이고 다른 하나는 알튀세에 의해 대표되는 ‘구조주의적 맑시즘’이다. 전자가 맑스를 헤겔과 연계시켜 (교조적 맑시즘에 결여되어 있는) 인간 실존에 대한 변증법적 성찰로 나아갔다면, 후자는 맑스를 헤겔과 날카롭게 대조시키면서 후기 맑스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에 초점을 맞춘다.


- 알튀세의 저작들: 『『자본』을 읽다』(i․ii, 공저, 1965),

『맑스를 위하여』(1967),

『레닌과 철학』(1969),

『입장』(1976)

『자본』의 연구에는 마셰리, 발리바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함께 참여했으며 ‘알튀세 학파’를 이루었다.


과학과 이데올로기


- 알튀세는 실존적 맑시즘이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인간주의적’ 맑시즘을 비판하고 맑스를 ‘과학적으로’ 읽기를 원했다. 이런 맥락에서 당대 사상계의 두 가지 주요 성과, 즉 프로이트-라캉의 정신분석학 및 바슐라르-깡길렘의 인식론을 맑시즘과 접맥시키고자 했다.


- 알튀세는 맑시즘 연구에서 당대까지 결여되어 있던 인식론(과학철학)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곧 맑시즘을 메타과학적으로 재정초하려는 야심을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맑시즘 ‘철학’과 실제 ‘정치’를 이으려 했다.

이런 맥락에서 알튀세는 특히 ‘이론(théorie)’이라는 개념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을 행했다.


- 알튀세에게 ‘이론’이란 언제나 ‘이론적 실천’이다. 그에게 이론과 실천의 이분법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론은 실천의 특수한 한 양상이다. 이론은 이론적 실천인 것이다. 후에 (알튀세의 영향을 받은) 푸코가 ‘담론’을 그 자체 하나의 실천으로 보았듯이, 알튀세는 “이론 없이는 혁명적 실천도 없다”는 레닌의 생각을 발전시킨다. 혁명 주체가 ‘자연발생적’ 단계에서 ‘의식화된’ 단계에로 이행하는데 이론적 실천은 필수적인 것이다.


- 알튀세에게 가장 기본적인 구분은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구분이다(훗날 푸코, 들뢰즈 등의 집중적인 비판 대상이 됨). 이데올로기는 ‘전(前)과학적 이론’이다.

이데올로기란 ‘표상과 관념의 집합’이다. 즉 맑스가 말하는 상부구조이다. 그리고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의 산물이다. 이데올로기란 표상과 관념이 하부구조(경제)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 성립한다. 그 점에서 일종의 ‘환상’이다. 그리고 환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을 정당화하는 도구로서 기능한다. 계급의식이 결여된, 사적 유물론 및 변증법적 유물론의 시각이 결여된 이전의 사상․철학들은 이런 역할을 해 왔다.


- 이데올로기 즉 일종의 ‘허위의식’의 형성을 설명하기 위해 알튀세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도입한다. 프로이트와 라캉은 자아가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무의식을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주체요 중심으로 착각하는 것을 ‘오인(méconnaissance)’이라고 했다. 인간은 상징계가 자신의 무의식의 언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상징계란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요, 법이다. 라캉에게서 은유적 뉘앙스가 강한 이 개념들이 알튀세에게는 보다 현실적인 사회 저체가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회의 무의식적 법칙성을 깨닫지 못한채 스스로를 ‘주체’로서 세운다. 즉 ‘사회적 자아의 허위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알튀세의 사유는 한편으로 이 이데올로기/허위의식을 폭로함으로써 부르주아 사회 및 그 사회를 떠받치는 사상들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 ‘구조’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혁명이론을 제시하려는 사유이다. 여기에서 알튀세 사유의 구조주의적 측면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 알튀세의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그의 스승인) 바슐라르의 인식론이 짙게 깔려 있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과학과 전(前)과학은 날카롭게 구분되어야 한다. 전과학은 우리가 세계에 대해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 일상세계 속에서 가지게 되는 표상들, 관념들, 편견들, 한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들 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과학적 인식을 방해하는 ‘인식론적 장애물들’이다. 과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인식론적 단절’을 이루어야 한다(프리스틀리와 라부아지에 비교).

따라서 상식의 세계와 과학의 세계는 엄밀하게 구분된다. 전자가 ‘이미지들’의 세계라면 후자는 ‘개념들’의 세계이다. 과학은 경험의 세계와 단절됨으로써만 과학으로서 성립하는 것이다.


- 알튀세는 이런 바슐라르의 입장에 의거해 이데올로기인 헤겔 사유와 과학인 맑스 사유를 구분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이 점에서 맑스로부터 헤겔로 나아갔던 프랑크푸르트 학파, 실존적 맑시즘과 대조된다.


- 알튀세는 초기 맑스와 후기 맑스 사이에는 결정적인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고 말한다. 초기 맑스는 경험주의 및 헤겔주의의 그늘에 있었고 때문에 그의 저작들에는 ‘인간 소외’가 중심을 차지한다. 즉 아직까지도 자본주의에 대한 감상적인 투쟁이나 ‘인간 해방’의 개념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845년의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 및 『독일관념론』을 분기점으로 맑스의 사유는 인식론적 단절을 이룬다. 초기의 ‘자유주의적 인간주의’는 사라지고 이제 ‘생산력’, ‘생산관계’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이어지며, 이전의 인간주의적 사유들은 ‘상부구조’, ‘이데올로기’로서 분석된다. 맑스는 (훗날 바슐라르가 정식화했듯이) 인식이란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그런 인식론적 통찰 위에서 자신의 정치경제학을 세울 수 있었다.

알튀세는 흔히 지적되는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이 아니라 맑스 사유에서의 인식론적 단절을 지적함으로써 헤겔과 맑스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알튀세의 인식론


- 과학(양자역학, 생화학, 사적 유물론, ... 등등)과 이데올로기의 구분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런 구분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준은 무엇인가? 알튀세는 이 지점에서 ‘大理論(la théorie)’, ‘이론 일반’, ‘실천 일반’의 개념을 제시한다. 즉 다른 이론들(과학들 및 이데올로기들)에 비해 메타차원에 존재하는 대이론을 제시한다. 이 대이론은 곧 변증법적 유물론(= 유물변증법)이다. 그렇다면 대이론은 어떤 기준에서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구분하는가? 대이론은 경험주의, 인간주의, 경제주의를 전과학들로서 비판한다.


- 1) 알튀세는 바슐라르를 따라 경험주의 및 실증주의를 통박한다. 경험론은 한 개인의 ‘의식’에 생겨난 ‘감각자료(sense-data)’를 출발점으로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원자적 개인의 존재, 개인을 ‘의식’으로 추상하는 태도, 감각자료의 이론중립성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을 내포한다. 이 지점에서 알튀세는 인식론적 맥락과 정치적 맥락이 사실상 밀접하게 묶여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이다. 다시 말해, 인식론에 있어 추상적 개인의 의식에서 출발하는 사유는 정치에 있어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 개념을 함축한다는 것이다.

알튀세는 인식의 원질료는 감각자료가 아니라 ‘일반성 i(généralité i)’이라 본다. 일반성 i은 감각자료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복합적)관계의 산물’이다. 즉 그것은 한 개인이 ‘추상적으로’ 경험하는 인식질료가 아니라 ‘집단표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거기에는 이미 무수한 사회적 현실이 묻어 있다. 인식이란 추상화된 개인의 감각자료가 아니라 일반성 i에서 출발한다.


- 과학은 인식은 이 일반성 i을 비판함으로써 출발한다. 그 비판은 인식론적 비판인 동시에 정치적 비판이기도 하다. 과학적 인식은 일반성 i과의 인식론적 단절을 통해서 일반성 iii에 이른다. 즉 이데올로기에서 과학으로 변모된다.

여기에서 알튀세는 바슐라르를 넘어 일반성 i과 일반성 iii 사이에 일반성 ii를 삽입시킨다. 이것은 깡길렘의 인식론에 기반한 사유이다. 깡길렘은 바슐라르가 인식론적 단절을 강조한 바슐라르와 달리 이전 이론과 이후 이론 사이에 일종의 완충 지대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 완충 지대는 ‘과학적 이데올로기’의 지대로서 한 이론의 한계가 드러났으나 새로운 이론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진화론의 예) 알튀세와 푸코는 깡길렘의 이런 입장을 각자의 맥락으로 변형시켜 받아들인다. 이로부터 알튀세의 ‘일반성 ii’ 개념과 푸코의 ‘지식(savoir)’ 개념이 등장한다.

일반성 ii는 일상성 i을 가공한다. 여기에서 가공한다는 것은 일반성 i에 섞여 있는 인식론적 장애물들을 떨어버리는 과정을 말한다. 일반성 ii는 이 과정을 뜻한다. 그것은 ‘재구성(reconstruction)’의 과정이다. 이 점에서 일반성 ii는 과학사적 개념이기도 하고 인식론적 개념이기도 하다. 경제학적으로 말한다면, 일반성 i은 이론적 실천의 원질료이고, ii는 생산수단이고, iii은 생산품이다.


-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일반성 ii가 바슐라르에서처럼 ‘천재들’의 놀라운 작업을 통해서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조주의자인 알튀세는 이런 주체주의적 설명을 거부한다. 역사는 생산양식(= 생산력 + 생산관계)이 변해 온 과정이며, 따라서 생산수단으로서의 일반성 ii 역시 이런 지평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식의 역사 역시 일반적인 역사의 지평에서 이해되며, 알튀세의 인식론서에는 ‘인식 주체’가 소멸하게 된다. 인식 주체 이전에 ‘문제틀(problématique)’이 있다. 주체는 이 문제틀 어디엔가 자리잡음으로써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문제틀은 과학적 문제틀로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이론적 실천’이 경험적 실천, 기술적 실천을 비롯한 이데올로기적 실천을 가공하는 과정이다.


- 일반성 iii이 경험 세계로부터의 단절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경험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인식은 경험‘으로부터’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에로’ 내려와야 현실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알튀세는 ‘현실의 구체(le concret-réalité)’과 ‘사유의 구체(le concret-de-pensée)’를 구분한다.


- 이와 같은 인식론에는 바슐라르 못지 않게 스피노자의 사유가 깔려 있다(그래서 바슐라르는 ‘진정한 스피노자주의자’로 불린다). 스피노자에게서 사유는 주체의 행위가 아니다. 주체의 사유 행위가 사유의 한 변양태이다. 그래서 알튀세는 스피노자에 입각해 구조주의적 맑시즘을 펼쳤다고 할 수 있다.


- 2) 알튀세는 또한 구조주의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현상학적 인간주의 역시 비판한다. 인간이 의식적 존재이며 주체적 존재라는 생각은 앞에서 보았듯이 환상이며,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형성되는 생각이다. 하부구조의 작용을 깨닫지 못하고 상부구조의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성립하는 관념론이 인간주의인 것이다.


- 3) 그렇다고 알튀세가 하부구조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이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또한 경제주의를 비판한다. 여기에서 경제주의란 교조화된 맑시즘으로서 모든 역점을 경제에 두는 스탈린적 맑시즘이다. 알튀세는 이 경제주의를 또한 ‘기계주의’라고도 부르며 또 ‘생산주의’라고도 부른다. (스탈린이 그랬듯이) 생산력의 증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생각, 그리고 경제적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일방적이고 단선적으로 결정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런 생각은 인과율에서의 단순함과 역사철학에서의 선형성을 전제한다. 알튀세는 이런 생각을 ‘통속적 맑시즘’이라고 부르며 이 맑시즘이 강조하는 ‘경제 결정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알튀세 역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심금들(instances)’ 중에서 경제적 심급이 ‘최종 심금’임을 말한다. 그러나 한 사회의 ‘지배적인 모순’이 반드시 경제적인 것은 아니다. 이로부터 알튀세는 ‘중층결정(surdétermination)에 의한 모순’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게 된다


모순과 중층결정


- 알튀세가 교조적 맑시즘의 경제결정주의를 비판했음을 보았다. 그렇다면 알튀세는 어떤 인과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알튀세는 ‘중층결정(surdétermination)’을 제시한다.


- 알튀세는 ‘모순과 중층결정’에 대해 논한다. 헤겔에게서 세계는 ‘정신(geist)’ 또는 ‘절대정신’의 자기전개이다. 즉 궁극적 실체는 절대정신이며 그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조금씩 전개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그 전개는 밋밋한 펼쳐짐이 아니라 (오늘날의 개념으로 하면) 특이성들을 내포하는 즉 마디들을 내포하는 전개이다. 그 마디들을 헤겔은 ‘계기(moment)’라 부른다.

그런데 이 계기는 다름 아닌 모순들이다. 역사의 원동력은 ‘모순(widerspruch)’이다. 두 개의 모순이 갈등과 투쟁을 일으키고 그 갈등과 투쟁을 통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가 도래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절대정신을 스스로를 전개하는 것이다. ‘역사’란 바로 이렇게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펼치는 과정(geschehen)이다.

알튀세는 이런 헤겔의 사유를 비판하며 특히 그 ‘총체성’ 개념이 비판된다. 헤겔에게서 시간과 모순이 강조되지만 절대정신 속에 이미 새겨져 있는 각본에 따라 펼쳐지는 시간과 모순은 진정한 시간과 모순이 아닌 것이다. 헤겔에게 세계는 절대정신이 ‘외화’되고 ‘소외’된 것이며(따라서 헤겔에게서 세계는 근본적으로 마이너스로 표상된다. 기독교와 비교), 따라서 세계의 전개는 적극적인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회복의 성격을 띤다. 그렇기 때문에 계기들과 모순들을 그들 자체로서 다루어지기보다는 이미 짜여진 실타래의 매듭들로서만 기능하게 된다.


- 알튀세는 이런 헤겔의 모순론과 맑스의 모순론을 다르다고 본다. 우선 헤겔에게서 실재는 정신/이성이며 정신/이성의 운동이 역사이다. 그러나 맑스에게서 실재는 물질이며 물질의 운동이 역사이다(이 때 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구분할 것). 헤겔이 실재로 본 것은 맑스에게서는 ‘상부구조’에 불과하다.

헤겔의 총체성은 결국 사회와 역사를 등질화하고 단순화한다. 때문에 알튀세는 사회적 복수성(multiplicité)과 복합성(complexité)을 자체로서 다루어야 한다고 본다. 알튀세는 이런 맥락에서 ‘구조화된 사회 전체(un tout social structuré)’에 대해 언급한다. 여기에서 ‘사회 전체’라는 말은 ‘명목적’ 의미를 가진다. 즉 헤겔의 총체성과 다르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구조화된’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곧 한 사회가 여러 계열들/심급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계열들/심급들의 복수성과 복잡성을 상세히 파헤쳐야 함을 뜻한다.

다른 한편으로 알튀세는 자유주의/자본주의에서 강조하는 개인과 사적 소유 개념 역시 비판한다. 근대 정치철학에서의 ‘개인’ 즉 소유권을 가진 경제적 주체로서의 개인은 그릇된 개념이다. 각각의 개인은 이미 자본주의 사회 전체의 구조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며, 개인이 모여 사회가 된다는 근대 주체철학적 사유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요컨대 알튀세는 한편으로 헤겔적인 총체성을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비판한다. 결과적으로 사회와 역사는 형이상학적 총체성이나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미 구조화된, 여러 계열들/심급들이 일정한 관계들의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 사회는 여러 결정성들(déterminations)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총체이다. 알튀세는 여기에 복수성과 복잡성 외에 ‘비동등성(inégalité)’을 도입한다. 이것은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불평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계열들/심급들의 위상이 동등하지 않음을 뜻한다. 때문에 각 심급들에서의 모순 역시 동등하지 않다. 그래서 결국 알튀세에게 있어 모순은 복합적-구조적-비동등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마오처뚱은 ‘주모순(主矛盾)’과 ‘부모순(副矛盾)’을 나누었으나, 알튀세는 이런 구분을 좀더 다원화고 좀더 역동화한다. 사회의 여러 모순들은 때로 역할을 바꾸고, 또 때로 교차함으로써 응축되기도 한다. 알튀세는 이를 라캉을 따라 ‘변위(déplacement)’, ‘응축(condensation)’이라 부른다.


- 알튀세는 모순과 중층결정에 대한 이론을 통해서 러시아 혁명을 분석한다. 왜 맑스의 예상과 달리 후진국인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는가?

헤겔적 총체성의 거부와 비동등성, 복수성, 복잡성의 원리에 따라 알튀세는 당대 러시아가 여러 가지 형태의 ‘실천양식들’로 분절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지식인들의 ‘이데올로기적 실천양식’, 혁명가들의 ‘정치적 실천양식’, 사제들의 ‘종교적 실천양식’, 지주들의 ‘봉건적 실천양식’ 등이 그것이다. 이런 여러 실천양식들이 중층적 모순을 형성하고 중층결정을 통해서 러시아 혁명을 낳았다는 것이다.


- 그러나 알튀세는 실천양식들, 심급들, 계열들의 복수성, 그리고 맥락에 따라 변하는 비동등성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최종 심급’은 경제적 심급이라고 말한다. 즉 경제중심주의의 단순한 인과는 거부하지만, 그럼에도 최종적인 심급은 역시 경제적 심급인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심급은 어떤 방식으로 최종 심급으로서 작동하는가? 경제는 다른 심급들에 단적으로 직접 작용하지 않는다. 마치 프로이트에서 성욕이 직접 나타나지 않고 꿈이나 ‘착오’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나타나듯이, 경제도 복잡한 중층결정을 통해서 우회적 원인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구조적 인과를 알튀세는 ‘환유’로 묘사한다. 이런 환유적 인과는 말하자면 ‘부재하는 원인의 효과’, ‘결과들 속에서의 원인의 내재’이다. 결과들 속에는 경제적 심급이 눈에 보이지 않게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에서의 내재적 인과론과 비교할 만하다.


- 모순과 중층결정에 대한 알튀세의 분석은 현대 사상에서 매우 소중한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여전히 맑시즘을 절대시하는 ‘비과학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고, 또 (복수성과 복잡성의 개념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거의 스피노자의 신의 자리에 해당하는) 결정적인 위치에 놓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알튀세의 분석을 충분히 습득하되, 사상적으로 보다 자유로운 입장에서(즉 처음부터 맑스를 전제하지 않고 - 그러나 맑스가 고전적이고 기초적인 사상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보다 다원적이고(즉 분석의 단위를 ‘界’로 잡는 것 - 그러나 계급 개념도 여전히 유효하다) 역동적인(보다 최근의 존재론들을 동원한) 분석이 요청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과 주체의 문제


알튀세가 현대 사상에 남긴 또 하나의 결정적인 공헌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는 개념이며, 이 개념을 매개한 주체론이다. 이 이론은 지금도 ‘살아 있는’ 하나의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알튀세는 국가론에서 ‘기구들’을 분석한다. 즉 추상적인 권력 개념이나 사법적인 개념들이 아니라 실질적인(‘material’이라는 말의 모든 뜻에서) 기구들을 분석한다. 이것은 후에 등장하는 푸코의 ‘전략들’이나 들뢰즈와 가타리의 ‘배치들’과도 상통하는 개념이다.

국가는 지배를 위해서 기구들/장치들을 필요로 한다. 기구들에는 억압 기구들과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이 있다. 억압 기구들에는 군대, 경찰, 법 등이 있고,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에는 공장, 병원, 학교, 교회, 언론, 정치, 감옥, ... 등등이 있다. 억압 기구들은 무력에 기반해 있지만,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이하 ‘이데올로기 기구들’로 약함)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생각나게 하는 면이 있다.


- 1) 몇 가지 기초적인 사항들의 점검.


- 헤겔의 ‘총체성’과 맑스의 ‘사회적 전체’를 구별하기


- 하부구조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통일’인 경제적 토대이며, 상부구조는 법률-정치(법과 국가)와 이데올로기(종교, 윤리, 정치, 문화, ... )로 구성된다.


- 고전적인 맑시즘에서의 ‘건물의 비유’는 부적절하다. → 상부구조의 존재의 본질과 본성을 특징짓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한 것은 재생산의 관점에 입각해서이다.

재생산의 관점이란 곧 생산 조건들의 관점이다. 여기에서 생산 조건들은 곧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조건들이다.


- 고전적인 맑시즘에서 국가는 억압적 장치이다. 경찰, 재판소, 감옥, 군대, 내각과 행정부 등이 모두 억압 장치들이다.

국가권력과 국가기구들을 구분하자. 국가권력은 계급투쟁의 대상이지만, 국가기구들은 또 다른 분석의 대상이다. 국가권력만으로는 사회와 역사를 분석할 수 없다. 국가기구들을 분석해야 한다.

국가기구들은 억압기구들로 환원되지 않으며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을 고려해야 한다.


- 이데올로기 기구들(aie)은 폭력에 의해 기능하는 억압기구들과 다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이 있다: 종교 aie, 교육 aie, 가족 aie, 법률 aie, 정치 aie, 조합 aie, 매체 aie, 문화 aie.

알튀세는 가족-기구와 법률-기구에 특별한 위상을 부여한다. 가족-기구는 생산과 소비의 ‘단위’의 역할을 하며, 법률은 한편으로 억압기구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데올로기 기구이다.


- 하나의 억압기구가 존재하는 반면, 다수의 이데올로기 기구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억압기구가 공적이라면, 이데올로기 기구들은 사적이다. 억압기구가 폭력을 통해 작동한다면, 이데올로기 기구들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작동한다.

그럼에도 두 기구들은 상보적이다. 억압기구는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을 동반하며, 이데올로기 기구들은 억압기구를 동반한다. 폭력과 이데올로기는 항상 함께 작동한다. 무게중심이 다를 뿐이다.


- 한편으로 다양한 이데올로기 기구들은 결국 지배계급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직간접적으로 복속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어떤 계급도 이데올로기 기구들 위에서, 그리고 그것들에 헤게모니를 행사함으로써 국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레닌의 예)

계급투쟁은 이데올로기 기구들보다 상위의 개념이다. 계급투쟁은 하부구조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 2) 이데올로기 기구들의 중요성은 그것들이 ‘생산 조건들의 재생산’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산 조건들의 재생산은 생산력의 재생산과 생산관계의 재생산을 포함한다.

생산력의 재생산은 다시 노동력의 재생산과 생산수단들(원료, 고정설비, 생산도구 등)의 재생산을 포함한다. 이 문제를 상세하게 파헤친 것이 맑스의 공헌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알튀세는 노동력의 재생산이 더 이상 공장에서의 문제만은 아니며 다른 국가기구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학교는 대표적이다. 즉 노동력의 재생산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야만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여기에서 고전적인 경제적 분석들을 넘어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에 대한 분석의 필요성이 제시된다. 이 분석은 곧 생산관계의 재생산에서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의 역할에 관한 분석이다.


- 알튀세는 (서구)전통 사회의 핵심적인 이데올로기 기구가 가족 기구와 교회 기구였다면, 성숙한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기구는 가족 기구와 교육 기구라고 생각한다. 정치 기구가 계속 바뀌어도 오히려 이 기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교육 기구는 ‘노하우들’(언어, 산수, ... )과 지배 이데올로기(도덕, 국민윤리, ... )의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역할들’을 가르친다. 피착취자의 역할, 착취의 대리자 역할, 억압의 대리자 역할, 이데올로기 전문가 역할 등등.


- 3) 이데올로기는 결국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로서 호명(呼名)한다.

주체는 각 개인들에 의해 ‘자명한’ 것으로 인지되는데 이 자명함이야말로 다름 아닌 이데올로기의 효과이다.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인지하지만 과학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한다. 이데올로기적 인지는 결국 ‘오인’에 불과하다.

대주체, 국가기구들은 사람들을 소주체로 부른다. 이것을 라캉의 “타인의 욕망을 욕망함”과 비교할 수 있다.


미셸 푸코: 담론, 권력, 주체


푸코는 서구 철학사에 있어 가장 독창적인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것은 그가 이전의 철학에서 본격적으로 문제화하지 못했던 ‘타자들’을 처음으로 철학적 수준에서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푸코의 사유는 현대 철학의 역사에 거대한 혁명을 가져왔다.

푸코는 외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의학과 철학을 함께 공부했다. 병리학 학위를 가지고서 한 때 병원에 있기도 했으나 본격적으로 의사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경력이 반영되어 그의 철학 전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학적 관심사에 의해 짙게 물들어 있다. 생애 후반부에는 열렬한 정치적 투사로 활약했으며, 사르트르를 이어서 프랑스 지성계 전체를 이끌었다. 벵센느 대학에 비판적 성격의 실험대학을 만들기도 했다. 말년에는 꼴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맡았으며, 에이즈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푸코는 동성애자로 태어났으며 때문에 ‘타자’의 입장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개인의 감성이나 행동으로 표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철학적 사유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푸코만큼 생애와 사유가 완벽하게 합치하는 경우도 드물다.

푸코의 저작들: 『고전 시대에 있어 광기의 역사』(1961)

『임상의학의 탄생』(1963)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

『감시와 처벌』(1974)

『성의 역사 1: 지식에의 의지』

『성의 역사 2: 쾌락의 선용』

『성의 역사 3: 자기에의 배려』


‘병리적인 것’과 타자의 사유


- 피상적인 인상과는 달리 푸코 사유 전체를 관류하는 것은 하나의 존재론적 관심사이다. 그것은 곧 ‘존재론적 분절(ontological articulation)’의 문제 즉 나눔(division)의 문제이다.

세계가 우리에게 드러내는 가장 원초적인 존재론은 ‘多와 運動’이다. 그러나 어떤 ‘다’이고 어떤 ‘운동’인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로부터 존재론적 분절의 문제가 나온다. 이 문제는 연속/불연속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푸코는 이 전통적인 문제를 매우 새로운 방식으로 다룬다. 푸코는 사회-역사적 맥락에서의 모든 나눔들이 명료하지도 않거니와 늘 순수 인식적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 즉 권력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나눔은 동일자와 타자를 가른다. 푸코의 사유는 이 ‘타자’의 사유 즉 동일자의 ‘바깥’에 대한 사유 또는 동일자와 타자를 나누는 ‘경계선/극한’에 대한 사유이다.


- 나눔의 체계는 배제(exclusion)의 체계이기도 하다. 푸코의 사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배제의 문제를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푸코는 바깥의 사유이다. 현상학의 내면성을 거부하는 바깥의 사유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푸코에게는 넓은 의미에서의 구조주의자로서의 측면이 있다. 또 푸코는 나눔을 가능하게 하는 경계선을 사유했다는 점에서 경계선에, 극한에 선 사상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푸코는 타자의 문제를 사유하되 그것을 프랑스 인식론의 전통에서 사유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거꾸로 말하면 푸코는 프랑스 인식론을 전혀 다른 길로 이끌어 갔다고 할 수도 있다.

프랑스 인식론은 늘 ‘과학사’를 메타적으로 검토해 온 전통이다. 푸코는 바로 이 전통에 서서 정신병리학, 임상의학, 인구학, 우생학, 통계학, 범죄학, 형법학, 법의학, 정신분석학, ... 등등의 담론들을 분석해 온 것이다.

다시 말해 푸코는 한편으로 타자라는 문제를 다루었으나, 푸코를 푸코이게 해 주는 것은 그가 그 문제를 담론 분석(더 정확하게는 ‘지식’의 분석)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다루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푸코가 다룬 ‘지식들’을 유심히 보면 대개 인간의 신체/생명 및 법/권력에 관한 담론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곧 그의 문제의식이 “권력은 신체를 어떻게 다루는가?”라는 것에 집중되어 있음을 뜻한다.


- 담론을 다룬다는 것은 곧 담론의 형성과 변환을 다루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한 담론, 또는 여러 담론들의 ‘가능성의 조건’을 다루는 것이다. 이 점에서 푸코는 선험철학자이지만, 기존의 선험철학들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요컨대 푸코의 철학은 타자의 존재론이자 담론/지식의 인식론이지만, 그의 존재론도 인식론도 기존의 철학들과는 현저하게 다른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 푸코는 스승인 깡길렘을 따라, 그리고 그 자신의 실존적 체험을 따라 ‘정상과 병리’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그 결과 쓰여진 것이 『광기의 역사』이고, 이 책이 현대철학의 문턱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푸코는 여기에서 우선 ‘정의(definition)’의 문제를 다룬다. 광기를 정의한다는 것의 아이러니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광기는 늘 ‘합리성(rationality)’의 부정으로서 정의되었으며, 합리성의 규정이 바뀌면 그에 따라 광기의 규정도 바뀌어 왔다. 푸코는 정의의 역사성을 강조한다. 요컨대 광기라는 타자는 합리성이라는 동일자를 가능하게 하는 침묵의 거울로서 작용했던 것이다. 푸코는 이 맥락에서 중세의 나병과 고전 시대의 광기를 비교한다.


- 푸코에게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지정학(地政學)’이다. 푸코는 타자의 장소들을 탐구한다. 나병환자 수용소, 제네랄 오피탈, 감옥, 제한구역, 빈민가, 홍등가, ... 등등. 논리적 정의와 지리적 장소는 서로 구분되면서도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 ‘definition’의 음미.


- 고전 시대의 병원인 제네랄 오피탈은 병자, 농부, 상이군인, 낙오병, 실업자, 극빈학생, 광인 등이 섞여 있는 ‘heterotopia’이다. 인간은 자기 의지에 관계없이 분류된다. 부정의 논리를 통해서 분류되는 것이다. 분류는 늘 권력을 함축한다고 푸코는 말한다.

의사의 성격 또한 특이했다. 그들은 의사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사제들이자 공무원들이었다. 그들은 시대의 질서를 이탈한 사람들을 교화하고 교정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낙인, 화형대, 감방, 지하감옥 등을 관리했다. 푸코는 당대의 경제학적 맥락을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부르주아 사회의 ‘모랄’을 지적한다.


- 19세기가 되면서, 특히 프랑스 대혁명 이후(푸코의 역사적 연구에서 프랑스 대혁명은 항상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이해된다), 유럽에는 ‘휴머니즘’이 도래한다. 휴머니즘은 자유․평등․박애를 기조로 새로운 ‘근대 사회’를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푸코는 바로 휴머니즘과 ‘근대성(modernity)’이야말로 부르주아 계급이 세계를 보다 “세련되게” 통치하려는 장치였다고 고발한다. 이 세련됨이란 곧 ‘지식들’의 건설로 나타난다. 푸코는 이렇게 형성된 현대 사회를 ‘훈육 사회’라고 부른다.


- 이런 맥락에서 푸코는 19세기 이래의 정신병리학 및 정신분석학을 검토한다. 푸코는 근대의 정식의학과 정신병리학이 말하는 ‘과학성’의 밑바탕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다양한 ‘장치들’을 드러낸 것이다.


- 『임상의학의 탄생』과 『말과 사물』은 ‘고전 시대’의 인식 체계와 근대의 인식 체계를 대비해 보여 주는 대표적인 저작들이다. 푸코는 르네상스 시대의 비합리적 사유 체계, 고전 시대의 합리주의, 그리고 근대 이후의 복잡한 발전을 꼼꼼하게 분석함으로써, 각 시대의 ‘에피스테메’들을 드러내고, 그 작업을 통해 인식의 상대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 『말과 사물』(1966)은 같은 해에 출간된 라캉의 『에크리』와 더불어 구조주의의 절정을 이루는 작품으로 널리 회자되었다. 푸코 자신은 ‘구조주의자’라는 명칭에 대해 마뜩치 않아 했고 또 실제 그를 구조주의라는 틀에 가두는 것은 부당하지만, 적어도 『말과 사물』 및 그 후에 발간된 『지식의 고고학』(1969)은 푸코 사유의 구조주의적인 측면을 뚜렷이 드러내 주는 작품들이다.


주체철학 비판


- 말과 사물은 유명한 서문으로부터 시작된다. →

푸코는 중국의 백과사전에 대한 이 인용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낸다. →

요컨대 푸코는 주체와 대상의, 인간과 사물의 직접적인 만남은, 적어도 인식의 수준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 사이에 하나의 장, 무의식적 규칙성들의 장, 선험적 질서가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선험적 장(champ transcendantal) -- 객관적 선험 -- 이 사회적, 역사적으로 가변적이라고 생각할 때, 푸코적인 의미에서의 구조주의가 성립한다.

『말과 사물』은 1)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에피스테메(l’épistémè)의 변환을 그려준다. 2) 그 과정에서 주체의 탄생과 죽음을 논한다.


- 1장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다룬다. 푸코는 이 그림을 분석함으로써 우리에게 오늘날 매우 익숙한 ‘선험적 주체’ 같은 것은 고전시대에는 없었다는 것을 논한다.


- 2장은 고전시대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그 전단계로서 르네상스 시대의 에피스테메를 논한다: 친화, 조응, 유비, 동감/반감. 르네상스 시대는 ‘상징적 의미’가 지배한 시대였다.


- 3장은 고전시대 전반에 대한 논의이다. 봄과 읽음의 관계, 유사성을 통해 본 세계가 무너지는 과정, 언어의 위상 변화 등이 핵심적으로 논의된다. 푸코는 여기에서도 엄밀과학에서의 과학혁명이나 담론공간 하부에서의 경험주의적 담론들이 아니라 그 사이에 존재하는 ‘지식들’에 초점을 맞춘다.


- 4, 5, 6장은 고전시대의 지식들, 즉 일반문법, 자연사, 부의 분석이 상세하게 논의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고전시대에는 아직 ‘人間(homme)’이라고 하는 존재는 없었음을 논증한다.


- 7장부터는 2부이다. 7장은 19세기가 되면서 고전시대의 에피스테메가 무너지고 새롭게 등장한 근대적인 에피스테메를 그린다.(3장과 대칭) 칸트에 의한 ‘선험적 주체’의 등장, 역사적 시각의 형성과 헤겔 ~ 베르그송에 이르는 거대 서사의 전개, 근대 문학의 등장, 기호논리학과 해석학의 대립 등이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8장에서는 자연사/박물학에서 ‘생물학’으로의 변환, 부의 분석에서 정치경제학으로의 변환, 일반문법에서 비교언어학으로의 변환을 다룬다. 이제 모든 담론이 말하고, 일하고, 생명체로서 살아가는 인간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 9장은 칸트 이래 실존주의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서구의 ‘주체철학’을 다룬다. 푸코는 여기에서 ‘유한성’의 문제를 다루며, 이 문제가 어떻게 경험적인 것과 선험적인 것, 코기토와 비사유, 시원의 후퇴와 회귀로 변주되는가를 분석한다.


- 10장은 구조주의를 다루고 있으며, 주체철학의 죽음, ‘선험적 주체’의 죽음을 논한다. 푸코는 『말과 사물』의 부제인 ‘인간과학의 고고학’을 처음에는 ‘구조주의의 고고학’으로 하려 했다고 한다. 즉 이 책은 결국 구조주의에 대한 메타적 정초의 성격을 띤 책이라 할 수 있다.

구조주의를 통해서 이제 근대적 주체의 죽음이 발생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환상을 해체시켰고, 라캉은 순수 자아라는 환상을 해체시켰다. 알튀세의 사유 역시 인간주의적 맑시즘을 해체시켰다. 푸코는 이제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다. “바닷가 모래 위에 그려진 얼굴이 파도에 씻기어가듯 인간의 얼굴도 지워지리라.”


언표와 담론


- 『말과 사물』이 역사적 성격의 책이라면, 『지식의 고고학』은 논리적 성격의 책이다. 이 책은 푸코가 그 때까지 했던 작업들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작업들을 방법론적으로 정초한 책이다. 그래서 매우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책이다.


- 푸코는 언어를 ‘명제’의 관점에서, ‘상징’의 관점에서, ‘문법’의 관점에서, ‘담화 행위(speech act)’에서 보지 않고 ‘언표’의 관점에서 본다. 푸코는 언표를 명제, 상징, 문법, 담화 행위 이전에 존재하는, 이것들의 ‘가능성의 조건/장’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a, z, e, r, t의 예.


- 푸코는 언표가 언표일 수 있는 조건으로서 네 가지를 제시한다. 1) 언표는 늘 그 상관자를 가진다. 2) 언표는 늘 주체와 일정한 관계를 맺는다. 3) 언표는 언제나 장을 형성한다. 4) 언표는 ‘물질성’을 가진다.


- 보다 조직화된 수준에서의 언표들의 집합은 ‘담론(discours)’을 형성한다. 원래 대화를 뜻했으며 또 경우에 따라서는 ‘논구(論究)’로 번역되던 이 말이 푸코에 이르러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 『말과 사물』 및 『지식의 고고학』에서 푸코는 대상과 주체가 직접 관계 맺는 전통 철학의 도식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사유틀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지나친 언어중심주의라는 또 정적인 사유라는 한계를 드러내면서, 푸코는 ‘계보학’이라는 또 다른 길을 찾아나선다.


타자의 사유=푸코는 『광기의 역사』로부터 『성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타자들’이 분리되고 배제 당해 온 역사를 서술했다. 푸코는 한 시대의 합리성이 어떻게 타자들을 감금했는가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일차적으로 타자의 사유이다.


담론/지식과 권력=푸코 사유의 본격적인 특징은 그가 타자의 사유를 ‘담론(discours)’에 대한 분석, 특히 ‘지식(savoir)’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진행시켰다는 점에 있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알튀세, 캉길렘, 세르 등과 통한다.

푸코는 지식을 분석하되 권력과의 연관성 속에서 논한다. 바꿔 말하면 푸코는 권력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논의 대상으로 지식을 선택했다고도 할 수 있다.


주체의 문제=담론, 권력의 문제와 더불어, 아니 이 두 문제를 꿰면서 푸코 사유의 전체를 관류하는 문제는 주체의 문제이다. 푸코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조건짓는 바탕에 대해 집요하게 사유했고, 인간의 사유와 행위와 언어를 지배하는 객관적 선험 또는 역사적 아프리오리가 무엇인지를 찾았다. 그리고 말년에는 인간이 그런 조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어떻게 스스로를 주체화해 가는지에 관심을 쏟았다.


근대성 비판=푸코 사유를 거시적으로 보면 근대성 비판이라는 성격을 띤다. 또 근대성이라는 것이 서구에서 산출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것은 서구 사회 비판이라는 성격도 띤다. 이 점에서 푸코의 사유는 탈근대-탈서구를 모색하고 있는 비서구 지역의 사유에도 심대한 함축을 가진다.


지식, 권력, 주체=푸코의 첫 번째 대작인 『광기의 역사』(1961)는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광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타자들은 스스로를 스스로가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자들에 의해 규정 당한다.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고전 시대로 넘어가면서 ‘대감금’이 발생한다. 푸코는 당대의 합리주의 사상, 절대왕정, 프로테스탄티즘의 도래, ... 등등이 형성하는 에피스테메 안에서 어떻게 광기가 다루어졌는가를 상세하게 논의한다.

19세기 인권사상(humanism)이 도래하면서 ‘정신병리학’을 비롯한 여러 지식들이 등장한다. 푸코는 이것을 ‘발전’으로 보기보다 ‘훈육 사회’의 도래, 지식과 권력(특히 생체권력)의 공고한 관계, 부르주아 사회의 특성과 관련시켜 논한다.

푸코의 이 작품은 그에게서 지식, 권력, 주체의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이미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광기의 역사』에서의 작업은 2년 후에 출간된 『임상의학의 탄생』(1963)에서도 다루어진다. 이 저작은 『광기의 역사』보다는 더 인식론적인 저작으로서 그 문제의식은 『말과 사물』로 넘어간다.


주체와 언어=『말과 사물』(1966) 및 『지식의 고고학』(1969)은 푸코 사유의 이론적인 측면을 잘 드러내는 저작들이다. 『말과 사물』이 역사적 서술의 형태를 띤다면, 『지식의 고고학』은 논리적 분석의 형태를 띤다. 두 작품은 근본적으로 주체와 언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말과 사물』은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명, 언어, 노동에 관련된 담론사를 추적하고 있다. ‘에피스테메’를 다룬 대표적인 작품.

르네상스: 해석학과 기호학의 결합. 유사성(ressemblance)을 에피스테메로 봄.

고전 시대: 상징에서 기호로. 가시성의 의미. 분석적 사고. ‘표상(representation)’을 에피스테메로 봄. 자연사(= 박물학), 부의 분석, 일반 문법을 서술.

근대: 기호의 해체. 언어에 따른 여러 가지 담론들의 등장. 생물학, 정치경제학, 비교문법의 탄생. 주체철학의 등장: 유한성의 분석론.

현대: 구조주의의 등장. 선험적 주체의 죽음.

『지식의 고고학』(1969)은 주체 이전의 언어를 논리적으로 탐구하고 있으며, 언표장의 개념과 담론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권력의 계보학=『감시와 처벌』(1974)은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넘어가는 작품이다. 『광기의 역사』에 오히려 가깝다. 근대 훈육 사회를 본격적으로 탐구. 감금의 형태들을 분석함. 이러한 사유는 『성의 역사 1: 지식에의 의지』(1976)로 넘어간다. 성을 지식화하려는 ‘진리에의 의지’를 다룸.


새로운 모색=주체의 윤리학=푸코는 원래 『성의 역사』를 6권으로 계획했었다. 그러나 첫째 권을 출간한 1976년 이후 갑자기 푸코는 8년 간의 긴 침묵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세상을 뜨기 바로 전인 1984년 2권인 『쾌락의 善用』과 『자기 돌보기』를 펴낸다. 이 공백은 어떤 의미를 띠는가? 그것은 『쾌락의 선용』에 붙은 매우 긴 서문에서 잘 나타난다.

푸코는 지식-권력의 그물망이 주체들을 어떻게 구성해내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이제 각 개인이 이 그물망으로부터 어떻게 자기를 구성해내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로부터 ‘주체화(subjectivation)’의 개념이 등장했다.

푸코는 자신의 사유를 늘 ‘탈현존시키려(déprésentifier)’ 노력했으나, 『쾌락의 선용』에서는 ‘경험’을 다시 이야기한다. 경험이란 “어떤 문화에 있어 주체성의 형태들이 지식의 영역들, 규범성의 유형들과 맺는 상관관계”를 의미한다. 달리 말해 푸코는 이 책에서 성을 둘러싼 지식, 권력, 주체의 상관관계를 파헤치고자 했다.

푸코는 여기에서 욕망과 욕망하는 주체에 관한 역사적, 비평적 작업을 시도한다. 이 지점에서 푸코는 욕망론이라는 최근 사유의 흐름에 합류한다. 푸코는 ‘욕망의 해석학’, ‘주체의 해석학’, ‘자기의 해석학’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계보학’이라는 개념도 여전히 사용한다. 그러나 주체의 ‘윤리학’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이것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 자기의 주체 정립에서의 진리의 놀이들을 다루는 것이다.

푸코는 ‘실존 가꾸기(technologie d'existence)’, ‘자기 가꾸기(technologie de soi)’도 말한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행동 규칙을 정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그들의 특이한 존재 속에서 스스로를 변형시키며, 그들의 삶을 어떤 미학적 가치를 지닌, 어떤 양식(style)의 기분에 부합하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신중하고도 자발적인 실천”이다. 푸코는 이런 실천을 바로 그리스에서 읽어냈다. 그것은 곧 ‘문제구성(problématisation)’과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실천들(pratiques)의 문제이다.


미셸 세르


미셸 세르=세르(michel serres)는 1930년 프랑스의 아장에서 태어났다. 1949년에 해양대학교에 입학해 공부했으며, 1952년에는 에콜 노르말에 들어갔다. 1955년에 아그레가시옹(교수자격시험)을 통과했다. 그 후 몇 년 동안은 뱃사람이 되었으며 여러 곳을 전전했다.(세르를 흔히 ‘여행자’에 비유하는 것은 학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1968년에는 라이프니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 논문 『라이프니츠의 체계와 그 수학적 모델들』은 현대 라이프니츠 연구의 금자탑을 이루었으며 동시에 구조주의적 사유 양식에 일정한 철학사적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60년대에 그는 미셸 푸코와 더불어 클레르몽-페랑 대학 및 벵센느 대학(빠리 8대학)에서 가르쳤다. 그 후 소르본느에서 과학사 연구의 총책임을 맡게되고, 한림원에 들어간다. 세르는 미국에서도 가르치고 있으며, 1984년 이래 빠리와 스탠포드 대학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헤르메스-세르=세르가 초기에 펴낸 다섯 권의 저작들은 ‘헤르메스 연작’으로 불린다. 『헤르메스 1: 소통』『헤르메스 2: 개입』『헤르메스 3: 번역』『헤르메스 4: 분배』『헤르메스 5: 북서간 이행』.

헤르메스는 여행의 신이자 메신저이기도 하다. 세르는 담론의 세계를 여행하는 순례자이다. 수학에서 시로, 물리학에서 철학으로, 미술에서 소설로, ... 무수한 담론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지치지 않고 여행하는 타고난 여행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여행을 통해서 세르는 담론과 담론 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고, 서로 상관없이 보이는 담론들을 개입시키고, 하나의 담론을 다른 담론으로 번역하고, 다채로운 담론들을 보다 넓은 공간 위에서 분배하기도 한다.

또 세르는 메신저이기도 하다. 한 담론에서 획득한 통찰을 다른 담론으로 가져가는, 한 담론에서 얻어낸 통찰을 다른 담론으로 건네주고 교류를 펼치는 메신저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해, 세르는 방대한 담론의 장 -- 기본적인 구분은 역시 자연과학과 인문학이다 -- 을 오가며 각 담론들 사이를 응시한다. 물리학, 시 같이 정확하게 구획된 담론들이 아니라 그 구획이 배제한, 그 구획 때문에 인식의 저편으로 밀려간 그 어두운 사이를 응시한다. 이 점에서 그는 여행자인 동시에 발견자이다. 세르의 작업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노마돌로지’의 정신과 상통하며, 실제 세르는 자신이 공감을 느낀 “유일한” 현대 철학자로서 들뢰즈를 지명하고 있다.


인식론적 장/담론의 공간=세르는 그의 스승 바슐라르와는 달리 과학과 비과학 사이에 날카로운 선을 긋지 않는다. 그는 자연과학과 인문학, 신화, 예술 등 모든 형태의 담론들을 평등하게 바라본다. 여기에서 평등하다는 것이 대등하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더 못한 이론이 있고 더 나은 이론이 있으며, 더 못한 작품이 있고 더 나은 작품이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일단 ‘인식론적 장(epistemological field)’ 또는 ‘담론의 공간’이라는 넓은 지평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매우 구체적인 차이들은 정확히 지적되어야 하지만, 과학을 특화해서 과학과 ‘비’과학으로 양분하는 것은 잘못이다.

모든 담론들이 속해 있는 공간, 이 공간이 다양한 담론들을 가능하게 해 주는 선험적 조건이다. 세르는 이 선험적 조건, 우리가 ‘객관적 선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탐구하고자 한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 역시 구조주의적 바탕을 띠고 있다. 그러나 세르는 이 객관적 선험을 총체화해서 파악할 수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이 선험의 파악은 각 담론을 가능하게 해 주는 개별적 조건들(원리, 개념, 물질적 바탕, 주체의 조건 등등)을 비교하고 보다 넓은 관점에서 통합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때문에 우리는 이 객관적 선험에 귀납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무수히 그어지는 선분들(담론과 담론을 잇는 다리들)이 조금씩 형성하는 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세르는 현대에 있어서도 총체성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철학자이지만, 그의 총체성은 헤겔적인 총체성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고 하겠다.

우리는 세르의 객관적 선험을 푸코가 탐구했던 언표장, 들뢰즈(와 가타리)가 탐구했던 ‘전개체적-비인칭적 장’, ‘잉여성의 장’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의 철학=세르 철학에는 여러 가지 국면들이 있지만, 그 핵심은 역시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소통이야말로 세르 사유의 핵심에 놓여 있다. 이러한 소통은 매우 어려우며 자칫 모호한 뒤죽박죽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세르는 이런 소통을 매우 위험한 항로인 ‘북서간(北西間) 이행’으로 비유한다. 소통이란 꼼꼼한 비교를 전제하며, 이 점에서 세르는 조르주 뒤메질의 인도-유럽 신화 연구나 르네 지라르의 인류학적 연구를 높이 평가한다. 개벌적인 선험적 조건들의 비교를 통해 보다 넓은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위상공간으로서의 소통공간=세르의 소통 이론은 하버마스의 소통 이론과 대조적이다. 하버마스는 소통의 이상적 상황을 찾았고 그 선험적 조건을 사유했다. 반면 세르는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늘 소통은 완벽하지 못할까 하는 물음을 추구했다. 우리는 이것을,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장애물들’에 비교해, ‘소통의 장애물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세르는 이 장애물들을 ‘노이즈(noise)’라고 부른다. 신호가 갈 때 언제나 노이즈도 동반된다. 세르는 이 노이즈를 적극적으로 탐구하고자 했다. 이 점에서 그의 작업은 기존 사유의 테두리를 넘어 보다 포괄적인 사유의 장을 개척한 후기구조주의의 일반적 흐름에 합치한다.

담론과 담론 사이에 노이즈가 끼어드는 것은 담론의 공간이 평평한 유클레이데스적 공간이라기보다는 복잡한 위상공간(topological space)이기 때문이다. 위상공간은 특이성들이 분포되어 있는 공간이고, 따라서 이 공간의 형태를 연구한다는 것은 곧 특이성들의 분포를 연구한다는 것을 뜻한다. 세르의 처녀작 『라이프니츠의 체계』은 이 위상학 -- 라이프니츠의 용어로는 위치해석(analysis situs) -- 의 기본 개념들을 찾아냈으며, 이 개념들은 헤르메스 연작에서 다채롭게 활용된다.


수학과 신화=이 공간을 탐구하는데 세르는 서로 매우 상반되는 두 가지 도구를 사용한다. 하나는 라이프니츠에서 비롯된 논리학, 수학, 그리고 현대의 정보 이론 등 이른바 ‘형식 과학들(formal sciences)이다. 이 점은 (후기)구조주의자로서의 세르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점이며, 그를 르네 톰의 작업과 비교할 수 있게 해 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신화로서(뒤메질, 지라르와 관련되는 지점), 세르는 인간의 원초적 담론인 신화들이 인간 사유의 곳곳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유문법들을 형성한다고 본다. 이것은 예술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고 첨단의 현대 과학에서도 그렇다. 그 예로서 복잡계 과학(카오스 이론)과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시(哲學詩)를 들 수 있다. 루크레티우스가 제시한 ‘클리나멘’은 ‘초기 조건에의 민감성’과 매우 유사한 사유문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제3자 배제=노이즈는 소통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노이즈는 소통에 필수적인 조건이다. 노이즈는 명료한 메시지가 그로부터 마름질되어 나오는 장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노이즈의 저항 없는 메시지는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노이즈는 두 사람의 소통 사이에 끼어드는 제3자와도 같다. 이 제3자를 배제함으로써 비로소 소통이 이루어진다. 모든 형식적 체계(formalism) -- 객관적 선험을 구성하는 공간들 -- 도 제3자 배제의 과정을 거쳐서 성립한다. 이 점에서 세르의 사유에는 비판적 합리주의(메이에르송 등)의 흔적이 있다. 경험적 세계는 雜多 -- 그러나 베르그송에게는 ‘절대적인 질적 풍요로움 -- 이며, 이 잡다로부터 형식적 체계가 마름질되는 것이다. 세르의 사유는 베르그송으로부터 합리주의로 나아가며, 부르바키로부터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나아간다.


참고문헌

세르, 『해명』, 박동찬 옮김, 솔

『헤르메스 4: 분포』, 이규현 옮김, 민음사



삐에르 부르디외


부르디외=1930년 프랑스 베아른에서 탄생. 에콜 노르말에서 철학을 공부. 빠리 귀족층과 교육 분위기에 반발. 아그레가시옹을 받았으나 학위 논문은 쓰지 않음. 알제리에서 군복무. 식민지 상황을 보면서 전투적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 키움. 후에 레비-스트로스와 레이몽 아롱의 조교를 지냄. 1968년 이래 ‘유럽사회학센터’를 세워 활동. 1981년에 꼴레주 드 프랑스 교수. 『구별짓기』(1979), 『실천적 의미』(1980), 『호모 아카데미쿠스』(1984)를 비롯한 30여권의 저작이 있다. 부르디외는 미국의 촘스키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개관=부르디외는 알제리 지역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키웠으며 현장 조사의 방법을 세련화했다. 부르디외는 비자본주의 지역이 자본주의에 맞닥뜨리면서 어떻게 변화하는가, 원주민들의 삶의 뿌리가 어떻게 뽑혀나가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1968년을 전후해서 부르디외는 교육사회학 및 문화사회학 연구에 매진한다. 부르디외는 학교 사회가 얼마나 ‘상징적 자본’과 ‘상징적 폭력’에 지배되는가를 적나라하게 폭로했으며, 동시에 문화라는 것을 사회학적 방법으로 접근하는 연구들을 다수 남겼다. 『구별짓기』에는 이러한 부르디외의 관심사들이 종합적으로 나타나 있다.

1972년에 나온 『실천이론의 소묘』, 1980년의 『실천적 의미』, 1997년의 『파스칼적 성찰』은 부르디외의 철학적 사유가 잘 나타나 있는 저작들이며, 후기구조주의의 인식론적 기반을 확인할 수 있는 저작들이다.

1980년대 이후에도 줄기차게 사회 활동과 학문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의 중심에 서 있다.


아비투스


행위자와 구조=사회학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 중 하나는 개인과 집단, 행위자와 사회의 문제이다. 그런데 사회의 본질을 ‘구조’ 개념으로 포착하고 있는 오늘날, 이 문제는 결국 행위자와 구조의 관계가 된다. 과거의 사유들이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이라는 근대적 전제 위에서 움직였다면, 초기의 극단적 구조주의는 개인을 구조 속에 완전히 함몰시켜버렸다. 후기구조주의는 이런 담론사적 과정을 염두에 두고서 개인과 구조의 관계에 대한 보다 세련되고 균형 잡힌 이론을 세우고자 한다. 그런 노력이 특히 사회학적 형태로 나타난 경우가 부르디외의 사유이다.


아비투스=부르디외의 이런 작업을 응축하고 있는 개념이 아비투스 개념이다. 아비투스는 실존(existence)의 조건이다. 전형적인 구조주의적 사유이다. 개별적 실존의 삶의 가능 조건이 아비투스이다. 아비투스(habitus)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에토스(ethos)’와 ‘헥시스(heixs)’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부르디외의 사유가 놀랍게도 ‘습관’에 대해 집요하게 성찰해 온 정신주의(spiritualisme)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발견한다. 부르디외는 정신주의의 문제의식 --- 기계성과 생명, 객관 세계에서의 개인/주체, 노력의 문제 --- 을 이어받되 그것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회학적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아비투스 개념에서 우리는 이미 부르디외 사유의 철학적 배경을 예감할 수 있다.


계층화와 아비투스=부르디외가 아비투스를 “사회학적으로” 사유했다는 것은 곧 이 개념을 계층화(stratification)와 연관지어 사유했음을 뜻한다. 계급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계층이 더 어울린다.(맑스와 부르디외의 차이)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특정한 계층에 관련된 조건들에 의해 생산되는 것”으로 규정한다. 즉 한 주체가 한 계층에 속하게 됨으로써, 그 계층을 내면화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것이 아비투스이다. 이 점에서 아비투스란 주체에 내재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개체에 내재하는 형상을 생각할 수 있는 것과도 같다(그러고 보니 이 생각을 제시한 사람이 바로 습관론의 대가인 라베송이다).


성향들의 체계=아비투스는 성향의 체계이다. 즉 어떤 계층 안에 속한 사람으로 하여금 일정한 방향으로 행하게 만드는 성향들의 체계(système des tendances)이다. 이 점에서 인식론에서의 ‘에피스테메’(푸코) 개념과 매우 흡사하다. 즉 한 시대에 속한 사람들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조건들의 장이 에피스테메라면, 한 계층에 속한 사람들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특정한 방식으로 행위하게 만드는 조건들의 장이 아비투스인 것이다. 이 장은 인간 바깥에 놓여 있는 장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각 개체 내부에 들어와 있는 장이다(메를로-퐁티와 비교).

그런데 이 아비투스는 “구조화된 구조이며 구조화하는 구조”이다. 그것은 한번 형성되어 변화가 없는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구조화된 구조이다. 그런데 이 구조화는 완벽하게 주체 이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구조는 분명 주체들의 상호주관적 활동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 변동’을 이해할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사회 변동이 합리적 인간들의 투명한 계약 같은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생각 또한 엉뚱한 생각이다. 부르디외는 ‘사회적 장(champ social)’과 개개인의 ‘의식’(반성철학을 염두에 둔 표현)이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부르디외가 사르트르를 공격하면서 메를로-퐁티를 자신의 철학적 배경으로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비투스의 예들=부르디외가 초기에 몰두했던 알제리 사회 연구를 예로 들어 보자. 알제리는 화폐제도와 신용체제가 도입된 이후에도 자본주의를 충분히 내화하지 못했다. 왜인가? 한계효용론에 따르면 알제리인들이 실업을 감수하면서도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이것은 알제리 사회의 독특한 아비투스, 그리고 그 안에서의 개인들의 의식을 고려에 넣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알제리인들은 자본주의적 시간과 다른 시간-아비투스에 살고 있었고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또 베아른 지방(자신의 고향)의 결혼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화폐가 종이가 되었고, 때문에 지참금에 입각해 있던 이전의 결혼 제도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또 도시 문화가 들어오면서 각 가정의 장남들은 뒤쳐지게 되며 때문에 유난히 장남들의 독신이 많아진다. 이것은 장남들의 아비투스와 관련된다. 그들의 아비투스와 새로운 아비투스가 부딪쳐 정체성에서의 혼란이 빚어진 것이다.

68년을 전후해 부르디외는 문화적 지배가 학교를 통해 재생산된다는 테제를 계속 발전시켜 나간다. 이것은 곧 알튀세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개념을 발전시켜 나간 것이기도 하다. 부르디외가 개척한 ‘상징적 자본’ 개념은 맑시즘을 보완하는 중요한 개념 장치이며, ‘상징적 폭력’ 같은 개념은 사회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기억, 신체와 아비투스=부르디외의 아비투스는 실존의 조건이 내면화되어 형성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기억과 신체가 문제가 되며, 이것은 후기구조주의 사유가 베르그송, 메를로-퐁티 등의 사유와 접맥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기억이란 객관과 주관이 만나 형성된 사건들의 총체이며, 신체란 객관과 주관이 포개지는 ‘삶의 장(l'espace de la vie)’이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베르그송, 메를로-퐁티 등의 사유를 통해서 초기 구조주의의 추상성을 극복하고 행위하는 인간을 조명했다고 볼 수 있다.


주체화=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는 존재인 한 주체 개념은 늘 철학의 중심 주제일 수밖에 없다. ‘subjectum’이라는 말의 의미 변화, ‘existence’라는 개념의 의미 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체 개념은 근대․현대적 사유를 대변한다.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주의의 성과를 전제하면서 다시 주체를 사유하고자 하며, 이 맥락에서 등장한 말이 ‘주체화(subjectivation)’이다.

푸코는 주체화를 신체를 축으로 전개한다. 왜냐하면 신체란 권력의 작용점이자 저항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부르디외 역시 신체를 중시하는데, 신체야말로 아비투스와 의식이 공존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현대 사회는 객관적 장과 ‘주체화의 점(들뢰즈와 가타리의 표현)’을 동시에 사유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신자유주의 체제는 무역에서의 ‘보호’ 개념을 허물어뜨림으로써 세계를 ‘무한 경쟁’의 체제로 몰고 가고 있다. 그것은 결국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국들의 이익을 위한 체제라고 할 수 있으며, 빈익빈 부익부를 계속 증폭시켜 나가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의 논리가 이것을 뒷받침해 주는 논리이다(초국적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사업이 월드컵인데, 그 월드컵의 기본적인 아비투스가 국가, 민족인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부르디외는 이런 신자유주의 체제에 줄곧 저항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철학아카데미 자료실 http://www.acaphilo.org/PDS/?tb=J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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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생체권력


누군가가 길거리에 침을 뱉기만 해도, 아니 자기 의도와 전혀 관계없이 머리카락 하나만 떨어뜨린다 해도 정부에서 그가 누군지를 식별해내고 때로 제재를 가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통제당하는 끔찍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극단적인 상황이어서 얼핏 생각하기에 sf 소설이나 영화 같은 곳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상상도 아니고, 공연히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려는 선정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그것은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사회로 갈 수도 있는 문턱에 서 있는 것이다.

19세기 사회의 대표적 부산물인 IQ검사가 21세기에는 유전자 검사로 대체되었고, '바이오벤처'들은 유전자를 샘플링해 용기에 넣어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한 인간의 정체성이 용기에 포장되어 'qyt072009'와 같은 식의 기호를 부여받는다. 미국은 전과자 12만 명의 유전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 codis="combind dna index system"을 세웠고, 마침내 아이슬란드는 전국민의 유전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이제 생명, 신체는 기술에 의해 조작되고, 자본주의에 의해 판매, 유통되고, 국가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미셸 푸코는 이런 상황을 '생체권력'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한 바 있다.

권력의 주체들이 사람들을 지배하려면 지배의 대상들이 분명하게 확인되어야(identify) 한다. "identify"한다는 것은 곧 어떤 사람의 아이덴티티(동일성)를 확인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는 인식론적 문제가 깔려 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보고서 그 대상이 자기가 알고 있던, 또는 자기가 찾고 있던 "그" 대상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것은 바로 그 대상이 어떤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을 때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은 매일 아침 자신들의 담임선생님을 "알아본다". 알아본다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던 "그" 대상을 다시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알아보는 것을 영어로는 "re-cognize"로 표기한다. 즉 그 대상을 "다시" 확인(確認)하는 것이다.

이런 확인이 가능하려면 확인하려는 그 대상이 동일성을 유지해야 한다. 만일 담임선생님이 하룻밤 새에 변해버렸다면, 학생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이 세계에서 우리가 "그"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이렇게 동일성이 존재함으로써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담임선생님은 사실 변했다. 머리카락도 길어지고, 몸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그를 알아볼 수 있다. 이렇게 시간 속에서 변해 가면서도 그 변화를 소화해 가는 동일성을 '정체성'이라고 부른다)

이런 동일성의 존재를 확보하는 것이 합리적 인식의 토대이며,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동일성의 논리를 다듬어 왔다. 그러나 동일성의 문제는 순수 인식론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치의 맥락에서도 동일성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동일성이 정치적 맥락을 띠게 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배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지배의 주체들은 그들의 '신민(臣民)들'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필요로 한다. 즉 대상의 동일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그 가장 원초적인 방식은 타인의 신체를 빌리는 것이다. 누군가를 시켜 그를 어딘가에 가게 해서 그곳의 상황을 보고하게 한다면, 그렇게 시키는 사람은 자신의 신체를 직접 움직이지 않고서 대상을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를 시켜 자기가 보지 못한 어떤 대상을 보고하게 만드는 것은 대상 확인이 정치적 지배를 통해서 수행되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상 확인의 방식은 조금씩 '진화'하게 된다. 대상을 확인해서 그것을 지배의 눈길 아래에 두는 방식의 진화인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나타난 중요한 한 요소가 사회의 의학화이다. 지배 주체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의학적 지식들, 좀더 넓게는 생명과학과 연계되는 각종 지식들을 동원하는 방식을 푸코는 '생체정치'라 부른다.

생체정치의 중요한 한 요소는 인구 문제이다. 인구는 성행위를 통한 생명체의 증식이라는 자연적 흐름과 정치적 장치들을 통한 주민들의 통제라는 사회적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인구를 조절하는 것은 노동력의 확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고대의 전쟁은 역설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포로를 회득하려는 전쟁이었다.

노동력이 기계로 대체되자 '산아 제한'이라는 개념이 등장해 인구의 증가를 조절하게 된다.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다시 노동력 확보를 위한 '출산 장려'가 등장했다. 인구 문제는 사회를 관리하는 중요한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위생 문제 또한 중요하다. 일제 시대 일본인들이 조선을 통제하기 위해 동원했던 주요 개념들 중 하나가 '위생'이었다. 위생을 근거로 사람들의 신체를 지표화(指標化)하고 분류하고 평가함으로써 신체 관리 체계를 운영할 수 있었다. "더럽다"라는 말에는 매우 복잡미묘한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으며, 이 "더럽다"는 것을 관리하는 것이 생체정치의 빼놓을 수 없는 한 측면이다.

이 밖에도 무수한 형태의 생체권력들이 존재하거니와, 이 장치들이 직접적으로 차별에 동원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가장 즉물적인 것으로는 피부색에 의한 차별 및 성적인 차별이다. 신체적으로 즉각적으로 변별되는 이런 형질상의 차이들은 정치적 차별의 근거로 작동한다. 물론 이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을 식별해내고 구분 짓고 분류/평가해서 차별하는 무수한 권력장치들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마루타의 경우는 그 가장 극단적인 경우라 하겠다.

사회의 의학화는 지배 주체들이 사람들의 신체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핵심적인 방식이다. 사람들의 신체들을 각종 지표들로 표시하고 그 정보들을 확보함으로써 사람들을 확인하며, 그런 확인이 가능하지 않다면 지배도 가능하지 않다.

전통 사회에서의 생체권력들과 오늘날의 생체권력들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오늘날의 생체권력은 분자생물학이라는 과학/기술과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라는 두 핵심 요소들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오늘날 분자생물학은 한 사람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근거로서 작동하고 있다. 한 사람의 염기배열, 특히 '게놈'이라 불리는 그 종합적 지도는 한 개체로서의 한 개인을 확인하는 가장 분명한 장치로서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이제 한 인간은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이라는 네 개의 염기들이 배열된 하나의 방식으로 환원된다.

이것은 철학적으로 보면 대단히 유치한 사고방식으로서, 한 존재의 동일성을 그 존재를 구성하는 어떤 한 요소로 환원해 이해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한 인간의 정체성은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란 결정되어 있는 무엇이 전혀 아니며 우발적으로 생성해 가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만나 어떻게 변해 갈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절대 우발성의 문제인 것이다. "하나의" 대상 안에 어떤 본질이 있고 그 본질을 발견하면 그 존재가 모두 해명된다는 식의 생각은 19세기에 이미 극복된 낡은 존재론의 유산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런 인식 방법은 오늘날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문명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더 결정적인 것은 지식이 자본과 결합함으로써 지배의 새로운 양태들이 전개된다는 점이다. 푸코는 지식-권력의 문제를 논했거니와, 오늘날 이에 못지않게 지식-자본의 문제가 논의되어야 한다.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발견'되면 tv 뉴스는 그 학문적 내용이나 문화사적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 가져올 '부가가치'를 역설한다. 자본주의는 분자생물학이 가져온 천문학적인 부가가치를 노리면서 새로운 형태의 생체권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한 인간의 생물학적 정체성은 실험되고 조작되고 판매되고 유통되는 상품이 되었다. 장기(臟器)의 판매 같은 것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한 인간의 유전정보가 무책임하게 유출되었을 때 일어날 일들, 정부나 기업에서 한 인간의 유전정보를 쥐고서 통제할 때 일어날 일들, 부모들이 더 잘 생기고 똑똑한 자식을 가지겠다고 날뛸 때 일어날 일들, 한 가족 성원의 유전정보 유출이 다른 성원들에게 끼칠 영향, 길거리에 침만 뱉어도 누군지 확인되는 완벽한 통제사회의 도래, 이 모든 상황들이 하나의 새로운 인식을 제시한 특정 주체들에 의해 다른 주체들이 철저하게 객체화되는 비극을 예고하고 있다.

사람들은 성형 수술을 하듯이 자신의 유전자를 고치려 할 것이고, 과학자들은 미래의 비극을 외면한 채 오로지 경쟁 상대자들만 바라보면서 밤을 샐 것이고, 기업과 정부는 유전정보를 활용해 부와 권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인식주체에 의한 주체 자신의 객체화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강화된 경우가 일찍이 있었던가.

인간은 세계를 알기 위해 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지식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지식은 인류에게 더 무겁고 두려운 현실을 짐 지우곤 한다.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만들어낸 새로운 존재가 다시 더 큰 운명이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인류의 역사는 역운(逆運)의 역사인 것이다.

이 역운의 수레바퀴를 조금이나마 늦추려면 대중 전체가 각성해서 권력과 자본의 지배 장치들에 저항하는 것 외에는 어떤 방법도 없다. 대중 전체가 깨어나려면 우선 그들을 깨울 수 있는 전위부대로서의 지식인(매우 넓은 의미)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득권에 안주하는 지식인들만이 득실대는 이 시대에 저항의 실마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10. 민족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병이 있어 병명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병명이 있어서 병이 있는 것일까? 아마도 대개는 당연히 병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거기에 어떤 이름이 붙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많은 병들이 우리 눈에 직접 확인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가 책상을 보고 "저기에 책상이 있다"고 말하는 경우처럼 그렇게 a라는 병이 우리에게 확인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진단 결과들, 그래프들, 숫자들, 증후들, ...의 복합체를 특정한 이론적 관점에서 해석해서 a라는 어떤 하나의 병이 "존재한다"고 가정되고 거기에 이름이 붙는 것이다. 좀 단적으로 말한다면, 이러이러한 현상들을 하나의 '단위'로 구성해서 a라고 하자 라는 합의가 이루어지면 a라는 병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서구 중세 철학에서 '보편자들'이라고 불렀던 것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개체들 이상의 단위들은 과연 존재할까? 철수나 영희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보편자는 과연 존재할까? 뽀삐나 검둥이, 해피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개'라는 보편자는 과연 존재할까? 아니면 개체들의 전체 집합을 부르기 위해 인간이 사용하는 말, 하나의 개념에 불과한 것일까?

이렇게 어떤 사물의 '존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유를 '존재론'이라고 한다. 바로 이 존재론적 사유를 필수적으로 요청하는 '존재'들 중 하나가 '민족'이라는 존재이다.

'민족'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할까? '민족'이란 개체 이상의 존재단위들 중 하나이며, '국민', '종족' 등과 유사한 층위의 개념이자 '지역', '인종', ... 등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개념이다. 이 모두는 인간이라는 전체를 여러 개의 굵직한 존재단위들로 분절하는 방식들이다. 즉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기 위해 동원하는 각종의 보편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보편자들을 분절하는 방식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한 교실에 50명이 사람이 있을 때, 사회계층에 예민한 사람은 그들을 계층으로 분절할 것이고, 성차에 예민한 사람은 남자가 또는 여자가 몇 명인지를 유심히 볼 것이다. 옷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옷 입은 것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분절해 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류 전체를 어떤 기준으로 분절해 보는가는 대단히 복잡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민족이란 무엇을 기준으로 분절되는가? 사물들을 분류하고 이름을 붙일 때, 거기에는 늘 '본질' 개념이 작동한다. 한 개념의 본질 규정에 근거해 그것의 외연이 결정된다. 그러나 규정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바뀔 수 있다. 백조는 흰 새이기 때문에 '백조'라 불렸지만, 호주에서 검은 백조가 발견되면서 '白鳥'의 본질 규정은 흔들렸다. 생명체들의 경우 오늘날에는 유전자가 중시된다. 그렇다면 한 민족의 본질 규정은 무엇인가? 무엇이 한 민족을 "하나의" 민족으로 만드는가?

'민족'이라는 존재 단위는 대단히 모호한 단위이다. 사람들은 민족이라는 것이 마치 한 사람의 개인이 존재하듯이 그렇게 존재한다고 믿기도 하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민족이라는 단위는 대부분이 극히 모호하고 허구적인 것들이다.

앞에서 우리가 병에 관련해 이야기했거니와, '민족'이라는 존재는 명확히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관점을 통해서 구성되는 존재이다. 혈통, 언어, 문화, 지역, ...등 갖가지 기준들이 존재하지만, 그 기준들을 조합하는 방식은 다 다르고, 때문에 하나의 민족이 객관적으로 분절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관점을 가지고서 그런 존재 단위를 구성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 연구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특정한 민족의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은 위태로워진다. 수천 년, 수만 년을 보존해 온 "한" 민족의 동일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가 밝혀지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19세기 사상가인 에른스트 르낭은 "망각과 왜곡은 국민(國民) 형성의 본질적 요소들이다. 역사 연구의 발전은 국민 개념을 위태롭게 한다"고 했다.

르낭의 이 말에서 '국민 형성'이라는 개념은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민족이라는 개념이란 결국 국민 형성이라는 맥락에서 동원되는 개념이라는 사실이 여기에 잘 나타나 있다.

왜 국민 형성에 민족이 중요한가? 하나의 국민이 형성되려면 숱한 사람들, 정말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개인들을 '국민'이라는 어떤 인위적인 존재, 구성된 존재 속으로 쓸어 담아 거기에 어떤 확고한 동일성을 부여해야 한다. 그러려면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믿게 할 수 있는 것, 즉 인위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동원해서 국민 개념을 밑받침해야 한다. 즉 인위적으로 구성된 '국민'을 밑받침하는 어떤 실체가 필요한 것이다.

'민족'이라는 존재는 바로 이런 실체로서 동원되는 개념이다. 하나의 국민이 확고한 동일성을 갖추려면 지역적 구획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오랜 세월 동안 하나의 동일성을 유지해 왔다는 어떤 보증, 숱한 세월 속에서도 "하나의" 그 무엇으로서 살아 왔다는 보증이 필요하다. 바로 그 때 '민족'이라는 개념이 동원되기 시작한다.

물론 민족이라는 개념을 덮어놓고 허구라고 볼 수만은 없다. 일정한 지역에서, 같은 말과 같은 풍속, 문화, 관습을 가지고서 비교적 오랜 세월 동안 살아간 사람들을 어떤 하나의 단위로 묶어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런 경우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형성된 민족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조차도 혈통, 언어, 관습, ...등에서의 복잡한 이질성이 혼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확고하게 보였던 동일성이 금방 와해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민족 개념을 인정하는 경우에조차도 그것이 매우 모호하고 복잡한 것이라는 것을 잊으면 곤란하다.

그러나 문제는 누가 어떤 목적에서 하나의 민족, 한 민족의 동일성을 구성하는가, 민족 개념을 과장하고 조작하고 이용하는가이다. 이들은 곧 근대 '국민국가'를 구성하려 했던 집단들이다. 서구의 경우 중세 카톨릭 사회가 무너지면서 유럽 사회가 다원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근대적인 국민국가를 구성하려 했던 주체세력들이 민족 개념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여러 차례에 걸쳐 복잡하게 전개되며,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자유주의, 사회주의, 제국주의, ...등 여러 흐름들과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관계를 맺으면 전개된다.

민족주의는 때때로 외부의 침입에 대응하면서 형성되기도 한다. 민족주의가 존재하고 그것이 외부에 대항한다기보다는, 차라리 외부라는 것이 침입하면서 그것에 대항하는 내부로서의 민족 개념이 형성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런 경우는 말하자면 '저항적 민족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저항적 민족주의도 순식간에 폭력적 민족주의로 둔갑한다. 일본의 경우 역시 서구라는 외부, 근대성이라는 외부에 직면해 메이지 유신을 통한 근대 국민국가/민족국가에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서구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시작된 민족주의는 역으로 서구가 자신들에게 했던 짓을 동북아의 다른 지역들에게 그대로 되풀이하는 비극을 낳았다. 자신이 당했기에 타자는 그렇게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당한 그대로 타자에게, 자신을 가해한 타자가 아니라 다른 엉뚱한 타자에게 가해하는 인간사의 비극은 일본의 경우에 선명하게 확인된다. 이렇게 피해적 민족주의와 가해적 민족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조선'이라고 하는 적어도 상대적으로 볼 때 세계사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견고한 동일성을 갖추고서 살아 왔던 한국인들은(물론 '한국인들'이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구성물이지만) 현대에 들어와 서구와 일본에 짓밟히면서 저항적 민족주의, 피해적 민족주의를 꽃피워 왔다. 적어도 이 저항적 민족주의, 민중들의 자연발생적 민족주의는 역사적 정당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 및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파시즘 정권을 거치면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국민 형성'의 수단으로 계속 이용되어 왔다. 국민국가를 떠받치는 메커니즘으로서 정권들은 민족 개념을 악용해 왔으며, 서구와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에 젖은 사람들의 심리를 적절히 활용했다. 문화적인 성격을 띤 민족주의조차도 언제라도 정치적 민족주의 즉 국민주의로 이용되기 일쑤이다. 전두환이 일으켰던 '국풍(國風)'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오늘날 일본과 한국의 악순환적인 관계, 통일을 둘러싼 남한과 북한의 관계, 근대가 이루어놓은 삶의 양식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탈근대적 사유들과 몸짓들,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비롯해 각종 문제들은 모두 민족주의와 직간접적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그 어느 경우든 민족주의는 언제라도 권력에 의해 이용될 수 있는 위험한 개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11. 코라


오늘날의 사상을 이야기할 때 '내재성'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 말은 '초월성'의 반대말이다. 현대 사상이 내재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곧 기존의 철학사상들이 이야기하던 초월적 존재들, 예컨대 이데아, 신, 선험적 주체 같은 존재들을 벗어나 모든 것을 평등한 차원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 모든 것은 서로간의 관계맺음들을 통해서 존재하며, 그런 관계망 위로 솟아올라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이런 사유는 철학사에서 종종 등장하긴 했지만, 그 본격적인 형태가 전면적으로 도래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푸코, 들뢰즈, 데리다를 비롯해 오늘날의(이미 고전이 됐지만) 대표적인 철학자들은 모두 이런 내재성의 사유를 다듬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내재성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초월성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가장 강한 형태의 초월성에는 플라톤-기독교적 초월성이 있다. 기독교의 초월성은 분명하다.(물론 유대-기독교적 신 개념 역시 비교적 구체적인 형태에서 점차 추상적 존재로 변해 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플라톤의 경우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플라톤이 그의 대화편 『티마이오스』에서 우주를 만든 조물주로서 데미우르고스를 이야기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액면 그대로의 이야기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들이 존재한다. 데미우르고스를 기독교의 신에 근접시키는 한에서 플라톤-기독교적 초월성이 성립한다.

그러나 이 강한 의미에서의 초월성이 초월성의 전부가 아니다. 따라서 이 초월성을 거부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내재성의 철학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핏 내재성의 사상 같지만 초월성의 흔적을 강하게 간직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사상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라톤-기독교적 초월성이 아니라 해도 세계의 이법(理法)을 항구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사물들이 그 이법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사유도 사실상 초월성의 사유이다. 이런 사유에서 사물과 사물 "사이"는, 그리고 각 사물들의 "바깥"은 부차적이다. 이는 달리 말해 사물과 사물이 맺는 관계 자체가 어떤 항구적인 이법을 통해서 고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영원한 이법(또는 태극, 섭리, 천명, ...등)의 개념에 근거하는 사유들은 개별자들을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것들로 파악하기보다는 이법에 근거해 존립하는 것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그 이법에 초월성을 부여하는 사유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성리학, 라이프니츠, 헤겔 등 고전적인 형이상학적 체계들이, 유연한 경우도 있고 강고한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형태를 띤다. 이런 형태들 역시 완화된 형태이긴 하지만 사실상 초월적인 사유인 것이다.

만일 사물과 사물이 전적으로 우발적(偶發的)으로 관계 맺는다면(여기에서 우발성은 영어의 'contingency'에 해당한다), 즉 사물들 사이의 관계에 어떤 아프리오리한(경험을 초월한, 개별성을 초월한) 이법도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런 세계는 사물과 사물이 열린 관계, 우발적 관계를 맺어가는 세계, 모든 것이 (사물들과 사물들의) "사이들"에서 형성되고 변환되어 가는 세계일 것이다.

이렇게 어떤 사상이 설사 관계적 사유의 형태를 띠는 경우라 해도, 그 관계들이 우발적인 것들이 아니라면 결국 관계들 자체가 실체화되게 된다. 이 경우 관계들의 체계가 이법의 역할을 하게 되며, 이 체계는 결국 개별자들을 초월한 무엇이 된다. 이런 경우는 '구조주의'라 일컬어지는 사유나 더 넓게는 자연과학적 사유 일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내재성의 사유는 플라톤-기독교적 사유만이 아니라 이법의 사유도 거부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근대 철학은 '선험적 주체'라는 또 하나의 초월성을 제시했다. 선험적 주체는 자연적인 존재, 경험을 통해서 이해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사물들의 차원을 초월해 있다. 칸트와 후설의 '선험철학'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이 두 사람이 '경험적인 것'과 '선험적인 것'을 구별하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던 것이 이 때문이다) 오늘날 내재성의 사유를 추구한다는 것은 고중세적인 실체/본질의 사유 못지않게 근대적인 선험적 주체의 사유도 거부하는 것이어야 한다. 근대 선험철학은 사물 일반과 선험적 주체 사이에 불연속을 놓고서 주체의 초월성을 사유했던 사상들이기 때문이다.

내재성의 사유는 우발적 관계들을 통해 접속되고 일탈하는 사물들의 운동에 초점을 맞춘다. 삶은 정해진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과 창조의 연속인 것이다.

데리다는 이데아, 신, 선험적 주체 같은 동일자(同一者)의 초월성을 매개해서 사물들을 재단하는 서구 형이상학의 폐단을 절실히 깨닫고 그런 폐단을 '해체'하고자 했다. 그의 해체의 칼날 앞에는 고전적인 형이상학 체계들만이 아니라 현상학과 구조주의 같은 현대 사유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데리다의 해체는 기존의 사유를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이지 '해체'라는 단어의 즉물적인 의미에서 무엇인가를 붕괴시키는 것은 아니다. 각 사유체계의 지상이 아니라 지하에 묻혀 있는 측면을 캐내어 그 체계를 (원래의 저자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로 재창조하는 것이다.(이 점에서 '탈구축'이라는 번역이 나을 듯싶다) 이 점에서 데리다에 대해 "해체 뒤에 남는 게 뭐냐?", "해체 이후의 대안이 뭐냐?"라고 묻는 것은 적절한 질문이 아니다.

데리다의 이런 작업이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플라톤의 탈구축이다. 데리다는 여기에서 문자보다 음성을 중시하는, 따라서 현존(現存)에 특권을 부여하는 플라톤적 사유를 탈구축한다.(현존이란 나타나-있음, 즉 말하는 사람이 생생하게 현실 속에 나타나-있음을 함축한다. 그래서 문자보다 음성=목소리가 중요하다고 보는 생각은 현존을 중시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현존의 형이상학에 기초해 두 가지 언어를 구분한다. 영혼에 각인된, 즉 기억으로서 존재하는 살아 있는 언어와 문자로 기록된, 따라서 누가 어떻게 악용할지 알 수가 없는 죽은 언어를 구분한다.

그러나 플라톤에게는 묘한 역설이 존재한다. 만일 문자가 그릇된 것이라면, 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행위를 문자로 기록했는가. 그것은 스승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여기에서 데리다는 플라톤 사유에 존재하는 이중성, 즉 문자를 비판하면서도 문자에 집착하는 이중성을 읽어낸다. 즉 약(藥)이자 독(毒)으로서의 파르마콘(독일어의 'gift'와 통함)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문자는 파르마콘이다. 이것은 플라톤이 신화를 비판하면서도 대화편의 결정적인 부분들에서 신화를 끌어다대고 있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플라톤이 우주 창조를 설명할 때 물질의 역할을 한 코라(cho를 재음미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코라는 파르마콘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것은 목소리(누스=이성의 목소리)에 따라 즉 이법에 따라 빚어지면서도 그것을 벗어나려 한다는 점에서 플라톤 사유에서는 약이자 독인 파르마콘이다. 코라는 곧 이법이 강제하는 동일성에 저항해 차이가 생성하는 곳이며, 열린 관계들의 생성으로서의 '텍스트'가 짜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것은 곧 리좀의 공간이다. 플라톤은 이성=누스로써 이 코라를 제압하는 사유를 전개했지만, 데리다는 오히려 플라톤을 탈구축함으로써 코라의 의미를 극대화한다.

코라는 아마 허(虛)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허(虛)는 단지 텅 빈곳만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것들이 그곳으로부터 조직되어 나올 수 있는 잠재성, 카오스이기도 하다. 장자는 일찍이 이 허 개념을 빼어나게 사유한 바 있다. 데리다는 이 잠재성, 카오스의 긍정적 의미를 읽어내고자 한다.

어쩌면 코라는 민중이 아닐까. 위로부터 내리누르는 이법들에 의해 주물이 찍히듯이 만들어지는 대중이 아니라 자기조직화(自己組織化)를 통해서 정치와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민중의 역능(力能)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이 점에서 코라의 재음미는 민중의 재음미일지도 모른다.




12. virtuality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면 새로운 무엇인가가 이 세상에 나타나는 일이란 없을 것이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더 넓게 말해 감각으로 확인되지 않던 무엇인가가 생겨나기도 하고 또 보이던 것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감각으로 확인되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비가시의 세계, 감각을 넘어선 세계도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말할 필요도 없이 비가시, 비감각의 세계가 가시, 감각의 세계와 별도로 따로 존재할 리는 없다. 서울과 뉴욕이 따로 존재하듯이 그렇게 두 세계가 따로 존재할 리는 없는 것이다. 세계는 하나이다. 다만 하나인 세계가 우리에게는 감각으로 확인되는 차원과 확인되지 않는 차원으로 구분되어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세계와 비-현실세계를 구분한다. 그런데 이 비-현실세계를 사유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그 중 핵심적인 것들 중 하나가 '잠재성(virtuality)'이다.

바둑을 생각해 보자. 흑백의 바둑돌이 20개 놓여 있다. 두 기사가, 예컨대 이창호와 이세돌이 열심히 바둑판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이미 놓여진 20수를 볼 때도 있겠지만, 두 사람은 그 외의 공간도 샅샅이 훑어보고 있다. 두 사람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듯이, 이들은 지금 "수를 읽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수(手)라는 것이 무엇일까? 수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없다. 그러나 바둑 두는 사람이 지금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길들'이라고 부르는 어떤 객관적인 것들을 보고 있다. 더구나 두 사람이 함께 그 길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한 사람이 홀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머리싸움'을 하면서 그들에게 공통되는 길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길들은 분명 존재한다.

이 길들의 존재는 고수와 하수의 구분에도 중요하다. 만일 객관적으로 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누구는 그 길들을 더 잘 보고 누구는 더 잘 보지 못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사람은 상대적으로 고수이고 다른 사람은 상대적으로 하수가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수와 하수는 분명 구분된다. 하수가 보지 못하는 그 무엇을 고수는 본다. 하수가 살아나갈 수 없다고 판단하는 공간에서 고수는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을 읽어내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 즉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마음에는 보이는 것, 감각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데 우리 정신으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바둑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당구를 칠 때도, 야구경기를 할 때도, 미술관에 전시를 할 때도, 결혼식을 할 때도, 이런 차원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런데 이렇게 감각으로는 확인되지 않지만 우리의 머리로, 정신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존재론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하다. 인간의 각종 문화들은 결국 이런 차원, 즉 감각을 넘어서지만 분명 존재하는 차원을 읽어내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존재론은 그렇게 발견된 차원들을 종합해서 세계의 근저를 들여다보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차원을 개념화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각별하게 새롭게 주목된 것은 '잠재성(潛在性)'의 개념이다. 이 개념은 라이프니츠와 베르그송에 의해 다듬어졌고 들뢰즈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으며,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하게 다루어질 핵심적인 존재론적 화두들 중 하나라 하겠다.

잠재성은 가능성과 다르다. 이것은 곧 현대 존재론에서의 잠재성과 컴퓨터 공학에서의 'virtual reality'는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컴퓨터 공학에서의 '버츄얼 리얼리티'는 '가상현실'이다. 철학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면 차라리 '버츄얼 액츄얼리티(actuality)'라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 가상현실은 잠재성이 아니라 가능성을 뜻한다.

잠재성과 가능성은 어떻게 다른가? 가상실재에서의 '버츄얼'은 '가짜'라는 뜻을 함축한다. 가상현실은 실제 현실에 대한 지각을 바탕으로 그것을 변형시킨다. 예컨대 강아지를 지각해서 그것의 이미지를 만든 다음 그 이미지를 변형시킬 수 있다. 그래서 바로 그 강아지인데 꼬리를 두 개 가진 경우, 귀가 없는 경우 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점에서 가능적인 것은 상상적인 것과 통한다. 즉 현실에서 출발하되 그것을 변형시켜서 그것과는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상상적인 것이다. 때로는, 아니 상당히 자주, 이미 상상한 것에 다시 상상을 덧붙여 변형하며, 그런 변형을 계속된다. 이렇게 현실보다 훨씬 외연이 큰, 즉 실제 현실보다 더 범위가 넓은 차원이 가능의 차원이며, 가능의 차원은 상상의 차원과 같다.

그래서 가상적인 것은 가능적인 것이고 또 상상적인 것이다. 이 가상=가능=상상의 차원은 인간의 주관의 차원이고, 이 주관이 인간이라는 존재 특유의 문명을 가능하게 했다고도 할 수 있다.

오늘날 이 가상=가능=상상의 차원은 '판타지'라는 개념과 맞물려 있다. 상상을 동원해 현실과는 다른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을 '판타지'라고 한다. 오늘날은 판타지의 전성시대이다. 왜일까?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대중들의 심리와 그 심리를 파고들어 이익을 남기려는 자본주의, 그리고 이 두 존재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와 대중문화의 뒷받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따분한 진실보다 달콤한 거짓을 더 좋아한다. 현실을 정확히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을 바꾸어나가기보다는 허망한 판타지의 세계에 몰입함으로써 현실로부터 아예 도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 심리를 자본주의가 놓칠 리 없다. 이로부터 영화를 필두로 해서 거대한 '판타지 산업'이 도래했다. 물론 이 산업은 기술적 장치들과 대중문화의 코드들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중, 자본주의, 테크놀로지, 대중문화가 교차하는 곳에서 판타지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잠재성은 가능성이 아니다. 잠재성은 상상적인 것, 가상적인 것, 판타지가 아니라 객관적 존재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게 확인되는 차원이 아니라 지적 노력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차원이다. 직접적으로 확인되는 차원은 현실차원이다. 그러나 이 현실차원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잠재차원이다. 잠재성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현실성을 보다 확대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현실적인 것은 20개의 돌이지만, 잠재적 길들, 수들을 읽어냄으로써 그 20의 의미는 전혀 달리 읽힌다. 그리고 고수일수록 더 많은 수를 읽어냄으로써 그 20개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더 많이 읽어내는 것이다.

잠재성을 읽어내는 것은 실천적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잠재적 차원을 더 많이 들여다볼수록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좀더 넓은 눈으로 읽어낼 수 있고, 그에 따라 현실을 좀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대는 객관적 진실보다는 주관적 쾌락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시대이다.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고, 학문적으로 규명하고, 진실을 밝히는 작업보다는 재미를 추구하는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허상적인 이미지들이 더욱 각광받는다. 존재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려는 예술적 고투는 외면당하고 싸구려 문화만이 온통 기승을 부린다. 이런 현실은 무엇보다도 우선 신문과 tv를 비롯한 대중매체들에 의해 조장된다. 진실을 전달해야 할 매체들이 선정적인 오락으로 뒤덮이면서, 자본주의의 힘에 압도되면서 매체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연예산업으로 둔갑한 것이다.

상상적인 것, 가상적인 것, 판타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진실을 밝히는 작업, 객관적인 진리를 밝히는 작업보다 말초적인 재미를 주고 허망한 환상을 심어주는 작업이 거대한 산업으로서 군림하게 된다. 우리의 시대는 이런 현실과 싸우면서 객관적 진실의 인식을 기초로 한 현실 개혁이 요청되는 시대이다. 가상성의 오락과 산업보다 잠재성의 사유와 실천이 중요한 것이다.

 

 

출처 : 철학아카데미 자료실 http://www.acaphilo.org/PDS/?tb=J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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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08. 5. 7.

2008/05/08 00:21

2008. 5. 3 ~ 5. 6. 두번째 일본여행. 후쿠오카, 구마모토, 나가사키를 둘러봤다.

나가사키의 평화공원과 원폭자료관이 내면에 새겨짐. 원폭자료관 앞, 머리 뒤부터 등쪽으로 섬뜩함과 차가움.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 보살. 15만명. 1945. 8. 9. 타버린 사람들. 녹아버린 유리병과 철구조물. 검은 땅. 생각보다 큰 원폭탄. 그리고 그 기억을 고스란히 보존한 원폭자료관

 

다녀와서...'죽음이 두렵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미친소 이야기들을 하루종일 둘러본다.

문득 태안앞바다 기름 덩어리는 어떻게 됐나......많은 사건들이 축적되고 그렇게 미래가 만들어진다.

 

빨래를 하고 손톱을 깍고 냉장고를 닦고 선풍기를 틀어 냄새가 없어지길 기다린다.

 

밤이 깊어간다. 삶의 지혜가 필요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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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광우병과 "狂개발병" - 한국 지배층의 병리 현상들 

만감: 일기장 2008/05/05 02:28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13227 


이번에 광우병 발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지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전면 개방하겠다는 MB정권의 결정은 MB의 실체를 참 잘 보여줍니다.  MB 자신도 미국 재계 인사들 앞에서 그 결정을 발표할 때에 "FTA의 조속한 체결을 염두에 두고.."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낸 것이지요.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삼성전자의 휴대폰, 현대, 기아의 자동차를 미국 시장에 약간 더 내다파기 위해 국내 농민들을 울리고 모두들의 건강을 위험에 노출시켜도 된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1970년대 형의 "목숨을 건 수출 증가 작전"인 셈이지요. 물론 자신의 목숨은 아니고 "밑에것"들의 목숨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운하를 파서 금수강산을 다 파괴하든 미친 소의 고기를 들여 사람들을 병나게 만들든 무슨 수를 써도 건설, 전자, 자동차 부문 재벌들의 이윤을 높이겠다는 이 "狂개발주의자"들은 하나를 알고 둘을 모르는 것입니다.  제품을 무조건 많이 내다팔 수록 해당 수출국이 "선진국"이 되고 세계모범생이 되는 그 "자본의 황금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인류는 새로운 시대, 즉 만성화된 식량 위기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3억 명씩이나 되는 인도, 중국의 신흥 중산계급들이 구미인 만큼의 육류 등 프로테인 섭취를 하자면, 그리고 식물 재료로 연료를 만들자면 커다란 양의 곡물은 식량용이 아닌 사료용, 재료용으로 쓰이게 되는 것이고, 그 만큼 곡가가 계속 올라가게 돼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이상 기후에 의한 지속적 흉작들, 중국 등지에서의 공업에 의한 농지 잠식 효과 등을 가산해보면 "싼 식량"의 시대가 지났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선진국이란 휴대폰을 마구 만들어 내다파는 "수출 공장형" 국가가 아닙니다. 일단 필요한 식량을 자국민에게 공급해주고 잉여를 팔아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나라는 이제 패자 (覇者)가 되죠. 한국이 과연 그러한 나라의 대열에 속하고 있나요?


우리가 미국 본 받기를 하도 좋아하는데, 미국의 식량 자급률은 125%입니다. 그 부분부터 본 받음은 어떨까요? 광활한 토지 덕분이라 하겠지만 토지가 광활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식량 자급률을 70%선 이상으로 올리고 또 전략적으로 계속 올립니다. 식량 자급률 132%인 프랑스는 토지가 광활하나요? 식량 자급률 96%인 독일은 인구 과밀 지역 중의 하나 아닌가요? 식량 자급률이 유럽에서 낮은 편에 속하는 영국에서도 그래도 74%에 달합니다. 유럽 농정의 최근 추이를 보자면 그 자급률이 꾸준히 높아져 갑니다. 독일에서 같으면 1970년의 서독에서 68%에 불과햇는데, 이제는 거의 100%를 향해서 치닫고 있지 않습니까? 이명박이 독일인에게 제대로 배우자면 운하만 보지 말고 농가 방문도 좀 하시지 그래요. 그런데 개발을 신격화시키는 자들은 농사를 천하게 여겨서 그런지 농가에 가서 보고 배우는 법이 없는 모양입니다. 한국 개발주의자들이 모통 모든 것을 배우는 건 일본한테 배우는 것인데 농정만큼은 일본적인 방법을 배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역시 모든 것을 "오로지 공업과 토건"에 건 일본에서는 1970년의 식량 자급률은 60%이었는데 그 뒤로는 계속 떨어져서 지금은 40% 정도가 됐습니다. 지금 그 쪽 밀 자급률이 14%까지 떨어져 세계 식량 위기 관련으로 상당히 위험한 입장에 처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밀 자급률이 0,1%인 대한민국은 어떤가요? 일본의 식량 자급률이 40% 안팎이 돼서 일본 언론에서 커다란 문제가 제기됐지만 일본보다 일본적인 난개발, 묻지마 개발 길로 가버린 대한민국에서는 28% 정도입니다. 어느 정도로 산업화된 국가 치고는 그러한 국가는 어디에서도 없습니다. 지금도 반도체를 팔아 번 돈의 약 절반을 식량 수입에 쓰고 있지만 이제 몇 년후에 세계적 식량 위기가 조금 더 심화되면 그냥 거덜날 상황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도 운하를 파고 광우병 쇠고기를 사겠다는 통치자보고 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국회다운 국회가 있었다면 벌써 탄핵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정부는 지금 "해외 식량 기지" 등 일종의 아류 제국주의적 프로젝트를 들먹이지만 이제 곧 도래될 신보호주의적 세계적 분위기에서 그러한 프로젝트의 성공률은 아주 낮아요. 이윤 문제를 떠나서, 단지 굶지 않기 위해서 이 사회의 모든 가용 자원을 동원해 우리 농촌을 살려야 합니다. 유럽 연합의 전체 농산물 생산은 1년에 1200 억 유로 정도인데, 그걸 만들기 위해 370억의 직불제 보조금을 투입하는 것이지요. 즉, 보조금 액수는 전체 농산물 생산액의 약 30% 이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 정도의 농민을 위한 재분배 정책이 없다면 어찌 저이윤 부문인 농업을 갖고 식량 독립을 이루겠습니까? 독립에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식량 독립이 되지 않으면 언제 기아의 위험이 닥칠지 모를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가격을 빠를 수록 지불하면 좋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좌파 정부, 즉 사민주의적 경향의 정부가 집권하게 되면 맨먼저 할 일은 대기업 법인세 인상과 그 인상분을 농업에 투입시키는 정책일 것입니다. 광우병 수입으로 휴대폰 수출을 늘리려는 이번 정권 정책의 정반대일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생존이 보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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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바로 휴식...

2008/05/07 00:23

[박노자] 나의 사랑, 列子 

만감: 일기장 2008/05/04 03:37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13213 


한번 제게 한 기자 분께서 "列子를 왜 좋아하느냐, 도교 철학에 무슨 진보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느냐, 고대, 중세 귀족들의 세상 도피의 방법이 아니었느냐"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었어요. 글쎄, 특히 남북조 시대의 현학풍은 그랬다고 볼 수 있지만 도가 원전들을 보면 아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제가 학생 시절에 한문을 익혔을 때에 제게 가장 감동을 준 列子의 이야기 중에서는 이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자고은 공부에 지쳐 공자에게 고하기를 '쉴 곳을 원하옵니다'. 공자가 가로대 '인생에서 쉴 곳이란 없소'. 자공이 아뢰기를 '그렇다면 제게 쉴 곳은 전혀 없단 말씀오리까?' 공자가 가로대 '저 무덤의 구덩이를 보라. 윤택해 보이지? 으뜸가는 것 같지? 크지? 아름다운 솥처럼 보이지? 그게 쉴 곳인 줄로 알라!' 자공이 말하기를 '크도다, 죽음이여! 군자는 당신을 휴식으로 알고, 소인은 당신에게 복종하도다. 공자가 가로대 '사여, 이걸 똑똑히 알라. 인간은 흔히 삶의 즐거움을 알아도 삶의 고통스러움을 모르고, 늙으막의 고달픔을 알아도 늙으막의 여유로움을 모른다. 죽음이 나쁘다고만 알지 죽어서 쉰다는 걸 모른다는 것이다"


"子 貢 倦 於 學 , 告 仲 尼 曰 : 「 願 有 所 息 . 」 仲 尼 曰 : 「 生 無 所

息 .」 子 貢 曰 : 「 然 則 賜 息 無 所 乎 ? 」 仲 尼 曰 : 「 有 焉 耳 . 望 其

壙 , 如 也 , 宰 如 也 , 墳 如 也 , 如 也 , 則 知 所 息 矣 . 」 子 貢

曰 : 「 大 哉 死 乎 ! 君 子 息 焉 , 小 人 伏 焉 . 」 仲 尼 曰 : 「 賜 ! 汝 知

之 矣 . 人 胥 知 生 之 樂 , 未 知 生 之 苦 ; 知 老 之 憊 , 未 知 老 之 佚 ; 知

死 之 惡 , 未 知 死 之 息 也"


이게 뭐가 진보냐고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죽음에 대한 긍정적인, 조용한 태도는 "지욕" (止慾), "지족" (知足)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욕망을 적당히 조절하고 남들의 욕망들도 나의 욕망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나의 욕망만을 주장하는 태도를 버린다는 것이지요. 죽음이 바로 휴식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서울대 입학에 목숨을 걸겠습니까? 자본주의의 생산/소비의 주기는 바로 "극도로 발전된 자기 중심의 욕망"을 자극해 이용하는 것인데, 도가의 가르침은 이 욕망에 대한 조절권을 "나"에게 돌려줍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총체성"의 이해지요. 삶도 죽음도 "나"의 일부분이다, 죽음도 삶만큼 긍정시하고 좋게 여겨야 한다 - 이렇게 보는 사람은 결국 우주삼라만상 그 전체를 "나"와 같은 것으로, "나"를 만물 중의 유기적인 하나로 알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자본주의라는 것이 혐오스럽다기보다는 한같 무의미한 우둔한 이들의 작난일 뿐입니다. "국가 경쟁력", "국익", "우등반"... 이러한 언어 그 자체는 도가를 익힌 사람에게는 웃음을 자아낼 뿐이지요.


하여간 저는 마르크스와 열자, 그리고 법구경을 동시에 읽으면 오히려 제 맛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천적 운동을 하시는 분들께 열자와 장자 등을 적극적으로 권고해드립니다. 그러한 정도의 책을 읽어야 "무슨 단체/조직의 회원", "무슨 사상의 추종자"가 아니라 진짜 "생각하는 갈대"가 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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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미래로 가는 오래된 네 가지 철학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시나요?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 초점을 두고 행복을 추구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윤리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둘의 사고를 종합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나도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전자는 윤리적 이기주의라고 말할 수 있고, 후자는 공리주의와 의무론적인 입장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묵자-남에게 잘 하면 결국 내가 행복하다

그리고 이 양자를 수용하면서 내가 남에게 베풀고 잘 하는 것이 결국은 나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중국의 묵자가 대표적입니다. 묵자는 남을 사랑하는 이유를 결국은 내가 잘 되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합니다. 그런가하면 내가 남에게 행위하는 것에 어떤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소크라테스-누구나 윤리적 원칙에 따른는 삶을 실천해야 행복하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행복한 삶이란 자신이나 타인 모두가 똑같이 어떤 윤리적 원칙에 입각해서 성실하게 삶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은 적절하게 훈련을 받으면 선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스스로도 이러한 원칙에 따르는 삶을 죽을 때까지 실천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원칙주의자로서 행복관을 실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노자-유약함의 철학과 무위의 삶에서 행복을 찾는다

절대적인 선과 그에 따르는 원칙을 강조한 소크라테스에 반해 노자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여 어떠한 일도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 것을 강조합니다. 노자에게 있어 이러한 자연스러운 삶의 상징은 강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에 있습니다. 노자에 따르면 강한 것은 부러지기 쉽고 따라서 강한 것은 금방 죽어 없어집니다. 굳이 따지자면 노자는 강한 것을 상징하는 남성의 원리보다는 약한 것을 상징하는 여성원리에 입각한 삶과 정치가 오래갈 수 있으며, 이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보았습니다. 자연스러운 삶으로서 조화와 균형을 중요시한 노자는 행복한 삶의 근거지로 소규모 농촌에서의 삶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 초기 기독교회-절대자와의 연관 속에서 의미를 발견함으로서 행복을 추구한다

혼란스러운 세상에 대한 반응은 노자와 같이 무위자연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절대자와의 연관 속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행복을 가꾸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형성될 당시의 초기 기독교인은 언제 세상에 종말이 올지 모르는 긴박감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러한 종말의식이 신약성서의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하고 말할 그 때에, 아기를 밴 여인에게 해산의 진통이 오는 것과 같이,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 16-18)


위 내용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의 결론을 보면, 주의 날이 임박했으니 깨어 정신 차리고 있으라는 교훈과 그 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에게서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은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음으로서 현재 자신의 삶이 의미를 가지며, 그러한 의미가 있기에 현재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감수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와의 연관 속에서 보면 고통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이 있기에 행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행복에 관한 철학은 누구에 가깝습니까? 오늘,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적용되고, 의미를 갖는 행복철학의 원리들을 참고하여 나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가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 서동은 <행복론의 철학적 탐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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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정신이 없는 시대

2008/04/17 17:59
 

[박노자] 정신이 없는 시대


[출처] “씨알의 소리" 기고문: 정신이 없는 시대 

만감: 일기장 2008/04/16 21:42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12875 


밑에다가 제가 방금 써놓은 <씨알의 소리> 200호 기고문을 첨부합니다. 비관적인 글로 보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요즘 특히 "학교 자율화"와 같은 망동들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제게 고통입니다. 저도 고등학교 졸업 반 때에 입시 공부를 하긴 했는데, 길어야 하루에 3-4시간 동안 따로 집에서 자습하는 정도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낮 3-4시에 돌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이 "입시 공부"를 하는 동안에 고대, 중세 아시아 지역의 "아세아적 생산양식"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가들의 글을 읽느라고 정신 없었습니다. 입시 공부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 사학에나 한 눈을 팔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소련의 상황이었는데, 학교에서 하루에 15시간 정도 갇혀 있는 한국 아이들을 보면 "이게 그냥 범죄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중에 무리한 노동으로 과로사나 당할 노동자들을 그렇게 키우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요... 하여간, 이게 제 글입니다


"요즘 필자에게 두려운 일이 하나 생겼다. 인터넷으로 한국 신문을 보기가 두렵다. 내가 3년이나 살았던 정겨운 나의 서울이 어떻게 돌아가나 궁금해 죽을 지경인데도, 신문을 보기가 두렵다. 신문을 볼 때마다, 인간으로서 참아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하도 많이 나오기에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 예컨대 학교에서 “자율화”가 이루어져 이제는 성적순으로 “열등반”과 “우등반”을 편성해도 좋다는 기사를 읽으니 정말이지 거의 심장이 마비되는 듯한 감이었다. “자율화”? 파시스트 독일의 수용소 대문에 “노동은 너희들을 자유로이 한다”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던데, 수용소에서 “자유”를 들먹이는 것이나 학생 사이의 “계급화”가 공식화된 학교에서 “자율”을 들먹이는 것이나 오십보백보인 듯하다. 다음 단계는 어디까지일 것인가? 전교 몇 등인가를 특별한 명찰에다 써놓고 이를 교복에다가 착용케 할 것인가? 아니면 “열등생”들에게 아예 교복을 다르게 입게 할 것인가? 이제는 “우등생”과 “열등생”의 급식과 학습 공간이 차별화되는 학교도 생긴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다음 단계는 더 과감하리라고는 쉽게 상상되어진다. 옛날에는 도스토에브스키가 “아이의 눈물 하나 흘리게 하는 대가로 천당에 가는 일이라면 차라리 천당을 거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이의 눈물 따위는, 친구를 사귈 때에까지도 맨 먼저 성적 순위와 부모의 아파트 평수를 확인하는 것이 요즘 일반화돼 가는 나라에서는 별 것도 아니다. “열등반” 학생들이 하루 종일 울어도 열등감에 사로잡혀 말을 잃는 그들의 부모 말고는 신경 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입시 지옥의 문제는 “눈물”의 문제가 아니고 “피”의 문제다. 한국 10대 후반기 청소년들의 사망 원인으로서는 교통사고 그 다음으로는 두 번째는 자살이다. 학생들을 상대로 한 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47%의 응답자들이 자살 충동을 느꼈고, 13%가 구체적인 자살 방법도 궁리해봤고, 6%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물론 미국만 해도 청소년 중에서의 자살 시도한 이들은 8-10%에 달하긴 하지만, “학업 스트레스”, “성적에 대한 교사와 부모의 꾸지람”이 자살 충동의 주된 원인으로 등장되는 것은 한국의 특징이다. “우등반”과 “열등반”의 세계에 갇혀 있는 아이들에게는 죽음만이 돌파구로 보이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그런데 성적을 비관한 아이의 자살이나, 입시에 “실패”한 아이의 자살은 대한민국에서 “충격적” 뉴스가 되어 지속적인 관심을 끄는 경우가 많은가? “실패자”가 – 비록 아이의 몸이라 해도 – 경쟁에서 치었으면 죽음을 택할 수도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느 사이에 거의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몇 명의 낙오자가 자살하든 미치든 학교의 경쟁력, 나아가서 대한민국 전체의 경쟁력이 강화되기만 하면 뭐가 문제냐는 것은 다수의 사고 방식이다. 자칭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끔찍한 전체주의에 어울릴 법한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의 논리가 잘도 통한다.


지금 우리는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도전을 직면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주기적 위기와 지구 전체의 환경 위기가 서로 맞물려 미증유의 위기 상황을 유발한다. 한편으로는 무리한 도시화와 공업 시설의 농토 잠식, 연료 생산을 위해 곡물 재료의 무모한 남용, 이상 기온으로 빚어지는 흉작 등으로 말미암아 세계적 식량 위기가 도래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부실한 주택 금융 등과 같은 사기적 수법을 기반으로 했던 “금융 자본주의”의 신화가 산산 부서져 세계 자본주의 핵심부에서 금융 경색, 소비 위축, 장기적인 침체 내지 경기 후퇴의 조짐이 나타난다. 식량 자급률이 27%밖에 안되고 수출 의존률이 70% 넘는 한국은 지금 곧 “태풍의 눈”, 즉 위기의 중심에 위치하게 될 확률이 높다. 세계 곡물가격 폭등으로 인한 빈민층 (즉, 인구의 약 20%)의 생존 위협 가시화와 인플레이 압력 강화, 교역 조건 악화로 인한 수출 둔화 추세와 대기업 위주의 경제 구조에서의 신규 고용 창출의 침체, 늘어나기만 하는 청년 실업률…. 생계형 자살과 생계형 범죄의 대폭적 증가, 전체적인 사회적 불안의 확산 등은 이미 뻔히 내다 볼 수 있는 미래다. 위기와 불안의 늪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합리적으로, 상생적으로 사고한다면 마구 미쳐가는 “세계 시장” 대신에 우리 사회가 모두들의 이해 관계를 고려하여 시장 영역에 대한 통제를 대폭 높여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화가 빈민층 확대의 원인인 만큼 기업의 이윤율을 다소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비정규직 고용 사유를 최대한으로 줄이고 불가피한 경우 이외의 외주화를 법적으로 금하고, 부유층의 세금 부담을 대폭 늘리는 동시에 그 돈으로 빈민층을 위한 공공 고용도 늘리고, 군비 동결과 복지 비용으로의 점차적 전환의 쾌거를 이루는 등 “약자 중심의 경제”를 만드는 것은 지금 이 시대의 과제다. 우리가 자신들에게 고백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 극소수를 제외한 절대 다수는 어떤 방식으로든 무한 경쟁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피고용자, 즉 잠재적 약자가 아닌가? 그런데 오늘날 교육 정책으로 봐서는 이명박의 정부는 이 미증유의 위기에 정반대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약자에게는 경찰 국가의 총칼이 닥치고, 강자에게는 “경쟁”의 미명하에 그 영역의 무한 확충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백골단의 부활”과 재벌과 대통령 사이의 “핫라인 개통”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상징적이지 않는가? 이 길로 끝까지 가면 그 종착역은 브라질에서 볼 수 있는 현상, 즉 빈민굴들을 통제하는 마약 밀매 집단들과 경찰들 사이의 정기적이다 싶은 총격전이 벌이지고, 신규 고용이란 계약도 없는 “비공식 부문”에서만 이루어지고 소수의 정규 고용자가 계속 줄어들기만 하는 상황일 것이다. 아이들의 사교육비를 버느라고 부업 삼아 일본의 유흥가로 “갔다 오는” 한국 중산층 하부의 부인들을 보시기 바란다. 이와 같은 “부업”이 정상이 되고, 성매매와 각종의 범죄가 일상의 유기적 일부가 되는 것은 “열등반”과 “우등반” 사회의 미래다. 사실, 그 미래에 접어들어 “사회” 그 자체도 증발될 것이다. 제발 “열등반”으로 전락되지만 않기를 바라면서 끼라면 끼고 까라면 까는, “개성”을 “독특한 명품의 소지”나 “특별한 성형수술의 성공적 실시”쯤으로 아는 “절대 순응형” 인간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돈과 공포일 것이다. 표피적인 “민주”가 남는다 해도, 이 “사회성이 없는 사회”의 내면은 파시스트적일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미래를 원하고 있는 것인가?


함석헌이 옛날에 “평화”의 평 (平)자의 깊은 의미를 설명할 때에 “막힌 기운을 뚫게 하는 것”, “시원한 정신 상태”, “답답함이 없는 정신의 자유”라고 이야기했다. 시원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에서는 평화가 있다. 아침 7시에 등교하고 저녁 10시에 귀가하는 청소년의 기운은 어떤가? 그가 – 아직 군대에 끌려가지도 않았지만 – 이미 “평화” 아닌 “전쟁” 중에 있는 것이고, 그를 이 전쟁으로 내몬 이 정신병적 “사회” 자체도 매일 매일씩 부단한 “자기와의 전쟁”을 치른다. 홉스가 “모두와 모두의 전쟁”이 원시 시대의 상황이라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후기 대한민국의 현실일 뿐이다. 고등 야만이라 할까? 결국 이 전쟁 판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따로 없다. 남는 것은 다수의 스트레스와 불쾌한 하루하루, 상당수의 고질적 우울증, 늘어나기만 하는 끔찍한 범죄, 마음 속에 누적된 분노를 풀어보려고 방화라도 할 수 있는 새로운 “남대문”을 찾으러 다니는 무수한 “원한 (怨恨)의 인간”들이다. “열등반” 출신들도, “우등반” 출신들도 똑같이 이 대한민국 (大恨憫國)에서 서로를 짓밟으려고 고통스럽게 발버둥치다가 고통스러운 노후를 거쳐 고통스러운, 한이 많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이고득락 (離苦得樂)의 미거 (美擧)를 이루자면 똑같이 태어나고 똑같이 함께 살다가 죽는 중생 사이의 우열 (優劣)을 가리는 우 (愚)부터 벗어나는 것은 첫 순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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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철학아카데미 자료실 http://www.acaphilo.org/PDS/?tb=J1 

이정우의 글(공간과 시간/욕망/동양 서양/의미/기억/코드/차이/사건)입니다.

 

1. 공간과 시간 월간 <논>에 실린 대담.


시공간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


김상협 >>> 이번 인터뷰 준비를 위해 친구들에게 시공간에 대해 물어봤는데, 다들 왜 그런 당연한 것을 묻느냐며 오히려 반문하더라고요. 시공간은 그것에 대해 묻는 것 자체가 이상할 정도로 너무나 당연하게 주어진 삶의 조건인 것 같아요. 시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먼저 시공간에 대한 질문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해요.


이정우 <<< 사람이 살다 보면 많은 물음을 던지게 되죠. 하지만 물음마다 성격이 달라요. 시간적으로 짧고 공간적으로 제한된 질문이 있는가 하면, 시간적으로 길고 공간적으로 무한한 질문이 있어요. 예컨대 오늘 다툰 친구와 어떻게 화해할까, 라는 짧은 물음과 올해 있을 대선의 향방에 대한 조금 긴 물음, 그리고 근대사회를 극복하려는 탈근대적 모색에 관한 휠씬 긴 물음 등이 있지요. 이처럼 물음들의 층위는 다양한데, 인식이 넓어질수록 물음의 범위가 커지기 마련이죠. 역사에 대한 물음이 나아가 자연과학적 혹은 철학적 물음으로 발전하기도 하죠. 결국에는 가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물음이라 할 수 있는 존재론적인 물음에 직면하게 되요. 이를테면 ‘있다’와 ‘없다’는 무엇인가, 이 세계는 필연적인가,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까지인가 등이 존재론적인 물음에 해당돼요. 문학·정치·경제 등 어떤 영역에서든지 물음을 계속 던지다 보면 결국에는 존재론적인 물음에 부딪히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것이죠. 당연하지만 당연한 것을 캐물어 우리의 삶이 어떤 기반 위에 서 있는가를 반성해야 해요.


시계, 근대적 시간측정 기계의 탄생


김상협 >>>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볼 때 시간에 대한 개념이 확연히 달라진 것 같아요. 정확한 시간개념이 없었던 이전의 농경사회에서는 낮과 밤이라는 자연적 시간만이 존재했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시계라는 정밀한 기계에 따라 움직이잖아요. 이 시계라는 기계는 언제 만들어지고, 정밀한 시간은 왜 요구됐나요?


이정우 <<< 농경사회에서도 물시계·해시계가 있었지만 오늘날의 시계와 전혀 다르지요. 농경사회에서 시간을 나누는 분절의 기준은 자연이에요. 물론 그때도 왕조교체에 따라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시간이 존재했지요. 13세기에 최초로 만들어진 시계가 우리 사회를 직접적으로 지배하게 된 것은 근대 이후예요. 왜 근대사회에서 시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여러 복잡한 측면을 가지고 있어요. 사회·정치적 측면에서 설명하자면 시계는 노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예전과 판이하게 다른 노동이 이뤄지는데, 노동의 가치나 임금을 책정할 때 시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죠. 베르그송이라는 철학자에 따르면 근대는 시간을 공간화한 문명이지요. 공간으로 바꾸지 않은 시간은 측정할 수가 없어요. 시간이란 본래 우리 마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잖아요. 지루하면 시간이 느리게 가고 재미있으면 빨리 가고. 근대는 이러한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누구나 확인 가능한 객관화된 시간을 요구하게 됐지요. 그래서 시간의 공간화가 이뤄지고, 시계라는 시간을 측정하는 정밀한 기계가 중요한 사회적 도구가 된 것이죠. 정밀한 시간이 요구된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노동량을 측정해야 하는 사회적 필요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김상협 >>> 시계에 익숙한 일상을 살다보니 시계가 없는 자연적 시간에 따른 삶을 상상하기가 힘들어요.


이정우 <<< 이제 인간은 자연에 따른 삶이 아니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삶 속에 살게 됐어요. ‘불야성’이라는 말이 있듯 밤은 예전의 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띠고 있어요. 이처럼 자연이 만든 마디가 아니라 인간은 스스로 만든 사회적 마디에 따라 살게 되면서 근대 이전과 전혀 다른 일상을 살게 됐지요.


시간표로 짜여진 학교라는 공간


김상협 >>> 시공간 주제가 조금 막연한데 구체적으로 학교라는 공간을 짚어 보는 것이 좋을 듯해요. 학교는 저 같은 청소년들에게 가장 일상적인 공간이지요. 하지만 이 공간 또한 시간표라는 꽉 짜인 시간적 규율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물론 다수의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런 시간의 규율을 우리는 지나치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사실 저는 지각을 잘 하거든요. 대부분의 학교에서 지각생들을 불성실한 학생으로 처벌하는데, 우스운 질문이지만 왜 지각하면 안 되는지 의문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요?


이정우 <<< 시계가 생기면서부터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모두 시계를 통해 이뤄지게 됐어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 “달이 나무에 걸릴 때 만나자” 같은 식의 구절들이 종종 나와요. 그때만 해도 시간의 마디가 정확하지 않고 폭이 넓었어요. 그런데 시계가 등장하면서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이 모두 시계에 의해 결정되죠. 시계는 공간화된 위치를 정확히 가리켜요. 그만큼 사회생활의 시간적 간격은 조밀해지기 때문에 신체리듬이 이 근대적 시간체계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현대사회는 무척 피곤한 사회이지요. 우리의 삶 자체가 시계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요. 가령 3시 약속이라고 할 때, 3시는 하나의 점이잖아요. 폭이 없어요. 그래서 학생처럼 정밀한 시간의 마디에 정확하게 부합하지 못한다면 지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김상협 >>> 조선 후기만 보더라도 전형적인 농경사회를 살던 우리 농민들이 일본인이 세운 공장에서 일할 때 공장이라는 근대적 시간체계를 인식하지 못해 불화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정우 <<< 근대적인 시간체계는 서구적 맥락에서 등장했기 때문에 동양의 시간적 관념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서양에는 이런 일화가 있어요. 워털루전투에서 나폴레옹에게 대승한 웰링턴 장군에 대한 일화이지요. 웰링턴 장군은 자신과 약속한 시간에서 5분 늦은 사람을 혼냈는데, 다음번에는 5분 일찍 도착했는 데도 혼냈다고 해요. 이 일화는 웰링턴이 정확한 시간관념을 가진 위인임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죠. 하지만 가치관에 따라서는 그가 매우 냉혹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 정확성을 중시하는 것은 매우 서구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과연 다른 문명에서도 웰링턴 같은 시간관념이 그토록 긍정적이고 찬양의 대상이 되는지는 의문스러워요. 게다가 근대적 시간이라는 것이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착취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 회의적이지요.


김상협 >>> 학생으로서 시간표라는 정해진 규범을 어기기는 어려워요.


이정우 <<< 맞아요. 우리가 이미 시스템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요. 예컨대 버스요금이 부당하게 느껴진다고 나 혼자 적게 내고 버스를 탈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내가 느낀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다른 이들과 함께 토론하고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해요. 홀로 시스템의 문제와 부딪친다는 것은 현명한 방법은 아니에요. 지금 같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구성원이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많은 이들이 동일한 불만을 품는다고 해서 시스템이 변화하지는 않아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지에 대한 상당한 고민과 실천이 요구돼요. 한 번 틀이 짜여진 시스템은 간단히 바뀌지 않아요.


학교라는 근대적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김상협 >>> 선생님 말씀처럼 오늘날과 같은 사회구조를 바꾸기는 간단하지 않은데, 학교라는 공간이 중요한 역할을 해서인 것 같아요. 학교 또한 매우 근대적인 공간이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잘 짜인 시간표라는 규율에 따라 생활하며 근대적 시간체계를 몸 속 깊이 받아들이잖아요. 이런 교육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시간체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의문을 품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정우 <<< 학교 이전에 좀 더 근본적인 요인으로 국가와 자본을 들 수 있겠지요. 학교·군대·병원·공장 등은 국가라는 눈에 보이지는 않는 거대한 시스템의 일개 요소로 존재하며 그 시스템 안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어요. 자본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무엇보다 시간을 중시하지요. 항상 재벌들은 잠을 조금 잔다고 자랑해요. 이러한 시간관리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생산성 향상을 위한 것이에요. 우리 모두는 국가와 자본이라는 거대한 양식 속에 살고 있고, 그 양식 중에 하나가 학교예요. 학교를 통해 우리는 어릴 적부터 규율을 지키는 것이 몸에 배게 되지요. 하지만 학교가 그런 시간적 규율을 배제할 수는 없어요. 시간을 완벽하게 자율화한다면 학교가 성립할 수 없지요. 문제는 시간에 대한 시스템을 일방적으로 만들어 학생에게 부가한다는 데 있어요. 주물을 찍듯 모든 학생들이 그 시스템에 몸을 맞추게 되는 것이 근대적 공간의 한계이지요.


김상협 >>> 근대적 공간이 구성원들을 획일화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이정우 <<< 그렇죠. 이것을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몰적-분자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몰적 관점은 어떤 한 집단을 덩어리로 보죠. 한 가족·한 직장·한 국가…. 이런 식으로 한 집단을 덩어리로 묶으면 당연히 집단의 구성원들은 평균화되고 획일화되지요. 분자적 관점은 마치 하나인 것 같지만, 그 안에 무수한 분자들이 움직이는 것에 주목해요. 한 직장 안에도 각자의 기억과 욕망과 무의식과 상상을 가진 무수히 많은 고유한 인격체들이 존재해요. 몰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고유한 인격체, 즉 분자들이 무시되지요. 사회시스템은 그 속성상 개개인들의 고유함을 솎아 내고요. 그렇다고 그런 시스템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밀고 당기는 것, 다시 말해 개인의 고유함과 사회의 시스템이 서로 밀고 당기는 복잡한 관계가 우리의 삶을 결정하죠. 인생이란 몰적인 덩어리와 한 개인의 고유성이 부딪치고 싸우는 역사라고 할 수 있어요.


사이버공간, 진정한 해방공간인가?


김상협 >>> 최근 인터넷이라는 광범위한 공간이 생겨나면서 많은 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어요. 학교·감옥·병원 같은 근대적 공간이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면, 이 사이버공간은 구체적 틀이나 형식·규정된 성격이 존재하지 않아요. 특히 ucc 같은 기존에 없었던 매체를 통해 현실공간과 다른 독특한 성격의 공간을 창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정우 <<< 오늘날 인터넷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근대 이전까지 공간은 현실공간과 초월공간만이 존재했어요. 플라톤의 이데아 같은 형이상학적이거나 종교적 공간이 초월공간에 해당돼요. 물론 초월공간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안 하느냐는 큰 논란거리이지요. 근대에 와서 새롭게 발견된 공간이 원자·세포·나노와 같은 ‘마이크로공간’이죠. 그리고 네 번째로 등장한 공간이 사이버공간이에요. 사이버공간은 현실적인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사이버공간에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한다는 점에서도 무척 흥미로워요. 이미 우리의 삶 속 깊숙이 사이버공간이 파고 들어왔기에 사이버공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죠.


김상협 >>> 선생님 말씀처럼 사이버공간의 탄생으로 시공간의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어요. 사이버대학교 같은 무형의 교육공간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앞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간단한 병의 진단이나 치료도 가능해진다고 하잖아요. 인터넷을 통한 이러한 시공간의 해체 혹은 새로운 조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정우 <<< 시공간이란 인간의 삶의 조건이고, 시공간의 구조가 달라진다는 것은 삶의 조건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삶의 조건이 달라지면, 그 조건에 적응해 성공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갈라지지요. 예컨대 근대사회가 도래하면서 그것에 적응하는 사람들과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갈라졌고, 새로운 기술이 도래하면 역시 그 기술에 적응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사람들의 삶이 갈려요. 새롭게 도래한 시공간의 조건들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습득되면서 불평등을 최소화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겠지요.


김상협 >>> 사이버공간이 탄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공간이라며 열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지금에 와서는 많은 폐해를 드러내고 있지만 여전히 대안적인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이정우 <<< 인터넷이 만들어진 동기를 살펴 볼 필요가 있어요. 일본에게 자동차산업이 밀리자 미국이 만든 것이 인터넷이지요. 즉 인터넷 또한 자본주의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졌어요. 그리고 인터넷을 구동하는 시스템이 모두 영어로 구성돼 사이버공간은 영어라는 막강한 헤게모니에 의해 지배돼요. 이 헤게모니는 현재 미국이 가진 패권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지요. 인터넷공간은 본질적으로 평등한 공간으로 탄생하지 않았으며, 오늘날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막강한 자본의 힘에 좌우되는 곳이에요. 그래서 인터넷공간이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냐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는 어려워요. 어쨌든 우리는 그것을 좋은 쪽으로 활용해야 해요.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는 “주어진 것을 선용善用하라”라는 문구가 쓰여 있어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문구죠. 어떤 유래로 생겼든 피할 수 없으며, 이미 주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선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해요. 인터넷공간이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해요.


국가와 자본의 바깥, 대안적 시공간


김상협 >>> 근대적 시간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시간은 금이다’가 아닐까 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효율적인 시간 사용을 위해 시간관리 서적을 읽기도 하잖아요. 그런 반면 최근 느림 같은 삶의 태도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어요. 웰빙과 더불어 일시적인 트렌드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새로운 갈망이 근대적 시간에 대한 저항이 아닐까요?


이정우 <<< 삶에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있는 듯해요. 필요하다는 것은 좋든 싫든 해야 하는 것들을 말하고 충분하다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중요하다는 뜻이겠죠. 좋은 삶이란 필요한 부분을 최소화하고 충분한 부분을 최대화하는 삶인 것 같아요. 웰빙이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우아하게 살자는 뜻인데,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바로 그것을 위해 또 다른 필요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하죠. 대표적인 것은 돈이 되겠죠. 결국 악순환을 이루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웰빙이 긍정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아요.


김상협 >>> 근대적 시공간 체계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잇따르고 있어요. 그러나 삶을 구성하고 조직하는 체계로 자리 잡아 마치 우리의 신체의 일부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에 시공간의 변환은 불가능하게 느껴져요. 근대적 시공간 체계 속에서 자율과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정우 <<< 삶의 곳곳에 ‘오아시스’를 만들어야 해요. 지금은 국가와 자본의 ‘바깥’이 존재하지 않아요. 모든 것이 국가와 자본에 완벽하게 포섭된 상태이죠. 그러나 사고를 ‘외연extension’에 두기보다 ‘내포intension’에 둔다면 바깥이 존재하게 되지요. 외연적인 의미에서의 바깥은 이제 존재하지 않지만, 외연적으로 안인 곳에 내용상 바깥인 공간, 말하자면 오아시스들이 존재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장소들이 서로 ‘네트’를 이룬다면, 삶은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2. 욕망


여기저기에서 갖가지 욕망들이 넘실거린다.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뚜렷한 요소들 중 하나는 욕망이다.

물론 욕망이란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이기에 이 시대의 발명품은 아니다. 그러나 욕망이 표현되는 구체적 양태들은 각 시대마다 달리 나타난다. 인간은 “~하고 싶다”,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등의 양상들=‘modalities’(현실, 가능, 필연)와 더불어 살아간다. 그리고 각 양상들이 처하게 되는 시공간적 맥락들과 세 양상이 서로 간에 맺는 관계들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19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사회’가 도래하면서 “~해야 한다”의 위상은 많이 약화되었다. 대신 “~하고 싶다”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강화되었다. 욕망의 위상이 달라진 것이다. 경제적 불황기를 맞아 더욱더 기형화되어 가는 우리 시대 욕망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인간이란 자신의 내부가 의지(意志)하는 욕망에 따라 살아간다. 그러나 욕망은 과연 누군가의 마음속에, 내부에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은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자신이 욕망한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것들이 사실은 타인들이 욕망하는 것을 내면화한(자기의 내부로 받아들인) 결과들일 뿐이다.

사람들이 옷을 살 때 신경 쓰는 것은 그 옷이 내게 편할까 하는 것보다는 남이 이 옷을 입은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것이다. 기를 쓰고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얻으려는 것도 실제 그렇게 해서 얻는 이익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렇게 함으로써 타인의 인정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할 때조차도 사람들은 타인들이 바라보는 자기 배우자의 모습을 통해서 그 결혼의 의미를 가늠하게 된다. 인간은 철저히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이다.


타인의 욕망을 가늠하는 잣대, 즉 자신이 욕망하는 타인의 욕망을 간파해내는 잣대는 타인의 눈길이다. 우리는 타인의 눈길을 통해서 자신을 판단한다. 그리고 타인의 눈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한 인간의 눈길 속에는 그 눈길이 향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인식, 판단, 감정, 요구, ... 등이 모두 깃들어 있다. 그래서 타인의 눈길은 자신의 거울과도 같다. 사람들은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외모를 판단하듯이, 타인의 눈길을 보고서 자기 자신의 존재를 판단한다. 자기가 바라보는 타인의 눈길에 비친 자기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자기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타인의 눈길이란 반드시 물리적 눈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현존(現存)하지 않을 때에도, 즉 어떤 사람을 마주 대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타인의 눈길을 마주 대하게 된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사회의 ‘대접’은 곧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평균적 눈길이다. 학교에서 받는 성적표, 회사에서 받는 ‘대우’, ... 등등 자신에게 돌아오는 사회적 대접/대우는 곧 보이지 않는 타인들의 눈길이 모두 모여 자신을 쳐다보는 커다란 눈이다. 그 거대한 눈은 타인들의 눈을 의식하기 시작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는 보이지 않는 눈이다. 우리는 그 거대한 눈을 ‘사회’라고 부른다.


이 보이지 않는 눈, 거대한 눈길은 어떤 이름에 응축된다. 이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적인 명사이지만, 동물, 가구, ... 같은 일반적인 명사가 아니라 사회에서의 일정한 자리를 함축하는 이름이다. 회사에서 계장, 과장, 부장, ... 같은 이름들은 타인들의 다른 눈길, 사회의 다른 대우를 함축하는 이름들이다. 사람들은 타인들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에 결국 어떤 이름을 욕망하게 된다. 예컨대 의사, 변호사, 사장, ... 같은 이름들은 많은 사람들이 욕망하는 이름들이다. 타인들은 이 이름들을 욕망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들이 욕망하는 이 이름들을 욕망하게 된다. 어디에 가나, 인생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이 이름들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조선 시대에 사람들은 태어날 때 이미 이런 이름들을 가졌다. ‘李’, ‘金’, ‘朴’, ...등 이름(즉 성)은 이미 한 인간을 사회의 어떤 자리로 분류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새로운 이름들이 생겨났다. “~대학(출신)”, “~회사”, ... 등등. 이 수많은 이름-자리들은 사람들의 눈길이 거기에서 응축되는, 즉 타인들의 욕망이 응축되는 곳이고, 그래서 타인들의 욕망을 욕망하는 사람들이 욕망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름-자리들은 일정한 체계를 구성한다. 소위, 중위, 대위, ... 같은 이름-자리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일정한 유기적 체계를 구성한다. 체계를 구성하기에 눈길들로 기능한다. 체계를 구성하기 때문에 각각이 상대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것을 그것 자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것들과의 관계, 즉 하나의 체계 속에서 차지하는 그것의 자리를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체계는 단순한 논리적 구조가 아니라 욕망과 권력의 놀이를 함축하는 체계이기에 차라리 체제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타인들의 눈길은 일정한 체제를 형성한다. 즉 이름-자리들의 체제를.


무엇이 이런 이름-자리들의 체제를 만드는 것일까? 이런 이름-자리들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왜 우리는 태어나 죽는 날까지 이런 이름-자리들의 체제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일까? 매우 어려운 물음이지만, 적어도 오늘날에 있어 이런 이름-자리들의 체제를 만들어내고 관리하는 가장 핵심적인 두 권력은 국가장치와 자본주의이다. 국가장치와 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 안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이름-자리들의 체제를 벗어날 수 없다.

20세기 중엽 맑시즘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려 노력했던 철학자 루이 알튀세는 학교, 군대, 공장, 병원, 회사, 종교단체, ... 같은 장치들을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이라 불렀다. 그는 한 사람의 개인이 이 국가장치들 즉 대타자들(커다란 타자들) ― 자신과 구분되는 다른 것들은 타자들이다. 그런 타자들 중 국가장치들은 커다란 타자들이다 ― 에서 어떻게 소주체들(작은 주체들)로 길러지는가를 규명했다. 학교, 군대, ... 같은 대타자들이 우리를 호명할 때(부를 때) ― “조국이 너를 부른다!” ― 우리는 그 대타자들이 길러내는 소주체가 된다.


국가장치와 더불어 쌍을 이루면서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자본주의이다. 근대적 국가장치와 쌍둥이로 태어난 자본주의 체제는 오늘날 국가(‘국민국가’)와 복잡미묘한 관계를 맺으면서,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한 덩어리를 이루면서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지배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얼핏 우리의 욕망을 긍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는 고대 사회, 봉건 사회 등, 기존의 사회들과는 달리 결코 욕망을 부정하거나 누르려 하지 않는다. 대중의 욕망을 긍정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거의 공기나 물과도 같다 해야 할 현대 문화를 창조해냈다.

근대적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대중문화의 발달은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두 날개이다. 자본주의는 컴퓨터, 핸드폰, ... 같은 테크놀로지들과 스포츠, 연예, ... 같은 대중문화들을 양 날개로 세계를 제패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욕망을 부추기고 조작해낼 뿐 긍정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오로지 돈이 되는 욕망(대중의 욕망)만을 긍정한다. 자본주의는 대중의 욕망을 쥐어짜듯이 우려내 돈을 포획해 간다. 불가사리 같은 자본주의의 욕망은 대중의 욕망을 식민화해 우려 짜낸다. 천박한 욕망의 파도가 우리의 삶을 뒤덮고 있다.

전통 문화에서 천박한 욕망에의 저항은 대부분 욕망의 제어(유교)나 제거(불교)를 통해서 추구되었다. 우리말 ‘욕망’이 애초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띠면서 사용되는 것은 이런 문화적 전통의 영향에 기인한다 하겠다.

그러나 욕망을 제어하라는 고전적인 가르침만으로 현대 사회의 모순들에 대응할 수 있을까? 차라리 우리에게는 자본주의와 국가의 욕망에 저항하는 다른 욕망, 저항하는 욕망, 건강한 욕망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지배하려는 욕망과 천박한 욕망에 저항하는 위대한 욕망을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

전자의 길을 우리는 ‘소요의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후자의 길을 ‘투쟁의 길’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이 두 길 사이에서 사유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장영란 외, 『성과 사랑 그리고 욕망에 관한 철학적 성찰』, 서광사, 1999


플라톤으로부터 들뢰즈/가타리에 이르기까지 주요 철학자들이 생각한 성, 사랑, 욕망을 정리해 놓았다. 욕망 이론의 역사를 개괄하는 데 적격이다.


어빈, 『욕망의 발견』, 윤희기 옮김, 까치


욕망에 관련된 여러 논의들을 담고 있으며, ‘욕망을 다스리는 법’을 논하고 있다.


라캉, 『라캉의 욕망 이론』, 민승기 외 옮김, 문예출판사

박찬부, 『기호, 주체, 욕망』, 창비


라캉의 욕망 이론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론을 이어받아 인간 주체성의 심층을 파헤치고 있다. 현대의 욕망 이론은 라캉으로부터 시작된다. 『기호, 주체, 욕망』은 라캉 이론에 관한 해설서이다.


들뢰즈와 가타리, 『안티오이디푸스』, 최명관 옮김, 민음사

가타리, 『욕망과 혁명』, 윤수종 옮김, 문화과학사


『안티오이디푸스』를 프로이트의 욕망 이론을 비판하면서 창조로서의 욕망 개념을 제시한 독창적인 저작이다. 『욕망과 혁명』은 들뢰즈와 함께 『안티오이디푸스』를 썼던 가타리가 욕망과 혁명을 논한 저작. 『분자혁명』(윤수종 옮김, 푸른숲)을 또 다른 판본이다.


 

3. 동양/서양


우리는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흔히 ‘동양’이니 ‘서양’이니 하는 말을 사용한다. ‘양(洋)’이라는 말은 바다, 그것도 매우 큰 바다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동양’과 ‘서양’은 어떤 바다를 뜻하는 것일까? 이 ‘양’이라는 말은 차라리 “바다 건너”를 뜻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동양’과 ‘서양’은 정확히 어느 바다를 건넜을 때 만날 수 있는 곳일까? 수수께끼 같은 말이다.


우리가 ‘동양’과 ‘서양’을 이야기할 때, 이 ‘양’이라는 말에는 일정한 역사적 경험이 묻어 있는 듯하다. 즉 강화도 앞바다에 떠 있던, 멀리 서쪽에서 온 배들에 대한 경험 말이다. 일본인들에게 ‘흑선(黑船)’은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던가. 그 배들은 바다 건너 동쪽으로 왔겠기에 분명 ‘서쪽 바다’의 배들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동양’과 ‘서양’이라는 말에는 19세기 말에 동북아 사회가 겪었던 어떤 특수한 경험이 배어 있다.


이것은 ‘오리엔트(orient)’라는 말에는 바다의 뉘앙스가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이 말은 단지 로마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해 뜨는 곳”을 뜻했을 뿐이다. 이 “해 뜨는 곳”이 처음에는 다름 아닌 그리스 근방을 가리켰다. 그리스(헬라스) 지역이 최초의 ‘오리엔트’였던 것이다. 로마인들의 지리적 지식이 확대될 때마다 이 말의 외연과 내포도 계속 바뀌어 갔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동양’과 ‘서양’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서양’이라고 이야기할 때 우리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사실상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몇 개의 국민국가들일 뿐이다. ‘서양’이라고 말하면서 헝가리나 루마니아를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동유럽은 분명 유럽이지만, 과연 우리가 ‘서양’을 말하면서 동유럽을 포함하고 있는 것일까.


그 뿐만이 아니다. 아프리카는 ‘동양’인가 ‘서양’인가. 서쪽의 유럽 아래에 있으니 ‘서양’일까. 하지만 아프리카를 ‘서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 남아메리카는 어떤가. 북쪽의 미국과 캐나다는 분명 ‘서양’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남아메리카 대륙이 과연 ‘서양’으로 인식되고 있는가.


유라시아 대륙에만 이야기를 국한시켜도 마찬가지이다. 중동, 중앙아시아, 인도, 동북아, 동남아, 혹은 러시아 ― 이런 명칭들도 따져 봐야 하지만 일단 관례대로 쓰자 ― 이 모두를 합쳐 ‘아시아’라고, ‘동양’이라고 부르는 근거가 도대체 무엇일까. 중동 사람들과 우리의 어디가 비슷한가. 또 인도어(여러 가지이지만)는 서구어와 가깝지 한자와는 전혀 가깝지 않다. 나아가 러시아는 서양일까 아니면 동양일까. 중앙아시아를 휩쓸며 지나갔던 그 수많은 인종들이 모두 ‘아시아인’일까.


생각해 보면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은 모호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이분법에 기초해 여러 주장들을 펴곤 한다. “동양은 정신적, 서양은 물질적”이라든가, “서양 철학은 정신-물질 이원론이지만 동양 철학은 일원론”이라든가, “동양은 직관, 서양은 분석”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사실상 부분적인 지식들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런 이분법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뿌리를 내리고 무수한 가지들을 뻗고 있다.


이런 단순화된 생각들이 범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모호하기 짝이 없는 ‘동과 서’라는 이분법이 왜 사람들의 뇌리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들이란 늘 타인들을 바라보는 눈길=시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눈길 없이는 사물들을 바라볼 수 없다. 인간이란 자신의 눈길로 타인들을 구성해서 바라보는 존재이다.


이때의 눈길이란 신체의 눈길이 아니라 개념의 눈길을 말한다. 고유명사, 이름-자리(예컨대 ‘과장’이라는 이름과 그 자리), 범주(예컨대 ‘군인’, ‘사업가’, ...등), 규정들(예컨대 “의사들은 ...하다”), ... 등의 추상적 틀을 타자에게 투영해서 그 타자를 ‘구성’해서 보는 존재가 인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이런 비물질적 틀이 전제되지 않는 순수한 눈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면 언제나 이런 개념적-가치론적 틀이 전제되는 것이다.

이렇게 일정한 개념적 틀을 가지고서 타자를 구성해서 바라보는 것을 우리는 사물을 “표상(表象)한다”고 할 수 있다.(철학자들에 따라서는 ‘표상’이라는 말을 다소 다르게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표상된 대상이란 일정한 개념 틀로 구성된 타자로서, 타자에 대한 (추상적 수준에서의) ‘이미지’를 구성한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에는 이렇게 사람들의 눈길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들이 각인되어 있다.


‘동양’이란 ‘서양’의, 더 정확히 말해 ‘동양’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 ‘동양’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꼭 ‘서양’인 것만은 아니다. ‘동양’이라는 어떤 것이 있다고 표상하는 사람들은 모두 ‘동양’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 표상이다. 즉 ‘동양’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서 어떤 지역, 사람들, 문화를 표상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거기에는 ‘동양’에 대한 표상, ‘동양’의 이미지가 존재한다. 이것은 ‘서양’도 마찬가지이다. ‘동양’이 표상되면 그것에 맞세워져서 ‘서양’도 표상된다. (‘동양’과 ‘서양’ 같은 식의) 대립적 규정은 언제나 맞물려 성립하는 것이다.


‘동양’을 표상하는, 즉 ‘동양’이라는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그 표상의 주체가 누구이건,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서양’이라는 것을 표상하는, 즉 ‘서양’이라는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그 표상의 주체가 누구이건, ‘옥시덴탈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은 그런 표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뇌리를 깊숙이 지배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들은 옥시덴탈리즘의 한 요소로서 전통보다 발전을 중시하는, 즉 미래 지향적인 태도를 든다. 그러나 ‘서양’의 한 전형인(말했듯이 ‘동양’, ‘서양’은 극히 모호한 개념이지만) 프랑스의 리용을 가보면 전통에의 애착과 보존은 정말이지 감탄이 나올 정도이다. 그에 비해 ‘동양’의 한 전형인 한국의 서울, 또는 다른 도시들은 어떤가? 거기에 도대체 무슨 ‘동양의 신비’, ‘정신문화’가 있는가? 천민자본주의의 물결만이 휩쓸고 다니지 않는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오리엔탈리즘의 이미지, 옥시덴탈리즘의 이미지는 인식주체가 제멋대로 만들어낸 허구적 이미지일 뿐이다.


사실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은 일정하게 고정된 표상/이미지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끝없이 변해 가는 표상/이미지이다. 마르코 폴로 시대의 중국의 이미지와 아편 전쟁 이후의 이미지, 최근의 이미지, ... 등은 매우 다르다. ‘서양’에 대한 이미지 또한 시대에 따라 현격하게 달라진다.


보다 좁은 맥락에서의 오리엔탈리즘, 즉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오리엔탈리즘은 특히 19세기에 형성되어 20세기를 거쳐 변형되어 온 오리엔탈리즘이다. 이 오리엔탈리즘은 곧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구 국민국가들이 다른 지역들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지식들, 언어들, 기록들, 보고서들, 사진들, 기획들, ... 등 요컨대 표상/이미지의 총체가 오리엔탈리즘이다. 즉 좁은 의미에서의 오리엔탈리즘은 19세기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지배 전략의 한 요소인 것이다. 이 점에서 오리엔탈리즘은 근본에서부터 해체되어야 할 제국주의의 유산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런 해체가 또 다른 ‘우리’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역사의 지루하고 불행한 반복일 것이다. 오리엔탈리즘 못지않게 옥시덴탈리즘도 허구이기 때문이다. 모든 거대한 표상/이미지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인식주체들 즉 ‘우리’들을 전제한다. 그리고 모든 ‘우리’들에는 암암리에 타자들을 바라보는 일방적인 시선들이 함축된다. ‘우리’가 가지는(그 ‘우리’가 어떤 ‘우리’이든) 허구적인 눈길들을 끝없이 해체시켜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박홍규 옮김, 교보문고


사이드의 이 저작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을 널리 퍼뜨린 저작이다. 푸코의 지식고고학을 기반으로 삼아 서구가 어떻게 ‘동양(orient)’이라는 이미지를 표상해 왔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박노자, 『하얀 가면의 제국』, 한겨레신문사


서구 중심주의와 그것을 내면화한 한국인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옥순,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푸른역사


인도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다루고 있다.


강상중,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이경덕 옮김, 이산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학자의 시선으로 본 오리엔탈리즘의 문제점들이 다루어져 있다.



 

4. 의미


“아빠, 저거 뭐야?”라고 아이가 물으면 아빠는 “응, 저건 고양이야” 하고 대답해 준다. 세 살짜리 딸이 앙증맞은 손으로 사물들을 가리키면서 물으면, 아빠는 그 사물을 가리키는 기호를 딸에게 말해 준다.

그러나 아빠가 딸이 원하는 대답을 한 것이 아니다. 딸은 자기 눈에 나타난 신기한 어떤 사물에 대해, 그 사물이 자신에게 던지는 원초적 의미를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호기심 찬 물음에 아빠는 단 하나의 기호로 맥 빠진 답을 준다. 그래서 아이에게 사물들은 어떤 기호로 대체될 수 있는 무엇으로서 나타난다.


때로 아이는 그림책이나 tv의 영상으로 표현된 사물들을 보고서 묻는다. 그러면 어른은 그 사물들을 가리키는 기호를 말해 주곤 한다. 그림이나 영상은 본래 사물을 가리키는 기호들이다. 아이는 기호에 대해 묻고 어른은 다시 그 기호의 기호를 말해 준다.


우리는 의미라는 것을 이렇게 배운다. 사물들은 기호들로 표기되고 기호들은 사물들을 지시(指示)한다. 아이들은 그 지시 관계를 배움으로써 사물들과 기호들을 연결시키는 방법을, 사물들을 기호들로 대치시키는 방법을 배운다. 사물과 기호, 기호와 기호는 거울 놀이를 통해서 관계를 부여받는다. 기호라는 거울은 사물을 비추어 그것을 대체하는 하나의 상을 만들어내고, 또 기호가 기호를 비추어 다시 상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계속되는 거울 놀이를 통해서 지시의 복잡한 관계망이 형성된다.


이 관계망 속에서 기호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의미하게 된다. 즉 기호(sign)는 ‘의미작용=기호작용(signification)’을 하게 된다. 기호작용이 없다면 아빠의 입에서 나온 ‘고양이’라는 소리는 그냥 물리적 음파에 불과할 것이다. 기호작용이 없다면 선생이 칠판에 쓴 ‘금강산’이라는 형태는 녹색의 나무판에 묻은 백묵가루일 뿐일 것이다. 기호작용이라는 것이 있기에 아빠 입에서 나오는 소리, 선생이 칠판에 묻힌 백묵가루는 무엇인가를 ‘의미하게’ 된다.


우리는 의미라는 것을 이렇게 배운다. 이토록 빈약하고 맥 빠진 방식으로. 무미건조한 거울 놀이를 통해서. 그래서 우리는 사물들을 기호들로 대체하는 법을 배우고, 사물들과의 직접 만남보다는 기호들의 조작을 더 선호하게 되며, 기호계(記號系) 속에, 기호들의 체계 속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아예 문화를 살아가는 존재로서, ‘인간’으로서 존립할 수조차 없다. 일정한 기호계 바깥으로 버려진 존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폴리스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로 정의했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가 우리에게 부과하는 이런 기호체계 속에서 살아간다. 어머니의 품을 떠나 사회 속에 들어가고 하나의 인간, 하나의 주체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곧 기호의 세계로 들어온다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기호체계는 마치 자연법칙처럼 애초에 주어진 그 무엇으로서 다가온다. 고양이가 ‘개’로 불리고 개가 ‘고양이’로 불리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기호의 체계는 자의적이다. 지금 ‘고양이’로 불리는 것이 ‘개’로 불리고 ‘개’로 불리는 것이 ‘고양이’로 불려서는 안 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개-고양이이든 고양이-개이든 둘이 구분되는 한에서 기호체계는 작동한다. 현대 사상의 용어로 다시 말한다면 두 항이 ‘변별(辨別)’되면 되는 것이다. 기호들의 체계란 이렇게 자의적인 체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호들의 체계가 자의적이라는 것이 기호들이 세계 없이도, 사물들 없이도 존재하는 자족적인, 자폐적인 체계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기호 하나하나는 자의적일지라도 기호 전체는 사물들 없이는 의미를 상실하는, 세계를 전제해서만 존립하는 전체이다.


기존의 기호체계의 자의성과 빈약함에 처음으로 눈뜰 때가 우리가 ‘의미’라는 것을 새롭게 생각하게 될 때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던 기호체계의 한계에 부딪쳐서 ‘의미’라는 존재에 처음으로 맞닥뜨릴 때, 의미에 눈뜨고 새로운 눈으로 그것과 마주 서게 되었을 때, 의미라는 이 기이한 존재, 모든 문화적 활동, 인간적 활동의 밑바탕에서 작동하고 있는 이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인간은 자신을 존립시켜 주던 문화 전체, 사회 전체에 근본적인 새로운 시선을 던지게 된다. 바로 이 순간이 그가 ‘사유’를 시작하게 되는 순간이다. 사유는 단순한 배움이나 정보획득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문화적 향유의 밑바탕에서 작동하고 있는 의미라는 존재를 의식하게 될 때 탄생한다.


따라서 사유는 반드시 고급한 사상가들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는 똑같은 하나의 사물이 두 개의 기호로 지시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혼란을 느낀다. 의미라는 존재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기호들의 작동 방식, 의미가 산출되는 과정, 사물과 기호의 관계, 기호체계의 자의성, ... 등에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유하게 되는 것이다.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 문화의 근거인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이 곧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과학과 예술은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고 또 새롭게 창조해내는 대표적인 활동들이다. 과학은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서 새로운 경험들을 계속 산출해낸다. 파스칼의 등산 경험은 ‘대기압’ 개념을 낳았고, 흑체(黑體)에 대한 새로운 경험은 양자역학을 낳았다. 과학자들은 평소에는 과학사적으로 이미 형성되어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기호체계를 가지고서 사유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만났을 때 기존의 기호체계를 변경시킬 필요를 느끼게 된다. 새로운 경험은 더 이상 기존의 그물=기호체계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예술가들의 노력 또한 기존의 기호체계를 벗어던지고 사물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표상하는 각종의 성과들을 산출해 왔다. 재현의 회화에서 화가들은 사물들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 노력했으나, 현대의 화가들은 사물들이 내포하는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들을 포착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 다채로운 새로운 회화들을 창조해내기에 이른다. 회화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기호체계라 할 때, 사물들과 기호체계가 맺는 관계는 현대 회화를 통해서 크게 변한 것이다.


그러나 의미의 문제가 가장 첨예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윤리 또는 정치에 관련된 사건들에 있어서이다. 사건들은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건들은 그 높이의 상대성에 따라 사건으로 솟아오르기도 하고 또 그 솟아오른 사건의 배경으로 가라앉기도 한다. 이 높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사건들로 온전히 채워져 있다고 볼 수 있고, 생성(生成)에 마디들이 존재하는 그만큼 사건들이 출렁거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 중 각별히 윤리적 또는 정치적 맥락을 띠고 있는 사건들이 특히 우리의 ‘현실’을 채우고 있다. 이 사건들은 의미, 감성, 가치, 이데올로기, 갈등, 해석 등등 무수한 측면들을 압축하고 있는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도 고립적으로는 의미를 띠지 않는다. 사건들은 항상 일정하게 계열화됨으로써만 의미를 띠게 된다. 이런 계열화는 하나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건의 계열화를 둘러싸고서, 즉 의미를 둘러싸고서 갖가지 형태의 욕망과 권력의 놀이가, 해석들 간의 갈등이, 사상적 투쟁들이 벌어지게 된다.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이 의미를 둘러싼 논의들을 학문적 수준에서 담당하기 위한 과학이다.(과학은 메커니즘을 탐구하지만, 인문학은 의미를 탐구한다)


사건의 계열화는 적지 않은 경우 자의적으로 이루어지며, 이런 자의적 구성은 여러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때로 이런 자의적 구성이 항구적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 잡기도 한다. 사건의 계열화는 실재(reality)에 의거해 이루어져야 하며, 이런 구성은 진실을 추구한다. 진실이란 진리와 달리 어떤 알기 힘든 차원을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라 알 수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또 사람들이 보려고 하지 않는 실재/현실과 관련해 의미를 구성해내는 행위이다.

사건들을 계열화해 의미를 읽어내는 다양한 방식들을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그 한계를 끝없이 초극해 가는 것이 철학의 과제이다. 철학은 직접적 의미 해독보다는 의미를 해독하는 방식들 자체를 메타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실재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을 닦는다.


들뢰즈, 『의미의 논리』, 이정우 옮김, 한길사


의미의 문제를 다룬 들뢰즈의 대표적인 저작. 구조주의를 수용하면서도 의미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유를 전개한 독창적인 저작이다.


이정우, 『사건의 철학』, 철학아카데미


사건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건으로부터 의미가 생성하는가, 삶과 죽음 운명은 사건론적으로 어떤 의미를 띠는가 등의 문제를 후기구조주의 사유를 근간으로 펼치고 있다.


이즈쓰 도시히코, 『의미의 깊이』, 이종철 옮김, 민음사


불교를 비롯한 동북아 사상 전통에 근간한 의미론서. 데리다에서의 ‘에크리튀르’의 개념, 이슬람 사상에서의 의미론도 함께 다루어져 있다. 다양한 철학 전통들을 의미론적 각도에서 해명해 주고 있다.


 

 5. 기억  


모든 사물들은 각각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지렁이는 땅속을 들어갈 수 있지만 하늘을 날 수는 없다. 물고기는 바다 속을 자유롭게 헤엄치지만 뭍에 올라오면 맥을 추지 못한다. 사물들, 특히 동물들 각각에게는 나름의 독특한 능력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는 존재도 일정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인간의 능력은 놀라운 구석이 있어서 일정하게 닫혀 있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들로 계속 열려 간다는 데에 특징이 있다 하겠다. 기계들을 발명하는 능력을 비롯해 사물들을 인식하는 능력, 윤리적-미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 ...등 다양한 능력들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특징짓는다.


인간의 이런 능력들은 대개 인간이라는 존재가 ‘정신’이라는 것을, 또는 영혼, 마음, 의식, ...등 무엇으로 부르든 정신에 상당하는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하다. 인간의 이런 정신적 능력들을 철학에서는 ‘인성(人性)’이라고 부른다. 불교나 성리학(性理學)이 인성론을 집요하게 파헤친 담론들이며, 서구 근대 철학(영국 경험론, 독일 관념론 등) 역시 ‘인성’을 집요하게 다룬 바 있다.


오늘날 인성을 논할 때 사용하는 개념들은 예부터 내려온 개념들도 있으나 대개 서구 근대 철학에서 유래하는 개념들을 불교 및 성리학의 용어들을 활용해 번역한 개념들이다. 감각, 지각, 상상, 기억, 감정, 판단, 오성, 이성, ...등이 대표적인 개념들이다.


이런 개념들에 관한 논의들이 ‘인성론(人性論)’을 구성하거니와, 이렇게 인성을 논할 때 결코 뺄 수 없는 핵심 개념들 중 하나가 기억이다. 기억이라는 개념은 인간이라는 존재, 나아가 생명이라는 존재를 해명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이며, 따라서 철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개념이다.


기억이라는 존재는 시간과 밀접한 연관을 띤다. 시간은 늘 생성과 소멸을 가져온다. 우주는 시간에 따라 끝없이 변해간다. 현대의 생성존재론과 자연과학이 가르쳐 주었듯이, 견고해 보이는 사물들의 내부에서도 무수한 입자들의 복잡한 생성들이 일어나고 있다. 또 생명체들은 태어나서 성장하다가 늙어 감을 겪고 죽는다. 이 우주에서는 단 한 순간도 모든 것이 정지해 있는 경우란 상상할 수 없다. 우주를 지배하는 절대 진리는, 적어도 진리들 중 하나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기억은 시간의 작용을 전혀 다른 무엇으로 바꾸어버린다. 기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주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지 않을까?

시간이 끝없는 생성과 소멸만을 가져온다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면, 우주에는 그 무엇도 지속되는 것, 반복되는 것이라곤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찰나의 생성만이 존재하는 세계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에는 기억의 작용이 존재하기에 지속과 반복이 존재한다.


기억의 작용은 생명을 낳았다. 생명을 통해 갖가지의 존재들(각종 개체들, 색깔, 모양, ... 같은 성질들, 무수한 사건들, ...)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이 우주에서 지속되거나 반복된다. 이런 지속과 반복이 아니라면 세계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채송화가 채송화를 낳고, 철수가 자신을 쏙 빼닮은 자식을 낳지 않는다면, 세계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사랑, 미움, 배반, 만남, 싸움, 질시, 태어남과 죽음, ...등의 사건들이 반복되지 않는다면, 세계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기억은 정신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전혀 다른 차원을 획득하게 되는데, 그것은 단지 기억의 ‘용량’이 커진다거나, 정보를 저장하고 활용할 수 있다거나(예컨대 우리는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에 저장해 놓았다가 꺼내 쓰곤 한다), 기억 내용들을 편집까지 할 수 있다거나(예컨대 우리는 마음속의 기억 내용들에 ‘상상’을 가한다) 하는 것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기억을 활용함으로써 각종의 창작 행위를 하는 것(예컨대 기억이 동원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조차도 아니다.


정신 수준에서의 기억이 가져온 심대한 결과는 한 인간의 주체성, 정체성, 내면을 가능케 한 것이며, 사실상 이런 차원들이 전제되어야 방금 열거한 기능들도 가능하다 해야 할 것이다.


기억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가능케 한다. 한 인간이 겪은 사건들은 기억의 형태로 쌓이며, 그렇게 쌓인 독특한 사건-계열들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한 인간의 고유한 내면을 형성한다. 한 인간의 동일성과 정체성은 다르다. 동일성은 형식적 구조이며 죽어버린 논리적 같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체성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 시간 속에서 변해가면서도 시간이 가져오는 차이들을 보듬으면서 ‘자기’라는 것을 만들어갈 때 성립한다. 정체성은 시간의 와류(渦流)에 떠밀려가면서도 기억과 반복을 통해 자기를 만들어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서 성립한다.


기억이 인간에게 이토록 소중한 것임에도 현대 철학자들(예컨대 푸코, 들뢰즈 등)은 기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반(反)기억(counter-memory)’을 이야기한다. 왜일까? 보다 쉽게 접근하기 위해 오토모 가츠히로가 총감독한 애니메이션 「메모리스」(1997)를 생각해 보자. 3부로 구성된 이 애니메이션은 제목 그대로 기억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각각 과거의 기억, 현재의 기억, 미래의 기억을 다룬다.


과거의 기억을 다룬 첫 번째 편은 우주를 항해하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어떤 게인 날」(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나오는 아리아)을 듣고서 그곳을 찾아가는 우주항해사들이 겪는 환상적인 일을 그리고 있다. 두 번째 편은 어떤 임무를 부여받은 한 평범한 회사원이 중간에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에도 불구하고 덮어놓고 끝까지 임무를 완성하는 과정을 코믹 터치로 그리고 있다. 세 번째 편은 한 마을이 전쟁이 일어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항시적인 ‘전시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광경을 그리고 있다.


첫 번째 편은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해서 그 그림자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한 오페라 가수의 집념을 담고 있는 마그네틱 기억장치를 그린 것으로서, 과거의 기억을 잊지 못해 그것이 집념과 강박관념으로 화했을 때 나타나는 광기어린 환상들을 그린 것이다. 두 번째 편은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어떤 상황이 주어지든 곧이곧대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한 사람의 코믹한 모습을 통해서 상황들이 가져오는 차이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뇌에 각인되어 있는 어떤 기억만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희비극적인 가를 그리고 있다. 세 번째 편은 ‘미래의 기억’이라는 독창적인 생각을 담고 있으며,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으로서의 기억이 사람들을 온통 그 예상=기억에 휩싸여 살아가도록 만들고 있는 광경을 그리고 있다.(여기에서 그런 예상=기억을 사람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거대한 권력이다)


현대의 어떤 철학자들이 기억을 비판하는 것은 기억이라는 것이 늘 강박관념과 동일성의 지배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 차이의 도래, 상황의 변화 등을 수용하면서 살아가기보다 과거의 또는 현재, 미래의 기억에 사로잡혀 살아갈 때, 그런 삶이 가져오는 강박관념과 집착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동일성을 비판하고 차이의 철학을 전개한 인물들이 제시하는 기억 비판인 것이다.


그러나 기억의 동일성에 대한 집착 못지않게 기억의 가벼운 망각 역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기억에는 개인의 기억만이 아니라 집단의 기억도 존재하며, 집단의 기억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기록된다. 역사에는 늘 부조리한 기억들, 비극적인 기억들, 피에 맺힌 기억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기억들을 망각한다면, 역사 속에서 부조리한, 비극적인, 참혹한 사건들은 다시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한국의 역사는 그런 기억들로 가득 차 있다. 현대만 이야기한다 해도 일제 시대의 정신대나 마루타에서부터 친일 인사들의 행적들, 남북의 비극적인 대립, 자유당 정권 시절의 비극들, 군사 정권들에서 벌어진 그 숱한 조리, 고문, 학살,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어두운, 피에 맺힌 사건들이 한국사의 기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사의 비극들을 청산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다시 겹겹이 쌓인 부조리와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기억들, 반드시 청산해야 하는 기억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베르그송, 『물질과 기억』, 박종원 옮김, 아카넷


들뢰즈, 『차이와 반복』, 김상환 옮김, 민음사


『물질과 기억』은 기억에 관한 대표적인 철학서로서 베르그송의 심신론(心身論)이 전개되어 있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 2장에서 베르그송의 사유를 발전시키고 있다.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기억에 대한 심리학적/정신분석학적 연구서. 융의 자서전으로서 기억의 문제를 무의식과 연계시켜 생각해 볼 계기를 제공해 준다.


오카 마리, 『기억 서사』, 김병구 옮김, 소명


기억의 문제를 사건 및 서사(narrative)에 연관시켜 논하고 있는 책. 폭력적 사건에의 기억과 서사의 문제를 연결시켜 논하고 있다.


이계황 외, 『기억의 전쟁』,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기억의 문제를 역사와 연계시켜 논하고 있는 책. 한국과 일본의 ‘기억 전쟁’을 다루고 있다.



6. 코드


조선 시대에는 가족이 아닌 한 남녀가 동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남녀유별(男女有別)’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원리로 작동했다. 아니, 사실상 이 원리는 일방적인 원리였다고 해야 하리라. 남성의 경우 기생을 비롯한 다른 여성들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었으나, 여성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남성들과 여성들은 화장실이나 결혼식장 등을 비롯한 특수한 장소들이 아닌 한 더 이상 ‘유별’하지 않다. 극장에서, 운동장에서, 강의실에서 남과 여는 서로 섞여 문화를 향유한다. 1980년대만 해도 여학생이 교내에서 담배를 핀다고 뺨을 때린 남학생이 있었다. 지금 그런 남학생이 있다면 그 남학생이야말로 뺨을 맞게 될 것 같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무엇이 변해서 삶의 양태가 이렇게 달라졌는가? 물리적-생물학적 변화인가? 물론 아니다. 예컨대 조선 시대 사람들의 dna가 지금의 우리 dna와 크게 달랐을 리가 없다. 외형이 변했는가? 물론 적지 않게 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삶의 양태를 이렇게 크게 바꾸어 놓았을 리는 없다. 변화한 것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 ... 즉 추상적인 그 무엇일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는 그 무엇인가가 (눈에 당장 보이는) 삶의 양태들을 크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무엇, 그러면서도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이 무엇은 무엇일까? 야구장에서 우리는 선수들, 심판들, 중계인들, 관중들, ...을 만난다. 그리고 배트들, 글러브들, 공들, ... 같은 기구들이나 조명 등을 비롯한 장치들을 만난다. 그리고 사건들이 벌어진다. 홈런이 터지고 아웃을 당하고 이닝이 바뀐다. 그러나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 외에 또 하나 핵심적인 것이 있다. 분명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그것이 없으면 야구 경기가 성립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렇게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것이면서도 우리의 경험을 지배하는 것을 우리는 관습이라든가 규범, 규칙, ... 등으로 부른다. 제사를 지낼 때 과일을 앞쪽에 놓는다든가, 물고기는 동쪽으로 놓는다든가 하는 것을 비롯해, 관습을 비롯한 이 비가시적(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없다면 ‘사회’라는 것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비가시적인 존재, 그러나 가시적인 삶을 지배하는 존재, 이것을 언제인가부터 ‘코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오늘날 ‘코드’는 일상어가 되었다. “너하고는 코드가 달라 이야기를 못 하겠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지 않는가. 현 정권 초기에 보수 언론들은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만 쓴다”는 기사를 자주 내보냈다. 코드란 무엇일까? 어떤 맥락에서 코드라는 개념은 오늘날 중요한 위상을 획득하게 되었는가?


‘코드’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 들어오게 된 것은 ‘구조주의’라는 사조가 연구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무의식적 구조’, ‘기표(시니피앙)와 기의(시니피에)’, ‘차이들의 놀이’, ‘변별적 차이’, ‘담론’, ... 같은 말들이 새로운 학술 용어들로서 도입되고, 때로는 일상 언어로까지 확대된 것은 ‘구조주의적 사유양식’의 도입과 더불어서 이다. 처음에는 주로 언어학에서 사용되던 코드라는 말은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을 거쳐 구조주의 사유 일반으로 퍼지면서 보다 일반적인 의미 내용을 담게 되었다.


코드는 사물들을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규칙, 특히 무의식적 규칙이다. 여기에서 ‘무의식’이라는 말은 그러한 규칙이 인간이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규칙이라기보다는 자연적으로(더 정확히 말해, 자연과 문화의 경계선상에서) 만들어졌으며 그래서 우리의 삶을 심층에서 지배하는 규칙이라는 뜻이다. 마치 태양과 지구가 물리학 법칙에 따라 관계 맺고 운동하듯이, 무의식적 구조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법칙들인 것이다.


레비-스트로스가 그의 학위논문에서 빼어나게 분석했던 ‘친족체계’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친족체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지 그것 자체를 크게 문제 삼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친족체계는 우리 문화의 무의식적 구조인 것이다. 구조주의는 친족체계만이 아니라 문화의 모든 측면들(식사법, 건축술, 신화, 놀이, ...)에서 이런 무의식적 구조를 발견하고자 했다. 이것은 사상사적으로 말하면 주체성과 자유에 강한 무게중심을 두는 근대적 사유에 대한, 즉 인간의 자기중심주의와 오만에 대한 ‘탈근대적’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조주의에 대한 지나친 경도는 자연스럽게 정치적 보수주의를 함축하게 된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코드들이 자연법칙처럼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사실상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목적으로 “만들어낸” 것들이 아닐까? 친족체계조차도, 물론 기본적인 부분은 자연적이라 해야겠지만, 예컨대 주(周) 왕조의 종법제도(宗法制度)에서 볼 수 있듯이 권력층의 일종의 지배 전략으로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회의 코드들을 무의식적인 것으로, 자연법칙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은 코드들 아래에 깔려 있는 “욕망과 권력의 놀이”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계보학’을 통해서 코드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일구어내야 하지 않을까. 즉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코드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으며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를 밝혀내는 ‘현재의 비판적 존재론’(푸코)으로서의 계보학이 중요한 것이다.


예컨대 감옥을 생각해 보자. 근대 이전에 감옥이란 형벌을 가하기 위해 잠깐 기다리는 ‘대기소’였지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가진 곳은 아니었다. 형벌이란 기본적으로 공개 처형이었으며, 감옥이란 재판을 받거나 처형을 당하기 위해 죄인들을 잠시 가두어두는 곳이었다. 그러나 근대 휴머니즘이 도래하면서 감옥의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체형(體刑)’이 금지되면서 이제 형벌 자체가 죄인을 감옥에 얼마동안 가두어둘 것인가의 문제로 변한 것이다. 이제 형벌은 감옥에 가두어 두는 시간으로 정해진다. 따라서 감옥은 그 자체 형벌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처형 장면을 보지 못한다. 그저 영화 등 영상장치들을 통해서 볼 뿐 처형 장면은 이제 시민들로부터 차단되어 있는 것이다. 감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또 정신병원은? 삶의 어두운 부분들은 모두 우리에게서 차단되어 있다. tv를 보고 있으면 마치 우리는 낙원에서 살고 있는 듯이 착각하게 된다.


여기에서 감옥의 ‘코드’를 바꾼 것은 무의식적 구조도 아니고 자연법칙 같은 법칙도 아니다. 근대 부르주아 계급이 사회를 지배하려는 ‘새로운 전략’을 짬으로써 코드가 바뀐 것뿐이다. 휴머니즘의 도래를 통해 인권이 강화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코드의 수립을 통해 지배의 전략이 바뀐 것뿐이다. 우리는 코드 아래에 깔려 있는 정치적 맥락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코드 개념은 원래 삶을 지배하는 어떤 보편적인 법칙을 추구하려는, 정신분석학의 무의식 연구나 인류학의 미개사회 연구를 비롯한 과학적 맥락에서 성립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에서의 ‘코드’ 개념은 오히려 다원화 사회, 상대주의 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즉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코드라는 개념에는 무수한 부분들로 쪼개진 사회집단들, 그들이 사용하는 (남들은 알아듣기 힘든) 용어들, 사고의 차이들, 소통의 부재, ... 같은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즉 오늘날의 코드 개념은 어떤 일반적인 무의식적 법칙의 의미보다는 숱한 집단들의 동일성(또는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사고 패턴들, 용어들, 정치적 입장들, ... 등의 의미를 함축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코드가 다르다”는 말은 곧 “말이 안 통한다”와 거의 같은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코드는 달라도 대화는 해야 한다. 코드의 문을 닫기보다는 다른 코드들과 끝없이 대화함으로써 자기 코드의 울타리를 깨는 것, 고립된 섬과도 같은 코드 속에 갇히기보다는 섬과 섬 사이로 나아가 자(自)와 타(他)를 함께 바라보는 것, 사람과 사람의 건강한 관계는 바로 이렇게 코드와 코드 ‘사이’에서 사유하고 행위하려 할 때 시작된다.


  

7. 차이


“다르다”는 것은 우리가 사물들을 이해할 때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 중 하나이다. 플라톤이 존재, 운동, 정지와 더불어 같음과 다름을 가장 큰(보편적인) 개념으로 제시했을 정도로 다름=차이는 우리의 사물 이해를 틀 짓는 근본적인 범주인 것이다.


현대 사상에서도 차이는 핵심적인 개념들 중 하나이며, 이것은 곧 현대사회, 현대문화에서 차이 범주가 핵심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함축한다. 사상이란 늘 당대의 현실과 맞물려 진행되기에 말이다. 그러나 차이에는 매우 다양한 의미의 스펙트럼이 함축되어 있으며, 그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할 때 차이에 대한 논의들이 매우 혼란스러울 수 있다. 차이의 여러 가지 의미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이’라는 말을 쓸 때 우리는 흔히 두 사물, 또는 여러 사물들을 고정시켜 놓고서 그 사물들이 인식주체인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들에서의 차이를 논한다. 예컨대 우리는 이 탁자와 저 의자를 놓고서 그 모양, 색깔, 감촉, 기능, ...등에서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좀 더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한 국가와 다른 국가의 차이(예컨대 일본과 중국), 한 담론과 다른 담론의 차이(예컨대 물리학과 생물학), 한 작품과 다른 작품의 차이(예컨대 운명 교향곡과 미완성 교향곡), ...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런 방식이 우리가 차이를 이야기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일 것이다.

그런데 차이에 대한 이런 식의 이해는 그 아래에 일정한 존재론을, 즉 세계를 보는 근본적인 방식을 깔고 있다. 차이에 대한 이런 식의 논의는 바로 실체-성질 존재론을 깔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세계를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실체들과 “실체들에 부수해서 존재하는” 성질들로 나누어 보는 관점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존재론은 우리의 일상 언어가 함축하고 있는 존재론이기도 하다. 그래서 실체-성질 존재론은 언어적으로는 주어-술어 구조에 해당한다. 저 책상과 이 의자, ...등은 실체들이다. 책상과 의자의 색깔, 모양, 감촉, ...등은 성질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상은 노랗다”, “저 의자는 둥그렇다”고 말한다.


물론 존재론에는 이 실체-성질 존재론 외에도 여러 형태들에 있다. 세계를 입자들의 합성과 분해로 보는 존재론, 에네르기, 생명, 氣 등의 연속적 흐름으로 보는 존재론, ...등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발견/발명해낸 다양한 존재론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언어가 전제하는 존재론은 실체-성질 존재론이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전제하면서 살아가는 세계는 바로 실체-성질 존재론을 통해서 이해되는 세계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차이’라는 개념에 대한 일차적인 이해도 이런 존재론에 입각해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철학의 경우에도 이 존재론에 입각한 논의를 펼치는 전통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헤겔에 이르는, 나아가 현상학(現象學)에까지 이르는 일정한 흐름이 이 존재론에 입각한 사유를 펼쳤다.


차이의 개념이 이렇게 철학의 역사, 나아가 사유의 역사 일반에서 늘 문제가 되어 오긴 했으나, 현대 사상의 흐름에서 이 개념이 새로운 맥락을 획득하게 된 것은 구조주의의 등장 및 신좌파 정치철학의 등장과 더불어서이다.


언어학적 맥락에서, 구조주의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소쉬르는 자신이 전개한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차이’라고 말한다.


구조주의 언어학에 따르면 기호와 사물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 앉는데 쓰는 가구가 꼭 ‘의자’이고 물건을 올려놓는데 쓰는 가구가 꼭 ‘탁자’일 이유는 없다. 전자를 탁자라고 부르고 후자를 의자라고 불러서는 안 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빨간 불일 때 서고 파란 풀일 때 가는 교통체계가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빨간 불일 때 가고 파란 불일 때 서는 기호체계이면 안 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말과 사물의 관계는 ‘자의적인/임의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의자’와 ‘탁자’의 차이이고, ‘빨간 불’과 ‘파란 불’의 차이이다. 의미는 기호에 내재해 있지 않다. 의미는 기호와 기호의 사이에서, 그 차이를 통해서 성립한다. 차이를 만들어내는, 다시 말해 변별적인(differential) 관계야말로 의미 성립의 비밀인 것이다.


말과 사물 사이의 자의적/임의적 관계, 그리고 변별적인 관계를 통한 의미 생성이라는 사유는 그 후 사회와 문화의 분석에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된다. 토테미즘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분석은 그 한 예이다. 한 부족이 늑대를 토템으로 하고, 다른 부족이 양을 토템으로 한다고 해서, 반드시 전자의 부족이 후자의 부족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한 부족이 흰 곰을 토템으로 하고, 다른 부족이 검은 곰을 토템으로 한다고 해서, 반드시 전자의 부족은 희고 후자의 부족은 검은 것이 아니다. 거꾸로 되어도 토템체계에는 변화가 없다. 토템은 심리적인 것도, 기능적인 것도, 또 신비한 것도 아니다. 다만 구조적인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변별적 관계이며, 문화란 변별적 관계의 체계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오늘날에는 그 한계가 극복되었지만, 여전히 현대 사상의 중요한 한 요소를 형성하고 있다.


차이 개념의 또 하나의 맥락은 1968년 ‘5월 혁명’을 전후해서 배태된 새로운 정치사상, 이른바 ‘신좌파’ 정치사상의 맥락이다.


19세기에 자유주의-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공산주의 진영이 양분된 이래로 정치사상은 이 양분법을 깔고서 한 세기 동안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1968년을 분기점으로 세계사의 새로운 흐름이 도래하기에 이른다. 이는 1945년 이후 형성된 ‘전후(戰後) 질서’에 대한 대중들의 대대적인 저항운동이 전개되면서 도래하게 된다. 주로 선진국에서 진행된 이 새로운 운동들은 현대 정치사상의 역사적 배경이 된다. 간단히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경우 1987년 이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의 5월 혁명은 전후의 드골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서 전개되었으며, 정권을 바꾸었을 정도로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현대의 고전’으로서 읽는 푸코, 들뢰즈, 데리다를 비롯해 많은 사상가들이 이 5월 혁명의 영향을 받는다.(프랑스어로 ‘68동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이다)


아울러 독일, 미국 등에서도 유사한 성격의 운동이 진행되었다.(미국의 경우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 운동 및 케네디 암살 이후의 미국 정세가 배경으로 작용한다) 일본의 경우에도 전후의 부흥이 낳은 숱한 모순들이 격화되면서 ‘적군파(赤軍派)’가 등장하고 (일본 관료들의 산실인) 동경대학이 초토화될 정도의 격렬한 운동이 전개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이와 동시에 공산주의 권에서도 ‘프라하의 봄’으로 대표되는 저항 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서구 자유주의 국가들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동시에 저항 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것은 곧 자유/자본주의냐 사회/공산주의냐 라는 양자택일을 요구하던 시대의 종말을 뜻한다. 이제 사람들은 이 양자택일을 넘어서 두 체제가 공히 함축하는 모순들에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로 말해서, 박정희냐 김일성이냐가 아니라 이 두 체제가 공히 함축하는,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암암리에 상부상조하는 보다 심층적인 체제적 모순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요컨대 이제 사람들은 어떤 지배체제냐가 아니라 지배체제 자체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현대적 의미에서의 ‘대중’이 탄생하게 된다. 인민/민중이 아니라 대중/다중이 탄생한 것이다.

특기할 것은 이런 운동들의 주체가 대체적으로 농민, 노동자들보다는 학생들, 지식계층들이었다는 점이다.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의 주체였던 시기가 지나가고 지식계층이 혁명의 주체가 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오늘날에는 지식계층이 자본주의에 흡수됨으로써 과거의 저항력을 상실하게 되었지만)

아울러 여성들의 페미니즘 운동, 동성애자들, 청소년들, ...의 운동들이 도래하면서 이제 사회 운동은 과거와는 성격이 상당히 다른 무엇이 되었다. 이른바 ‘다원화 사회’, 윤리-정치적으로는 ‘타자들’의 시대, ‘소수자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다원화란 곧 차이의 증식을 함축한다. 이제 오늘날의 사회사상은 이런 차이들을 인정한 상태에서 어떻게 사회변혁의 힘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를 사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 차이이든, 구조주의의 차이이든, 신좌파 정치사상에서의 차이이든, 이런 차이들이 전제하는 동일성이 존재한다. 이 모든 차이들은 항상 무엇과 무엇“의 차이”이다. 책상과 의자의 차이, 기호들의 차이, 집단들의 차이 등은 모두 무엇과 무엇의 차이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 개념은 항상 이 ‘무엇’들의 동일성을 전제한다. “책상과 의자의 차이”라고 말할 때, 책상 자체는 그리고 의자 자체는 동일성을 유지해야 한다. 책상과 의자의 차이를 이야기하려는 순간 책상과 의자가 계속 변한다면 차이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베르그손과 들뢰즈가 보다 급진적 의미에서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분절해서 부를 때 이미 전제되는 동일성 자체를 비판함으로써 이들은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차이의 존재론’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급진적 차이의 철학, 더 정확히는 차이‘생성’(differentiation)의 철학이 함축하는 윤리와 정치는 정확히 어떤 것일까?

 

8. 사건


신문, 방송, 잡지,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대중매체들은 늘 사건들을 다룬다. 사건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일깨우고 장안을 떠들썩하게 한다. 사건들은 갑작스럽게 삶의 표면으로 돌발해 나타나며, 때문에 사건이라는 개념에는 예기치 않은 일이라는 뉘앙스가 붙어 있다.


일본 관료들의 불쑥 내뱉는 망언들, 숱한 자연재해들, 지하철 등에서의 사고들을 비롯해 각종 사건들은 갑작스럽게 돌출한다.


“예기치 않은”이라는 말은 사건 발생의 시간과 공간이 우발적(contingent)이라는 말이다. 사건에는 늘 우발성이라는 양상이 결부되어 있다. 때문에 사건을 예측하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건이란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돌발하는 무엇이다.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는 시공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던 시공간이다. 사람들이 직접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매체들을 통해서 사건을 접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매체들은 세상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선택해서 일정한 시각으로 구성해 대중에게 전달한다. 즉 우리가 매체에서 보는 사건들이 반드시 중요한 사건들인 것은 아니며, 차라리 매체 종사자들에게 관심이 가는 사건들이라 해야 하는 것이다. 매체들은 ‘대중’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 대중은 매체가 만들어내는 대중인 것이다. tv가 대중화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tv화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건이 아닌 한 세상의 사건들을 매체들의 취사선택을 통해 주입받게 되는 셈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체들을 통해서 알게 되는 사건들은 각 매체의 눈길에 의해 이미 해석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사건의 현장에서 그것을 체험한 사람이 아닌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매체에 의해 해석된 사건을 만나게 된다.


예컨대 신문의 기사들이 ‘사실’이나 ‘진실’이 아니라 각 신문의 정치적 색깔에 의해 채색된 해석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설사 기사 내용이 모두 사실들이나 진실들로 채워져 있다 해도 그것들을 취사선택하고 배열하는 방식 자체가 이미 해석인 것이다. 요컨대 사건에 대한 순수한 시각이나 인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하겠다.


따라서 정치적 사건만이 정치적인 것은 아니다. 비정치적 사건들도 정치화된다. 사건들을 바라보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비정치적 사건들도 정치적 색깔로 채색되는 것이다. 그런 채색은 눈에 잘 띄지 않고 그래서 잘 인지되지 않는다. 흔히 말하듯이, 매체는 그 속셈을 숨길 때 더 잘 기능한다. 바로 그런 비가시적 틀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건은 어떻게 정치화되는가? 더 근본적으로, 사건이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 사건의 정치적 의미란 무엇인가?


사건의 발생이란 세계 내에서의 차이의 도래이다.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이 세계에는 크고 작은 차이들이 도래하게 된다. 더 정확히 말해 사건은 세계의 표면에서 발생한다. 세계의 표면, 즉 세상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표면으로, 현실세계로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은 인지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구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자기 몸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설사 세계의 심층부로 들어가 사건들을 채취하는 경우라 해도, 그 때의 사건들은 현미경이나 망원경, 아니면 그 어떤 기계들이든 일정한 장치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며, 그런 한에서 그것들 또한 장치들을 매개해 세계의 표면으로 드러나는 사건들인 것이다. 요컨대 사건이란 그 사건을 확인하는 인식주체를 이미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차이의 크기가 어느 정도에 이르면 그것이 ‘사건’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사건’이라는 말에는 어떤 큰 차이의 도래라는 함축이 들어간다. 그래서 사건들에는 항상 날짜들이 붙어 있고, 아주 큰 사건이 발생하면 역사는 그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뉘곤 한다. 그래서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사건의 이전과 이후, 태평양 전쟁의 이전과 이후, 1987년 6월 항쟁 이전과 이후 등이 나뉜다. 또 사건들은 장소들과도 관련된다. 예컨대 한국사에서 ‘부마’, ‘제주’, ‘광주’, ...같은 도시들, ‘청석골’, ‘벌교’, ...같은 마을들에는 일정한 사건들이 각인되어 있다. 사건이란 큰 차이의 도래이고, 그 차이들은 시간과 공간을 변별(辨別)시키면서 역사에 각인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차이가 도대체 어느 정도의 문턱을 넘어서야 사건이 되는지는 불분명하다. 근원적으로 보면, 존재론적으로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 찰랑거리는 물결의 운동, 누군가의 기침 등등도 사건들이다. 즉 우주의 생성 자체가 사건들인 것이다.


그러나 분명 생성 개념과 사건 개념은 뉘앙스가 다르다. 생성에는 ‘흐름’이라는 연속성의 뉘앙스가 강하고, 사건에는 ‘솟아오름’이라는 불연속의 뉘앙스가 강하다. 생성의 시간은 베르그송적인 ‘지속’이고 사건의 시간은 바슐라르적인 ‘순간’이다. 하나는 수평으로 흐르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시간이다. 현대 사상의 여러 거장들이 시간의 본성을 성찰했거니와, 생성의 시간과 사건의 시간에는 이렇게 분명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차이가 얼마만큼 커야 불연속이 도래하는 것일까? 어디까지가 생성이고 어디에서부터가 사건인가? 차이가 어떤 문턱을 넘어서야 사건이 되는 것일까?


사실 이 문턱은 상대적이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두 사람이 주먹질을 해댄다면, 그것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주변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날 광화문에서 폭탄 테러가 벌어졌다면, 두 사람의 주먹다툼은 그 폭탄 테러의 배경으로 내려가버린다. 광화문에서 한 정치인의 연설이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사람들의 이야기 대상이 되겠지만, 만일 그날 어떤 정치인의 암살이 있었다면, 그 연설은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암살 사건의 배경으로 물러가버릴 것이다.


요컨대 하나의 사건이란 항상 그것보다 작은 사건들을 배경으로 솟아오른다. 거꾸로 말해 상대적으로 작은 사건들은 그것들보다 큰 사건의 배경으로 물러간다. 즉 물결의 살랑거림, 바람, ...등의 극히 작은 사건들로부터 혁명이나 테러, 자연재해 등의 극히 큰 사건에 이르기까지 사건들이 도래시키는 차이들은 무수히 다양한 층차(層差)들을 보여주며, 그 상대적 층차들에 입각해 어떤 것은 사건으로서 솟아오르고 다른 것들은 그 사건의 배경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은 생성이거니와 보다 큰 생성이 사건이 된다. 그리고 “보다 크다”는 것은 사건들의 상대적 크기, 즉 그것들이 차이를 도래시키는 정도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 성립하는 것이다. 모든 생성은 다 사건들이지만, 그때그때 맥락에 따라 상대적으로 보다 큰 불연속을 도래시키는 것이 사건이 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보다 큰다”라든가, 다른 사건들을 배경으로 밀어내고 솟아오른다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일까? 테러 사건이 주먹다툼 사건을 배경으로 밀어내고 솟아오르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것일까? 더 많은 물건들이 깨진 것이 기준인가? 아니면 더 근본적인 기준이 있을까?

하나의 생성이 사건으로서 마름질되는, 즉 “하나의 사건”으로서 끊어 이해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의미’에 있다. 즉 생성은 일정한 의미를 가질 때 사건으로서 마름질된다. 그렇다면 의미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우리는 자칫 의미라는 것이 있어서, 마치 어떤 사물이 땅에 묻혀 있다가 발견되듯이 발견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즉 방에 피아노가 있듯이 말에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의미는 구성되는 것이지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즉 말이 있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이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다. 어떤 생성이 사건이 된다는 것은 그것이 언어를 통해 마름질된다는 것을 뜻한다. 사건이 있어 그것이 언어화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화될 때 비로소 하나의 사건이 뚜렷하게 마름질되는 것이다.


사건이란 단독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광화문에서 폭탄이 터졌다 해도, 그것이 큰 사건이 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사고’가 아니라 ‘테러 사건’이라고 부름으로써이다. 그리고 이렇게 특정한 사건이 마름질되는 것은 그 사건이 다른 사건들과 이어짐으로써이다.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여러 다양한 사건들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어떤 폭탄 터짐이 ‘테러 사건’으로서 마름질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의미란 사건들을 이음으로써, 달리 말해 계열화(系列化)함으로써 성립한다. 우리는 앞에서 매체들이 사건들을 취사선택하고 해석해 전달한다고 했다. 이제 이 사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취사선택한다는 것은 세계의 숱한 생성에서 사건들을 마름질한다는 것이고, 해석한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을 어떤 다른 사건들과 계열화해 의미를 만들어냄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건이란 순수하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의 구성은 늘 정치적 입장에 의해 채색된다. 이렇게 사건은 정치적인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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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천재

2008/03/26 11:25
 

Carl von Clausewitz. 김만수 옮김. 2006. 『전쟁론 제1권』. 갈무리.

 

제1편 3장  전쟁 천재

 

- (문제의식)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어떠한 자질과 능력이 필요한지를 고려

- 전쟁 천재(=군사적 천재) : 지휘관에게 필요한 부분, 여기서 지휘관은 소위나 중령급이 아니라 일국의 왕, 최고지휘관, 원수를 말함

 

* 전쟁 천재의 정의

-우수한 업적을 내는 지성과 감성의 독특한 자질

-전쟁활동에 필요한 정신적 요소를 조화롭게 연합할 수 있는 사람이나 능력

-즉, 병사들의 여러가지 정신적인 힘, 정신적인 성향을 잘 조화롭게 하나로 묶을 수 있는냐 하는 지휘관의 자질 (ex. 총싸움 잘하고 자기는 절대 안 죽는 람보는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는 전쟁천재가 아님)

 

* 전쟁의 분위기를 이루는 네가지 요소

1. 위험 - 용기로 극복

2. 육체적 긴장과 고통 -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극복

3. 불확실성 - 지성으로 극복

4. 우연 - (기술이나 훈련 등) 경험으로 극복

 

* 전쟁에서 지성의 중요성 : 용기, 체력, 정신력, 경험, 그리고 지성을 포함하여 이 모든 것은 지성에서 나온다.

 

- 지성 : 혼란 속에서도 인간의 정신을 진실로 이끄는 내면의 불빛 - 통찰력

- 용기 : 지성의 불꽃을 따르는 힘 - 결단력

 

- 통찰력 : 시간과 공간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통해 정확하고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능력(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육체의 눈+정신의 눈의 조화, 다른말로 혜안)

- 결단력 : 인간의 감성과 관련됨(인간의 감성은 지성에 의해서 생겨남)

ex) 99%패배가 확실한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결단력이 아니라 무모함이나 모험이다.

 

- 침착성

: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뛰어나게 극복하는 능력(통찰력, 결단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

: 지성적인 측면+감성적인 측면과 관련

 

   지성             ->         용기

    /                                 /

통찰력             ->          결단력

    /                                  /

인간의 지성적 측면       인간의 감성적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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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주체와 대상/장(場)

2008/03/25 14:59

20세기의 사상들이 그 전의 사상들에 비해 가지는 독특한 특징들 중 하나는 의미 개념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에 있다 하겠다. 현대 철학은 의미론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이어왔다.

 

주체가 대상에서 읽어내는 노에마로서의 의미를  추구한 현상학이든,

텍스트에 숨어 있는 또다른 의미를 캐내려 한 해석학이든,

언어의 논리적-구조적 분석을 통해 의미를 탐색한 언어분석철학이든, 

 또 기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들의 놀이를 통해 의미를 이해한 구조주의이든,

현대 사상의 상당수 조류들은 의미의 문제에서 교차한다.

 

근대 철학은 대상과 주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상을 접촉함으로써 주체에게 발생하는 것이 관념이다(칸트는 표상이라는 말을 썼다).

주체는 영혼(마음, 의식, 정신)이고 주체가 경험했을 때 영혼에 생겨나는 것이 관념이다

데카르트는 접촉 이전에 영혼에 주어진 관념들이 있다고 보았고,

영국 경험론은 접촉을 해야만 관념이 생긴다고 보았다.

 

이후의 철학들에서도 이런 논의 구도는 이어진다. 이런 구도 아래에서 기호는 관념을 물질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했다. 기호는 늘 관념과 붙어 있으며, 관념의 외화(外化)로서 이해되었다.

 

이해 비해 현대 철학에서는 대상과 주체 사이에는 그 두 항을 일정한 방식으로 관계 맺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場)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대상과 주체가 직접 관련 맺는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맥락에서 생각할 때, 대상과 우리 사이에는 공간이 존재한다. 만일 공간이 휜다면 물체는 우리에게 다른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대상과 주체가 직접, 순수하게 관계 맺는 것이 아니다.

공간이라는 장의 성격이 매개되어 관계 맺는 것이다.

 

이제 이 점을 물리적 맥락에서 보다 추상적인 맥락으로 옮겨 생각해보면,

우리는 현대 철학의 핵심적인 한 원리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의 대상을 볼 때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항상 어떤 장을 통과해서, 항상 어떤 전제를 매개해서 그 대상을 보게 된다.

똑같은 하나의 사과를 봐도 생물학 시간, 미술 시간, 경제학 시간,......에 그 사과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로 이 장을 사유하려는 것이 현대 사유이다.

그리고 이 장은 우선은 언어적-논리적인 장인 것이다.

 

이런 사유에서 '현존'(現存) 개념은 의문에 부쳐지게 된다.

대상과 주체를 곤통하는 어떤 '빛' 아래에서 성립하는 순수한 나타남, 벌가벗은 대상과 순순한 주체의 무구(無垢)한 만남은 부정된다.

현상학의 한계가 노출되는 것은 이 지점이다.

 

이런 생각이 인식론의 형태로는 '이론 의존성'(핸슨), '패러다임'(쿤), '에피스테메'(푸코), '인식론적 장'(바슐라르, 캉길렘)의 개념으로 나타난다.

 

또 다른 맥락에서 이것은 실재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그리고 상징적인 것의 문제이기도 하다.

구조조의 사유는 실재적인 것에 대한 나이브한 형이상학적 상상적인 것-의식적인 것-에 대한 근대 철학의 집착을 비판하고 상징적인 것을 내세웠으며, 사물의 차원과 의식의 차원을 넘어 기호의 차원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사유는 탈현존화(脫現存化)한다.

상상적인 것(의식의 차원), 실재적인 것(사물의 차원)은 상징적인 것(언어의 차원)을 매개해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의미를 어떤 방식으로 개념화하든, 대다수의 의미론들은 의미를 투명한 어떤 것으로서 인식하고자 했다.

이런 측면에서 서구의 고중세 철학과 근대 철학은 공통적으로 거울의 은유 또는 빛의 은유를 가지고 있다.

 

마음이 대상을 그대로 비춰서 대상이 마음속에 재현되고, 그렇게 재현된 대상은 관념(觀念)이 된다.

그리고 이 관념이 다시 그대로 바깥으로 투사되어 기호가 된다.

이런 거울과도 같은 재현들이 가능하려면 여러 존재들이 서로를 투명하게 볼 수 있게 해 주는 빛이 존재해야 한다.

 

이런 사유 구도는 현대 철학에 이르러 무너지게 된다.

존재와 사유를 이어주는 빛이 꺼지고(예컨대 칸트의 경우),

거울은 깨지거나 일그러진다(예컨대 라캉의 경우).

 

이제 의미는 예전처럼 단순한 것으로 이해되지 않으며,

바로 이것이 현대 척학이 의미의 문제에 천착하게 되는 이유이다.

 

무엇인가가 잘 보이지 않을 때,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때,

기존의 인식을 무너뜨릴 때 사유가 시작되는 것이다.

 

 

- 발췌 : 이정우. 2007. [세계의 모든 얼굴]. 한길사. pp.11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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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희소성의 시대에 부쳐

2008/03/23 01:19
 

난 우석훈의 글을 즐겨 읽는다. 새만금 문제 때문에 종교인들이 삼보일배를 해서 사회적으로 생태문제에 대한 분위기를 띄울 때, 그때 쯤 우석훈이 ‘비나리’라는 아이디로 ‘새만금을 뒤벼주마’라고 쓴 글을 보고 나서 부터다. 자신의 지식을 삶의 감성과 일치해서 글을 쓰는 지식인이다. 최소한 거짓이나 조작이 없고, 허세도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땡기는 것은 솔직하게 글을 쓴다는 것이다. 글의 깊이도 상당하다. 많이 배우고 싶다.

 

'로망 중에 가장 큰 로망 중의 하나는 액션 로망이다. 솔직히 사람이 한 번 태어나서 사는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 입에 밥들어가는 것만 걱정하고, 멋진 연애 한 번 해봤으면 하는 생각만 하다가 죽었다고 하면, 로망의 인생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건 개돼지도 다 가지고 있는 로망이다.'

 

우석훈의 블러그 '우리는 액션, 대로망!' (http://fryingpan.tistory.com/)에서 퍼온 것이다.


[한겨레] '희소성의 시대'에 부쳐

스탱 쪼각글 2008/03/05 20:12 posted by 우석훈

[야!한국사회] '희소성의 시대'에 부쳐/ 우석훈


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우리나라에서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열 명보다는 많고, 50명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가끔이라도 국민들이 <국부론>과 <도덕감성론>이라는 두 책의 관계를 살펴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끔 든다.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송구스러울 수도 있지만, 많은 경제학 전공자들은 <국부론>이라는 책이 금세기에 출간되었다면, 노벨경제학 대신에 노벨문학상을 탔을 것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경제학상을 탈 수 없는 이유는, 경제학을 학문으로 만든 이 책에는 수학공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애덤 스미스는 '이코노미스트'라는 표현을 '경제학자'가 아니라 '수전노' 즉 돈 몇 푼에 손을 발발 떠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국부론> 1권 9장에는 세상이 과연 마지막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고민이 나오는데,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임금은 더 오르지 않고, 이윤도 오르지 않고, 나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그 상태라도 유지하려면 또 모두 죽도록 일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다른 곳에서 스미스는 '우울한 상태'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고, 후대 경제학자들은 이런 스미스의 이론을 '정체상태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오는 이유는 지대 요소, 즉 자연이 더는 커져나간 경제상태에 맞추어 증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고전학파 경제학의 우울한 미래에 대한 예언은 맬서스, 리카도를 거쳐 사실상 고전학파의 막내인 존 스튜어트 밀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다만 차이점은, 이 명랑하고도 당돌하며 겁이 없었던 경제학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돈을 더 벌 수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문학과 예술, 그리고 역사에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므로, 이 상태가 우울한 상태가 아니라 '조화 상태'(harmonized state)라고 해석하였다.


유가가 오르고, 석유를 대체하기 위해서 옥수수를 연료로 투입하면서, 옥수수의 대체재인 밀과 쌀값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단일 자원시장에서 '갑절'씩 가격이 오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모든 원자재가 두 배를 기본단위로, 기분만 좋으면 세 배든, 네 배든 올라가게 되는 그런 시기를 우리는 맞게 되었다. 이건 국제 자원시장에 선물시장이 도입된 이후 처음 생겨난 변화이고,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런 상태가 올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들은 많았는데, 애덤 스미스가 그랬고 가깝게는 최근에 작고한 로마클럽의 집필자, 도넬라 메도가 이런 상태를 예견했다. 정말 <국부론>과 같은 교과서나 아니면 100년짜리 장기 시뮬레이션에서나 보던 그 상태를 정말로 금세기에 살아서 보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이를 요즘 학자들은 '희소성의 시대'라고 부른다.


한국의 거시경제 기조, 경제정책, 그리고 사회문화적 체계까지 모두 '풍요의 시대'에 맞추어져 디자인되어 있다. 돈만 주면 뭐든지 살 수 있고, 또 그런 공산품의 가격도 계속해서 몇 년마다 절반씩 떨어진다는, 풍요 시대의 패러다임 위에 한국이 서 있다. 그러나 지금 이제 우리는 '희소성의 시대'로 간다. 바로 <국부론> 1권 9장의 세계가 펼쳐지는 셈이다. 이제 경제학자들은 '풍요'라는 70년대 이후의 패러다임을 머리에서 지우고, '희소성'이라는 개념을 다시 탑재해야 한다. 아니면, 우리 모두 망한다.


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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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내가 아는 지식인은...

2008/03/22 01:36

  

마이크 든 사람이 미셀 푸코이고, 왼쪽에 안경 낀 할아버지가 장 폴 샤르트르이다. 둘이 같이 나온 사진은 이것말고 조용히 잔디밭에 앉아서 피케팅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내가 아는 지식인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다.

미국식 전문가 모델은 이제 한국에서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다. 지성과 도덕성이 갖추지 못한 한국식 지식인 시스템이 버텨낼 수 없는 한계에까지 온 듯하다.

우리나라 지식인은 생활인형과 권력자형 두 가지로 완전히 분화되었다.

권력자형은 부패했고, 생활인형은 비겁하다. 그리고 두 집단 모두, 무능하다. 민중들의 뼈골을 빨아서 자신의 삶을 유지한다.

차이는 많이 빠느냐, 조금 빠느냐, 보이게 빠느냐, 안 보이게 빠느냐, 그리고 상납을 하느냐, 자기만 먹고 떨어지느냐, 그 차이만이 있다.

지금의 대학생은 이 시스템에서 영원한 희생자가 될 것인데, 지금의 중학교 고학년에서 고등학교 저학년이 이 시스템을 엎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한국의 68세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샤르트르가 등장해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조건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식인, 단단이 타락했지만, 조선왕조 500년을 버텨낸 민중의 저력이라는 것이 아직은 사라진 것은 아닌 것 같고, 지금의 10대들에게 다시 나타나게 될 것 같다. 역사는 늦게 오더라도 배신하는 법이 잘 없는 것 같다.

배부른 돼지들의 틈을 비집고 가난한 소크라테스들이 등장하는 것 같다.

 

by 비나리 | 2007/07/12 12:49 | 그냥 잡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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