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각)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멈춰있던 북미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고, 한반도 전쟁 종식과 평화 체제 전환을 위한 당사자 간 대화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공존’의 방향을 담은 세 가지 청사진을 제시했다. 먼저 이 대통령은 ‘책임있는 평화공존’을 강조하며 “무엇보다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한반도의 오래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는 오랜 기간 남북은 물론 미국, 중국 등 관련국들도 함께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논의해 온 과제”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안한 ‘종전 다자 논의’ 구상을 구체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서로에 대한 상호위협 의사를 내려놓고, 오래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당사자들 간의 논의를 시작하자”고 말한 바 했다. 이번 유엔 연설에서는 평화체제 논의의 당사자로 남북뿐 아니라 미국·중국 등 관련국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다행히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어렵게 만들어졌다”며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대화는 당사자 간 관계 정상화뿐만 아니라 다자협력을 통한 공동 성장, 동북아의 안정과 협력을 촉진하는 유용한 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우선 북측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중단시키고, 중기적으로 축소를 거쳐 장기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유엔 연설에서 ‘비핵화’를 명시적으로 목표로 제시하고 ‘중단→축소→폐기’라는 단계적 해법을 제시했던 이 대통령은 올해 연설에서는 ‘비핵화’라는 표현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축소→핵 없는 한반도’를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각) 공개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도 “현재 상황에서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밝혀, 비핵화를 당장의 협상 목표로 삼기보다 핵 동결과 축소를 우선하는 현실적 접근으로 무게중심을 옮겼음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35년 전, 한반도 평화공존의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 낸 유엔, 그리고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온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번에도 책임 있고 건설적인 역할을 다해주시길 기대한다”며 “우리 정부는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이자 페이스메이커로서 대화의 길을 열고 또 이어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서로를 존중하는 ‘포용적 평화공존’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 간 상호 체제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협력을 통한 공동 성장을 모색하겠다”며 “국제무대에서도 북측을 존중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해 나가겠다. 보건, 재난, 기후 위기 등 국제사회 차원에서 함께 협력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싸울 필요가 없는 ‘안정적 평화공존’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위기를 방지하고, 갈등을 통제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가겠습니다”라며 “기본적인 소통 채널부터 복원하며, 신뢰를 쌓아나가는 것이 안정적인 평화공존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과 관련해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위한 연대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호르무즈와 홍해에서 반복된 해상 봉쇄는 에너지와 물류의 핵심 통로가 무기화될 때, 세계인의 일상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는지 보여줬다”며 “국제 해협의 자유롭고 안전한 통항은 국제법이 보장하는 권리이자 세계 경제를 지탱하는 기반”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대한민국은 국제에너지기구(IEA)를 비롯한 기존의 협력 체계를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공급망 위기가 전 세계 경제·민생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더욱 촘촘히 강화해 나가겠다”며 “지금 필요하고 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글로벌 공공재를 공급할 역량과 의지를 갖춘 나라들이 먼저 손을 맞잡고 협력의 공간을 넓혀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이를 ‘건설적 기여국 연대’라고 지칭했다.
이 대통령은 “새로운 기구나 배타적 그룹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존의 국제질서와 유엔의 기능을 존중하면서, 각국이 각자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유연하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협력하고, 그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가자는 것”이라며 “이처럼 ‘따로 또 같이’ 만들어 낸 협력의 성과가 축적될 때 지정학적 경쟁과 교착, 분절을 넘어 다자주의에 대한 신뢰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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