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긴장푸시오

 

다들 조급해보인다. 세상은 뭣같고 나는 열받아 죽겠는데 '학우 대중'들은 인정도 안해주니까. 속을 다 까발려서 보여주고 싶은데 알아주지 않으니까. '니들' 일인데 들은 체도 안하니까.

 

"학생운동, 너무 경직되어있다"고 하는 그 유명한 소문이 적어도 쁘띠부르주아들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90년대 초반의 모습으로 정체된 체 그 끝자락을 이어온 소위 문화예술운동에는 근거없는 자존심과 경직성만 가득할 뿐, '문화'도, '예술'도 없다. 누구는 문화와 예술을 운동성 및 대중성과 기술성으로 나누더구만, 문화도 예술도 그런 단순명료한 구분선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문화 그 자체, 예술 그 자체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학생운동의 예술운동의 역사같은건 몰라 한계가 있는 생각이긴 하지만 art를 '기술로서의 art'의 의미로만 해석하는데에서 소위 문화예술운동의 오류는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아주 뻔하게 생각할 것을 제안한다. 학생운동의 모든 영역에 예술적 감수성의 활력을 채워넣는 운동만이 지금 가장 유효한 '문화운동'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단지 몇몇 80년대 아류 감수성으로 운동성을 고취시켜온 활동가들이여, 80년대 후반에 끝난 한시대의 문화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만 한다. 투쟁가요에 맞추어 활기차고 격렬하게 흔드는 몸짓 예술이나 '빡센' 투쟁노래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직 집착'하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자신의 문화적 감수성의 영역을 왜 한정시키고 왜곡시키는가. 언제나 모든 운동은 그 자체로 '문화운동'이 되어야 함을 모두 잊은 듯하다.

 

학생운동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만약 이 지체된 과제로 자멸하고 있는 문화운동이 스스로 왜곡된 지형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왜곡성을 점점 강화시키는 작용만 하고 있다면, 지금 한줌도 없는 학생운동 내 '분업화된' 개별 영역으로서 문화예술 부위가 존재한다는 것도 과감히 해체시켜야하는 구조가 아닐까. (풍물패와 몸짓패, 노래패들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님!) 마치 볼트를 조이는 A와 프레스를 내리는 B처럼 분업화된 학생운동 활동가 구조가 멀쩡한 구조라고 여겨질 수 있는가.

 

예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라. 비정상적인 구조를 다분히 21세기적으로 변혁시켜야 한다. 난 심지어 '해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사용하겠다. '문화운동'을 몸짓패 활동가들이 하는 운동으로 오독하는 것은 운동 내의 감수성을 해체시키는 기능만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지금은 사실주의든 표현주의든, 서사적 연출이든 그 자체로 소모적인 논쟁을 할 시기도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만약 내부에 그런 논쟁이 존재한다면 그 자체로는 아주 훌륭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자신의 표현으로 '운동'의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펼치고,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 것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술 마시고 독백하는 것도 운동인 동시에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21세기 좌파는 스스로 예술가이자 혁명가가 되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는 존재이어야 한다. 대관절 어떤 무식한 섹히들이 그런 구분을 해놓은 것인가. 답답해하는 분들도 다 마찬가지, 긴장푸시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