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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상태로 20대가 끝날까 봐 무섭다"

 

취업 걱정에 잠 못 드는 29.5세... '나이 제한' 없다지만, 서류 통과도 어려워14.07.08 09:55l최종 업데이트 14.07.08 09:55l손지은(93388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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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 현장에 모인 20대 구직자들.
ⓒ 박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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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때?"

몇 번을 망설이다 친구에게 물었다. 통화 버튼에 손가락을 가까이 댔다가도 금세 그만두고, 괜히 카카오톡으로 시시한 농담만 주고받길 몇 차례. 전화를 걸어 빙빙 에두르다 조심스럽게 취업 이야기를 꺼내자 친구가 원망 섞인 탄성을 내질렀다. 우리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만큼 그에게 취업은 무거운 주제였다.

"월드컵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잠시 숨을 고른 친구 현정이(가명·29·여)가 헛헛하게 말했다. 국가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대부분의 사람이 월드컵에 흥미를 거두었지만, 너만은 스포츠 기자 지망생답게 이 축제를 즐기고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에게 가장 괴로운 시간인 새벽녘에 무언가 집중할 것이 생긴 게 좋다고 했다. 이날도 친구는 오전 1시 아르헨티나와 벨기에의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례①] 29.5세 취업준비생 "이젠 서류통과도 힘들어졌다"

친구는 매일 오전 1시쯤 침대에 눕는다. 그러나 잠이 드는 건 3~5시. 고요한 시간, 어두운 방에 누우면 낮 동안 잠자고 있던 복잡한 잡생각이 한꺼번에 떠오른다고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런 잡생각을 굳이 물리치지 않았다. 하지만 서른을 앞둔 올해는 이것조차 시간 낭비로 느껴진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팟캐스트를 듣는다. 논술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김현정의 뉴스쇼' '이이제이' 등 시사 방송을 들으며 취업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잠재운다.

요즘 그를 가장 괴롭히는 건 '나이'다. 서른을 6개월 앞둔 '29.5세'. 지난해까지는 언론사 최종면접에도 갔지만 스물아홉 살이 된 이후 서류전형에서 탈락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는 "스펙도, 자기소개서도 지난해 보다 나아졌는데 올해는 서류통과도 힘들어지니까 계속 나이 탓을 하게 된다, 이제는 '나이 강박증'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밤새워 뒤척이는 탓에 수면시간이 부족한 편이지만 친구는 오전 7시에 꼬박꼬박 집에서 나와 근처 체육관으로 간다. 그는 9개월째 수영 강습을 받고 있다. 중년 여성이 대부분인 수영장에서 유일한 20대인 그는 다른 수강생보다 체력과 습득력이 좋아 강사에게 칭찬을 자주 받는다. 친구는 "별것 아닌 이 칭찬이 요즘 내게 유일한 힘"이라고 말했다. 6개월째 주말마다 하는 봉사활동도 비슷한 이유로 시작했다. 지적장애인에게 책을 읽어주며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용돈은 떨어져 가는데, 나이 때문에 알바 구하기도 어려워

친구가 입사를 희망하는 스포츠신문은 2012년 이후 단 한 차례도 공채 모집 공고가 뜨지 않았다. 다른 스포츠 전문 인터넷 언론사에서 이따금 채용공고가 났지만 지원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최근에는 서류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지원하는 것도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수험생활이 길어지면서 용돈도 고민거리다. 전에는 답답한 도서관 대신 카페를 자주 이용했지만, 지금은 고민조차 하지 않고 도서관으로 직행한다. 무료한 수험생활을 달래고, 용돈 벌이도 할 겸 동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면접도 봤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며칠 후, 구인구직 사이트에 똑같은 내용의 구인공고가 다시 올라온 걸 보고 자신이 거절당했다는 걸 알았다.

친구는 "카페에서 일한 경험도 있어서 무난히 일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마도 나이 때문에 떨어진 거 같다"고 말했다. 그에겐 요즘 작은 도전도 부담이다. 괜히 내 나이만 확인하고 끝나는 것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덤덤한 목소리 끝이 떨렸다. 더는 물을 수 없었다.

[사례②] 뒤늦은 취업 도전... 주변에선 "그냥 시집이나 가라"

또 다른 친구 지연이(가명·여)도 '29.5'세 취준생(취업준비생)이다. 2011년 경기도의 한 전문대를 졸업한 친구는 최근까지 약국에서 처방전을 접수하고 계산하는 일을 했다. 졸업 직후 입사 지원을 하기에는 준비가 덜 됐다는 생각에 취업 준비를 하면서 용돈을 벌 요량으로 시작한 일이 길어졌다.

하지만 퇴근 후에 책을 펼치는 게 쉽지 않았다. 취업도 멀어지고, 월 120만 원 남짓 버는 아르바이트 생활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좀 더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20대가 끝나버리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것도 쉽지 않았다. 꼬박 두 달을 고민했다. '워크넷' '사람인' 등 구직사이트를 살펴봐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29살 전문대 졸업생에게 기회를 주는 곳은 더욱 없었다. 친구는 "약국을 그만두기 일주일 전부터는 두려운 마음에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다가도 답답함을 느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가, 다시 눕기를 반복했다. 그는 "답답해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는데, 그래도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아 막막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회상했다.

신촌에 있는 어학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며 차근차근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그에게 좁은 취업문만큼 괴로운 것이 주변 사람들의 '눈'이다. 스물아홉에 다시 시작하려는 그에게 주변 시선은 관대하지 않다. '결혼해서 살림이나 하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이나, '얘는 끝났구나' 하는 동정의 시선이 그것이다. 친구는 "나는 아직 젊고,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큰 벽 앞에 선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례③] 3년째 공무원 시험 낙방... 나이 많아 일반 기업 취업도 힘들어

공무원 시험 준비생 희진(가명·여)이도 취업을 하지 못한 채로 29살의 절반을 보냈다. 그는 지난 6월 서울시 지방직공무원시험에 낙방했다. 올해로 3년째다. 2011년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노량진에서 공무원시험에 '올인'했다. 휴학을 할 당시에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지만, 다음 학기 복학을 앞두고 있다. 학교 교칙상 더는 휴학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3년 안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니 허무할 뿐"이라고 전했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은 올해 모두 합격했다. 복학을 앞둔 그는 다음 해에도 시험을 봐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결국 계속 하기로 결정했다. 나이 때문에 일반 기업은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어차피 안 될 시험 봐서 무엇하냐"고 성화지만 그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다. 지난 4월에는 부모님이 친구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아 결국 시험을 보러 가지 못했다. 그는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부모님이 원망스럽다.

다시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그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잠도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적어도 서른 안에는 모든 게 갖춰져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때와 견주어 별반 달라지지 않은 처지를 생각하면 속이 탄다. 공무원 시험을 그만두고 맞선을 보라고 권하는 부모님을 피해 다시 노량진으로 갈 예정인 친구는
"시간을 딱 시험지 받기 전으로 되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그때로 돌아간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하는 나이. 하지만, 취업 전선에 서 있는 친구들은 스스로를 '벼랑 끝'이라고 표현했다. 언론들은 연례행사처럼 명절 때마다 취업준비생들을 찾는다. '귀향 포기하고 도서관 택한 취업준비생들', '삼각김밥으로 끼니 때우는 수험생' 따위 기사가 그 예다.

대부분 한 컷짜리 단신뉴스로 처리되지만, 사진 속 피사체들이 느끼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내 주변 '29.5세'의 스트레스는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았다. 그들은 "아무 직업도 갖지 못한 채 20대가 끝나버릴까 무섭다"고 했다. '노동'이 고픈 그들이 원하는 건 면접에 설 기회만이라도 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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