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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가 싫은 이유

난 결코 영화를 보지 않고 그 영화를 비판하지 않는다. 스포일러를 접하더라도, 아무리 그 내용이 내가 존중하는 가치와 맞지 않다고 느껴지더라도, 영화를 직접 보지 않고 비판하는 것은 영화를 힘들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드는데에 땀흘리며 밤새며 노동한 이들의 노동의 의미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영화 <디워>는 아직 보지 않은 영화다. 그래서 영화의 내용이 부실하다든지, 연기가 엉망이다라는 등의 세간의 비난들은 아예 논외로 하고, '영화 그 자체인 <디워>'가 아닌 '디워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디워>는 마케팅을 위한 여러 액션들에 의해 영화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디워'로 시작된 자본, 애국주의, 세계화에 대한 불쾌한 심상들을 만들어 왔다. 심형래의 <디워> 마케팅은 다른 것보다도 오로지 애국주의에 기대왔는데, 이것이 한국 영화에 미칠 영향은 별로 유익하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의 다른 점들을 차치하고서, 하다 못해 장르로서 비주류라고 볼 수도 있는 '괴수영화'라는 평가 기준까지 제작자 스스로가 제낀 채 오직 '애국'과 '시장재패'라는 미명으로 영화와 영화를 보는 관객성의 모든 것이 장식됐다.

이처럼 무서운 효과가 따로 있을까? 심형래와 쇼박스는 이상한 논리로 으름장을 놓거나 협박했다. <디워>가 미국에서 전국 1500개관 릴리즈 상영이 될 것이라는 으름장, 그리고 <디워>가 망한다면 국가적으로 막대한 손실이라는 식의 논리였다. 아무래도 심형래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기보단 세계를 재패하고 싶은 유사-엘리트주의자로만 보인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개그맨 출신이라서 무시한다며 볼멘소릴 하고 목청 높이며 자신의 열정을 선전하지만, 난 오히려 그가 '돈'을 무기로 애국심 마케팅을 하며, 그간 영화적 진정성만으로 보이지 않는 영화제작 현장에서 영화가 아직 갖고 있을지 모를 무언가를 지켜온 이들의 모든 땀의 의미를 무시하는 효과만 만들고 있는, 유사-엘리트주의자이기 때문에 그가 싫다. 그, 그의 <디워>는 자본의 규모로 따지자면 엘리트-권력에 가깝다. 오히려 그가 개그맨 운운하는 것은 그의 또다른 마케팅 재료 중 하나로 보이기 까지 하다.

영화는 오직 그의 재료일뿐이고, 그는 자본주의 상품시장으로서의 세계를 재패하고 싶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국영화가 세계를 재패하려면 영어로, 미국배우로, 막대한 자본으로, 유사-헐리우드 컴퓨터그래픽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미국이 아닌 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영화들의 문화적 가치를 '돈'이라는 가치 하나로 헐값으로 만들어버리는 효과를 만든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세계 곳곳의 고유성과 문화적 가치, 다양한 문화를 말살하고 있을때 '디워 효과'는 이른바 세계를 재패하려면 미국의 상품들과 똑같이 만들면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무기는 애국심, 애국주의다. 대중 심리를 이용하는 정도가 놀라울정도로 국가주의적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의 문화'산업'에서의 영화 이용이 이 정도까지 다다르게 된 것을 보고 섬뜩한 기분마저 든다.

 

<디워>가 성공한다고 예술의 창조성이 진작되는지도 의문이며, 또 <디워>가 미국영화시장에서 선전한다고 한국영화가 발전한다는 논리도 무섭다. 디워가 순수 한국기술로 컴퓨터그래픽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떠들지만 실상 후반작업 크레딧 다수는 헐리우드 엔지니어들인 것을... 오히려 <괴물>보다 할리우드 후반작업 스탭이 더 많다고 하니... 뭔가 진짜 기술 진작을 가져왔다고 해도 그 자체로 영화의 모든걸 내세우는 모습이 석연찮은데 그것마저 거짓말이라니...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기위해, 영화로 자기 목소릴 내기위해 빚도 지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고군분투하는 독립영화판의 진짜 비주류들의 땀이 허공으로 날라가는 듯하다. 비주류 감수성을 애국심이라는 엉뚱하고 비열한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는 '디워 효과'에 맞서서 예술로서의 영화를 옹호하는 비주류들의 심형래 비판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말 할리우드처럼? '디워 효과'는 대중에게 "영화에 대한 평가 기준은 영화가 얼마나 많은 돈으로 제작되었느냐, 얼마나 많이 흥행하느냐, 헐리우드 영화와 얼마나 닮았느냐이다"라고 무자비하게 선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디워>가 성공하든말든 이미 이런 식의 애국논리, 영화의 작품적 평가기준의 종말 등의 현상은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한국영화시장'이 아닌, 한국'영화')를 더더더 깊은 수렁으로 빠드리고 말 것이다.

어차피 누군가는 다수 대중과 영화는 소통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고, 상업영화시장과 예술영화시장은 아예 양분되어있는거 아니냐고 말하겠지만. 아무도 좋은 영화를 소수만 보고 감흥받길 원하지 않는 것도 분명하므로... 어떤 사람들은 영화마저 대중의 선택지를 좁히고 좁히고 또 좁히려고만 한다. 이런 악조건에서는 선택지를 무한히 넓히는 것도 의미있고, 선택지 중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영화를 더 많이 만들고 알리는 것도 의미있고, 그리고 선택지를 좁히려는 권력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면 세상이 암흑같고 비관주의가 몸 속 전체를 휘감더라도 의미있는 몸부림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디워 효과'를 보며 정말 한국 땅에 영화의 미래가 있을까, 짜증나기도 했지만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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