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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22
    말죽거리잔혹사
    피에로

말죽거리잔혹사

 

상업영화적으로 대단히 탄탄한 내러티브 구조를 갖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유하 감독 나름의 색깔도 있고 자기 목소리도 있고, 자기 반영적이기도 하고. 그러나 중간에 김부선인가? 아무튼 떡볶이집 주인 아줌마가 나오는 씬들은 정말 영화의 흐름을 깨고 갑자기 몰입이 중단되게하는 면들이 있지만, 그것만 빼면 나처럼 시각적으로 적정선에서 양심을 지키며 영화를 즐겁게 보고 싶은 '남성'마초 관객들에게 아주 괜찮은 영화이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20대에서 50대의 남성 팬들은 대체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 시퀀스는 과거에 중고교시절 폭력적인 남자 중고교 학생 사회의 질서속에서 일진 이하 모든 남중고생들이 품었던 판타지를 대단히 섬뜩하고 선정적으로 분출해버린 장면이다.

 

이 시퀀스는 중고교시절을 억눌린 무엇에 의해 답답하게 지냈고, 그 억눌린 감정의 해방구를 찾지 못한, 그러니까 폭력적 억압에 맞선 대안 윤리가 아니라 폭력에 맞선 차악 폭력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정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다. 어쩜 그래???

우리도 중고교시절엔 정말 이소룡, 아니 그땐 토니 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토니쟈처럼 근육을 키워서 싸움을 연습해서 다 패주고 싶었단 말이다. 교련선생부터 시작해서 교장, 교감, 재수없는 아저씨들, 싸움 못하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폭력쟁이들 모두. 그러나 난 그냥 그 질서에 어우러져 또다른 가해자가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말죽거리잔혹사는 더더욱 내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던 것 같다. 옳지 못한 카타르시스 말이다. 그건 해방의 감정이 아니다. 이 불순한 카타르시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은 죄가 아니다. 군사주의-마초이즘 경쟁지상주의에서 태어나 자라 훈련받은 우린, 그런 감정을 느끼도록 키워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영화 말죽거리잔혹사는 그것이 대중-상업영화이어서 발생하는 한계의 지점에서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지점에서 결코 대안적이거나 체제비판적인 영화가 될 수는 없는 본질이 존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학교 좆까라고 해!"는 상업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분명하고 딱 거기까지만이다.

 

만약 작가가 김부선 캐릭터나 거시폭력에 맞선 미시폭력의 저항 등의 설정들이 리얼리즘적 구현 그 자체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더라도, 둘 모두 효과는 리얼리즘의 의의보다 훨씬 뒤쳐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과정적으로나 결과적으로 선정적인, 껄쩍찌근한 카타르시스를 동반하므로 그것 역시 거기까지라는 말을 할 수 있겠다. 권상우 캐릭터가 너무 착하고 정의롭고 무적이다. 쫌만 안착했어도 좋았을텐데. 그래도 그의 저항이 이해될 정도의 극적 긴장감이 유지되는 시나리오 바탕이 충분히 되는데. 아쉽도다. 그래도 어쨌든 재밌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상업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감독이 만든 상업영화이긴 하다. 그런 점에서는 또 대단하게 느껴진다.

 

- 4년전에 과 싸이클럽에 썼던 <말죽거리잔혹사>에 대한 '호평'을, 일주일전 다시 감상한 이후 다른 느낌을 받고는 스스로 정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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