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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함이 드는 이름, 한광호

미안함이 드는 이름, 한광호[인권오름] 누가 개인적 죽음이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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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3월 21일 기자회견이 열리는 서울 양재동으로 향하는 한강변에는 수양버들이 아련한 연둣빛으로 물이 오르고 있어 봄이 온 것을 알리고 있었다. 전날 본 금강도 그리 예뻤다. 정말 멀게만 여겨지던 영동으로 가는 길, 그래서 계속 가지 않다가 그의 소식을 접하고서야 가게 됐다. 3월 17일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금강이 그의 동료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는 봄초록을 슬프게 예쁘게 뽐내고 있었다.

개인적인 죽음이라고 말하는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

한광호, 그는 이렇게 세상천지가 봄소식을 알려도 추운 겨울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지난 3월 17일 그는 슬픔과 좌절과 분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알렸고 그리고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는 ‘그들이 또 노동자를 죽였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기자회견에서 여러 사람들이 노조탄압에 의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소리 높여 이야기하였고 그것이 전달되기를 바랐으나 현대자동차와 유성기업은 회사와 연관 없는 개인적인 죽음이라고 이야기했다. 기가 막힐 뿐이다. 그가 죽은 건, 회사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가 사회생활을 못 버틸 만큼 나약해서도, 그의 주위에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랑하는 이가 한 명도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엄마, 친구들이 있었고 그는 누구보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이였다. 그러나 그는 회사의 지나친 탄압으로 숨쉬기 어려울 만큼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고 자신을 옥죄여오는 현실을 벗어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것을 두고 개인적인 죽음이라 말하면 안 된다.

2011년 유성기업에 심각한 노조탄압이 시작되었고 심리치료가 시작된 것 건 2012년부터이니 내가 유성 조합원들을 만난 지 벌써 5년차가 되고 있다. 그동안 유성 조합원들을 만나면서 내가 마주한 것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분노와 좌절과 슬픔이 산을 이루어 공장 안에 가득 차있고 그것이 넘쳐 사회의 아픔으로 번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주 많이 우울해했고, 아주 많이 분노하고 있었고, 아주 많이 상처 입어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들의 가족이 우울해하였고 아이들이 불안해하고 가정이 해체 위기에 있기도 했다. 쌍용자동차나 그밖의 다른 장기투쟁사업장들과 마찬가지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엔 심리적으로 너무 피폐해졌다.

자신이 믿고 있는 사회정의가 외면당하고 자신이 평생직장이라 생각하며 다니던 회사가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용역들을 들이고 폭행을 일삼아도 처벌받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막아내던 자신들이 처벌 받고 해고당해야 하는, 그 기막힌 현실을 아무 감정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성 조합원들이 꼬박 5년을 싸우는 이유는 자신들의 믿음과 행동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인정받고 싶어서다. 그래서 가족과 자신을 아는 이들에게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인간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대상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어떤 이는 그것을 위해 평생을 걸기도 한다. 그렇게 중요한 것이기에 유성 조합원들은 해고와 징계를 밥 먹듯 당하면서도 서로를 위로하며 다독이며 버티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여기까지 온 것은 정말 큰 믿음과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과 이야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금속노조 유성지회 조합원들은 서울시청광장에서 한광호 열사의 시민분향소를 차리기 위해 상경했다. 경찰의 탄압과 서울시청의 탄압으로 바닥 깔개도 없이, 침낭도 없이 동료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
 

미안함이 드는 이름, 한광호

한광호, 그의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드는 마음이 미안함이었다. 만나지 못해서. 왕복 8시간의 거리가 부담스러워 선뜻 나서지 못한 그 길이 너무 미안해서 소식을 듣고 황망하여 길에 서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고 어제도 오늘도 계속해서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2011년 쌍용 자동차의 고(故) 임무창씨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이 떠올랐고 ‘나는 또 한 발 늦었구나’ 싶은 마음에 자꾸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물론 상담이나 심리치료는 마법이 아니다. 누구도 마음이 가는 길을 알지 못하니 상담이나 심리치료가 진행되는 도중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고 더 나빠지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 만나 진심을 나누는 그 순간 누군가 옆에서 나누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힘이 또 다른 힘을 만들어내서, 외부 상황은 변하지 않더라도 내면에 있는 자신의 힘을 발견하게 하고 스스로 버티고 견딜 수 있게 할 거라는 믿음을, 나는 가지고 있다. 그 믿음으로 상담실로 돌아와 앉아 있다.

게으른 나의 발걸음은 언제나 늦는다. 그래서 유성기업 영동공장의 한광호에게는 늦었으나 다른 이들에게는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부디 그러길 바란다. 그리고 5년을 한결 같이 싸우고 있는 유성지회 조합원들과 이 땅의 일하는 사람 노동자, 그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커다란 사랑이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할 유일한 원동력이라는 것을 가진 이들은 좀 알았으면 좋겠다. 같이 살자 쫌!

* 2012년부터 충남노동인권센터 부설 치유공간 두리공감에서는 상담사들과 함께 금속노조 유성지회 조합원들에 대한 치유상담활동을 하고 있다.

※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 웹진 <인권오름>에 실렸습니다.

유금분 / 상담사 | 승인 2016.04.0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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