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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19 '경찰'에 관한 몇 가지
  2. 2007/01/19 조정래의 인간연습
  3. 2007/01/18 존재와 권력
  4. 2007/01/18 [박노자]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생, 그리고 군인과 아이
  5. 2007/01/18 [이정우] 노마디즘에 대한 오해(제도에 대해서)
  6. 2007/01/18 열정
  7. 2007/01/18 중층결정
  8. 2007/01/18 여성에 관하여
  9. 2006/12/14 평가받은 자는 자기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10. 2006/02/02 [박노자]소련 국기에 대한 맹세를 추억함
  11. 2005/12/12 [박노자] 개화기와 그 후의 신여성, 또는 욕망의 정치 (1)
  12. 2005/12/12 [비나리]노무현 10개년 농정로드맵, 나를 웃긴다
  13. 2005/12/12 [비나리]청계천을 막지 못하다니...
  14. 2005/12/12 [비나리] 새만금을 디벼주마
  15. 2005/12/12 [슬픈열대-레비스트로스] '문명'이라는 이름의 야만
  16. 2005/12/12 지구는 돈다... 그래도 신은 존재한다
  17. 2005/08/18 아~가슴이 너무 너무 아프고 떨립니다.
  18. 2005/08/10 [박노자] 국적이란 움직이는 것
  19. 2005/05/12 영원한 푸른 하늘, 칭기스 칸 + 전쟁기계
  20. 2005/05/10 존재하는 것은 구체적인 사람들뿐이다
  21. 2005/03/18 새로운 문화민주주의를 위하여
  22. 2005/03/07 [비나리] 까우디요(Caudillo) 경제와 ‘생명없는 발전’
  23. 2005/03/07 나와 우주의 벽을 깨부수다 (아인슈타인)
  24. 2005/03/04 '제국의 양심'엔 한계가 있다
  25. 2005/02/03 나를 죽여라
  26. 2005/01/31 [진중권]군대 가면 똥개 된다 (1)
  27. 2005/01/28 너를 아느냐고 꼭꼭 눌러 썼더니... (1)
  28. 2005/01/26 김개남(1894)
  29. 2005/01/17 [브레히트]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
  30. 2004/12/28 준치가시

'경찰'에 관한 몇 가지

2007/01/19 15:22

1.

도덕적이고 군사적인 지속적인 개입(intervention)은 실제로 영원한 예외국가와 치안활동에 기초한 정당성 패러다임으로부터 뒤따라 나오는 힘의 행사의 논리적 형태이다. 또한 이런 개입들은 비록 지속적으로 일어날지라도 항상 예외적이다. 즉 개입들은 내적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치안활동의 형태를 띤다. 이처럼 개입은 경찰 전개를 통해서 도덕적이고 규범적이고 제도적인 제국 질서의 구축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효율적인 메카니즘이다. (네그리의 [제국])

 

2.
'경찰'은 재판소, 군대, 국고와 더불어 국가를 이끄는 행정부처럼 나타난다. 정말이다. 그렇지만 사실상 경찰은 다른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다. 튀르케Turquet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경찰은 인민의 조건들에, 인민이 행하거나 시작하는 모든 것에 손을 뻗치고 있다. 경찰의 영역은 재판소, 재정, 그리고 군대를 포함한다.' 경찰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미셸 푸코)

 


3.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는 사법적 질서에 의해서 유지된다. 모든 국가는 법치국가다. 그 사법적 질서는 자국의 국내법과 전세계적인 초국적 법이 작동됨으로써 기능한다. 이것은 절차적인 전개과정이다. 그러나 이런 절차적 법 적용과정(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에는 항상 위기를 내포한다. 대중과 인민의 모든 행위가 전부 법에 적용될 수 없기 때문에 사법적 질서는 그 자체가 위기이다. 따라서 지배자들은 법률의 생산(입법)과 적용할 때(사법권)에는 항상 '예외'가 작동한다. 국내법과 초국적 법은 둘 다 자신들의 예외성을 담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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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인간연습

2007/01/19 09:05

- 2006. 8. 12.

1. 조정래는 지독한 민족주의자이다. 그의 사상의 끝은 '민족'이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깊이가 대단하다.
깊은 성찰과 더불어 시대를 초월하여 일상적 민중의 삶과 마음을 후벼 파는 미세한 서술은
단연 현대소설가중에 으뜸이다. [태백산맥]이 그렇다.

2. [인간연습]은 4년의 공백기간이 지난 후 쓴 소설이다. 아~ 나도 소설 쓰고 싶다.

3. [인간연습]은 '이념형 인간'에 대한 깊은 반성이다. 나와 느낌이 비슷하다.
그라믄 이념이 아니면 무엇이가? 내가 또 말하믄 '우주인'되는 기분이 든다. 생각해 볼 일이다.

4. [인간연습]은 전향한 장기수(간첩)의 엄청난 삶과 삶의 고민이 담겨있는 이야기이다.
나도 '인간연습'하여 인간이 되고 싶다.

5-0. (소설에 대한 이해를 위해)
박동건과 윤혁은 강제 전향 장기수임. 박동건은 먼저 죽고 윤혁은 계속 살아감. 따라서 윤혁이 소설의 주인공임.

5. 말이나 언어보다는 시선이 훨씬 효과적이며, 때로는 눈빛이나 감정이 진실에 가까울 때가 있다.
- '혀보다 눈의 반응이 더 정확했다'(p.19)

6. 아~ 늙는다는 것.
- 시아버지로서 힘을 발휘할려면 며느리가 군침을 흘릴 만큼 돈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없으면 명예라도 있어야 할것이다. 그러난 박동건은 무일푼에다가 명예는 커녕 불명예의 덩이리일 뿐이다.(p.26)

7. 죽는 것.
- 남자의 눈에서도 저렇게 많은 눈물이 흐르는 구나...... 윤혁은 또 박동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없이 초라하고 볼품없는 박동건의 모습은 죽음의 문 앞에 선 불쌍하고 가련한 한 늙은이의 모습일 뿐이었다. 이렇게 죽어가려고...... 윤혁은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것처럼 그 실감은 어느 때보다도 절실했다.(p.27)

8. 죽음은 최고의 술안주이다. (보통보다 훨씬 많이 먹어도 쉽게 취하지 않는다) 지독한 삶으로 빚은 술이기 때문이다. (박동건이 죽고 장례식장에서 술을 먹는 윤혁을 묘사하는 장면을 읽을 때 든 생각임)

9. 종교와 이념의 유사점과 갈등.
- 종교든 이념이든 관념이었다. 그런데 그 관념이 현실성을 획득하면 충돌을 면치 못했다. 그 현실성이라는 것이 인간의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인간 행동의 극한 상태가 전쟁이었다. 그 전쟁의 힘을 빌리면 두 관념의 충돌은 광적인 활화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종교란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하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일체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내세우는 예수교인들로서는 신을 부정해버리는 공산주의 무리들은 사탄일 수 밖에 없었다.(p.32)

10. 죽음!!!
- (화장터에서 나오는 박동건의 뼈를 보고) 사람이 결국 저렇게 되고 마는가! 흩어진 뼈에는 아무런 무게감도 색채감도 없었다.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처럼 흩어져 있는 뼈들은 덧없는 허망감만 자아내고 있었다. 그 깊고 사무치는 허망감이 일으키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갑작스럽고도 격했다.(p.40)

11. 인간의 한계: 이기심, 이타심, 종교, 본능, 이성
- 역사, 그것은 인간의 삶이었다. 이데올로기, 그것도 인간의 생산물이었다. 그것들은 인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인간에게만 필요한 것들이었다. 특히 이데올로기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이었다. 그런데 그 발명품은 당초의 목적대로 쓰이지를 못했다.

흡사 칼이라는 발명품처럼. 똑같은 칼을 주부가 들었을 때와 도둑이 들었을 때...... 결국 각국의 공산당원이란 칼이라는 유익한 도구를 잘못 든 도둑과 같은 존재들이 아닌가.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 인간의 문제였다.

인간.......인간......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당원들의 부패와 타락의 뿌리는 이기주의다. 이기성이라는 본능의 힘은 무섭다.

모든 종교의 공통된 미덕은 나만을 위한 이기심을 버리고 남도 위할 줄 아는 이타행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 지고한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각 종교의 성직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대다수가 이기심에 사로잡혀 신의 이름을 팔아가며 타락하고, 사회권력을 형성해 횡포를 자행하고, 심지어 신을 내세워 살인을 합리화하는 전쟁까지 불사해온 것이 인류사였다. 그 막대한 해독 때문에 마르크스는 일찍이 종교를 부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직자들이 이기심이라는 본능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했듯 당원들도 다를 것이 없었다. 인간......인간이란 본능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럼 인간의 이성은 무엇인가......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며, 이성의 힘은 능히 본능을 제압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던가.

그 이성의 힘에 의해 마르크시즘이 탄생했고, 그 이상세계를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평생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내가 30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지 않고 그냥 당원으로 살았다면 나도 인민들에게 원한을 살 정도로 부패하고 타락했을 것인가.

인간......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디까지를 믿을 수 있는 존재인가. 인간의 이성이란 본능을 이길 수 없고, 그것이 인간의 한계 아닐까. 그 ‘인간의 한계’가 사회주의 몰락의 절대 원인은 아닐까......(pp.119~120)

12. 시민단체에 대한 엉뚱한 발상
- 선진국에는 그 많은 시민단체들이 있다면, 사회주의 국가들에는 시민단체들이 있었을까, 없었을까......정치권을 감시한다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당을 감시한다는 것인데, 인민들이 자율적 조직체를 만들어 당을 감시한다?......어림없는 이야기였다. 사회주의는 시민단체들을 용인하지 않아 몰락했을 수도 있다......(p.143)

13. 새로운 규율-이미 익숙해진 위계질서: 장교와 사병, 선배와 후배
- 인민군 부상자들을 치료하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장교가 허벅지에 부상을 당해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는데, 자기는 나중에 할 테니 사병들부터 먼저 치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의시와 간호원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건 국군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그전에 우리는 국군 사병을 치료하다가도 장교가 나타나면 당연히 장교부터 치료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니까요. 사병부터 먼저 치료하게 한 것은 그 장교가 특별히 마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인민군 전체의 규율이 그렇고, 그건 당원들이 인민들을 위해 솔선수범하고 희생하는 기본정신에 입각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사와 간호원들은 모두 감탄을 했습니다. 아,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고 저는 한순간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p.180)

14. 아이들!~
- 아이들은 인간의 꽃입니다. 그러니 저희 보육원은 인간의 꽃밭입니다....(중략)...제가 무작정 인민군을 따라나서며 그렸던 세상을 아이들을 길러내면서 만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꿈꾸는 미래이니까요.(p.186)

15. 화장실 청소-이기심과 이타심
- “이런 일이 어때서 그래. 이게 좀 좋아. 내가 청소를 말끔히 해서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 깨끗한 변소를 쓰게 되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나. 자네 모르지? 예쁜 아이들 똥에서는 쿠린내가 아니라 단내가 나는 거.”(p.197)

16. 인간의 생존조건 : 즐거움과 삶의 의욕

17. 이타행도 이성?
- 인간 스스로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단련 즉 ‘연습’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이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족이나 더 큰 사회적 관계 속에 놓일 대 ‘연습’을 통해 습득한 이타행 또는 더 큰 자아를 위한 자기헌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터득하게 하는 것도 이성이다.(p.218 황광수의 해설글)

18. 큰연습
- 인간은 기나긴 세월에 걸쳐서 그 무언인가를 모색하고 시도해서, 더러 성공도 하고, 많이은 실패하면서 또 새롭게 모색하고 시도하고......그 끝없는 되풀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한 ‘연습’이 아닐까 싶다. 그 고단한 반복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 그것이 인간 특유의 아름다움인지도 모들다.(작가의 말)

p.s. 예술가는 꼬뮨주의자
- “진정한 작가란 어느 시대, 어떤 정권하고든 불화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이란 오류를 저지르게 되어 있고, 진정한 작가는 그 오류들을 파헤치며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정치성과 전혀 관계없이 진보적인 존재일 수 밖에 없으며, 진보성을 띤 정치 세력이 배태하는 오류까지도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끝없는 불화 속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다.”(작가의 말).

 

 * 인용은 조정래. 2006. [인간연습].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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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권력

2007/01/18 20:45
 

1. 깊히 생각하고 스스로 생각하기


2. 먼저,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존재’를 인간으로 파악했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따라서 쪼금 경직되게 설명하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노예나 몸종들은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았고, 고상한 척하는 귀족들이 인간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의 핵심은 주체의 출발점으로 ‘생각하는 존재’를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데카르트의 생각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등장하고, 그의 사유를 밀고 나간 라캉에 의해서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로 뒤집어집니다. ‘생각’과 존재’가 하나로 일치하지 않다는 발상입니다. 프로이트가 반역의 깃발을 든 것이지요. 프로이트는 ‘나’라는 존재가 거시기(이드)/자아/초자아로, ‘생각’은 의식/무의식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을 쪼금 더 비틀어서 라캉은 프로이트와 같으면서도 다르게 밀고 나가는데, R/S/I라는 라캉의 개념인데, R은 실재, S는 상징계, I는 상상계라고 합니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이 말하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우선 언어(상징계)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말해지는 대상, 즉  무언가가 존재(실재)해야 하며, 셋째로 말해지는 내용 혹은 대상에 어떤 고정된 의미가 부여될 수 있어야 한다(상상계)고 설명합니다. 좀 더 쉽게 갑시다. 실재는 사물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상상계는 이미지 또는 기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상징계는 말이나 언어(기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란께 그것이 더 쉽게 거시기 해불믄, 어떤 대상(실재 R)을 보고 말을 할려면 머리로 생각하고(상상 I), 말로 소리(상징 S)쳐지면 되는 것입니다.


3. 이 문제는 언어에 대한 문제의식이고 인간 인식에 관한 문제입니다. 언어나 말, 또는 호명되어서 사회적 정체성이 나타난다고 사고한 것입니다.


라캉은 언어학자 소쉬르의 문제의식을 끄집어 냅니다. 그래서 라캉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조금 더 밀고 가면, 가타리는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고 생성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앙티오이디푸스라는 반정신의학적 개념이 등장합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정신의학과 다르게 우울증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믄 항우울증제 같은 약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 상담을 통하여 정신의 구조를 분석하는 작업을 합니다. 이 작업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며, 그래서 정신분석이 정신의학보다 훨씬 비싸게 먹힙니다. 참고로 정신의학은 미국에서 DSM이라는 기준표에 따라 사람을 갖다 맞추는 문제이고, 정신분석은 환자의 무의식을 파악하여 드러내게 하고 치료하는 것을 말합니다.


4.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런 복잡한 ‘주체’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타자가 필요합니다. 뭔말이냐 하믄, 예를 들어 ‘은행나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가장 정확한 대답은 ‘은행나무 이외의 나무들이 아닌 것’이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말장난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은행나무’와 ‘다른 나무들’과의 차이를 드러내는 문제입니다. 은행나무의 타자는 ‘다른 나무들’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은행나무 이외의 나무들이 아닌 것’이라는 답은 내용이 없는 대답입니다. (여기서 답답한 사람들은 그냥 은행나무는 ‘부채꼴 모양의 노랑 잎을 가진 나무다’라고 악쓰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내용없는 답은 결핍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즉 타자를 통해 자신의 존재 결핍을 채우려고 하지만, 자신의 존재결핍을 채워줄 상대방 역시 존재결핍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순환’이라는 개념입니다. 주체와 타자가 끊임없이 상호 순환하면서 불완전하지만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실재(현실 또는 말하는 대상)는 원래 알 수 없다는 것이고, 심지어 그 존재조차도 알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것(실재나 현실)이 체현되거나 드러나는데 항상 뭔가가 부족(결핍)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욕망의 원인이 발생합니다. 그 무엇으로 채우는 것이 욕망의 만족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욕망(desir)과 요구(demande)와 욕구(besoin)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욕망은 상징으로, 요구는 상상, 욕구는 실재로 이해하면 됩니다.


5. 이런 사유들과 관련하여 ‘착취라는 현실(R)에 대한 계급투쟁이라는 상징(S)을 가상(I)적으로 동일화하는 것이 계급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착취하는 자본주의 현실은 존재(실재)하나 항상 그것은 왜곡되고 결여되어서 나타나고, 이것을 돌파하고자 하는 계급투쟁을 임의로 설정(기의/가상)하여 말(언어/상징)하는 것이 계급적 이데올로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인데 자본권력과 노동권력이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런데 맑스가 이제까지와의 계급투쟁과는 다르게 스스로 소멸하는 계급으로 노동계급을 설정한 것이 특이할 만한 점이다.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해체되는 것으로 설정해서 뭔가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프로레타리아 권력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국가권력으로 똑같이 작동해서 모든 것을 망쳐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레비스트로스와 같은 인류학이나 끌라스트르와 같은 고고학에서 권력이 어떻게 생성되고, 어떻게 권력으로 작동하지 않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모스의 ‘증여론’이나 맑스가 독일이데올로기에서 말하는 ‘선물’개념으로 뭔가 해답을 찾을려고 합니다. 막강한 권력을 지닐려면 자기 것을 다 내주어야 한다는 발상인데, 은밀하게 자기 몫을 챙기지 않고 확실하게 쏘는 사람이 권력을 장악한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밀고 가면 권력=선물=죽음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권력을 획득한 순간 자신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장난말로 하는 말이 대통령을 하믄 임기가 끝난 뒤에 스스로 자결하도록 하는 헌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리더 또는 대표, 또는 선배라는 사람들이 조직이나 모임내에서 구성원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성질내면 분명한 권력자이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사기 안치고 진짜로 다 내놓고 말하거나, 자신의 일부(생명, 재산, 사상 등)을 선물하면서-스스로 죽어가면서 말하는 것은 국가나 권력이 생성되지 않는 비국가적 조직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은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어서 스스로 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죽어가는 유기체인데 뭔가를 도모하는 사람은 죽을 때를 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발상은 공자나 불가의 윤리적 문제의식과 닿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재산, 자기의 생명, 자기생각(사상)에 대해서 깊히 사유해야 하고, 재산/생명/생각을 다 내놓고 공유하는 것이 뭔가 새로운 조직(꼬뮨)이 아닌가 고민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실재는 알 수 없습니다. 건투!!!

2006.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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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기] 박노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생, 그리고 군인과 아이

 만복이   | 2006·12·21 09:56 | HIT : 35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생, 그리고 군인과 아이 | 만감: 일기장  2006/12/20 20:27 

   

제 애독서 중의 하나는 다이쇼 시대의 일본 문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芥川 龍之介; 1892-1927)선생의 "슈쥬노 코토바" ("侏儒の言葉 ":"보잘것 없는 글쟁이의 말들"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요? 1922년 작)라는 일종의 명언집입니다. 아직은 한글로 안나온 것 같은데, 그건 아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 명언 중의 압권 하나는 이것입니다:


"軍人は小児に近いものである。英雄らしい身振を喜んだり、所謂光栄を好んだりするのは今更此処に云う必要はない。機械的訓練を貴んだり、動物的勇気を重んじたりするのも小学校にのみ見得る現象である。殺戮(さつりく)を何とも思わぬなどは一層小児と選ぶところはない。殊に小児と似ているのは喇叭(らっぱ)や軍歌に皷舞されれば、何の為に戦うかも問わず、欣然(きんぜん)と敵に当ることである。

 この故に軍人の誇りとするものは必ず小児の玩具に似ている。緋縅(ひおどし)の鎧(よろい)や鍬形(くわがた)の兜(かぶと)は成人の趣味にかなった者ではない。勲章も――わたしには実際不思議である。なぜ軍人は酒にも酔わずに、勲章を下げて歩かれるのであろう" (http://www.aozora.gr.jp/cards/000879/files/158_15132.html)


아주 대략적으로 번역을 하자면 대충 그렇게 될 거에요: "군인들은 작은 아이들과 같은 것들이다. 소위 '영웅적인 행동'을 기쁘게 여긴다든가 소위 '명예'를 좋아하는 이러한 그들의 처신에 대해서는 굳이 여기에서 언급할 필요도 없다. 기계적인 훈련을 귀하게 여기고, 동물적인 용기를 중요시하는 것은, 소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들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살육을 하는 것도 작은 아이들과 하등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특히 작은 아이들과 비슷한 것은, 나팔소리과 군가에 고무되어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고 적 앞으로 돌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군인들이 자랑하는 것은 필히 작은 아이들의 완구와 흡사하다. 번쩍가리는 갑옷이나 투구들은 성인들의 취향이 아니다. 훈장이라는 것도 나에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왜 술에 취하지도 않은 채 군인들이 훈장을 달고서 거리를 활보하는가?"




일제의 군사주의적인 광기가 사회를 꽉 잡았던 시절에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아쿠타가와선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약간 고치고 싶습니다. 군인이 작은 아이와 흡사하다 라기보다는 군대가 인간의 퇴영적인 심리를 십분 이용한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가부장적인 가정이 키우는 "강한 남자"의 콤플렉스를 이용하여 살육의 전문가인 군인을 마치 "진정한 남성"으로 포장하는가 하면, 인간의 로봇으로 만들려는 기계적인 훈련을 무슨 놈의 "낭만"으로 포장하여 팔지 않습니까? "용기"에 대한 숭배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간사한 전략이지요. 가부장적인 남성의 이미지에 익숙해진 사회에서 "담력이 좋은 남성"이 대접을 받게 돼 있고 군대가 이를 이용하지요. 한데, 자신과 남의 생명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란 인간의 가장 심층적인 본능인데 "용기"의 숭배는 그 본능을 스스로 압박하게 하여 그 본능의 발로에 대한 스스로의 수치심을 키우지 않습니까? 마치 중세적인 종교들이 섹스에 대한 수치심을 키우듯이 말씀입니다. 그러다가 온갖 가미카제, 육탄용사, 결사대 등등이 세상의 본보기가 되고,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돼 있지 않는 장삼이사가 "비겁한"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함께 "용감한 군인"에 대한 동경의 염을 갖게 되지요. 그런데 도대체 아쿠타가와 선생 시대의 평범한 일본인이 미쯔이와 미쯔비시가 중국에서 사업을 편하게 하기 위해 진정으로 목숨을 내놓을 필요가 있었나요? 오늘날의 한국인이 모 건설업체가 미 점령군의 총독부로부터 수주를 잘 받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자이툰 부대로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것은 과연 합리적이고 올바른 일인가요? 사실, 건군 이후로 한국군이 해온 일이란 무엇입니까? 남한 지배계급과 북한 지배계급이라는 두 개의 깡패 집단의 다툼의 과정에서 전자를 지켜준 것과, 두 번 정도로 상국의 부름을 받아 "화려한 외출"을 한 것 이외에는 뭐가 있나요? 군대를 당장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닌데, 이와 같은 기능들을 "신성한 병역"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가 아닌가요?  필요악일지는 몰라도 "신성한" 그 무엇도 찾아보기 어렵지요.  



출처 : http://wnetwork.hani.co.kr/gategateparagate/3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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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즘에 대한 오해(제도에 대해서)


- 이정우(철학아카데미)


모든 사상들이 그렇지만 노마디즘에도 중대한 오해들이 따라다니는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노마디즘을 해체주의적으로 읽는 것이다.

들뢰즈가 자신의 철학을 '구성주의/구축주의'라고 분명히 밝혔거니와,

노마디즘의 핵심은 해체보다는 구축에 있다.

그리고 해체와 구축을 대립(opposition) 개념으로 보는 것 자체가 오해이다.

해체와 구축은 언제나 서로의 안감=裏面인 것이다.

해체와 구축은 언제나 정도(degree)의 관점에서, 차생적/미분적(differential)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들뢰즈의 정치적 관심은 제도들을 해체하는데 있기보다는,

새로운 제도들, 새로운 삶의 양식들을 구성하는 것, 창조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과 창조는 항상 그 이면에 해체를 동반한다.

해체를 한 후에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바로 이 이미지가 들뢰즈에 대한 오해의

원천이다)

해체와 구성은 대립 관계도 아니고 선후 관계도 아니다. 한 사태의 양면인 것이다.

미분적/차생적 관점에서 볼 때에만, 기존의 제도들이 해체되는 동시에

새롭게 구성되어 나가는 과정을 볼 때에만 노마디즘을 이해할 수 있다.

들뢰즈가 흄에 관한 데뷔작을 쓰기 이전에 편집한 책의 제목이

[본능과 제도]이다. 그리고 [차이와 반복] 서문을 유심히 읽어보면, 거기에서도

제도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제도를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제도들의 동일성을 부단히 무너뜨리는 동시에 그 무너뜨림의 과정이

새로운 제도들의 창조/구성의 과정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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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07/01/18 20:38
 

나의 학문, 나의 사상은 자유를 구가한다. 때로는 만길 절벽 위에 우뚝 선 사자처럼 포효하고, 때로는 태풍처럼 휘몰아치고, 때로는 광인처럼 깔깔대고, 때로는 실연한 연인처럼 눈물을 흘려도 나의 학생들은 나의 그러한 모습 속에서 자신들의 영혼의 비상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획일적 잣대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  2005. 11. 14. 도올 김용옥



1. 김용옥은 자유주의자이다. 사상적 잣대를 들이댄다면 우익 자유주의자 정도 될 것이다. 전교조를 반대하거나 노동자나 계급, 맑스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고, 현실 자본주의에서 권력자나 독점자본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렇다.


2. 그러나 그가 남한 먹물사회에서 독특함이 강렬한 것은 워낙 우리사회가 보수적이고 경직되었기 때문이다. 전체흐름에 반역하는 생각이나 말은 용납되지 않는다. 월드컵이 그렇고, 반백년의 역사를 훌쩍 넘는 반공이 그렇고, 가부장시스템이 그렇고, 군대가 그렇다. 그런 곳에서 자신의 생각과 말을 실제로 한다는 것은 생명과 연결되는 문제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지금도 죽어가는가. 김용옥이 죽지 않은 것이 기회주의적 성향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열정과 잔머리가 발달된 인간이다.


3. 우리도 혹시 억압적인 담론에 휩쓸려 함부로 영혼을 팔지는 않는가. 자신의 생명의 보존과 편안함을 위해 잔머리만 성숙되어서 내면이 길들어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지는 않는가.


4. 그런 의미에서 위의 문장들을 읽고 느껴보자. 다시 깨워봄이 어떨지... 멀리 보자

미라나 냉동고기처럼 굳어져서 오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된장이나 고추장처럼 은근히 변형되는 맛이 기똥찬 꼬뮨주의자로 변태(metamorphosis)하자. 아~ 그러고 싶다.

나는 썩고 있지 않나...!


5. 健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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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층결정

2007/01/18 20:37
 

1. 정신분석학. 주체형성을 위한 중요한 거시기


2. '중층결정(Uberdeterminierung)'-심리적 원인은 중층결정 되어 있음


증상의 원인은 단일하지 않다고 생각한 프로이트는,


"유아기적 장면이라는 (증상을 발생시키는) 결정적 힘은 너무나도 감추어져 있어서 그것을 피상적으로 분석하면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즉 우리는 어떤 증상에 대한 설명을 나중의 장면들 중의 하나의 내용에서 발견했으며, 따라서 (분석)작업을 진행해 나가는 가운데 유아기적 장면들 중의 하나에서 같은 내용에 부딪혔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나중의 장면들이 증상을 결정하는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나중의 장면들이 초기의 장면과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나중의 장면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히스테리 환자는) 다양한 측면으로부터 동시에 일깨워지는 여러 계기들이 함께 작용하는 그러한 표상(관념)을 증상(형성)을 위해 선택한다는 것을 나는 하나의 (히스테리 증상 형성) 규칙으로 인정할 것이다. 나는 이를 다른 곳에서 다음과 같은 명제로 표현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히스테리 증상들은 중층결정되어 있다."

-프로이트, 1896년 논문 [히스테리의 병인론]


3. 우리가 받아들인 '중층결정'이라는 문제의식은 단순한 혁명적 표식에서 엄청난 삶의 해석과 혁명의 재구성을 사유하게끔 한다.


4. 증상의 원인은 단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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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관하여

2007/01/18 20:36
 

1. 여성이 만들어내는 길


그래서 삶이 짜라투스투라를 쥐었다 놓았다 한다.

나 잡아봐라 하면서 머리카락을 날린다.

살짝 고개를 돌리는 요염함. 삶이 도망치다가 쳐다본다.

결국 그것을 잡으러 뛰어가고 싶은 것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막 가리켜준다.

비지니스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미로다.

그러나 여행하는 사람은 구불구불한 길을 찾아나간다.

다급한 사람은 미로가 닥치면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행하는 사람은 길이 많다고 생각한다.

미로나 카오스, 길의 부재가 아니라 길의 넘침이다.

즐길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차이다.

꼬불꼬불하게 하는 길, 그게 여성이다.



2. 여성이 지닌 내적인 야성


무식한 남자들은 모르지만 여성은 그런 의미에서 사실은 진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것을 즐긴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게 놀라운 것이다.

아직도 원본을 찾는다면 그 편견 속에서 드러난 것을 전혀 못 볼 것이다.

여성은 지혜롭고 영리하고 길들여지지 않고 방랑하는 어떤 존재하다.

확정하려는 순간 빠져나간다. 히스테리라는 병도 그렇다.

여성은 즉 확정되지 않고 움직인다. 불안하게 하게 만든다.

남성들은 거기에 공포를 가지고 있다.

니체 이 완벽한 여자. 지하세계의 맹수, 내가 사랑하는 여성이라고 말한다.

남성의 자연보다 더 자연적인 교활한 유연함, 교육시키기 어려운 내적인 야성.

이 같은 공포가 있음에도 얼마나 매혹적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고병권의 [니체, 사유의 즐거운 전복] 강의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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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받은 자는 자기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1) 평가는 권력과 일정한 형태로 관계되어 있다.
2) 평가의 외부성은 자기신뢰에서 출발하는 드러냄이어야 한다.


0. 엄청난 책더미들을 배경으로 TV에 등장하는 전문가 집단들이 우리들을 대신하여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국회의원 나리들이 유권자들을 대신하여 정치하는 것과 같이 볼품없고 형편없는 일이다. 국가나 제도적 권력이 지니는 장치들과 더불어 신체, 사회, 성, 영혼, 경제 등 우리가 기정의 사실이라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개념들의 ‘객관성’을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평가로 인해 부여된 ‘객관성’은 당연한 것인가? 우리들의 삶의 과정에서 진행되고 있는 당연한(?) 시험이나 평가에 대해 스스로 깊이 음미하고 사유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1.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사회적으로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가는 개인의 정보이면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평가를 받게 되는 것과 관련해서 개인적 동기와 더불어 사회적 동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 우리들이 학교에서 배운 거시적인 규모의 왕족이나 권력자들의 정치적 역사보다는 가족, 음식, 주거 등과 같은 미시적 사회사를 연구한 페르낭 브로델(Femad Braudel)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사소한 생활의 변화조차도 사회․정치적 영향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으며, 일부 세력은 그런 사소한 것들을 정치적으로 주도하거나 이용하기도 한다고 이야기 했다. 더 나아가 미시적인 개개인 삶의 과정이나 변화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사유한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효과적인 훈육방법으로서의) 시험은 감시하는 위계질서의 기술과 규격화를 만드는 상벌 제도와 기술을 결합시킨 것”이며, 또한 시험이나 평가는 “규격화하는 시선이고, 자격을 부여하고 분류하고 처벌할 수 있는 감시”라고 말했다.

3. 감옥, 학교, 병원과 같은 기구들은 평가에 의해서 유지된다. 이 기구들은 평가 말고는 할 일이 없는 평가가 전부인 조직이다. 죄인, 학생, 환자와 더불어 간수, 교사, 의사도 평가기계로 작동한다. 죄인, 학생, 환자는 평가받음으로써 자신들의 사회적 정체성이 형성되고, 간수, 교사, 의사는 평가자의 위치에 있음으로 해서 자신들의 권력이 유지된다.

4. 평가는 보이는 것만 믿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눈에 보이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수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일 뿐이다.

5. 평가는 비교이다. 평가결과를 측정하고 동시에 상벌을 부여할 수 있는 한 자신과 타인들과의 끊임없는 비교가 점점 더 중요해진다. 따라서 평가는 궁극적으로 서열화를 요구한다.

6. 평가는 대상이 존재하며, 그 대상을 계량화, 숫자화 시킨다. 대상을 숫자화 시킨다는 발상은 구조주의적 생각이다. 구조주의 사유는 우리가 이세계에서 경험하는 현상들이 아무리 다양하고 복잡하게 보인다 해도 그것들을 내포하는 어떤 구조가 존재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전세계 사람들이 모두 식사를 한다. 그런데 그 밥 먹는 양태들이 무한히 복잡하다 해도 우리는 그 심층에서 어떤 법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식사법의 구조이다. 이 구조와 법칙을 가지고 ‘식사’라는 현상을 이해한다. 구조주의는 구체적인 것들을 추상적인 것들 속에 용해시킨다. 다양하게 들끓고 하나로 상징하기 힘든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전체적인 구도를 그린다는 생각이 구조주의이다. 이런 시스템의 핵심적 기술은 숫자화이다. 공무원들이 공문서를 통해 숫자로 다양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원래 공무원들이 숫자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근대사회의 거대한 담론이 구조주의이며, 그 담론의 핵심인 국가조직의 공무원들이 숫자로 세상을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구조주의적 사유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필요한 시기이다.

7. 평가는 기준이나 표준이 존재한다. 그 기준점은 100점이 아니라 0점이다. 0점을 어디에 위치 지을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따라서 평가는 통제를 위한 장치이며, 거기에는 권력이 작동한다. 0점의 위치선정에는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을 장악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이 권력이다. 더 정확히는 그런 욕망이 현실화된 구체적인 장치들이 권력이다. 평가는 권력이다.

8. 이런 평가 권력은 복종하는 자에게 드러나지 않고 중독되게 만든다. 모든 행동이나 능력은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평가결과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 개인은 자유롭다. 우리는 자유롭기 때문에 뭐든지 할 수가 있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는 신(神)이 인간을 심판을 하기 위해서 부여한 것이다.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책임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자유로운 능력은 높은 평가를 유도한다. 그런 평가결과는 당신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에 당신이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의 평가결과는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신의 심판이라는 소용돌이를 벗어날 수 가 없다. 외부에서 심판하는 한 개인의 능력측정으로서의 평가는 복종하게 만드는 규율장치인 것이다. 평가는 심판이며, 우리는 거기에 깊이 중독되어 있다.

9. 평가는 형사재판보다 훨씬 가혹하다. 시간(지각, 결석, 일의 중단), 활동(부주의, 태만, 열의부족), 품행(버릇없음, 반항), 말투(잡담, 무례함), 신체(단정치 못한 자세, 부적절한 몸짓, 불결) 및 성의 표현(저속함, 추잡함)등이 처벌 된다. 생각보다 권력이 치밀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푸코는 평가를 “지극히 사소한 일을 처벌하는 데에 모든 것이 이용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모든 사람이 처벌되고 처벌하는 보편적 구조 속에 포획되어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규칙 위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일체의 사항, 모든 일탈행위이며, 예를 들어 병사는 요구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마다 ‘죄’를 범하는 것이며, 아동의 ‘죄’란 경미한 규칙위반과 과제 달성의 무능력 등인 것”이다. 이런 평가는 “일탈 행위을 없애도록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명료하게 정해진 ‘인위적’질서가 만들어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이는 것만 평가하면서 보이지 않는 내면의 영역까지 통제하려는 것이 평가의 의도이다.

10. 자기배려에 기반한 드러냄이 최고의 평가이다. 복종하게 만드는 권력이 개입하지 않고 자기신뢰에 따른 자발적 평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네이버(www.naver.com) [지식in]글 따위에서 별점이나 내공을 부탁하는 행위, 자기 자신의 사진을 올려 요염함을 뽐내는 것은 새로운 자발적 평가행위이다. 거기에는 0점도, 기준점도, 숫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질서가 부여되지 않는 그 무엇에서 자신이 직접 기준점이 되며, 그 기준이 언제나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계획한다. 차이를 인정하는 것하고 외부평가를 통해 서열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평가는 이처럼 ‘주어진 것’을 넘어 자발적으로 ‘만들어져야’하는 것이다. 평가는 스스로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고,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지 외부에서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이제 통제와 조작에 대한 저항의 문제가 발생한다.

11. 길들어진 사회적 기계에서 자율적 주체로 자신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는 기존의 구조주의적 분석과 사유를 벗어나 새로운 무의식 분석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율적 주체성을 생산하는 방식. 새로운 주체성을 생성하는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평가받은 자는 자기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2006.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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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국기에 대한 맹세를 추억함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조국의 부름을 받아 총을 드는 것’을 신앙생활처럼 여기던 죽마고우
위대한 소비에트연합과 빨간 깃발에 충성을 다짐케 만든 상징 조작들
'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소련·중국·북한과 같은 ‘현실 사회주의적’ 사회들에 대해 정치학자들은 ‘극단적으로 정치화된 사회’라 말한다. 추수가 ‘수확을 위한 전투’가 되고, 생산은 ‘속도전’과 같은 ‘돌격대’ 방식으로 이뤄지는 등 개인에 대한 정치적인 호명이 모든 분야에서 존재한다는 말이다. 소련이 일상적 생활과 언어를 극단적으로 정치화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데, 1980년대의 말기적인 소련 사회에서는 정치적 언어를 일상에서 잘 쓰지 않았다. ‘사상 학습’에서 ‘지도자의 말씀’들이 인용되고 ‘당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대한 미사여구가 남발돼도 일상적으로는 노망에 든 듯한 브레즈네프 공산당 총서기관과 같은 지도자들은 관심 밖이거나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소련 사회가 낡은 체제를 아래로부터 전복시킬 힘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는 상당 부분 상실해가고 있었다.

국가와 군에 대한 외경의 정서

당시 브레즈네프는 누군가가 써준 연설문조차도 제대로 낭독해내지 못할 만큼 노쇠해 있었는데 그에게 국민은 냉소와 멸시를 보냈다. 이렇게 구체적인 ‘지도자’들이 권위를 잃었지만, 국가나 군사력에 대한 소련 국민의 태도는 마치 독실한 교회 신도들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지금도 1980년대 중반에 중학교 동급생들과 나누던 대화가 기억난다. 몇몇 동급생의 형이나 친척 등이 아프간을 침략하는 소련군의 일원으로 아프간에 파견돼 있었다. 한 동급생이 아프간 빨치산들의 ‘무자비함’을 이야기하자 다른 친구가 응수했다. “그 짐승들에게 포로로 잡히느니 수류탄 하나만 남아 있다면 남자답게 그냥 자폭하고 마는 게 낫지. 저 짐승들 죽이고 명예도 세우게 말이야.” 그것은 ‘사상적 건전성’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나온 말로 평범한 소련 청소년의 의식 세계를 잘 반영한다. 브레즈네프가 아프간에 보낸 군대와 ‘나’는 동일시됐으며 ‘전우애, 담력, 희생정신, 조국 사랑’에 대해서는 토를 달 수 없는 분위기였다. 국가와 군대가 도덕적 최고선이었기에 거기서 침략의 불법성이나 잔혹성은 논외로 치부됐다. 소련 군대가 철수되고 침략이 정치적 오류로 판명된 1989년 이후에도 많은 소련인들은 “잘못은 정치인에게, 명예는 우리 전사들에게 있다”는 식의 사고를 했다.


△ "조국과 공산당에 맹세한다!" 2002년 5월 소년 공산당원들이 모스크바 크렘린궁 근처 무명용사의 무덤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EPA)

비판적 지식인을 부모로 둔 아이들도 분위기에 휩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필자의 한 죽마고우는 1980년대 말 병영에서의 구타나 자살 사건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돌자, “조국을 지키는 것이 남자의 의무고 어차피 군대 갈 사람은 가야 하는데, 징병 대상자들에게 무술을 가르쳐 악질 고참을 막는 방법을 익히게 하자”라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침략과 같은 만행이 ‘조국을 지키는’ 일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군대’ 같은 단어가 나오면 흥분된 말투로 변했다. 그에게 ‘조국의 부름을 받아 총을 드는 것’은 이성의 개입이 불가능한 성(性)이나 신앙생활과 같은 진리와 격정의 세계에 속했던 것이다.

서민을 총알받이로 만들고 고참의 주먹 앞에서 인격과 자존심을 상실케 하는 군대가 어떻게 해서 수많은 이들의 의식 속에서 이와 같은 ‘신성한’ 위치를 획득하게 됐는가? 사회경제적인 이유에서부터 성·정치 영역까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예컨대 남성의 ‘군인’ 이미지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권위의 근거가 된다는 것은 ‘군 사랑’의 이유 중 하나다. 그 외에도 시민사회를 압도한 ‘과대 성장 국가’의 상징 조작도 ‘국가와 군에 대한 외경’의 정서를 체계화하고 유지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을 것이다. 성장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상징·의례들이 개인적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없는 내밀한 ‘나만의 세계’에 속하기에 국가의 상징 조작 앞에서 개인은 무력해진다.

그 애국가 가사에 구토를 느끼다

예컨대 남한만큼이나 크고 작은 행사마다 자주 울려퍼졌던 소련 애국가를 생각해보자. 1944년 스탈린의 지시로 제정된 소련 애국가는 ‘위대하고 강력한 소비에트연합’과 ‘빨간 깃발에 영원히 무조건 충성을 바칠 우리들’의 이미지를 합치게 한다. ‘나’의 존재를 영원히 기탁해도 될 위대한 조국의 힘…. 우리 무의식의 ‘아버지’ 원형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이 ‘조국의 힘’의 이미지는 애국가를 들으면서 자란 사람들의 몸에 배게 된다. 1944년 이전까지만 해도 소련 애국가는 국제 노동운동의 노래 ‘인터내셔널’이었지만, 그 뒤 전세계의 3분의 1이나 장악하게 될 스탈린 제국에는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가 어울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재미있게도 새로운 자본주의적 러시아는 과거 소련 시절의 애국가 음악은 그대로 놔두고 가사만을 ‘상황에 맞게’ 변형시켰다. ‘무조건적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이 보호하는 신성한 우리 조국’이 됐으며, ‘조국에 대한 충성이 우리에게 영원히 힘을 줄 것’으로 돼 있다. 남한의 애국가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나오듯이 푸틴 정권의 새 애국가에는 ‘남쪽 바다부터 북극권까지 놓인 우리의 광활한 숲과 바다’에 대한 긍지가 강조된다. 필자는 이 애국가를 구토가 나는 심정으로 들으며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그러면 그 광활한 땅덩어리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도 보장받지 못하는 빈민까지도 ‘민족적 긍지’를 가지고 오늘과 같은 참경에 내몬 상전님들께 ‘영원한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가?

애국가는 정교회 신앙이 지배했던 1917년 이전의 러시아의 주기도문을 ‘최고의 신성성 텍스트’로서 대체했지만 이외에도 젊은이들을 ‘선량한 국민’으로 만드는 의례들이 대단히 많았고 개인 생활의 내밀한 부분까지도 개입할 수 있다. 예컨대 1917년 이전의 성탄절을 대체한 소련 국민 최대의 가족적 명절은 신년맞이였다. 가족끼리 신년을 맞이할 때 텔레비전을 켜놓고 밤 12시를 기다리는 것은 소련 체제의 ‘국민다운 습관’으로 자리잡았다. 송구영신의 12시가 되자마자 텔레비전에서 크렘린궁의 커다란 시계가 보이고 모스크바 중심의 붉은광장의 풍경이 보였다. 국가의 중심축이 개인적·가족적 시공간의 중심축까지 돼야 한다는 것은 이 ‘국민다운 습관’의 의미였다. 더군다나 정치적 색채가 지배적인 5월1일의 노동절이나 11월7일의 혁명기념일에는 시위대에 합류하고 군사의 사열대를 보고 애국가의 울려퍼지는 소리에 ‘차렷’ 하고 경건한 표정을 짓는 것은 거의 계절 의례였다.


△ 빨간 깃발에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소년 공산당 여름 캠프의 조회 모습(왼쪽). 군사주의적 색채가 짙은 소련 시대의 포스터(가운데)와 전승기념일 포스터.

군인들이 행진하고 탱크들이 굉음을 내면서 지나가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그 정치적 명절의 광경은 대다수 소련 국민에게 결정적인 성장기 경험이 되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한 달에 한두 번씩 ‘행군과 군가 가창대회’란 이름으로 ‘군인답게’ 행진하고 군가를 부르고 군기를 방불케 하는 소년 공산당의 깃발 앞에서 충성의 맹세를 바치고, 고등학생이 되면 정식 교련수업을 받는 것이 일반 수업 못지않게 중요한 ‘정신교육’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필자는 교련수업 때 자동총을 정해진 시간인 40초 내에 분리·조립하지 못해 교련 교사에게 “자동총도 제대로 분리·조립할 줄 모르는 남자에게 매력을 느껴 결혼할 여자가 어디 있겠냐”라는 질책을 들었다. 당시에는 자존심이 무척 상하기도 했다. ‘남자의 매력’과 자동총을 다루는 솜씨, ‘남자의 자존심’과 ‘빨간 깃발에 대한 충성 맹세’가 동일시됐기에, 아프간의 양민을 학살한 소련 군인들은 젊은이들의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적 상징 세계의 존재가 ‘국민’의 의식을 결정짓는 슬픈 광경이었다.

한때 폐지됐던 교련 수업 부활

대자본들이 그 국적과 무관하게 전세계로 문어발을 뻗치는 요즘 세계에, 미국 학교에서는 ‘국기에 대한 충성의 맹세’가 강조되고, 러시아에서는 한때 폐지됐던 교련 수업이 부활되고, 대한민국에서 대형 스포츠 행사마다 ‘태극기의 바다’와 흥분이 이루어지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황우석씨가 한 발언을 좀 바꿔보자면, 자본의 이윤 추구에 국경이 없지만 자본가들은 국민국가의 행정력과 군사력을 필요로 하고 착취 대상자들을 국적별로 유순한 ‘국민’으로 묶어둘 필요를 느낀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저들의 ‘게임 룰’을 그대로 받아들여 ‘신성한 국기’ 앞에서 ‘우리’의 자본을 위해 ‘남’의 나라 노동자를 유사시에 살육할 것을 맹세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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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근대를 경제적인 차원에서 하나의 피라미드로 표현하지 않습니까? 자본의 집중이 고도화된 후기 자본주의 같으면 맨 위에 있는 극소수의 다국적 대기업 대주주들을, 밑에다가 대다수의 고용 근로자들이 피라미드형으로 받쳐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19세기 – 20세기초기의 근대 사회들을 보면 경제 뿐만 아니고 욕망의 충족이 허락되는 정도를 척도로 삼아도 피라미드형 사회의 그림이 그려질 것입니다. 예컨대 당대의 근대 사회의 준거틀로 인식됐던 빅토리안 시대(1837-1901)의 영국을 생각해보시지요. 귀족층이나 부유한 중산층의 성인 남성들은, 말로는 "자제의 도덕"을 들먹여도 고급 포르노그래피나 에로틱 문학을 열람한다든가, 고급 매춘부의 고가 "서비스"를 이용한다든가 등의 성적 욕망의 자극과 충족에 있어서는 별다른 제한을 느끼지 않았던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하류층의 매매춘 행위 같으면, "전염병 방지법" (1864, 1866, 1869)과 같은 국가적 위생기구의 통제와 교회, 자선가의 지탄을 늘 받아야 됐지요. 남성의 성욕 충족은 쉬워도 여성에게 "가정주부의 덕목"이 강요됐으며, 성인의 성생활이 다채로워도 청소년의 자위 행위마저도 "비도덕적이며 비위생적인", "힘과 담력의 함양을 방해하는" 요소로 규탄받았지요. 즉, 그 성적 욕망을 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충족시킬 수 있었던 부유한 성인 남성이 "욕망의 피라미드"의 상부를 이루었지만, 그 상부를 받쳐주는 것은 "자제"가 강요된 대다수의 빈민, 여성, 청소년들이었습니다.
  
  다소의 차이도 있었지만 "욕망의 피라미드"의 기본틀이 초기 근대의 조선에도 그대로 이식된 것 같습니다. 중류 이상의 성인 남성이 요정에서 〈조선미인도감〉이나 권번의 "초일기(草日記)"의 유혹적인 사진으로 그 색욕을 자극하여 기생을 불러 노는 것은 어려운 일도 이상한 일도 별로 아니었습니다. 아니, 직업을 찾지 못한 대학 졸업생 - 소위 "고등 실업자" - 이라 해도, "중류" 남성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느꼈던 이상 유곽에 들락날락거리는 것을 다반사로 삼았습니다.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의 명작 〈레디 메이드 인생〉(1934)에서 법률 책을 잡혀 술집 갔다가 유곽에 가는 몇 명의 무직 인텔리의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카폐 여성들을 희롱하는 것을 특기로 삼는 염상섭(廉想涉, 1897 ~1963)의 소설 〈만세전〉(1922)의 주인공 "이인화"의 표현대로 "여성의 뭉실뭉실한 살"을 걱정을 잊기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은, "중류"성인 남성의 일종의 계급적인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절지"(折枝 – "꽃 꺾기" – 기생 부르는 일의 별칭)가 "위"의 일상의 일부분이 된 개화기, 일제 시절의 사회에서는, 연령적, 사회경제적, 성별적 "하부"에 강요했던 것은 역시 맹목적인 "자제", "정숙", "정조"였습니다.
  
  〈황성신문〉(1909년 9월3-4일, 논설 "조혼의 폐해")이 조혼 (早婚)을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주된 원인 중의 하나는, "규문의 일"(즉, 10대 부부의 성관계)로 남성의 지기(志氣)가 박약해져 민족을 위한 영웅, 사업가나 학자로 될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10대 중,후반의 청소년이 근대성 담론의 차원에서 사회적 "보호"의 대상물로 전락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개화기입니다.
  
  "정결과 정조를 늘 지켜라", "훌륭한 아내와 어머니가 돼서 근대적 학식을 익혀 민족 영웅이 될 사내 아이를 어릴 때부터 잘 가르쳐라"(〈대한매일신보〉, 1909년 11월17일자, "여자 교육에 대한 의론")와 같은 요구는, 여성에게는 한층 더 강력했습니다. 한국 전통 에로스의 진수라 부를 만한 〈춘향전〉을 "음탕교과서"(
이해조, 〈자유종〉, 1910)라고 매도할 만큼 빅토리안적인 "정숙"과 "자제"가 절대시됐던 것이지요.
  
  우리는 대개 개화기 때 성취한 것 중의 하나로 여성을 위한 근대적인 교육을 꼽지 않습니까? 물론 1910년 이전에 근대 교육의 수혜자가 된 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했지요. 1909년 같으면 공립, 사립 보통(즉, 초등) 학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은 1,274명이었는데, 여성만이 다니는 이화, 정신(貞信), 배화, 숭의와 같은 사립 고등보통 여학교의 수는 말 그대로 열 손가락으로 셀 만했습니다. 수백 명에 불과했던 그 신식 학교 여학생들은 대개 개화 지향적인 신흥 지배계급에 속하거나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여, 나중에 선교사 밑에서 일하게 돼 있는 "주변 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은 여학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었습니까? 기독교 계통의 계몽주의자 노병희(盧炳喜)가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1909년에 발간한 〈여자소학수신서〉라는 그 당시의 전형적인 여성 윤리 교과서를 한 번 펼쳐봅시다.
  
  그 제일과는 – 예상대로 – "얌전"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고 그 내용인즉: "대저 여자의 행하는 것과 앉는 것과 눕는 것과 일어나는 것은 남자와 다름이 많으니 마땅히 얌전하고 씩씩하며 단정하게 하되 머리를 자주 빗으며 윗옷과 치마를 (…) 깨끗하게 하고 (…)
서기와 앉기를 기울게 말며 거만한 모양을 드러내지 말며 크게 웃지 말며 소리 지르지 말며 공연히 심술내며 성내지 말며 음식 먹을 때에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말며 (…) 한 마디라도 헛되이 말며 (…) 경망하다는 책망을 없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마땅히 얌전해야 한다"… 말 그대로 노예 교육이라고 할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개화기 때 최초로 근대적으로 정형화된 뒤에 과연 한반도에서 그 족적을 감춘 적이 있었습니까? 물론 〈엽기적인 그녀〉와 같은 최근의 영화들을 보거나
엄정화와 같은 대중문화의 여성적인 우상들을 보면 요즘 "발랄한 여자"가 어느 정도 하나의 행동 패턴으로 그 위치를 획득했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데, 그게 오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속에서의 '발랄한 그녀"는, 일상 생활 속에서 개화기 식의 그 "얌전함"에 그대로 옭매여 있는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일종의 대리 만족을 제공하고, "얌전한 여성"을 "정상"으로 알고 있는 남성들에게 이질적인 여성상을 맛보게 하는 재미를 가능케 하는 것이지요. 영화는 아무리 "발랄"해도 회사 생활이나 가정 생활은 역시 "얌전한 행동", "단정한 외모와 의상", "누나나 어머니와 같은 인내심과 자상함" 등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독립적인 자아를 찾으려는 여성에게는 "얌전"은 저주와 같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여성에게 순종주의를 강요하려는 사회로서는 아주 필수적인 이데올로기지요.
  
  그 교과서의 내용을 계속 말씀드려 볼까요? 물론 여성의 "일"로 방직과 음식 만들기, 집안일하기, 쓸기와 닦기를 제시하고 특히 음식 만들기를 어릴 때부터 배우기를 권하는 것이고, 여성의 본분으로서 특히 부모 섬기기와 시부모 섬기기를 강조하지요.
  
  "시부모가 부르시거든 공순히 공경하며 대답하며, 먹을 음식이 있거든 먼저 드려 공경하고, 일이 있을 때 그 음성을 살피며 괴로움이 있을 때에도 성내지 말고 얼굴빛을 화평하게 하며 말을 공순히 하며 부드러운 기운과 참는 마음으로 그 당한 일을 참아 지내라"… 어떻습니까? 이 교과서가 나온 지 이미 거의 100년 가까이 됐지만 한국 남성이 하루에 집안 일을 하는 시간이 평균 30여 분 정도 되고 "음식 만들기" 정도는 아직까지 "당연히 여자가 해야 할 일"로 치부되지 않습니까?
  
  이 교과서에서처럼 남편을 더 이상 "부녀자의 하늘"로 부르지 않으니까 정도의 차이야 당연히 있지만 지금도 술 먹은 남편이 밤 늦게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오면 아내로서 화내지 말고 상을 차려주는 것이 "여성다운 인내심의 덕"으로 보지 않습니까? 즉, 개화기 때 정형화된 남성우월주의적 근대의 젠더 담론은 지금 비록 그대로 존속된 것은 아니지만 그 노예적
  
  거짓 "도덕"의 골자인 순종주의의 강조는 계속 이 시대의 여성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성에게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제대로 나누어주지 않는, 남성이 실권을 잡은 사회인 만큼 여성에 대한 초기 근대의 극단적인 억압성이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한국 개화기의 근대는 남성의 욕망을 부추기면서도 여성의 욕망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억압하는 방향으로 그 틀이 잡힌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는 물론 이웃 나라에 비해서도 훨씬 심한 성리학적 사회의 반(反)여성적인 성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컨대 1850년대에 태평천국의 반청 (反淸) 봉기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혁혁한 공로를 세운 태평군의 여군 (女軍)과 같은 존재를, 조선말기의 어떤 민란에서도 아마도 찾기가 힘들 듯합니다. 민중 투쟁에서의 여성의 참여야 당연히 있어서도 수많은 여성이 무기를 든 투사가 된다는 것은 조선 사회로서는 상상하기가 어려웠던 것이지요. 물론 태평천국 때의 여군의 성분을 보면 상당수가 광서성의 장족(壯族) 출신들이었는데, 모계 사회로서의 면모를 부분적으로 간직해온 장족의 젠더 질서의 구조가 조선은 물론, 가까이 사는 한족과도 많이 달랐습니다.
  
  그런데 한족이라 해도, 남성보다 더 적극적으로, 더 용감하게 폭력 투쟁에 앞장서는 여성 투사의 상을 꽤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감호여협(鑑湖女俠)"이라는 아호를 가질 만큼 어릴 때부터 말타기와 검술 등을 즐겼던 청나라 말기의 혁명 투사 추근(秋瑾: 1875~1907)을 생각해보시지요.
  
  아이를 가진 뒤의 남편과의 이혼과 일본 유학, 일본에서의 동맹회라는 공화주의 조직에서의 맹활약, 귀국 이후의 여성 신문 발간과 비밀리의 혁명군 조직, 그리고 굴복함이 없는 장렬한 죽음…
잔 다르크는 그 "애국 정신" 덕분에 개화기의 조선 신지식인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를 모은 인물이었는데, 살아 있는 잔 다르크, 즉 추근처럼 남편도 버릴 줄 알고 칼도 들 줄 아는 여성을 동지로 삼기에는 "자강회"나 "신민회"의 남성 계몽주의자들은 개방적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남존여비 사상을 "양처현모"라는 방식으로 근대화시켜 새로운 젠더 이데올로기를 창출한 메이지 일본의 영향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구한말의 여성을 위한 수신 교과서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일본의 수신 책을 본딴 것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성의 목을 옥죄는 끈질긴 유교주의와 일본 영향에다가 여성을 "얌전" 등의 이름으로 압박한 것은 바로 그 당시의 조선 신지식인계의 젠더 담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던 기독교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조선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이 1886년에 바로 선교사들에 의해서 설립됐다는 것도,
황신덕(1898-1983)과 같은 "주류"의 신여성이 "조선 부인의 생활에 광명은 기독교이었다"라고 공언하는 등 일제시대 이후의 "개명한 여성"들이 대개 기독교와 인연이 두터웠다는 것도 다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이화학당을 세운 선교사들이 기독교 전파를 근본적인 목적으로 세워 그 학당에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심어줄 수 있는 미래의 주부들을 양성할 계획으로 교육 사업에 종사했다는 것까지는 우리가 보통 잘 인식하지 않는 듯합니다. 구미 사회의 보수적인 종교계를 대표했던 그들이 "가정과 교회에 충실한 정숙한 부인" 만들기를 목적으로 삼은 것이었는데, 이와 같은 젠더의 논리는 아주 쉽게 조선의 성리학과 접목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계몽기의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대개 기독교가 "우주와 사회의 절대적이며 전반적인 진리"로서 성리학을 그대로 대체하면서 상리학적 색채를 띠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성 억압적인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는 그 접목의 과정은 아주 자연스러웠습니다.
  
  개화기 때 조선에 이식되어 유교화된 기독교의 여성관을 살펴보기 위해서 초기 기독교 문학을 조금 흝어보는 게 어떨까요? 예컨대 기독교적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전형적인 친일 언론인
이상협(1893-1957)의 소설 〈눈물〉(〈1913-1914년 〈매일신보〉 연재)을 보시지요.
  
  거기에서 관료였다가 근대적 실업에 투신한 은행가 서협판의 딸 서씨부인은 바로 결함이 없는 모범적인 규수입니다. "남자의 안목이 황홀할 정도"로 용모가 뛰어나지, 엄격한 유교적인 가풍 속에서 자라와서 남편을 섬기는 정성과 예의가 대단하지, 부모들이
정해준 가정의 사업 계승자인 조필환과 "아무런 추잡함이 없는 순결하고 신성한 연애"를 잘하여 결혼하지 – 말 그대로 문제될 게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조필환에게 한문까지 배웠으니 여중군자인 셈이지요. 부유한 집에서 순결하게 성장하고 "여자에게 필요한 만큼" 교육을 조금 받고, 부모를 섬기고 남편을 내조하는 "정숙한 규수"야말로 본인들도 대다수 상류층이나 중산층에 속했던 계몽주의자들의 긍정적인 여성상이었던 모양입니다.
  
  서씨부인과의 대척점에 서 있는 주인공은, 그 남편 조필환을 유혹하여 일시적으로 현명한 부인을 버리게 만든 악한 기생 "평양집"입니다. 지체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그 천한 "평양집"은 남자를 유혹하는 음탕함이 가득 찬데다가 성냄과 시기심이 많고 올바른 여덕(女德)이 뭔지도 모르는 부류지요. 그런데 이러한 부류도 결국 구세군의 설교로 그 악행을 깨닫고 뉘우치고 하나님을 믿게 되니 서씨부인과 조필환의 가정 평화가 결국 회복되고 맙니다.
  
  "정숙한 숙녀"와 "음탕한 요부"라는 두 범주로 모든 여성들을 나누고 심판하는 남성중심주의적, 중산층 위주의 이분법, 그리고 "가정"과 "종교"의 결합… 개화기 때 처음으로 마시게 된 이 독약의 여독(餘毒)은 지금도 사회의 곳곳에서 남아 있어 우리 몸과 마음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시지요. 한국 사회에서 지금이라도 자기 친구나 가정에게 자신과 동거하고 있는 여자 친구를 "나의 동거녀"라고 소개하려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하겠습니까? 노르웨이 같으면 20대 중에서 결혼한 쌍들보다 동거하는 쌍이 더 많고 "동거녀"나 "동거남"은 "부부" 못지 않게 정상적인 명칭이 됐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신성한 가정"의
허상을 그대로 붙잡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공인(公人) 여성으로서 "나는 레즈비안"이라고 공언하기가 쉽겠습니까? 빅토리안 시대 가정 윤리주의의 철폐, 남들과의 다양한 형태들의 평등한 성적인 결합을 용인하는 개인 만들기 차원에서는 우리로서 아직 갈 길이 참 먼 것 같고, 대형 교회들이 지금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보유하는 이상 그 길로 가기가 그리 쉽지도 않을 듯합니다.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이 만든 "양처현모"라는 표현을 개화기 때 "어머니"와 "후사(後嗣)"가 중시되는 조선 식으로 "현모양처"라고 바꾸었는데, 크게 봐서 이는 19세기 후반 구미 지역의 중산층 사회의 위선적이며 억압적인 성적 모럴을 기원으로 해서 그 내용이 유교화됐다 뿐이지, 이렇다 할 만한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던 듯합니다.
  
  "현모양처"가 돼야 된다는 성차별적인 가치관을, 식민지 시대의 교육을 받은 대다수의 "신여성"도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보통 "신여성"들을 "사회 활동가"로 상상하지만, 실제로 공산당 지도자와 동지 결혼하여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거나 아예 독신으로 살면서 사회 활동을 하는 소수(
박헌영의 부인 주세죽, 최창익의 처 허정숙, 독신녀 김활란 등)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신여성"들의 꿈은 남편을 보필하여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정도였습니다. 남성은 호탕해야 하지만 여성은 정조를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 그들도 그대로 길들여지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면, 유부남인 애인과의 동반자살(1926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프라노이자 여배우
윤심덕(尹心悳)과, 남편 김우영과의 이혼 과정을 그 유명한 "이혼 고백장"(〈삼천리〉, 1934년 8-9호)에서 솔직하게 서술하고 무책임한 애인 최린으로부터 당당히"정조 유린에 대한 위자료"를 요구해 합의금을 받는 데에 성공한 화가이자 문필가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은 진정한 영웅으로 보입니다.
  
  왜 굳이 "영웅"이냐고요? 여성의 욕망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던 근대 초기의 사회에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이 2명의 조선 여인들은 개인적 불행을 끝까지 감수하면서 그 욕망을 솔직하게 실천할 권리를 위해서 싸우다 갔기 때문입니다. 윤심덕은 아까운 젊은 나이에 죽고 나혜석은 죽음보다 더 무서운 무의탁 폐인의 생활을 몇 년 하다가 갔지만 둘 다 현모양처를 되라는 체제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한 셈이지요.
  
  이와 같은 "반란자"들이 암울했던 그 시대에 여성 몸의 독립의 길을 텄기에 오늘날의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페미니즘 운동을 자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둘 다 자산 계급의 딸이었지만, 왠지 그 몸의 주권을 되찾은 그녀들을 "혁명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햇빛이 보이는 오슬로에서 박노자 드림
  
  참고 문헌:

  
  
신영숙, "일제하 신여성의 연애결혼 문제", - 〈한국학보〉, 45, 1986.
  이배용, "개화기, 일제 시기 결혼관의 변화와 여성의 지위", - 〈한국근현대사연구〉, 제10집, 1999.
  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 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 책세상, 2001.
  
이길연, 〈한국 근현대 기독교 문학 연구〉, 국학자료원, 2001.
  Wells, Kenneth M. "The Price of Legitimacy: Women and the Kunuhoe Movement, 1927-1931." In Gi-Wook Shin and Michael Robinson, eds. Colonial Modernity in Korea.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1999.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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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2. 25

 

FTA 대신 만들어 10개년 농정로드맵, 이거, 정말 웃긴다. 간만에, 정말 웃어본다.

농업에 경영능력을 들이대고, 경영 능력없는 농가는 시장의 움직임에 의하여 퇴출되어야 한다는, 기업과 노동자에 대한 논리를 들이대는데... 글쎄올시다.

현재 20대 농가가 우리나라에 몇 개나 있을까? 2002년 통계로 정확히 3048가구가 20대에 농사를 짓는다.

서울특별시에는 딱 한 가구가 농사를 짓고 있다. 전라남도가 668호로 가장 많고, 경기도, 충청북도, 경상북도가 300호 이상의 20대 농업가구가 존재한다. 전라북도에는 203호의 20대 농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전체 농업인구의 55% 정도가 65세 이상의 농가이다. 65세 이상은 농사가 되든 안되든 농업을 안지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퇴출에 관한 얘기와 경영능력에 관한 것이 도대체 누구를 겨냥한 얘기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기본적으로 누가 농사를 짓고 있고, 우리나라 농업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 관해서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느낌이다.

전국의 3048호의 20대 농가... 한 대학교의 한 학년 수도 안되는 숫자가 우리나라의 "젊은 영농인이다." 그리고 5년 후에 우리나라 농업인구의 절반이 70을 넘어선다.

이런 숫자들로 주요 수치들을 검토해보자. 농가 인구가 전체 인구의 7.5%에서 2013년도에서 3.4%로 낮추겠다... 그냥 있어도 이렇게 된다. 10년 후면 30대 농업인구가 3000명대가 되고, 상당히 많은 농업인이 고령과 사망 등의 이유로 자연스럽게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서 헥타아르등 64세 이상 농민에게 24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된다. 역시 70% 이상의 고령 농민들은 1 헥타르 미만이므로, 어지간하면 논 좀 많이 가지고 있는 노인들은 평균 50만원 정도 받고 논 좀 파시라는 얘기랑 마찬가지다.

그렇게 해서 결국 6헥타르의 전업농 7만 가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이 농정 로드맵의 핵심이다. 실제 10년 후에 30대로서 농업의 허리를 담당할 사람이 지금 3000호 정도인걸 알고 하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30대로 범위를 넓혀보면, 전국에 4만 가구정도 존재한다.

어떻게 생각해도, 현재의 50대 이상의 가구는 어차피 늙어서 손댈 필요가 없으니까, 40대와 50대 숫자로 6만호라는 숫자를 꺼집어냈겠지만, 20대 농업인구 3천호를 놓고 보면, 지독하게도 농업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감추기 어렵다.

이제는 그만둘 사람이 더 이상 농촌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 그 다음에 내친 김에 몇 가지만 더 들여다보자.

이 6헥타르를 쉽게 하기 위해서 농지도 풀고, 구매를 쉽게 하지만, 이미 작년에 주말 농장 이름으로 3백평을 풀면서 증명이 된 것이 외지인들이 투자 목적으로 농지를 구매하게 된다는 사실이고, 현 경제팀은 이렇게 더 쉽게 농지를 풀고, 여기에 아파트와 공장을 지으려고 하는데, 이 농지 전환이 6헥타르로 간다는 건, 그야말로 당신들의 희망이다.

근데 이렇게 비농지 목적으로 인근의 농토가 계속 풀리면서 토지가격이 높아진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설령 6헥타아를 구입하더라도, 높아진 토지 가격 때문에, 더욱 더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국가가 전부 나서서 아예 구매해주고 임대한다면 모를까, 경자유전의 원칙과 신자유주의 원칙이 동시에 작용하는 현재의 농업 조건상, 이렇게 해서 6헥타아를 확보하게 되더라도, 이미 높아진 토지 구매 비용 때문에 경쟁력은 택도 없는 얘기다.

여기에 결정타를 먹이는 것이 내년에 실시하겠다는 추곡수매제다 폐지이다. 지금까지 그나마 10년 동안 우리나라 농사를 지켜온 추곡수매제 폐지를 다른 말로 번역하면, 6 헥타아르 만큼 크게 망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우리나라 농업수익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는가? 평균 1.5%의 수익률을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농가부채를 피해나갈 수 없다는 얘기다.

거기에 더욱 '그림의 떡'처럼 붙여놓은 농약과 화학물질을 차단한 농산물에 대한 우수농산물관리제도라는 거가 그렇다.

6헥타르, 즉 만 팔천평에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지을 수 있는 슈퍼맨 있으면 나와봐라다, 정말... 다이옥신 성분으로 이루어진 제초제 사용하지 않을 방법이 없는 만큼, 이 대규모 기업농화라는 건, 머리 속에만 있는 그야말로 상상 속의 경영이다.

상황이 이런데, 경영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정책지원을 한다는 얘기가 의미하는 바는? 머리 있고, 경영 능력이 있는 사람은, 1.5%의 수익률에 그나마 수급 조절 기능을 가진 추곡수매제도 사라진 상태에서, 그리고 6헥타르의 농토 역시 거꾸로 가격이 올라갈 상태에서 투자할 것인가?

경영 마인드가 있는 사람이면 절대로 이런 투자는 안한다.

우리가 원하는 변화는 좀 더 총체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소농 위주의 유기농 형태로의 사회적 전환과 이를 위한 단계적 계획 같은 것이지만, 지금 정부가 로드맵으로 제시한 건,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농업이 망할텐데, 그 때까지 뭔가 정부가 했다는 면피 이상은 아무 것도 아니다.

정말로 의지가 있다면, 이런 모순에 가득찬 6헥타르, 전문농업인 7만이라는 구호부터 폐지해야 한다. 이 대규모 소수 정예 기업농 방식은 온 국토를 망칠 뿐만이 아니라, 온 국토를 화학농으로 전락시킬 뿐이다.

게다가 이렇게 조각조각 만들어낸 6헥타르가 캘리포니아처럼 한 군데 바둑판처럼 몰려있기를 기대하는가?

또 다른 한편에서의 농림부 기준으로 농약과 제초제를 강화하는 종합계획이 수립되어 이미 집행되고 있다. 지금 6헥타르를 따라가는 농업인들은 현재의 농림부 계획대로라면, 2~3년후면 반환경적인 농업으로 국토를 좀먹는 농업의 적으로 내몰릴 사정이다.

한 쪽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규제를 강화한다고 하면서, 한 쪽에서는 수익성과 환경적인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퇴출될 수 밖에 없는 대규모 영농으로 전환하라는 로드맵을 제출하면서, 그래도 우리는 농업을 위해서 무언가 하고 있다는 얘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녹색정치는 6헥타르, 7만 전문영농인을 위한 로드맵에 대하여 반대한다. 국토환경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로 전락해버린 농업인이 더 이상 오락가락 정부의 미친 영농정책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원칙 때문이다.

정부는 이 사기와 기만,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자기 통계와 자료 분석도 제대로 안한, 보여주기 정책을 앞뒤맞지 않게 모아놓은 농정 로드맵을 부디 폐기해주시기 바란다.

조각조각난 6헥타르 위에 농업인의 눈물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고, 농정경영능력이라는 미사 여구 아래, 농촌 지역에도 아파트를 지어줘야 한다는, 미친 경제정책을 그만보고 싶다.

지금 농업에 20대가 3,000가구, 전국에 달랑 3,000 가구가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농촌 지역의 아파트가 아니다. 이들은 헬기로 날아다니면서 농사지을 수 있을 것 같은 6헥타르가 아니다. 제대로 된 직불제와 제대로 된 유통구조, 그리고 기본적인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거지, 경영능력을 입증할 '경영 마인드'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거의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해준 100헥타르 이상의 대평원에 헬기로 농약과 제초제를 무한정으로 살포하는 카길사와 우리나라의 농촌이 같은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다. TV를 너무 많이 봐서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꿈의 6헥타르가 아니라, 악몽의 6헥타르가 펼쳐지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당신들 정부는 이렇게 몇 년 버티고 농업을 경제 부흥의 이름의 개발정책으로 건설경기나 일으키고, 허울만 가지고 시간을 때우면 그만이지만, 지금 당신이 망가뜨리는 것은 우리나라의 몇 백년을 한꺼번에 해치우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아실지 모르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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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청계천을 막지 못하다니...

2005/12/12 12:00
새만금도 어렵지만, 청계천은 더욱 어렵다.

그리고 새만금도 죄질이 나쁘지만, 청계천은 더욱 죄질이 나쁘다.

새만금에는 힘들게 살아온 전북이라는 특정한 지역의 경제가 저당잡혀 있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청계천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냥 죄질이 나쁘기 때문에 아주 마음 편하게, 이 나쁜 놈들 하고 말해줄 수 있어 속만은 편하다.

그러나 막기는 매우 어렵다. 명박이형이라는 써글 놈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복잡한 서울이라는 특별한 도시의 발전상, 그리고 도시 빈민의 문제, 게다가 조악한 인프라라는 문제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 생태하천 복원이라는 말 좀 쓰지 마라!


청계천은 생태계라는 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정확히 얘기하면 조경에 가까운 일이다... 쓰바...


생태하천이라구 허벌 썰레발 떨지만, 그냥 쉽게 얘기하면 집에다 어항을 하나 갖다 놓는 거랑 똑같다구 보면 된다. 한강물을 푸든, 아니면 지하철 역사의 지하수들을 퍼오던, 하여간 그냥 커다란 어항 하나를 갖다 놓는다고 보면 똑같다.

원래 청계천 자체가 인공하천이기 때문에 건천이라고도 하는데, 하여간 물은 별로 없다. 아무리 삐가번쩍하게 해두, 늘상 물이 흐르는 하천이 아니기 때문에 명박이 형, 참을 수가 없다. 물 퍼다가 다시 흘리는 거다.

그냥 물만 흘리면 분수 같은 개념이지만, 물고기도 몇 마리 푼다고 하니까 그냥 어항 하나가 도심 한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걸 생태계라고는 안하고, 그냥 조경사업이라고 한다.

더 쉽게 얘기하자. 집 안 한 가운데 어항이 있으면 기분은 좋다. 거기에 자라를 키워두 되고, 아니면 아무 거나 넣어두 된다. 기분 나쁘면 치우면 그만이다.

그런 어항이 허벌 큰게 하나 서울 한 가운데 들어온다고 보면 딱이다. 문제는 치우기 어렵다는데 있다. 집에 있는 어항은 애가 다치면 치우면 그만인데, 사대문 안에 떡하니 들어온 청계천이라는 어항은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치우기가 좀 어렵다.

물론 그건 명박이 형이 걱정할 건 아니다. 다음에 들어올 시장이 걱정할 일도 아니다. 그냥 그게 부영양화가 되든,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들, 그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어, 좋은 어항 하나 생기는구나 했던 시민 전체의 조금씩의 희생, 그리고 좀 될만한 세금으로 그냥 때우면 될 일이다.

하여간 이건 어항 만드는 사업이다. 여기다 제발 생태하천 복원이니, 도시 생태계 조성이니 하는 얘기 좀 하지 마라...

쉽게 생각하면, 진짜 하천은 청계천 밑의 파이프로 흐르고, 그 옆으로 또 강에서 물퍼올 또 다른 파이프가 흐르고, 대충 예쁘게 조성된 청계천이라는 파이프 위로 물이 흐르는 거다.

왜 내가 이게 생태계 복원이라고 하지 않냐면, 강의 하구에서부터 시작되는 생태계가 여기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냥... 미끈둥한 파이프가 강 밑으로 나오고, 강물이 스며드면서 시작되는 정상적인 생태계의 기초가 여기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 속에 사는 물고기들... 비들기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파리의 비들기들은 자동차가 달려오면 열심히 뛰어간다. 정말 열심히 뛰어간다. 나는 본능마저 까먹은 비들기 같은 것들을 어항 안에 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2. 이거, 개발 파쇼의 복권이다!

전설이 몇 가지가 있다. 무슨무슨 위원이라고 참가한 사람들이 다 빙신이거나다 꼴통들인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양심있는 사람들도 있다.

쌩깐다는 말은 이럴 때 쓴다. 회의에 참가한 명박이 형, 계속 졸다가, 회의 끝날 때쯤, 그럼 언제부터 첫 삽을 뜨게되는 거지요?

건설회사는 노난다. 이건 새만금과 비슷하다.

명박이 형과 서울시 선거 같이 뛰었던 사람들. 인생 풀린다.

좋은 건? 명박이 형, 건설업체, 인근에 땅 있는 소유주들...

죽어나는건? 이와 상관없이 세금을 내야하는 나머지 서울 시민들, 강북으로 출퇴근 해야하는 사람들과, 어쨌든 그 근처에 가야하는 사람들, 청계천 일가에서 먹고 살았던 사람들, 그리구 강북 뉴타운 건설이라고 명박이 형 꾀임에 넘어가 허벌레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죽어가는 거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건 없는 사람들과 있는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땅을 가진 사람들과 그냥 임대해 가계하나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 뭐 그런 사람들간의 문제이다.


3. 왜 어려운가?

여기에 프로들이 개입하지 못한 것은 복계하천 청계천의 상태가 꼴이 아니었고, 또 청계고가의 안정성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없던 두 가지 문제 때문이다.

그럼 그냥 청계천 썩도록 하면 좋겠어? 니가 청계고가 무너지면 책임질래?

이 두 가지 문제에 프로 중의 프로라고 자부하던 자칭 전문가들이 전부 입 다문게 청계천 복원사업의 또 다른 핵심이다. 그래서 어려웠고, 다들 입 다물었다.

청계천 복원은 대의적으로 좋은게 아니었을까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나, 별 다른 대안은 없었다... 이 두 가지 중의 하나의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중에 정답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어벙벙한 말 밖에 할 수 없는가? 실제로 그렇다.

무엇보다도 서울시에서도 아무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건 안되고, 저건 되고라는 검토를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4. 이제 내일이면 고가가 헐리고 남은 것은 숙제들 뿐이다...


이제 청계고가의 통행금지가 시작되고, 헐릴 것이다. 고가를 다시 손을 보고, 시간을 갖고, 적절한 복원에 대해서 검토를 하자는 대부분의 주장이 힘을 잃게 된다.

명박이 형은 생각보다 쉬웠다고 샴페인을 터뜨릴 것이다.

그러나 악랄하게 여기서도 교훈 하나를 취할 수 밖에 없다.

청계천에서 내몰린 사람들... 그들을 위해서라도 무엇인가 필요하다.

그리고 긴긴 싸움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더 이상 이 땅에 이런 개발파쇼, 정보독재와 밀실행정에 의한, 그리고 '환경을 위한다는' 어항 행정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말만으로 그러한 것들은 생겨나지 않는다.

헐린 고가 아래로, 우리는 하나의 패배를 가지게 된다. 이명박이라고 대표되는 개발 아이콘에 대하여, 패배 하나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건 지난한 싸움의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의 5년 내내, 늘 지고 싶지는 않다. 5년 동안, 기나긴 방어가 지리하게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의 선방을 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5년... 그 때도 지금처럼 암울하게 패배하고 싶지는 않다.

손 한 번 제대로 못써보고 밀리는 이러한 싸움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정치세력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절감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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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 새만금을 디벼주마

2005/12/12 11:58

2003. 6. 8

 

새만금을 둘러싼 고도의 술수들을 디벼주마…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해서 말이 많다. 현재 상황, 졸라 복잡하다. 하꺼야 마꺼야…

오해가 오해를 불러온다. 청와대도 바짝 긴장했다. 정신 차려야해… 한 발만 잘못 딛으면 여기서 지옥이야.

전북도 바짝 긴장했다. 밀리면 죽는다. 이건 지역감정으로 끌어 가야해…

하여간 새만금을 둘러싸고 별 상관없는 사람과 쫌 상관있는 사람들이 정식으로 한탕 붙기 직전이다.

삼보일배가 끝나고 나서 전북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도지사가 삭발을 했다… 엽기적인 사태가 벌어지고, 하여간 지금 새만금 반대하는 편에 서면 응징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을 했다… 졸라 무섭나? 하여간 여기까지 와버린 통에, 애꿎은 새만금… 조금씩 죽어간다.

하여간 새만금을 둘러싼 거짓말과 오해, 그리고 편견을 지금부터 디벼주마…

1. 담수호의 비밀

2000년에 민관합동조사단이라는 게 있었다. 졸라 빙신들 모여서 삽질 했다고 하는게 딱이다. 하여간 할 수 있는 거짓말들은 다 갖다 붙여서 했다는게 이거고, 그나마도 합의가 안되어서 위원장 양반이 대충 자기 개인의견인 것처럼 정부에 ‘걍 해’라고 보고서를 올렸는데, 이게 지금 말하는 2년간의 사회적 합의라는게 그거다.

근데… 이 사람들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빙신 같은 답을 냈다고 사람들이 방방거렸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던 이유가 있다.

새만금에 흘러오는 강에는 만경강과 동진강이라는게 있는데, 이 만경강이 열라 썩어있다는게 고민의 시작이다. 부분적으로 5급수고, 전체적으로는 5급수 이상되겠다. 그래서 목표 수질로 4급수를 맞췄다.

열라 복잡한 얘기해서 본 우원 가슴이 아프지만, 하여간 물 얘기 좀 하자. 1급수라는 게 있다. 청정수역이라는게 그런 건데, 걍 마셔도 되는 물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쉬리, 이런게 여기 산다.

2급수라는 건 뭐냐? 정수하면 마실 수 있는 물이라고 보면 된다. 잉어같은게 여기 살고, 놀래미 같은 놈들도 여기서 대충 산다.

3급수? 이게 고도처리하면 마실 수 있는 물이다. 하여간 생난리를 좀 치면 먹어도 되는 물이 3급수다…

새만금 담수호의 목표 수질인 4급수, 두둥, 이게 용업용수 혹은 2급 공업용수로 불리는 물이다. 그냥 논바닥에 물대주거나 아니면 뜨거운 기계의 물을 식히는 용도로 사용해도 괜챦다는 물이 이 새만금 호수의 ‘꿈의 목표 수줄’ 4급수이다.

붕어… 이거 강한 놈이다.


< 나, 붕어… >

붕어같이 강하고 독한 놈들은 4급수에서도 죽지 않고 산다.

옛날 전두환 이전에 한강 졸라 속상하게 더러운 적 있었다. 그때에 가끔 붕어에서 휘발유 냄새가 난다더니, 하던 시절이 있었다… 목표 수질인 새만금호의 수질이 이거다.

근데 이걸 위해서 졸라 복잡한 조건을 걸었다 이거야…

만경강이 왜 이렇게 열라게 물이 안좋냐 그러면, 그 위에서 축산폐수, 그러니까 소똥 같은게 열라 내려오기 때문이거던… 근데 이 축산폐수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리하기 어려운 수질오염물질이라는 사실…

그래서 이 4급수를 맞추기 위해서 전주를 포함한 위쪽의 개발은 전부 막고, 그리고, 에또, 비료 사용도 30% 줄이고, 또 음… 위에 가축사육도 하지 않도록 권장(?)하고…

그리고도 두둥, 위의 금강호의 물을 계속 이리로 끌어다가, 소위 물에다 물타기를 한다…

이런거거던… 그래도 4급수를 맞추기가 어렵거던… 씨바…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하여간 이래… 게다가 엿 같은 건 이게 질소나 인, 하여간 말은 복잡하지만, 그냥 변 성분이라고 보면 돼… 한마디로 똥물은 질소와 인, 그리고 암모니아 - 이거 뭔지 알지? 방구가스의 주성분 - 같은 거로 구성되어 있거던…

거꾸로 얘기하면 비료라고도 하지. 그래서 2년 전에 똥물에서 뱃놀이하고 관광할 똘아이가 누가 있겠냐고 했더니, 농업기반공사 아그들, 그건 비료성분이라서 오히려 농업에 도움이 된다고 한거야. 음… 똥물이 비료긴 하지…

이 물이 새만금 담수호로 들어가면, 으찌돼나? 농기반 아그들 얘기로는 일단 들어간 강물이 호수에 두달 반 동안 있다 나간대거던…

따땃한 여름날, 비료 성분 잘 썩인 물에 플랑크톤이니 녹조류니 하는게 한 번 팍 퍼져나가면, 골때리게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겠다. 대충 여의도 30배쯤 되는 잘 썩은, 아니 잘 삭은 비료더미같은게 되는거지… 죽여줄껄… 상상도 못하게 아름다운 광경되겠다…

너같으면 그런데서 뱃놀이 하고 싶겠냐?

산업단지니 중심도시가 못되는건 이 물 때문에 그래. 마실 수 없는 물을 누가 마시냐? 너 같으면 마시고 싶냐? 그래서 금강호에서 또 지하수로로 엄청나게 물을 끌어오면 된다고 하는데… 충청도 사람들은 또 바보냐. 나중에 지네 마실 물도 없어지는 10년 후에, 나 몰라 하고 자빠지면…

골 때리게 아름다운 장면 나오겠다. 세계 최고의 간척지에 세계 최대의 오염지대… 이 오명을 새만금이 뒤집어 쓰게 되거던…

2. 갯벌이 새로 생긴다?

이 얘기만 나오면 본 우원, 또 꼭지돌기 시작한다. 음… 갯벌이라는게, 그냥 맨 갯벌이 있고, 하구갯벌이라고 하는 상당히 귀한 갯벌이 있는데… 하여간 강을 끼고 있는 갯벌과 강을 끼지 않은 갯벌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거야… 동진강, 만경강을 끼고 있어서 새만금 갯벌을 1급으로 쳐주는 거거던…

옛날에도 생겨나지 않았냐고 하지만, 옛날에는 강을 안막았쟎아, 븅신들아…

갯벌을 구성하는 고운 모래는 바다에서도 오고 강에서도 오는데, 실제 영양분은 다 강에서 내려오거던…

그냥 바닷가의 모래사장 알지… 거기에 별 거 없는건, 그냥 모래구, 별 영양이 없어서 그렇거던…

여름에 모래사장에 해수욕가서 낙지 잡아본 적 있냐? 이상하게 모래사장에는 별 거 없지? 그게 영양분 때문이거던…

그걸 강이 숨을 쉰다고 그러는건데, 새로 생기는 갯벌은 크기도 허벌 작을 뿐더러, 강이랑 끊겨 있어서, 모래사장 비슷한데, 모래가 곱지는 않고… 하여간 모래더미 같은거거던…

물론 독한 넘들은 거기에서도 살지… 5급수 이상 물에서도 사는 넘들 있으니까…

그걸 ‘죽벌’이라고 해. 죽어있는 갯벌이라는 거지…

3. 전북경제에 도움이 된다?

쓰다보니까 또 열받기 시작한다. 지금 국민소득 만 불이라고 하지만, 전북 지역은 7천불도 안돼… 가슴 한구석이 아리기 시작한다.

하여간 정치하는 죽일 넘들이, 그런 전북 사람들을 댓구 사기치는 거랑 비슷해. 그래도 워낙 전북에 아무 것도 없으니까… 이해도 되고, 맘도 아프지.

근데, 이런 거야. 지금 아무리 뭐라고 해도, 거기에는 농지 밖에 못들어가. 지금은 다 아는 척 하지만, 자료 갖다놓고 검토하면 그렇게 결론날 수 밖에 없거던…

옛날 총리시절, 이한동이라는 한또도 잘 해줄려고 했는데, 가만 보니까 이거 완전 청문회 감이거던… 그래서 농업이라고 결론을 낸 거야. 누가해도 물문제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어.

물막이 끝나면, 공사는 그때부터 시작이야. 물빼고, 열라 빼고, 거기에 소금기 빼고, 10년은 기다려야 하는데, 실제 정부예산은 1700억원씩 밖에 안 들어가니까, 사실 그 예산으로 이거 끝낼려면, 백년이 걸리거던…

음… 좀 정부에서 신경 써주면 50년…

그야말로 공사는 조금씩 하면서, 갯벌은 죽고, 그안에 있던 넘들도 다 죽고…

먼지 풀풀 날리면서 그냥 10년 동안 공사장으로 되거던… 냄새도 좀 날거야. 갯벌 안에 있는 넘들 죽은거… 그리고 담수호로 바뀌면서 바다고기들, 죽거던… 어느 날 한 번에 죽으면, 바다 위에 배를 내밀고 좀 썩을 거거던…

관광? 이 10년 동안 물썩고, 고기들 죽은 거 보러 오겠냐? 너 같으면 공사장 먼지 날리는데 회먹으로 오고 싶겠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십년 동안 ‘우리의 옥토’ 기다리는 동안에 전북 경제가 살아난다구?

살아나면, 지금 전북경제의 꿈이고 희망이라고 한 사람들, 노벨 경제학상 다 받을거야. 간척으로 지역 경제가 살아나다! 케인즈 선생의 뉴딜로도 미국 경제가 살아나지는 않았거던…

하여간 어쨌든 새만금이 죽더라도 전북경제라도 살아났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정말 지금 사기꾼들이 경제학 이론을 바꾸는 셈이야. 아니라구?

시장의 철의 법칙이 10년 후에 작동되는걸 함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치 않을거야.

아, 물론 농기반 아그들은 살아나지. 지금 걔네 예산 90%가 새만금 관련 사업이거던… 다시 말하면 밥줄 없을 놈들이 10년 동안 덩더쿵 덩더쿵 하면서 월급 받는데는 지장없지만, 전북경제에는… 큰 도움 안돼…

왜냐구? 다른 동네는 10년 동안 노냐? 광주, 평택, 부산, 대구… 살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거던… 물론 전북이 티나게 살기 어렵구… 그래서 내고 맘이 아프지만…

그러나 하여간 딴 동네는 살자구 10년 동안 허벌라게 열심히 뭔가 할꺼거던…

심하게 얘기하면, 1,700억원만큼 들어오는 돈, 그나마도 기획예산처에서 짤려서 내년에는 1,600억원이거던… 이거 머리수로 나눠봐? 1인당 5만원 정도?

매년 5~6만원 정도… 그나마도 이거로 돈 버는 분들은 만 명도 채 안될걸… 연간 5만원 정도 받고, 아, 기분좋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는구나, 하면서 10년 동안 그냥 기다리고 있는거야.

그래두 그거나마 없는 거보다 낫다구? 생각해봐라… 지난 9년 정도, 매년 공사 했쟎아. 근데 좀 나아졌어? 앞으로 10년 동안 똑 같은 상황이라니까…

괜챦다구? 그럼 그러구 있든지. 5년 후의 상황을 생각해봐. 전국, 아니 세계 최대의 오염지역, 전북… 그나마 내륙지대는 만경강 상류라고 개발이 꽁꽁 묶이구…

왜 전북만 미워하냐구? 미워하긴 뭘 미워해. 그렇게 되는게, ‘경제적 과정’이라는 거지.

통일되면 새만금이라는 땅이 필요하다구?

장난하나… 독일이 통일하면서 동독 지역에 열라 돈 쏟아부어준거 몰라? 새만금의 땅을 기다리면서 열라 땅 만들다 통일되면, 그땐 모든 돈이 다 북한으로 들어가게 되있거던…

통일되면 쌀 많이 필요하다구? 장난하나, 진짜… 쌀 값은 20년 후에는 더 떨어져. 그리고 농업기술도 더 발전하게 되거던… 쌀, 제발 쌀 걱정 좀 하지 마시라.

쌀이 남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밥을 덜 먹는거거던… 미치겠군. 앞으로 쌀 더 안먹어.

4.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나라 법치주의 맞나?

법 얘기는 재미없지만, 그래도 해주겠다. 공유수면매립법에 의한 공유수면매립허가, 이런게 있거던. 여기에 ‘농업목적’이라고 해서, 갯벌에 대한 매립허가를 받은 거거던…

너무현 아저씨가 맞습니다, 맞고요라고 말한 건 행정행위라고 안해. 정치행위 혹은 통치행위 같은 거지…

근데 신구상기획단이 새만금 갯벌의 용도변경을 논의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순간, 이걸 행정행위라고 하거던…

정부에서 오늘부터 신구상기획단을 만들었습니다, 발표하는 순간부터 공사는 불법 공사가 되는거거던… 왜냐구? 목적이 바뀌었으니까…

그럼 그 다음날부로 법 좀 한다는 넘들이 바로 소송을 내는거지. 불법공사 강행에 대한 가처분소송… 뭐 이딴 비스무레한 건데, 미안하지만, 공사 중지 결정이 나올 확률이 높아.

계속하고 싶으면? 그냥 대법원까지 올라가는거지.

근데 공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재판에서 이길려면, 용도변경을 명확히 하고, 그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와 경제적 타당성까지 다시 만들어내야 하는데… 왜냐구?

이게 국책사업이라서 그렇거던… 정부는 그렇게 행위하도록 법에서 정해놨어. 근데 환경영향평가 1년 걸리는 거 알아? 그거 다시 해야되거던… 근데 아마 통과시키기가 쉽지 않을걸?

경제적 타당성 검토도 쉽지 않을걸? 왜냐구? 공단이나 하여가 다른 거로 할려면, 20조쯤 들어가는데, 거기에서 그 돈 나오는걸 만들어내기가 만만치 않을거야…

산업공단 같은거로 할려면, 간단하게 남산이 150개 정도 필요하다구 보면 돼. 왜냐구? 여의도 140배가 생겨나는데, 안 그렇겠어?

근데 이 땅을 다른데서 가져올 수 있나? 다른 동네가 다 바보야? 전북의 산이란 산은 전부 파다가 새만금에 쌓아주겠다는 얘기를 하는거거던…

농기반 아그들은 신나지. 덩더꿍 덩더꿍… 전북엔 뭐가 남아?

사실은 공사도 하지 못할거야. 바다에서 파오면 된다구? 물론 되지. 그럼 30조쯤 들겠다구 계산하겠지. 그 타당성 보고서가 깔끔하게 나오기 전까지, 새만금에는 손가락 하나 못대…

그러지좀 말라구?

내가 하는게 아니라니까… 변호사들 많쟎아. 함 보자구 지금 벼르고 있거던… 법 좀 알아? 함 고민해봐.

전북에 도움이 안될 뿐더러, 죽는 길이라니까… 환경만 죽어서가 아니구, 그런 대형 국책사업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니까. 있는 돈은 농업에서 들어오는 돈 매년 1700억원이 다야.

1인당 5만원씩 받는다고 좋아하는 동안에 하여간 처절한 일들이 벌어질 거라니까…

기분 나쁘다구? 미안해. 그런데 시장법칙이라는게 그런건데 어떻게 해. 그리고 국책사업에 대해서는 그만큼 머리 아픈 절차들을 변호사 아찌들이 그렇게 만들어놨거던…

하여간 생각들좀 해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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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라는 이름의 야만
열대 내 부족 삶과 문화 찾아 떠난 여행기
먹거리 모자라도 가축과 함께 나누고
족장은 권력 휘두르는 대신
솔선수범으로 지도력 인정받는 세계
어찌 미개한가

고전 다시읽기/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열대’라는 단어 앞의 ‘슬픈‘이란 형용사가 인상적인 이 책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1935년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에 사회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여행의 기록이다. 이후 약 20년이 지난 뒤 쓰인 이 책은, “모닝 빵처럼 팔렸다”는 말로 묘사되는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면서 그를 대중적인 스타 지식인으로 만들어준다. 물론 그 이전에 이미 그는 박사학위 논문인 <친족의 기본구조>로 프랑스 사상계의 새로운 거목으로 떠올랐으며, ’구조주의‘라고 불리게 되는 새로운 철학적 흐름을 창안했다. 이어 <슬픈 열대>, <야생의 사고> 등 저작을 통해 그는 프랑스 사상계 전반을 뒤바꿔놓은 중심인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독일이 주도하고 있던 유럽의 철학적 주도권을 프랑스로 이전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구조주의라면 “한물간 지 오래”인 1990년대 중반인가에 프랑스의 문화 관련 기자들의 투표에서 여전히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행은 다른 세계, 내게 익숙하지 않은 세계와의 만남이다. 그래서 문학도, 영화도 여행자를 좋아한다. 오디세우스의 여행, 파우스트의 여행, 혹은 손오공의 여행, 레인맨의 여행 등등. 거기서 작가는 여행자를 따라가면서 그가 다른 세계와 만나며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삶을 향해 떠나자고 슬며시 우리를 부추긴다.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레비스트로스의 이 여행기도 그렇다. 그가 정말 여행을 싫어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의 여행은 뜻밖의 전화 한 통으로 인해 떼밀리듯 시작된, 그래서 더 운명처럼 여겨지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의 여행은 어쩌면 그 전화를 받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역사학이 자기가 사는 것과는 다른 시간을 여행하고 탐사하는 것이라면, 그가 좋아하게 되었던 인류학은 다른 공간을 여행하며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탐사하고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레비스트로스는 다른 종류의 인류학자여서, 현지조사보다는 수많은 조사자료들을 비교하고 교차시켜 다양한 문화나 신화들 안에 존재하는 어떤 공통된 것(그가 ‘구조’라고 부르는 것)을 찾고자 했다. ‘구조주의’란 한편으론 구조주의 언어학을 연구방법으로 삼아서 생긴 이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바로 이 공통된 것을 찾고자하는 태도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철학 주도권 독일서 프랑스로



그렇지만 이 책에서 우리는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이 단지 책상에서 남이 쓴 글을 보며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만은 아니었음을 본다. 또한 모든 문화에 공통된 것만을 찾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음을 또한 본다. 이 여행기의 줄기는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의 삶과 문화다. 그것을 천천히 거쳐가면서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와 다른 종류의 삶을 체험한다.

그림 그리길 즐기는 카두베오족의 문신과 문양에서 주어진 신체, 주어진 얼굴을 변형시키는 예술가적 창조의 욕망을 본다. 남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나누는 남비콰라족의 사랑법에서 오히려 육체적 쾌락보다는 정서적이고 유희적인 쾌락의 감각을 보기도 하고, 그 대담한 사랑의 와중에도 발기된 흥분으로 빠져들지 않는 태도에서 육체의 노출이 아니라 평정의 상실을 부끄럽게 여기는 고상한(?) 윤리감각을 발견하기도 한다. 혹은 인간의 형체란 물고기 형체와 앵무새 형체 사이의 과도기라고 보는 보로로족의 윤회적 우주관에서 인간과 동물 세계의 연속성을 보기도 하며, 가축에게도 인간과 동등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먹을 것이 부족해도 ‘함께 식사하는’ 남비콰라족의 태도에서 그러한 연속성이 함축하는 실제적인 의미를 보기도 한다. 또 고유명사를 감추고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남비콰라족 사람들에게서 문자 없는 세계에 대한 루소적 꿈을 보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이 사용하는 문자를 흉내내 주민들을 설득하거나 ‘지배’하려는 한 추장의 태도를 보면서 문자의 짝이 권력임을 보기도 한다.

좀더 인상적인 것은 추장에 관한 정치학이다. 가령 남비콰라족의 경우 추장은 유랑생활을 편성하고 여정을 선정하며 숙영할 곳을 정하는 지도자다. 그러나 그에게는 강제를 수반하는 권력은커녕 공적으로 인정된 권한도 없다. 그는 오직 대중의 호감이나 대중에게 필요한 것을 조달해줄 능력, 혹은 솔선수범하는 능력에 의해서만 추장의 지도력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추장의 지도력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관대함’이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는 정보제공자이기도 한 남비콰라의 추장들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지만, 그것은 어느새 다른 주민들 손으로 넘겨졌음을 발견한다.

다른것 동질화 목격 깊은 슬픔

이러한 삶과 문화를 어찌 ‘미개하다’고 말할 것이며, 어찌 ‘야만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알다시피 그것은 서구인들에 의해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이 되어 파괴되어 버렸고 ‘문명화’ 내지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동일한 양상으로 변형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안다. 럼주 한잔의 미묘한 맛은 거기에 섞여 들어간 불순물 때문임을. 사람들의 삶에서 이질적인 것, ‘불순물’을 제거해버리려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좋은 향기를 제공하는 것들을 스스로 완전히 파괴해버리려고 하는 것”임을.

그렇기에 그는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비난하고 이질적인 모든 것을 자신의 모습대로 동질화해버리는 서구문명에 대해, 바로 자기 자신이 속한 그 세계에 대해 거대한 분노를 느끼며, 그것으로 파괴된 열대의 세계에서 깊은 슬픔을 느낀다. 틀림없이 그의 여행은 이 침략과 파괴에 의해 말살당한 흔적을 목격하고 체험해야 하는 여행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이 여행기에는 또한 깊은 슬픔이 스며들어 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을 ‘슬픈 열대’라고 붙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레비스트로스를 무척 좋아한다. 이 책 속에 배어 있는 그 따뜻한 마음을, ‘야만인’에 대한, 자기와 다른 종류의 삶에 대한 애정을 깊이 사랑한다. 데리다의 비판처럼 원시적인 것에 대한 향수나 구조주의적 방법에 문제가 있음은 사실이지만, 몽상이나 향수마저 지울 수 없었던 그 따뜻한 안타까움을, 그 깊은 슬픔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런 비판은 너무 쉽고도 안전한 투자 같아서 싫다.

슬픔과 분노를 안고 그는 돌아간다. 그러나 그가 돌아가는 곳은 또 다른 원시의 열대도, 그가 속했던 문명화된 대륙도 아니다. 그것은 이질적인 것 모두가 서로에 기대어 있는 세계다. “역사, 정치, 사회적·경제적 세계, 물리적 세계, 심지어 하늘까지, 이 모든 것들이 동심원을 이루며 나를 둘러싸고 있다.” 여행의 끝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당신이 신이 된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자기 몸에서 빛이 난다는 것을 느끼거나 기적을 행할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가 아니라 야생의 짐승들이 가까이 다가와도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 온몸을 엎고 있는 악취나 분뇨에서도 예사로워질 때랍니다. 모든 시체, 모든 부패물, 분비물이 다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때랍니다. 신이 되고 나면 나비들이 당신 목덜미에 앉아서 교미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마지막은, 그 ‘귀로’의 끝은 미얀마의 챠웅(불교사원)이다. 외부, 타자, 이질적인 것을 견디지 못하는 획일적 문명, 혹은 그것의 좀더 남성적이고 호전적 형태인 이슬람에서 더 없는 불편함을 느끼는 그는 여성적이거나 탈성화된 불교에서, 외부의 이질적인 것에 열려 있는 불교에서, 그것과 만남을 통해 기독교적 문명이 여성화되는 것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러나 그 희망은 기독교의 서구와 불교의 인도 사이에 발생한 남성적 이슬람으로 인해 이미 오래전에 절단된 것이다.

귀로의 끝은 ‘열려있는’ 불교사원

하지만 ‘서양’과 ‘동양’을 잇는, 실현되지 못한 희망을 대신할 또 하나의 희망을 찾아낸다. 그것은 뜻밖에도 마르크스주의와 불교의 만남이다. 형이상학과 인간행위의 조화를 실현했던 이 두 사상의 만남을 통해, “인간을 첫 번째 사슬로부터 해방시키는 마르크스주의의 비판과 그 해방을 완결시키는 불교의 비판”의 만남을 통해 “동양으로부터 서양으로 흐르는 확고한 운동”이 이루어지리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열대를 찾아 떠났지만, 그 열대를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를 떠난다. 그리하여 너무도 익숙해진 그 ‘문명화된’ 세계를 떠나도록 사람들을 촉발한다. 다른 삶으로 떠나는 여행을.

서평자 추천 도서

슬픈 열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한길사 펴냄(1998)

(<슬픈 열대>의 완역본)

야생의 사고

레비스트로스 지음, 안정남 옮김

한길사 펴냄(1996)

(토테미즘이라 불리는 미개인의 사고법이 턱없는 미신이 아니라 사물을 분류하는 또 하나의 과학, 구체성의 과학이란 점을 보여주면서, 서구인의 자기중심주의를 비판한 책)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디디에 에리봉 지음, 송태현 옮김

강 펴냄(2003)

(기자인 에리봉과 레비스트로스의 대담을 통해 쓰여진 레비스로스의 ‘회고록’)

 

 

족장의 권력이 지닌 무기는 관대함이다


“족장은 전쟁을 할 때 선두에 서서 싸우는 사람이다.” 몽테뉴는 이 이야기를 그의 <수상록>의 유명한 한 장에서 기술하면서 그 원주민의 자신만만한 정의에 놀라움을 나타내고 있다. 내가 그로부터 거의 4세기 후에도 동일한 대답을 들었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커다란 놀라움과 존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족장은 명확하게 규정된 권한이나 공적으로 인정된 권위에서 그의 기반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을 우선 말해두어야 하겠다. 동의가 권력의 근원을 이루며 또한 동의가 족장의 지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족장은 어떻게 그의 의무를 완수해 나가는가? 그의 권력이 지닌 무기 가운데 가장 주요한 수단은 관대함이다. 대부분의 미개민족들 사이에서,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관대함이 권력의 본질적인 속성이다.···[그래서] 그는 아무리 자질구레한 것들일지라도 빈곤이 닥칠 경우에는 상당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식량, 도구, 무기, 장신구 따위의 여분의 양을 그의 통제 하에 두어야 한다. 개인이거나 가족이거나 또는 전체로서의 하나의 무리가 어떤 것을 욕구하거나 필요로 할 때 그 호소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바로 족장이다. 그러므로 관대함이란 새로운 족장에게 기대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라 하겠다.···

족장들은 가장 적합한 나의 정보 제공자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기꺼이 그들에게 풍부한 증여물을 주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들에게 준 선물은 하루나 이틀 이상 그들의 손에 있지를 않았다. 내가 어떤 무리들과 몇 주간을 함께 지내고 헤어질 때가 되면 주민들은 내가 [족장에게] 주었던 도끼·칼·진주 따위를 소유하고 있고는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반적으로 족장은 물질적인 면에서는 내가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빈곤한 상태에 있었다.···

훌륭한 족장은 그의 솔선수범하는 능력과 기술을 증명한다. 화살의 독을 준비하는 사람은 족장이다. 마찬가지로 족장은 남비콰라족의 유희에 사용되는 야생의 고무로 된 공도 만든다. 또한 그는 무리들이 단조로운 일상생활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출 줄 아는 쾌활성을 지녀야만 한다.(박옥줄 옮김, <슬픈 열대>(한길사), 564~5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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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돈다…그래도 신은 존재한다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대화>

지구 중심주의 깨부순 지동설
인간의 자존심엔 상처 주지만
신의 섭리는 우주로 확장시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대화>는 <프톨레마이오스-코페르니쿠스 두 가지 주된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라는 긴 제목의 저서를 줄여서 일컫는 표현이다. 1632년 출판된 이 책은 지동설 주장으로 금서 목록에 올랐고 갈릴레오가 그로 인해 종교 재판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해설자들도 종교 재판에 연관한 역사적 의의를 많이 강조한다. 하지만 이 책은 문장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읽을 가치가 있는 고전이다. 깊고 넓게 다양한 생각 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저자가 밝혔듯이 “주된 줄거리 못지 않게 재미있는, 딸린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대화>의 과학적 의의는 지동설 주장과 함께 갈릴레오의 방법론이다. 자연을 수학화하는 근대 물리학의 전통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학적 성과를 넘어서 <대화>는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지구중심주의 및 인간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이다. 이를 합하면 ‘지구인 중심주의’로부터의 해방이다. 당시까지 서구인의 의식은, 세계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지구에서 사는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고 그들에게 유용하도록 질서가 잡혀 있다는 믿음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천문학적 발견은 지구(따라서 그곳의 거주자)가 우월적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천체들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대화>의 화자 사그레도는 말한다. “지구도 달, 목성, 금성, 또는 다른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움직일 수 있고, 실제로 움직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구는 하늘에 있는 천체들과 같은 위치에 놓여 그들의 특권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지구중심주의를 벗어나는 일이 지구에게 마땅한 권리를 돌려주는 것이라는 역설적 은유는 흥미롭다.

 

지구와 다른 천체들을 연속선상에 놓고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타격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에서는 생성, 소멸, 변화의 현상이 있지만 다른 별들과 우주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믿었다. “지구에는 풀, 나무, 동물들이 태어나고 죽고 합니다. 비, 바람, 폭풍우, 태풍이 일어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구의 생김새는 계속 바뀝니다. 그러나 하늘의 물체에는 이런 변화를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천동설을 믿더라도, 항상 순환해서 제 자리로 돌아오는 천체의 운동을 확인할 뿐이었지, 육안으로 보아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천체의 물질적 변화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천체들이 변화하고 생성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함께 영생에 대한 욕망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그는 <대화>의 화자 살비아티의 입을 통해 육체뿐만 아니라 “인간 영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혼불멸설조차 부정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인간의 ‘숭고한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인간이 우주에서 특별하지 않은 존재일 수 있다고 시비를 거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으로도 중요하다. 인간중심주의로부터의 해방은 신앙심을 축소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과학적 탐구로 지구인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인간만을 위한 신이 아니라 진정으로 세상 만물을 위한 신을 확인한 것이다. 그때까지 인간중심주의는 오히려 신의 위상을 인간에 맞춤으로써, 신의 섭리를 한정시키고 신앙심을 축소시켰던 것이다. 반면 인간이 무한한 우주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라는 것은 신의 위상을 무한히 확장시킨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음으로 해서 신의 손길을 느끼고 신의 은총을 받는 게 아니라, 우주의 변방에 있더라도 그렇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손길은 광활한 우주의 한 귀퉁이에 있는 미물에게도 미친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어서 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신이 편애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갈릴레오의 신앙심은 더욱 돈독해질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과학적 업적은 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신을 온전히 긍정한 것이다. 종교 재판 후 그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 말을, 과학적 발견 이후 더욱 새로워진 그의 신앙심을 위해 빌려 쓴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신은 존재한다.

 

영산대 교수 anemoski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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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슴이 너무 너무 아프고 떨립니다.

2005/08/18 07:17

 

2005년 8월 17일 오후 2시 70여 일간의 노숙농성에도 변화가 없는 공단 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항의해, ‘산재불승인철회, 산재승인 재조사’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을 결의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조합원 감시와 차별에 의한 집단정신질환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김혜진 지회장 및 노동 사회단체 대표자 17명 무기한 단식농성 돌입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집회도중 경찰은 집회장에 난입했고 이 와중에 단식투쟁을 하기로 예정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김혜진 지회장 등 4인이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이 고공철탑에 올라서자 경찰은 농성철탑 주변에서 집회 참가자들을 강제로 몰아내고 곧바로 테러진압에나 투입되어야 할 경찰 특공대를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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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국적이란 움직이는 것

2005/08/10 13:59
[펌] 한겨레21 > 칼럼 > 박노자 칼럼  > 내용   2005년08월04일 제571호

 

국적이란 움직이는 것!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근대적 개념 형성 이전에 ‘이탈자’들은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
스위스 출신 프랑츠 레포르트에서 신라 출신 설계두, 개화기의 서광범까지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최근에 일어난 ‘국적 포기자’에 대한 여론재판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이 상황을 단순히 유산층의 병역 면탈에 대한 반감으로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병역을 천역(賤役)으로 알았던 전근대 지배층의 사고를 이어받아 빈민개병제의 국가를 운영하면서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특권층에 대한 빈민개병제 희생자들의 분노는 클 수밖에 없다. 살인적인 경쟁 사회를 만들어놓은 한국 지배자들이, 평민의 자손에게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억압적인 규율과 막노동을 강요하고 자기 자손에게는 사회 진출 준비를 더 잘할 특별한 기회를 준다니 기회 균등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이다.

그들은 모두 ‘배신자’였나

그러나 병역 이행에서의 부정이 보여주는 계급 불평등 현실의 다른 측면들을 지켜볼 때도 우리는 과연 이 정도로 흥분하는가? 예컨대 국회의원 등 특권층의 병역 면제자 비율에 대한 통계가 발표될 때도 이 정도의 분노의 파도가 일어나는가? 전방근무 등 가장 어려운 종류의 병역을 이행하는 사람들 중에서 특권층의 자손이 몇명인지 그리고 특권층의 자손이 군에서 어떤 종류의 특별한 근무를 맡는지에 대해서는 왜 우리가 공개적으로 묻지 않는가. 즉, 계급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이번 ‘국적 사태’에서의 분노의 강도를 부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해도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국적 포기자들이 해외동포로서 권리를 박탈당하게 만드는 ‘홍준표 법’의 국회 부결에 따른 성난 누리꾼의 움직임들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에게 국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국적에 대한 의식이 현대사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짚어보아야만 한다. 이러한 검토를 하지 않고서는 국적 포기자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배신자’로 비치게 된 원인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 스위스 출신으로 ‘국적’ 문제에 대한 별 생각 없이 표트르 대제의 총신이 되어 러시아를 좌지우지한 프랑츠 레포르트. 300년 전 유럽에는 아직 국적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국적에 대한 의식의 원류를 찾노라면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근대적인 국민국가에의 소속이란 의미의 ‘국적’이란 말은 한국사에서 극히 최근에 형성된 법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18세기 후반 이후에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봉건적인 ‘신민’의 개념에서 근대적인 ‘시민권자’ 개념으로 이동했다. 예컨대 17세기 말만 해도 제네바 출신의 모험적인 군인 프랑츠 레포르트(1655~99)는 러시아군 장교로 고용된 뒤 차차 명성을 얻어 외국인 출신임에도 표트르 대제의 가장 가까운 총신(寵臣)이자 러시아에서 ‘황제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 그 뒤 19세기 중반이 되면 레포르트처럼 러시아군 장교로서 출세하려는 서구인들은 이미 국적 변경 절차를 밟아야 했다. 조선에서 조선 국적 소유자를 최초로 국제법적으로 규정한 문서들은 구한말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 조약들이었고, 국내 최초의 근대적 국적법은 1948년 5월11일에 남조선 과도입법원이 만든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였다. 우리에게 늘 있어온 것으로 느껴지는 이중 국적 불허나 국적 상실과 같은 개념들은 한국 법제도사에서 기껏해야 반세기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국적이라는 일본식 근대적 법학 용어가 차용되기 전에 인접 국가의 신민이 된 ‘이탈자’에 대한 시선은 과연 어땠을까? 물론 한 군주국의 장교로 복무했다가 조건이 안맞거나 갈등이 생기면 경쟁 군주국에 가서 그 군에 복무해도 누구라도 ‘배신자’라 하지 않았고, 국가적 소속이 매우 상대적이었던 18세기 말 이전의 서구에 비해 동아시아에서의 국가 소속 의식은 훨씬 더 뚜렷했다. 그러나 <삼국사기> 편찬의 책임자 김부식이 아무리 유교적인 충(忠)을 중시한 사람이었어도, 신라에서 621년에 당나라로 밀항해 당나라 군대에 입대해 나중에 전장에서 장렬히 죽은 신라의 육두품 준귀족 설계두 이야기를 ‘열전’에 집어넣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불법적 국적 이탈자’인 설계두는 ‘자랑스러운 우리 조상’ 고구려에 대한 침략에 참전했다가 고구려인의 손에 죽은 당나라 군대 장교로서 반역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진골로 태어나지 않은 죄로 신라에서 그 포부를 펼치지 못해 결국 ‘동족’과의 전쟁에 내몰린 비극적 인물로 보일 것이다.

 

그러면 김부식이 그를 영웅의 반열에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고구려보다 신라를 정통으로 인식한 김부식의 편벽된 역사의식이나 당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적 태도도 작용했겠지만 “본국의 신민이냐 타국의 신민이냐”보다는 “어느 정도 충실한 신민이냐”를 훨씬 더 중요시했던 유교의 보편주의적 논리가 고구려인과의 싸움에서의 당나라 장교 설계두의 장렬한 죽음을 신라 전사들의 전장에서의 순국과 같은 선상에서 평가할 수 있는 근본적 근거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 계몽주의자들처럼 역사를 혈연적이며 불변한 ‘아(我)와 피(彼)의 투쟁’으로만 보지 않는다면 본국을 이탈한 타국 신문의 충성뿐 아니라 적국 신민의 충성도 우러러볼 수 있는 것이다. 1658년, 청나라의 요청으로 ‘나선정벌’, 즉 러시아 카자크 비정규군과의 국지전에 나선 조선의 병마우후 신류(申瀏)가 포로로 잡힌 적군들을 위로하면서 ‘군주를 위하여 이렇게도 멀리 온’ 그들의 충성을 치하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논리다.

 

적국 신민의 충성도 우러러볼 수 있다.


△ 조선 후기 ‘국적 이탈자’ 중 ‘외국인’임을 가장 선명하게 밝힌 사람은 아마도 서재필일 것이다. 그는 조선에 돌아와서 독립신문 발행 등의 계몽 활동을 할 때 꼭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라도 ‘서재필’이 아닌 ‘필립 제이슨’으로 썼다.

물론 ‘국적 이탈자’에 대한 전통 사회의 시선은 꼭 곱지만은 않았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부역했다가 나중에 자진해서 왜군을 따라 일본으로 간 자들을 역적으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이탈’ 그 자체보다 적군에 대한 ‘부역’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15세기에 황해도 출신의 정동(鄭同) 등 어렸을 때 조선에서 명나라 환관으로 바쳐진 여러 사람들이 나중에 명나라의 사신 자격으로 고국에 다녀왔을 때 그들에 대한 조선 사대부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이 경우에는 ‘이탈’ 자체가 문제됐던 것보다는 환관이라는 계층에 대한 양반들의 멸시가 작용한데다 명나라의 위세를 등에 업고 여러 횡포를 부렸던 조선 출신의 명나라 대인의 행동에 대한 원망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정동은 본인이 태어난 신천(信川)을 현에서 군으로 승격하도록 조선 정부를 성공적으로 압박할 정도의 위세를 떨쳤는데, 조선 조정 신하의 입장에서 곱게 봐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명나라로 적을 옮긴 조선 출신의 환관들이 고국에 올 때 조상 분묘에 제사를 지내도록 편의 제공을 받는 등 조선 초기 식의 ‘동포로서의 권리’를 누리기도 했다.

 

쇄국을 지향한 명나라와 조선의 경우 두 나라 신민의 경계가 분명했는데 그 전에는 달랐다. 예컨대 9세기에 산둥반도의 신라방(新羅坊)이나 신라촌(新羅材)에서 거주하면서 일본과 무역을 했던 신라 계통의 상인들은 일본의 사문서에는 신라인으로 서술되는 반면 신라에 적대적이었던 일본 정부의 공문서에는 주로 당나라 사람으로 기재돼 있었다. 서술자의 성향에 따라 당나라 사람으로도 신라인으로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신라에서는 신라 신민으로 당나라에서는 역시 외국 계통의 당의 신민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실질적 이중 국적의 회색지대는 러시아나 미국 거주의 일부 조선 정치인들이 러시아 내지 미국 국적을 가졌으면서도 조국 정치에 계속적으로 개입한 개화기에도 실제로 존재했다. 예컨대 갑신정변의 실패 이후 미국으로 도주해 1892년에 ‘조선의 국왕에게의 모든 충성을 영원히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얻은 서광범(徐光範·1859~97)은 나중에 고국에 돌아와 법부대신(법무부 장관)과 학부대신(교육부 장관)을 지내고 주미 조선 공사(대사)까지 역임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외국 국적을 가져도 일단 조선 신민으로 태어난 사람은 완전한 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의식이었다.

 

그러면 최근의 ‘국적 포기 사태’ 때 감지될 수 있었던 ‘국적’의 신비화, 절대화는 언제 이루어졌을까? 아마도 그 결정적 시기는 박정희의 집권기, 특히 유신 시대라고 보인다. 민주적 정통성도 민족적 정통성도 결여된 무법 종속 정권이 대민 세뇌 도구로 삼았던 것은 무엇보다 일제 시기 방식의 국가주의였는데, 이 국가주의의 핵심 개념은 ‘대통령 각하’를 모시고 병역 의무를 즐거이 이행하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국민’과, ‘악마 같은 이북 공비’나 ‘불온사상’에 전염될 확률이 높아 믿기 어려웠던 해외 동포 사이의 확실한 경계선을 긋는 ‘국적’이었다.

 

국적의 신비화는 유신시대부터

‘국적 있는 교육’ ‘국적 있는 문학’ ‘국적 있는 역사학’ 이야기가 쏟아졌던 그 시기야말로 국민들로 하여금 ‘국적’을 신줏단지처럼 모시게끔 유도했다. 병영 국가에서의 국적 신성화인 만큼 한국 국적을 보유하는 남성 정상인은 무엇보다 먼저 ‘군인’으로 규정되었다. 학교에서의 교련, 대학에서의 군사훈련, 아무런 대안이 없으며 본인의 의지·신념과 무관한 군복무, 그리고 그 뒤의 예비군 훈련과 방위세 납부는 대한민국 국적 정상인 남성의 ‘당연한’ 생활리듬처럼 돼버렸다. 이와 같은 광적인 군사주의의 분위기에서 전통사회에 존재해왔던 ‘우리’와 ‘남’ 사이의 관용의 ‘회색지대’는 없어지고, 국적 포기자는 마치 전시라면 총살당해야 할 탈영병처럼 인식되고 병역 불이행은 ‘남자답지 못한 일’이거나 ‘비국민적’ ‘반국민적’ 행각으로 개념화됐다. 유신시대가 막을 내린 지 꽤 됐지만, 그 시대에 제도화된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는 지금까지도 우리 현실적 생활을 지배할 뿐 아니라 우리 마음까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흙에 대한 사랑과 그 땅의 민중에 대한 애착이 꼭 여권이나 주민등록증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는 걸, 특정 국가에서 출생한 남자라고 해서 살인 훈련을 받을 아무런 천부적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언제쯤이면 이해할 수 있을까.

 

참고 문헌

1. 조영록, <근세 동아시아 삼국의 국제교류와 문화>, 지식산업사, 2002.
2. 권덕영, ‘9世紀 日本을 往來한 二重國籍 新羅人’, <한국사연구>, 제120집, 2003, 85~114쪽.
3. 이광린, <개회기의 인물>, 연세대학교출판부, 1993, 203~242쪽.
4. 도회근, ‘국민과 국적’, <울산대학교사회과학논집>, 제9집, 제2호, 1999, 59~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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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푸른 하늘, 칭기스 칸



- 몽골인에게 유일한 신은 지평선에서 지평선까지 사방을 가득 채운 ‘영원한 푸른 하늘’뿐이었다. 이 신은 땅 전체를 관장했다. 또 이 신은 죄인이나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돌로 지은 집에 가두어 놓을 수도 없었으며......신의 말을 붙잡아 책 속에 집어넣을 수도 없었다.

0. 칭기스 칸의 목소리는 소박하고, 분명하고, 상식적이다. 그는 자신의 적들이 쓰러진 것을 자신의 우월함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나 자신에게는 특별한 자질이 없소” 그는 ‘영원한 푸른 하늘’이 “오만과 지나친 사치” 때문에 주변의 문명을 벌했다고 말한다.

1. 몽골군은 평생 유목민 생활을 해온 사람들로 일찍부터 이동하며 싸우는 법을 배웠다. 농민 출신의 병사들에게 달아나는 것은 패배였고 추적하는 것은 승리였다. 정주하는 병사들은 공격하는 군대를 어떤 장소로부터 몰아내고자 했다. 반면 유목민은 적을 죽이려고 했다. 공격하다 죽이건 달아나다 죽이건 상관없었다. 달아나면서 이기는 것 역시 제자리에 머물러 이기는 것과 다름없는 어엿한 승리였다. 몽골군은 적을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끌어내면, 동물의 대규모 이동을 관리할 때 사용하던 기술을 이용했다. 몽골군은 추적자들이 그들을 따라오면서 긴 줄로 늘어서게 했다. 그렇게 되면 적의 방어력이 약해졌으며, 몽골군은 그들을 함정으로 끌여들여 쉽게 공격할 수 있었다. 아니면 작은 분대로 나뉘어 달아나면서 추적하는 적 역시 작은 무리로 나누어 놓았다. 그렇게 하면 적을 좀더 쉽게 요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칭기스 칸은 전쟁을 위해 “모자를 벗고, 얼굴을 땅으로 향하여 사흘 낮밤을 기도하면서 ‘내가 먼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니 복수를 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말했다. 그런 뒤에 산에서 내려와 작전을 숙고하고 전쟁 준비를 했다”

3. 전쟁에 임하는 칭기스 칸은 “분노의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인내와 자비의 눈에 흙이 들어갔고, 진노의 불이 사납게 타오르면서 그 눈에서 물이 말랐으니 그 불을 끌 수 있는 것은 피 밖에 없을”것이라는 말했다. “사람이 알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적을 정복하여 눈앞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타고 그들의 소유를 빼앗는 것이다. 그들에게 귀중한 사람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보는 것이다”

4. 칭기스 칸은 지도력의 첫 번째 열쇠가 자기절제라고 가르친다. 특히 자만심과 분노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자만심을 누르는 것은 들의 사자를 제압하는 것보다도 어려우며 분노를 이기는 것은 가장 힘센 씨름꾼을 이기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자만심을 삼키지 못하면 남을 지도할 수 없다.” 절대 자신이 가장 강하거나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그 산에 사는 짐승들이 있다. 그 짐승들이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산보다 더 높아진다.

5. 칭기스 칸은 “지도자의 전망이 절대 원로들의 가르침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낡은 델이 더 잘 맞으며 늘 더 편안하다. 이 옷은 거친 덤불속에서 힘겹게 살아도 잘 버텨주지만, 새 델이나 입어보지 않은 델은 금방 찢어져 버린다.” 칭기스 칸은 자신의 수수하고 소박한 생활방식에 따라 자식들에게도 물질적인 천박함이나 허튼 쾌락을 추구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좋은 옷을 입고, 빠른 말을 타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거느리면 자신의 전망이나 목표를 잊기 쉽다.“ 그런 사람은 ”노예나 다름없으며, 반드시 모든 것을 잃고 만다.“
“나는 소치는 목동이나 말을 모는 사람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소. 우리는 똑같이 희생하고 똑같이 부를 나누어 갖소”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늘 원칙에서 일치를 보며,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결합되어 있소”라고 고백한다.

* 델(deel); 몽골의 전통 겉옷
* -Jack Weatherford. 정영목 옮김.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사계절-에서 발췌.





1227년(*주)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



공리1- 전쟁기계는 국가 장치 외부에 존재한다.
명제1- 이러한 외부성은 먼저, 신화, 서사시, 연극 그리고 게임들에 의해 확인된다.

1. 국가장치의 두 극
*인도-유럽 신화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주권: ‘마법사-왕’, ‘판관-사제’라는 두 극; 밝음과 어두음, 격렬함과 평온함, 신속함과 장중함, 공포와 규율, 구속과 계약→이런 대립은 상대적 일뿐이며 분할이나 통일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쌍(서로 교대하면서 기능한다.)이다.
⇒ 두 극은 국가장치의 주요 요소로서 이항적 구분을 분배하고 내부성의 환경을 형성, 이중분절이 국가 장치를 하나의 지층으로 만든다.

2. 국가장치에는 전쟁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국가가 전쟁을 통하지 않고 폭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경우: 군인대신 경찰관과 교도관을 동원, 전투를 방지하면서 장악하고 속박하는 기능.
*국가가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 전쟁의 법률적 통합과 군사 기능의 조직화가 전제.

3. 전쟁기계는 다른 곳(외부!)에서 온다.
*전쟁 기계는 국가 장치와는 다른 종류, 다른 본성,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다.

4. 전쟁기계와 국가장치의 비교
*장기와 바둑: 장기는 구조적으로 기능, 제도화되고 규칙화되어 있는 전쟁, 전선과 후방 다양한 전투들이 코드화되어 있다. 닫힌 공간을 분배→홈패인 공간. nomos
바둑은 투입 또는 배치 기능을 수행(바둑알은 경계짓기, 포위하기, 산개하기), 전선없는 전쟁, 충돌도 후방도 없으며 심지어는 전투마저 없는 전쟁. 열린 공간의 분배→매끈한 공간. polis.

5. 전사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전사의 독창성과 기인한 성격은 부정적인 형태로 드러난다.→따라서 전사란 언제라도 군사적 기능을 포함해 모든 것을 배반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칭기스칸)이다.

6. 국가 자체는 전쟁기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국가는 군사제도 형태로서만 전쟁기계를 전유할 수 있지만 이 전쟁기계는 끊임없이 국가에 문제를 제기한다.(유목민의 전쟁사)

7. 클라이스트의 작품
*전쟁기계를 국가장치에 대립, 산적떼/비밀, 속도, 정동/외부성에 의한 엄청난 속도와 발진력/정동(affect)는 전쟁무기이다. 정동의 탈영토화 속도/수없이 부서진 원환들/몸짓이나 감동의 탈주체화/죽을 힘을 다하는 광기와 응고된 긴장의 연속적인 질주

*스모선수, 바둑기사

8. 국가에 환원불가능한 전쟁기계가 국가에 도전할 수 있는 혁명력을 갖춘 사유기계, 사랑기계, 죽음기계, 창조 기계로 생성가능한가?

문제1- 국가장치의 형성을 방지할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는가?
명제2- 전쟁기계의 외부성은 민속학에 의해서도 똑같이 확인된다.

1.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원시공동체.
*원시사회의 메카니즘은 국가장치의 형성을 저지하고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치!-추장(chef)은 위신과 설득과 집단의 욕망을 미리 간파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제도적, 정치적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추장은 권력자이기보다는 리더나 스타와 같은 존재, 항상 인민들에게 부인당하고 버림받을지 모를 위험에 처해 있는 존재이다.

2. 전쟁은 국가를 반대한다. 그리고 국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쟁은 국가를 저지하고 물리치는 사회 상태의 한 양태이다.

3. 국가형성을 억제하는 여러 가지 집단적 메카니즘
*패거리나 무리: 보고타 거리의 청소년 갱 집단은 공동 도둑질(절도)과 공동분배 후 해산, 문제가 발생시 집단적 탈퇴, 15세가 되면 갱을 탈퇴해 독립한다
*동물의 무리에서도 리더제는 복잡한 메카니즘을 지니고 있다: 최강자가 리더가 아니라 내적인 관계들의 짜임에 의한 것으로 안정적인 권력의 설치를 억제한다.
*‘사교성’의 형식: 사교집단은 사회집단처럼 권력의 중심과의 관계가 아니라 위신을 전파(분산)함으로써 움직인다.
⇒무리나 패거리는 리좀유형의 집단으로 권력형 기관 주위에 집중되는 나무형 집단과 대립된다. 따라서 패거리, 도적떼, 사교계는 전쟁기계가 변신한 모습이다.

4. 전사와 전쟁기계의 규칙들-국가형성을 저지하는 것들(전사의 특징); 근본적인 무규율성, 위계제도에 대한 문제제기, 버림이나 배반을 통한 끊임없는 협박, 민감한 명예의식.

5. 국가의 출현: 국가는 전쟁의 결과이기보다는 경제적 혹은 정치적 힘들의 진전으로서 설명된다. 따라서 국가는 진화가 아니라 갑작스런 돌연변이(‘씨족에서 제국으로, 패거리에서 왕국으로’라는 낡은 시나리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진화가 아니라 절단이다)

6. 국가는 완성된 모습으로 항상 존재해 왔다(‘원국가’의 가설): 국가는 항상 외부와 관계를 맺어 왔다. 국가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내부와 외부의 법칙이다. 따라서 보편적인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7. 국가나 전쟁기계를 독립성의 관점이 아니라 영구적인 상호작용의 장 속에서 공존과 경쟁의 관점에서 외부성과 내부성, 변형의 전쟁기계와 동일성의 국가장치, 패거리와 왕국, 거대기계와 제국에 대해 사고해야 한다. 동일한 장이 국가 안에서 자신의 내부성을 한정할 뿐 아니라, 국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나 국가에 대항하는 것 안에서 자신의 외부성을 서술한다.


(*주) 1227년(1227년 8월 18일)은 징기스 칸[그의 본명인 테무진은 ‘대장장이’라는 뜻으로 그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패배시킨 적장의 이름을 본뜬 것이다]의 사망을 말한다. 천개의 고원은 ‘목차를 보면,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1914년 전쟁 그리고 ’늑대인간‘의 정신분석, 1947년 아르또가 기관없는 신체를 알게 된 해, 1874년 바르베 도르빌리(Barbey d'Aurevilly)가 중편소설을 이론화한 해, 1227년 징기스 칸의 죽음, 1837년 슈만의 죽음......여기 날짜들은 곧 사건들이자 연대기적 진행성을 잃어버린 흔적들이다. 천개의 고원은 사고들로 가득 차있는 셈이다.’(Deleuz. Gilles[1980]. 김종호 옮김. 2000. 『대담 1972~1990』. 솔. p.55.) 들뢰즈는 천개의 고원은 개념들로 가득 찬 책이며, 그 개념은 사건을 말하는 것이지 본질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천개의 고원은 비개성적이고 비사물적인 개별화를 가르키는 것이다.(같은 책 p.56. 참고)


-Deleuze, Gilles and Guattari, Félix[1980]. 김재인 옮김. 2001. 『천개의 고원』. 서울: 새물결. [12. 1227년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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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민중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것은 쉽다. 그어나, 진짜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다. 진짜 사랑, 구체적인 사람 개인을 사랑하려면 가슴이 필요하다. 머리는 인류를 사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류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인류는 없다. 존재하는 것은 구체적인 사람들뿐이다.”

- 김희철, 스리랑카 기차여행에서 더러운 사람들에 대한 나의 태도를 곱씹으며


(참소리 http://www.cham-so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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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화민주주의를 위하여

2005/03/18 17:57

새로운 문화민주주의를 위하여
-남원시장의 ‘한복 입는 날’ 지정과 관련하여

 

 

의복이란 개인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다.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를 첫 만남에서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옷을 입는 패션의 변화에 따라 그 사회변화를 통찰할 수 있다. 옷은 개인의 정보이면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로인해 그 옷을 입게 된 개인적 동기와 더불어 사회적 동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들이 학교에서 배운 거시적인 왕족의 정치적 역사보다는 가족, 음식, 의복, 주거등과 같은 미시적 사회사를 연구한 페르낭 브로델(Femad Braudel)은 “의상은 욕망과 탐닉의 대상임과 동시에  사회,정치적 영향을 분명히 받고 있으며, 일부 세력은 정치적으로 주도하거나 이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철학자 푸코(Foucalt, Michel Paul)는 이렇게 개인의 욕망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사회변화를 ‘통제사회’라고 했으며, 모든 영역에서 그물망 같은 규율과 통제가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일제시대나 군사독재시절의 교복이나 두발단속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옷은 성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현대 여성들의 평상복인 바지를 입기 위해서 여성들은 100여년간 투쟁했다(Diana Crane. Fashion and its social agenda. 2004). 이처럼 의복은 개인의 욕망과 사회,정치적 의도에 의해 항상 긴장관계에 있다.

 

남원시장은 ‘한복 입는 날’ 지정 운영 계획(자치행정과 공문-2233)에서 춘향제 성공적 개최와 우리고장 홍보를 이유로 3월까지 개별적으로 한복을 구입하여 4월부터 남원시 산하 전직원들은 한복을 입고 근무하라는 ‘협조’공문을 시달하였다.

 

한복을 입고 근무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우리 옷을 입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남원시청은 시장실, 부시장실, 국장실을 제외한 실과소 사무실은 근무자와 근무자간의 여유공간이 부족해 직원들이 지나다니기가 불편할 정도로 사무실이 비좁다. 여유로운 생활공간이나 일터가 보장되어야 그 품이 넉넉해 보이는 한복은 자칫 거추장스러운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가 있다. 또한 현장에 달려 나가 일을 하는 기술 분야 공무원이나 수로원, 검침원, 주차요원, 공익근무요원들에 대한 배려나 언급이 없다.

 

더구나, 선배공무원을 포함하여 임금이 열악한 하위직 공무원이나 신규직원, 일용직을 포함한 비정규직 직원들에게는 20만원을 호가하는 한복을 구입하는 것이 뻔한 봉급쟁이로써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정식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종 사소한 혜택에서는 일상적으로 제외되고 차별받는 비정규직에게 지침이나 협조공문으로 그 ‘명령’을 지킬 것을 강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또한 여성들의 한복은 남자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입고 생활하는 것이 까다로우며, 자칫 잘못하면 그 옷차림으로 인해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힘을 얻어 직장내 성평등을 해칠 우려가 있다.

 

우리 문화를 지키고, 남원을 홍보하는데 한복을 입는 것은 좋은 생각일 수 있다. 그렇지만, 대안적 생활문화운동으로 차분히 고민되고 실천되는 ‘우리옷 입기’가 아니라, 행사준비를 위한 전시성 행정이라면 그 방향이 옳지 않다고 본다. 옷을 억지로 입혀서 남원이 홍보되는 것은 아니다. 꾸준하고 진지하게 기획되어야 하는 일이다. 설령 급하게 기획되었다 하더라도 한솥밥을 먹으면서 일을 하는 동료공무원들에게 그 의미와 의견을 들어 차분히 준비되어야 한다. 최소한 720명이 넘는 조합원을 대표하는 노조와의 협의나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수렴이 없이 일방적으로 ‘시달’하는 협조공문은 요즘 진행하고 있는 지자체의 혁신사업이나 공직사회개혁과는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적 행정절차이다. 아직도 공직사회에서 시장지시에 의한 협조공문은 법보다도 무섭게 하위직 공무원을 위협한다. 공직사회 내부의 상명하복이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이 안타깝다.

 

옷이나 축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다이아나 크레인이 말하는 ‘의상민주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존의 구태의연한 행정관습을 과감히 버리고 내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봄이 성큼 다가오면서 남원의 춘향제도 가까워지고 있다. 공무원노조 남원시지부는 남원시민과 더불어 2005년 춘향제가 온 국민과 함께 하는 기쁨의 축제, 어울림의 축제가 되기를 바라며 명실공히 전 지역주민이 준비하고 참여하는 축제를 희망한다. 그 축제를 위하여 일방적 지시나 업무하달이 아니라 사소한 부분까지 공무원과 시민이 함께 하고, 새로운 문화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남원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 2005. 3. 17. 이유없이(?) 한복을 구입해야 하는 공무원들을 보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북본부 남원시지부]명의로 발표하기 위해 쓴 논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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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우디요(Caudillo) 경제와 ‘생명없는 발전’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경제학 박사)

1. 세 명의 여성경제학자
내가 경제학 공부를 시작한지 이제 20년이 되어가고 박사 학위를 받은 걸로 생각해보더라도 10년이 지나갔다. 그 동안에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경제학자가 누구일까라고 지난 연말에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우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그 세 명은 전부 여성 경제학자들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스팔타쿠스당을 만들고 이끌었던 여성 정치인 정도로 알려진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ourg), 케인즈의 제자 정도로 치부되는 죠안 로빈슨(Joan Robinson) 그리고 이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도넬라 메도우즈(Donnella Meadows)가 그 세 명이다. 아마 나의 학문적 계보나 이론적 흐름은 이 세 명의 여성 경제학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합친 것 혹은 그들의 공통점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은 메도우즈라는 이름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지만, 로마 클럽이 세상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전망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최고의 시스템 공학자가 바로 2년 전에 급작스럽게 사망한 메도우즈 여사였고, 이제는 사라진 학파인 제로성장론학파를 70년대 10년 간 끌었던 사람이 바로 메도우즈 여사였다. 세상이 자원 고갈로 인하여 멸망할 것이라는 로마 클럽의 우울한 예언의 기술적 근거를 만들었던 메도우즈 여사는 0%의 성장률로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경제적 운용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보였고, 정부가 도로공사 등 쓸데없는 공공사업과 군수산업을 후생 분야에 투입하면 물량적인 측면에서의 성장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행복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10년간 ZEG(Zero Economic Growth)라는 개념을 입증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로자 룩셈부르크의 분석의 상당 부분은 미국의 철도 산업에 맞추어져 있고, 그렇게 건설과 토목으로 확장된 자본주의가 결국에는 더 이상 착취할 비자본주의적 요소가 사라져 제국주의 단계를 거쳐 멸망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죠안 로빈슨 역시 축적과 성장에 대한 개념을 제시하면서, 가난한 사람과 고용에 관심을 갖지만, 정부의 토목산업에 재정지출로 성장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이 세 명의 여성경제학자들이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담론을 보았다면, 아주 이상한 논리들이라고 웃어버렸을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는 짓고 부수는 것으로 경제를 살리자는 논리가 지고지순의 사회정의론처럼 되어있는 사회이다.

2. 쿠즈네츠와 팬 테이블
남성 경제학자 중에서 건설산업으로 경제가 좋아질 수 없고, 빈곤의 문제가 오히려 심화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197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하버드 대학의 사이몬 쿠즈네츠(S. Kuznets)이다. 쿠즈네츠가 젊은 시절 통계자료를 만들면서 고단한 시절을 보낸 유펜(UPenn)에는 펜 테이블이라는 대단히 훌륭한 국가별 거시경제 통계가 아직도 업데이트되고 있다. 이 쿠즈네츠가 사용한 방식대로 국민총생산과 건설업 지출액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경제를 간단히 분석해보고, 이를 국제 통계와 비교해 보았다 졸고, “아픈 아이들의 세대”, 2005. 뿌리와 이파리
. 건설업매출액/GDP가 선진국은 8~13 사이에 존재하고, 이를 벗어난 선진국은 일본 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18을 넘어서면서 헤이세이 공황이라고 하는 10년 공황에 빠져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두 번 20을 넘어서는데, 79-80년 공황이 그렇고, 97-98년도의 IMF 경제위기 때 20을 넘어 26까지 증가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20을 넘어서면 누적된 건설산업이 공황을 일으키는 셈이다. 이론적으로는 경제의 다른 부분에 투입되어야 할 요소가 건설산업으로 집중되면서 요소 부족을 일으키는 일과 ‘지대(rent)’를 과잉으로 획득하기 위한 투기로 인한 거품(bubble)이 발생하게 된다는 두 가지 경우로 설명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국민경제 내에 건설 관련 활동이 13% 내외 정도에서 유지되어야지, 20%를 넘어서면 이미 건설 중심의 투기경제로 전환된다고 할 수 있다.

3. 중남미형 경제와 스위스-덴마크형 경제
남미 경제를 설명하는 가장 큰 요소가 지방 토호 즉 ‘카리스마를 가진 사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까우디요(Caudillo)의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졸고, “한국경제의 위기가 저성장이 아닌 이유 - 참여정부의 실체, 까우디요 경제로 가는 길”, 당대비평 2005 신년 특집호 “불안의 시대, 고통의 한복판에서”.
. 역사상 가장 악랄하고 잔인했던 착취 경제였던 스페인의 중남미 수탈이 끝나고도 중남미의 고통은 끝이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스페인이 물러난 다음에 토지를 불하받은 까우디요들이 계속해서 플렌테이션과 광산을 중심으로 수탈 경제를 운영했고, 중남미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발부터 양극화된 중남미 경제는 21세기에도 이 까우디요 경제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들보다 낮은 국민소득을 가지고 있던 덴마크와 스위스는 전혀 다른 형태의 경제 발전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가족형 소농이 아직도 존재하고, 직접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으며, 가족형 기업에 의한 경제활동이 활성화되고, 현재 국민소득은 3만 5천불을 넘은 상태이다. 현재의 건설산업을 중심으로 한 각종 경제 살리기 움직임은 한국형 대공황의 전주곡일 뿐만 아니라, 토지를 소유한 새로운 한국형 까우디요라는 새로운 계층을 발생시키거나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골프장이 개발될 산을 소유한 지방지주, 도로 옆의 생태보존지구의 지주 그리고 만평 이상의 농가소유주들은 현재의 전국적 개발정책에서 새로 까우디요로 편입되고, 이와 상관없는 대다수의 1주택 소유자나 전세거주자, 도시빈민과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대부분의 선량한 농민은 건설을 내세운 새로운 부의 ‘부등가 교환’을 둘러싼 경제 게임에서 일방적인 피해를 입고, 중산층에서 하류민으로, 그리고 하류민에서 극빈층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사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4. 생명 없는 발전의 말로
건설 위주의 경기부양책은 현재 한국 경제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 중에서 최악의 선택이지만, 이미 이 정부는 이 선택의 버튼을 눌렀다. 금년 7월 헌법 121조의 ‘소작금지’ 원칙을 어겨가면서 도시투기자들에게 전면적으로 농지보유를 허용하는 농지법 개정안을 실행할 것이고, 국토의 생태적 안전장치를 해체할 ‘토지규제기본법’을 제정할 것이다. 카지노와 골프장을 시범사업 종목으로 선정한 기업도시나 국내 법규가 적용되지 않는 경제자유구역은 이 전면적 건설업 활성화의 전주곡에 불과하다. 이러한 발전을 ‘생명 없는 발전’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짓고 부수기 좋아하는 폭력만 남은 남성들의 경제학에 대하여 여성들의 시각으로 본 대안 경제학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환경은 미래가치이고, 개발은 현재가치라는 조악한 2분법이 아니라, 실제로 무엇이 국민들이 행복하고 잘 사는 길인가라는 ‘어머니의 경제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간절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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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주의 벽을 깨부수다

우리의 생각을 바꾼 아인슈타인의 세계관… 세계의 기본단위를 입자 대신 사건으로 설명

▣ 김동광/ 고려대 강사 · 과학사회학

정녕 아인슈타인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무엇일까. 흔히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에 해당하는 이론체계를 수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그것이 우리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을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올해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아인슈타인 기념행사를 접하면서 이런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아인슈타인으로 대표되는 상대성이론이 우리에게 준 영향은 생각보다 깊고도 근본적이다. 한마디로 그는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큰 폭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4차원의 시공간 ‘시공연속체’

우리는 흔히 이런 변화를 세계관의 변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간단하거나 쉬운 것이 아니다. 세계관의 변화는 토머스 쿤의 말을 빌리자면 패러다임의 전환이며, 말 그대로 혁명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아인슈타인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이다. 아인슈타인 이전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점은 뉴턴의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의 개념에 기반한 것이었다. 즉,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이 움직이고 활동하는 배경이자 무대로 항구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서로 분리되지 않은 ‘시공연속체’로 인식했다. 오늘날 우리가 공간 3차원에 시간의 1차원을 더해서 4차원의 시공간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우주와 나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어느 쌍성계가 거느린 한 행성의 표면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 시공연속체 개념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말 그대로 서로 별개의 것으로 인식되던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통일된 연속체(continuum)로 인식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시공연속체의 특성이 관찰자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가지는 중요한 함축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어떤 물체의 속도가 빛에 가까워질 때 나타나는 길이의 수축이나 시간의 지연과 같은 기괴한 효과를 연상시킬 것이다. 더구나 이것은 관찰자가 속한 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가령 지구에서 빛의 속도에 가깝게 달리는 우주선의 시계가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주선에 탄 사람은 자신의 시계가 정상으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여서 수많은 공상과학(SF)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동안 인간이라는 주체와 분리되어 ‘저 너머’(out there)에 우리와 무관하게 있는 것으로 생각되던 세계가 아인슈타인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로 이어지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 발견의 함의는 관찰자인 주체와 그 대상인 객체 모두에게 새로운 지위를 부여하며, 양자가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라는 인식을 열어주었다. 따라서 세계는 더 이상 인간활동의 대상으로 머물지 않고, 인간 역시 데카르트 이래 물질로만 간주했던 세계와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게 되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이루는 기본적인 단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다시 말해서, 아인슈타인 이전의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만물의 기본은 입자였다. 근대물리학의 집성판인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힘과 운동을 통해 세계의 작동원리를 설명했고, 여기에서 삼라만상의 기본단위는 입자였다. 그에 따르면 지상에서는 입자로서의 포탄, 사과 등이 운동 3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천상에서는 입자로서의 행성들이 중력법칙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이 입자는 손으로 만지고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체이며, 근대적인 존재론은 이러한 입자를 기반으로 삼는다.


△ 아인슈타인은 나홀로 입자에서 관계망의 사건으로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사건의 개념은 뉴턴(오른쪽)의 입자론에 기초한 존재론을 바꾸었다.

이런 뉴턴의 생각이 아인슈타인에 이르면 입자는 그 의미를 잃고 사건(event)이라는 개념이 제기된다. 사건은 사상(事相)이라고도 하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입자 개념과는 달리 관계망(network)을 기반으로 삼는다. 따라서 포항공대 소흥렬 교수(과학철학)는 “아인슈타인의 사건이라는 개념이 이러한 기존의 존재론을 바꾸어놓았다”고 설명했다.

아인슈타인은 물질과 에너지, 가속도와 중력이 실제로는 하나라고 말한다. 우주 탄생 초기에는 물질과 에너지의 구분이 없었고, 오늘날 우리가 자연력이라고 생각하는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도 모두 단일한 ‘초힘’으로 통일돼 있었다. 오늘날 표준가설로 받아들여지는 ‘빅뱅 이론’에 따르면, 그 뒤 우주가 팽창하면서 온도와 압력이 내려가자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네 가지 자연력으로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은 하나로 설명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전약력’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이 외따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무수한 요소들이 상호 작용하는 연결망 속에서 끝없이 명멸하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결국 오늘날 지구를 지배한다고 자부하는 인류도 우주의 역사라는 척도에서 보면 지극히 일시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오늘날 생명현상 자체를 개체나 종의 실체가 아닌 생태계로 인식하는 생태적 관점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세계가 법칙성에 지배된다고 믿어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아인슈타인이 근대적인 인식론을 철저히 부정한 사람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그는 세계가 조화롭고 법칙성에 의해 지배된다고 굳게 믿었고, “세계가 가장 불가사의한 점은 우리가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말로 세계에 대한 이해 가능성이라는 신념을 끝까지 견지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기초를 닦은 양자역학의 함의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세계가 확률과 우연에 지배된다는 생각을 거부한 사례는 유명하다. 근대과학의 기반을 다진 뉴턴이 물리학에 대한 연구보다 연금술에 대한 연구가 더 많았던 것처럼 아인슈타인도 자신이 열어놓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의 손잡이를 선뜻 쥐지 못했던 셈이다.

그렇지만 아인슈타인이 남긴 유산은 실로 풍성하다. 우리는 대개 그의 과학이론이 우리 생활에 응용된 기술품이나 과학이론으로 그 영향력을 한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기실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그에게 빚진 셈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의 이론이 우리의 인식과 세계의 존재에 대해 갖는 함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이는 비틀스에서 환경운동에 이르기까지 그의 입김을 받지 않은 분야가 없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 말은 부분적으로는 옳고 부분적으로는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특수상대성이론 100주년을 맞이해서,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본격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다.

 

[한겨레21 2005년03월02일 제5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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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양심'엔 한계가 있다

2005/03/04 23:38
‘제국의 양심’ 엔 한계가 있다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한겨레21] 2005년03월02일 제549호

가끔 쓰이거나 듣게 되는 용어 중에 ‘양심적 지식인’이란 말이 있다. 권위주의 정권 밑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나 야수들의 싸움터인 세계에서 지식·양심을 겸비하는 누군가가 암흑 속의 빛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적지 않은 이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심의 역사적 한계점이 망각되고 양심적 지식인이 초역사적인 성현이나 선지자쯤으로 과장되게 이해되기도 한다. 과연 특정 ‘국민’의 일원으로 편입돼 있고 특정 계급을 배경으로 그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 양심과 지식이 풍부하다 해서 그 ‘국민’ 사회와 계급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장준하의 ‘반공주의’한계처럼


△ 1890년대의 후반의 우치무라 간조.

예컨대 한국 양심의 대표자라 할 장준하(張俊河·1918~75)를 생각해보자. 그의 독립운동이나 반독재 투쟁, 그리고 1970년대 초반 평화통일 논리의 정립은 꿋꿋한 양심의 발로였다. 그러나 <사상계> 창간 시절 미국쪽과의 유착이나 5·16 정변 직후 반란범 집단에 대한 지지 표명과 같은 장준하의 이면들을 과연 상황의 논리와 판단 오류만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서북 유산층 출신의 기독교 우파로서 장준하가 갖게 된 ‘조국 개발’ 지상주의와 미국의 이상화, 반공주의와 같은 한계는 그가 오랜 시련 속에 노력했음에도 끝내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암흑기 한국 양심의 상징인 장준하에게도 만만치 않았던 계급적 한계가 있었음을 보면 1970년대 제도 야권의 반독재 투쟁을 지도했던 한 종교 지도자의 최근의 극우적 발언들이 그리 놀랄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가진 자들에게 복무하게끔 돼 있는 제도 종교의 한계를 그 조직 안에서 극복하기란 거의 초인적 과제일 것이다.

제도권 속의 양심·지식의 한계는 국내의 문제만도 아니다. 필자는 최근 미 제국의 악행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파헤쳐 세계적 명성을 얻은 ‘미국의 양심’ 노엄 촘스키의 인터뷰를 읽고 의문을 가졌다. 인터뷰에서 그는 이라크에서 미 점령군이 이라크 무장 독립운동으로부터 부단한 공격을 받아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이 ‘놀라운 일’이라면서, 미국이 유엔 제재로 약해진 이라크를 점령해 식민화해버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에 불과하리라 예상했다고 회고했다.

베트남전쟁 때 인민전쟁의 위력이 어떠한가를 충분히 관찰한 바 있는 촘스키가 어떻게 미 제국이 같은 낭패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저항세력의 공격이 아무리 지속돼도 미군은 석유 매장량이 많은 이라크를 떠날 리가 없을 것”이라는 촘스키의 ‘독립전쟁 무용론’은 무엇보다 의문스러웠다. 이라크의 무장 독립운동이 이미 미국으로 하여금 하루 약 2억달러의 전비를 쓰게 함으로써 쌍둥이 적자를 심화하고 달러의 급락과 제국의 도산을 현실적 가능성으로 만들었는데 이라크의 안중근·허위·신돌석 들의 희생이 그렇게까지 소용없는 일이란 말인가?


△ 우치무라 간조가 청일전쟁을 일본의 자기희생적인 의전으로 합리화한 1894년 8월11일 영문기사.

미국 자료를 가장 많이 보고 알게 모르게 미국의 분석가들의 관점을 참고하게 되는 촘스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제국의 능력을 과장되게 생각하고 약자의 저항능력을 미미한 것으로 평가하게 된 게 아닌가? 미국 지식인 사회 안에서 생활하면서 바깥의 약자들의 저항이 촉매가 되어 거대한 미 제국도 몰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제국의 양심’이 가지지 않을 수 없는 한계를 잘 보여주는 친근한 사례로 동아시아 무교회(無敎會) 운동의 창시자로 알려진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1861~1930)가 있다. 1921~27년간 한국 무교회주의의 선구자 김교신(金敎臣·1901~45)을 지도하고, 장준하와 함께 한국의 양심이라 부를 함석헌(咸錫憲·1901~89)에게 세례를 준 우치무라가 한국과 직접적 인연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치무라 양심의 발로가 한국의 오늘날 현실과 맥을 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쫓겨나고 집에서 돌을 맞다

그의 최초의 의거(義擧)는 일본 역사책에 ‘불경(不敬) 사건’이란 이름으로 기록된 1891년 1월9일의 도쿄 제일고등중학교에서의 작으면서도 큰 일이었다. 모든 것을 천황에게 바치는 것이 바로 도덕이라고 가르쳤던 메이지 천황의 ‘교육칙어’가 성상처럼 학교에서 봉안·봉독되어 교원들이 깊은 절로 황민(皇民)으로서의 경배를 해야 하는 자리에서 일개의 젊은 선생인 우치무라는 머리를 약간 숙여 ‘칙어’에 인사할 뿐 경배를 하지 않았다. 기독교인으로서 천황은 같은 인간이니 신격화할 수 없다라는, 내세의 자유로 현세의 속박을 뛰어넘는 논리였다. 곧장 매스컴이 ‘비국민의 행각’이라고 침소봉대한 이 사건의 결과 우치무라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그의 집에 욕을 퍼붓고 돌을 던지는 ‘애국자’들의 행렬이 끊어지지 않는 등 전 사회적 이지메를 겪은 것은 물론, 이 ‘만고의 역적을 낳은’ 기독교 교단 전체도 공격을 받아 난처해졌다.

오늘의 입장에서 정신병동을 방불케 하는 당시 일본 주류의 국가주의적 분위기는 섬뜩해 보이기만 하는데, 그러면 박정희 왕국에서 ‘교육칙어’를 닮은 ‘국민교육헌장’의 암기를 거부한 사람은 어느 정도의 국가적 이지메를 각오해야 했을까? 오늘날 국가주의적 색채가 짙은 국민의례를 종교적 신념에 따라 거부하는 학생들은 학교와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독재가 끝난 이 시절에도 내세에 대한 신념에 입각한 자율적인 ‘나’를 지키기는 거의 우치무라 시대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것이다.

우치무라의 두 번째 의거는 러일전쟁(1904) 때 비전론(非戰論)을 제창해 일본과 러시아 두 ‘강도 국가’를 동시에 준엄하게 비판한 것이었다. 그 뒤 그는 정부로부터는 물론 ‘애국주의’ 노선을 걸었던 다수의 기독교인에게까지 미움을 받아 완전히 비주류가 되고 말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리가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고 국가가 진리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고 실천하는 것은 십자가를 짊어지는 일과 다름이 없다.


△ 장준하(왼쪽)과 촘스키. 그들은 부르주아 출신의 지식인으로서 존경할 만하지만 계급적 한계 또한 뚜렷하다.

그러면 기독교 계통의 조선인 도일 유학생들이 1920년대에 그렇게도 존경했던 우치무라는 평화주의와 반제국주의 신념을 철저하게 체계적으로 전개해왔을까? 그의 천부적 정의감이나 용기, 신앙심은 아주 감동적이지만, 사무라이 가문의 유명한 한학자 아들이자 당시 명문이었던 삿포로 농학교 출신, 정부 공무원과 중앙 일간지 편집실 직원 이력의 소유자, 그리고 미국 유학까지 갔다온 ‘고급 개화인’인 우치무라는 ‘국민’ 집단으로부터의 탈주를 끝까지 일관되게 시도하지도 않았다.

‘국민적’ 본적을 중심에 두고 살다

1890년대의 우치무라는 청일전쟁 발발 당시에 ‘조선 독립과 문명을 위한 이 전역의 정당성’에 대한 장문의 글을 영어로 써서 외국인을 상대로 일본 정책을 선전하고, 스페인에 대한 미국의 승리와 필리핀의 점령(1898)을 ‘문명과 정의의 승리’로 오해할 정도로 (종교인의 자율적 영역을 주장하면서도) 국민주의와 문명 지상주의에 빠져 있었다. 1920년대에도 그에게는 조선에서의 일제의 여러 횡포보다는 미국의 일본인 이민 금지 정책이 훨씬 더 중요하고 마음 아픈 사항이었다.

그는 태생적인 독립심이나 정의감으로 천황의 신격화나 조선에서의 폭력적인 식민화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지만, 서구 기독교 문명의 우월성과 아시아에서 ‘개화의 영도자’가 된 일본의 특별한 역할, 일본 국민으로서의 긍지와 같은 허망한 근대주의적 편견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그의 말로는 그가 “평생 두 J, 즉 예수(Jesus)와 일본(Japan)을 섬겼다”고 하지만 이를 다르게 보자면 그는 서구의 기독교와 일본이라는 자신의 ‘국민적’ 본적을 늘 중심에 두고 살았던 ‘선량한’ 부르주아적 근대인이었던 것이다. 사회주의를 ‘하나님에의 복종을 거부하는 악마의 유혹’으로 생각하고 제국주의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할 줄 몰랐던 그로서는, 감성으로 그렇게도 혐오하던 전쟁의 진정한 원인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제국주의 시대의 선의의 부르주아 지식인의 양심과 지식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조선인 제자들에게까지 광신적 국가주의에 대한 혐오와 인도·박애의 이상을 심어준 그의 양심은 고귀하지만, 그는 제국주의 시대의 테두리를 넘어 혁명·변혁으로 가는 길을 끝내 몰랐던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이와 같은 양심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물론 이와 같은 양심들을 존경해야겠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을 과장되게 이해해 우상으로 받드는 등의 과오를 저지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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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여라

2005/02/03 00:18

[준근이에게]

 

 

찔레꽃에게 미안하다

민들레인 너에게 미안하다

 

눈부신 세상

이 아름다움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었다

 

삶이 죄였다

이제는 용서하지 마라

나를 죽여라

 

 

 

- 2005. 2. 2 눈내리는 늦은 저녁에 두성이형이 술집에서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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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군대 가면 똥개 된다

2005/01/31 23:52
군대 가면 똥개 된다


육군에서 이번 ‘인분’ 사건을 계기로 훈련소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에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내가 겪은 바에 따르면 정작 훈련소는 몸이 힘들어서 그렇지, 실은 마음의 천국이다. 왜냐하면 훈련소 내무반에는 위아래 없이 동기들만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식판에 올라갈 깍두기의 개수를 둘러싸고 싸움은 벌어져도, 일방적 폭력은 일어나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육체적, 정신적 폭력은 자대배치 받은 후에 내무반에서 일어난다.

자대 배치를 받아 간 내무반에서 내가 처음 목격한 풍경도 구타 장면이었다. 무슨 일인지 화가 잔뜩 난 병장이 일등병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야전삽으로 엉덩이를 내리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앞으로 2년을 넘게 살아야 한다니.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문에는 “이 문을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리라”고 씌어 있다. 그때는 내무반의 문이야말로 내게 모든 희망을 접어야 할 지옥문처럼 여겨졌다.

이번에는 소대장의 가혹행위가 문제가 됐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군대에서 정작 심각한 폭력은 피라미드의 바닥에 있는 사병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프란츠 파농은 ‘수평폭력’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식민지의 인민들이 억압자들에게 당하는 폭력에 대항할 수 없을 때, 자신의 폭력성을 동료들에게 폭발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없애자고 해도 아직도 구타가 성행하는 것은 우리 사회와 군대의 소통방식에 아직도 위계성과 폭력성이 강하게 남아 있다는 증거다.

“군기가 빠졌다”는 말을 군대에서는 흔히 “당나라 군대 같다”고 표현한다. 듣자 하니 한국전쟁 때 중공군은 의용군 행세 하느라 사병들의 계급장을 뗐고, 거기서 유래한 표현이란다. 군대에서 듣는 얘기는 워낙 허구가 많이 섞여 있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 설명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나라 군대는 계급의 차이 없이도 얼마든지 군대를 유지할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 아니, 계급장이 없다니. 그 얼마나 선진적인 군대인가.”

군대 생활 해 보면 알겠지만 장교, 하사관, 사병 사이에는 뚜렷한 기능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사병들 사이에는 그런 차이가 거의 없다. 이병이나 일병이나 상병이나 병장이나 어차피 하는 일은 똑같다. 차이가 있다면 졸병들은 임무 끝난 후에 식기를 닦고, 고참들은 배 깔고 누워 TV 본다는 것뿐. 그런데 왜 계급의 구별이 필요할까? 미군처럼 직업군인이라면 계급의 구별이 월급의 차이라도 의미할 텐데, 우리의 경우는 징병제라 어차피 돈 몇 천원 차이 아닌가.

설사 이병, 일병, 상병, 병장을 구별하는 심오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신분의 높낮이가 아니라 수행하는 임무의 기능적 차이를 의미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그 기능적 차이는 분명하지 않고, 외려 신분의 차별만 남아 사병들의 군대생활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계급으로도 모자라 심지어 같은 계급 내에서도 입대 날짜에 따라 기수별로 위계질서를 만들어낸다. 꼭 그래야 할까? 국방부는 사병들의 계급이 무엇을 위한 것이며, 그 효력이 어디까지인지 분명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번 일은 군대에서 터졌지만,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끔 개그맨들을 보며 섬뜩할 때가 있다. 개그맨의 원조는 궁정의 광대다. 모든 이가 왕 앞에서 굽실거려도 왕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는 게 광대의 특권. 그런데 누가 대한민국 광대 아니랄까봐 가장 자유로워야 할 광대들까지도 자기들끼리 위계가 아주 엄격한 모양이다. 텔레비전에 나와 ‘선배님, 선배님’ 하며 군대 내무반 뺨치는 위계질서를 흘리곤 한다. 선진 당나라 군대에서 배워야 할 것은 국방부만이 아니다.

“사병의 인권유린.” 이 말은 너무 신선해 생뚱맞게 느껴진다. 언제부터 사병이 인간이고, 언제부터 그에게 권리가 있었던가? 어차피 훈련소 문 들어설 때 우리는 인간의 권리를 포기하라고 배웠다. 툭하면 “군대 가야 사람 된다”고 하지 않던가. 이게 어디 군대 가서 인간으로서 권리를 자각한 개인이 되라는 뜻이던가? 주는 똥 군말 없이 받아먹는 똥개를 ‘사람’의 모범으로 추켜세우는 ‘인간-똥개’들이 짖어대는 한, 사람이 개가 되는 엽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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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아느냐고 꼭꼭 눌러 썼더니...

2005/01/28 16:42

남원시지부 사무차장 김준근을 아십니까?! 
 

남원시지부 사무차장 김준근을 아십니까
준근이가 남원시지부로 온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지요
저는 지부와 관련된 일보다 개인적으로 준근이를 동생으로 좋아해
가끔씩 술을 한잔씩 하곤 합니다.
술은 언제나 제가 삽니다
준근이는 돈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와서 월급은 두번인가 받아 보았고
지금은 조합비가 없어 월급을 못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준근이는 서남대 뒤에 살고 있는데
술 먹고 집에 갈 때는 항상 걸어서 갑니다.

 

얼마전에 지부사무실에서 준근이하고 이야기하다
조합비가 얼마 남았냐고 물어 보았더니
십오만원 남았다고 그러더군요
인터넷 사용비나 기타잡비등 줄돈도 많은데 걱정이랍니다
혹시 면사무소에 종이컵 같은거 남은거 있으면
조금 갔다 주면 안돼겠냐고 그러더군요

 

얼마전에는 성호형하고 술 먹다가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파면이 된후에도 여러 가지 지부일에 신경쓰다보니
건강이 매우 안좋은 것 같더군요
저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같이 동참하지 못하는“살아 남은자의 슬픔”뿐입니다

 

사람은 가장 성스러우면서 또한 가장 이기적입니다.
타인의 눈물이나 슬픔등은 별로 생각하지도 신경쓰지도 않습니다.
저 또한 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간혹 괴로운 마음에 힘이 듭니다.
그래도 세상은 정말 아름답다고 저는 항상 믿고 있으며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공무원노동조합남원시지부 조합원입니다.
......

그리고 노조활동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해도
앞에서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일하는
그들에게 따스한 시선이라도 보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제 마음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두서없이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2005.1.20.]

 

 

 

준근이에게 (너를 아느냐고 꼭꼭 눌러 썼더니) 
 

준근아,
너를 아느냐고 글을 꼭꼭 눌러 썼더니
화를 참으며 꼭꼭 눌러 썼더니
성호형을 밟는 사람이 있구나.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왜 사는 줄도
무엇이 사는 것인줄도 모르는
철없는 애 같아
불쌍하기만 해서.

 

준근아,
언제나 정면이다
바위를 으깨 씹으며, 햇불을 들어라
전사는 그렇게 사는 것,
아니면
죽음이다

[200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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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남(1894)

2005/01/26 12:43


 

김개남(1894)

 

[동학농민군 4대 명의]


1.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가축을 잡아먹지 말라
2.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라
3. 일본 오랑캐를 몰아내고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는다.
4. 군사를 몰아 서울로 쳐들어가 권귀들을 모두 없앤다.


[동학농민군 12개조 군율]


1. 항복하는 자는 대접한다.
2. 곤궁한 자는 구제한다.
3. 탐학한 자는 추방한다.
4. 순종하는 자에게는 경복한다.
5. 도주하는 자는 쫓지 않는다.
6. 굶주린 자는 먹인다.
7. 간사하고 교활한 자는 그치게 한다.
8. 빈한한 자는 진휼한다.
9. 불충한 자는 제거한다.
10. 거역하는 자는 효유한다.
11. 병든 자에게는 약을 준다.
12. 불효한 자는 죽인다.

 

 

[동학농민혁명 일지]

 

1892. 4. 28          조병갑 고부군수로 임명(「日省錄」)

1892. 10             동학교도의 공주신원운동(오지영「동학사」)

1892. 11. 1          동학교도의 삼례신원운동(오지영「동학사」)

1893. 2. 9           동학교도의 광화문 복합상소(오지영「동학사」)

1893. 2. 14          동학교도의 서울 괘서사건(「구한국 외교문서」) 10, 美案-1)

1894. 3. 10          동학교도의 보은집회(「취어」)

1893. 3. 4           금구원평집회(「일성록」)

1893. 4. 2           보은집회해산(「일성록」)

1893. 8. 14          전라도에 親軍武南營 창설(「일성록」)

1893. 11. 14        전주 익산민란(오지영 「동학사」)

1893. 11. 15        전봉준 등 고부군민 조병갑에게 수세감면 요구(「전봉준공초」)

1893. 11             사발통문 거사계획(사발통문)

1893. 11. 30        조병갑 익산군수로 전임 발령(「일성록」)

1893. 12             고부군민 전라감영에 수세 감면 호소(「전봉준공초」)

1894. 1. 9           조병갑 고부군수로 재부임(「승정원일기」)

1894. 1. 10          고부농민봉기 고부점령(「전라도 고부민요일기」)

1894. 1. 17          말목장터에 진을 침(「전라도 고부민요일기」)

1894. 1. 25          고부민군 백산으로 이동함(「전라도 고부민요일기」)

1894. 2. 15          조병갑 정죄, 김문현을 감봉, 박원명 고부군수 임명(「일성록」)

1894. 2. 16          이용태 안핵사로 임명(「승정원 일기」)

1894. 2. 19          전라감영군의 전봉준 체포기도 실패(「전라도 고부민요일기」)

1894. 2. 22          전라감사의 병정소집 대기령(황현 「오하기문」)

1894. 2. 25          고부군민 다시 백산으로 이동(「전라도 고부민요일기」)

1894. 2. 25          순천민란(황현 「오하기문」)

1894. 2. 28          영광민란(황현 「오하기문」)

1894. 2월말        함열조창 습격계획(장봉선 「전봉준실기」)

1894. 3. 1           박원명의 설득과 회유로 고부군민 기본세력 해산(황현 「오하기문」)

1894. 3월초        이용태의 강경탄압(「전봉준공초」)

1894. 3. 13          고부군민 완전 해산, 전봉준 무장 손화중포로 피신(「전라도 고부민요일기」)

1894. 3. 20          동학농민군 무장에서 전면기포(「전라도 고부민요일기」

                           창의문 선포(황현 「오하기문」)

1894. 3. 23          고부군 재점령(황현 「오하기문」)

1894. 3. 25          백산에 호남창의대장소 설치. 전봉준을 총대장으로 손화중, 김개남을 총사령관으로 추대. 격문과 농민군 4대 행동강령 선포(오지영 「동학사」)

1894. 3. 26          태인으로 이동(황현 「오하기문」)

1894. 3. 29          태인 점령(황현 「오하기문」)

1894. 4. 1           원평으로 이동(황현 「오하기문」)

1894. 4. 2           홍계훈 양호초토사 임명(「승정원일기」)

1894. 4. 3           전라감영군 백산 출동, 동학농민군 태인 화호와 부안으로 나누어 이동(「전봉준공초」「저날도 고부민요일기」)

1894. 4. 6           부안과 태인으로 후퇴(오지영 「동학사」)

1894. 4. 7           황토현에서 감영군 격파. 정읍관아 점령(오지영 「동학사」, 홍계훈의 경군 전주성 입성(홍계훈 「양호전기」)

1894. 4. 9           무장 점령(「양호초토등록」), 홍계훈 경병 160명, 항병 200명 금구, 태인파견(「동비토록」)

1894. 4. 12   영광 점령(「양호초토등록」)

1894. 4. 14          홍계훈 선발대 무장 파견(「양호초토등록」), 이용태 경사도 금산군 유배(「승정원일기」)

1894. 4. 15          경군 원평 진출(황현 「오하기문」)

1894. 4. 16          함평 점령(「양호초토등록」)

1894. 4. 18          경군 태인 진출, 전라감사 김문현 파직, 김학진을 전라감사로 임명(「승정원일기」)

1894. 4. 21          경군 영광 도착(「양호초토등록」)

1894. 4. 23          장성 황룡촌 전투에서 경군 격파(황현 「오하기문」, 오지영 「동학사」)

1894. 4. 25          정읍, 태인, 원평 진출(「양호초토등록」)

1894. 4. 26          원평에서 선전관 이주호, 군관 이효응, 배은환 등 참수(「양호초토등록」)(」동비토록」). 전주 삼천 진출(최현식, 「갑오동학혁명사」)

1894. 4. 27          전주성입성(황현 「오하기문」, 「양호초토등록」). 이원회를 양호 순변사로, 엄세영을 삼남염차사로 임명(「승정원일기」)

1894. 4. 28           경군 완산 포진(「갑오실기」). 동학농민군과 경군1차 접전.(「양호초토등록」)

1894. 5. 1           동학농민군과 경군 2차 접전(황현 「오하기문」)

1894. 5. 3           동학농민군과 경군 3차 접전(황현 「오하기문」, 「양호초토등록」)

1894. 5. 4           조선정부의 요청으로 청의 섭사성 부대 아산만 상륙(박종근, 「청일전쟁과 조선」)

1894. 5. 6           일본군 인천항 상륙(박종근, 「청일전쟁과 조선」)

1894. 5. 7           나주화약 체결. 전봉준은 전라도 일대 순회이후 전라도 일대 집강소 설치(나주, 운봉 제외)(「전봉준공초」, 황현 「오하기문」)

1894. 5. 13          전운사 조팔영 파직. 이성렬 전운사로 발령(「승정원일기」)

1894. 5. 20          조팔영 경복궁 침입. 개화정권 수립(김홍집 내각). 군국기무처 설치(「승정원일기」, 황현 「오하기문」)

1894. 6. 27          성환에서 청,일 교전(박종근, 「청일전쟁과 조선」)

1894. 7. 1           청일전쟁 선전포고(박종근, 「청일전쟁과 조선」)

1894. 7 15           전봉준, 김개남 남원대회 개최(김재홍 「영상일기」, 황현 「오하기문」)

1894. 7 26           조선과 일본 사이에 양국 맹약 체결(박종근, 「청일전쟁과 조선」)

1894. 8 13           전봉준 나주로 가서 목사 만종렬에게 집강소 설치 권고, 실패(황현 「오하기문」, 「금성정의록」)

1894. 8. 17          청,일 사이의 평양전투에서 일본군 승리. 일본의 조선내정 적극 간섭(박종근, 「청일전쟁과 조선」)

1894. 9월초        전봉준 원평에서 2차기포 결정. 삼례 집결 통문(「전봉준공초」)

1894. 9. 21          양호 순무영 설치. 도 순문사로 신정희 임명(「승정원일기」)

1894. 9. 24          충청도 진천에서 신재련 봉기(「양호우선봉일기」)

1894. 9. 25          경상도 안동에서 농민군 3천명 봉기(「양호우선봉일기」)

1894. 9월말        최시형 휘하 북접 가담(「정봉준공초」, 「천도교교회사초고」)

1894. 9월말-10월초 충청, 경상도 일대에서 동학농민군 대관·일본군의 산발적 전투 다수

1894. 10월초      여산, 은진 거쳐 강경포 진출(황현 「오하기문」)

1894. 10. 6          황해도 해주에서도 봉기(「갑오해병비요전말」)

1894. 10. 11        관군 선봉장 이규태군 남하(「선봉진일기」)

1894. 10. 15        일본군 남하(박종근 「청일전쟁과조선」)

1894. 10. 16        논산도착. 북접과 합류(「이유상상서」, 「전봉준공초」) 김개남부대 전주 도착(「고문서」2, 「관부문서」)

1894. 10. 21        목천 세성산 전투에서 동학농민군 선발대 패퇴(「선봉진정보첩」)

1894. 10. 23        이인전투(「선봉진정보첩」). 김개남부대 금산 점령(황현 「오하기문」)

1894. 10. 24-25    효포, 대교 곰터 전투(「선봉진정보첩」)

1894. 10 26         동학농민군 경천점으로 후퇴(「선봉진정보첩」)

1894. 11월초      노성과 경천 진격(「선봉진정보첩」)

1894. 11. 8          공주 진격. 이인전투. 농민군과 관군 모두 우금치로 병력집결(「공산초비기」, 「순무선봉진등록」)

1894. 11. 9          우금재전투. 동학농민군 패퇴(「공산초비기」)

1894. 11. 10        김개남 진잠 점령(「선무사정보첩」)

1894. 11. 11         곰터에서 관군이 기습공격(「공산초비기」) 노성으로 후퇴, 김개남 회덕 점령(「선봉진정보첩」, 「순무선봉진등록」)

1894. 11. 12         동도차의소의 이름으로 경병, 영병, 일반 민중에 항일투쟁 초국하는 격문 고시(「선유방문병동도사서소지등서」)

1894. 11. 13        김개남 청주 공격 실패. 공주 방면으로 후퇴(「순무선봉진등록」, 「선봉진정보첩」)

1894. 11. 14        노성일대에서 접전. 황화대로 후퇴(「순무선봉전등록」)

1894. 11. 15        황화대에서 접전. 강경으로 후퇴(「순무선봉진등록」)

1894. 11. 19        전주까지 남하(札移電存案)

1894. 11. 23        전주에서 원평으로 남하(札移電存案)

1894. 11. 25        원평 구미란 전투. 태인으로 후퇴(「순무선봉진등록」)

1894. 11. 26        운봉 박봉양 반농민군 남원 회복(황현 「오하기문」, 「박봉양경력서」)

1894. 11. 27        태인 전투. 동학농민군 주력부대 해산(「양호선봉일기」, 순무선봉진등록」) 손화중, 최경선부대 광주 입성(「순무선봉진등록」)

1894. 11. 29        전봉준 입암산성 도피. 전라감사 이도재 부임(「승정원일기」)

1894. 11. 30        전봉준 백양사에 도착(최현식 「갑오동학혁명사」)

1894. 12. 1          손화중부대 해산. 김개남 태인에서 체포(「선무사정보첩」, 「선무선봉진등록」)

1894. 12. 2          전봉준 순창 피노리에서 체포(「순무선봉진등록」)

1894. 12. 3          최경선 체포(「최경선 판결선고서」)

1894. 12. 5          전라도 남해안의 동학농민군 장흥 점령(「선무사정보첩」, 황현 「오하기문」, 「장흥군지」)

1894. 12. 7          전봉준 일본군에 의해 나주목으로 압송(「순무선봉진등록」)

1894. 12. 10        전라도 남해안의 동학농민군 강진 점령(황현 「오하기문」)

1894. 12. 11        고창에서 손화중 체포(장봉선 「전봉준실기」)

1894. 12. 13        김개남 전주 (장대)에서 효수(「주한일본공사관기록」)

1894. 12. 24        최시형의 북접군 충주에서 해산(최현식 「갑오동학혁명사」)

1895. 1. 1           원평에서 김덕명 체포(최현식 「갑오동학혁명사」)

1895. 2.9-3.10     전봉준 5차례 심문(「전봉준 판결선고서」)

1895. 3. 29          전봉준, 손화중, 최경선, 김덕명, 성두환 등 교수형(「전봉준 판결선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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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

2005/01/17 19:58

 

누가 일곱 개의 성문이 있는 테베를 세웠는가?

책에서 그대는 왕들의 이름을 발견한다네.

왕들이 바위 덩어리를 끌어 날랐는가?

그리고 몇 번이고 파괴된 바빌론,

누가 바빌론을 몇 번이고 일으켜 세웠는가?

건설 노동자들은 금으로 번쩍이는 리마의 어느 집에 살았는가?

만리장성이 완성되던 날 밤에 석공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위대한 로마는 개선문으로 가득 차 있다네. 누가 그것들을 세웠는가?

시저는 누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는가?

수많은 찬양을 받은 비잔티움,

그곳에 있던 것은 궁전뿐이었는가?

전설의 아틸란티스에서조차

대양이 도시를 삼켜버린 날 밤에 사람들은

물에 빠져서도 자기 노예들한테 고함치고 있었다네.

 

청년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네.

그는 혼자였는가?

시저는 갈리아 사람들을 무찔렀다네.

그의 옆에는 요리사도 없었는가?

스페인의 펠리페 왕은 자기 함대가 물 속에 가라앉았을 때 눈물을 흘렸다네.

눈물을 흘린 사람은 그 혼자뿐이었는가?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이겼다네.

그 말고 누가 이겼는가?

 

쪽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승리.

누가 승리자들의 연희를 위해 요리를 만들었는가?

10년마다 등장하는 위인.

누가 그들을 위해 대가를 치렀는가?

 

너무나 많은 이야기.

그만큼 많은 의문.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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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치가시

2004/12/28 18:08

준치가시

 

             - 백 석

 

 

 

준치는 옛날엔
가시없던 고기
준치는 가시가
부러웠네
언제나 언제나
가시가 부러웠네

준치는 어느날
생각다 못해
고기들이 모인데로 찾아갔네
큰 고기, 작은 고기
푸른고기, 붉은 고기
고기들이 모일데로
찾아갔네

고기들을 찾아가
준치는 말했네
가시를 하나씩만
꽂아달라고
고기들은 준치를 반겨맞으며
준치가 달라는
가시 주었네
저마끔 가시들을 꽂아주었네

큰고기는 큰 가시
잔고기는 잔가시
등 가시도 배가시도
꽂아주었네

 

가시 없던 준치는
가시가 많아져
기쁜 마음 못 이겨
떠나려 했네.

그러나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
가시 없던 준치에게
가시를 더 주려
간다는 준치를
못 간다 했네.

그러나 준치는
염치 있는 고기,
더 준다는 가시를
마다고 하고,
붙잡는 고기들을
뿌리치며
온 길을 되돌아
달아났네.

그러나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
가시 없던 준치에게
가시를 더 주려

달아나는 준치의
꼬리를 따르며
그 꼬리에 자꾸만
가시를 꽂았네,
그 꼬리에 자꾸만
가시를 꽂았네.

이때부터 준치는
가시 많은 고기,
꼬리에 더욱이
가시 많은 고기.

준치를 먹을때엔
나물지 말자,
가시가 많다고
나물지 말자.
크고 작은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인
준치 가시를
나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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