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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 짓누르는 자본의 논리…기업, 대학을 점령하다

등록 : 2014.01.27 21:32수정 : 2014.01.2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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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 한지혜 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삼성그룹이 채용방식으로 채택한 ‘대학총장 추천제’를 반대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대학 서열화·지역 차별 등 ‘총장 추천제’ 파문 일파만파 
상아탑 짓누르는 자본의 논리…기업, 대학을 점령하다

‘쨍그랑’ 하고 스타벅스 유리창이 깨졌다. 10년 전 고려대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고려대생이 던진 돌멩이는 대학 내 자본의 침입에 대한 항의를 상징했다. 글로벌 자본을 상징하는 스타벅스가 대학 안에 처음으로 들어선 때였다. 학생들은 “학교의 주인은 자본 아닌 학생”이라며 항의 집회도 열었다. 당시 <고대신문>의 설문조사 결과 학생 200명 중 121명은 ‘상업시설이 학교에 들어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후 자본의 대학 잠식은 오랜 시간 서서히, 그러나 꾸준하게 진행돼 왔다. 자본의 대학 침투에 저항하던 대학생들은 이제 하나둘 학교를 떠났다. 그 사이 대학생이 된 이들에게 스타벅스 등 대학 내 상업시설은 자연스러운 광경이 됐다. 대학의 기업화 또는 대학의 기업 예속 현상도 심화했다. 잇단 경제위기에 따른 취업난 탓에 이런 현상은 도리어 구원의 동아줄로 여겨지는 상황이다.

 

 

■ 자본의 대학 침투 상업시설과 건물 이름만 대학으로 들어온 게 아니다. 아예 재단 운영에 재벌그룹이 직접 참여했다. 1996년 삼성은 성균관대 재단 운영에 뛰어들었고, 2008년 두산이 중앙대를 이끌기 시작했다. ‘재계가 직접 인재를 길러 사회에 보답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방점은 ‘사회 공헌’보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 양성’에 찍혔다. 학과 구조조정이 급속히 이뤄졌다. 중앙대는 박용성 이사장(두산중공업 회장)이 직접 나서 “대학도 산업”이라며 회계 수업을 모든 학생의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다. 인문학 등 기초학문분야의 유사 학과를 통폐합하고, 경영계열을 육성하는 학과 구조조정안이 기업 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업체에 맡겨졌다. 당시 박 이사장은 “대학은 현실적으로 이미 직업교육이 됐다”, “자본주의 논리가 어디 가나 통한다는 걸 느꼈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성균관대 역시 2010년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 분야를 통폐합하는 내용이 담긴 ‘비전 2020’ 초안을 발표하고, 이후 영어 강좌 비율도 높였다. 다른 대학도 따라왔다. 동국대 등은 학과를 평가해 하위권에 해당하는 학과의 입학정원을

 

줄여 우수 학과에 나눠 주는 ‘입학정원관리시스템’을 도입했다. 지방대에서는 철학과 등 인문학과가 사라지는 일도 생겼다. 고려대생 김예슬씨는 “기초학문이 고사되고 대학이 취업의 전당으로 바뀌고 있다”며 ‘대학을 거부한다’는 대자보를 붙였고, 한 중앙대생

 

은 한강 다리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학교에는 엘지(LG)-포스코 경영관, 삼성 백주년기념관, 에스케이(SK) 경영관 등 재벌 기업 이름을 단 건물이 끊임없이 세워졌다. 기업 자본은 대학 재단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삼성 ‘총장 추천’ 대학별 할당 
학교 서열화 논쟁 불러일으키고 
기업 비판 목소리 내는 학생들 
취업 방해자로 몰아 

이미 대학내 상업시설 즐비 
자본의 침투에 익숙해지고 
학내 민주주의 점점 훼손돼 
“취업위주 학과로 통폐합” 우려도 

 

 

 

■ 배제와 포섭 자본의 대학 유입에 대한 찬반 토론은 더 이상 없다. 기업이 대학을 어느 선까지 지배하도록 허용할지가 논쟁의 대상이다.

 

삼성의 총장 추천 채용을 둘러싼 논란도 딱 여기까지다. 삼성은 올해 상반기 채용부터 총장 추천제로 신입사원을 뽑고, 전국 200여개 대학에 인원을 할당하겠다고 24일 밝혔다. 대학별 추천 할당 인원도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생들로부터 “대학은 취업의 전당이 아니다. 총장이 나서 거부 의사를 밝혀달라”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보다는 취업 논리가 더 강해보인다. “기업이 추천서를 보내면 취업에 유리한데, 괜히 시끄럽게 해서 우리만 불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더 많은 것이다. 한 대학생은 “대학을 일종의 수익구조 안에 포함해 바라보면, 기업이 추천서를 보내 학생들을 뽑으면 기업도 좋고 학생 개인으로서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서열 논쟁도 이어졌다. 삼성의 할당 인원이 마치 사법시험 합격자 수나 취업률 순위처럼 학교 서열을 매기는 새로운 눈금자처럼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삼성은 “총장 추천을 받은 학생들은 서류전형을 면제해주는 것인데 이를 특혜로 오해하고 있다. 서류전형만으로는 뽑을 수 없는 인재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학교 서열 등과는 관계가 없다”고 발을 뺐다. 27일 온라인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는 학교 이름만 바뀐 ‘삼성 OO대’가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10위까지를 계속 차지했다. 취업에 대한 학생들의 지대한 관심이 표현된 것이다.

 

이를 두고 ‘배제’와 ‘포섭’이라는 기업의 전형적인 지배 방식이 대학에 뿌리 내리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취업을 미끼로 대다수 학생들의 기업 비판을 막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을 학생들 스스로 ‘학교 이미지를 나쁘게 해 취업에 방해가 되는 적’으로 돌리게 만드는 분위기가 대학을 지배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학교 서열 논쟁이 보태지면서 ‘기업 논리’는 습자지처럼 대학 사회를 빨아들이고 있다.

 

 

■ 기업논리의 내면화 2008년 두산이 재단 운영에 참여한 중앙대가 대표적이다. 박용성 이사장은 당시 <중대신문>에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판매가 되듯 대학도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밝히고, “대학은 현실적으로 직업교육이 됐다”, “자본주의 논리가 어디 가나 통한다는 걸 느꼈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홍보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다른 대학과 달리 중앙대는 학생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중앙인’을 학교가 직접 만들어 운영한다. 이곳에서 홍보실이 직접 서열 담론을 부추기는 ‘훌리건’(대학 서열 논쟁을 일삼는 이들을 부르는 말) 놀이에 나선다. 지난 2011년 중앙대 홍보실장은 ‘최근 우리 대학의 상승세’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성한(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기타대로 분류되다 서성한중(중앙대)으로 바뀐 것은 무엇보다 분명한 성과’라는 글을 대놓고 올리기도 했다.

 

‘재벌 기업에 대한 기대’와 ‘학교 서열 상승에 대한 욕망’의 결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학교를 비판하는 것은 이미지 추락과 더불어 취업에 필요한 학생 개인의 상품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의식이 학생들에게 주입된다.

 

2003년 총학생회 부회장을 지낸 배아무개(35)씨와 몇몇 학생들이 ‘카우넷’이라는 독자적인 학생 커뮤니티를 만들었지만, 학교가 재학생 신분 확인 등에 필요한 지원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사이트 자체가 시들해져 버렸다. 중앙대에 다니는 강아무개(24)씨는 “지난 2005년 고려대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을 때 학생들이 나서 반대하자 ‘취업 길 막을 거냐’고 반발했던 나머지 학생들의 심정을 학교가 대놓고 이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생·청년들로 구성된 청년유니온이 삼성의 총창 추천 채용에 대해 27일 “대학 사회는 삼성의 기호에 따른 인사팀으로 전락하고, 학교에 배정된 추천권을 얻기 위해 각 단과대 및 학생들이 눈치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우려를 보여준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명문대 서열이 삼성 할당제 숫자로 바뀌고, 학내에서는 총장 추천을 받기 위한 내부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며 “삼성 지배의 그물은 더욱 촘촘해지고 내면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비판이 사라진 자리 비판적인 목소리가 설 자리를 잃어가자 이를 제압하는 것도 수월해졌다. 중앙대는 지난 2010년 ‘기업은 어떻게 대학을 접수했나’ 등의 기사를 게재한 <중대문화> 등 비판적 시각의 학내 언론에 대한 운영비 지원을 끊었다. 삼성이 재단 운영에 참여하는 성균관대는 지난해 10월 <성대신문>이 학내 동아리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관계자들을 초청해 열기로 했던 간담회 장소를 학교가 폐쇄한 사건 등을 다루려고 하자 신문 발행을 막았다.

 

대자보도 시련을 겪었다. 중앙대는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고 이에 학생들이 화답하자 이를 일방적으로 떼어냈다. 중앙대의 대자보 철거는 두산이 학교에 들어온 뒤인 2009년 시작됐다. 학생들이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로 있던 진중권 동양대(교양학부) 교수 재임용을 찬성하는 대자보를 붙이자 학교는 1994년 만들어진 뒤 사문화돼 있던 ‘게시물 부착 신고제’를 들고 나왔다. 2012년에는 학생들이 현대차그룹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대자보를 붙이려고 하자 ‘(대자보가) 학교의 공식입장으로 보일 수 있고, 간접광고가 될 수 있다’며 이를 불허하는 일도 있었다.

 

교수들도 자본이 대학을 점령하는 현상을 ‘공공연한 사실’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학내 공론의 장 축소와 학생들의 자기검열, 학교 서열화와 취업 이기주의 등이 삼성의 추천 채용과 중앙대 청소노동자 파업 등을 계기로 도드라지게 떠오른 것이지 갑작스런 현상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중앙대의 한 교수는 “노조가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면 기업이 민감하게 반응하듯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말이 나오면 학교는 틀어막으려고만 하면서 학내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며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 사태만 봐도 두산 같은 대기업이 양보해도 큰 문제가 없을 텐데 그러지 않는 이유는 ‘이 정도 선은 넘으면 안 된다’는 나름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문학의 위기 등 대학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현상 역시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대학 안에서 벌어지던 모습이 이번 일을 계기로 떠오른 것”이라며 “(자본이 힘을 키워갈수록) 취업이 잘 되는 학과 위주의 통폐합 등 구조조정 등도 점점 현실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승헌 이재욱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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