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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철거민들이 왜 망루로 올라갔겠습니까?” 용산참사 생존자 눈물의 사면장

추모위원회, 용삼참사 9주기 맞아 진상규명 촉구

 

양아라 기자 yar@vop.co.kr
발행 2018-01-15 15:06:31
수정 2018-01-16 0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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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현 경찰청 인권센터) 앞에서 용산참사 9주기 추모위원회가 주최한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사 당시 생존한 천주석 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현 경찰청 인권센터) 앞에서 용산참사 9주기 추모위원회가 주최한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사 당시 생존한 천주석 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뉴시스
 
 

"철거민들이 왜 망루로 올라갔겠습니까? 대화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불타는 망루에 갇혀있었던 용산참사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최근 사면받은 천주석씨는 15일 경찰청 인권센터 앞에서 울분을 토해냈다. 천씨는"경찰의 잔인한 진압과 사측이 고용한 용역들에 의해 너무 폭행을 많이 당해서 못 견디니까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천주석씨는 "망루가 쓰러져 불이 전소될 때까지 경찰은 사람을 구하지 않았다"며 "저는 정신을 차리고 소방관한테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천씨는 경찰관 두 명이 올라와 얼굴이 다 무너지고, 다리가 부러진 자신을 양쪽 팔에 끼고 아래까지 끌고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그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던 천씨는 몇번이고 말을 잊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돌리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켰다. 그러면서 천씨는 "이것이 사람을 살리려고 한 경찰이냐"며 "저는 그 자리에 있으면 불타서 죽었을 것"이라고 흐느끼며 말했다.

사면장 꺼낸 용산참사 생존자의 각오 "진상규명 위해 투쟁하겠다"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현 경찰청 인권센터) 앞에서 용산참사 9주기 추모위원회가 주최한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사 당시 생존한 천주석 씨가 문재인 정부로부터 받은 사면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현 경찰청 인권센터) 앞에서 용산참사 9주기 추모위원회가 주최한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사 당시 생존한 천주석 씨가 문재인 정부로부터 받은 사면장을 들어보이고 있다.ⓒ뉴시스

천씨는 2009년 1월 20일 불타는 망루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는 '공동정범'이라는 이유로 범죄자가 돼 버렸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12월 30일 문재인 정부의 2018년 신년 특별사면 단행을 통해 사면·복권됐다. 그는 가슴에 품은 사면장을 꺼내 펼치며 "억울하게 돌아가신 5명의 진상규명 밝히기 위해 이런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감옥에서 죽고 싶었지만 죽을 수 없었다"면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이번이 마지막인줄 알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투쟁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용산의 외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서 2009년 1월 19일 용산 재개발 지역에서는 철거민들이 생계 대책을 요구하며 한강로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에 올랐다. 이후 점거농성 25시간 만인 20일 새벽에 대테러 전담 경찰특공대가 투입된 진압과정에서 화재 발생해 철거민 5명, 경찰특공대원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검찰은 농성자 중 한 명이 던진 화염병에 불이 난 것으로 보고 망루 4층에 남았던 농성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철거민들은 경찰을 숨지게 한 특수공무방해치사 등의 '공모공동정범' 혐의로 기소돼 모두 '범법자'가 됐다. 하지만 무리한 진압작전 논란을 빚은 경찰 지휘부에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용산참사 이후 7년 동안 공터로 방치됐던 살인개발의 참혹한 참사현장은 '용산 센트럴파크 해링턴 스퀘어'라는 낯선 이름의 '신 용산시대'를 알리며 고층의 주상복합 건물을 쌓고 있다.

용산참사 9주기 추모위원회(추모위)는 15일 오전 11시 경찰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경찰 조사위)가 있는 경찰청 인권센터(구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참사의 무리한 진압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참사 생존 철거민들은 추모와 진실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국화와 장미꽃을 손에 쥐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유가족들과 추모위 대표단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입장문과 꽃을 경찰 조사위에 전달했다.

용삼참사 유가족 "용사참사 이후로 우리의 삶은 아직도 멈춰있다"

유가족 전재숙 씨가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구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용산참사 9기' 추모,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가족 전재숙 씨가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구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용산참사 9기' 추모,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김슬찬 인턴기자

용삼참사에서 숨진 고(故) 이상림씨의 부인인 전재숙씨는 이날 발언을 통해 "저희들 진상규명을 위해서 기구를 경찰청에 설치한다고 하는데, 경찰을 믿을 수가 없어서 반대를 했다"며 "청와대에서도 철저한 조사를 해준다고 어제 약속을 했고, 저희들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씨는 "사람을 5명을 죽여놓고서도 국회에서 활보하는 김석기(당시 용산참사 진압을 지시한 서울 지방경찰청장)와 또한 그 위에 함께 뛴 이명박이 있다"며 "그냥 두고볼 수만은 없다"고 용산참사의 책임자 처벌을 강조했다.

윤용헌씨의 부인인 유영숙씨는 "저희 남편은 연대 투쟁하다 용산에서 학살을 당했다"며 "9년동안 길거리로 해매면서 용산을 잊지 말라고 국민 여러분꼐 알리려고 투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유씨는 "저희 남편이 테러리스트가 아닌, 평범한 가장이자 아빠로 되돌리고 싶다"며 "저희 아이들 9년동안 고통속에서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런 고통스러운 삶을 누가 만들었냐"며 "정부가 만들었다. 저기 있는 경찰들이 만들었다"고 목소리 높였다.

추모위 "국가폭력 사건들 진실 낱낱이 밝혀야" 진상규명 촉구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비롯해 용산참사 9주기 추모위원회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구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용산참사 9기' 추모,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참사에 대한 국가폭력 살인진압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비롯해 용산참사 9주기 추모위원회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구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용산참사 9기' 추모,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참사에 대한 국가폭력 살인진압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슬찬 인턴기자

용산참사에서 아버지가 잃은 유가족이자, 생존자인 이충현씨는 "더이상 시간을 보낼 수 없다"며 "돌아가신 넋이라도 달랠 수 있게 용산참사 진실규명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씨는 추모위를 대표해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추모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난 연말 철거민들에 대한 사면과 복권이 발표됐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없이 2009년 이후 일그러진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사면복권으로 회복될 수 없다"며 "우리는 지난 사면의 의미가 용산참사 문제를 종결하는 끝이 아닌, 국가폭력의 진상규명을 시작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밝히는 첫걸음이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추모위는 "경찰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와 검찰 과거사위원회 등을 통해 무리한 진압과 여론조작, 불공정하고 편파 왜곡된 수사 기소 재판 등 용산참사와 쌍차, 강정, 밀양 등 국가폭력 사건들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며 "비록 경찰에 대한 조사로 한정된 제도적 한계가 있을지라도 정치적 외압에 굴하지 말고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경찰 조사위에 촉구했다.

그러면서 "경찰 스스로의 진압 매뉴얼도 어기며 성급하고 무리한 토끼몰이 진압으로 여섯명의 국민이 사망한 용산참사에 대한 경찰의 면죄부가 또 다른 경찰폭력과 인권침해의 명분이 돼 왔다는 것을 잊지 말라"며 "용산참사와 국가폭력 사건의 재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으로, 제대로 된 공권력 행사의 통제장치를 마련할 무거운 의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 조사위는 용산참사 사건을 경찰 인권침해 사건의 우선 조사대상으로 선정했고, 용산 참사 9주기 즈음인 이달 말부터 본격적인 조사활동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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