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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유엔연설서 ‘비핵화’ 뺐다… “핵 고도화 중단→축소”

서영지기자

  • 수정 2026-09-23 05:07

이재명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각)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멈춰있던 북미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고, 한반도 전쟁 종식과 평화 체제 전환을 위한 당사자 간 대화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공존’의 방향을 담은 세 가지 청사진을 제시했다. 먼저 이 대통령은 ‘책임있는 평화공존’을 강조하며 “무엇보다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한반도의 오래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는 오랜 기간 남북은 물론 미국, 중국 등 관련국들도 함께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논의해 온 과제”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안한 ‘종전 다자 논의’ 구상을 구체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서로에 대한 상호위협 의사를 내려놓고, 오래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당사자들 간의 논의를 시작하자”고 말한 바 했다. 이번 유엔 연설에서는 평화체제 논의의 당사자로 남북뿐 아니라 미국·중국 등 관련국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다행히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어렵게 만들어졌다”며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대화는 당사자 간 관계 정상화뿐만 아니라 다자협력을 통한 공동 성장, 동북아의 안정과 협력을 촉진하는 유용한 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우선 북측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중단시키고, 중기적으로 축소를 거쳐 장기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유엔 연설에서 ‘비핵화’를 명시적으로 목표로 제시하고 ‘중단→축소→폐기’라는 단계적 해법을 제시했던 이 대통령은 올해 연설에서는 ‘비핵화’라는 표현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축소→핵 없는 한반도’를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각) 공개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도 “현재 상황에서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밝혀, 비핵화를 당장의 협상 목표로 삼기보다 핵 동결과 축소를 우선하는 현실적 접근으로 무게중심을 옮겼음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35년 전, 한반도 평화공존의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 낸 유엔, 그리고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온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번에도 책임 있고 건설적인 역할을 다해주시길 기대한다”며 “우리 정부는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이자 페이스메이커로서 대화의 길을 열고 또 이어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서로를 존중하는 ‘포용적 평화공존’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 간 상호 체제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협력을 통한 공동 성장을 모색하겠다”며 “국제무대에서도 북측을 존중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해 나가겠다. 보건, 재난, 기후 위기 등 국제사회 차원에서 함께 협력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싸울 필요가 없는 ‘안정적 평화공존’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위기를 방지하고, 갈등을 통제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가겠습니다”라며 “기본적인 소통 채널부터 복원하며, 신뢰를 쌓아나가는 것이 안정적인 평화공존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과 관련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위한 연대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호르무즈와 홍해에서 반복된 해상 봉쇄는 에너지와 물류의 핵심 통로가 무기화될 때, 세계인의 일상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는지 보여줬다”며 “국제 해협의 자유롭고 안전한 통항은 국제법이 보장하는 권리이자 세계 경제를 지탱하는 기반”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대한민국은 국제에너지기구(IEA)를 비롯한 기존의 협력 체계를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공급망 위기가 전 세계 경제·민생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더욱 촘촘히 강화해 나가겠다”며 “지금 필요하고 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글로벌 공공재를 공급할 역량과 의지를 갖춘 나라들이 먼저 손을 맞잡고 협력의 공간을 넓혀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이를 ‘건설적 기여국 연대’라고 지칭했다.

이 대통령은 “새로운 기구나 배타적 그룹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존의 국제질서와 유엔의 기능을 존중하면서, 각국이 각자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유연하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협력하고, 그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가자는 것”이라며 “이처럼 ‘따로 또 같이’ 만들어 낸 협력의 성과가 축적될 때 지정학적 경쟁과 교착, 분절을 넘어 다자주의에 대한 신뢰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서영지 기자 yj@hani.co.kr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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