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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12
    맑스주의의 역사 강연회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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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10/13
    탈당(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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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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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7/06/08
    영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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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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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7/04/30
    제4회 대한민국국제청소년영화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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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의 역사 강연회 웹자보

맑스주의의 역사 강연회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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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당

 

말이 필요없다.

결코 변형될 수 없는 하나의 image가 내게 지시하고 있다.

매월 꼬박꼬박 저따위 정치엘리트들에게 활동비를 주느니 투쟁기금 박스에 돈을 넣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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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가 싫은 이유

난 결코 영화를 보지 않고 그 영화를 비판하지 않는다. 스포일러를 접하더라도, 아무리 그 내용이 내가 존중하는 가치와 맞지 않다고 느껴지더라도, 영화를 직접 보지 않고 비판하는 것은 영화를 힘들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드는데에 땀흘리며 밤새며 노동한 이들의 노동의 의미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영화 <디워>는 아직 보지 않은 영화다. 그래서 영화의 내용이 부실하다든지, 연기가 엉망이다라는 등의 세간의 비난들은 아예 논외로 하고, '영화 그 자체인 <디워>'가 아닌 '디워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디워>는 마케팅을 위한 여러 액션들에 의해 영화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디워'로 시작된 자본, 애국주의, 세계화에 대한 불쾌한 심상들을 만들어 왔다. 심형래의 <디워> 마케팅은 다른 것보다도 오로지 애국주의에 기대왔는데, 이것이 한국 영화에 미칠 영향은 별로 유익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의 다른 점들을 차치하고서, 하다 못해 장르로서 비주류라고 볼 수도 있는 '괴수영화'라는 평가 기준까지 제작자 스스로가 제낀 채 오직 '애국'과 '시장재패'라는 미명으로 영화와 영화를 보는 관객성의 모든 것이 장식됐다.

이처럼 무서운 효과가 따로 있을까? 심형래와 쇼박스는 이상한 논리로 으름장을 놓거나 협박했다. <디워>가 미국에서 전국 1500개관 릴리즈 상영이 될 것이라는 으름장, 그리고 <디워>가 망한다면 국가적으로 막대한 손실이라는 식의 논리였다. 아무래도 심형래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기보단 세계를 재패하고 싶은 유사-엘리트주의자로만 보인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개그맨 출신이라서 무시한다며 볼멘소릴 하고 목청 높이며 자신의 열정을 선전하지만, 난 오히려 그가 '돈'을 무기로 애국심 마케팅을 하며, 그간 영화적 진정성만으로 보이지 않는 영화제작 현장에서 영화가 아직 갖고 있을지 모를 무언가를 지켜온 이들의 모든 땀의 의미를 무시하는 효과만 만들고 있는, 유사-엘리트주의자이기 때문에 그가 싫다. 그, 그의 <디워>는 자본의 규모로 따지자면 엘리트-권력에 가깝다. 오히려 그가 개그맨 운운하는 것은 그의 또다른 마케팅 재료 중 하나로 보이기 까지 하다.

영화는 오직 그의 재료일뿐이고, 그는 자본주의 상품시장으로서의 세계를 재패하고 싶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국영화가 세계를 재패하려면 영어로, 미국배우로, 막대한 자본으로, 유사-헐리우드 컴퓨터그래픽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미국이 아닌 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영화들의 문화적 가치를 '돈'이라는 가치 하나로 헐값으로 만들어버리는 효과를 만든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세계 곳곳의 고유성과 문화적 가치, 다양한 문화를 말살하고 있을때 '디워 효과'는 이른바 세계를 재패하려면 미국의 상품들과 똑같이 만들면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무기는 애국심, 애국주의다. 대중 심리를 이용하는 정도가 놀라울정도로 국가주의적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의 문화'산업'에서의 영화 이용이 이 정도까지 다다르게 된 것을 보고 섬뜩한 기분마저 든다.

 

<디워>가 성공한다고 예술의 창조성이 진작되는지도 의문이며, 또 <디워>가 미국영화시장에서 선전한다고 한국영화가 발전한다는 논리도 무섭다. 디워가 순수 한국기술로 컴퓨터그래픽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떠들지만 실상 후반작업 크레딧 다수는 헐리우드 엔지니어들인 것을... 오히려 <괴물>보다 할리우드 후반작업 스탭이 더 많다고 하니... 뭔가 진짜 기술 진작을 가져왔다고 해도 그 자체로 영화의 모든걸 내세우는 모습이 석연찮은데 그것마저 거짓말이라니...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기위해, 영화로 자기 목소릴 내기위해 빚도 지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고군분투하는 독립영화판의 진짜 비주류들의 땀이 허공으로 날라가는 듯하다. 비주류 감수성을 애국심이라는 엉뚱하고 비열한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는 '디워 효과'에 맞서서 예술로서의 영화를 옹호하는 비주류들의 심형래 비판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말 할리우드처럼? '디워 효과'는 대중에게 "영화에 대한 평가 기준은 영화가 얼마나 많은 돈으로 제작되었느냐, 얼마나 많이 흥행하느냐, 헐리우드 영화와 얼마나 닮았느냐이다"라고 무자비하게 선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디워>가 성공하든말든 이미 이런 식의 애국논리, 영화의 작품적 평가기준의 종말 등의 현상은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한국영화시장'이 아닌, 한국'영화')를 더더더 깊은 수렁으로 빠드리고 말 것이다.

어차피 누군가는 다수 대중과 영화는 소통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고, 상업영화시장과 예술영화시장은 아예 양분되어있는거 아니냐고 말하겠지만. 아무도 좋은 영화를 소수만 보고 감흥받길 원하지 않는 것도 분명하므로... 어떤 사람들은 영화마저 대중의 선택지를 좁히고 좁히고 또 좁히려고만 한다. 이런 악조건에서는 선택지를 무한히 넓히는 것도 의미있고, 선택지 중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영화를 더 많이 만들고 알리는 것도 의미있고, 그리고 선택지를 좁히려는 권력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면 세상이 암흑같고 비관주의가 몸 속 전체를 휘감더라도 의미있는 몸부림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디워 효과'를 보며 정말 한국 땅에 영화의 미래가 있을까, 짜증나기도 했지만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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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뉴코아 투쟁 반드시 승리하고, 비정규악법 철폐시키자!

이랜드-뉴코아 투쟁 반드시 승리하고,
비정규악법 철폐시키자!



며칠 전, 이랜드-뉴코아 투쟁승리와 비정규악법 철폐를 외치며 학생 3명을 비롯한 조합원들과 연대단위 활동가들이 서울지방노동청을 점거했다. 그동안 정부는 비정규직을 더욱 확산하는 비정규직‘보호’법을 시행하여 이로 인한 많은 노동자들의 대량해고와 외주용역화의 가장 주범임은 물론이고, 이에 맞선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파업과 매장점거에 경찰공권력을 투입하여 이를 강제해산시킬 뿐이었다는 점에서 이 문제의 근본적이고 주된 문제를 낳아 온 역할을 해 왔던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이랜드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허울뿐인 비정규직보호법은 시행되기 전부터 오히려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차별을 공고히 할 뿐일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행시킨 정부와 사용자측은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투쟁이 한창 촉발되어 있는 시점에서도 “이 법을 잘 정착시키는 게 중요하다”면서 축하 떡을 나눠먹고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닥친 이후에 노동의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비정규직이 이미 880만에 육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신자유주의의 안착화로 인해 2007년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고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사회적인 빈곤과 불안정한 민중들의 삶 그리고 이로 인하여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서로에 대한 공공연한 분할선과 적대, ‘정치 그 자체의 위기’는 더 이상 억압할 수 없는 최소의 권리와 문제해결을 위한 소통마저 가로막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비정규직 확산 문제는 더 이상 비정규직 당사자들만의 문제일 수 없다!


너무나도 무능력한 노무현 정권에게 책임이 있다!

비정규악법이 시행됨에 따라 무차별 대량해고 된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선택지로써 매장을 점거했을 때, 노무현 정권은 ‘불법’운운하며 여론을 호도하면서 홈에버 상암점과 뉴코아 강남점의 농성장에 신속하고도 매우 유능하게 공권력을 투입하여 노동자들을 끌어냈다. 미국 중심의 군사세계화 정책에 적극적으로 조응하며, 결국 이에 따라 자국민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되고 한 명, 두 명씩 피살될 때에는 ‘금전적인 협상’ 운운하며 너무나도 무능하게 지켜만 보고 있던 노무현 정권이 자신의 무능력함으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울부짖을 때는 역설적으로 신속하게 공권력을 침탈하여 자신의 폭력적이고 반민중적인 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민중들의 삶을 눈꼽만큼도 책임질 수 없는 신자유주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투쟁을 만들어 가자.


이랜드투쟁 반드시 승리하고
비정규악법 철폐시키자!


2007년 여름, 신자유주의로 인한 한국사회의 갈등지점은 지금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시때때로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 곳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갈등지점은 일부 세력들이 말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자발적인 양보로써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지방노동청을 점거한 사람들이 외치는 것처럼 노무현 정권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이랜드-뉴코아 투쟁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투쟁을 반드시 사수하고, 이 투쟁이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전략의 핵심정책 중 하나인 비정규악법에 맞선 전 민중들의 목소리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에 이랜드자본과 노무현 정권이 양보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랜드-뉴코아 투쟁 반드시 승리하고, 비정규악법 철폐시키자!
비정규악법 시행시킨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
비정규악법 폐기시키고 신자유주의 끝장내자!


성공회대학교 역사철학학회, 인터내셔널/ 원광대학교 행동연대, 진보를 향한 지성 터빛길, power of people/ 전주대학교 what, 회오리/ 우석대학교 교지 편집위원회/ 수원대학교 직접행동 네트워크 ACTION, 중앙동아리 새벽소래, 진짜철학연구회, 탈춤연구회/ 덕성여자대학교 여성학회 밥과 장미/ 가톨릭대학교 사회과학대, 사회학과 학생회, 사회학과 학회 자경/ 동덕여자대학교 총학생회, 동아리 연합회, 자연대학생회, 인문대학생회/ 연세대학교 법과대학학생회, 법과대학 노동법학회/ 전남대학교 학생행진(준)/ 인하대학교 학생행진(준)/ 연세대학교 학생행진(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인문대학생회/ 고려대학교 문과대학생회, 동아리연합회, 경영대학생회, 한국근현대사연구회, 한국사 대동반/ 경인교육대학교 총학생회/ 강원대학교 생활도서관/ 건국대학교 법대학생회, 평등-자유를 위한 건대모임, 법과대 향연, 생활자치도서관, 근현대사연구회 얼, 동아리연합회 착장비평분과, 인문사회과학분과/ 중앙대학교 총여학생회, 정경대학생회/ 세종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동아대학교 제24대 법대학생회/ 성신여자대학교 총학생회, 인문대학생회, 여성위원회 소리, 몸짓패 메이데이/ 홍익대학교 문과대학생회/ 성균관대 문과대 학생회, 사회대 학생회, 동아리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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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 발화

지난 밤에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방황 한 가득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우리의 일상을 한심하다고 비난하고 있었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를 우리의 미래에 대해 한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친구와 '광기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ㅏ. 그렇지 않아도 지난 열흘여간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읽고 난 터였다. 친구는 이성과 비이성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혼란스러워 했다. 그것은 '이성'이 어느덧 체제 안정을 위한 방어의 무기가 되는 언어가 되어버린 현실의 무엇과 연결된 혼란스러움이기도 했다. 우리는 때때로 어떤 비이성에 대해 비난하고 공격한다. 여러가지 방식으로. 그러나 그것의 어떤 경계나 어떤 지점에서 우리의 비판이 우리에게 무기가 되는가 아니면 도리어 우린 무엇을 수호하고 있는것인가? 우린 부르주아의 질서의 그 어떤 것도 수호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안에 존재하는, 문화예술이라는 어떤 시스템 안에, 문화산업과 영화산업이라는 시스템 안에 존재하게 될지도 모르는 우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에 종속되어져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답답함으로 가득하다. 난 데모도 않나가고, 저항하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스물다섯이지만, 그거야 어쨌건, 막막한 것이었다. 이성의 언어란 뭐지? 마르크스주의를 좋아하는 어떤 아이가 그리 넉넉하지 못하면서도 철저하게 지배계급의 언어를 따르는 어떤 모순적 삶의 총체를 살고 있다고 여겼던 사람에게 "세상이 너무 비이성적이지 않아?"라며 무언가 자신의 가치를 설명하려들었을때, 그것은 의도대로 올바른 효과만을 낳는 발화일까? 아는체하며 말하는 것은 예전보다 더 두렵고 무서운 것이 되었다. 이전보다 책은 많이 읽지만, 이전보다 머릿속이 불확실하며 심장은 들쑥날쑥 불규칙적으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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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이요

이제 아침이 되면 종암사거리 "유천칡냉면"으로 출근해야돼.

오늘은 안갔어. 갈껄 그랬나? 꼴에 내 전공에 맞는 돈벌이를 하고 싶었거든.

몇년만에 기술경영 수업을 들은 꼴이 되어버렸지.

4시간동안 성XX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님을 앞에두고 온라인 강의 촬영을 했는데 정말 고역이었어.

정말이야? 경쟁자의 능력을 탐색하고 시장경제에서 승자가 되어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는건 어떤 세상을 위한거지?

아무튼 어쨌든 내일은 냉면을 배달하러 가야돼. 차라리 속편하지.

차가 빼곡하고 쌩쌩달리는 미아리 8차선 거리를 왔다갔다하며 하루에도 스무집씩 들리며 육수를 따라주는건 다른 알바에서 경험못하는 나름의 재미가 있으니까. 게다가 12시간 노동을 마치면 따끈따끈한 지폐 6장도 받고. 방구석에서 뒹구는거보다 백배 낫지! 빚120만원이랑 등록금290만원도 벌어야되고... >_<;;;

내일은 제발 씨티100 운전하다가 안다쳤으면 좋겠다. 오토바이 너무 꼴았거든. 씨부랄.

성북구 강북구 어디든 배달하는 유천냉면, 배달하다가 사고 안나면 정말 행운이지.

 

띵동!

냉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십니까, 냉면왔습니다.

물냉면 육수 따라드릴께요. 비빔냉면은 여기 있구요.

어익후 쏟았네요, 죄송합니다. 이를 어쩌죠. 육수가 너무 꽝꽝 얼어있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제가 닦을께요.

아예,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얼마죠?

네, 11000원입니다.

예 여기있습니다.

예 거스름돈 여기있습니다.

예 수고하세요.

예 안녕히계세요, 맛있게 드세요.

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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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에버 투쟁 정말 잘되길

홈에버 투쟁이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요즘은 매일 그 생각뿐이에요.

학교 도서관에서 책 읽을때도, 아르바이트 할 때에도, 영화 볼 때도,

한 순간도 잊을 수가 없어요.

 

멋지고 신나는 투쟁인거 같아 부럽고,

그리고 꼭, 꼭, 이겼으면 좋겠어요.

무패신화 서울지역일반노조 화이팅!

홈에버 캐셔 노동자 화이팅!

 

오늘 투쟁 잘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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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역시 그리 만만한 영역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로 충무로에 당당하게 데뷔하고 싶어 치열하게 준비하는 이 학교 학우들에겐 모퉁이에 작게 남은 환상이 그들의 의미있는 실천을 방해하게 만든다.

미래가 불안정하다면 억압받는 사람들, 안정적인 자기 미래를 어떤 부당한 권력에 의해 보장받을 수 없는 사람들은 그 부당함에 맞서 저항해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하지만 이들은 도무지 집단적 실천을 도모하려 하지 않으며 개개인들이 흩어져 피 터지게, 머리 깨지도록, 자신의 영화적인 개성을 스스로 부수어 '상업성 짙은 무언가'에 도전하면서까지 그 독자생존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중에서 1퍼센트 정도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다음 자신이 만들고 싶어했던 영화를 만들고 있지 못한 자기 모습을 발견할때 그 비참함을 어찌하려는지.

이처럼 안타까운 일이 따로 있을까?

도무지 이놈의 학교 충무로 지망생들은 한미FTA에 대해 일언반구의 언급들조차 없다. 이런 점에선 최악, 최저 수준의 영화학교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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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출작 촬영 이후

이틀간의 첫 연출작품 촬영을 마쳤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지금 현재의 나를 있는 그래도 드러내려 하는 영화가 제작과 과정으로서의 한 구다리를 마치면서 하나의 진리가 명백하게 도출되었다. 그것은 내 한계와 뽀록난 가짜 진정성이었다.

뭔가 영화로 재기만만하게 사기 한번 치겠다는 치기가 있는 그대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편집이라는 과정을 통해 그 대사를 자르겠지만 편집완성본이라는 결과물이 아닌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겨진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운동, 삶이 그 자체로 과정인 것처럼 예술, 영화라는 것도 그 자체로 과정이라는 것이 아주 사소하게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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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대한민국국제청소년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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