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8일 방송 서비스 사업자인 KT의 일방적 통보에 따라 송출 중단 사태를 맞은 [통일TV]가 KT의 부당한 계약해지를 문제삼아 제기한 소송에서 최근 기각 결정이 내려져 앞으로 가처분 신청 기각에 대한 항고와 본안 소송으로 이어지는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는 지난 7월 20일 [통일TV]가 신청한 계약해지효력정지 가처분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린 것으로 3일 확인됐다.
[통일TV]는 "방송내용에 민원이 제기됐거나 법 위반 사실이 있다면 방송심의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주의나 경고, 시정조치 등 내부절차가 있어야 할 것이고 이에 대한 소명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만 KT는 1월 18일 오후 5시 담당임원을 포함한 직원 3명이 PP업체 계약해지에 대한 서면통보를 한 뒤 단 2시간만인 오후 7시부터 방송이 끊겼다"며 계약해지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점을 가처분 신청의 핵심 취지로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통일TV의 주장은 이렇다.
먼저 방송채널사용 사업자인 통일TV가 인터넷 멀티미디어방송(IPTV)을 제공하는 사업자인 KT가 운영하는 '지니TV'를 통해 송출한 콘텐츠는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계약해지의 실체적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KT는 지난 1월 "통일TV를 운영함에 있어 김정은 찬양의 내용과 북한체제 우월성 선전 등 법적, 사회적, 국가적 공익을 저해하는 내용을 지속적으로 송출한 것이 계약해지 및 송출중단의 사유"라고 밝힌 바 있다.
다음은 송출중단 결정 절차의 문제이다.
△'채널 편성 정책 변경' 등에 대해 채널사업자와 상호협의하에 변경할 수 있고 변경 약관 시행 15일 이전에 해당 사업자와 이용자에게 고지해야 한다는 양사간 계약의 규정된 절차를 위반했다는 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이용약관 변경신고를 수리하기 전에 KT측이 채널 송출을 먼저 종료하여 인터넷 방송법과 관련 시행령을 위반한 점 △채널계약 관련 평가기준 공개와 평가결과 통보, 채널계약 변경 관련 공식 소명절차 마련, 송출 중단 1개월 이전 시청자에 고지 의무 등 방송통신위원회 제정 '유료방송시장 채널계약 및 콘텐츠 공급절차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의 규정을 지키지 않은 점 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우선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계약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사유가 있는 경우 그 계약관계를 곧바로 해지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와 해지에 앞서 시정요구나 이행의 '최고'(독촉 통지)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이 양사간 계약내용에 없다는 점을 들어 KT의 계약해지가 절차적으로 위법하여 무효라는 단정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절차상의 하자에 대해 KT측에 기울어진 결정을 한 것인데, 중대 결정을 계약 당사자에 사전 고지없이 할 수 없다는 상식에도 반한다는 의견이 많다.
심각한 문제는 통일TV가 송출했던 컨텐츠에 "김정은을 찬양하거나 북한 체제의 우월성 등을 선전하는 북한 제작영상물이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던 것은 명백하다"고 판단한 것.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에 해당하는지, '채널사업자가 공급한 컨텐츠가 법적, 국가적, 사회적 또는 도덕적으로 공익을 저해하는 경우 모든 법률적 책임을 진다'는 양사간 계약을 위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후 본안 소송에서 다룰 일이라고 미루었지만 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명백하다.
북측 [조선중앙텔레비젼] 영상을 편집해 방송한 통일TV의 '북녘의 하루', '생생북녘' 등 프로그램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6개월 전 송출 통보를 해 온 KT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필동 사무실에서 만난 진천규 [통일TV] 대표는 "국내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해 주요 언론사들이 대부분 북측 [조선중앙TV] 화면을 편집해 방송에 활용하고 있는데, 유독 [통일TV]의 방송내용이 국가보안법 위반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라며 헛웃음을 쳤다.
그러나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기가 막힐 일은 계속됐다.
가처분 신청에 대한 기각결정이 내려지기도 전인 7월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등록취소' 절차를 통보해 온 것.
진 대표에 따르면,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는 지난 7월 12일 '거짓이나 그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등록·변경등록을 한 때 이를 취소할 수 있다는 방송법 제18조를 근거로 '등록취소' 처분을 예정하고 있으니 의견을 진술하거나 증거를 제출할 수 있도록 청문 예정일인 7월 24일까지 정부세종청사로 출석하라'는 '처분사전통지서(청문실시통지)'를 보내왔다.
송출중단 통보가 명백한 절차적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가처분 신청에서 최소한 일부라도 '인용' 결정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면서 지난 6개월간 [통일TV]의 새로운 활로를 고민하던 그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가처분신청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갖고 기다렸지만 결과는 7월 20일의 기각결정이었고 여기에 법인말소 위기까지 발생하다보니 엎친데 덮친 격이 되어 버렸다.ㅡ
진 대표는 앞선 송출중단 조치도 그랬지만 법인 등록취소 역시 초유의 일이라고 했다.
가처분신청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등록취소 예정통보가 온 것이 꺼림직했지만, 남은 일주일은 청문 준비를 하기에 너무 촉박한 일정이어서 우선 다급하게 일정연기부터 사정했다. 그렇게 청문 예정일은 오는 8월 7일로 미뤄진 상황.
이후 남은 절차와 대응은 △가처분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항고 △계약해지에 대한 문제는 본안 신청에서 다루라는 결론이 나왔으니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함께 본안소송을 준비하는 일 △등록취소 청문에 대비해 철저히 소명 준비를 하는 것 등이다.
손해배상청구액은 지금은 뿔뿔히 흩어진 통일TV 직원 16명과 협렵업체 직원 4명, 가족을 포함해 총 50명의 생계 비용과 투자금에 대한 피해액 등을 감안해 결정했다.
송출중지된 1월 18일부터 앞으로 법원에서 인용결정이 날때까지 3년이든 4년이든 최종 판결이 날때까지 계속 손해배상청구액은 적용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여러 법률적 대응과정에서 통일TV의 신청과 청구가 모두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KT와 계약기간이 1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올해 12월 31일이면 자동연장없이 계약해지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판단은 하고 있다. 그렇지만 끝까지 하기로 했다.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송출중단 이후 유튜브를 통해 몇 편의 방송을 올리고는 있지만 의미있는 대안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진 대표는 "하고는 있는데, 그냥 숨만 쉬고 있다는 정도"라고 말했다. 역시 문제는 다시 재원이다.
방송을 시작한 작년 8월 17일부터 5개월동안 경상운영비로만 매달 1억원 넘게 지출되었다. 송출대행사에 송출료로 월 1,800만원씩 내면서도 수신료는 한푼도 받지 못했다.
약 200명에 달하는 다수의 소액투자자들이 모아 준 투자금은 이미 바닥이 난지 오래다.
주주들과 후원회인 통일TV협동조합 조합원들, 짧은 기간이지만 열성적으로 통일TV를 지지하고 즐겨 시청했던 시청고객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크다.
진 대표는 그들 모두에게 "그러나 희망이 있다. 아직은 희망을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고 또 호소했다.
"언젠가 남북관계는 열릴 것"이며, "통일TV가 원상복귀되는 과정이 남북관계 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숨가쁘게 바쁘고 앞으로도 지난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미룰 수도 없고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통일TV 설립 초창기부터 부사장으로 힘을 보탰던 최재영 목사가 다시 큰 어려움에 처한 통일TV의 재기를 위해 다시 나서주어서 힘이 된다고 했다.
최 목사는 "통일TV의 불씨는 살려가면서...그러니까 통일TV를 살려달라는 얘기거든"이라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처분신청이 일부 인용이라도 되면 방송을 재개하려던 계획을 세웠는데 뜻밖에 기각결정 통보를 받았고, 지금 사무실에는 명도소송까지 들어 온 상황이라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내몰렸다고 하면서도, 두 사람은 "아직 포기할 단계는 전혀 아니"라고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한편, 통일TV는 2018년 9월 출범식을 갖고 개국을 준비해 왔으며, 2021년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방송채널사용사업자' 인가를 받은데 이어, 지난해 7월 20일 당시 KT 올레TV와 멀티미디어 방송 콘텐츠 공급 기본계약을 체결하고 8월 17일부터 방송을 시작했다가 5개월만인 지난 1월 18일 일방적인 송출중단 통보를 받았다.
특히 지난해 7월 20일 KT가 당시 올레TV(현 지니TV)를 통해 통일TV의 콘텐츠를 공급하기로 계약한 것을 두고 이틀 뒤인 7월 22일 북한 방송 선개방을 발표한 윤석열 정부가 취한 선제적 조치라는 해석이 나왔으나 이후 대북 강경 기류로 정책기조가 바뀌면서 전격 송출중단 결정이 내려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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