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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쌀 관세화, 통상 버팀목 없애는 자충수"

[토론회] 쌀 개방 문제, 필리핀 사례에서 배워라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7.08 16:46:43

 

 

 

 

 

 

 

"협상 대상국들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얻을 게 없다. 한국뿐 아니라 협상 대상국도 대가를 치르게 돼 있다. 따라서 협상을 어떻게 진행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라올 몬테마이어 필리핀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상위원이 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쌀 개방 문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국제 토론회에서 한국에 한 조언이다. 
 
몬테마이어는 재작년부터 필리핀에 쌀을 수출하는 WTO 회원국들과의 협상에 농민 대표로 참여했다. 2년에 걸친 협상 결과, WTO상품무역이사회는 필리핀의 쌀 시장 개방을 한 차례 더 미루기로 지난달 승인했다. 
 
그는 필리핀의 이번 협상에서 한국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사례가 몇 있다고 했다. 쌀 관세화 유예 기간이 만료된다고 자동으로 시장 개방을 선언할 필요가 없단 점, 시간을 두고 협상을 진행하며 한국의 입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지점 등이다. 
 
특히 그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엔 기존의 수입제한 조치(의무수입물량)는 암묵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참가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필리핀은 앞서 쌀 시장 의무 개방 시점을 석 달 앞둔 2012년 3월에 WTO에 의무면제(웨이버)를 요청하고 협상에 돌입했다. 관세화 유예 종료 시점이 올 연말로 다가온 현재 한국의 상황과 유사했던 셈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필리핀은 농민 대표를 포함해 WTO와 협상에 나섰고, 한국 정부는 '더는 관세화를 미룰 수 없다'며 쌀 의무수입물량(MMA) 증량과 관세화 중 하나를 한 달 안에 선택하려 한단 점이다. 사실상 '관세화 선언'이 임박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몬테마이어는 "시간이 얼마 없었지만 일단 협상을 시작해 다른 나라가 요구할 개방 유예에 대한 대가가 얼만큼 큰 것인지는 확인하고 나서 필리핀의 입장을 정하기로 했었다"라며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엔 이전까지 적용되던 수입제한조치가 암묵적으로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어떤 나라가 협상 기간 필리핀을 WTO에 제소하면 패소할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한테 어쨌거나 쌀을 수출하려는 나라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필리핀은 협상 결과 2017년까지 쌀 관세화 의무를 한시적으로 면제받았으며, 대신 MMA를 종전보다 2.3배 늘리기로 합의했다. 유예의 대가를 치른 건 사실인 것이다. 
 
이에 대해 몬테마이어는 "협상에 농민 대표가 참여해 2년 동안 많은 논의를 했고, 실제 축산 농가에서는 의무 면제 대신에 축산업에 대한 더 큰 양허가 합의된 데 거세게 반발했었다"며 "이게 참 어려웠는데, 결국 축산농가 양허를 최소화하는 합의를 이루며 협상을 마무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 지난 6월 20일 오후 'WTO 쌀 관세화 유예 종료 관련 공청회'가 열린 한국농어촌공사 대강당 앞에서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협상도 하지 않고 쌀 전면 개방을 선언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6월 20일 오후 'WTO 쌀 관세화 유예 종료 관련 공청회'가 열린 한국농어촌공사 대강당 앞에서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협상도 하지 않고 쌀 전면 개방을 선언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종류의 FTA에서 버팀목 사라진다"
 
앞서 쌀 시장을 개방한 일본이 결국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쌀을 예외로 다루겠다 하고도, 이미 (1999년) 관세화를 택한 결과 협상 위치에 타격을 받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본 전국농민운동연합회 마시마 요시타가 부회장은 이같이 지적하며 "MMA를 줄이고 고관세를 적용하는 게 더 타당할 것이란 일본 정부의 설명은 억지 주장에 불과했다. MMA 증량과 관세화 모두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한·미 FTA 협상에서 쌀을 예외로 다루어야 한다는 요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WTO 협정에서 쌀에 대한 특별조치(관세화 유예)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 또한 강조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 또한 "관세를 500%로 하든 1000%를 하든 모든 종류의 FTA에서 (쌀을 지키기 위한) 버팀목이 없어질 것"이라며 "21세기형 FTA라는 TPP에 각종 입장료를 내고 앉는 순간 (쌀 관세를) 흥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관세화 선언은 '자충수'라는 경고다. 
 
한국 정부가 원하지 않아도 협상은 어떤 형태로든 무조건 열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은 "관세화를 택하면 지금까지 유지됐던 의무수입물량 국가별 쿼터가 사라진다"며 "이는 미국으로서도 지금까지 보장받던 연간 5만 톤의 쌀 수출이 흔들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미국이 이미 시사한 바 있듯, 낮은 관세를 요구하려는 협상에 시동이 걸릴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은 무역대표부(USTR)가 작성한 '2014년 무역장벽보고서'에서 "한국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한국 MMA가 만료되는 2014년 말의) 다음 단계를 의논"하고 "미국 (쌀) 공급업체들이 한국 시장에 지속해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협상 무기는 다양할수록 유리하며 처음부터 관세화 하나만을 선택한다면 협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는 쌀 관세화 선언을 중단해야 하고, 국회에서는 사전에 비준동의안 수준으로 처리해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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