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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폭염’ 속 노동자 보호할 ‘작업중지권 강화’ 개정안 발의됐다

진보당 정혜경 대표 발의, 폭염 등 기후위기에 대한 작업중지권 기준 마련

진보당 정혜경 의원이 지난 9일 방문한 경기도 한 학교급식실. 에어컨 등 냉방시설과 환기시설이 3년간 고장된 채 방치돼 있다고 한다. ⓒ정혜경 의원 페이스북
고장, 고장.

경기도 한 학교 급식실은 에어컨도, 환기시설도 3년간 고장 난 채 방치돼 있다. 아침부터 급식실 온도는 37.4도까지 치솟았고, 숨 막히는 열기에 쓰러진 한 노동자는 열사병 증상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이 폭염폭우 감시단 활동의 일환으로 찾은 학교 급식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 의원은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제가 10분 정도 현장에 있었는데, 그 이후에 메스꺼움이 나타났다. 그 급식실 노동자들은 매일같이 더위를 먹어 매스껍고 어지럽고 배가 아픈 증상을 참으면서 살아온 것”이라며 “진보당이 운영 중인 폭염폭우 감시단에 쏟아지는 제보만 해도 차고 넘친다. 노동자들은 일하다 쓰러지든지, 일을 멈추고 불이익을 받아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너무 잔인하고 지독하지 않나”라고 울분을 토해냈다.

 

 

 

구미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앉은 채 숨진 20대 노동자
택배현장서도 닷새 동안 3명 숨져…“폭염 따른 영향”

 

서울이 나흘째 폭염경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0일 서울 한 공사장에 체감온도 경보 문구가 붙어 있다. 2025.07.10. ⓒ뉴시스

살인적인 폭염은 예년보다 빨리 찾아왔다. 전국에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면서,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1년 이후 가장 이른 시기 온열질환자수가 1천명을 넘어섰다. 더위에 그대로 노출된 건설, 택배, 배달, 조선노동자 등은 물론 냉방시설과 환기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실내에서 일하는 급식, 물류노동자 등도 폭염이라는 재난 속에서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쓰러지고 있다.

실제 지난 7일 경북 구미의 한 건설 현장에서는 베트남 국적의 20대 하청노동자가 출근한 첫날 사망했다. 발견 당시 그의 체온은 40.2도에 달해,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된다. 택배 현장에서도 폭염으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에 따르면 최근 닷새간 택배 현장에서 택배 노동자와 택배대리점 소장 등 3명이 연달아 숨지는 일이 발생했는데, 택배노조는 이들의 사망 원인을 ‘폭염에 따른 영향’으로 보고 있다.

가장 좋은 대책은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폭염에는 일정 시간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폭염 안전 5대 기본수칙’에도 2시간마다 20분 휴식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으나, 규제개혁위원회에 가로막혀 강제 조항이 아닌 권고에만 머무르고 있다.

현행 산업안전법(산안법)에도 “근로자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는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작업중지권 행사를 이유로 회사가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나서거나, 작업중지에 따른 손실을 노동자 스스로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 의원은 ▲폭염·폭우·폭설·강풍 등 기후위기에 대한 작업중지 기준을 마련하고 ▲특수고용·감정노동으로 작업중지권을 확대하고 ▲작업중지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업주를 처벌하고 ▲작업중지 기간 노동자 임금과 하청업체 손실을 보전하고 ▲완전한 개선 조치 이후 작업을 재개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산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폭염 때 ‘돈 벌 때’라며 배달료 높이는 앱…위험한 일터 없어야”
폭염 속 ‘얼음물’ 요구하자, “뇌졸중 위험 높아져” 거부한 코웨이 측

 

정혜경 진보당 의원과 민주노총 및 공공운수노조, 금속노조, 서비스연맹 등 산별노조 관계자들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적용대상 확대·악천후 작업중지·노동자 급여 보호 등을 명시하는 작업중지권 보장 산안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07.10 ⓒ민중의소리

정 의원은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현장에서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토대와 도구를 마련하고 길을 열어주는 게 정치의 사명이자 본질적인 역할”이라며 “이제는 위험하면 멈춰야 한다는 것을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도록 산안법 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각 노조는 실질적인 작업중지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운수노조 박정훈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플랫폼노동자의 디지털 공장인 앱에서는 체감온도가 31도가 넘으면 휴식을 취하라고 공지하고, 노동부의 폭염 가이드라인을 안내한다. 그리고는 평소 2천원대였던 배달료를 더 높인다. 폭우나 태풍이 오면 보너스 미션도 준다”며 “AI는 안전한 날씨에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주고, 폭염에는 지금이야말로 돈을 벌 때라며 땅 위에 돈을 뿌린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물, 그늘, 휴식이 폭염에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여기에 소득은 빠져 있다. 폭염과 폭우 속 일하다가 쓰러지거나 쾌적한 날씨에 일하면서 손가락을 빨거나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받는 것”이라며 “우리의 일터도 마찬가지다. 위험한 일자리라도 견디며 돈을 벌거나 위험한 일자리를 거부하고 소득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위험한 일터라는 선택지를 없애주는 게 국가와 국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서비스연맹 이현철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서비스 현장의 수많은 특수고용, 간접고용, 하청, 플랫폼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이라는 권리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실제 사례를 소개했다.

이 위원장은 “불볕더위가 며칠째 계속되는 요즘, 특고직인 코웨이 코디코닥 방문점검 노동자가 노동부 폭염 가이드에 따라 시원한 얼음물을 지급해 줄 것을 회사에 요청했지만, 회사 관계자는 ‘너무 더울 때 얼음물 마시면 뇌졸중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는 황당한 답변으로 이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특고노동자까지 적용하는 법이 아니라면 사람이 죽어 나가는 폭염 속의 노동자가 절박하게 요청하는 내용도 궤변으로 뭉개는 코웨이 같은 사례가 많아질 것”이라며 “이 개정안이 통과돼 서비스노동자의 생명 안전과 건강 권리가 보장되고, 산재 1위 공화국의 오명을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코웨이 측은 노동조합의 지적에 대해 “전 지국에 냉·온수 정수기 또는 얼음정수기를 설치해, 개인이 상황에 맞춰 선택할 수 있도록 운영 중”이라며 “특정 음용 방식만을 강제한 것이 아니라, 직원 건강을 우선으로 고려한 예방적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생활가전 렌탈업체 '코웨이' 관계자가 노동조합의 얼음물 지급 요구에 보낸 메시지. ⓒ서비스연맹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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