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주어지면 청년은 달라진다. 일이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준서(24·가명)는 최근까지 중앙행정기관에서 대학생 인턴을 하며 “(그 조직이) 나를 필요로 한다”고 느꼈다. 그는 “하루에 14~15시간을 일해도 뭐 맞은 것처럼 설렜다”고 했다.
문제는 그런 자리가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준서도 본격적으로 취업준비에 나서며 가장 걱정하는 건 ‘지방대’ 꼬리표다. 사회는 끊임없이 학벌과 경력 같은 것들로 사람의 가치를 가늠한다. 청년에게 삶의 의미는 자격을 갖춰 ‘획득’해내야 하는 것이 됐다. 하지만 그 잣대에 맞출 기회와 자원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삼수생 한소율(20·가명)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직장인도 아니니까요.” 집에서도 그의 자리는 없다. 부모는 “한 번에 대학 간” 언니에게만 고기반찬을 준다. 고교 졸업 후 사회에 뛰어들었던 부모는 ‘인서울 대학’만이 다른 세계로 나아갈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그건 소율도, 또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고3 교실에선 “지방대를 왜 가냐”는 말이 심심찮게 들렸다. 사회가 그어놓은 대학 서열의 잣대가 가정도, 학교도 집어삼켰다.
그 속에서 소율은 가장 절친한 친구 A를 잃었다. 한양대에 붙었다던 A는 사실 지방대에 다니고 있었다. 몇몇 친구들이 탐정처럼 집요하게 달려들어 이 사실을 밝혀냈다. ‘한양대생 연기’를 지속하는 A에게 소율이 “알고 있다”고 했을 때, 둘의 관계는 끝났다. 성적과 출신 대학이 곧 사람의 ‘값’이 되는 세상에서 ‘지방대’는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해서라도 일단은 숨겨야 할 치부였다.
소율과 그의 친구가 사회가 요구하는 자격에 가닿지 못해 헤매고 있다면, 김태영(31)은 그 기준에 어떻게 닿는지조차 알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태영의 가정은 부모의 이혼으로 두 차례 무너졌다. 집에서조차 온전히 자리 잡지 못했다. 태영의 사정은 공부, 대학, 진로 등 수많은 선택지에 여파를 미쳤다. 화장품 방문판매로 가계를 지탱해야 했던 어머니의 조력은 기대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버티는 곳이 된 학교 역시 다른 길을 일러주지 않았다. 태영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시간을 들인 만큼 결과가 쌓이는 게임만이 그의 삶에 “루틴”을 만들어줬다.
태영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직업훈련 학원에 등록했고, 취업을 시도했고,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곳엔 그를 이끌어줄 여력이 있는 어른도, 제도도 없었다. 쉴 새 없이 호통만 날아들었다. 그때마다 태영은 “못하는 나”를 탓하다 그만두곤 했다. 태영에게 ‘좋은 직장’이란 “초심자가 일을 잘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지만, 그마저도 닿을 수 없었다.
그런 태영에게 어딘가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준 건 온라인 정치 커뮤니티였다. 매일 커뮤니티 안을 맴돌며 “우리”라는 공감대는 두터워졌다. 2025년 1월, 게시판을 도배한 ‘대통령을 구하러 가자’는 구호가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구속 위기의 대통령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사회에서도 제 자리가 보이는 듯했다. 10년간 모은 게임 아이템을 팔아 여비를 마련했다. 다음날 곧장 서울행 기차에 올라탔다. 그가 향한 곳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이뤄진 서울서부지법이었다.
날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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